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qualia

삼성이 절호의 혁신 기회를 스스로 날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왜 바·보같이 폴더블폰 디스플레이를 7.29인치란 애매한 크기로 하는 걸까? 정말 삼성은 자신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우둔한 기업 같다. 폴더블폰 개념은 태블릿처럼 시원시원한 큰 화면에 다이내믹하고 생산성 있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데 대화면 패블릿폰보다 약간 큰 것에 불과한 7.29인치 폴더블폰으론 태블릿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끌어올 수 없다. 8인치 이상은 돼야 한다. 삼성이 최고 디플 기술을 갖고도 자기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니 넘 안타깝다.

 

tngi****

동감 ~8인치는 돼야~

 

myqualia

tngi/ 그렇죠. 접고 펼 수 있는 스마트폰을 혁신 상품으로 내놓으려면 최소한 8인치 이상은 돼야 하죠. 요즘 대화면 패블릿폰도 7인치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쓸만한 태블릿은 거의 모두 8인치 이상으로 나오고 있죠. 요컨대 통상적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디스플레이 크기 경계선은 8인치 정도라는 거죠. 즉 8인치 이하/이상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이란 품종을 가르는 기준 크기라 할 수 있죠. 한데 폴더블폰은 이런 이종/異種을 한 기기 안에 실현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러면 7.29가 아니라 8인치 이상으로 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죠.

 

puha****

말그대로 폴더블폰인데 무슨 8인치야 8인치면 접어도 노트급보다 훨씬 커서 못들고다니는데 무슨 8인치면 4인치 따 두배인줄아나 면적차이가 얼만데. 집에가서 8인치 태블릿크기를 한번보시길. 초창기제품 나오고 시장요구에 따른 제품개발이되겠지

 

myqualia

puha/ 8인치면 접어도 노트급보다 훨씬 크다뇨? 잘못 얘기하신 것 아닌가요? 반론하려면 글 정확하게 쓰시죠. 그리고 앞으로 7인치대의 대화면 패블릿이 유행할 거예요. 이미 삼성에서 2014년 7인치 크기의 패블릿 갤럭시W를 최초로 출시했었어요. 게다가 올해 10월 16일 화웨이는 7.2인치 크기 메이트 20X를 출시한 상태입니다. 삼성도 갤럭시S10과 노트10을 6.66~7인치 크기에 가깝게 출시할 계획이고 애플도 차기 아이폰 중 하나를 7인치 안팎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7.29인치 폴더블폰은 차별점이 상쇄되죠.

 

myqualia

puha/ 접었을 때 5~6인치대인 폴더블폰을 펼치면 8인치 이상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디스플레이 인치는 대각선 길이로 정하는 거 아시죠. 접은 상태의 폴더블폰 가로와 세로 크기를 적절히 조절하면 9인치 이상도 가능해요. 기초 산수 능력이 있다면 아실 수 있죠. 게다가 화웨이는 7.29인치 삼성 폴더블폰보다 큰 8인치대 폴더블폰을 준비하고 있다죠. 만약 품질이 동급이라면 큰 화면 폴더블폰이 더 경쟁력이 있겠죠. 제 핵심은 작은 스마트폰에 커다란 태블릿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넣는 건데 그건 8인치 이상일 때 극대화된다는 거예요.

 

 

삼성 폴더블폰은 2가지 모델?…힌지는 극복, 수율이 관건일 듯

디지털데일리 기사입력 2018-11-06 11:00 최종수정 2018-11-06 11:15

디지털데일리 신현석기자 shs11@ddaily.co.kr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138&aid=0002067055

http://www.ddaily.co.kr/news/article.html?no=17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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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블로거 Sarah Kim 님이 정영목 번역가가 번역한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의 한 구절을 오역이라며 비판했다. 그 구절 가운데 ‘한 명의’가 ‘one’을 잘못 번역한 것이란 취지의 비판이었다.

 

 

 

 

그러자 몇몇 분이 그 비판에 동조하는 댓글을 올렸다. 한데 가만 살펴보니 그닥 문제가 되지 않는 번역이었다. 오역도 아니고 서툰 번역도 아니었다. 해서 내가 반론글을 올렸다. 그러자 내 반론글에 (번역가가 실수한 것이라며 Sarah Kim 님을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던) Waga Jabal Kyonshik 님이 재반론했다. Sarah Kim 님도 내 반론글에 재반론성 글을 올렸다. 아래에 논쟁의 추이를 기록해 놓는다. 글상자로 처리한 부분이 Sarah Kim 님의 비판글이다. 편의상 편집만 여기 알라딘 블로그에 맞게 했을 뿐 원문 각각은 조금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옮겨 놓았음을 밝혀둔다.

 

 

국어가 변했나요?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명의 멋진 남자야." -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ㅣ 문학동네

"head to toe, he is one gorgeous man"

one은 형용사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https://www.facebook.com/sarah.kim.31542841/posts/10156849642028447

 

 

Waga Jabal Kyonshik  국어가 변한 건 아니고 그냥 one의 저런 용법을 잘 몰라 무심결에 저지른 실수죠

 

┗ Sarah Kim  휴우~ 감사합니다! 한참 들여다 봤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연달아 "한 명의 ... 남자"라고 해서요.

 

Jiyi Yim  멋짐이 너무 넘쳐 흘러서 둘셋 정도로 나눠도 멋질 거라는.... 거참 ㅋㅋㅋ

 

Tracy McMillian  That ‘s one hell of a translation! 그것은 하나의 지옥같은 번역이야!

 

Qualia Mind  위 번역이 오역이란 얘긴가요? 아니면 서툰 번역이란 것인가요? 결코 오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서툰 번역이나 실수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해서 위와 같은 Sarah Kim 님을 비롯한 몇몇 분의 (간접적) 비판은 빗나간 비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말에서 ‘하나의’나 ‘한 명의’는 영어 용법에서와 마찬가지로 (혹은 영어 용법과는 별개로) 강조 용법으로 얼마든지 쓰일 수 있고요.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적지 않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다음을 보시죠.

 

그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분단의 상징 말이다.

그는 한 명의 지독한 극우론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하나의 증오의 화신과도 같다.

시대착오적인 하나의 이념의 노예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위 예문에서 ‘하나의’나 ‘한 명의’는 일종의 강조 용법으로 쓰인 관형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분단의 상징’, ‘지독한 극우론자’, ‘증오의 화신’, ‘이념의 노예’를 수식하는 강조 어구라는 것이죠. ‘’영어의 ‘one’이 강조적인 형용사로 쓰일 때와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요컨대 위에 인용한 번역문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명의 멋진 남자야”에 나오는 ‘한 명의’도 ‘멋진 남자’를 수식하는 강조 용법 어구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봅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여 말씀드리건대 ‘~의 ~의’처럼 관형격 조사 ‘~의’가 반복되는 문장을 보고 번역투니 직역투니 비문이니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건 제가 보기에 시중의 문장론/글쓰기 책들이 퍼뜨린 잘못된 고정 관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의 모순’이나 ‘한국인들의 맹목적 성향’과 같은 예에서 보듯이 관형격 조사 ‘~의’는 이미 오래전에 완전한 우리말 성분으로 자리잡았지요. 즉 우리말에서 뺄 수 없는 필수 성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관형격 조사 ‘~의’는 축약적 기능까지 있습니다. 이처럼 활용도가 아주 높은 우리말의 필수 성분 ‘~의’를 두 개, 세 개, 나아가 네다섯 개씩 연속으로 줄줄이 쓴다고 해서 그것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문장을 올바르게만 쓴다면 두세 개, 네댓 개씩 중복해 써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봅니다. 한데 요즘 시중의 문장론가 중 많은 분들은 문장의 간결함, 매끄러움, 자연스러움 따위를 들며 조사 ‘~의’ 자체를 사용하지 말라거나 줄이라고 하던데요. 한마디로 전혀 새겨들을 게 못 되는 잘못된 권고 사항이고 근거 없는 지침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것’도 반복하지 말고 줄이거나 쓰지 말라고 하던데 이 또한 근거 없는 잘못된 지침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각설하고요. 요컨대 위에 제시한 원문 “head to toe, he is one gorgeous man”에 대한 번역문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명의 멋진 남자야”는 별 문제가 없는 번역문이라고 봅니다.

 

Waga Jabal Kyonshik  '것'과 '의' 얘기는 여기서 논점 일탈이고, '한 명의'가 강조로 쓰인다는 주장은 그냥 억지일 뿐입니다. 영어 용법에 그냥 갖다 끼워 맞춰 그렇게 읽으려고 하면 그렇게 읽힐 뿐이죠. 그렇게 읽는 한국인이 있다고 해 봐야 백에 '한 명'뿐입니다.

 

Qualia Mind  Waga Jabal Kyonshik ‘~의’와 ‘것’에 대한 얘기는 제 문장 자체를 보고 이의를 제기할 분도 있을 것 같아 (위 ‘one’과 관련된 번역 문제와는 별도로) 노파심에 덧붙여 쓴 것입니다. 논점 일탈은 아니고요. 덧붙여 말씀드린다고 했으니까 영어로 ‘P.S.’쯤 될 수 있을라나요?

 

‘한 명의’에 대한 위 말씀은 Waga Jabal Kyonshik 님의 개인적 의견이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의 자료는 된다고 봅니다.

 

Waga Jabal Kyonshik  그렇게 따지면 어차피 다 개인적 의견일 뿐이죠. '한 명의'가 한국어에서 강조로 쓰인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만이라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강조로 해석이 될 수도 있다는 것과 그런 용법이 있다는 것은 명백히 다릅니다. 번역투를 무조건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Qualia Mind  Waga Jabal Kyonshik '한 명의'가 한국어에서 강조로 쓰인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만이라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강조로 해석이 될 수도 있다는 것과 그런 용법이 있다는 것은 명백히 다릅니다.

 

···································

 

→ 글쎄요. 위 말씀은 제게는 요령부득이고 다소간 금시초문적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엔 문장과 어구, 단어 따위는 문맥과 맥락, 상황과 경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 용법도 재규정되거나 나아가서 새롭게 규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언어 문제 혹은 문장 문제 혹은 번역 문제들은 딱 부러지게 어느 한 이론이나 학설에 고정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유연하고 느슨하고 다층적인 일종의 관계망 속에 걸쳐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해서 《'한 명의'가 한국어에서 강조로 쓰인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은 위 ‘one’ 번역 문제와 관련해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봅니다. 고유한 한국어 용법 혹은 고유한 영어 용법이 과연 있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와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는데요. Waga Jabal Kyonshik 님의 위 주장이 맞든 그르든, 설득력 있든 없든, 그런 사실과 무관하게 언어/단어/어구/문장 따위는 문맥과 맥락, 상황과 경우에 따라 그 해석과 용법은 얼마든지 달라지고 재규정되거나 새롭게 규정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런 걸 어떤 정형적 이론이나 일도양단식 설로 강제하고 단정할 수는 궁극적으론 없다고 보는데요. Waga Jabal Kyonshik 님의 주장에 이런 기미가 다소 보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Waga Jabal Kyonshik  언어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언어마다 고유한 특징이 없다고 한다면 극단적인 주장입니다. 이게 자꾸 제 주장이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데, 문제는 그렇다면 Qualia Mind님의 주장대로 저걸 강조의 용법으로 읽는 한국인이 대체 얼마나 되느냐는 거죠. 번역투를 통해 언어의 지평이 넓어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한다는 게 아니고 적어도 현재 저런 용법으로 잘못 쓰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겁니다. 대개는 별 느낌 없이 모르고 번역투를 쓸 뿐이죠. '번역투 배격'을 배격하다 보니 언어에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뭉개려는 경향이 보이는군요.

게다가 저걸 역자가 강조의 용법으로 번역했다는 증거도 없어요. 그렇게 읽는 한국인은 Qualia Mind님처럼 번역투에 극단적으로 관대한 사람 말고는 거의 없거든요.

 

Sarah Kim  Qualia Mind

"그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분단의 상징 말이다.

그는 한 명의 지독한 극우론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하나의 증오의 화신과도 같다.

시대착오적인 하나의 이념의 노예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는 "그건 일종의 거대한 사건이었다"와 비슷한 용법 아닌가요?

"그는 한 명의 지독한 극우론자라 할 수 있다"는 표현도 "일종의 지독한 극우론자"라고 하지 않나요?

제 생각엔 "하나의" 혹은 "일종의"는 "같다"("할 수/만 하다")는 뜻을 강조?하는 거 같아요.

"하나의 이념의 노예" 역시 "일종의 이념의 노예"처럼 "같다"를 뒷받침하는 용법, 혹은 예를 드는 용법이지 딱히 위 번역 문장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멋진 남자"가 굉장히 멋지다는 뜻을 전달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또, "하나의"는 들어봤으나 "한 명의"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무리 소리 내어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요.

 

Waga Jabal Kyonshik  그런데 '하나의 증오의' 같은 말은 뭐 이해는 돼도 결코 별로 잘 쓴 글로 보이지가 않아요. 시중의 문장가 말을 당연히 따를 필요는 없는데 따르지 않은 글이 무척 못생겨 보이니까 탈이죠. '의'를 무조건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조잡하게 쓰지 말라는 거예요. 조잡한 글도 쓸모야 있죠. 근데 그걸 마냥 좋다고 우기면 안 돼요.

 

Byung-Joon Lim  You are one heck of a dancer. 이런 식으로 많이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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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10-07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투‘ 라는 영역을 위 두 번역가가 조금 좁게 보는 거 같습니다. 원어와 번역어 사이 일대일 대응을 문법적으로 너무 지키려다보니, 번역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가 좁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인 ˝he is one gorgeous man.˝에서 ‘one‘을 형용사 강조로도 볼 수 있지만, ‘he is a gorgeous man.‘에서 출발해서 의미를 강조한 것인데, 이렇게 강조된 뉘앙스를 해석해서 번역할 때, ‘그는 멋진 남자야.‘에서 ‘그는 한 명의 멋진 남자야.‘식으로 ‘번역투‘로 번역해도 타당한 의미를 전달한다고 생각됩니다. 관사의 교체를 통한 강조 표현이 없는 번역어에 대하여, 단순히 원어의 문법을 고수한다고 미묘한 뉘앙스를 잘 전달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물론, 우리언어보다 대구어(parallelism)표현이 폭넓게 활용되는 영어의 특성을 고려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one 형용사 man‘을 똑같이 ‘한명의 ~남자야‘라고 번역할지는 좀 생각해볼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작년 이맘때에 벌초를 해드린 분한테 올해도 벌초를 해드렸다. 그분과 약속한 그저께 수요일날이었다. 한 시골 야산 정상쯤에 산소가 있었는데, 두 기는 이쪽 산, 한 기는 저쪽 산에 있었다. 야산이라지만 산소치고는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산소였다. 옛날 분들이 명당 자리라는 지관 말을 듣고 산 정상쯤에 묘를 쓴 것이다. 시골의 오래된 산소들은 거의 모두 골 깊고 산 높은 곳에 묘를 썼다. 우리 고향 산소들도 오래된 묘들은 깊고 높은 산중에 쓴 것들이 많다. 지금은 잡목과 잡풀들이 정글을 이뤄 찾아갈 수조차 없다. 그 후손들은 어떻게 관리할까? 설날이나 추석 때 성묘하러 가는 게 정말 큰일이겠구나 싶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산소를 돌보는 게 21세기 초 한국의 실정이다. 젊은 아들딸들이나 손자손녀들 중 조상님 산소를 돌보겠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자식을 키우느라 이젠 기력이 다한 많은 어르신들은 사람을 사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세대인 그분들이 살아 있는 날까지만 말이다. 그저께 벌초한 산소 3기는 모두 두 분씩 모신 합장묘라 꽤 큰 편이었다. 아침 9시쯤부터 늦은 낮 4시쯤까지 예초기를 계속 돌리다시피 했다. 땀이 비오듯 흘렀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많이 들지 않았다. 몰입했기 때문이다. 둥그스럼한 봉분과 봉분 뒷부분을 둘러싼 역시 둥그런 둔덕의 잔디와 잡초와 잡목들을 깎으려면 정말 집중해야 한다. 예초기의 날카로운 날이 고속으로 돌며 강력한 힘으로 깎아내기 때문이다. 굴곡진 구석구석을 꼼꼼하고 깔끔하게 깎아내야 하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집중을 하더라도 돌과 흙, 잡목이나 잡풀의 티겁시(티겁지)가 계속 얼굴로 튀어오른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보안경까지 썼는데도 눈에 흙이나 티겁시가 몇 번이나 튀어들어와 애를 먹었다. 한데 산소 벌초를 하는 게 꼭 인체를 마사지하거나 애무하는 일 같았다. 한국의 무덤들 자체가 사람의 몸과 형상이 너무나 흡사하니 말이다. 해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날카로운 날로 둥글둥글 굴곡지고 경사진 무덤의 구석구석을 온갖 감각을 집중해 깎는 일은 사람 몸 구석구석을 더듬거나 마사지하거나 애무하는 일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섬세한 감각이 모두 최고도로 활성화된다. 움팡하고 불룩한 곳곳 조밀조밀한 잔디를 모두 적당한 길이로 똑같이 깎아내려면 예초기의 회전 속도와 각도와 누르는 힘을 장소에 따라 세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마치 표면에 닿을 듯 말 듯 섬세한 감각과 힘으로 무덤의 유연한 곡선들을 따라 칼날을 밀어야 한다. 감각과 힘 조절에 실패하면 봉분의 뗏장에 상처를 내거나 벌건 흙을 파헤치게 된다. 예초기의 칼날을 돌리면서,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를 먹먹하게 들으면서, 무덤 속 그분들을 생각 혹은 상상했다. 오랫동안 누워 계신 그분들의 삭신이 시원해지도록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무덤 곳곳의 잔디를 섬세하게 어루깎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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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9-14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초 얘기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옛날엔 벌초 때마다 낫을 숫돌에 슥삭슥삭 잘 갈아서 일일이 한 손으로 풀들을 모아 잡고 베었더랬지요. 제 경험에 의하면, 대략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낫에 의존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홀연히 예초기가 등장했죠. 벌초에도 기계화가 이뤄진 셈인데, 맨 첫 해에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구입한 일제 예초기를 들고서 아버님과 함께 집을 나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까운 전철역까지 예초기를 메고 한참을 걸었고, 전철을 타고 나서는 중간에 환승을 한 번 했고, 마침내 기차역에 도착해서 그 길다란 물건(그땐 일체형이었었지요.)을 등에 메고 손에 붙잡고 기차에 올라 타고, 다시 하차해서 버스 정거장으로, 그렇게 해서 결국 고향 마을까지 메고 갔었지요. 막상 실전에서 운용해 보니까 낫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워풀하더군요. 저희 집은 큰 집이라 벌초해야 할 산소가 무려 23기나 되는데, 낫으로 벌초할 때는 보통 2박3일이 꼬박 걸렸는데, 예초기를 1대 새로 투입하니까 1박 2일이면 끝나더군요. 그렇게 20여 년 동안 예초기 1대와 낫가락 여러 개를 동원해서 벌초한 세월이 대략 20년쯤 되는 것 같네요. 몇 해 전에 아버님마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저희 집에서도 결국 벌초를 남의 손에 맡기게 되더라구요. qualia 님의 말씀마따나 이제는 산골짜기마다 수풀이 너무 우거져 산소를 일일이 찾아가는 것조차 힘겨운데, 그런 데를 예초기까지 둘러 메고 다니며 벌초를 하기에는 너무 너무 힘에 부치더군요. 이제는 벌초마저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조상님들께 여간 죄송스러운 게 아니긴 하지만, 형제들이 모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매년 추석에 성묘하러 다닐 때면 낫은 반드시 지참하고 다닌답니다. 남의 손에 맡겨서 기계로 벌초를 하고 나면 아무래도 깔끔하다는 느낌이 덜해서, 낫으로나마 조금은 다듬어드려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낫가락 하나씩 들고 설렁설렁 산소를 다듬을 때면, 늘 과거에 힘겹게 낫질하거나, 예초기를 돌리던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예초기의 날이 바위에 닿아 굉음을 낼 때도 있었고, 벌집을 건드려 혼비백산 도망치던 기억도 나고요. 그래도 해먀다 추석때 고향 산천을 둘러보며 고향의 풀내음을 맡으며 벌초하고 땀을 뻘뻘 흘리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어느덧 아스라한 옛 추억이 되었지만요.

qualia 2018-10-03 17:35   좋아요 1 | URL
와~ oren 님의 벌초 얘기가 정말 더 맛깔지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oren 님 벌초 경험이 제 벌초 경험과 많은 부분 너무나 비슷하고 공감 가는 부분이 너무나 많으네요. 낫으로 잔디 깎고 잡초 베고 잡목 베는 일 저도 많이 해봤거든요. 집안 산소 벌초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 벌초 일에 가서 만든 에피소드가 저도 무척 많습니다. 위 oren 님의 벌초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제 추억과 회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지나갔습니다. 정말 추억 어린 글 잘 읽고 또 읽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한데 이렇게 답글 늦게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oren 님의 정감이 어린 정성스런 장문의 벌초 이야기에 저도 느낀 게 너무나 많고 말씀드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느낀 탓인 듯합니다. 한데 oren 님의 좋은 글에 상응하는 답글을 쓸 자신이 없었어요. 뒤늦게나마 이렇게 짧은 답글을 겨우 드립니다. 저는 oren 님의 벌초 관련 얘기, 추석이나 설날 산소 성묘 얘기, 제사 얘기 이런 걸 많이 듣고 싶습니다. oren 님한테는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글들이 풍부하실 것 같아요.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oren 2018-10-05 21:31   좋아요 1 | URL
벌초 하면서 생긴 이야기를 또다시 여기에 늘어놓자면 한참이나 더 풀어놓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남이 겪은 시덥잖은 벌초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들어줄 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벌초 이야기를 하자니 문득 ‘벌초를 모르던 시절‘까지 자꾸만 더 멀리 거슬러 올라 가고 싶은 유혹도 살짝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벌초라는 막중한 과업은 작업의 난이도 탓에 전혀 맡겨지지 않았고(산소의 위치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을 테니까요), 기껏해야 소에게 먹일 꼴을 베는 일이나, 가끔씩 겨울철에 땔감나무를 하기 위해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임무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만 하더라도 연료용이든 난방용이든 땔감나무는 굉장히 중요한 에너지원이었지요. 어른들이 지고 다니던 지게는 너무 사이즈가 커서 청소년용으로 별도로 만든 아담한 사이즈의 지게를 지고, 줄로 톱날을 잘 다듬은 큰 톱과 조선낫을 챙겨 산으로 올라갈 땐 자못 흥분되기도 했었지요. 깊은 산중에 쓰러진 굵은 소나무를 찾아낸 뒤 알맞은 사이즈로 자른 후, 굵직한 통나무를 서너개쯤, 힘에 부칠 정도로 욕심을 부려 지게에 얹은 뒤에, 남들 보란 듯이 낑낑거리며 집까지 지고 오는 길은 고생 못지 않게 엄청난 보람을 맛보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아무튼 해마다 추수가 다 끝난 뒤에 이 산 저 산으로 시제를 지낼 때가 되면, 저와 같은 또래의 꼬맹이 녀석들은 떡짐 지게를 지고 앞장서 산을 오르는 건장한 청년 아재들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산소 주위에 뒹굴던 솔방울이나 소나무를 휘감고 있던 칡넝쿨 줄기에 매달려 노는 데만 온통 관심을 쏟았더랬지요. 그리고 성묘 후에 음복할 때 나눠주는 떡이나 과일에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었지요. 그땐 워낙에 먹을 게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성묘 다니며 차곡 차곡 나눠 받았던 시루떡이나 절편, 혹은 밤이나 대추 한 알도 아주 귀하게 여겼으니까요. 특히나 오징어는 뒷다리조차 얻어걸리기 어려웠는데, 가끔씩 어르신들 몫으로 받은 연한 몸통살을 건네받을 땐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나네요.

벌초가 1년 중 가장 큰 일이 된 건 아마도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부터였던 듯해요. 군에서 빡세게 복무한 경험에 비하면 사실 벌초 정도는 콧노래 부르면서 즐길 수 있는 일로 여길 만도 하지요. 그러나 서로 먼저 기계를 맡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예초기 작업도 10년, 20년이 지나면서 차츰 ‘고역‘으로 바뀌더군요.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차츰 동생들에게 예초기를 건네주게 되더군요. 저희 집에서 최초로 구매했던 예초기는 무려 15년 이상은 너끈히 사용한 것 같은데, 해마다 추석때만 벌초 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오래 쓴 듯해요. 그런데 이 예초기에 쓰이는 연료 탓에 고생한 게 또 한두 해가 아니었답니다. 연료통에 휘발유뿐 아니라 엔진 오일을 적당히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쓰다 남은 연료를 그대로 남겨 놓은 채 이듬해에 예초기를 가동해 보면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가 많았거든요. 엔진 오일의 점성 때문에 연료가 통과하는 노즐 부분이 막히기 일쑤였던 거지요. 그때마다 예초기를 분해해서 노즐을 뚫느라 매번 애를 먹었고, 나중에는 해먀다 벌초 작업이 끝나면 아예 연료를 싹싹 비워내는 요령까지 생기더군요. 그러면 이듬해에는 시동이 아주 잘 걸렸었고요.

예초기 때문에 가장 고생했던 건 대략 10년 전쯤의 일인데, 어떤 산소에서 다른 산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그만 예초기의 중요한 핵심 부품을 잃어버린 황당한 사건(?) 때문이었지요. 예초기의 회전 동력을 전달해 주는 기나긴 쇠줄(파이프 처럼 생긴 철봉 막대 속에 있는)이 이동 중에 그만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만 것이었죠. 하필 그때는 산소와 산소 사이의 이동 거리가 꽤나 길었던 난코스를 이동 중이었던 데다가, 숲이 너무나 우거져 있어서 그만 도중에 길을 잃고 상당한 거리를 산 속을 어림짐작으로 헤매다니며 통과했고, 길이 아닌 곳은 어른 키만 한 잡목들이 워낙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서, 그걸 뚫고 나가는 데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기 바빴던 탓에 예초기에서 뭐가 빠져 나갔는지는 신경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팔과 다리는 잡목들한테 무수히 긁힌 데다가,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다시피 한 채로, 이리저리 넘어지고 자빠지고 뒹굴면서 다음 산소에 간신히 도착해 보니, 아뿔싸! 예초기는 어느새 속이 텅 비어 있더군요. 그 깊은 산속에서 얼마나 당혹스럽던지요. 잃어버린 쇠줄을 찾아 지나온 길을 되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그 쇠줄을 제대로 찾을 자신조차 없었지요. 그 덕분에 그 예초기는 그 깊은 산중에 자신의 부품만 남긴 채 자신의 마지막을 ‘순직 처리‘로 장식할 수 있었고요. 때마침 그 당시에 예비용으로 함께 들고 간 낫 한 자루 덕분에 조상님 산소에 대한 벌초는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답니다. 그 때 예비용 낫 한 자루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무슨 수로 벌초를 마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답니다. 그 산소는 워낙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거기서 낫을 구하러 마을까지 도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었거든요.

쓰다 보니 그만 벌초 이야기가 너무나 쓸데없이 길어지고 말았네요. 그러고 보니, 조상님 산소에 벌초 & 성묘를 다닌지가 어언 50년쯤 되고 보니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적잖이 쌓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쨌든 벌초와 성묘만큼은 아직까지도 절대로(?) 한 해도 거를 수 없는 중요한 연례 행사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출판계가 어렵다고들 한다. 번역가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고들 한다. 번역가의 번역료 장당 4000원이 15년 이상 4000원에 묶여 있다고 한다. 해서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는 굶어 죽기 딱 좋다고들 한다. 독서를 취미 따위로나 꼽는 국민들 덕에 웬만한 번역서는 초판 1쇄 1000~3000부조차 소화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인터넷 시대, SNS 시대를 맞이해 적지 않은 일반 독자 블로거들이 번역가/번역서의 오역을 직접 비판/비난/질타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출판사나 번역가들이 곤혹스러움에 빠지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경우 책 판매량에 얼마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번역가의 신뢰와 명성에도 나쁜 이미지가 드리울 테고 말이다. 해서 이것저것 자율적·타율적 이유로 번역비판/비평을 자제해왔던 측면이 있다. 한데 번역서를 읽다가 정반대 오역, 자의적 과잉 의역(번역자의 과잉 개입), 반대로 기계적인 직역, 얼핏 매끄럽고 수려한 번역문에 감춰진 교묘한 비문들, 원리원칙 없는 음역 표기, 남발되는 오탈자 오류, 불성실한 인용 오류 따위 숱한 오역 관련 문제와 마주칠 때는 비판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오류와 오역들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잠정 보류하는 것도 이젠 재검토해야 할 듯하다. 일종의 딜레마인데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한데 이런 문제와 관련해 번역가와 번역비평가는 물론이고 독자들도 전향적으로 재고하고 다시금 상기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반복하는 얘기지만 번역(서)에 완전무결함이란 있을 수 없다. 아니 꼭 번역서가 아니라 해도 애초에 한국어로 된 저작/책에도 완전무결함이란 없다는 것이다. 까칠하게 따지고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말 책에도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터무니없는’ 오류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데 그런 경우조차 대부분의 독서는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이런 얘기의 함축을 깊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웬만한 오역이 있는 번역서도 좋은 독서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고 본다. 그런 책들도 수많은 통찰을 주고 생산적인 독서 경험을 가능케 할 수 있다. 해서 오역이 웬만큼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번역서와 번역가를 불신하고 독서를 끊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물론 웬만큼을 넘어선 오역본은 얘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번역비판/비평에 번역가, 번역비평가, 독자들 모두 부정적인 쪽으로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1차원적 입출력식 반응 단계는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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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번역비판/비평가들은 번역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비판한다. 번역가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비판 대상 번역가의 번역서 책이름은 밝히고 하더라. 그러면서 신랄하게 까더라. 오역이 마치 무슨 커다란 죄나 되는 것처럼 훈계조, 책망조, 책임추궁조로 강력 비판하는 게 대부분이다. 내가 보기엔 그건 비판이라기보다 비난에 가깝다. 나 자신도 한때 번역가들의 오역을 그 무슨 커다란 죄인 양 흥분해서 비판이라기보다는 비난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데 지내놓고 보니 뭘 모르는 어리석은 처사였다. 그건 엄숙주의와 단죄주의와 완전무결주의의 경직된 표출이었다. 오류 분석과 객관적 텍스트 비판을 흠집 들추기와 사적·감정적·주관적 인격 비판과 혼동한 것이었다. 나의 그런 치기를 돌아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각설하고 번역비판/비평을 할 때 비판 대상 번역가의 이름을 거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일반적인 관행과 인식에 반대한다. 어떤 유명 서평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번역비판가들은 오역 번역가를 신랄하게 까대면서도 실명은 거의 밝히지 않더라. 난 이게 정말 이상하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판과 비난을 혼동해 오역 번역가가 그 무슨 대역죄인인 것처럼 단죄하고 호통치는가? 책이름 검색하면 번역가가 누군지 다 나오는데, 비판글에 번역가 이름 써넣지 않는다고 그게 예의일까? 반대로 번역가 이름 써넣어서 오역을 분석하고 비판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란 말인가? 비판의 대상인 번역가들 자신은 그게 더 불쾌한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비판가들과 비판 대상자들 모두 뭔가 모순스럽다. 비판과 논쟁의 개념을 숙고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양측 모두 쿨해지고 담담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비판 대상자의 실명을 밝히고 거론하는 것이 예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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