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行間 (한방블르스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prhouse</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행간을 노닐며 세상에 외치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2 Sep 2026 06:47:44 +0900</lastBuildDate><image><title>한방블르스</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002615368740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prhouse</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한방블르스</description></image><item><author>한방블르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이리뷰] 벌레 이야기 (무선) - [벌레 이야기 (무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prhouse/17439763</link><pubDate>Sat, 08 Aug 2026 2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prhouse/174397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1007&TPaperId=17439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8/68/coveroff/89320210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21007&TPaperId=174397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벌레 이야기 (무선)</a><br/>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br/></td></tr></table><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8/68/cover150/89320210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086849</link></image></item><item><author>한방블르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글, 불편한 진실 - 왜 ‘불편한 진실’인가 - [한글, 불편한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prhouse/17437571</link><pubDate>Fri, 07 Aug 2026 15: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prhouse/174375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9942&TPaperId=174375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34/coveroff/k0521399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9942&TPaperId=174375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글, 불편한 진실</a><br/>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br><br><br>『훈민정음』 서문에는 ‘어린 백성’을 가엾게 여겨 새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대에는 이를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의미인 일반 백성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중세의 ‘백성’은 현대의 ‘국민’이나 ‘민중’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br><br>하지만 그 대상이 누구였는가를 밝히는 일이 한글의 위대함을 흔들지는 않는다. 책에서 말하는 ‘불편한 진실’ 역시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종이 누구를 ‘어린 백성’으로 보았든, 그들이 글을 몰라 겪는 어려움을 가엾게 여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br><br>더욱이 위대한 발명은 처음 의도한 목적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발명자의 손에서 탄생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와 사회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처음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든,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문자로 자리 잡았다. 그것이야말로 한글이 지닌 가장 큰 위대함이다.<br><br>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역사는 시대의 관점에 따라, 같은 자료도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 책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익숙한 통설에 질문을 던지고, 한글의 탄생과 활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br><br>한글은 민중문자로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지배계급의 한문 사용을 보조할 수 있는 적합한 도구로 기능했다.<br><br>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글이라는 표음문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글 사용자는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았고, 한글 사용 영역은 대단히 넓었다, 문자를 만들 때 범용성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만든 뒤 시험 삼아 사용하는 과정에서 집현전의 젊은 관료는 그 범용성에 놀라 마지않았다.<br><br>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었다. … 운서의 번역과 편찬에 골몰했던 것은 이 민중문자의 범용성을 적극 활용한 예다.<br><br>지배계급이 자신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영역에서부터 한글을 사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br><br>중국어 학습에 활용되었다. 이전에는 표기 불가능했던 중국어 발음을 이 표음문자 표기할 수 있었다. … 외국어 학습서를 언해한 후 한글로 음을 달기 시작했다. 한글은 지배계급의 외국어 학습을 위해 사용되었다.<br><br>불경 언해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 지배계급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불경을 언해했을 뿐,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br><br>실용서도 다수 언해되었다. 그중 의서 언해는 보다 넓은 범위의 이용자를 의식한 조치였다. 이 책은 지방이 몇몇에서 목판을 만들어 인쇄했다.<br><br>한글이 사용된 책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경서의 언해본이었다. 국가적 차원의 표준 번역이 있어야만 했다.<br><br>언해본이야말로 한글 창제가 사족士族에게 끼친 최고의 혜택이었다.<br><br>사족士族은 한글을 사용하긴 했지만 주로 언해의 영역에 머물렀다. 물론 ‘언문’ 편지의 영역에 국한되었다. 일반적인 글쓰기를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글쓰기에는 여전히 한문을 사용했다.<br><br>민중의 적극적인 한글 사용은 민중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만드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열리지 않았다. 세종은 지배계급의 대표자였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br><br>—한글, 불편한 진실, 강명관, 푸른역사, 2026<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7/34/cover150/k0521399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73463</link></image></item><item><author>한방블르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매일의 ‘읽기’를 기록 -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title><link>https://blog.aladin.co.kr/prhouse/17437537</link><pubDate>Fri, 07 Aug 2026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prhouse/174375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532677&TPaperId=174375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768/4/coveroff/k6725326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532677&TPaperId=174375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a><br/>요조 (Yozoh)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br/></td></tr></table><br/>2017년 매일의 ‘읽기’를 기록한 서평이다.<br/><br/>매일의 기록답게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과하지 않은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그 장점은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기록으로서는 충분하지만, 딱 거기까지만.<br/><br/>서평은 읽은 사람이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읽는 사람을 책으로 이끄는 글이어야 한다. 한 권이든 두 권이든 상관없다. 독자가 책을 펼치게 하고, 더 나아가 구매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리뷰의 목적이다.<br/><br/>이 목적은 충실하게 만족시키고 있다.<br/><br/>요조는 말한다.<br/><br/>“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성실의 고통에 괴로웠다.”<br/><br/>다시 이런 작업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정말 진짜 죽어도 안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승낙할 것이다.“라고 답한다.<br/><br/>솔직한 고백이다. 괴롭지만 결국 다시 하게 되는 일. 매일의 ‘읽기’와 ‘쓰기’가 그렇다.<br/><br/>공감하는 대목도 많았다. 특히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br/><br/>내가 자주 가는 상수동의 커피발전소에서 『쇼코의 미소』(최은영, 문학동네, 2016)를 읽었다. 첫 번째 단편 「쇼코의 미소」를 읽고는 더 읽는 것을 멈추었다. 한 번에 끝까지 후루룩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커피발전소에 갈 때마다 단편 하나를 천천히 읽고, 그 뒤에 나의 일을 했다.<br/>출처 입력<br/><br/>좋은 책은 읽는 장소와 함께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카페에 들어서면 그곳에서 읽었던 책이 떠오르고, 어떤 골목을 지나면 한 문장이 문득 생각난다. 책은 내용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까지 함께 기억 속에 묶어 둔다.<br/><br/>꼭 커피발전소가 아니어도 좋다. 자주 가는 카페 하나쯤 정해 두고 그곳에서는 단편 하나, 아니 시 한 편만이라도 읽어보자.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오래 읽는 일이 더 행복할 때도 있다.<br/><br/>하지만 끝내 동의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고양이 중성화에 대한 이야기다.<br/><br/>옛날에 키우던 고양이에게 발정기가 와서 엄청나게 울어대며 괴 로워하던 것을 나도 괴롭게 지켜보다가 결국 병원에 중성화 수술을 하러 데려갔을 때 의사 앞에서 그랬다.<br/><br/>“아무래도 좀 잔인한 것 같아서 망설이다 왔는데 영 내키지가 않아요......”,<br/>그러자 의사가 나한테 그랬다.<br/><br/>“주기적으로 섹스하고 싶어지는 애를 집안에 계속 가둬둘 거면 서 그게 더 잔인한 거 아닌가요? 애 발정기 올 때마다 집 앞에 풀어 줄거예요?”<br/><br/>나는 그 얘기를 듣고는 바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했더랬다.<br/><br/>지금 키우는 두 마리 고양이 또와 라이도 진즉 중성화는 완료했다.<br/>출처 입력<br/>하지만 그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br/><br/>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중성화를 한다. 결국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편하도록 내리는 결정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것을 ‘동물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br/><br/>마지막에서 요조는 이렇게 말한다.<br/><br/>“인생의 모든 즐거움이 섹스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섹스 말고 더 많은 즐거움을 차근차근 선사해 줄 테니까. 오래만 살아다오.”<br/><br/>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다만 그 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다른 한마디였다.<br/><br/>‘미안하다.’<br/><br/>인간의 선택으로 그들의 삶을 바꾸었다면, 적어도 그것이 우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br/><br/>—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요조, 난다, 2017<br/><br/>덧_<br/>요조는 세상에는 나쁜 책, 좋은 책, 이상한 책,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나쁜 책은 읽으면 돈밖에 남지 않는 책, 좋은 책은 그런 책을 제외한 책, 이상한 책이 흥미로운데, 세상의 모든 시집이란다. 요조의 이번 책은 좋은 책과 이상한 책의 중간쯤이다. —요조의 인터뷰 中<br/><br/>덧_둘<br/>나중에 알았다.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 中 하나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768/4/cover150/k6725326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768045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