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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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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심리 탐구란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비현상을 탐색하고 사람의 다양한 소비 행동을 통해 그들의 감춰진 심리를 추리하면서 그 사람의 속마음, 진짜 마음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전반에 걸쳐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왜 탐구해야 하는지에 관한 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심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소비심리는 소비자인 나를 알고, 또 나 자신을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나의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 선행해야 할 과제는 소비심리의 분석이다.

'동기연구의 아버지'로 알려진 마케팅 전문가 어니스트 디처 박사는 소비심리 연구는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또 실행에 옮기는지 탐색하는 일이 다. 자신에게 한정된 자본을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용하는가는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중요시하는가?"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경영학에서 다루는 소비심리와 다른 심리학의 소비심리이다. 즉 "소비하는 인간 자체에 초점을 둔 심리학적 소비심리"이다.

오늘날 소비심리 연구는 고객이 왜 특정 물건에 더 관심을 두는지, 소비자가 특정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려고 하는지, 그리고 대중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관심을 둔다.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가에 초점을 두기보다 특정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즉 물건이 아니라 소비자인 인간에게 초점을 둔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비합리적이다.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탐색한다.

위기 상황은 같아도 대처하는 모습도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다르다. 그런데도 대학에서는 미국인의 '소비자 행동론', '소비심리'를 마치 한국인의 것인 양 가르친다. 한국인도 미국인과 같은 소비 행동을 할 것이라 믿을 수도 믿으라 할 수 없다. 한국 사회 문화와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소비 행동을 우리의 눈으로 제대로 읽을 때, 소비심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한국인은 특정 이슈나 사안에 관해 자기 생각과 마음을 정확하게 밝히는 데 매우 서툴다.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의 심리코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마음을 나타내는 "타인의 심리코드를 전혀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추구하는 가치의 특성은 무엇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속으로 충족하려는 것이 다르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것"과 "속마음이 바라는 것"이 다르다. 욕망의 갈등이다.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었더라도, 그것이 정말 자신이 원했던 욕망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따라서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 안에서 '가장 먼저' 모순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한 후 가치를 정립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습성과 문화를 바로 알고, 당당하게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소비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부나 권력을 과시하고 싶을 때 소비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실체가 없는 막연한 기대일수록 반대급부로 그 실망감은 더욱더 커진다. 책이 나오기 전 <쾌도난마>에서 보여준 모습에 대한 환상이 이 책에 관한 기대에 투영되어 있다. TV에서 말했던 많은 내용이 책에 나와 있다. 아, 저자의 직업이 대학교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또 한가지 제목 《대통령과 루이비통》이다. 그가 정했든, 출판사가 정했든 시류에 편승하려는 시도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제목으로 원래 저자가 의도하고자 했던 소비심리학보다는 12월에 있을 대선에 관해 무언가 말해주길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어느 누가 활자로 천기누설하겠는가. 그저 낚였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그럼에도 소비심리학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소비심리학이 소비자보다는 마케터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맞다. 소비자보다 마케터와 기업에 더 필요한 학문이다.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은 소비자인 동시에 마케터이다. 황상민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 른 사람이 만들고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소비자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무엇을 남에게 제공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마케터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능이든 노동력이든 무엇인가를 남에게 팔아야 한다."

소비심리를 알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 소비자이자 마케터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비심리는 소비자인 나를 알고, 또 나 자신을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나의 삶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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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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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함유근.채승병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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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최대 이슈로 부상한 '빅데이터'가 시대를 바꿀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이름만 '빅데이터'로 바뀌었지 그전에는 데이터 마이닝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다. 그렇다면 새삼스레 빅데이터가 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트너 그룹에서는 빅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이며 미래 경쟁력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럴싸한 포장한 겉포장만 바꾼 신상품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과거부터 지속하여온 통계 분석, 데이터 마이닝, 인공지능 기술의 연장선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빅데이터가 2~3년 유행하는 동안, 도전적인 일부 기업에서 관련 솔루션을 구매해 써보다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악평만 남긴 채 사그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도 있다.

이러한 우려도 근거 없는 게 아니다. 실제로 IT 업계의 각종 기술이 이러한 유행과 실망이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왔다. 빅데이터가 한낱 신기루에 그친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예전과 다른 '잠재가치'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해야 가치가 있다. 이미 천문학적 데이터는 쌓여있다. 하지만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기술의 관점에서 본 데이터는 아직 부족하다. 데이터가 많아도 공유해야 데이터가 된다.

스마트폰, 스마트환경이 많은 사람과 기업에 주류 패러다임으로 정착했고, 여기에 편승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운명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빅데이터도 결국 이러한 변화의 경로를 밟아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빅데이터의 유행 속에서 그것의 중요성과 막대한 잠재가치를 깨닫고 차근차근 실질적인 데이터의 활용 역량을 축적해 나갈 기업이 있을 것이다.

쓰레기 같은 데이터는 없다. 분석하지 못하는, 잘못 분석하는 어리석은 마케터만 있을 뿐이다.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빅데이터'의 가장 큰 활용도이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의 지적이 명쾌하다. "빅데이터를 잘 분석하면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된다. 맞다.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빅'이 아니고 `데이터'다. `빅'이던 `스몰'이던 데이터의 분석을 통하여 과학적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는 것은 기업이든 국가든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데이터를 분석하여 과학적인 의사결정을 하자는 노력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 목적으로 60년 전에 컴퓨터가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자면 과학적 의사결정을 하는 `똑똑한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컴퓨터공학의 핵심이다."

한국기업이 단기적 시각에 묻혀 빅데이터의 역량을 축적하는 노력을 등한시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훗날의 '빅데이터의 충격'에는 아예 추격을 도모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단기적 비관론에도 빅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_316쪽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빅데이터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사그라질지 아니면 막대한 잠재가치를 가진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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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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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는 가계부채 1000조원, 하우스푸어 150만명 시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밑바닥 현실을 조명한다. 빚은 이제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개인 정보를 장악했고, 시간과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선택권을 가져가 버렸다. “친절하다 못해 귀찮을 정도로 빚으로 둘러싸인 삶을 예찬하던 금융회사들”이 이제는 돈을 회수하겠노라 얼굴빛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이를 일러 “빚의 교묘한 독재”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채무 노예 사회”다. 한때는 자유인이었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빚을 끌어안게 되었고, 이내 노예로 전락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겨우 회생한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살려준 국민을 대놓고 협박한다. “빚은 자기 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오늘날 빚 권하는 사회의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약탈적 금융이 만든 ‘내 탓’ 의식을 먼저 벗어버려야 한다. 또한 “금융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공적 통제를 받는 조직체”로 금융기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과 공조자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테크 열풍을 일으키며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채무 인생의 대물림을 만든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약탈적 대출로 서민들의 집을 빼앗았고, ‘언론’은 빚도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며 머니 게임을 부추겼다. ‘신용카드사’는 월급날의 보람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서 거푸 헛발질을 하며 하우스푸어를 양산했다. 한편 서민들의 신용회복을 돕겠다며 야심차게 시작된 ‘파산·회생·워크아웃’ 제도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고, 제도적 허점으로 서민들의 삶을 더 옥죌 뿐이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99%의 채무 해방을 위해” 나아갈 길은 멀고 험하다. 먼저 가혹한 채권 회수보다 인간적인 채무 조정 등 채무 조정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기에 “99%를 위한 채무자 연대”와 같은 사회운동도 필요하다. 지은이들은 “전문가의 도움과 다른 채무자와의 연대, 이것이 당장 빚에 짓눌려 겪는 고통을 해결할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금융 복지 안전망, 곧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는 일이다. 2012년 대한민국 서민들의 희망은 “인간적인 금융”, 곧 힘겹게 노동해서 번 돈을 약탈해 가는 금융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금융 시스템”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과 직면하게 한다. 이런 아픈 현실과 직면하여, 이제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도 알려준다.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그리고 당당히 외쳐야 한다”는 구호와 실천은 단지 약탈적 금융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모든 실체를 향해 던져야 할 말이다.

지은이들의 마지막 말이 내내 뇌리에 남는다. “한때 자유인이었던 그 시간을 되찾아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야만적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야만의 세상을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 그는 어떻게 자기 나라도 아닌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막대한 항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을까? 당시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면 섬이나 육지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는 그다지 독특한 발상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수많은 탐험가 가운데 콜럼버스가 선택된 이유는 뭘까? 새 책 '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가진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콜럼버스는 자기 비용은 한 푼도 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항해를 시도했다. 항해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준비한 뒤 국가에 허가를 신청한 다른 탐험가들과 정반대였다.

자신의 원대한 꿈과 야심을 기획안으로 만들어 국왕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국가의 자금을 활용해 눈부신 성공을 이뤄낸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펼친 프레젠테이션을 이렇게 비유한다.

' 일본인인 내가 달에 가고 싶어 기획서를 작성한 뒤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내가 요구하는 성공 보수는 달에서 거둬지는 총 수익의 10%를 받는 것이다. 달에서 나의 지위는 부통령이자 제독. 신분은 우리 가문 대대로 세습되도록 할 것.' 이 정도로 대담한 콜럼버스의 요구가 그대로 통과된 셈이다.

지은이는 다른 경쟁자들이 단순히 모험가였던 데 반해 콜럼버스는 플래너, 즉 기획을 파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기획력이란 개인의 꿈과 야심을 상대, 즉 클라이언트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 공감하게 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팔리는 기획이 된다.'

지은이가 역사에서 한 수 배운 마음을 움직이는 10가지 프레젠테이션 비법은 다음과 같다.

상 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상대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라. 한 문장 한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선명하게 펼쳐지는 어휘를 선택하라. 우연이나 행운도 철저히 기획·연출해 상대로 하여금 행운의 여신이 당신 편이라고 믿게 만들어라. 진짜 설득은 상대가 당신과 같은 마음이 됐을 때 가능하다.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유혹하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경쟁자의 허를 찔러라. 당신의 기획이 상대의 머릿속에 뿌리내리도록 치밀하게 사전작업 하라. 프레젠테이션 성공 후 사후관리를 결코 소홀히 하지 마라. 평소 꼼꼼하고 치밀한 메모가 프레젠테이션을 완벽하게 만든다.



이 책(원제 'Sudden Genius?')은 '천재의 법칙'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 19세기 이후 과학자, 심리학자, 우생학자 등의 노력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런 노력은 우선 '정말 천재들은 우리와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궁금증의 발로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범인(凡人)들을 위한 위로의 구실 찾기로도 읽힌다.

'천재의 법칙'을 찾는 학자들의 분석은 크게 '본성과 양육'으로 나뉜다. 시작은 다윈의 사촌이기도 한 골턴. 그는 1869년 '유전적 천재성'이란 책을 통해 비범한 사람들은 우생학적으로 어떤 가계(家系)에 속했는지 분석했다. '타임스' 등 신문의 부고란 등을 분석한 그의 작업은 법조인과 과학계에선 일부 맞는 듯했다. 하지만 뉴턴의 부계(父系)에선 어떤 뛰어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고, 물리학자 패러데이, 화학자 존 돌턴 등은 아예 명단에서 빼버렸다. '재능은 유전된다'는 결론에 맞지 않아서다.

이런 노력은 20세기 미국의 캐서린 콕스의 '천재 300명의 유소년기 정신적 특질'(1926년) 등으로 이어진다. 천재들이 타고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화석 지능지수(fossil IQs)'까지 동원된다.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지능지수 측정이 없던 시대의 위인들의 IQ를 추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17세 이하의 지능지수와 17~26세 사이의 지능지수를 각각 측정했더니 다빈치는 135/140, 미켈란젤로는 145/160, 모차르트는 150/155, 뉴턴은 130/170의 결과가 나왔다. 존 스튜어트 밀은 190/170으로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 대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저 그때까지 남아있던 역사적 사실 기록만을 반영해 이뤄진 것일 뿐 그 천재들을 제대로 평가해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네틀이란 학자가 제안해 심리학계에서 통용되는 5요인 모델 역시 완벽하지는 못하다. 5요인 모델이란 외향성(개방적·열정적이면 높은 점수) 신경성(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걱정을 잘하면 높은 점수) 의식성(조직적, 자기 통제력이 강하면 높은 점수) 동의성(신뢰와 감정이입을 잘하면 높은 점수) 개방성(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하면 높은 점수)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최근 자기공명장치 등을 이용해 뇌의 활동을 분석하는 기법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천재의 법칙'은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천재들은 고독을 즐겼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혼자 그렸고, 모차르트도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할 때는 집에 틀어박혔으며 샹폴리옹은 상형문자를 해독한 후 형에게만 소식을 알리고 실신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다.

저자는 이런 이론들을 검증하기 위해 '천재' 10명을 선정, 그들의 '도약'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최후의 만찬'의 다빈치,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건축한 크리스토퍼 렌(Wren),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모차르트,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 진화론의 다윈,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인도 영화감독 사티야지트 레이 등이다.

저자가 '대표 천재'로 선정한 10명의 선정 기준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결론 역시 전복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천재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인류의 오랜 탐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뇌 때문이야”라고만 하고 마치지 않는다. 책 사이사이에 그런 뇌를 이기는 방법도 함께 제시한다. 먼저 발전적이지 못하고 안주하는 뇌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속도를 늦추라’고 강조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 속도를 늦추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치밀하지 못한 뇌의 성향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 행복한 뇌는 단기적인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단기 목표를 먼저 세우고, 그 목표가 결국에는 장기 목표를 이루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유익하다. 예를 들어, 6개월 만에 13㎏을 감량하고 싶다면 1주일에 1㎏을 감량하기로 하고 그때마다 뇌에게 목표를 달성했다는 보상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 울러 저자는 사회신경과학자 존 카치오포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고독을 이해할 것’을 추천한다. 뇌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가상의 인물과 유대감을 느낄수록 현실로 돌아왔을 때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때 자신의 감정이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인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충족감을 느낄 수 없어서인지를 이해하면, 뭔가에 중독되려 할 때 자신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으른 뇌를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뇌의 이런 성향을 정반대로 활용하는 12가지 팁을 제시한다. 크고 장기적인 목표는 뇌가 부담스러워하니 일단 쪼갤 것,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약간의 부담을 줄 것, ‘할 수 있어’라는 무책임한 긍정 대신 ‘할 수 있니?’라고 자문할 것,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리화하고 싶을 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것 등이다. 이런 팁을 잘 활용하면 소소한 실수가 초래할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주도적이지 않고 눈치보는 뇌’를 극복하기 위해선 뇌가 받아들이기 힘든 노력을 계속하면서 ‘나는 왜 안 될까?’라고 자책하는 것보다, 뇌의 이런 성향을 반대로 활용해 ‘쉽게, 짧게, 반복’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짧고 간결하고 단박에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가 설득력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메시지를 아주 빨리 처리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메시지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스마트하지 못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 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흠 없고 결점 없는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하지만 체크리스트를 곁에 두거나, 어떤 보상이 주어질 때 잠깐 멈추고 이것이 좋은 보상인지 나쁜 보상인지 생각해보거나, 옆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고 싶을 때 몇 초만 생각을 멈추어보는 등의 작은 노력만 기울여도 게으른 선택이나 비겁한 포기로 나중에 후회하는 횟수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한다.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한 학습은 글을 깨치기 전부터 이뤄진다. 네댓살이면 접하게 되는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대표적이다. 2500년 전 그리스에서 태어난 이 유명한 우화는 게으름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경고한다. 추운 겨울, 눈보라를 맞으며 벌벌 떨어야 하는 베짱이의 가난이 바로 게으름의 대가다.

게으름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죄와 벌’의 구조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인 <소가 된 게으름뱅이>도 예외가 아니다. ‘게으름은 일종의 죄다. 가난이라는 형벌이 따를 것이다’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게으름의 역사를 구어체의 문장으로 풀어놓고 있는 에세이다. 물론 이런 유의 책들이 항용 그렇듯, 이 책의 저자도 “게으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라고 전제한다. 다시 말해 게으름에 대해 죄의식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우화 속의) 개미는 누구인가?”라고 자문하면서,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미들은 귀족, 자본가, 제국주의, 양반 등 힘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계급적 관점까지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어떤 이들은, 20세기 전반의 영국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관한 찬양>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느림의 철학자’로 알려진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선을 긋는다. 자신에게는 게으름을 찬양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게으름이 나쁘다고 부추기는 문화와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게으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권력과 결합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게으름을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해방감을 안겨주는 것”이 자신의 의도라고 밝힌다.

게으름에 대한 죄의식은 동양보다 서양의 문화에서 한층 강력하게 유포됐다. 그 뿌리는 물론 <성경>이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적었다. 그것은 서양인들에게 하나의 인식적 좌표로 자리했다. “게으름은 신의 목적을 어기는 것, 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것, 신앙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인식이 한층 굳건해진 것은 근대에 접어들면서였다. 칼뱅은 “신은 게으른 자가 빵을 먹는 걸 저주한다”고 설파했고, 그것은 곧바로 프로테스탄트의 ‘근면 윤리’로 이어졌다.

‘근면과 성실’이 근대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증기기관이 나오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적어도 근면이 지상제일의 덕목은 아니었다. 기계가 등장하면서 인간이 기계에 밀리자 근면은 더욱 강조됐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돈과 힘을 가진 부르주아들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게으름을 피운다고 불평했다. 막간의 휴식조차도 다음날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준비로 여겨졌다.”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하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이 “절약과 근면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낭비와 게으름을 경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 벤저민 프랭클린은 게으름을 증오하면서 스스로 근면의 상징이 됐다. 그는 ‘게으름은 자물쇠의 녹’이라거나 ‘시간은 금’이라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그러나 저자는 항의한다. 그는 “게으름은 상대적”이라고 강조한다. 게으름에 대한 인식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보여주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저자는 우리가 서구의 기독교 자본주의가 주입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게으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서양에서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하는 것이 의무로 여겨졌지만, 이들의 지배를 받거나 다른 역사를 지닌 아프리카나 인도 등의 지역에서는 적절한 여유가 삶을 풍족하게 한다고 여겨졌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저자는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는 한가로운 비서구 세계의 문화”를 은근히 치켜올린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산업화하기 이전의 멕시코, 1960년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을 관찰한 자료 등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근면의 기풍이 서구보다 약하다 해서 열등함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자면 그것은 다만 “문화의 차이”이며, 좀더 본질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시간의 개념의 차이”다. 예컨대 “인도는 윤회와 환생을 믿고, 중국은 광대무변한 시간 개념”을 가졌다. 반면에 서구인들에게 시간은 째깍거리며 초단위로 직진할뿐더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 차이야말로 근본적인 문화의 ‘다름’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리하여 저자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운명을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길을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다시 말해, 서구가 유포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다. “게으름을 폄훼하지 않고, 적절한 게으름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일만 하고 돈을 모으려는 각박한 사회”에서 “인간의 사회”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저자 이옥순은 인도 델리대학 대학원에서 인도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연세대 연구교수로 일하면서 인도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30쪽의 얇은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가치는 묵직하다. 간혹 무리한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대화체 문장이 독자를 다감하게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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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6 1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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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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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금언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일상적 존재를 정의하는 더욱 분명한 금언은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개인은 매일 수백 번의 소비와 관련된 결정을 한다.

인간은 매일 소비하므로 매일 그것과 관련된 결정을 한다. 소비라고 할 수 있지만 선택이다. 아침을 먹을까, 말까? 지하철을 탈까, 차를 몰고 갈까? 온종일 선택의 연속이다. 이 선택의 대부분이 소비를 위한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토대를 세운 핵심적인 연구가인 텍사스대학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버스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이 제공하는 혜택을 무시하기에는 그 효용이 너무 크다. 이 책에 담긴 주요한 진화론적 원칙을 삶과 일에서 활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이다. 반대로 이를 활용하는 사람은 제품과 아이디어를 놓고 다투는 시장의 진화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자가 될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을 다루는 모든 학문 분야로 침투하고 있다. 데이비즈 버스 교수는 "수년 동안 나는 마케팅, 나아가 비즈니스가 특히 진화심리학적 분석에 맞는 이상적인 분야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인간의 행동은 단순한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인간 본성과 행동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학으로,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의 현대적인 원리를 종합하여 삶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석한다.


진화심리학 進化心理學 Evolutionary Psychology

인 간은 진화한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합리적인 계산기로 되어 있지는 않다. 진화 심리학은 그 대량의 연구로 로크(John Locke)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설을 반증해 왔다. 로크의 견해는 인간의 뇌는 동물의 그것과 달리 본능이 적고 타블라 라사(백지상태)이며 교육이나 문화 등에 의해 어떠한 것이라도 학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에 대해 진화 심리학의 연구는 인간의 다양한 본능이나 재능을 발견ㆍ분류하여 인간에게는 간단하게 학습할 수 있는 것, 간단하게 학습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것의 하나는 인간에게는 언어를 배우는 재능이 본능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기술에서는 언어를 배우는 컴퓨터는 그 구조조차 상상할 수 없다. 역으로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수학을 배우는 능력 등이 없어 컴퓨터를 당해 낼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이 합리적ㆍ수학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의 견해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은 합리성이 이상적인 견해라는 전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합리 선택론의 이상(理想)대로 행동하는 동물은 진화적인 경쟁에 패하여 도태되어 간다는 연구도 보고되어 있다(Cosmides and Tooby, 1994).

진화 심리학의 전제의 하나는 인간의 신체는 오랜 유목시대에 진화하였기 때문에 그 신체뿐만 아니라 행동도 현대사회가 아닌 유목사회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것으로서 인간의 신체는 먹을 것이 적은 환경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풍부한 현대사회에서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뚱뚱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로 인간의 심리는 500명 이하의 사회에 가장 적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그리고 특히, 국제적ㆍ이문화(異文化) 교류의 사회에서 생활하게 된 다음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단, 이러한 문제는 유전자에 의한 행동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을 제시하고 있다. 진화론은 심리학에 응용되어 많은 업적을 올리고 있지만 다른 사회과학에 응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심리학은 어떠한 의미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이기 때문에 심리학에서 파생하여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올리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Ostrom, 1988). 심리학에서 사회과학에 응용할 수 있는 사례로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거짓을 간파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게임과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게임은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심리학에서 실증되어 있는데 이것은 투표행동의 연구에 있어서 플레임 이론과 유사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_《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사전연구사



데이비드 버스 교수도 말을 했지만,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새로운 지식의 소비도 진화적 과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의 핵심 전제, 즉 진화심리학이 소비 행동 나아가 비즈니스 학문의 연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종의 진화적인 선택을 거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머지않아 다수 소비학자, 나아가 비즈니스 학자가 인간의 마음은 성 선택과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라고 확신에 차 말한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은 비주류인 행동경제학에 비해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인용한 로빈 던바의 지적이 옳다. "진화론적 전근법은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개별적인 사회과학을 단일한 지적 이론 틀로 통합할 기회를 제공한다."

단 편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소비에 관한 이야기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면 근원적인 진화심리학에 과한 이해가 필요하다. 깊이 이해하려면 추천사를 쓴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을 필요하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아서는 나무가 얼마나 큰지, 숲에서 그 나무의 위치가 어떠한지, 숲이 얼마나 웅장한지 알지 못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며 그것이 전부인 양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장님의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끼리 전체 모습이 아니므로 답은 아니다. 조선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라는 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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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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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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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합리적인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주류 경제학과 비교하면 비주류 경제학인 행동경제학은 출발부터 다르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행동경제학은 '합리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개념에 반대한다. 개인은 주어진 여건에서 항상 자신의 효용이나 기대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시장은 가격신호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균형 상태로 향하게 된다는 게 미시경제학의 기본 토대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사람의 행동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은 '왜 속이면서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며 거짓말을 한다. 당신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 그렇게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착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기회가 된다면 어느 정도 범위에서 사소한 부정행위를 한다. "부정행위를 지배하는 요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흥미로운 요인에 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 대부분 행동경제학 관련 책이 이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처음 한두 권 읽을 때는 실험에 의한 전개 방식이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여러 권 읽으면 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설명하려 한다. 그래서 흥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행동경제학도 진화하여 일반적인 불합리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벗어나 새로운 주제로 접근한다. 이 책은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 하는 사람'이다.

전설적인 골퍼 보비 존스는 러프에서 공을 치려 할 때 조금 움직이는 공을 봤다. 나중에도 이런 사실이 발각될 우려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벌타를 받았고 결국 경기에서 졌다. 기자가 알게 되었고 존스는 이 일을 기사로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내 행동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거나 마찬가지 일이다. 이렇게 말했다.

보비 존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연한 정직한 행동을 언론이나 사람들은 대단하게 말한다. 이는 대부분 사람이 정직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이 자신은 정직하고 착하다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덕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어떤 선 하나를 긋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선의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어느 선까지 부도덕함을 인정해야 하는지가 더 큰 문제이다.

왜 속이면서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하는가. 책에서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집단에 속한 개인은 더 높은 수준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데, 이는 부정행위가 자신이 좋아하고 보살피는 사람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의 부정행위로 다른 사람이 이득을 얻는 경우에 하는 부정행위를 이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주변 사람의 복지를 신경 쓰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환자와 친해 대하기 쉬울수록 환자에게 자기 주머니가 보다 두둑해질 수 있는 치료법을 권한다. 한편 이런 치과의사와 오래 알고 지낸 환자일수록 조언을 보다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데 따른 장점은 분명 많다. 그러나 이런 지속적인 인간관계에는 추가적인 비용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려 한다. 사람에게는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해주는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열 수 있는 사소한 자물쇠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사람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들므로 도덕성에 관한 단기간의 집중 훈련이나 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업과 대학에서 행하는 윤리 교육도 많은 부분에서 이처럼 비효율적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결과를 좀 더 일반화하면 윤리적인 영역에서 장기적인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도전할 만한 가치는 크나큰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정직하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음의 사례가 이 책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말해준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계속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장치를 필요로 한다.

자물쇠는 정직한 사람을 정직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하려고 달아놓은 장치일 뿐이다.

세상 사람 중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또 1%는 어떻게든 자물쇠를 열어 남의 것을 훔치려 한다. 나머지 98%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동안에만 정직한 사람으로 남는다. 이 삶은 강한 유혹을 느끼면 얼마든지 정직하지 않은 사람 쪽으로 옮겨간다. 당신이 아무리 자물쇠로 문을 꼭꼭 잠가도 도둑이 털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단신 집에 침입할 수 있다. 자물쇠는 문이 잠겨 있지 않았을 때 유혹을 느낄 수 있는 대체로 정직한 사람의 침입을 막아줄 뿐이다.

사람은 자기가 감시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대개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자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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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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