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기독교강요다 (일반인용) 이것이 기독교강요다
라은성 지음 / 페텔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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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은성 교수님의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해설집 <이것이 기독교강요다>를 읽었다. <기독교강요>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읽은 건(해설서라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을 통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만날 수 있었다. 교회 좀 다니면 뭉뚱그려 듣는 무조건 기도 열심히 해라, 성경 많이 읽어라가 아니라, 지식으로 배우는 교리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소위 이 생겨 든든하다. 그동안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신조> 등으로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혹은 번역자가 쉽게 풀어쓴 해설이 좋아서 그런지, 내용이 어렵다거나 믿음의 문화적 충격 같은 것은 없었다. 그동안 교리적인 해석과 지식이 많이 자랐다고 볼 수 있어 속으로 뿌듯했다.

 

한가지 단점은, 가끔씩 읽어 나가다가, 이 내용이 라은성 교수님의 이야기 인지, 존 칼빈의 이야기 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혹은 존 칼빈의 원본에 나와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적용만 해설 식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라은성 교수님의 생각인지 구분이 있었으면 더욱 좋을 뻔 했다. 그 이유는, 16세기에 벌써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고,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구나 감탄하고 있다가, 갑자기 적용이 현대 한국이라 확 깨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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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 신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 규장 신앙위인 북스 15
오병학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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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에 면죄부에 반대한느 95개의 반박문이 붙음으로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다. 이 한 사건으로 유럽 전체가 뒤집혔으며, 종교간의 갈등은 수백년간 이어졌다. 그 결과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나오게 되었고, 중세 시대가 저물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최고 큰 획을 그은 역사의 사건중 하나로 기록 될 것이다. 루터 자신도 이정도로 큰 사건이 될 줄은, 처음엔 몰랐을 것이다.

 

내년엔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600주년이 될 해이다. 다니는 교회에서 종교 개혁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고, 일부 분들은 종교개혁지 탐방을 위해 적금을 넣는 등 준비하고 있다(나는 아마 못 갈듯). 중세과 근대를 나누는 대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그 분위기에 불을 부쳤고, 스스로 시작하였고 그 중심에 있었던,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한 흥미를 끌었고, 유튜브에서 영화를 찾아 한 편 봤고, 간단한 그의 전기를 봐야 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져 이 책을 잡게 되었다. 너무 두꺼운 책과 그의 사상과 신학에 관한 책은 부담스러워 비교적 얇은 책을 찾게 되었는데, 두 권 중 최종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참고로 이 책의 대상은 청소년이다. 즉, 내용도 쉽게 풀어 썼고, 중간중간 삽화도 들어 있고, 활자도 크고 책 두께도 비교적 얇다.

 

루터는 수도사가 되고 나서, 개인적으로 죄의 문제를 심각히 고민하였다. 교황청이 있던 로마에서 실망을 한 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비텐베르그로 옮긴 후, 성경을 읽으면서 오직 예수그리스도(교황이 아닌), 오직 성경(교황의 교서나 공의회의 결정이 아닌), 오직 은혜(나의 노력이 아닌) 이라는 교리를 정리해 낸다. 성당 정문에 붙인 대자보도 처음에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면죄부에 관한 반박문이었다. 일파만파로 전 독일을 거쳐, 전 유럽을 번져 나가게 된다. 루터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시민계급의 성장, 인쇄술의 발명, 교황의 타락, 같은 시대적 상황도 불만 그으면 폭발 직전인 환경을 마련했다.

 

* 정보 차원에서, 지도를 찾으면 Lutherstadt(루터의 도시)가 두 군데가 나오는데, 하나는 종교개혁의 시작점 비텐베르그이고, 다른 한 곳은 루터의 출생지 이자 사망지인 아이스레벤이다. 참고로 루터는 비텐베르그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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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믿고 달려온 삶 김길 목사의 제자도 시리즈 1
김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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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김길 목사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고,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의 와는 일부 다르게, 성장기에서 어려운 삶을 사셨고, 예수전도단에서 훈련받고, 가르치시고, 한 교회를 개척하셨고, 지금은 명동에서 명신교회 사역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지금도) 하고 계시는데, 그 목사님의 사역하시는 내용이 책에 잘 녹아져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김길 목사님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목사님은 들은 그대로 사역으로 행동으로 옮기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방법이 나에게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목사님 같은 사역을 하기엔, 많은 훈련 과정이 필요하거나, 혹은 나와 원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에서도 목사님은 평소에 성경을 많으 읽으시니, 능히 기도중에 내 잠재의식 속의 생각과 혹은 사단의 유혹의 목소리를 구분하시리라 믿는다.

 

직통계시는 누구의 음성인지 검증하는 과정을 절대 간과해선 안된다. 여러 곳에서 그 위험성을 많이 경고 하고 있다.

 

1) 화학이나 물리학적인 지식은 거의 없지만, 기도를 열심히 하니, 화학의 법칙이나 물리학적인 공식이 머리에 떠 올랐다. 주변에 알아보니 그 법칙이나 공식이 맞는 것 같았다. 대한화학회나 대한물리학회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이 실렸다.

 

2) 배가 아팠다. 기도를 열심히 했다. 누군가의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이 지시하는 것에 따라 약을 만들어 먹었다. 배가 안 아팠다. 새로운 치료법이 발견된 것이다. 식약처에서 신약 허가를 내줬다.

 

3) 어려운 사고가 터졌다. 열심히 기도 했다. 기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사고가 마무리 될 것을 약속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하니 일이 모두 해결되었다.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위의 예에서 1)과 2)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3)은 쉽게 믿는지 모르겠다.

 

1)과 2), 그럴 수도 있겠지, 우연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꽤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방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거다. 대부분의 화학적 물리학적인 법칙은 정규 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결과이다. 신약이나 신의료기술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검증하는 과정이 있은 후에 만들어 진 결과이다.

 

직통계시가 하나님께 듣고 내가 할 일을 결정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면, 지금껏 목사나, 성경이나, 교회와, 신학, 신학교가 무슨 소용과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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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ving God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R. C. 스프로울 Jr 지음, 이대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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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에서는 교리 논쟁을 하지 않는다. 학계에선 이론 논쟁이 치열하고, 법조계에선 법리 논쟁이 치열하고, 정치계에서 정파 논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한국 교계에서 이상하리만큼 교리 논쟁이 없다. 대신 단순히 그리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고, 기도하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일까? 목사님? 교회 오래 다니신 분? 믿음이 좋다고 다른 신도가 전해주는 분? 이 책은 그 해답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드린다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약속을 믿는 것이고, 그 내용을 12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것>, <지혜 주실 것>,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것>, <소원이 이루어질 것>, <축복의 약속>, <믿음의 능력>, <고난이 선을 이룰 것>, <승리한 것>, <성화될 것>, <예수와 같이 될 것>. 성경에서 근거를 찾고 그 근거를 설명한다. 저자는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이 책 8장에서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1:23> 이 구절을 보면 믿음이 좋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 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의 당시 상황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고, 역사로 보면 실제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이 구절을 현재에 적용하는 지금의 우리는, 믿음이 좋으면 지금 당장, 바로 오늘, 내 앞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거나,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무작정 기다리거나, 내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성경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현상에만 주목하는 잘못된 나의 관점이다. 언제나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에 있다. 목적은 산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이처럼 성경의 원 뜻을 받아드리기를 권면한다.

 

몇 일 전 길을 가다 한 교회의 작은 크기의 전도지를 받았다. 접힌 가운데 페이지는 건강 상식이 적혀있었다. 교회가 다른 모임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친목 단체쯤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많은 교회에서 교리 이야기만 나오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 딱딱하다고 하기도 하고, 교리가 틀린 이유, 잘못된 교리를 애써 찾아 들이대곤 한다. 대신 그 공간에 감동 스토리와, 어줍지 않은 성공스토리가 대신하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한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야기는 성경 한두 구절을 근거로 한 교양 강좌쯤 생각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러는 과정에서 새롭게 그 교회에서만 해당되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 만든 교리는 검증되지도 않을뿐더러, 갈 길을 잃은 교리 일 뿐이다. 믿음이라는 것을 지적인 이해 없이,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믿음이다. 심지어 안 보고 믿는 것은 더 좋은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이 없는 믿음이 과연 진정한 믿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리가 없다면 교회가 다른 모임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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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복음과 거짓복음
L. R. Shelton, Jr. 외 지음, 정태윤 옮김 / 밴드오브퓨리탄스(BandOfPuritans)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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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R. Shelton의 책, <그리스도의 참복음과 육신적 기독교라고 하는 거짓복음>Ernest C. Reisinger<육신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두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갈라디아서 6:7~8 말씀을 바탕으로 심은 데로 거두리라, 육신의 것을 심으면 당연히 육신의 결과를 얻을 것을 말하고 있다. 내 삶은 육적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책에선 육적인 믿음이라 말한다)은 틀렸고, 육적인 믿음은 없고,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책이다. 원저는 1993(두번째 책은 1991)에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한국 교회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자연인(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 육신적(carnal) 그리스도인, 영적 그리스도인, 이렇게 3가지로 나누고, 이 책은 육신적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저술하였다. 책의 중간중간에 저자가 대상이 구원을 받지 아니한 자와 육신적 그리스도인을 혼용해서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 읽어 나가면서 혼란스러웠다. 다 읽고 보니, 육신적 그리스도 인은 자연인과 같은 말 임을 알았다. 육신적 그리스도인은 원래 없다. 자연인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육신적 그리스도인은 어설픈 그리스도인인고, 선데이 크리스챤이고, 이들은 자연인일 뿐이다. 이들은 성경지식을 약간 알고, 교회에는 정기적으로 출석하면서, 천국에 대한 보험을 들어 놓은 듯이 행동하는 사람이다. 입으로만 결단하고, 회개나 회심은 하지 못한 단계쯤 보면 될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순종을 원하셨고, 좁은 길로 들어가라 하셨고, 어렵고 힘든 길이라 말하셨던 것과 완전히 배치된다. , 예수님이 지칭하셨던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에서 '복음 전파는 세상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필요하다'고 결론 맺는다.

 

육신적 그리스도인은 은혜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 이유는 제대로 알려 주시 않아서 이기도 하다. 그 결과 참 복음에 이르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과 아름다운 영광에 대해서도 소홀히 한다. 그들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들의 영혼과는 역동하는 생명의 일체가 없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너무 많다. 그렇지 않아도 성도의 존재는 유혹에 약하고, 심지어 본질적으로 악한데, 선지자들이 잘못 인도하면,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교회는 쉬운 복음, 싸구려 복음을 전파하고, 교인들은 단순히 심리적으로 위안을 삼거나, 돈으로 보상을 구하는 상태가 되어, 구원의 길은 멀어지고 말았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성령을 좇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삶이다. 육적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갖게 되는 것은 개인의 결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죄 안에서 살거나 복음을 받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죄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많은 한국 교회는 죄에 대해 언급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교회는 단순히 세상에서의 고난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봉사자들에게서 대접을 받는 곳이 되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혼동 한다. 하지만 틀렸다. 죄인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알려 주지 않으면, 교회는 그 본질을 잊은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어 회개를 이끌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라 교리적으로는 가르치면서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 인내, 위초, 교재만을 위한 교회는 성도를 죄 안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고, 죄 안에 있으면 중생, 회심, 구원은 없다고 이 책은 말하고, 이에 동의 한다. 육신적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중간지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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