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헌신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불꽃같은 삶의 기록 생명의말씀사 리폼드 시리즈
조나단 에드워즈 엮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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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조나단 에드워즈가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 발간한, 300년쯤 된 책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조나단 에드워드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장인과 사위 관계이다.(약혼은 했는데, 일찍 죽는 바람에 결혼은 못 한것 같다)

 

재미로 본다면 그리 재미있는 책은 못된다(그러니 재미를 기대하지 말고 보시길). 원래 남의 일기는 보는 것이 아닌데, 한 사람의 진실된 마음을 들여다 보기 위한 방법 중에 일기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니, 실례를 무릅쓰고 청교도 영적 거장의 평소 생활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저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남긴 저서는 이 한권 뿐이다. 심지어 이 책도 자신이 출판을 위해 쓴 책도 아니고, 사후 그의 장인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편집에서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유명도나 사상은 조나단 에드워즈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여 주는 좋은 귀감이 된다. 또한 영적 거장들도 평소 나와 같은 고민을 하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있었음을 아니, 일면 안도가 된다.

 

현재 한국 교회에선 구원이 쉽고, 간단하다. 이에 대한 고민도 없고, 회개도 그리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오직 교회 출석인 늘리기 경쟁하는 소위 '부흥'에만 관심있다). 노방전도 하는 분들에서 믿겠다고 말로 인정하고 따라가면, 구석에 가서 바로 영접기도도 해준다. 교회에 성실히 출석하면 천국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구원에 확신이 들지 못한다고 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 온다. 그 근거는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을 믿고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이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같은 사람은 이 책에서 볼 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살았다는 뜻인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일기에서, 그는 무척 심한 up and down이 있었다. 아마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고, 훨씬 깊다. 심지어 길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 만의 기질 탓일 수도 있겠다. 그는 심한 우울증 증상이 있어, 요새 같으면 심리치료도 받고, 리튬제제를 엄청 처방 받았을 것이다. 그의 일기를 보면, 어제의 말씀으로 오늘을 살지 않았고, 오늘의 말씀으로 내일을 살지 않는다. 은혜와 안식은 언제나 유한하다. 그래서 매일 구해야 하는 것 같다. 또 그는 나를 위해 구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남의 영광을 위해 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보고, 짧았던 그에게 주어진 일생을 살았다. 지금 교회 안팍에서 이런 사람들은(나를 비롯해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 현대 교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엄청 홀리하게 사는 생활인데도, 그는 항상 죄의식에 사로 잡혔고, 회개하면서 살았다. 이렇게 살면서도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얼마나 죄를 많이 짓는다고) 구원에 대해 확신을 못하면서 살았다. 믿음이 부족한 교인으로 몰리기 딱 알맞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교회는 그가 사는 삶만큼 거룩하게 살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회개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현재 교회는 너무 구원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접기도를 받는다고 해서, 혹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혹은 한번 은혜를 받는다거나 한번 회개를 하면 구원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쉽게 용서된다고 오인하게끔 한다. 내가 오해하지 않았다면, 무슨 근거로 이런 확신이 나오고 교회에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마태복음 7:21)' 또한 천국에 이르는 길은 좁은문(마태복음 7:13)이라 했다. 죄인 중의 괴수라는 사도 바울은 왜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가, 아니면 입으로 시인하면 바로 구원에 이르는, 이렇게 편리한 방법을 몰랐던 것일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일기에서(마지막 몇 장을 빼놓곤)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를 받아 기분 좋았다가, 몇일 후에 나빠지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진폭과 편차는 다르지만 그 사이클이 있다는 것은 우리네 지금의 삶과 비슷하다. 물론 그는 300여년전의 사람이고, 목회자 안수를 받고 선교사의 삶을 살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하나님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앙의 선배는 지금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로 이 책, 남의 일기는 읽을 가치가 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고,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종교난에 기독교라고 적지만, 나는 나의 삶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사실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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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 / IVP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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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교회에서 권장도서로 선정되어 읽은 책이다. 아마 개인적인 관심사와 맞지 않아 사지도 읽지 않았을 책이고, 도서관에서도 뽑아 보지 않았을 책이다. 그러나...

 

항상 바쁜 것이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나를 포함하여)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 왜 바쁜지를 잊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하여,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부름 받은 사람과 쫓겨 다니는 사람/경향(driveness)로 나누어 정의 하면서 이 책의 제1부는 시작한다. 누가 주인인가, 어떤 것이 진정으로 중요한가의 목적성에 달려 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의 특성은 책의 p59~69 으로, 1)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만족감 2) 성취를 표시하는 상징에 집착 3) 고삐 풀린 팽창욕 4) 온전한 인격에는 별관심 없음 5) 대인 관계 기술을 닦는데 신경쓰지 않는다 6) 일반적으로 경쟁심에 강하다 7) 화산처럼 격렬한 분노 8) 일반적으로 비정상 적으로 바쁘고, 노는 것을 싫어하고 영적인 예배를 피한다.

 

이에 반해, 부름 받은 사람의 특성은 p102-111에 나와 있는데, 1) 자신이 청지기임을 알고 있다 2)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3) 흔들리지 않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4) 굳은 헌신을 몸소 실천한다.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1990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다. 요새는 (아마 2000년대 초반부터 기억함)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을 구분하여, 영적인 상태로 돌아가자가 아닌, 중요한 것을 먼저 하자는 또 다른 처세 이론으로 보완하고 있다.(프랭클린 다이어리 참조) 그러나 저자가 책을 처음 쓸 당시에는 혁신적인 내용이었으리라.

 

2부에서는 적절한 시간 배분과 사용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사소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중요한 일에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그러기 위하여 정리정돈을 잘하자는 것. 특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내 부하직원에게도 가르쳐 준다. 시간 낭비 없이 살려고 한다. 시간 역시 내 의지에 따라 통제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계획하고, 기록하고, 준비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지금은 범용화된 이론이 되었다. 어쩌면 시간관리에 관한 수많은 책들(시테크, 분테크, 초테크 등)의 하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씩 종교와 신앙에 관한 책의 내용이 경영학으로 분류된 책의 내용과 유사한 것을 발견하여 놀라곤 한다. 영적인 내용을 다루는 신앙 서적에 내용이 경영학 이론에 적용이 된 것인지, 아니면 경영학 이론이 기독교 이론에 접목이 된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혹시 회사를 관리하고 키우는 적용 예가 교회 성장학의 또다른 동력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된다. 만일 그렇다면 경영학 이론으로 교회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교회 부흥 자체가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3부 <지혜와 지식>를 보면서, 속으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의 내용은 좋은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정된 시간에 교양서와 신앙서적, 책 두 권이 있을 때 어떤 책을 선택 할 것인지(혹은 시간상 우선순위 결정할 때)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회 안에선 더 좋은 신앙인으로, 직장에선 더 훌륭한 직장인으로 활동하고자 하면서, 이중성을 모두 내포하는 교집합의 영역에선 우선권에 대한 선택은 늘 고민이 된다(진심이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로>로 명확하게 해 주셨고, 뜨문뜨문 되어 있던 지식에 대해 둘 다 열심히 해야 하는 명확한 근거를 만들어 줘서 감사했다. 꼭 목사님 같은 목회자로서만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실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제4부 하나님께 촛점을 맞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일기쓰기 같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5부 쉬어서 재충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참으로 균형 있는 강한 성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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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여름 2014-10-2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으로 딱딱한 책인 줄 알고 뒤늦게야 읽었던 책이지만 참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경영 이론과 교회를 말씀하신 님의 주장에 대폭 공감합니다^^

밀어준다 2014-10-29 09:21   좋아요 0 | URL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음이 변질되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갑각류 크리스천 : 레드 편 - 딱딱한 형식의 껍질 속에 불안한 속살을 감춘 갑각류 크리스천
옥성호 지음 / 테리토스(Teritos)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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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직설적인 문구가 처음엔 헛웃음 치게 만들고, 웃음 후엔 씁쓸하게 만든다.

- 성경 책을 손에 들고 다니지만, 중요한 건 말씀의 '의미'가 아니라 말씀의 '효과'다.

- 황당무계한 영적 무협지와 같은 간증집

- 목사가 교황이 되어 버린 일부 대형교회

 

이 책은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기독교인과 목사님들을 갑각류 크리스천이라 정의한다. 그 근본직 원인으로 교회 중심에 신학이 없기 때문이라 진단한다. 역사나 문화적으로 그다지 깊이가 깊지 않은 우리네 기독교 문화에서 성장을 지향점으로 삼는, 그래서 겉모습과 양적 성장에만 치우친 교회를 경계한다. 그 원인으로 신학보다 목회학 학위로 배출되는 목회자들, 그 뒤엔 오직 축복만을 바라는 신자들이 있다. 

 

갑각류 크리스천은 믿음도 진실해 보이고, 신앙심도 깊어 보이지만, 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신자들을 말한다. 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너무도 쉽게 사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피부에 와 닿는다.

- 좋은 건 모두 갖다 껴다 맞추기 - 유명한 사람이 잘 된 것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링컨이 신자이다. 출세한 사람, 유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기 때문이고,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 나쁜 건 이단으로 몰기

- 불리한 건 덮기 - 무조건 아멘으로 넘어가기, 교회의 잘못한 것을 파고 드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위.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님. 혹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

 

특히 페이지 196~200에 나온 소설의 일부분으로 설교의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예화는 씁쓸하다. 실제로 그런 설교를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들의 극우/보수 논리를 가진 말씀도 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설교 도중에 소리지르면서 뛰어 나가고 싶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지, 목사님의 스스로 생각인지 의심이 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일개 신자로서 그 내용에 대해 물어 볼 수도 없고. 이 책에선 언급이 안되었지만, 록펠러가 십일조를 열심히 해서 거부가 되었다는, 교회가 돈 좋아한다는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헌금 이외에 가려진 록펠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선 설교 말씀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특히 내 개인적으로 갑각류 알러지가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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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 복음의 부름에 대한 참된 반응
폴 워셔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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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서적은 다양하겠지만, 요새 연달아 비슷한 책들을 읽게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원론으로 돌아가자, 청교도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책.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책들은 재미가 없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 이유를 나름 두가지로 생각해 봤는데, 첫째는 내 믿음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수준의 머리로 대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열심히 믿고 있는데(혹은 믿는다고 믿고 있는데) 자꾸 알고 있는 것을 되풀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금방 들어 잘 알고 있는데(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다 행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계속 되풀이 해서 복습하니까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믿고 있는데, 자꾸 회의를 끄집어 의심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마치 내 아버지 어머니가 진짜 부모님이 맞는지를 계속 물어서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혹시 입양한 양부모님이 아닌지, 삼촌 숙모님이 대신 키우고 있는게 아닌지, 혹시 외계인이 아닌지...

 

이 책 <회심>은, 에수님을 믿기로 진지하게 결심했고, 죄인의 기도를 드렸다는 이유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이 책에선 거짓 구원이라 부른다) 이 책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교회 간판을 걸었다고 해서 부조건 다 참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당연히 초신자들의 입문서도 아니고, 참 신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는 것에는 한 발 내딛었지만,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분들, 교회 내에서 믿음 이외의 다른 것에 기웃거리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어쩌면 양적으로는 성장을 하지만, 질적으로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 교회에게 알맞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는 것만으로 완전해지지 못한다. 여전히 우리는 죄인이고 부패한 본성이 남아 있다. 신앙 생활은, 새 사람의 육신과 마귀와 상대로 격력한 싸움을 하는 것이다. 죄에 맞서 싸우다가 패배를 당하기도 하고, 곁길로 치우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끝까지 전진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책 p 230-231) 교회내에서 죄와 세속주의가 넘쳐 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죄와 맞서 싸우지 않고,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위험은 세속주의와 무관심, 자기 중심적인 사상이 아니다. 그런 죄에 대해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p232)

 

몇일전 가톨릭 교황님이 한국에 왔다 가셨다. 그에 대한 여론이 칭찬 일색인 반면, 개신교에겐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근시일로 본다면, 이들에겐 귀중한 행사인데 앞장서 반대 집회를 연다거나(내가 흠있다 해서 다른 사람의 흠을 지적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흠을 고치는 것이 우선 순위에서 먼저일 것이다),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에 돕지는 못할지언정 망언이 줄줄이 나온다거나, 십일조 안하는 신도는 권리를 제한 하자거나, 이단은 십일조 않한다 라던가... 팔은 안으로 굽기에 좋은 쪽으로 해석하거나 강변할 법도 하지만, 양심상 못하는 것은 이런 비난에 심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교회라면 모를까, 교회 지도자 분들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석촌호 주변의 싱크홀이 북한 땅굴이라고 주장하는 집회를 후원하는 단체 41개중 최소한 8개는 개신교 단체로 보인다. 예수님께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 하셨는데, 어둠과 지방이 되는 부분이 자꾸 보인다. 정의롭지 못한 쪽에 서 있는 모습이 더욱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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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폴 워셔(Paul Washer) 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설교 말씀에 힘이 있는 목사님이셨다. 사경회때 전하신 말씀과 책의 내용과 유사하다. 전하신 말씀 중 몇가지 예화는 책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다. 강하게 증거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말씀 마치고 개인적으로 뵈었을 때는 한없이 친절하셨다. 물론 책에 사인도 받았다.(취미 - 저자에게 친필사인 받은 책 수집하기. 개인적으로 아는 교수님과 닮아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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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2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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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 말고 다른 곳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을 걸었다. 이 책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 3부작'의 두번째 책이다. '사랑의교회' 옥한음 목사님의 아들이 쓴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형의 고등학교 반 친구였다고 해서 더 친근감이 간다. 거짓말도 많이 안 할 것 같고 해서. 책의 저자 옥성호 집사님은 당시 아주 얌전한 학생이었다고 형은 전했다.

 

과거 몇 년 동안 초대형 교회를 다니면서 기업에서 하던 관리 체계가 교회 내부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과연 교회 내부에서 있었던 방식이 교회 밖 경영학에 접목이 된 것인가, 아니면 경영학 관리 논리가 교회 내부에 파고 들어온 것인가. 이 책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후자라고 꼭 집어 말한다. 마케팅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중심에 있지 않다. 당연히 이 같은 논리 <마케팅 기법>은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다.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은 시대가 달라졌다 해서 시대에 따르거나, 시대에 맞춰 발전해야 하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케팅 교회에선 교회의 중심이자 목적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의 필요에 맞게, 혹은 스스로 눈을 낮추어 교감하려 애쓴다. 이런 시도 자체가 하나님에서 떠났기에 마케팅 교회는 인본주의 교회의 확장판이다.

 

이 책에선 미국 마케팅 교회의 역사와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 언급된다. 찰스 피니, 조니 바나, 로버트 슐러, 빌 하이벨스 목사와 Willow Creek Community Church, 릭 워렉 목사와 새들백 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와 Lakewood Church는 전편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서 언급되어 뺐다고 한다), 예상외로 피터 드러커가 등장한다.

 

2,3장에서 현대 기독교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물론 다른 복음이므로 복음은 아니다. 진리는 없는 포스트모던니즘, 노력에 의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프레그머티즘, 필립 얀시의 뉴에이지 운동,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부흥이 최선이다 라는 찰스 피니, 하나님을 믿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실한 삶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슬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 신학.

 

이런 해외 기독교 경향에 대한 맥락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외형의 성장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고, 겉모습만 따온 한국의 기독교는 쉽게 마케팅교회화 되는 것이라 진단한다. 실제로 많은 한국의 교역자 분들이 미국의 이런 마케팅 교회들을 교회 성장의 모습을 둘러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 그래서 교역자 분들이 섬기는 교회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지 짐작이 간다. 마케팅 기법으로 외형적으로 성장은 하지만, 실제로 죄악을 깨닫고 성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신자는 줄어 들고, 방청객 신자들은 늘어 가는 걸로 보인다. 당연히 천국/지옥의 갈림길에서 선택받는 자가 줄어 들것이란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 뿐일까. 성경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은 길로 들어 가라 했지, 지금처럼 쉽고 편한 설교 말씀을 들으며 힐링을 받으며 안락함을 느끼며 들어 갈 수 있는 쉬운 길이 아니라고 했다.

 

책의 중후반부로 가면서 두 교회에 할해를 하고 있는데, 하나는 마케팅 교회의 시작점이자 극단적인 마케팅에 의존하는 Willow creek comminuty church의 구도자 예배와, 다른 하나는 방법적으로 교회 문턱 낮추가를 하는 새들백교회이고, 결과는 동일하게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 가면서 알았던 또 하나는, 그동안 내가 전도를 잘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믿지 않는 주변의 친구들의 필요를 교회는 채워 줄 수 있으니, 교회에 무조건 나와라 식으로 전도하고 있었던, 어떻게든 교회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복음을 전했었다.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곳도 아니고, 정신적인 평안을 주는 곳도 아닌데, 복음의 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었고, 마케팅 교회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마케팅 교회의 근본적이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교회와 예배의 중심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예배의 본질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는 더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교회는 내 자신을 수련하는 곳도 아니고, 예배는 '좋은' 말씀을 듣는 교양강좌 의식이 아니다. 교회와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놓치면 안된다. 내가 중심인 사고방식에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인데, 기독교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은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키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명령은 이천명 넘는 교회 몇개 만들어라 라도고 하지 않으셨다. 교회는 양적 성장을 비교하고, 경쟁에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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