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철학
김진석 지음 / 개마고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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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읽은 두 번째 책은 우리학교 철학과에 있는 김진석 교수가 쓴 <더러운 철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의 앞 몇 장은 자조적인 느낌이라 - 뭐, 순수물리를 하는 사람들도 그 비슷한 자조 어린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 익숙하지만 - 갑갑한 느낌이 들었지만 저자의 의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더러운'이라는 형용사를 우리식으로 풀어보면 고매한 이상, 거대담론으로서의 철학, 위대한 사상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마치 똥통에 한발을 담구고 있는 듯한 현실적인 의미로서의 철학, 좀 더 물리적으로 말하면 현상론적인(철학에서 말하는 현상론이 아니라)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방 후 이땅의 철학자들이 범한 오류의 대표적인 것은 철학이라는 학문을 지나치게 고문서들의 책갈피 속으로 던져 버렸다는 데 있을 거라는 것. 그 말은 지당하신 말씀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구의 현대 사상가들 중 그 누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철학을 논한 적이 있던가. 우리가 보기에 형이상학적일뿐이라고 욕해도 그들이 하는 말마다 세상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가 느껴지니까 말이다. 그게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역할이지 않을까. 세상의 껍질을 가차 없이 벗겨내서 보여 주는 것. 사실, 해답이란 없다. 그 현상이라는 게 어디 좀 복잡한가. 그 껍질를 샅샅이 벗겨 낸다는 게 어디 가당하기는 하단 말인가. 하지만 적어도 그 껍질을 벗겨 내려는 시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우리가 실험 사실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행위와 비슷한 것이다. 찌질한 논문 몇편일지라도 그 논문에 적어도 이 땅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지평을 제공해준다면 설령 그 논문들이 찌질하고 별 인용을 못 받는다고 해도 어떻다는 말인가. 그런 점에서 철학이 더러워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한표를 던진다. 사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땅의 논리가 가당치 않게만 느껴지는 이때,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게 촌스럽게 말하자면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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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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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개정판
전광용 지음 / 을유문화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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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이범선 단편선
이범선 지음, 김외곤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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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10月-12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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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3분- 우주의 기원에 관한 현대적 견해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신상진 옮김 / 양문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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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Three Minutes: A Modern View of the Origin of the Universe (Paperback, 2, Updated)
Weinberg, Steven / Basic Books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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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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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이 물리라 책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3월 한달 틈틈이 읽은 책이 몇 권 있다. <책읽기>라는 것,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자들이 첫장부터 끝장까지 다 읽어 주길 바란다 해도 굳이 모든 장을 꼼꼼이 읽을 필요는 없지만 몇몇 책들은 독자의 성실한 책읽기를 요구한다. 3월에 읽은 책 중, 한숨이 푹푹 나오게 했던 책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신문사나 방송에서 책선전 한번 하지 않은, 아니, 책 선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책임에도 판매부수가 10만권이 훌쩍 넘은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삼성의 '주인'인 이건희 회장과 그 일가, 그리고 가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개 이런 류의 책은 호기심 때문에라도 많이 팔리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삼성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예전에 얼마 전에 읽었던, 프랑스 사회학과 교수이자 유엔 산하에서 연구원으로 읽했던 저자(이름이 생각 나지 않는다)가 국제적인 제약회사들의 만행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책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니까 이 극도로 부자인 자들의 만행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 그 뿌리를 따라 올라가자면 세상이 민주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 뿌리는 수백년 전 봉건사회와 맞닿아 있다는 것. 그렇다. 봉건제도는 20세기에 끝난 게 아니었다. 서양의 악덕기업이나 이땅의 악덕기업의 행태는 거의 완벽한 교집합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 이건희와 그 가신들의 이야기는 여러 점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적어도 외국 악덕 제약회사들은 게임의 룰을 어느 정도는 지키려고 들지만, 삼성의 '주인'이라고(이 말도 실은 많이 우습지만) 일컫는 이건희와 그 가신들은 그 기본적인 게임의 룰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은 의외로 삼성의 행태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하지만 중간중간 느껴지는 저자의 감정의 편린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데, 그 부분은 접어두고 읽어야 될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되는 또 하나의 데자뷰, 이탈리아 마피아다. 언젠가 옥터퍼스라는 시리즈 물로 텔레비전에 소개되었던 이야기 말이다. 마피아와 정치계, 법조계의 그 뒤엉켜 있는 이야기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이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볼 수 있었다. 소위 삼성 장학생이라고 부르는 자들 말이다. 수많은 검사들, 수많은 판사들, 수많은 국회위원들과 정치가들(이건 이명박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정권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연줄 연줄은 감자줄기 같고 문어다리 같다. 

더 답답한 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거대한 뿌리'의 실체를 알고나면 한 개인의 투쟁이 그 뿌리를 잘라낼 수 있을까, 회의가 들뿐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사실 앞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다는 건 더 비참한 생각이 들게 한다. 그저 서 있다가는 냉소주의에 젖어 살게 될 뿐이니까 말이다. 해답은 없지만, 소극적 저항일지라도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에 대해 한 마디. 내 경우, 저자 김용철은 책으로만 만나는 편이 더 나을 듯 싶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잠시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강연에서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역겨웠다. 삼성을 욕하면서 삼성을 닮아가기 때문일까...... 김용철변호사의 강연보다는 그의 책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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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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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김훈의 소설은 <칼의 노래>와 <내 젊은 날의 숲>, 이 두 책이다. 김훈의 문체는 독특하다. 까끔한 문장,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담백한 문장. 하지만 이런 김훈 작가의 문체는 한번씩 가는 뼈가 가득한 생선살을 조심스럽게 떠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생선의 담백한 맛은 좋지만 뼈가 목에 걸릴까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것, 그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라면 누구든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이 점은 오히려 김훈 작가의 장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훈의 작품은 언제나 그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온다.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작품은 잔잔한 이야기이다. 감정에 들떠 있거나 정제되지 않은 생소리는 그의 글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좀 메마르다고 할 정도로. 감정이라면 주인공의 어머니가 거는 새벽 전화에서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가 다른 감옥으로 이감되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야기는 과거의 일과 현재 계속되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설명해간다. 주인공과 김민수 중위 사이에 싹트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서조차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야기 전체에서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할 뿐. 정작 이 작품의 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수목원에 있는 뭇 꽃들과 나무들이다. 작가는 그저 지나치기 쉬운 꽃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의 형태를 띠지만 잊혀진 꽃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 주변에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들과 주인공이 맡고 있는 세밀화 작업, 그 작업에 필요한 숲의 묘사가 얼기설기 얽혀 있지만 이 소설의 초점은 수목원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수 하덕규가 불렀던 <숲>이라는 곡의 가사 마지막 부분에서 발췌해서 <내 젊은 날의 숲>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 사실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떠올랐다. Norwegian woods는 원래 비틀즈가 부른 곡명이니까 노래에서 제목을 차용했다는 점에서는 두 소설이 닮은 데가 있다. 그 외 두 소설이 서로 닮은 점은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을 좀 더 잘 읽으려면 꽃말이나 나무의 이름을 잘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전방 민통선에 있는 수목원의 사계절에 대한 묘사, 그리고 60년전 치열했던 고지전에서 죽어간 이름 모를 병사들의 유해 발굴. 나무의 죽음과 병사들의 죽음. 상치쌈이 먹고 싶다던 한 평범한 젊은 상등병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인간의 죽음과 나무의 죽음이 겹쳐지는 그 곳.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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