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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사일러스
조셉 셰리던 르 파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2년 7월
평점 :
엉클 사일러스
셰리던 르 파누 (지음) |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펴냄)
자신의 믿음이나 신조를 남에게 강요하거나 책임을 지울때 그 책임을 희생으로 감당해야 하는 이들의 고통은 생각보다 흔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강요와 은근한 가스라이팅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짊어지기 힘든 무게의 기대와 중압감 때로는 죄책감에 휘청거리기도 한다.
동생 사일러스에게 씌워진 혐의가 무고라 믿으며 가문의 복권을 위해 유언을 남긴 아버지 오스틴으로 인해 모드가 치뤄야 했던 희생처럼 말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복종하며 살아온 모드는 아버지의 명령과도 같은 유언을 거부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유언집행자인 닥터 브라이얼리와 커즌 놀리스의 우려가 단지 노파심에서 우러나온 걱정 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평판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사일러스에 대한 세간의 평판에 오스틴이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한다며 은둔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엉클 사일러스. 그의 운둔이 자의적이었다면 그 참회의 진정성에 실낱같은 믿음을 가져보기라도 하련만 그 고립 또한 의도와는 다른 교류의 단절이었기에 그를 향한 타인들의 등돌림이 더욱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엉클 사일러스의 젊은 날의 초상화를 보고 수려한 외모에 쉽게 마음을 열고 의도된 친절에 순진하게 속는 모드를 마냥 비판하기는 어렵다. 현실의 우리도 깔끔하고 잘생긴 이성에게 더 잘 끌리며 그런 범죄자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이 환경을 지배하기도 한다.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모드는 타인을 향해 내민 손과 선의가 바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공격적이기만 하던 메그가 모드를 은인으로 여기며 변화하고 야생마같던 밀리도 모드를 만나 변화했다. 모드는 그들에게 새로운 인적환경이 되어 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드도 솔직함을 무기로 내세우며 모드를 몰아붙이는 사일러스에게는 저항하지 못했다. 솔직함이 미덕이라고만 알 뿐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솔직함으로 위장한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사실도.
엉클 사일러스의 말과 행동은 자신의 목적으로만 직진할 뿐, 고민이나 죄책감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일러스의 음모와 뻔뻔하기까지한 범죄가 더 소름끼치게 다가온 데에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의 범죄와 친인척, 가족, 이웃으로 부터 당한 끔찍한 범죄가 지상파의 뉴스를 오르내리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엉클 사일러스>를 보곤 806페이지에 이르는 두께에 덜컥 겁부터 먹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아마 8060페이지라도 읽었을걸? 재미는 두께의 중압감을 이겼고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모드에게 닥친 급박함과 절박함이 절정에 치닫았다. 소설 속 허구와 현실의 사실들이 교차되며 <엉클 사일러스>의 재미를 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