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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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며칠 전 서울 여의도 근처에서 육견협회의 생존권 시위가 있었다. 나는 이 소식을 언제나처럼 뉴스 기사로 접했다. 사진에서는 시위에 동원된 여섯 마리의 개들이 제 몸보다 작은 철창에 끼어있는듯 어정쩡한 자세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비가 한참이나 내리던 날이었다. 사방이 뚫린 철창 속에서 개들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고함과 난동을 부리는 현장 속에서 비까지 맞으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개들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동물보호단체 사람들도 곁에 있었지만, 약하디 약한 동물보호법에 쓰인 한 줄 (긴급 격리 조치) 조차 실행하지 않는 처참한 현실 앞에서 개들을 다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개들은 아마 더욱 끔찍한 곳으로 갈 것이다. 소란스러운 거리와 수많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환경보다 더욱 끔찍하고,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집단 수용소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은 연합군이 진군해 들어갔던 바로 그 순간뿐이다. 어떤 장소에 대해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곳이 삶의 공간이었던 사람뿐이다.”(82쪽)

종종 SNS를 통해 유기견과 식용견, 번식견의 삶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다. 자꾸 찾아보니 추천 데이터로 뜨는지 더 자주 보게 된다. 내 개가 부드러운 흙과 잔디를 밟고 하수구 철망에 발이 끼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가거나 점프를 할 때, 평생을 철망 위에서 온 힘을 다하여 버텨야 하는 개들이 있다. 내 개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깨끗한 패드에 배변을 할 때, 평생 물 한 모금 없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그 자리에서 배변을 해결해야만 하는 개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사진과 영상과 이야기들로, 단편적으로 접한 것들 너머엔 순간 너머의 ‘삶’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있지 않은 누구도 그 삶을 완벽히 알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종종 이와 관련한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문장들이 등장하는데,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 또한 그러하지만 철창에 구겨져 이용을 당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의 삶 또한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에 전혀 연관 없는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나치 관련 소설과 유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대한민국에 사는 개들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르포 형식의 책이다. 개 산업 구조 위에 놓여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개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파악한다. 사람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나 사람에게 버림받는 개들의 끝은 참혹하다. 강간과 불법 수술이 만연한 번식장, 새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매장, 고통에 힘겨워하는 동물을 보조금 때문에 방치하는 보호소, 피의 냄새가 진동하는 도살장…… 매일 수많은 개들이 죽고 수많은 개들이 상상도 못할 속도로 생산된다. 작가는 바로 이 시스템 자체가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저 동물들을 인간의 영역으로 데려온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 우리의 시스템 안에서 동물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이야기하는 일, 그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질문하는 일이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89쪽)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닭은 불쌍하지 않아? 소는?” 그럼 “당신은 채식만 해야겠네”라고 힐난하는 말들. 작가는 이 세계의 모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싸워 얻은 결론을 침착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거대한 공장 사육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굳이 종 하나를 추가해야 하는가, 이것이 생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리고 작가 스스로에게도 던졌을 질문을 던진다.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는 어떤 자격도 필요치 않으며,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다고 해서 단 하나의 도움과 실천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재차 강조한다. 우리는 유리 상자 속 예쁜 강아지 너머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개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쉽게 사지 말아야 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우리의 삶은 온갖 동물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덧붙이고 싶은 말>

+ 보호소 안의 안락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편안한 안락사가 아니다. 자연사 또한 말그대로의 자연사가 아니다.

+ 개시장은 오로지 현금장사다. 그리고 간이과세자다. 연간 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간이과세자라는 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생존권은 허구다. 쓰레기를 먹이면서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도살하며 월 수천만원의 돈을 버는 그들은 생존권을 논할 자격이 없다.

+ 개고기의 항생제 잔류치는 최고도, 세균과 바이러스가 득실댄다고 한다. 우리는 개고기의 위해요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더러운 환경에 자라고 도살되며 같은 동족의 내장이나 고기까지 먹은 개들의 고기가 어떤 위해요소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세계의 개 식용 인구가 소수이니 만큼 데이터도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먹고 싶은가?


● 52쪽,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삶의 방식을 재고하기보단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모순을 찾아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싶어한다. 동물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평범했던 일상이 딜레마로 전환되는 일이다. 나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외부의 적인 아닌 스스로의 모순과 싸우는 일이다.

● 79쪽,
그 모견은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였어요. 내가 자기를 들어올리든 물속에 집어넣든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 온몸이 축 처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있기만 했어요. 숨만 붙어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최소한의 반응도 없었어요. 시체를 만지는 기분이었어요. 더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아, 개도, 동물도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어하는구나. 사람이면 벌써 자살했을 거예요.

● 118쪽,
제가 번식장에서 봤던 어떤 어미는 새끼를 지키려다 못해 도로 뱃속에 집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 모견들이 허다해요.

● 149쪽,
동물에 대한 연민을 낮잡아보는 사람들이 많잖아. 우리가 구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이유로, 응원은 고사하고 비난을 받을때도 있잖아. 나도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 많이 봐. 개새끼들 도와줄 여력 있으면 사람이나 도와주라고.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개새끼가 대수냐고.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여기 돕지 말고 저기 도와라, 얘를 구하지 말고 쟤를 구해라, 그런 소리는 누구도 구해본 적 없고 누구도 살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 226쪽,
누군가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전제한 뒤 이 세상에는 ‘더 고통 받는 동물’과 ‘덜 고통받는 동물’이 있다고, 그러므로 모든 동물을 ‘더 고통받는 동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평등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것은 모든 동물을 고통의 수레바퀴에 밀어넣으려는 궤변일 뿐이다.

● 247쪽,
사람들은 인육이 아닌 이상, 먹는 것 가지고 뭐라 하면 불쾌해합니다. 저도 압니다. 음식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화, 습관, 그것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기억, 그밖에도 많은 것이 들러붙어 있지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은 먹어도 된다, 사람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인간 말고는 다 잡아 죽이자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의 도덕입니까? 인간은, 우리는, 그래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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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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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 속에 꼬깃꼬깃 채워진 기억들은 처음엔 말랑했던 마음을 점차로 굳어져 버리게 만든다. 크고 작고, 얼마나 더 슬프고 힘들고 하는 것들은 속도의 차이일 뿐. 굳어진 마음을 부여잡고 억지로 미소를 띠며 오늘을 견디고 또 견디는 건 다 똑같다. 그렇게 굳어져 버린 마음은 마음으로 푼다. 누군가와 만나고 같은 처지로 위안을 받으며 때로는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고 마음은 말랑해지게 만드는 일.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상처라는 것은 슬프지만, 그것을 함께 견딜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마음으로 마음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경애(敬愛)의 마음>에는 유독 마음이 쓰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제목은 ‘경애’이지만 느닷없이 초반부터 ‘상수’가 먼저 등장하고, 상수는 상상력 넘치고 무모하고 또 정이 많은 인물이고, 그는 또 경애를 만나고 경애는 상수만큼이나 좋은 사람이고,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고 추억하는 많은 인물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소설이다. 그중 가장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인물은 단연 경애와 상수인데, 둘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접점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마음이 포개어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경애와 상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소중한 사람인 E를 잃었고, 소중한 사람을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채 마음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 수많은 오늘을 버텨온 그들은 서로가 서로인지를 모른 채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연애 상담 페이지에서 인연을 이어나갔고, 일터에서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경애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하다. 상수는  다소 유머스러울 정도로 무모하고 우직한 면이 있다.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만남에는 진심이 있어 잔잔하게 마음에 폭 잠긴다.

두 마음의 파동 이외에도, 소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쌓여 있다. 욕심 때문에 모두를 죽게 만든 화재사건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용서와 회개의 의미에 대하여, 부당함을 지적하면 또다시 부당함으로 일관하는 기업의 횡포에 대하여, 여성의 연대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그 모든 일들에서 절대로 폐기되지 말아야 하는 마음에 관하여.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은 말을 삼키고 내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위로받을 것이다. 소설 속 경애와 상수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이 했던 것처럼, 소설 속의 이야기와 내가 사는 현실의 접점을 찾아가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항상 같은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여러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엄청나게 대단하고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기억과 만남과 한마디의 말들. 모두가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 24쪽,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 92쪽,
어느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 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경애가 이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며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 172쪽,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 217쪽,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니까 누워서 종일 음악만 듣다가 먼저 배고픈 사람이 일어나 라면을 끓였던 스무살 시절의 우리와, 한강에서 오리배를 보고 있던 지난 계절의 우리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렸던 그 밤의 우리가 같았을까. 어쩌면 손상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봉인되어 있던 것을 뜯어서 엉망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 305쪽,
지하상가를 지나다 노숙하는 여자와 아기를 보았을 때 경애가 무심코 했던 불행이라는 언급을 정정하던 E는 그때 겨우 열여덟의 소년이었다. 그런 깊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반복된 현실과의 충돌이 있었을까. 마치 운석이 수없이 충돌해 만들어진 달의 크리에이터처럼 일상의 어떤 일들이 E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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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도 듣기 좋게 -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의 말하기 비밀
히데시마 후미카 지음, 오성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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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 순간 예쁜 말을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에도 미소와 인사, 칭찬을 건넨다. 일부러 멋진 말을 꾸며서 하지 않는다. 조심스러운 마음과 반가운 마음을 전하는 진심 어린 말에서는 억지를 찾아볼 수 없다. 말은 유독 신중함이 필요하다. 단 한마디의 말에도 어떤 누군가는 기분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고, 과하게 말하자면 인생의 나쁜 기억 중 한 조각이 되어 굳세게 뿌리를 내려있을 수 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색함을 지울 수 없는 내 앞에서 친근하게 첫인사를 건네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를.

 

무조건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는 없지만, 때때로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같은 말도 듣기 좋게’ 할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할 때가 있다. 긍정과 부정, 충고와 거절, 생각보다 꽤 많은 상황에서 쓰이는 대화법을 전해주는 이 책의 저자는 20년간 라디오 DJ와 나레이터로 일해온 사람이다. 한마디로, 사람을 상대로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농담도 여유 있게 주고받는 저자도 남들과의 대화가 어렵고 막막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유학시절 친구의 칭찬 한마디가 ‘즐거운 대화를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하나씩 쌓아나갔다.

 

그가 전해주는 대화법은 유창한 달변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어주고 배려할 수 있는 긍정 에너지를 듬뿍 담고 있는 조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부터, 일상적인 대화, 긴장을 푸는 법 등 ‘대화법’이란 주제에서 연상할 수 있는 상황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것들은 책의 내용으로 예상했던 것이니 당연하게 넘어가지만, 그 밖에도 꽤 유용한 팁들이 있다. 부제로 설명을 대신해 이야기해본다면, ‘근거 없는 비난을 튕겨내는 마음 코팅’, ‘아슬아슬한 대화에서 위트 있게 빠져나오는 법’, ‘진심 어린 사과야말로 최고의 대화법’ 등 답답한 대화 상황에서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이 눈에 띈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어떻게든 길을 만들 수 있지만, 부정적인 상황에서 ‘나만의 길’을 만드는 지혜는 꽤 도움이 된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실생활에서의 대화법을 모두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물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기분과 성향은 피치 못하게 ‘말’에 새겨지곤 한다. 저자의 긍정 에너지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영향이 간다면 분명 좋은 일이 아닐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특히나 어려운 ‘말버릇’을 가꿔나간 저자의 노하우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언제든 이러한 상황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처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52쪽,
매 순간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미소의 간’을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요리의 간을 맞출 때 먹는 사람의 기호에 맞게 조미료를 적절하게 조절하듯이 최상의 미소를 찾기로 한 것입니다.

 


71쪽,
일부러 멋있는 말이나 어려운 문자를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은 금세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주었다는 진심이 전해집니다.

 


102쪽,
이유 없는 악의에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감정의 스위치를 차단해버리면 됩니다. ‘마음의 장벽을 쌓는다’란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잘 쓰이지 않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벽을 쌓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악의를 흡수하지 않기 위한 ‘마음 코팅’입니다.

 


120쪽,
대화 상대방을 관찰하고 대화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하는 습관만 들인다면 이 세상은 이야깃거리로 가득합니다. 평소와 같은 귀갓길에도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저 사람에게 말을 건다면 어떤 주제가 좋을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이야깃거리는 물론이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넓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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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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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여행 이야기가 매력적인 건, 인생의 불확실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선택’의 순간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의 순간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수만 개, 아니 셀 수도 없는 무한의 갈림길을 마주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선택은 때론 행복과 엄청난 쾌감을, 어떠한 선택은 우리를 무너지게 만드는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하는데, 이런 선택의 순간을 내 손으로 다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소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엄연히 말해서 이제껏 보아왔던 시간여행의 스토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나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판타지를 담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인 찰리는 온갖 수치스러운 기억들과 트라우마를 안고 제멋대로 살아가면서, 최근엔 기대를 품고 간 동창회에서 첫사랑 남자에게 이용까지 당해 엄청난 망신을 당한 참이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말로는 뱉지 않아도 잠깐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바꾸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결국, 더 이상 찌질이로 살고 싶지 않다며 과거를 바꿔주겠다는 사람을 찾아간 찰리는 자신의 지우고 싶은 기억들 몇 가지를 없애버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선택은 늘 다른 선택과, 다른 상황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가. 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온갖 호화로운 일상, 꿈에 그리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져 기쁘면서도 어딘가 시원치 않은 구석들이 존재한다. 왜일까.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수치스러운 기억 하나쯤은 있으니까. 나쁜 과거는 불현듯 찾아와 기억의 주인을 괴롭힌다. 전혀 그것과 상관없는 생각을 하다가도 반짝 떠오를 때는 얼마나 야속한지. 부끄러운 기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기분 좋은 생각으로 나쁜 기억을 없애버리려고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지워지지 않고 기억도 생생하다. 그러나 소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고 없애버리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만약 과거로 인해 무엇인가 틀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좋은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 결국 과거를 받아들이고, 현재와 미래를 더 잘 살아가는 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이다.

 

소설의 구성과 주제는 다소 식상한 부분이 있지만, 꽤 많은 분량 안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그 전달 방식이 누구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이 소설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의 장면이 바뀌는 듯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소설 속에선 주인공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가사까지 담겨,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은 이유를 알게 되었고, 새롭게 옷을 입고 재출간한 책이 이 책을 모르는 또 다른 사람에게 현재의 행복을 찾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34쪽,
게오르크 아저씨가 팀에게서 동창회 주소록을 빼앗아 고이 접은 다음 편지 봉투에 넣어 나에게 전해주었다. 게오르크 아저씨는 지금 내 심정이 어떨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성공해서 탄탄대로를 달리든 말든 나만 가만 내버려두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이렇게 기분이 꿀꿀할까?

 

129쪽,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문득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마술이나 마법 따위는 믿지 않는다. 심지어 오늘의 운세도 믿지 않아 아예 읽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집어치웠다. 이런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네에 앉아 있는 아이가 또다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다섯 살 때는 저렇게 귀여웠을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단지 내가 믿지 않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거라면?

 

138쪽,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인생은 수백만, 수천만 개의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무한히 많은 숫자 조합이 가능한 숫자 자물쇠처럼 말이죠.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갔을 때와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거죠. 출근을 단 5분만 늦게 했어도 우리의 남은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쳤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372쪽,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내가 결국 입을 뗐다.
“뭔가가 빠진 느낌이에요.”
게오르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아신다고요?”
아저씨는 조용히 웃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꽉 잡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떤 일들은 바로 우리 코앞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우리가 걸려 넘어져도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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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지음 / 첫눈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리 바쁘고 팍팍한 일상이라도 주변을 서서히 둘러볼 수 있는 순간은 온다. 길거리에서 잠시 시간이 남아 머무를 때,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릴 때, 카페에서 잠시 딴생각을 할 때. 티 나지 않게 사람들의 모습을 살짝씩 들여다본다. 약속시간에 늦은 듯 헐레벌떡 뛰고 있는 사람,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친구를 배웅하는 사람,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사람, 무거운 배낭과 딱딱한 안경을 쓰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 모든 사람들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자못 특이하게도 보인다. 북적한 도시의 공간 속에서 서로의 긴 숨 ― 일상의 내음 ―이 섞여 알아차리기 힘들 뿐.

모자를 좋아하고, 모자라서 그렇다는 짧은 소개 이외에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필명 모자 작가의 글도 비슷한 모습이다. 뭐든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무척 특이하기도 하다 (표지도 그렇다. 그냥 제목만 떡하니 쓰여있는데 거의 파격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편집이라서). 작가는 <숨>이라는 책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품은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혹은 그녀라고만 불리지만, 이야기는 어찌나 풍부한지. 어떤 사람은 이별을 하고, 어떤 사람은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고, 어떤 사람은 시큰거리는 배를 안고 추위 속에서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기억하며 ‘인연’을 생각한다.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 때문에 이들의 모습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숨’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뚜렷이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역할과 직업과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나는 ‘각자의 일상, 혹은 일생’의 은유적 표현일 거라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읽다 보니 이전에 만났던 ‘양귀자’ 작가의 인물 소설이 떠올랐는데, <숨>의 정보를 보니 에세이 분류에 속해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너무나 소설 같지만, 에세이 같기도 한 독특한 책. 게다가 잠깐씩 시로 쓰인 이야기도 등장하기도 한다. 그와 그녀,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확실히 알 순 없으나, 작가의 눈은 꽤 깊고 따뜻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상황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여느 때보다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혹독한 추위, 그리고 삶이 온통 겨울이었던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기를


17쪽, <초콜릿 장식>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짝을 버린 신발 한 짝이 갈 수 있는 곳은 고작 여기구나. 버려지는 것도 버리고 떠난 것도 결국에는 마찬가지겠구나. 얼룩지고 찢기고 외로워지는구나. 한 켤레의 신발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닮았겠구나.

69쪽, <예전에는 경비원이 아니었을>
마음을 지키려고 경비 일을 한다니 말이 안 되지. 상처받는 일을 하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딱딱해진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그런데 내가 경비원이 되고 싶었던가. 하긴, 예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냥 다녀야 하니까 다녔지. 그땐 다들 그랬으니까. 그래도 예전에는 사는 게 그럭저럭 재밌을 때도 많았던 것 같은데.

87쪽, <그믐밤, 제페토는 없었다>
유모차에 담긴 어떤 이의 삶은, 그믐에 기대어 종이를 그러모으는 것으로 결말을 맞이해야만 하는가. 그녀는 흩어지는 삶을 대신할 용도로 폐지를 주웠는가. 진정 담고자 했던 세상은 어디로 갔는가. 폐품이 대신 차지해버린 삶의 자리를 언제고 감당해야만 하는 건가. 그녀의 유모차는, 그녀에게 휴식인가 족쇄인가. 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자의 단막은 심오하였고 나는 어느 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129쪽, <결국 그녀는 네버랜드로 떠났다>
그녀는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을 씻었다. 볼이 빨개질 정도로 얼굴을 문지르다가 종이 치고 나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친구 몇이 괜찮은지 물어보는 바람에 괜찮아진 줄 알았던 마음이 다시 괜찮지 않아졌다. 아직도 엄마의 이름이 얼굴에 남아서 친구들이 물어보는 걸 테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친구들이 엄마의 이름을 잊어버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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