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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 유고집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오주석님의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바이지만 ‘그의 글에는 감탄표가 많다.(간행사-강우방)’ 그의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백 번 공감할 것이다. 무지한 자의 눈으로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에서 가치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그의 안목에 대한 감탄에서부터 읽는 이의 마음에 쏙쏙 박히도록 표현한 명징한 문장들이 또한 그렇다. 눈으로 발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까지 파고들어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뱉게 만든다.

 이전의 감탄표가 무지의 깨우침에서 나오는 것이 많았다면 이 책에서 만나는 감탄표는 바로 ‘오주석’이라는 인물의 면면에서 나온다. 독화수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대표적인 옛 그림을 바로 읽는 과정에서 겪은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고 미술사학자로서의 지극한 열정과 남다른 길을 걷는 데서 오는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해석한 작품을 통해 우리미술에 대한 자부심뿐만 아니라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충고도 따끔하게 와 박힌다.

 ‘한국의 미 특강’의 느낌이 방송강의를 듣는 것과 같은 간격이 느껴졌다면 이 책은 대면하고 듣는 육성 강의와도 같은 친밀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식습득 이상의 무엇을 느끼게 하면서 독자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로 보기의 어려움’을 읽어가면서부터 그 궁금증들이 해소된다. 박학다식한 전문가이면서 불치하문, 겸허한 선비일 수 있다니! 책날개에 약식으로 표기된 이력이 말해주지 않는 그의 진면목을 발견할 때마다 안타까움 또한 커지는 이유는 그가 우리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리라.

 이 책의 5부 ‘낙숫물 소리 듣는 행복’을 읽으면 ‘오주석’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지식의 광대함과 날카로운 안목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책을 읽었다면 이 부분에서는 약간 건방진(?) 자세를 취해도 좋을 정도로 여유로워지는 부분이다. 또 이 부분에서 반드시 긴장을 풀고 마음의 여유를 챙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어지는 ‘추모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마련된 터에서 집을 짓기도 어려운 법인데 터조차 마련되지 않은 조건에서 미술사학자로 고군분투 했던 그는 특별하게 오래 기억해야 할 사람임이 틀림없다. 책속의 표현을 빌자면 ‘참 유난스럽고 드문 분이’다.

 중간 쯤 읽어가다 보면 미완의 글이라는 설명이 없더라도 아, 이 부분은 마무리를 하지 못한 글이구나 싶은 부분이 있다. 그의 평소 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이라서 보다는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그의 부재(문장에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정성을 들였기에)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하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전 이재 초상’ 과 ‘이채 초상’의 주인공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밝혀가는 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다. ‘(...)지친 나를 곧추서게 하고, 두 손마저 배꼽 아래 공손히 마주잡도록 했던 그 분이 다시 내 앞에 서 계셨다.’ 책을 읽는 내내 바로 그와 같은 자세로 경건함을 갖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을 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쉽게 썼을 것이라는. 그러나 또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독자에게 쉽게 읽히는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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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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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이야기를 대할 때면 항상 무거움을 느낀다. 역사적 의미로서의 비중 때문이라기보다는 특정 국가와 인물에 대한 감정적 회오리를 일으키는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간혹 가볍게 역사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너무 피상적이라서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제목 중 ‘서울을 거닐며’ 라는 구절에서 가벼움에 대한 상상을 하였으나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산책하듯 찬찬히 머물며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엷어져가고 있는 묵직한 역사이야기다. 느린 속도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찾아낸 안타깝고 놀라운 진실들이다.

 서울이라는 곳에 존재했거나 현재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거나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기술 돼 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문헌을 참고하고 직접 걸으며 확인한 진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신뢰감을 주고 있다. 작가가 찾아 주는 역사의 현존은 엷었지만 그것이 안고 있는 진실은 너무나 또렷했다. 언젠가 서울의 야경은 개성이 없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서울이라는 도시는 ‘뿌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구나 싶었다. 체면 때문에 밥그릇 때문에 차마 뱉지도 못하고 삼켜버리지도 못한 채 목에 가시처럼 박아 둔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시원하게 까발려주는 것에서 오는 유쾌함이 있다.

 현재 미약하게 존재하거나 지워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니 근대사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단 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는 열등감과 열패감을 주는 사건이 너무 많다. 권력을 쥔 가짜들이 진실을 호도하는 동안 아이러니한 사연을 안고 엉뚱하게 존재하거나 윤색된 역사물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앞에서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서울은 발전하는 도시답게 너무 많이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야의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고 전태일은 갔어도 그가 ‘외치던 구호는 지금도 여전하고’  한강처럼 역사는 흘러간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도시엔 우뚝 솟은 빌딩들’이 있는 정말 멋진 도시, 서울. ‘은혜로운 이 땅’에 산다는 자부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구성하는 개체임에 뿌듯함마저 느낀다. 날씨가 좋은 날 차를 타고 한강 주변도로를 드라이브 해보면 이런 노랫말에 맞는 풍경을 보면서 감탄사 몇 개쯤은 쉽게 날릴 수 있는 도시, 서울. 그러나 이 도시의 참 모습은 그런데 있지 않았다. 진실은 쌩쌩 달리는 차를 타고서는 만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한강 주변의 풍경에 넋을 잃은 어느 날 청취 중이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눈 크게 뜨고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듯, ‘사계(노찾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이 곡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여덟 살 아이는 리듬이 재미있었던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계’를 들으며 웃었던 여덟 살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아무것에나 자부심을 남발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복원된 청계천의 밤을 밝히는 현란한 조명 빛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을 때 쓸쓸한 바람이 일었던 이유가 이 책 속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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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2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성문 - 이철환 산문집
이철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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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책이 전하는 감동의 울렁임이 까닭 없이 숨 가쁜 삶을 진정시켜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 아닐까. <반성문>은 전부가 반성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읽어보면 전부가 반성문이 아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없이 멸시당하면서도 묵묵히 삶을 지탱해 온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니 말이다. <연탄길>을 만나고 오래도록 그 따뜻함에 의지했는데 여기 또 낮은 소리로 전하는 반성문이 세상살이에 서툰 사람들에게 작은 길 하나를 틔워주고 있다.

‘반성한다는 것은 상처에게 길을 묻는 것’이라 했다. 반성이 부족해서였을까? 살아오는 동안이 안개 속과 같았던 것은.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라며 그렇게 잘난 사람들 틈에 내 자리하나 마련하자고 늘 헐떡거린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니까, 보편성이란 메커니즘에 중독되어 한 번도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이유를 댄다. 내 살기 힘겨워서 그런 것이니 면죄부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조금 모자란 척, 미련스러운 척, 두어 걸음 뒤에 서서 걸으면 헐떡일 이유가 없는 것을. 어느 날 후회가 만들어 낸 물음표 투성이의 나날들이 견고한 바위의 무게로 느껴질 때쯤에야 무릎을 스스로 꿇는다. 무릎 꿇은 철부지에게 <반성문>은 물음표의 자리를 느낌표들로 대신할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등을 토닥여 준다. 눈높이를 조금만 더 낮추고 걸음의 속도를 조금만 더 늦추고 마음을 조금만 더 열어보면  훨씬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들꽃의 아름다움을 무시한 것에 대한 반성, 부모에게 해준 것이 뭐냐고 악다구니에 가깝게 대들었던 사춘기 불효에 대한 뒤늦은 반성. 박수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갖지 않았던 자만심에 대한 반성. 미련한 것에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지 못하고 멸시했던 것에 대한 반성. 허리를 굽히는 수고도 없이 뻣뻣하게 선 채로 진실을 건지려고 했던 것에 대한 반성. 시냇물을 노래하게 하는 것은 울퉁불퉁 바위라는 것을 모르고 피하려고만 했던 것에 대한 반성. 반성할 것을 찾은 하루라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삶이냐고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반성문>은 낮은 울림으로 스며들어 마음 구석에 감춰둔 부끄러움에 대해 반성문을 쓰고 또 쓰게 한다. 제자의 잘못을 앞에 두고 제자의 종아리를 치는 대신 잘못 가르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의 종아리를 친다는 스승이야기가 있다. <반성문>을 읽는 동안 회초리를 맞는 스승의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잘못 축에도 끼지 못할 잘못들로 반성을 하면서 뻔뻔한 사람들을 대신해 고개를 숙이면서 크게 반성하는 사람들은 진실로 작은 잘못을 하는 사람들이다, 작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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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4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끔한 책이군요.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얻어가게 만드는 책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가섬 2007-08-25 07:24   좋아요 0 | URL
받아들이기에 따라서요^^.적은 말로 많이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7-09-1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가섬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연탄길의 작가군요. 상처에게 길을 묻는 것, 반성한다는 것, 생각하다 갑니다.^^

다가섬 2007-09-12 08: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혜경님^^
큰 아이가 열심히(?)잘 읽더라구요.

순오기 2007-09-1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게 더 큰 잘못이겠지요~~~~~ 늘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야지 다짐하며, 이주의 리뷰로 뽑히신 것 축하합니다!

다가섬 2007-09-12 08: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글과 같은 삶을 살려고 한다는 말이 인상에 남아 있네요^^

치유 2007-09-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가섬님 축하드려요..
요즘 알라딘 들어오질 못하고 있다 보니 이제 발견했어여..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다가섬 2007-09-12 20: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글이 안올라오길래 무슨 일일까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모로나 2007-09-1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가섬님 축하드립니다...반성문은 평생을 두고 쓰고 쓰고 또 써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

다가섬 2007-09-14 06: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기리나님..반갑구요^&^
일과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닐까..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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