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페다인 민병대 등 수니파 무장 세력이, 그다음에는 시아파 무장 세력이, 그리고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총을 들고 미군에 대항해 궐기했다. 미군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싸워야 하는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내란에 휩쓸려 들어갔다.

2003년 6월이 되자 상황은 분명해졌다. 수니 삼각지대, 그중에서도 바그다드와 팔루자, 티크리트에서의 폭동과 소요, 미군에 대한 공격은 이 사태가 내란으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줬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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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대 행정부들은 이상주의에서 편차는 있었으나, 그 기저에는 결국 현실주의를 기반으로 외교안보 노선을 취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달랐다. 부시 행정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상주의자들이 득세했다. 특히 이들이 국방외교 부처에 포진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비타협적 우파 이상주의자들인 네오콘들이었다는 것이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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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이미 현실화되고 전례가 있던 알 카에다 등 초국적 지하디스트 테러 그룹들의 위협에 무신경했을까? 버겐은 그 이유가 간단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냉전 시대의 안보관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버겐은 이들을 프랑스 혁명 뒤 폐위됐다가 복위한 부르봉 왕가에 비유했다. “과거의 것을 전혀 잊지 않았고, 새로운 것은 전혀 배우지 않았다”는 말이 공히 적용된다.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이들은 하드웨어적인 안보 위협에 집착했다. 매파 성향에다가, 국가 차원의 위협에만 고정된 사고로 다시 국가안보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들에게는 미사일 방어망이 제일 과제였다. 국가가 아닌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을 첫 번째 위험으로 주장하기란 어려웠다. 대신에 그들에게는 이라크라는 불량국가가 첫 번째 위험이었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주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세계관으로서는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불편한 일이었다.3 -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정의길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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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대 이슬람


1996년 5월에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로 온 오사마 빈 라덴은 석 달 만에 도시가 탈레반에 의해 전격적으로 장악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9월 27일, 수도 카불에 탈레반이 입성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347741

나지불라의 최후는 2차 대전 이후 이슬람권에서 시도된 사회주의 현대화의 길이 어떻게 참극으로 막을 내렸는지를 보여줬다. 의사 출신인 나지불라는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해 아프간 비밀경찰의 총수가 됐다. 소련이라는 외세에 기대어 오로지 체포와 고문 등 강압정치로 정권을 근근이 유지했다. 그 말로는 결국 전근대적 장형에 의한 생의 마감이었다. 나지불라처럼 이슬람권의 많은 세속적 고급 지식인들은 조국의 현대화를 위한 길로 사회주의를 택했다. 대부분은 정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극단적 게릴라 투쟁으로 일관하거나 대중과 유리된 권위주의 정권 운영에 일조하기만 했다. 아프간은 이슬람권에서 사회주의를 통한 현대화 시도의 마지막이자 본격적 실험지였다. 이는 전무후무한 참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들이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서, 사회주의와 전혀 상반된 탈레반이라는 세력이 탄생했다. 인류가 만들어낸 어느 체제나 사회보다도 인간의 이성을 믿고 이에 기댄 체제 운영을 하려 했던 사회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의한 최악의 오류를 아프간에서 만들어냈을 뿐이다. 탈레반이 자신들의 종교경찰 청사 앞에 붙인 “이성은 개들에게 던져줘라”라는 구호는 참극을 빚어낸 인간의 이성을 조롱하는 대표적인 어구이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347741


이슬람주의는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원해 인류의 절대적 가치가 된 인간 이성과 그 힘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신봉하는 이성이 빚어낸 사회와 그 현실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이슬람권의 현실은 더욱 그랬다. 그 속에서 절망한 대중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신의 섭리와 의지로 회귀하려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단적 이슬람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자신들이 믿는 조화로운 신의 섭리와 의지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만들어낸 현실 역시 기가 막혔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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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이전 탈레반

칸다하르는 1970년대에 쿠데타로 실각한 아프간의 마지막 왕조인 두라니 왕조의 근거지이다. 아프간 전역을 통치했던 파슈툰족의 영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동쪽 파키스탄에서 수도 카불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쪽으로 연결되는 교역로의 중심이기도 하다. 소련 침공에 이은 내전으로 칸다하르 지역은 성폭행과 납치, 폭력이 일상화된 연옥으로 변했다. 1994년께 파키스탄 퀘타에서 칸다하르를 거쳐 헤라트와 이란으로 가는 길에는 수백 곳의 통행료 징수처가 있었다. 칸다하르와 카불 사이의 길도 마찬가지였다. 교역에 의존하는 파슈툰 주요 부족의 상인들로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탈레반은 이 지역  기업인들이 모금한 25만 달러 상당의 신변보호 자금을 바탕으로, 1994년 봄 소규모 민병대로 등장했다. 풍부한 전투 경험과 신앙에 바탕을 둔 헌신,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뒹굴었던 동지애를 지닌 이들은 칸다하르 지역의 소규모 군벌들에 대한 과감한 공격과 척결로 두각을 나타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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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 1기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바바르는 1970년대 말 아프간 전쟁 초기 때 무자헤딘 훈련 등 아프간 공작을 담당한 전력이 있었다. 바바르는 당시 파키스탄으로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마수드의 카불 지역보다는 칸다하르 지역의 질서와 안정을 먼저 회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칸다하르와 헤라트를 통과하는 아프간의 남쪽 간선도로를 통해 이란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갈 수 있었다. 이 루트는 카불을 통하는 루트보다도 더 유망했다. 이란뿐만 아니라 석유가 나오는 카스피 해 쪽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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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가혹한 샤리아 법을 강제했지만, 주민들은 이를 평화와 사회 안정의 대가로 받아들였다고 캐나다의 정보 분석은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도 “탈레반은 통치 지역에서 조악한 형태의 법과 질서를 회복했다. 이는 잔혹한 사법 체계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였다”고 지적했다.13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347741


탈레반은 아프간 무자헤딘 세력의 가장 관대한 후원자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폭적 지지도 얻어낸다. 사우디 왕가는 걸프전 때 사우디의 미군 주둔을 이유로 자신들을 비난했던 헤크마티아르 등 기존 이슬람주의 무자헤딘들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국체를 모범으로 삼고, 와하비즘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사우디 총정보국의 막강한 재정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 <이슬람 전사의 탄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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