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lia Mind님이 Taehyung Kim님의 댓글에 답글을 남겼습니다.
2017년 8월 25일 오후 3:57

 

제 생각엔 번역의 경우에는 경우의 수가 바둑보다 많다는 논리 가지고는 인공지능 번역기계와 인간 번역가의 우월 논쟁에서 인간 번역가가 더 우월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둑에서의 경우의 수 문제를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아주 월등한 실력으로 풀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듯이 번역에서의 경우의 수 문제도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아주 월등한 실력으로 풀 수 있다는 사실이 쉽게 증명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경우의 수 문제’를 논거로 번역에서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우월(우수)할 수 있다고 논증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둑이든 번역이든 그 어떤 일이든 경우의 수 문제로 접근하고 푸는 방식으로는 궁극적으로 계산(computation, 연산, 전산)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을 인간이 인간 머리만으론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원글에서 곽중철 교수님이 《인간의 말에는 바둑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는 논거로써 인간 번역가의 인공지능 번역기에 대한 우위를 선언 혹은 논증한 것이라면, 그건 그닥 설득력이 있다곤 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말에 바둑보다 경우의 수가 많다고 해서, 인간 번역가가 인공지능 번역기보다 훨씬 더 잘 그 경우의 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① 《인간의 말에는 바둑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와 ② 바둑보다 많은 인간 말의 경우의 수 문제를 인간 번역가와 인공지능 번역기 중 누가(어떤 것이) 더 잘 풀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란 것입니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인공지능 번역기가 승리하리란 걸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제가 위와 같은 논리로써 인공지능 번역기의 인간 번역가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인간 말에 존재하는 경우의 수 문제》와는 다른 차원 혹은 범주의 논거로써 인간 번역가의 인공지능 번역기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논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건 의식(consciousness)과 지능(intelligence) 혹은 계산(computation)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실체이거나 속성이거나 개념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얘기는 능력 부족, 지면과 시간 부족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아무튼 흥미로운 논제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해당 댓글들이 달린 정수현 님의 게시물: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46015068803150&id=100001840181564

 

■ Taehyung Kim 님의 댓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46015068803150&id=100001840181564&comment_id=1646609115410412

 

■ Qualia Mind의 Taehyung Kim 님 댓글에 대한 답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46015068803150&id=100001840181564&comment_id=1646609115410412&reply_comment_id=1646863068718350

 

■ 논란이 된 애초의 공유 기사:
[발언대] AI 번역기계 과대 선전 자제하라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3/2017082303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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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Mind님이 정수현님의 게시물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2017년 8월 25일 오후 3:07

 

아랫글은 제가 박우석 교수님 페북 공유글에 올렸던 댓글입니다. 출처인 이곳에도 함 올려봅니다.

 

과학기술 발전은 예측하기 어렵다. 때문에 인공지능 번역기가 인간 번역가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은 ‘예/아니오’로 딱부러지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긍정 답변의 경우와 부정 답변의 경우를 따로 나눠서 그 각각에 대한 논증적 추론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예컨대 그중에서 인공지능 번역기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 번역가를 궁극적으론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란 주장에 대한 논증적 추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알고리즘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최신 기법들과 그 밖의 다른 (미래에 개발될) 방법들을 동원해 더욱더 정교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번역 알고리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계산(computation, 연산, 전산)이 아닌가? 즉 인공지능의 본질은 계산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국 이 계산주의(computationalism)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의식을 지닐 수 있겠느냐 하는 최종적 물음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인공지능 번역기계가 인간 번역가보다 번역을 더 잘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인공지능이 의식을 지닐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의식의 본질은 무엇이냐, 의식은 단순한 계산을 초월하는 어떤 실체 혹은 속성인 것이 아닌가 하는 더욱더 근원적인 물음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의식이 계산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근본적 실체 혹은 속성이라는 가정을 하고 계속 논증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반계산론자(반계산주의자)나 계산론자(계산주의자) 모두 논증 의무가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이런 식으로 계속 논증해나가면 인공지능 번역기계는 인간 번역가를 궁극적으론 넘어설 수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계산은 의식을 최종적으로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의식을 계산만으로는 실현(realization, implementation)할 수 없다는 것이다.

 

ㅎㅎㅎ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겠네요. 한데 위 기사에 댓글을 단 논자들이 이런 근본적인 의식(consciousness)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판단에 의식 얘기를 빼놓고는 인공지능 번역기계 대 인간 번역가 우월 논쟁을 의미 있게 다루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

 

■ 정수현 님의 게시물: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46015068803150&id=100001840181564

 

■ Qualia Mind의 위 댓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46015068803150&id=100001840181564&comment_id=1646834905387833

 

■ 논란이 된 애초의 공유 기사:

[발언대] AI 번역기계 과대 선전 자제하라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3/2017082303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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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하다. 모 SNS 블로거의 인공지능 관련 글에 어떤 분이 반론적 성격의 댓글을 달았더라. 근데 내 생각과는 대부분 다르더라. 그분 견해는 요약하자면 AI에 대한 우려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초지능을 갖춘 AI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파멸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즉 모 SNS 블로거의 주장(AI에 대한 묵시록적·디스토피아적 전망은 허황된 것이니 안심해도 좋다는 주장)에 반하는 주장이었다. 해서 그분의 댓글에 내 반론을 써올리려던 참이었다. 한데 멀쩡하던 댓글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그분의 반론글에 관심이 있어서 마우스로 긁어서 내 워드패드 문서로 옮겨간 바로 다음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차단당한 셈이었다(전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차단이라고 해도 내 입장에선 내가 차단당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지 모르겠다. 나는 과연 정말 차단당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왜 차단당해야만 했던 것일까? 내 착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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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1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NS라면 트위터를 말하는 거죠? 저는 한때 페북을 이용했는데요, 댓글로 비판하려고 하면 지적하고 싶은 댓글이 사라졌어요. 댓글 작성자가 몰래 본인의 댓글을 삭제한 것이죠. 이럴 때 허무합니다.. ^^;;

qualia 2017-10-11 20:09   좋아요 0 | URL
cyrus 님, 제가 말한 것은 트위터가 아니라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에는 제가 관심 있는 주제나 논제를 다룬 글들이 꽤 많이 올라오더군요. 해서 댓글로 제 견해를 밝히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댓글을 올리기도 하고, 《주인장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라는 식의 댓글을 올리기도 하죠. 근데 간혹 가다가 까닭을 알 수 없는 접속 차단(일종의 강퇴)을 당하기도 하고, 댓글 차단을 당하기도 합니다. 헐;;; 하고 놀랍니다. 대부분 교양과학적이고 교양철학적인 댓글들이라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댓글들을 써올린 것은 전혀 아니었거든요. 근데도 어떤 주인장 분들은 그 ‘다른 의견들’에 대해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더군요. 그 깊은 까닭이야 여러 가지로 짐작은 됩니다만(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접속 차단과 댓글 차단은 인터넷의 기본 정신에 비춰볼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_- 2017-10-19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러닉하게도 남녀노소 아무나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SNS상에서 토론이나 토의 자체를 차단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적 허영을 늘어놓으면 추종자들밖에 남지않은 댓글창이 참으로 우스울 뿐이죠

qualia 2017-10-19 21:47   좋아요 0 | URL
-_- 님,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SNS 블로그에서 토론과 논쟁이 많이 활성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다른 의견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날카로운 비판, 더 나아가서 감정 섞인 비난 등등까지도 여유 있게 받아넘길 수 있는 품성도 우리 모두 좀 넉넉히 갖춰야 할 것 같아요. ^^ 저는 한 유명 번역가의 글에 《의식은 환영인가?》라는 논제와 관련된 댓글을 달았다가 ‘페친’ 삭제를 당하고 완전 접근 차단까지 당하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도 저는 그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왜 그분이 그런 예민한 반응을 보이셨을까 정말 알 수가 없답니다. 추정하기로는, 그분이 (2015년 08월에 돌아가신) 영국 출신 유명 신경학자의 출간 예고작을 발췌해 번역·소개하는 글을 올리셨는데요. 그 번역글 내용 중에 의식은 환영이나 착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오길래, 제가 그런 견해에 반론하는 댓글을 올렸더랬는데요. 그 댓글의 다소 반론적인 성격이 그분한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가), 그래서 제가 강퇴까지 당한 것은 아닌가, 이렇게 다소 억측에 가까운 추정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억측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제가 어떤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식적 견지에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써올렸던 그 댓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주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거듭 이렇게 의견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

http://blog.aladin.co.kr/qualia/9600101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테슬라 최고경영자 엘론 머스크, 옥스퍼드대학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 『파이널 인벤션』의 저자 제임스 배럿 등 많은 명사들이 말하는 묵시론적 전망은 과장된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공지능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초인공지능의 불가능성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역공학의 문제를 소개했습니다. 역공학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즉 인간의 뇌를 일부라도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일이 생긴다면 그게 오히려 더 우려할 만한 상황일 수 있다는 거였죠. 그런데 나는 이 문제도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뇌 과학을 통해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거든요. 뇌는 그나마 객관적 탐구가 가능한 반면,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니까요. 따라서 마음의 몇몇 기능을 구현하는 뇌의 부분들 또는 커넥톰을 프로그램에 복사해 넣는 것은 상상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359쪽)
http://blog.naver.com/dongasia1998/221107770888

 

→ 지난주 시내에 있는 서점 우리문고에 가서 김재인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고력 강의』(동아시아)가 들어왔느냐고 물으니까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한다. 이종관의 『포스트휴먼이 온다 -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성찰』(사월의책)은 들어왔더라. 해서 김재인의 책은 사오지 못하고 이종관의 책만 사왔다.

 

 

 

yes24.com에서 김재인의 책에서 일부 구절을 따와 소개하고 있더라. 위에 인용한 게 그중 한 구절이다. 그런데 위 구절에서 저자와는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주장을 발견했다. 해당 책을 입수해서 전편을 다 읽어봐야 하겠지만(즉 그 논지 전개의 전모를 파악해봐야 하겠지만), 위 구절을 읽자마자 떠오른 ‘다른 생각’이라 일단 적어두기로 한다. 그게 뭐냐면, 《뇌는 그나마 객관적 탐구가 가능한 반면,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니까요. 따라서 마음의 몇몇 기능을 구현하는 뇌의 부분들 또는 커넥톰을 프로그램에 복사해 넣는 것은 상상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라는 부분은 충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뇌는 객관적 탐구가 가능한 반면,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마음철학자(심리철학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인지과학자나 신경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생각이다. 특히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주장은 (철)학계에서 거의 뭐 이론의 여지 없이 통용되는 불문율(不問律/不文律)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마음·의식을 인공지능적으로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순진한(naïve) 과학자나 공학자들을 논박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반론적 명제라고 할 수 있다. 반인공지능론자들 혹은 강인공지능 회의론자들의 전가의 보도라고나 할까. 한데 문제는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극단적으로 엄밀하게 적용해 나가면 일종의 유아론적 논리의 함정에 빠진다는 점이다. 즉 ‘나 자신’말고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좀비(zombie)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런 결론은 거의 아무런 반론도 가능하지 않을 만큼 논리적으론 완전 타당하달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애초의 전제인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불문율도 아니고 전가의 보도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의식의 속성과 본질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객관적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얘기다(뭔가 앞뒤가 안 맞고 이율배반적인 헛소리 같지만). 예컨대 위 명제를 전제 삼아 유아론을 논리적으론 완전 타당하게 논증하고 정립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유아론(적 마음철학)을 수용하는 현대 철학자나 과학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온 것처럼 반박불가인 불문율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예컨대 미래의 인공지능이 실현하는 마음·의식은 유기체적 지구 생물인 인간종의 마음·의식과는 다른 종류의 마음·의식일 수도 있다고 보는데, 그런 경우 《마음은 객관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명제 혹은 주장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다른 마음’의 가능성을 탐색해 나가면 인간종의 마음도 객관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더 깊은 사유는 나중으로 미룬다.)

 

다만 한 가지 더 지적해두고 싶은 점은 논리적·원리적으로 《마음도 객관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입증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주장을 과학적으로 적용해 마음·의식을 지닌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현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기술 발전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예측하는 미래 예측과 관련된 문제다. 모든 미래 예측은 그 본질이 시간 예측이다. 요컨대 실현 시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미래 예측은 가치도 의미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해서 인공지능의 마음·의식 소유 여부에 관한 논의는 구체적 시간 변수를 반드시 언급해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단계 건너뛰어 요점만 말하면) 즉 마음·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과학기술 발전 양상을 과거에서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근미래나 중미래까지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근미래나 중미래를 훨씬 넘어서는 원미래에는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이런 사안에 대해 김재인은 어떤 견해인지 궁금하다. 오늘 일 나가서 번 돈으로 서점에 갈 생각이다). 근미래와 중미래, 원미래의 시간 간격은 현대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에 근거해 설정할 수 있다. 편의상 그 평균 기대수명을 100년 정도로 본다면 50년 안쪽을 근미래, 50~100년 안쪽(후하게 칠 경우 150년 안쪽)을 중미래, 100~150년을 훨씬 넘어서는 아득한 미래를 원미래로 설정할 수 있는데, 이런 설정은 어느 정도 탄력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도 있다...

 

(편의상 존칭은 생략했다. 존칭은 논의 전개에 쓸데없는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한다. 적어도 영미권은 존칭 없이도 존칭이 되고, 그런 어법을 자연스럽게 포용하고 수용한다. 존칭을 안 한다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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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1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3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31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L - 경실련을 썩어빠진 이익단체라고 강력히 비난한다. 그가 한번 비난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쌍시옷 육두문자가 남아나질 못한다. 공짜밥은 전혀 얻어먹지 않는다. 내가 신세를 져서 밥 한번 사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대신 남한테 조건없이 베풀거나 일을 나가지 못해 밥 걱정하는 무능한 동료들을 챙겨주는 일이 많다.

 

P - 외모가 꼭 예수의 형상이다. 일을 나가지 못해 공친 햇볕 쨍쨍한 어느 여름날, 개미 한 마리 없이 텅 빈 인력시장 거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자신이 창시한 어느 종교의 교주였다. KBS나 MBC, 청와대에 전화를 해 자신의 교리를 설파하거나 한반도의 불길한 운명을 예언하는 게 그의 주된 종교적 신념이었고 책무였다. 인력시장에서 장기를 가장 잘 두었다. 그는 성품이 무척이나 온화했다. 내가 그를 좋아한 게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일이 있으면 나는 누구보다도 그를 데려가 같이 일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다른 인력시장 동료와 장기를 두고 있는데, 또 다른 한 인력시장 술꾼이 그에게 다가와 그의 종교적 활동을 정신병자 같은 짓이라며 조롱했다. P는 계속 참고 참으면서 묵묵히 장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술꾼이 계속 집적댔다. 그러자 그가 마침내 폭발했다. 어디선가 몽둥이를 가져와 그 술꾼의 뒤통수를 갈겨버렸다. 술꾼은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갔고, P는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K - 어느 날 서로 전혀 낯모르는 상태에서 그가 먼저 나한테 다가왔다. 그날도 공을 쳐서 인력시장 거리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때였다. 한여름 점심때쯤이었는데 자기가 삼계탕을 사겠다며 가자고 했다. 처음 보는 그였지만 왠지 친근감을 느꼈다. 이웃집 형 혹은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그날 그가 사준 삼계탕이 그때까지 먹어본 삼계탕 중 가장 맛있었다. 소주도 같이 한두 잔 했는데, 달착지근한 소주맛이 기가 막혔다. 그 뒤로 친해져 그와 나는 수많은 일을 같이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한 절의 주지 스님이었다. 그는 술을 한번 마시면 뿌리를 뽑는 타입이었다. 언제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에 가려고 버스 승강장에 갔을 때였다. 한 술꾼이 경계석 바로 아래 차도에 널브러져 있었다. 위험할 것 같았다. 길바닥에 엎어진 술꾼의 몸뚱아리를 뒤집어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 놀랍게도 K였다. 썩은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독이 잔뜩 오른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눈알은 동태 눈깔처럼 완전히 풀려 있었다.

 

G - 인력시장 동료들도 업자들도 모두 선생으로 부른다. 짜고 꼬장꼬장한 특유의 선생 말고 인품이 선생이란 것이다. 100이면 100 모두 그를 칭송한다. 힘든 일은 자신이 도맡아 하려 한다. 일거리 있으면 나 또한 그한테 먼저 전화한다. 공치는 날 그는 도서관에 간다.

 

J - 나와 신기하게도 생년월일이 똑같다. 이분 또한 인품이 선생이다. 손위나 손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존대를 한다. 배려심이 뛰어난 분이다. 그도 나도 일거리 있으면 꼭 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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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2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qualia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qualia 2017-10-02 19:16   좋아요 1 | URL
앗~! 서니데니 님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께서도 즐거운 한가위 추석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인사 같은 걸 모르는 인간이고, 서니데이 님께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요.
이렇게 서니데이 님 좋은 덕담을 얻어들으니 정말 감사하네요.
서니데이 님께 커다란 행운이 함께 하길 빕니다~ ^^

최형우 2017-10-03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몇달 전부터 북마크 해놓고 하루에 한번씩 기웃거리는 사람인데요 ㅎㅎ

이렇게 일상이야기들이 간간히 나오는게 재밌네요 ㅎㅎ

질문이 있는데 해도될까요> (그냥 멍청한 질문일수도 ...)

qualia 2017-10-06 11:16   좋아요 0 | URL
아하, 안녕하세요. 최형우 님, 반갑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허접한 제 글을 읽어주셨다니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하네요. 근데 질문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질문인지요? 제가 아는 한도에서 답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아무튼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최형우 2017-10-28 22: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 다름이 아니라요...

혹시 번역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서요

그리고 번역가가 되기가지 얼마나 걸리셧는지 궁금합니다...


2017-10-28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형우 2017-10-29 01:43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이라서 안보이는데 어떻게 봐야하는지>>...

qualia 2017-10-29 02:05   좋아요 0 | URL
앗, 제 비밀 답글이 보이지 않는군요. 맨 처음 댓글 다셨을 때, 그때 입력했던 비번으로 들어와서 함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최형우 님께서 방금 새로 가입하셔서, 그 가입 아이디로 로그인하신 다음 제 블로그에 찾아오셔서 제 비밀 답글을 확인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일단 ‘로그아웃’하셔서 맨 처음 가입하시지 않은 상태에서 위 댓글을 다셨을 때의 그 비밀 번호로 들어오신 다음, 제 답글을 함 확인해보셔요. 만약 그래도 제 답글이 안 보인다면, 방금 전 가입하신 아이디로 로그인하셔서 이 댓글 타래에 댓글을 달지 마시고 독자적인 새 댓글을 써올려주시면 거기에 제 비밀 답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제 답변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 이거 불편을 끼쳐서 무척 죄송하네요.

최형우 2017-10-2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보이지 않아서 ㅎㅎ

다름이 아니라 번역가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인 궁금한데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리고 어떤 책 번역인지에 따라 또 다를수도 있겟지만...

일단은 독학을 하고 있어요 수능은 2등급 나왔습니다. - 아 이건 왜 썼는지.. ㅋㅋㅋ

2017-10-29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모르텔 2017-10-29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댓글 남깁니다! 올려주신 글들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qualia 2017-10-29 20:52   좋아요 0 | URL
자다깬올빼미 님, 정말 반갑습니다. 허접한 제 글을 읽어주시다니, 저 또한 무척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