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적 테러의 기원

1968년 7월 23일,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엘알 여객기 납치 사건은 현대 정치적 테러 투쟁의 기원이다.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은 로마에서 출발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던 이스라엘 여객기를 납치해 알제리 알제에 착륙시켰다. 게릴라들은 나머지 승객들을 석방하고는 이스라엘 시민과 승무원들만을 인질로 잡았다. 이들은 5주간이나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며 인질석방 협상을 이어갔다. 결국 이스라엘이 아랍 게릴라 16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모든 인질들이 풀려났다. 게릴라들도 신변을 보장받았다. 아무도 죽지 않고,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은 그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다.

엘알 여객기 납치 사건은 곧 뒤따를 수많은 여객기 납치와 공격의 원조 격 사건이었다. 처음에 납치범이나 당국은 인명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테러의 횟수가 더해지면서 이런 자세도 바뀌어갔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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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전쟁과 세속주의의 패퇴

시나이, 예루살렘, 서안, 골란 고원이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됐다. 서안 지구 등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건설할 국가의 땅으로 유엔이 예정한 곳이었다.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 땅, 골란 고원은 시리아 땅이었다. 전쟁은 6일 만에 종료됐다. 현대전 사상 가장 압도적이고 신속한 승리였다. 그것도 한 나라가 인구 수십 배의 세 나라를 상대로 한 승리였다.

6일 전쟁은 중동 현대사의 전환점이었다.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 사이의 관계가 다시 조정됐다. 대중과 지식인들이 6일 전쟁에서 완패한 나세르 등 세속주의 근대화 지도부 세력에 실망했다. 이들의 심적 공백을 이슬람주의 세력이 채우기 시작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넘어, 시리아,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과 중동, 더 나아가 이슬람권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아랍 국가들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세속주의 근대화 지도부들은 대중의 지지를 잃고 독재정권이 되어갔다. 대표적으로 나세르는 모욕을 당했고, 이집트에서 그의 신화는 깨졌다. 그는 아랍 세계에서 지도력을 상실했다. 그저 물리력으로 정권을 버티는 권력자로 추락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바스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국가를 찬양하는 사회주의에 아랍민족주의가 결합된 바스당에는 장교들이 대거 가입하면서 군국주의 성향까지 덧붙여졌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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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레닌주의

쿠틉은 현대 이슬람주의 무장 운동의 이론적 기원이 되는 저작 《진리를 향한 이정표》를 집필했다. 이 책은 사회주의 운동에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비견된다. 레닌의 저작은 혁명 운동에서 전위의 역할과 무장 투쟁의 이론적 지침이 됐다. 《진리를 향한 이정표》도 이슬람주의 운동에서 혁명적 전위의 무장 투쟁을 지하드의 개념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는 그간의 이슬람주의 운동에서 지하드주의라는 물결을 본격적으로 배태시켰다.

“인류는 오늘날 절벽의 낭떠러지에 서 있다”라며 서두를 시작한 쿠틉은 인간성이 가치의 부재로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서구는 생명력을 잃었고, 마르크시즘은 실패했다. “이 중요하고 혼란스러운 갈림길에서 이슬람과 무슬림 공동체의 차례가 도래했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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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이집트와 이란의 개혁주의 운동

1952년 6월 22일, 쿠데타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나세르 등 장교들은 이미 통치력과 대중의 지지를 상실한 파룩 왕을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요트에 가둬놓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정부를 장악했다. 그들의 쿠데타를 막는 저항은 없었다. 2,500년 만에 이집트는 이집트인들에 의해 통치되는 시대로 들어갔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나세르는 범아랍 사회주의, 현대화, 평등주의, 세속주의, 산업화를 꿈꾸었다. 이로 구현되는 복지국가 속에서 개인들의 삶의 향상을 기원했다. 그의 꿈은 쿠틉과 무슬림형제단이 꿈꾸는 이슬람 신정정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1951년 이란에서는 민족주의자이자 의회주의자이고, 철저한 세속주의 근대화론자인 모하마드 모사데크(Mohammad Mosaddeq)가 총리로 선출됐다. 그의 정부는 당시 유럽과 미국의 선진국 정부도 머뭇거리는 복지와 국민권리 확대 정책을 취했다. 사회 보장, 임대차 통제, 토지 개혁, 여성의 권리 확대에 나섰다. 실업 보조금 지급, 부상당하고 병든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수당 지급, 지주의 농민에 대한 강제 노동 금지, 지주들로부터 소작료의 20퍼센트를 농민 주택 등을 위한 개발 자금으로 징수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모사데크는 이란의 최대 자원인 석유산업 국유화를 추진했다. 그의 선거공약이기도 한 석유산업 국유화는 그가 취임하자마자 추진됐다. 1951년 4월 이란 의회는 석유산업 국유화 조처법을 통과시켰다. 이란 석유 자원을 지배하던 영국의 ‘앵글로-이란 오일 컴퍼니(AIOC)’를 국영화했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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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을

1862년 독일의 시오니스트 모세스 헤스(Moses Hess)는 “유대인이 중동의 심장부에 건설할 국가는 서구 제국의 이익에 이바지할 것이며 발달이 늦은 동양에 서구 문명을 옮기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이들의 이런 주장은 시오니즘 운동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대인들이 유럽인들에게 받던 ‘2등 시민’ 대우와 박해를 아랍인들을 상대로 해소하려는 동력이 시오니즘의 저변에서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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