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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사라바>를 읽는 초반에는 ‘아쿠쓰 아유무’가 피해자로 인식됐습니다. 비정상적인 가족에게 휘둘리는 불쌍한 아이라는 느낌에 안쓰럽기 기분이 들었고요. 아가씨처럼 꾸미는 엄마는 철없어 보이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기만 하는 아빠에게는 동정이 갑니다. 그 와중에 존재감을 들어내지 못해 안달 난 누나는 애정결핍으로 보이고요. 누나의 관심병적인 행동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보고 아유무는 누나와는 다른 조신하고, 말 잘 듣는 아이, 모나지 않은 아이로 행동합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식사로 얻는 영양분만이 아니다. 어머니나 어머니 비슷한 사람, 역시 어른의 애정이 중요하다. 애정이 부족하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죽지는 않지만 아이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고독을 맛본다. 나는 누나와는 다른 사람이어야 했고, ‘고분고분하고 착한 아이’인 한 죽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1권 71쪽)
누나로 인해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게 되고,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온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읽다보면 그 시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나와는 다르다. 나는 정상이다. 잘 생겼다. 인기도 많다. 등등 그의 자신감은 잘난 외모에서 비롯된 것으로 철저히 외향적인 것입니다. 그 외모가 자신감을 가져다 줬다면 이후에는 그에게 수치심을 주는 요소로 바뀝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찾아온 것입니다. 주위의 시선이 무서워 숨어들고, 피합니다. 옛날의 누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 나보다 못했던 누나가 나보다 행복해 지자 그는 무너져 버립니다. 그의 자존심을 세워주던 마지막 존재가 없어진 느낌. 책을 읽다보면 그의 눈에 누나는 인간이하의 비상식적인 것으로 비춰집니다. 그랬던 존재가, 그보다 못한 누나가 행복을 찾아낸 모습에 당황해하고 분노합니다.
어디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2권 285쪽)
솔직히 피해망상적인 주인공입니다. 누나, 엄마, 아빠, 스구, 고가미가 자신의 인생을 걷고 있는 동안 그는 그들의 옆에서 멋대로 평가합니다. 자신은 괜찮은 사람인척, 특히 가족에 대한 평가를 보면 얼마나 오만하고 독선적인지 볼 수 있습니다. 이혼하고 나서 애인 만들기에 전념인 엄마는 염치없고, 기행을 하는 누나는 불순분자고, 거기에 돈을 바치는 아빠는 호구입니다. 남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그는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물을 생각조차 없는 겁쟁이인 주제에 말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앞으로 나가는 데 그는 아직도 제자리입니다. 이유를 모른 체 위축되고, 어디가로 숨어듭니다. 정체성이라는 내향적인 문제건만 외모라는 외향적인 문제로 인식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연애도 하고, 직장도 다니는 데 그는 아무 것도 없는 현실에 괴로워합니다. 동생의 흔들리는 모습에 누나는 동생을 구원해주고 싶어집니다. 야다 아줌마가 누나를 도와줬듯이. 누나의 손길에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해 배척합니다. 잘 못된 건 누나다. 다시 한심한 누나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불안정해지지 않는 누나의 모습에 애써 피해왔던 진실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이제는 스스로 걸어야 할 때인 겁니다.
<아유무, 걸어봐.> (2권 325쪽)
이때까지 내렸던 그의 판단이 오판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체성을 찾는 마지막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 길의 끝에 찾아낸 것이 ‘사라바’입니다. 정체성을 찾은 그는 오늘도 열심히 걷습니다.
1권 처음에 왼발을 내딛으며 시작하고,
2권 마지막에서 왼발을 내딛으며 끝납니다.
같은 발이지만 다른 걸음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변한다.
(사라바 책 소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