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웃었다 -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
장우철 글.사진 / 허밍버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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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생각들  

 일단은 참 예쁜 책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이 빼곡한 책은 언제나 예쁘니까. 하지만 책을 열었을 때 살짝이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기장 형식의 사진과 글. 이런 배치를 보면 '자신만의 사소한 기록'을 책으로 뽑아낸 것에 대한 일종의 시샘과 함께, 약간 삐딱한 생각이 든다. "예쁘고 감각적인 책"이라는 것을 넘을 수 있을까? 글은 어떨까? 어차피 느낌이 좋아 읽기로 선택한 마당에, 쓸데없는 질문은 뒤로 한 채 열심히 읽어본다.

 

 

 어,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했던 것보다 느낌이 훨씬 좋다. 글밥이 적다고 생각했던 페이지는 예쁜 '시'가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거창하지 않게 적어낸 글인 것 같은데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마음에 푹 잠긴다. 그래, 어쩌면 2015년의 마지막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흔적과 흐름을 따르는 이 글이 더 좋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잘 짜인, 그리고 잘 꾸며진' 일기장으로 보일지 모를 테지만, 이 책은 신기하게도 '시'로도 읽히고, 글밥이 적지만 절대 단숨에 읽을 수 없는 '사진집'으로도 읽히고, 매정하게 또 한 번 여행의 욕구를 자극하는 '여행 에세이'로도 읽힌다. 저자인 '장우철'에 대해서는 GQ Korea 에디터라는 것과 언젠가 언뜻 보았던 『여기와 거기』라는 책을 쓴 사람이라는 것만 아는데, 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기록이 이렇게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의 글을 보고 있자면, 정말 묘하게 그가 편애하는 것들이 사뿐사뿐 다가와, 나도 '좋아서 웃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거창하지 않게 자신을 표현하는 문체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작가, 글 참 잘 쓰신다. (사심 가득)

 

 

 ​ 그의 진심이 담긴 글들을 쭉 읽고 나니, 순간순간을 담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는 건, 의도가 어쨌든 세심하게 순간과 인생을 돌아보는 행동이기에. 새삼스럽게도, 스쳐 지나가면 금세 잊힐 수밖에 없는 모든 것들을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잊어버릴 만큼 시간은 야속하니까) 꾸준하게, 그리고 꼼꼼히 담아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바로, '일기를 쓰면 좋은 이유'와 같지 않을까. 

 

 

Written by. 리니

 

봄이라 말하려니

겨울에 나는 어울리는 값을 치렀던가?

막무가내 눈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혹시 그 몫이었나?

공원을 나와 요쓰야 쪽으로 걸었다.

붕붕거리는 소음이 유난히도 봄처럼 들렸다. (39쪽)


향나무 아래 팥알만 한 열매가 지천이라 갸웃했더니, 향나무의 것이

아니라 팥배나무가 떨군 것이었다. 만져 보면 딱딱하다. 맛이 떫고

시큼해서 사람보다는 산새가 좋아하겠다. 그런가 하면 향나무는

한껏 제 몸을 구부려 회오리를 흉내 낸다. 팥배나무가 까르르 웃는다. (99쪽)

빵이란 무엇인가. 빵이란 대개 턱없이 부족한 맛의 요소를 엉뚱한 덩어리감으로 귀여운 척 만회하려는 모종의 시도, 혹은 그 덩어리 자체를 가리키는, 한국어 중에서는 제법 희귀한 발음을 지닌 말이다. 나는 빵같이 생겨 가지고 왜 빵을 싫어하느냐는 반박하기 힘든 핀잔도 듣지만, 빵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빵을 볼 때나 먹을 때나 똑같이 생각한다. 어디서 맛없는 빵만 먹었느냐, 맛있는 빵도 있다, 똘똘한 누군가는 끊임없이 설파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너나 드세요." 하며 고개를 쌩 돌리지는 않고, 주는 대로 받아먹긴 다 받아먹으면서도 `역시 빵은 이래`, 확신한다. 빵은 웃기는 짜장면도 아닌 그냥 빵이다. 가끔 좋아라 이 빵을 고를 때도 있지만, 빵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찌개가 좋다. (123쪽)

나는 코트를 도로 입는다.

혼자 산다는 건

이제라도 다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라서 나는

코트 주머니에 땅콩을 한 줌 넣는다.

아예 양파를 넣을까?

혼자서 그럴 수도 있다.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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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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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서

 

 요즘엔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라든지,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라든지, 육체로 인생을 회고하는 책을 줄곧 사들이는 중인데, 이 책도 그 관심의 연장선으로 내게 들어왔다. '육체 탐구'라 하면 모든 오감을 총동원하여 어떤 일과, 사건과 때로는 찰나의 순간까지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육체 탐구'라는 단어와 깊게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초반의 강렬한 기억을 빼놓고서는. 오히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쭉 나열한 에세이에 가깝다. 간혹 육체의 고통과 육체가 느끼는 사랑 같은 게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육체 탐구'라는 말을 붙였느냐 하면은 말이지. 아마도 이 '김현진'이라는 에세이스트의 '글을 쓰는 방식'에 있는듯하다.

 

 

 『가장 사소한 구원』이라는 책에서 처음 만난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당당하고 솔직하게 청춘을 대변하고 있었고 그 책의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약간의 친절함과 편지글의 대상이 대상이니만큼 약간의 공손함을 갖고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거침없음을 넘어 다소 거친 듯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육체파 에세이스트' 혹은 '육체파 칼럼니스트'라고 불린다. 몸으로 뛰고 실제로 겪어보며, 글을 쓰기 위하여 단식까지도 불사한다. 파업 현장에 뛰어들어 플랜카드를 들고 온몸으로 맞서기도 한다. (그것은 물론 글감 때문이기보다도, 그의 관심이 반은 들어가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발로 뛰고 얻은 글감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그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재탄생한다. 녹즙을 배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도시 빈민, 자칭 타칭 미스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음성지원'이 되는 듯 하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지만 왠지 머리를 땡땡, 하고 울리게 하는 외침 같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시체'가 등장하는 책의 시작은 못내 당혹스럽다. 너무도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초반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뒤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작가가 쓰는 글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고부터다! 툭툭 뱉는 말 속에서 느껴지는 위트,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 그래서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아픔과 슬픔. 온몸을 부딪치며 살아온 그의 일상이 힘들지라도, 그의 신념은 무겁게 버티면서 자본주의 사회 속의 비정함과 그 비정함을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고, 노동자들이 겪는 부정함을 그려낸다. 특히나 인상 깊은 것은 2008년 MB 정권의 시위를 <안티고네>에 비유하여 묘사한 장면과 자칭타칭 '미스김'의 일상을 3인칭으로 그려낸 장면들이다. 전자는 아프고 분노가 치밀며, 후자는 말그대로 '웃프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 아니 대다수가 보기에, 나는 30대 초반에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준으로 보면 얼마든지 책을 보고 마음대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벌 수 있는 거래 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 아, 왜 나는 좋은 회사원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아마 그건 내가 이 사회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며 몸부림친 것일 테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경쟁 시대에서, 누군가는 낙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무실에 들어앉아 있을 때 즐기지 못했던 가을 정취 속을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낙오자다, 또한 하자품이다. 그리고 아주 낭만적인 낙오자다. 지금은 이것으로 좋다. (52쪽) 

 

  "알고 있어요? 이렇게들 살아요."하고 보여주는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또 다른 자신에게 살아갈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쿨한 위로를 건네준다. 그의 육체는 힘들지라도, 그는 분명 뜨거운 삶을 살고 있다. 직설적인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것도 이 '살아가는 힘'에 있다. 굳세어라, 미스 김! 굳세어라, 또 다른 미스 김이여!

 

 

 

Written by. 리니

한국에세이, 칼럼/ 사회 비평/ 노동, 도시빈민의 에세이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더 구질구질한 기분이 드는 건, 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들이 그 고함도 훨씬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는 것이다. 너 돈 없지, 당장 급전 빌려라! 애들 수학 학원 보내라! 편한 알바 안 해볼래? 싼값에 아가씨 끼고 술 마셔라! 그러다 보니 아아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리를 평생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돈 있으면 이 꼴을 안 볼 것이 아닌가. 돈 있으면 회사 바로 앞으로 이사 가서 광고 안 볼 수 있고, 돈 빌려가라는 광고지 꽂힌 지하철 탈 일이 없어서 그 고함 소리를 안 들어도 될 게 아닌가. 돈이란 건 좋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나쁜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어서 다들 돈을 좋아하는 거였다. 다들 사치하고 싶어서, 좋은 걸 누리고 싶어서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하고 뒤늦게 아주 절절히 깨닫고야 말았다. (39쪽)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누구 탓도 할 수 없고 이제 나를 때릴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그런데 내 영혼이라는 년은, 천장 어디쯤에 붙어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어, 하고 되풀이하면서. (83쪽)

사람들이 언제 `멀쩡한 일 가질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짜증이 와락 치민다. 멀쩡한 일과 안 멀쩡한 일의 구분은 뭐고 녹즙 배달하는 건 어디가 어떻게 안 멀쩡한 일이며 도대체 어느 정도로 멀쩡해야 멀쩡한 일 취급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며칠 전 프로야구 우승 결과를 가지고 내기하자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대강 짐작이 갔다. 내기를 해서 자기가 이기면 한 달 녹즙 공짜로 해달란다. 미스 김이 이기면 어떻게 할까 묻기에 그럼 나 대신 한달 배달하라고 했더니 사람 시간이라는 게 단가가 있는 건데 너무하다면서 자신은 단가가 비싼 사람이니 한 달 공짜 녹즙 대 자신이 하루 대신 배달하는 게 공평하단다. 녹즙병으로 때려주고 싶은 사람 명단에 이렇게 한 명이 추가되었다. 사람 시간 단가 운운하는 건 그 사람의 값을 매기겠다는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내 시간은 네 시간보다 몇십 배 비싸다는 이야기를 너무 당당하게 하니 미스 김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92쪽)

그런 대접을 당하고 싶지 않았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일 할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일 할 사람들의 일, 남의 일 이렇게 칼같이 줄을 그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그런 일 할 사람, 아닌 사람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한 바로 그 잣대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의 시장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에서 사람 사는 질서라고 칼같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나처럼 시장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런 분들과는 마구 척지고 싶다. 있는 대로 척지고 싶다. 평생 척지고 싶다. 만나봤자 서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확실하게 척지고 사는 게 피차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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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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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 양철북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책을 읽고 나서

 

 최근에 읽은 서간집이 괜찮은 느낌을 주었기에, 비슷한 형식인데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동 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이 약 30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이 책에서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었고, 출판사 측에서도 과도한 편집은 자제하고 원문 그대로 실으려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가장 사소한 구원』은 책으로 출간하기 위하여 특정한 주제를 이야기하며 스승과 제자와의 따뜻한 대화를 보여줬다면,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삶의 동반자인 두 문학가의 삶을 그대로 담은 느낌이지요. 어떤 작위적인 주제가 없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는 이 서간집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서도 정다운 느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기지우(知己之友)라고 했던가요. 『강아지 똥』,『몽실 언니』 등, 평생을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를 쓰며 살아갔던 권정생 작가님과 아동문학가이자 평론가, 교사였던 이오덕 선생님. 진정한 친구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분은 서로를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편지 한 통으로도 속마음을 다 알 정도로 가까운 인연이었고, 짧은 글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이라고 서로를 칭하며, 서로의 문학을 존중하고, 어떤 문제가 있다면 세심하게 챙겨주기도 하지요 ("원고료 만 원 부칩니다"라는 말이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또한, 권정생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이오덕 선생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권정생 작가는 자신의 많은 작품을 그와 논의하고, 이오덕 선생은 자기 일처럼 앞장서서 작품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나라, 고국이었지만 권정생 작가에게 많은 외로움을 주게 했던 한국이란 땅에서, 이오덕의 존재란 어찌나 든든했을까요.

 

사실 처음에는, 짧은 글 (편지)가 어떠한 주제도 없이 묶여 있어 단숨에 읽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의 삶을 순서대로 따라가듯 천천히 읽다 보니, 내내 이상하고 두근두근한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30년 동안 이어진 편지 속에는 한국 사회 속의 아동문학에 대한 따끔한 질타도. 가난과 고통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도 등장하는데요. 마음을 담은 편지이기 때문일까요. 모든 이야기는 얇은 종이 속에서 묵직한 감정으로 전해집니다.

 

 아, 이 책을 읽으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속에 있는 말들까지 싸악 비워줄 수 있는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일평생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다"는 권정생 선생의 말이 뭉클해지는 순간입니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서간집/ 아름다운 편지/ 아동문학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 살 때 찾아온 고국 땅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는지요?

나에게 한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무명 치마폭에서만이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고국은 나에게 전쟁과 굶주림, 병마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위에 몸서리쳐지는 외로움을…….

누가 자기 나라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나는 무던히도 나의 이 한국 땅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메말라진 흙 속에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여지껏 목말라 허덕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선생님만은 제 마음 이해해 주실 겝니다.

나라고 바보 아닌 이상 돈을 벌 줄 모르겠습니까? 돈이면 다아 되는 세상이 싫어, 나는 돈조차 싫었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고, 하늘까지 부끄러워 못 보게 되면 어쩌겠어요? 내게 남은 건, 맑게 맑게 트인 푸른 빛 하늘 한 조각.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3쪽)

오늘도 종일 누웠다가 이제 일어났습니다. 하루 이틀 무리하고 나면 사흘쯤은 열에 시달려야 됩니다. 열이 오르면 음식 맛이 하나도 없어져요. 먹어야 살기 때문에 굶어서는 안 되지요. 아랫마을 가게에 가서 새끼 명태 백 원어치 사 왔습니다. 밥이든, 죽이든 넘어가는 데까지 삼키고 나면 `이제 살았다` 싶습니다.

지독하게도 살아왔다고 생각됩니다. 절대 남 보는 데서는 울지 않습니다. 아픈 척도 않습니다. 아픈 척, 슬픈 척, 해 봤댔자 알아주는 이 없으니까요. 도리어 업신여김받기가 십상이랍니다. 행복한 척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만이 위로해줄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답니다. 신 김치일망정, 쓴 된장일망정,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찾아오는 가난한 이웃들을 저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돈이 생기게 되면, 건강해진다면, 사회가 알아주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답니다. (55쪽)

과잉생산이란 과잉 소유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고루고루 잘살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이 도대체 `생산`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말일 것입니다. 생산은 어디까지나 자연이 만들어 낸 소산이며 인간은 다만 수확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 수확의 공정성에서 벗어나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은 도둑이며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많이 가져도 된다는 권리는 누가 베풀어 준 것입니까? 하느님이 이 지구를 한자리에 고정시키지 않고 움직여 돌게 한 것은 고루고루 가지게 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요인이 바로 많이 갖는 과잉 소유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한 그릇 이상의 밥을 먹으면 다른 한 사람의 몫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입니다. 내가 넓은 토지를 소유할 때, 내가 큰 집을 가지게 될 때, 내 이웃은 그만큼 좁은 곳으로 쫓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188쪽)

우리 아동문학은 지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아동문학이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잡지 편집자, 일반 문학인들에게까지 멸시받는 판입니다. 아동문학 작가들은 아동문학에 대한 신념을 잃고 성인 문학의 뒤를 따르려고 하여 그 흉내를 내면서 문인 행세를 하는 경향이 있고, 성인 문학지 한 귀퉁이에 작품이 실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실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동문학이 문학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까닭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작가, 시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문학의 정체성과 위기는 오직 우리 문학인들의 반성과 진지한 노력으로서만 타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재미있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써서 독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편 문단과 사회에는 우리 아동문학을 옹호하고 그 존재를 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5쪽)

어린이를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보고 있듯이 아동문학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고 있으니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 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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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 #남미 #라틴아메리카 #직장때려친 #30대부부 #배낭여행
정다운 글, 박두산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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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정다운, 박두산 / 중앙북스

직장 때려친 30대 부부의 '다정한' 남미 여행기

 

 

 한동안 여행 에세이만 보면 눈이 번쩍 뜨이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호기심이 반쯤, 아니 80프로 정도는 떨어진 상태다.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이유 중 가장 많이들 얘기하는 대리만족이야 분명히 느껴지지만, 어떤 특정한 테마 - 이를테면, 음식이나 집,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 모토 - 없이는 모두 다 비슷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이어서 살짝 고민했지만, 끝내 받아보게 된 것은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남미' 여행에 국한된 에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요즘 남미 지역의 책을 부쩍 접하기도 해서인지 운 좋게 다가온, 오랜만의 여행에세이.

 

 

 가장 먼저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라는 제목은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어쩌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위험한 제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라는 말이 자칫 '우리는 그만큼 여유가 있어서'라고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롤로그 처음부터 이러한 글이 있었다.

  

 

결혼한 지 2년째 되던 해였고, 둘 다 30대 초반이었다. 나는 IT기업의 과장, 남편은 게임회사의 대리, 수도권 아파트에 살며 아침이면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을 했고, 가끔 야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한께 장을 보고 저녁을 해먹었다. 주말에는 보통 밀린 잠을 잤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별일이 없다면 그렇게 몇 년은 더 잘 지낼 것이었다. 오늘처럼 내일을 살고, 내일처럼 모레를 사는 일은 쉬웠으니까.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못 본 체할 수 있다면, 퇴근하는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모른 척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대로 쭈욱, 지낼 수 있었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그들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고,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지나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수많은 이유,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위해 둘 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들의 여행은 그동안의 바쁜 날들에 대한 보상이었고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물론, 6개월 뒤에는 다시 이전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제한된 꿈이었다.

 

 

 느낌이 좋은 곳에 머무르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들의 여행은 참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유독 젊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 함께 여행길을 걷고, 고생하면서도 그곳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 힘을 내는 모습을 봐도 그렇고, 분명 부부의 여행인데도 여행길을 동행하는 친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서였다. 걸어서 넘는 '과테말라'와 '멕시코' 사이의 국경, 경이로운 사진들로만 구경했던 '우유니 사막', 위험한 지역이라 여겨졌지만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던 '콜롬비아'를 거치는 그들의 여행은 부러웠고,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졌다.

 

  현실적인 것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오래된 카피가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책 속의 여행은 장소와 기간은 달라도 많은 직장인(혹은 청춘)들이 잠시 멈춤 하는 여행을 하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랄까. 그리고 비현실적인 것은, 어쩌면 모든 이들의 목표인 '행복'을 찾아 직장을 때려치웠던 그들의 용기였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 당장 직장을 때려치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남미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들의 '잠시 멈춤'도 자유롭고 아름다웠다. 친구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있는 부부의 모습과 책에서마저도 한 켠을 나눠주고 있는 ('그의 시선'이라는 페이지가 간혹 등장한다) 구성이 참 예뻤다. 책의 마지막, "한동안은 손이 닿는 곳에 배낭을 둘 생각이다"라는 말은 그들이 언젠가 또 여행을 떠날 거라는 계획으로 여운을 주고 있었다. 유독 특별하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다정하게 진심을 전하는 느낌이어서 읽는 동안 참 편안한 여행 에세이였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여행 에세이/ 남미/ 배낭여행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식사 중에 펼쳐진 여행 이야기. 20년간 아프리카며 아시아며 전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셨단다. `환갑 기념`으로 남아공에서 번지점프를 하셨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입을 떡 벌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6대륙을 넘나드는 그 길고 진한 여행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 말씀을 허세 없이 담담히 들려주신다는 거였다.

이 정도면 책을 여러 권 내고도 남았을 텐데, 이렇게 조용히 세상을 걷는 사람이 있었다. 긴 여정을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어르신을 만나다니.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는 걸 무슨 훈장처럼 여기고 우쭐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우리에게 겸손한 여행을 하라는 신호가 아닌가 싶어, 우리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분의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23쪽)

오늘 하고 싶은 것이 오늘 할 일이 된다는 것,

어제 하지 못한 것이 오늘 할 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온전한 오늘의 의미에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여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쉬는 법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의 단위가 복잡했다. 업무 다이어리는 1년의 시간을 분기로, 월로, 주로, 일로, 시간으로 쪼갰다. 단위가 정교해질수록 열심히 일하는 척할 수 있었다. 때론 너무 비대해진,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에 단위에 짓눌리기도 했다. 일일 업무보고, 주간계획 작성, 월간목표 수립, 분기별 성과보고, 연간계획 수립, 중장기 비전 설정까지.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시간을 위해 나의 하루는 완결된 단위로 기능할 수 없었다. (60쪽)

그런데 이상하다. 이 모든 부조리함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쿠바를, 아바나를 왠지 싫어할 수가 없었다. 좋아할 이유보다 싫어할 이유가 훨씬 많았지만 나는 의외의 부분에서 너그러워지곤 했다. 아바나에는 어제 걸었던 그 거리를 오늘 또 걷고, 다음 날 또 걷고 싶어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비록 삐끼에 지쳐 한 시간만에 되돌아오더라도, 또 기운이 나면 바로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121쪽)

`이러다 차가 기울어 벼랑으로 떨어질지도 몰라요!`

나는 그만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꽥 소리 지를 뻔했다. 간신히 참고 혼자 조용히 왼쪽 끝으로 옮겨 앉았다. 그때 오른쪽 창으로 몰려간 사람들이 본 것은, 무려 절벽 아래에 떨어져 있는 버스. 최근에 있었던 사고라고 했다. 그때부터 도서관이고 뭐고, 다시 돌아올 길이 걱정되어 사색이 되었다. 그런 길을 3시간 반 더 달렸다.

내 인생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이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만 울 것 같아져 버렸다. 남편은 얼굴이 질려버린 나를 보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나는 점점 몸이 뜨거워졌다. 집에 가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집에 누워 있었으면. 내 방에는 가습기도 있고, 푹신한 침대도 있고, 빠른 인터넷도 있는데. (209쪽)

아주 가끔씩은 몇 년 혹은 몇십년째 배낭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찾을 수 있는 어떤 공통점이라면 사진을 그다지 즐기지 않거나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애써 타인에게 전하려 하지 않고, 굳이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고 그 여력으로 자신에게 보다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자기 확신이 몹시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런 장기 여행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유분방함에 대한 동경도 동경이지만 세속적인 호기심도 떨칠 수가 없다. 대체 여행자금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떠나기 전에 돈을 많이 벌어둔 것일까, 부모님이 재벌인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입가를 맴돈다. 요컨대, 두어 달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슬퍼질 때가 있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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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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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김민철 / 샘터

문학작품을 더욱 피어나게 하는 꽃들의 향연







 ▒ 책을 읽고 나서.


 두 사람이 함께 걷다가 같은 풍경을 본다. 한 사람은 "목련이 예쁘게 피었네" 혹은 "어머, 저 가랑코에 색이 정말 화려하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그저 "꽃이 예쁘다."라고 말한다. 물론 각자의 관심사가 다를 수 있지만, 이는 커다란 차이를 준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마주했을 때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감탄하는 것, 그 재미는 '모르고' 감상했을 때보다 몇 배는 커진다. 이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후자에 속한다. 다양한 야생화와 식물들을 알고 싶긴 하지만, 그것을 찾아보고 눈에 담아 기억하기엔 관심이 부족하고 세심하지 못한 탓이다.



 꽃(혹은 식물)과 문학, 이 둘은 정말 짝을 이룬 것처럼 잘 맞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들이다. 김훈의『내 젊은 날의 숲』에서는 수많은 식물, 그리고 식물들이 연상시키는 의성어들로 풍성하고 유려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작품을 구성하는 소재로서 세상의 무엇 하나 쓸모없는 것들이 없지만, '꽃'을 포함하는 '식물'들은 특히나 한글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뽐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어진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야생화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 유명한 것들 말고는 내 눈으로 구별할 수 없는 튼튼한 나무들을.



 이 책의 작가는 이전에 『문학 속에 핀 꽃들』이라는 책으로, 꽃과 문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더욱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로 책장을 꾸몄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은희경의 <새의 선물>, 권정생의 <몽실 언니>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작품들을 포함하여, 작가의 이름 또한 조금 생소하지만, 꽃에 관한 아름다운 문장이 깃들어있는 작품들도 모아두었다. '좋은 문장들을 쓰고 싶으면 꽃에 관해서 좀 알아두자'는 개인적인 다짐을 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 다짐을 더욱 굳게 지켜야 하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 문학 속에는 수많은 꽃이 만발해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나는 첫발이 미끄러지듯 새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를 조르바에게 털어놓았다. (중략) 그래서 그날은 조금 과하게 술을 마셨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물론 그녀와 함께였다. 다음 날엔 그녀가 졸업 학기의 시작이 주는 쥐똥만 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거야 원, 다음 날 학교를 결석할 만큼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자꾸만 생겨났다. 나와 그녀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조르바가 쥐며느리만 한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마치 왈츠의 리듬처럼 그다음 날엔 조르바의 친구가 쥐방울 만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중략) 결국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서로의 마음속에 자라나 버렸고, 급기야 서로가 어우러진 울창한 쥐똥나무의 숲이 형성되어 버렸다. 결국 그해의 봄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36p,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단순히 그 꽃(그리고 식물들)을 묘사하는 장면만을 상상할 수 있지만, 작가들의 개성과 글솜씨로 이런 문장들도 등장한다. 쥐꼬리만 한 스트레스, 쥐똥만 한 스트레스가 모여서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를 이뤘다는 표현은 기발하고도 매력적이다. 독특하기로 잘 알려진 '박민규' 작가의 글이지만, 과연 이래서 '작가'인 듯싶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마치 한편의 독서 에세이를 읽는 것도 같고, 가볍게 쓰인 식물도감을 보는 것도 같다. 책 속에 담긴 우리 문학 작품들은 풍성했고 읽어보고 싶은 것들도 많았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각 장의 내용이 조금 짧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쓰인 작가의 이력 등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문학'과 '꽃'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기대가 커서 책은 오히려 조금 가볍게 여겨졌지만, 뒤로 갈수록 쌓이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책에 대한 만족도를 올려 주었다. 현재 출간된 많은 독서 에세이 (문학 에세이)들 중에서 특별한 소재로 중심을 잡고 있는 것도 큰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Written by. 리니

한국 에세이/ 문학, 독서 에세이/ 야생화, 꽃

서평단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그날 마음 사람들과 아버지는, 용내천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커다란 용수버드나무를 발견했다. 금방 잘린 듯한 나무 밑동 곁에는, 손잡이에 핏물이 밴 낡은 톱 한 자루가 버려져 있었다. 그날을 회상할 때마다 어머니는 깊이 파인 손바닥의 상처를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가 용수버드나무를 이용해 용내천을 건너 읍내로 내달릴때 아이는 소생했다. 미친 듯 달린 어머니의 몸이 아이의 횡격막을 자극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진창에 주저앉아 이년아, 이년아, 하고 울었다. 간수를 얻기 위해 어둠과 습기를 빨아들인 소금가마니처럼, 어머니는 어둠과 습기를 기꺼이 받아들여 자식들을 사랑으로 지켜온 것이다. (78p, 구효서 <소금가마니>)

<옛 우물>도 하나하나 따지며 의미를 부여하거나 페미니즘을 의식할 필요 없이, 그냥 중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좋은 소설로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주인공이 나무를 껴안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 등도, `그`의 죽음의 충격으로 생긴, 다소 일탈적인 행동 중 하나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결혼을 해본 남자라면, 여자를 사귀어 본 사람이라면 여자들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에 빠져 다소 엉뚱한 일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107p, 오정희 <옛 우물>)

먼저 그녀의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목덜미에서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주와 빨강의 반쯤 열린 꽃봉오리들이 어깨와 등으로 흐드러지고, 가느다란 줄기들은 옆구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른쪽 엉덩이의 둔덕에 이르러 자줏빛 꽃은 만개해, 샛노란 암술을 도톰하게 내밀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왼쪽 엉덩이는 여백으로 남겼다. (중략) 그는 이번에는 노랑과 흰빛으로 그녀의 쇄골부터 가슴까지 커다란 꽃송이를 그렸다. 등 쪽이 밤의 꽃들이었다면, 가슴 쪽은 찬란한 한낮의 꽃들이었다. 주황색 원추리는 오목한 배에 피어났고, 허벅지로는 크고 작은 황금빛 꽃잎들이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292p, 한강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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