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댓글 시스템이 참 좋다고 느낀다. 네이버는 기삿글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댓글, 댓글에 대한 댓글에도 공감·비공감 단추를 모두 달아놨다. 해서 모든 글에 대한 독자(누리꾼)들의 반응과 평가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런 추가 정보는 댓글 논쟁 참여자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독자들한테 여러 가지 유익한 참고가 된다. 네이버의 이런 댓글 시스템은 더 많은 독자들의 참여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선순환 혹은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한테도 기업적 이득을 주고 독자들한테도 더 높은 흥미를 주고 더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에 다른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 새로운 댓글 시스템만은 정말 크게 칭찬해주고 싶다.

 

알라딘도 네이버 댓글 시스템을 도입했으면 좋겠다. 알라딘한테 기업적 측면에서 이득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알라딘 블로거들과 독자들한테도 더 많은 흥미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광속으로 변화하는 인터넷 혁명 시대에 타사의 장점을 목도하고도 도입하지 않는 것은 장사 그만두겠다는 것과 같다. 뒤처지기 전에 어서 빨리 도입하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알라딘 블로거나 독자들도 비공감(싫어요)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근친상간적 공감(좋아요)만 끼리끼리 주고받는 건 퇴보와 몰자각의 지름길이다. 내 경우는 네이버에서 비공감 폭격을 당하는 때가 매우 많다. 예컨대 인공지능 관련 기사가 네이버에 뜨면 인공지능의 폭발적 발전으로 미래엔 인공지능이 자의식과 인격까지 지니게 될 것이고, 그런 강인공지능은 인류한테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지배하고 멸종시키기까지 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대부분 베스트 공감 댓글로 선정돼 댓글란 첫머리를 장악한다(작년과 올해에 걸쳐 인간 바둑 기사들을 완파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위력이 미래에 대한 대중들의 시각을 전면적으로 바꾸어놓은 결과랄 수 있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대중들의 맹신은 보스트롬과 하라리, 머스크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다). 그러면 나는 이런 의견과 주장들이 오류상식에 기반한 허황된 망상이나 공상에 불과하다고 반론을 편다. 당연히 내 주장은 숱한 반론과 비공감 폭격을 당한다. (내 의견 유형은 전혀 공감받지 못하는 극소수 의견, 어쩌면 잘못된 의견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비공감 혹은 공감 반응 때문에 내 인식은 분명 긍정적 방향으로 확대되는 것 같다. 일반 독자들의 반응 양상도 알게 되고 내 인식 수준이나 한계도 한결 명확히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흥미롭기 짝이 없다. 이처럼 내 자신도 알 수 있고 논쟁 상대방도 알 수 있고 관전자·독자들의 주류 의견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엄청난 혁신이랄 수 있다.

 

거듭 주장하건대 알라딘은 비공감 단추 도입이 시급하다. 블로그 댓글 시스템을 네이버와 같은 시스템으로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알라딘한테 여러 모로 득이 될 것이다. 알라딘을 찾는 독자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독자들의 참여도를 끌어올릴 것이다. 이 점을 파악했다면 방관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알라딘이 계속 장사할 마음이 있다면 즉각 도입해야 한다. (알라딘 댓글 시스템 좋은 점 하나는 댓글을 모두 상시 노출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알라딘 댓글 시스템이 개선할 점도 있는 건 분명하지만 타사 시스템보다 훨씬 나은 장점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말할 계제가 아니다.)

 

문제의 관련 기사 :

시리, 빅스비 다음은? “자의식ㆍ인격 갖춘 AI”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17-06-01 11:34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469&aid=0000206164
http://www.hankookilbo.com/v/e3eb179879b54f4caca3f523b5953e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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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판받는 입장이 되면 멘탈이 부서집니다. 후유증이 며칠 정도 지속됩니다.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친한 사람에게 비판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싫어요‘ 표시 기능이 있으면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더 마음이 편해요.

qualia 2017-06-01 22:10   좋아요 2 | URL
cyrus 님, 맞습니다.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익명의 누리꾼들한테 비판을 받으면 분명 충격받을 가능성이 크죠. 해서 알라딘 측에서 ‘싫어요’ 단추를 설정해줘서 그것으로 간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시하게 하면 충격을 좀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싫어요’는 어감이 강하기 때문에 거부 반응 유발도가 좀 클 수도 있겠어요. 해서 ‘비공감’으로 해주면 거부 반응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비판받는다고 ‘멘탈’이 부서지고 후유증이 며칠 정도 지속되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비판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겠만서도요. 저는 (비판받을 이유가 있다면) 비판받고 스트레스도 받아보고 후유증도 함 겪어보는 게 여러 모로 좋다고 봅니다. 당사자들 개인을 위해서나 우리 사회를 위해서나 성찰·성숙·성장의 좋은 기회가 된다고 봐요. 물론 비판자는 비난과 비판을 혼동하지 말아야겠지요.

cyrus 2017-06-02 07:55   좋아요 0 | URL
비판받을 때 느끼는 감정 상태를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글을 쓸 때, ˝분명 이 글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생각했다면 비판에 대한 두려움을 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대방의 비판 발언을 예상할 수도 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비판 의견을 들으면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갑자기 생긴 태풍을 만나는 기분입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반박 의견을 내야하는데 여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토론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마음은 지치기 시작합니다. 토론이 마무리되면 녹초가 됩니다. 저는 이 상황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제가 멘탈이 강하지 않아서 그런지 한 번 크게 겪고나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

qualia 2017-06-02 14:37   좋아요 0 | URL
cyrus 님 자신의 많은 경험담이라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저 또한 인터넷 논쟁에 숱하게 참여하면서 수많은 반박과 비판 혹은 비난을 받아봤기 때문에 (또한 그 역도 마찬가지이고, 논쟁 과정에서 수많은 감정적 오류와 논리적 오류를 저질렀는데요) cyrus 님께서 말씀하시는 논쟁 과정에서의 그 혼란스러운 마음, 반박 의견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느라 녹초가 되는 심신, 멘탈 붕괴, 투라우마까지 모두 다 전해져옵니다. 한편 제가 그동안 논쟁을 펼쳐오면서 상대방 분들한테 본의 아니게 끼쳤을 스트레스와 감정적 상처, 자존심 손상, 트라우마 등등도 엄청날 것이라 생각하니 논쟁의 강도나 방법, 태도 등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논쟁을 숱하게 경험하면서 느끼는 점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비판을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즉 감정적이고 주관적 비난이나, 지적 우월감에서 상대방의 무식함/어리석음을 질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판의 옳고 그름은 제쳐두고 감정적으로 격분하는 (속된 말로 열폭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딴에는 무척 주의를 기울여 감정적 기미가 스민 언사나 표현을 제거하고, 아주 무미건조한 문체로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만 비판하려 합니다. 그러나 비판은 비판이기 때문에 논쟁 상대방의 오류와 문제점을 솎아내 낱낱이 분석하고 논파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비판적 분석과 논증적 논파 자체를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자존심 공격, 지적 무식함의 폭로 정도로만 받아들여 대부분 많은 분들이 논점 자체는 접어두고 감정적으로 열폭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이건 한국인 대부분의 근본적 문제라고 봅니다. 토론과 논쟁, 비판과 수용에 대한 경험이 초중고딩에서 대딩까지 일천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한국인들의 한계라고 봅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소심한 한국인들의 심리행동적 속성, 무골호인이 가장 존경스런 인격자로 대접받는 한국적인 유약한 풍토, 지연·혈연·인맥연이라는 빈틈없이 꽉 짜인 사회적 그물망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한국인들의 끼리끼리 문화의 한계, 숱한 외세의 무력 앞에 굴복하고 굴욕적인 노예의 삶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체화해온 비주체적인 민족 심성, 철학적 일관성 부족... 등등 이런 것들이 제가 보는 근원적 요인이고 원인이라 봅니다.

[처음 답글 올린 시각 : 2017-06-02 13:17]
[약간 수정해 다시 올린 시각 : 2017-06-02 14:37]

돌궐 2017-06-02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가끔 퀄리아 님 서재에 들러서 글 잘 읽고 가는 사람입니다.
싫어요 버튼 마련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전 사실 알라딘 서재가 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거나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되는 곳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책 읽는 사람들끼리 소소하게 의견 나누는 곳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 위에 적으신 ‘근친상간적 공감‘이란 말은 너무 위악적이고 심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가볍게 ‘친목질‘ 정도로만 말씀하셔도 되는데... 친한 이웃 글에 좋아요 눌렀다고 나쁜 사람인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싫어요 받았을 때 퀄리아 님처럼 자신의 인식 수준이나 한계를 깨닫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규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너무 기대가 크신 건 아닐까요? 그나마 알라딘은 구성원들의 수준이 높아서 알아서들 걸러 읽는다고 봅니다.

qualia 2017-06-02 14:57   좋아요 0 | URL
[···] 저 위에 적으신 ‘근친상간적 공감‘이란 말은 너무 위악적이고 심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가볍게 ‘친목질‘ 정도로만 말씀하셔도 되는데... 친한 이웃 글에 좋아요 눌렀다고 나쁜 사람인 건 아니잖아요.^^ [···]

→ 돌궐 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쓴 ‘근친상간적 공감‘이란 말은 너무 심한 표현이죠. 좀 더 순화했어야 했는데 제가 잘못했네요. ‘친목질’이라는 표현은 제가 다른 비판글에서 두어 번 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오히려 비아냥거린다는 뉘앙스가 좀 강한 편이라 쓰기가 꺼려졌더랬어요. 아무튼 위 문제의 표현은 적절치 못한 감이 있습니다. 나름 은유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른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쓴다고 썼는데 역시 무리였군요. 앞으로 자제하겠습니다. 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다 인식은 하고 있는 상식인데요. 즉 비판자가 비판 대상자보다 지적으로 더 뛰어나거나 인격적으로 더 잘난 사람이라서 남(의 글)을 비판하고 중뿔나게 나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컨대 축구 국대의 지리멸렬한 패배 경기를 보고 국민 모두가 축구 평론가가 되어 국대팀한테 왼갖 비판/비난을 퍼붓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숱하게 보아온 풍경이죠. 근데 국민 평론가들의 비판과 비난은 전문 평론가들보다 때론 더 날카롭고 더 신랄하고 문제의 핵심을 더 정확하게 찌릅니다. 이것이 그 국민 평론가 분들이 국대 선수들보다 축구를 더 잘하고 공을 더 잘 차서일까요? 당연히 아니죠. 마찬가지 상황이 알라딘 커뮤니티에서도 그대로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 전제를 망각하는 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비판자는 글의 무논리와 뜬구름 잡기식의 공허함을 비판하는 것일 뿐인데, 비판 대상자는 자신의 자존심이 공격받았다고 생각해 발끈 감정적인 열폭으로 치닫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적 대결의 승패 개념에 함몰돼 있다는 것이죠. 누가 더 유식하고 누가 더 무식한가 하는 저차원의 자존심 대결 국면으로 논쟁을 몰아간다는 거예요. 이런 식의 결말이 제가 페이스북 커뮤니티, 네이버 블로그 커뮤니티, 아크로 논쟁 커뮤니티, 비평과 고원 커뮤니티, 번역 관련 다음(Daum) 카페 커뮤니티,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카페 커뮤니티, 노승영의 번역소비자연대 커뮤니티 등등 수많은 곳에서 경험한 공통점이었습니다.

[처음 답글 올린 시각 : 2017-06-02 13:55]
[조금 수정해 다시 올린 시각 : 2017-06-02 14:57]
 

유발 하라리, 닉 보스트롬, 레이 커즈와일 등등이 예견한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SF 영화적 착시에 깊게 빠져 있다. 완전히 새로운 미래는 뇌과학, 생물학, 물리학 등등을 완전 정복한 시점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소리는 무의미할 수 있다. 해서 커즈와일이 예측한 특이점 도래 시점인 2045년까지를 예측의 실현 여부를 판단짓는 (제1차) 기준 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앞으로 겨우 28년 뒤. 하지만 그때까지도 지금 인류의 변함없는 따분한 일상은 지속되리라 본다. 결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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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을 상세하게 기록한 워드패드 문서를 날려버렸다.

한 1000페이지에 이르는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02월 04일 저녁때부터 오늘 05월 19일 늦은 아침때까지의 기록이다.

하루하루의 일과를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적었다.

단상, 아이디어, 번역 초고, 수백 권이 넘는 원서 · 번역서 서지 사항,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린 수많은 댓글들, 각종 정보들, 자료들, 기사들,

꿈꾼 기록까지 모든 것이 사라졌다.

투입한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통곡할 일이다.

당분간 기억 혹은 기록 상실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정체성 혹은 동일성은 큰 손상을 입었다.

마음전송(mind-uploading) 기획엔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모든 힘이 쑥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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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5-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놀라셨겠어요.
어쩌다 그런 일이.;;;;

qualia 2017-05-20 09:02   좋아요 1 | URL
제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서니데이 님 고맙습니다.

oren 2017-05-2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런 엄청난 상실을 겪게 되셨는지요?
저토록 많은 기록들이 풍선처럼 가볍게 날라간다는 것도 허망하고 충격적이지만,
대략 4개월 동안의 기록이 저토록 엄청나게 방대하다는 점도 깜놀입니다.
암튼 시간이 다 해결해줄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기운 차리시길 바랄께요~

qualia 2017-05-20 15:52   좋아요 0 | URL
저 자신의 잘못 때문이죠. 컴퓨터가 남이 쓰다 버린 걸 가져온 것인데요. 생산된 지 11년이 된 것입니다. 손수 작성한 방대한 기록을 잃어버리고 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지더군요. 제 자아 한쪽이 크게 떨어져나간 것처럼 불완전한 존재체로 전락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종의 정체성(identity) 혹은 동일성(also identity) 상실이죠. 사람이란 존재는 기억(기록)이 가장 핵심적 구성 요소인 것 같습니다. 기억의 시간적 차원과 공간적 차원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동일성을 결정짓는다고 봅니다. 예컨대 커즈와일이나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 기억을 데이터화해 어떤 물리화학적으로 새로운 기체(substrate)에 전송할(mind-uploading)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영생이나 존재의 이동, 혹은 존재의 정체성이나 동일성을 복제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영생적 존재나 복제적 존재는 데이터를 날려버리는 해킹이나 불의의 전기전자적·전기자기적 사고에 아주 취약할 수밖에 없겠죠. 요컨대 전기전자적·전기자기적 나아가 전파적 기체에 의존하는 복제체(그런 유형에 호모 데우스 류의 진화된 인간종도 포함된다고 보는데요)는 해킹이나 먹통(컴퓨터가 원인 모를 각종 사고로 완전 정지 상태에 빠지는 일)으로 순식간에 존재 자체가 시공간에서 삭제돼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나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완전 무화돼버리는 것이죠. 내 의식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끔찍스러운 사고일 것입니다. 한 존재가 형성해온 유의미한 기억들이 흔적도 없이 완전히 공중분해돼버리는 것이죠. 각자 저마다 자기 존재 증명을 위해 블로그에 앞다퉈 글을 올리며 기억·기록을 형성해가는 우리 존재들한테는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일 것입니다.

[처음 올린 시각 : 2017-05-20 12:58]
[오타 수정해 다시 올린 시각 : 2017-05-20 15:52]

hnine 2017-05-2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이런....이런 일이 다 있다니.
그래도 힘 내세요. mind uploading할 수 있는 <mind>가 있는 한 uploading될 내용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겠지요.

qualia 2017-05-20 13:03   좋아요 0 | URL
그렇죠. 《mind uploading할 수 있는 <mind>가 있는 한 uploading될 내용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겠지요.》 hnine 님이 가장 통찰력 있는 말씀을 저한테 해주시네요. 힘이 나네요. 하지만 저는 제 자아의 소중한 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기억의 한 부분이 잘려나갔습니다. 이건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stella.K 2017-05-2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랜섬웨어 공격하곤 다른 문제죠?
요즘 하도 겁을 많이줘서...

그런데 이게 좀 딜레마이긴 해요.
옛날 같으면 노트에 기록을 했겠죠.
그게 갖고 있으면 부담스러워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 것인데
이게 또 사라지면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니
보관은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고민이 되요.
머리에 해 놓는 건 한계가 있고.ㅠ

qualia 2017-05-20 14:31   좋아요 1 | URL
네. 제 컴퓨터가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한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딜레마죠.

이젠 컴퓨터에 저장해놓는 것도 우리들 기억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죠. 철학자 앤디 클라크와 데이빗 차머스(Andy Clark & David J. Chalmers)가 이런 유형의 주장을 「The extended mind」(1998)라는 논문에서 내놓은 뒤부터, 이런 주장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젠 우리 뇌 바깥에 존재하는 컴퓨터 저장 장치인 HDD나 SSD도 우리의 인지적 기능이나 기억 기능을 수행해주는 (마음과 환경이) 연결된 체계(coupled system)의 하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stella.K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방대한 내용을 우리 생물학적인 뇌에 저장해놓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 저장해 놓는 것인데 이게 또 사라지면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기록 상실, 자료 상실, 기억 상실에 대한 대책이 아주 없는 건 아니죠.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은 해킹이나 컴퓨터의 갑작스런 고장 따위에 대해선 거의 속수무책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성능 좋은 최신 컴퓨터나 외부 저장 장치를 사기엔 경제적으로 쪼달리고 말이죠. 하지만 앞으론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겠어요.

이하라 2017-05-2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일로 저장하는데는 이런 위험이 있군요
일기를 써본적이 오래된데다 컴에 저장해 본적이 없지만 이런 낭패가 또 없겠네요

qualia 2017-05-20 16:1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중요한 문서는 별도로 백업을 해두거나 컴퓨터 자체 말고 다른 외부 저장 장치에 보관해둬야 하는데요. 그걸 못 해둔(안 해둔) 게 잘못이었습니다. 문서를 계속해서 수정증보해가는 상황이었던지라 또 그걸 미뤘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최신형 고성능 안전보장 컴퓨터를 하루빨리 장만해야겠어요.

cyrus 2017-05-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SB에 책 문장 정리한 파일 저장한 적이 있었는데, 분실하는 바람에 며칠간 분해서 잠을 못 잤어요.. ^^;;

qualia 2017-05-21 22:03   좋아요 0 | URL
cyrus 님께서도 문서 상실 혹은 분실을 경험하셨군요. 정말 마음이 아팠겠네요. USB는 휴대하고 다니다가 분실하셨나요? 저도 백업용으로 USB 장만할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근데 요즘 제 컴퓨터가 자꾸 고장을 일으켜서 큰일이에요. 오늘도 계속 작동 중지 상태에 여러 번 빠졌어요. 아까 이른 낮 11시 56분에 작동 중지 상태에 빠져 재부팅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연결이 영 되지 않아 골치를 썩이다가 밤 8시 58분에 겨우 복구했네요. 어서 빨리 최강 컴퓨터를 장만해야 할 텐데요~

휴먼타파 2017-05-2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는 범위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드웨어에 기록된 것은 포맷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단지 파일이 삭제되었다는 표시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컴퓨터 작업을 계속하면
그 위에 덮어쓰게 됩니다. 따라서 파일이 삭제되었을 경우 컴퓨터 작업을 중단하고
자료복구 전문 업체에 자료복구를 맡기면 자료를 대부분 살릴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qualia 2017-05-30 22:56   좋아요 0 | URL
휴먼타파 님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워드패드 문서를 열면 파일이 손상됐기 때문에 열 수 없다는 알림창이 뜨는데요. 이건 파일 복구 전문가들도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중에 더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정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구만 할 수 있다면 원이 없겠습니다. 소중한 추억과 귀중한 자료가 기억에서 완전히 말소된다는 것은 정말 악몽입니다. 아무튼 휴먼타파 님께서 이렇게 도움 말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처음 그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만년 소설가 지망생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체가 소설가 지망생 문체의 전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경험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소설 형식으로 보여주는 게 그의 주된 글쓰기 방식이다. 이런 수법은 보여주기식 서술과 묘사로 독자의 궁금증을 은근히 자극한다. 그런 그의 방식이 적지 않은 독자의 관심을 잡아끄는 모양이다. 마치 자기류의 독특한 소설작법을 터득한 듯, 대가급 소설가연하는 그의 만연체 문장은 그러나 치기와 객기와 풋내가 풀풀 나는 때가 대부분인데, 하지만 그마저 너무 천연덕스러워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강좌에서 만난 어떤 남자/여자와 단골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었다는 얘기, 맥주대신 소주 마셨다는 얘기, 당구장에서 당구장 주인과 벌였던 별 시덥잖은 취향에 대한 말다툼 얘기, 끝내 교수가 되지 못한 한 □□문학 시간강사와 주고받은 선문답 같은 문학적 대화, 등등을 감칠맛 있다고 착각하는지 느닷없이 비속어를 들입다 섞어서 늘어놓는 게 그의 특기라면 특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면서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뚱딴지 같은 얘기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그런 수법은 유명 소설가들의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수법을 웬만큼 구사할 줄 안다는 점은 그가 분명 소설가 지망생답게 보이는 점이다. 헌데 이런 수법은 적어도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독자를 충격과 놀라움에 빠뜨려 궁금증을 더욱 증폭한다. 다른 하나는 독자를 속았다는 느낌과 맥빠진 느낌에 빠뜨려 더 이상 읽는 것을 중단케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충격과 놀라움을 주는 글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대부분 속았다는 느낌과 김빠진 느낌을 주는 맥빠진 글에 더 가깝다. 주로 사적인 일상을 소설가 지망생다운 설익은 문체로 습작처럼 써서 공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야릇’한 것은 소설가 지망생의 습작 같은 그의 글에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꼬박꼬박 찾아가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종의 팬층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좋아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일까?

 

하지만 내 경우는 읽다가 이건 뭥미? 하고 김빠진 느낌에 혀를 차는 일이 다반사였다. 솔까 낚시질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어 다신 그의 글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의 대가급 소설가연하는 ‘허세체’에 혹해 이번엔 또 무슨 얘기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그의 블로그에 찾아가지만, 갈 때마다 다신 찾아오지 않겠다며 떠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글을 끊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 읽게 되는 건 정말 ‘이상야릇한’ 노릇이었다. 놀랍게도 어느새 시시껄렁한 그의 글에 매료돼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는 애독자가 되어 있었다는 얘기는 반쯤은 사실이 아니지만 반쯤은 사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20년은 족히 넘은 대우 탱크 세탁기가 세탁 과정을 마치고 요란한 굉음을 내며 탈수 과정에 막 진입할 무렵이었다(확실히 내 글솜씨는 그보다 떨어진다. 그의 맛깔나는 만연체, 허세체를 흉내 내려 했는데 실패한 듯하다). 

 

어떻게 한 사람의 글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180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가만 돌아보면 글보다는 사람 자체에 대한 어떤 편견 혹은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색안경을 끼고 그를 보았던 것 같다. 그런 편견/선입견/색안경을 걷어내고 그냥 순수히 그의 글을 읽으니 정말 재밌고 유쾌하기까지 했다. 정말 이상야릇한 노릇이었다. 여기에 대해선 분석과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함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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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12-15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치만 결론은 괜찮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은데요, 제가 맞게 읽은걸까요.^^;

qualia 2016-12-17 18:1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윗글은 그 누굴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닙니다. 아마 그 ‘누구’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고 하죠. 뇌에서 끊임없이 조합되고 변형되고 생성/소멸한다고 하죠. 막연한 느낌으로 떠돌던 것들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너무 서툴게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서니데이 님 댓글은 제가 진실한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청색공책 2016-12-20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qualia님, 청색공책입니다. qualia님의 의견을 읽다보니 실존했던 문학가로 찰스램과 사드(Sade)가 생각나네요. 해석 나름인가 실재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문학활동을 했는가... 아마도 이미지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인식의 한계와, 실재 세상에서 그런 것을 능동적으로 이용하는데 대한 한계 설정이 불가능하다는데서 하실만한 의견이라고 봅니다. 제 미래 관심분야이기도 해서 관심이 갑니다 ^^

qualia 2016-12-20 17:39   좋아요 0 | URL
청색공책 님, 댓글 감사합니다. 막연한 생각을 막연하게 쓴 것입니다. 워낙 막연한 생각들이라 그 근거나 담아낸 의미가 희박합니다. 그런 점에서 청색공책 님의 위 말씀은 매우 적절한 지적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평범하고 사소한 의미가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일상, 그 일상의 겉껍질을 파고들어가 남들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떤 의미를 발견해 제시해줘야 할 텐데요. 쉽지가 않습니다. 청색공색 님의 말씀이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알라딘 블로그에는 “좋아요” 단추만 있다. “싫어요”나 비추천/비공감 단추는 없다. 해서 특정한 글에 비공감하거나 반대하는 경우, 직접 댓글로 반론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는 비추/비공/반대 의사를 글쓴이한테 표현할 방도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 글에 직접 반론 댓글을 다는 것은 대부분 블로거들한테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서 반대 의사가 있어도 그냥 암말 안 하고 지나가는 게 미덕 아닌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블로거들이 상대방 블로거의 댓글란에 올리는 댓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담 없는 덕담이나 친목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다들 웃고 떠들고 공감하고 화기애애해도 공감하지 않는 어떤 외골수들이 있다. 그들은 은폐된 논란점과 모순점을 간파해낸다. 또한 비판적 외골수가 아니어도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니야’ 하는 느낌은 누구나 한 번쯤은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댓글로 직접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을 폈다가는 수위를 잘못 조절할 경우, 뜻하지 않은 갈등과 분란을 일으킨다. 해서 웬만한 외골수 비판자조차 상대방 글을 읽고 반대 의사가 있어도 대부분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부담감 거의 없이 손쉽게 반대 의사를 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싫어요 단추나 비추/비공 단추일 것이다. 100명이 좋아요를 눌러도 단 1명은 싫어요를 때릴 수 있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반드시 있다. 득의만만한 블로거들한테도 일침이 필요한 까닭이다. 왜 반대하는가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줘야/받아야 한다. 그런 ‘피드백’ 작용을 활성화하려면 좋아요 단추만큼 누르기 쉬운 싫어요 단추를 블로그에 만들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라딘 측은 싫어요가 어감이 좀 강하다면 비공이나 비추 혹은 혹은 뒤집은 엄지척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싫어요를 겁내거나 기피하는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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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이 2016-10-27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0년 전에도 건의 했는데 들은 척도 안 하더군요

qualia 2016-10-30 03:42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 한 가지 이유가 방문객 감소 혹은 매출 감소 우려 때문인 듯합니다. 헌데 싫어요 단추를 만들어놓으면 오히려 방문객도 증가하고 매출도 증가할 것 같습니다. 알라딘 측으로선 과감하게 싫어요 단추를 도입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누리꾼이나 블로거들한테도 여러 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싫어요가 좋아요를 더 많이 끌어모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역설적 효과는 단기적으로 말고 장기적으로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