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연과 사회,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 관념이었다. 방대한 『신화학』의 연구 체계에서 그는 인류의 모든 신화를 그러한 근본적 대립을 다루는 수단으로 간주했다.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자연에서 벗어난 후, 자연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긴장, 자연과의 대립을 해석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각 문화는 천변만화하는 신화를 낳았지만, 그러한 변화무쌍함은 하나의 근본 원리로 환원될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 사회의 대립을 해소하고, 신화를 믿는 사람에게 위안을 준다. 그들은 신화를 통해 대립 중인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떨칠 수 있는 것이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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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와 주나라 문화의 핵심적인 차이를 밝히기 위해 장광즈 교수는 관련 사료를 꼼꼼하게 정리했으며, 마침내 하나는 ‘연속성’을 띤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단절성’을 띤 문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상나라인은 현실 세계와 조상(죽은 자)의 세계 사이에 절대적인 경계가 없다고 보았다. 그들은 죽은 자를 편안히 쉬도록 두지 않았다. 그들의 일상은 죽은 자와의 소통을 위한 의식으로 가득했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리면, “죽은 자에게 산 자를 위해 일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상나라 문화의 가장 중요한 유물인 복골卜骨, 복갑卜甲, 청동기 등은 모두 산 자가 죽은 자와 소통하기 위해 사용한 물건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다시 빌리면, “그들은 죽은 자가 같은 방법으로 산 자를 대한다고 여겼다. 또 산 자가 죽은 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죽은 자 역시 산 자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산 자를 대하는 태도가 갈수록 무례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은 자를 매우 공경했고, 모든 일에 대해 죽은 자의 의견을 물었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역을 더욱 공고하게 연결해 주었다.

상대적으로 주나라 문화에서는 산 자를 강조했고, 죽은 자는 산 자의 세계에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관계가 죽은 자의 도움이나 명령이 아니라 그가 생전에 남긴 귀감과 모범, 기억과 기록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상나라인은 죽은 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무당이나 점술사를 중요시했다. 반면 주나라인은 역사를 중시했으며, 사관史官은 죽은 자가 생전에 축적한 경험과 지혜를 보존하려 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대체하면서 훗날 2천 년간 지속된 중국 문화의 기본 특질이 결정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중국 문화는 주나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생사의 구분이 분명치 않았던 상나라 문화는 주나라에 억눌려 중국 문화의 주류에서 배제되었고, 결국 주변부나 밑바닥의 소소한 전통으로 전락했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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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질서와 기능

우리는 모두 상징 질서 안에서 살아간다. 문화 통합을 이루는 가장 큰 힘은 상이한 현상 배후를 관통하는 상징 질서다. 그러므로 구조기능학파가 기능의 각도에서 사회구조를 보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많은 문화 현상이 명확한 기능을 지니지 않음에도, 그들은 ‘기능 구조’ 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을 구조 밖에 남겨 둔 채 단지 우연으로 치부해 버린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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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두베오족Caduveo을 조사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낙태와 영아 살해 행위에 주목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기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족과 마을은 어떻게 대를 이을 수 있었을까? 바로 다른 이들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길렀다!


그곳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감정을 매우 혐오하는 사회였다. (……) 그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대단히 싫어했다. 낙태와 영아 살해는 거의 일반적인 관습이었고, 부족의 존속은 생식이 아닌 입양에 의존할 정도였다. 전사의 출정 목적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빼앗는 것이었다. 19세기 초에는 과이쿠루족Guaycuru 가운데 본래 혈통에 해당하는 인구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 <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지음, 박민호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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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출현은 19세기에 갈수록 쇠퇴하던 언어학 연구를 해방시켰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 이전 언어학이 처했던 곤경이 당시 그가 느끼던 인류학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시절 언어학자들은 세계의 수많은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풍부한 자료를 집적했다. 그러나 물밀 듯 밀어닥친 언어 자료는 점차 언어학자들을 질식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어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고 연구를 진척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소쉬르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현상인 파롤 안에서 헤매지 말 것을 주장했으며, 현상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언어학의 핵심으로 이끌 수 없음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언어의 구조를 정리하고 채택해 초언어적 거대 구조를 탐구하는 것, 즉 대문자적이고 궁극적인 랑그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하는 바였다.

우리는 지구상의 2천 가지 언어를 수집하고 이해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언어를 랑그의 상이한 구조가 파생시킨 사례로 볼 필요가 있다. 즉 수많은 언어의 복잡한 현상을 랑그로 환원하려는 고민을 수행해야 한다. 단어나 문장을 볼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언어의 문법을 볼 것이 아니라 상이한 언어 문법 사이의 관계를 봐야 한다. 관계가 사물을 대체하는 것이 관건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물에서 벗어나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고, 진정으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59508



언어학적 깨달음을 얻고 나서 레비스트로스가 작성한 첫 번째 논문은 「언어학과 인류학의 구조 분석」L’analyse Structurale en Linguistique et en Anthropologie이었다. 이 짧은 글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 연구 영역에서 언어학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인류학에 적용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박사 논문인 『친족의 기본 구조』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를 쓰기 위한 항해를 개시했다.

레비스트로스가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인용한 문장과 저작의 수는 자그마치 7천여 개나 되었다. 정말 놀랄 만한 수치다! 이는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 문헌 독해에 쏟은 엄청난 노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당시 인류학이 처한 ‘풍요 속 빈곤’이라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토록 방대한 기록과 논문은 무얼 위한 것이었을까? 어느 누가 이렇게 많은 문헌을 읽어 낼 수 있으며, 그것을 읽었다 한들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문헌 속의 정보와 의미를 결합하고 파악하는 방법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 <슬픈 열대를 읽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5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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