삼국지 조조전 3 - 십상시의 나라, 환관의 몰락
왕샤오레이 지음, 하진이.홍민경 옮김 / 다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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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전 3

왕샤오레이 (지음) | 하진이 홍민경 (옮김) | 다연 (펴냄)

127. 나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두 번 다시 조정의 녹봉을 받지 않을 것이네. 천하가 정의롭고 공정해지지 않는 이상 나는 이곳에 은둔하며 살 것이네.

관직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 선언하고 고향에 내려가 초가에서 검소한 삶을 사는 조조. 비록 처음 벼슬길에 나아갈 때 아버지 조숭이 환관 왕보에게 건넨 뇌물과 아첨이 그 발판이 되었지만 관직에 있는 동안은 청렴하고 공명정대했던 조조다. 도리에 어긋남을 부끄러워하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와 결단력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였을까? 이런 조조가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은.

은인에게서 부탁받은 환아를, 더구나 변병과 서로 좋아하고 있는 환아를 끝내 욕망을 누르지 못해 취하고 만다. 삼국지 조조전을 3권까지 읽어오며 조조에게 가장 실망하게 된 대목이었다.

늘 조조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준 누이와 진의록. 꼼수를 모르고 우직하게 제 할 일 하는 누이와 약삭빠른 아부와 잔머리로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진의록. 가려운데를 알아서 긁어주는 진의록에게 맘이 더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었으리라. 그러나 진의록이 지방의 현령들에게 뇌물을 받은 일로 그에게 만회할 세번의 기회를 주지만 조조의 속내를 알 리 없던 진의록은 세번의 기회를 모두 놓치고 내쳐진다.

아무리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지만 누가 알았으랴. 진의록이 외척 하묘에게 달라붙어 옛주인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 줄을. 그리고 진의록도 몰랐을 것이다. 그 위세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탐관오리를 척결하겠다는 신념으로 제남의 국상으로 부임한 뒤 1년간 상당한 치적을 쌓았으나 조조가 떠난 뒤에는 다시 탐관오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조조는 초야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다. 그의 말과는 달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의 포부를 넓게 펼치고 싶은 야망이 있었으니.

1억 전이나 주고 태위직을 산 조숭에게 재물을 운반하가 위해 사병을 모은 조조는 탄식한다. "183. 아! 나는 능신이 되고자 하는데 세상이 나를 간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1억 전을 주고 산 조숭의 태위직은 거듭되는 반란으로 위태로워지고 아들 조조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조숭은 스스로 물러난다.

모두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을 황제 유굉과 환관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딱하기만 하다. 가혹한 폭정으로 막다른 길에 내몰린 백성들은 끊임없이 난을 일으키고 이들을 진압해야 하는 관군 역시도 백성이었다. 이런 백성의 고통에 귀기울이는 자가 없다.

황상 유굉의 붕어후 하황후와 동태후의 힘겨루는 일단 하진을 따르는 이들의 힘으로 하황후에게 기운다. 그러나 힘이라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끝없이 움직이니 최후에 웃는 자가 누구일런지는 알 수 없는 법.

동태후와 하황후, 환관과 외척의 권력 싸움에서 모두를 물리치고 권력의 구도를 바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또다른 야심가 원외가 원소를 앞세워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외척도 환관도 모두 제거했지만 동탁의 배신은 계산하지 못했으니.

환관세력에 기대에 가문을 이끌어 오던 조숭은 모든 판을 읽고 있었다. 이래서 연륜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는걸까.

이제 권력은 어디로 움직이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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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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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펴냄)

221. 정의는 인간의 마땅한 권리일 뿐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니나 톰 라일라, 세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라일라에게 일어난 사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디테일은 다를지라도 십대는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사건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읽는 동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한공주'가 떠올랐다.

복권 당첨이나 투자의 성공으로 갑작스럽게 부를 거머쥔 사람에게 흔히들 "부자가 되더니 사람이 변했다, 뜨고 나더니 사람이 변했다"고들 한다. 정말 변했을까?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건 아니었을까? 돈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그 돈'이 '그 때'는 없었기 때문에 미처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우리는 농담처럼 말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고.

라일라에게 벌어진 일은 라일라가 말한대로 그냥 두면 지나갈 일을 아빠가 크게 키워 모두에게 잊지 못할 사건으로 각인시키고 집중시겼을 수도 있다. 사건의 진실은 "누가 그 사진을 찍었는가?"로 시작해 핀치를 철없는 십대로 만들었다가 기사도에 빛나는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로맨티스트로 그리고 추악한 두 얼굴로 거듭 변화시킨다.

부족한 것 없는 가정환경에 엄친아의 이미지로 명문대 입학을 앞둔 탄탄대로의 핀치에게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는 엄마 니나와 아빠 커크의 길은 완전히 다르다. 니나가 대학 신입생때 겪어야 했던 사건이 아들인 핀치보다 라일라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핀치가 혹은 폴리가 저지른 일이 순간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용서를 해줘도 되는걸까? 의도가 고의냐 실수냐에 따라 피해자의 상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다니게 된 라일라. 딸의 학비를 위해 낮엔 목수로 밤엔 우버 기사로 열심히 사는 톰은 윈저의 다른 이들에 비해 차별받는 이유가 경제적인 불균형이라고 여긴다. '특권을 갖는 것과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본문 속 한 줄이 비수처럼 날카롭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윈저의 교장인 월터와 핀치의 엄마인 니나는 라일라의 편이 되어 준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싸움일지라도 외롭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쉽지만 현실에선 보기 힘든 일이지 않을까.

'트로피 와이프'만큼이나 자식을 자신의 '간판'으로 여기는 부모들, 엄청난 부 앞에서 무너지는 공정성 그리고 특권의식, 인간성. 두루두루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피해자로 여겼던 라일라가 폴리를 위해 보여준 용기와 배려는 오히려 라일라가 최후의 승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상처받아 움추리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나 자신의 길을 간 라일라와 새로운 시작을 한 니나 두사람의 해피엔딩이 무엇보다 값지고 멋져 보였다.

그녀들은 원했던 것들을 이뤄냈을까

※출판사 미래지향의 지원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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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 - 혼자가 좋은 나를 사랑하는 법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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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

데비 텅 (지음) | 최세희 (옮김) | 윌북 (펴냄)

그림보다는 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에도 만화책이나 웹툰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하찮다고 여기거나 무시하는게 아니라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림 속에 숨겨진 복선과 디테일을 발견하지 못해 스토리를 놓치는 경우가 개인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읽었던 데비 텅의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은 참 많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보았다.

복잡하지 않은 심플한 그림은 한 눈에 잘 들어왔고 내용도 책을 주제로 해서 공감대가 쉽게 이루어졌다. 이어서 읽게 된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은 또 어떤 공감대로 나를 미소짓게 할지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이어서 그런지 왁자지껄한 세상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주인공 데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혼자 책읽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내향적이고 사회생활을 은둔형으로 하지는 않는데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싶었는데 아마도 데비 텅 자신의 모습을 많이 녹여낸 것으로 보여진다.

흔히들 말수가 없으면 내성적, 사회관계가 원만하고 얘기도 잘하면서 웃기도 잘 하면 외향적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심리학자의 인터뷰를 보니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나를 얼마나 보여주는가에 따라 내향과 외향이 구분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모임이나 조직에서 항상 주도적으로 분위기와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절대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속내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를 외향적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것 같다.

학교나 직장 생활을 하며 쌓인 피로를 풀고 방전된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채우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으로 보충할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것으로 규정하고 가르치려 든다면 이른바 갑질, 꼰대, 진상이 되고 만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나 또한 존중받는 길일 테다.

반대로 소극적인 태도가 본인에게 불리하다 느껴져 억지로 주변의 시선에 끼워 맞춰보는 노력을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안되는 것에 발버둥치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서 멀어진 나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주변의 시선과 본래의 나 사이에서 길을 잃은채 정작 내가 나를 소외시키는 원치 않은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사람이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안정적이지만 그 조화를 위해 나를 놓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양쪽 페이지를 가득 채운 마지막 한 컷이 글보다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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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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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코로나 19가 점점 장기화되면서 예전보다 독서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를 보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도 같은 이유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드라마를 보게 되고 그녀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나도 그러했지만 아마도 대다수 많은 독자들 또한 최근 읽은 책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으리라 짐작된다.

애거서 크리스티하면 추리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 그녀의 대표작들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혀오고 있으며 잊을만하면 한 번씩 영화로도 제작된다.

무엇이 이토록 오랫동안 그녀의 소설을 사랑받게 하는걸까? 역사학자인 저자 설혜심 님의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해설로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서본다.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16가지 주제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설명한다. 그저 재미로 혹은 킬링타임용으로 즐기던 추리 소설에 '이런 깊이와 이런 지식과 이런 시대적 배경, 문화 등이 깔려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감탄과 함께 쏟아진다.

앞으로는 추리 소설이라도 한 줄도 허투루 읽을 수가 없겠다.

한 명의 캐릭터를 성공시키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푸아로와 미스 마플, 두 탐정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성공한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 자신의 소설에 자신을 향한 자부심을 드러낼만 하다.

또한 동시대의 다른 작가의 소설들과의 차이점도 그녀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한다. 남녀간의 러브라인을 주축으로 하며 여성을 육감적이거나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등의 환상이 그녀의 소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남남간의 정신적인 유대와 우정에 버금가는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다.

여성의 교육이 보변적이지 않던 시대에 글을 쓰던 여성들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전적인 요소를 크게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던 것에 비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은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물론 자전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좀 더 폭넓게 공부하고 연구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끌어오는 등의 차별을 보였다.

16가지의 주제로 분류해서 보게 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삶과 소설.

읽으며 무심코 넘기고 말았던 사소한 설정 하나를 글로 써내기까지의 과정과 시대적 사회적 배경, 각국의 문화 차이까지. 몰라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수 많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제 그녀의 소설들이 전과는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좀 더 재미있게, 좀 더 깊이있게.

여성 추리소설 작가라는 것 말고도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해서 알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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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열린책들 세계문학 143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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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고전 읽기에 거의 매번 거론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로맨스의 환상에 상상의 나래를 펴던 십대에는 소녀소녀한 마음으로 로맨스 소설로 읽었고 십년 후쯤 재독할 때는 제목에 충실하게 '오만한 다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에게 집중하며 읽었었다. 다시 십 여년이 흘러 읽게 된 <오만과 편견>은 각 커플들과 주변인들의 캐릭터는 통통 튀는 개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빙리 양의 앞 뒤가 다른 태도와 캐서린 부인의 도를 넘은 무례는 신분을 떠나서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이다. 사회의 고위층과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선을 넘는 행태를 너무 자주 보아온 터다. 그런 그들에게 잘 보이려 전전 긍긍하는 콜린스, 결혼을 한몫잡는 장사로 여기며 남을 이용하려는 위컴, 금사빠인 리디아와 남일을 소문으로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지만 지금의 관점으로 보아도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다.

특히 베넷 부부는 이 '오만과 편견'을 마치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베넷 씨는 매사 아내와 의견이 맞진 않지만 무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대신 적당한 무관심과 위트를 지닌 남자다. 베넷 부인은 딸 다섯을 키우며 딸들의 결혼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엄마로, 남자가 가진 재력과 지위를 매너이자 인격으로 동일시 해서 보는 속물이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 책 속의 시대적인 배경은 여자의 행복이 재력을 갖춘 남자와의 결혼이었다는 점과 그녀가 어리석기는 해도 악의는 없다는 것이 아마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베넷 부인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은 왜 엘리자베스와 나의 몫이어야 했던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교성이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말수가 지나치게 없다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기 일쑤인 다시 씨는 만약 그가 지닌 재산과 지위가 아니었다면 그런 평가들을 만회할 기회를 가져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타인을 향한 냉정한 평가가 자신을 지적이고 수준있어 보이게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듯하다. 제인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다면 모두를 포용하는 그녀의 마음도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이 사회적 관습과 보이지 않는 경계로 어려웠다는 점을 본다면, 빙리의 사랑을 그렇게 쉽게 가질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시의 품성과 사랑이 빛나 보였던 사건은 리디아와 위컴의 도피 행각에 대한 대처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금전은 물론이거니와 굴욕과 수치로 여겼던 사람들을 대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멋지게 비밀로 해결하려는 낭만도 지닌채 말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엘리자베스가 소문 만을 듣고 다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반대하러 온 캐서린 부인의 막말에 요즘 시각으로 봐도 사이다인 발언을 지혜롭게 하는 모습은 내 속이 뻥 뚫릴 지경이었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후회할 줄 안다는 것이 다시와 엘리자베스가 다른 인물들과의 두드러진 차이로 보인다.

오만한 다시와 편견으로 그를 바라본 엘리자베스이기도 했지만, '신분의 다름이라는 편견의 시각'으로 엘리자베스를 보고, 냉랭한 다시를 더 차갑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태도 또한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오만'은 아니었을까.

근래 읽은 고전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극으로 치닫지 않고 해피엔딩 이었던 "오만과 편견". 그래, 역시 로맨스는 해피엔딩이 제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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