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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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탈린의 예상은 틀렸는가?

결과적으로 보면 세 사람 모두 바보였습니다. 실상은 전쟁이 발발하고며칠 만에 미군이 바로 파견됩니다. 그들은 미국의 의도를 잘못 읽었던것입니다. 근데 여기에 역사의 역설이 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만 보면그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판단했을 것입니다. 역사의 역설은당시가 미국이 굉장히 수세에 몰리는 순간이었다는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949년 미국은 중국이라는 시장을 잃은데다 소련의 핵개발로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도 잃어버렸습니다. 위기에 몰린 미국은 새로운 대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1949년말부터 1950년 사이에 미국은 대외정책을 바꾸었습니다.
1949년 6월의 주한미군 철수만 보면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판단이 맞습니다. - P124

미국 쪽의 힘이나 원조 재원 자체가 모자랐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한 발 물러서서 일본이나 서유럽에 집중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진영이 1949년을 기점으로 세력이 커지니까 미국 쪽에선 더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공세적으로 나가자‘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국가안보회의 문서 68번‘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문서는 미국의 대외관계변화를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문서입니다. 그 문서에 담긴 가장 중요한 전략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미국은 밀리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이 문서를 공식적으로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승인을 했죠.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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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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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탈린은 전쟁으로 마음을 바꿨는가?

주한미군 얘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49년6월)하기 직전에 김일성이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았습니다 1949년 5월, 그때 김일성도 스탈린한테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이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있는 미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죠. 또 북한군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미군뿐만 아니라 남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련의 인식은 1950년에 갑자기 바뀝니다. 1950년 1월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오고 싶으면 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1949년 말까지는 김일성이 그렇게 가겠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했었죠. 북한 입장에서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래서 김일성이 1950년 봄에 다시 모스크바를 가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3월 말에 가서 4월에 스탈린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남쪽의 공산당 책임비서였던 박헌영도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 셋이서 합의한 거죠. ‘전쟁하자. 이젠 된다‘ - P122



전쟁을 벌여도 된다고 판단한 중요한 근거가 되는 세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가 1949년에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들은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첫째가 1949년에 일어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입니다.

둘째가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입니다. 원래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습니다. 즉 1949년에 미국의 원자폭탄 독점이 끝난 것입니다. 1949년은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큰 힘을 얻는 시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 공산주의 혁명을 했고, 미국과 대등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원자폭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남한에서 주한미군까지 철수한거죠. 주한미군 철수가 전쟁을 벌여도 되겠다고 판단한 세 번째 근거입니다.

미국의 군사고문단은 남아 있지만 정규군은 없는 한반도 상황을 두고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핵심 주제는 미국의 참전 여부였습니다. 이때 세 사람 모두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는데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근거였습니다. 중국에도 개입하지 않았는데 한반도같이 하찮은 곳의 전쟁이 미국이 개입할 리가 없다고 본 거죠. 그러고서는 김일성이 가져간 전쟁 계획안을 스탈린이 승인하고, 이어서 두 달 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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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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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를 주제로 여러 외국 학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편협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약탈을 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직도 위안부문제나 징용 문제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식민지 시기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은 그 시기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심지어 향수를 가진 나라들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정말 크게놀랐습니다. 아니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정말 말이 안 된다‘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쯤에 ‘왜 중국은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한국은 경제성장을 했느냐‘라는 주제의 토론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함께했던 중국 유명 대학의 교수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했고 중국은 일본의 식민지 시기를 겪지 않았기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 식민지경험을 했던 한국 사람으로서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 P101

식민지 시기라는 같은 경험을 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에는 몇 가지 의미있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리적인 문제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대단히 특이한 경우로 다른 나라와 달리 이웃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대다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되었죠. 이웃 국가의 식민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어떤 국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기도 했겠지만 대체로 비슷하게 살아왔죠.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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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한정 위헌/합헌 그리고 헌법불합치

9명의 헌법재판관 중에서 6명 이상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 위헌이 되고, 거기서 한 표만 모자라도 합헌이 된다. 9명 중 5명이나 위헌이라 하더라도 결국 합헌이 되고 만다.
그런데 실제의 헌법재판에서는 합헌도 위헌도 아닌 결정을 많이 내린다. 합헌도 위헌도 아닌 결정에는 ‘각하’와 ‘변형 결정’이 있다. 각하란 아예 처음부터 헌법재판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실제 재판에 들어가지 않는 결정이다. 변형 결정이란 합헌이라 하더라도 위헌이라 하기에도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절충적으로 하는 결정이다. 변형 결정에는 한정합헌 결정, 한정위헌 결정 그리고 헌법불합치 결정 등이 있다. 한정합헌이나 한정위헌은 특정 법률을 일정한 조건 아래서 일정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한도에서 합헌이거나 위헌이라는 말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어떤 법률이 위헌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 법을 무효로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란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기간 효력을 유지시키는 결정이다. 따라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면, 입법부는 일정 기간 내에 그 법을 고쳐야 한다. -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X2cK4dwEnbTbQmw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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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통일왕조가 들어선 것은 1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그 중간에 분열과 복속이 반복되었습니다. 타이완은 식민지 전 300여년간 독립국가를 이뤘던 적이 없었습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그리고 청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일본이 들어왔고, 다시 국민당이 들어온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들 국가의 국민들한테는 어떤 나라의 식민지가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좋은 지배자였는지만 생각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오랫동안 통일왕조를 유지하며 우리것을 지키다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뒤떨어진 문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죠. 우리와 같은 경우가많지는 않아서 이웃나라인 영국에 통합된 아일랜드 정도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처럼 아일랜드와 영국도 사이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사실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에 비교해보면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정말 점잖은 편입니다. 아일랜드의 유혈투쟁에 대해서는 다들 너무나 잘 알고있을 것입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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