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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
박범신 지음, 박아름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 - 박범신>2012-15

- 딸의 그림과 함께한 따스한 한터산방, 그리고 인생이야기

 

 

 

 

 93년에 박범신 작가는 절필을 선언했다. 인기작가로 활약하던 그의 절필은 '돌연'이라는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갑작스러운 선택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용인에 있는 '한터산방'이란 곳에서 10년을 살았다. 그 삶을 자신의 딸인 '박아름'님의 그림과 함께 담은 책이 바로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다. 지금 내가 사는 지역도 용인, 용인 끝이나 다름없는 분당과 용인사이의 죽전이지만, 무심코 이 책을 서점에서 골랐을 때 '따뜻한 용인 이야기'라고 쓰여진 소제목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러고보니 작가는 내가 태어난곳인 안양에서도 거주했었던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나와 어떤 한 큰 공간을 같이 쓰고 있었구나, 어쩌면 마주쳤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건방진 상상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집에 쌓아둔 그의 책 몇권을 아직 읽지 못했다. '하나씩 하나씩 읽다보면 더 새로운 사실로 가까워질 수 있겠지.'

 

"'사랑'으로서의 그리운 '저기'와 '욕망'으로서의 분열하는 '여기'사이에 내가 있고, 내 삶이 있고, 내 문학이 있다고 믿는다. 허깨비 같은 욕망을 조금씩이나마 털어내며 그 자리에서 나의 아이들, 나의 이웃들, 나의 감자, 고추, 상추, 오이, 토마토, 쑥갓들과 함께 살고, 또 그 자리에서 벌레일망정 생명 있는 것들과 더불어 노는 그 길로 가자는게 나의 꿈이고 그리움이다. -33p"

박범신 작가뿐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산문집을 읽으면, 기억하고자 하는 말들이 많아 책 속의 포스트잇이 조잡하게도 붙여지게 된다. 그래서 리뷰도 내 생각보다는 책 내용이 많게 되는 건 사실. 그러나 내가 처음 독서에 매력을 붙이게 되었을 때, 생각을 자유스럽게 뽑아낸 작가들의 에세이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책들을 읽었었다. 뭐 지금도 나의 소설에 대한 재미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에세이나 산문집, 그리고 시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단 조금 커진 것 같다 .  

 

 

 

"홀로 있기 위하여 나는 이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아내는 흔쾌히 그곳으로 가 혼자 있으라고 한다. 홀로 있으면서, 홀로 죽어 더 참되게 썩어 없어지기를 나는 꿈꾼다. 내 앞으로의 인생과 문학을 보다 풍요롭게 구원하려면 지금 죽으라고, 내 안의 킬러가 내게 속삭이고 있다. 아내는 나를 떠나보내기 싫지만 나를 사랑하므로 참고, 나는 작가로서 보다 단호히 죽어 마침내 깊고 향기로워질 날을 감히 꿈꾸면서 이 곳에 와 있다. 성취에의 속된 욕망들이 다 스러진 것은 아니다. 그리움은 끝이 없다. -166p"

"결과를 쓰고 원인을 쓰고, 원인을 쓰고 또 결과를 쓴다. 완전한 자유를 꿈꾸면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가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작가는 일종의 통제관이다.  … 온갖 톱니바퀴가 그의 관리에 의해 돌아간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작가는 그 자신이 만든 톱니에 말려들어가 살이 찢기고 눈알이 빠져나온다. -152p"

 

작가의 고민을 약간은 가볍게 쓰기도 하는 '슬럼프'란 단어로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 작가는 일종의 통제관이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작가로써 쓰면서도 그 속에 들어가서는 안 될 치밀함. 그 치밀함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할까? 우리가 작가의 노력의 산물인 책을 읽고, 느끼고, 기억을 남기기 위해 적는 글들이 그 작가의 노력만큼의 무게를 담을 수 있을까? 어깨가 무거워지는 글이었다.

 

 

 

 

"우리가 '신의 창'으로 들어가려 하면 인간 세계의 창이 우리 앞에서 닫히고 만다. 삶의 관성을 좇지 않으면 낙오될 뿐이라는 소문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 '낙오되면 죽는다'라고 자본주의의 잔인한 고문기술자 '경쟁'은 밤낮없이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그러니 불같은 질주의 관성에 삶을 내맡길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본성의 여유로운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게 너무도 자명하다. 머물 겨를도 없으니 어떻게 되돌아갈 겨를이 있겠는가. 우리는 공학적으로 설계된 로봇처럼 앞으로 달려갈 뿐이다. -96p"

요즘 사회는 경쟁의 연속이다. 삶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경쟁으로 가득차있는것만 같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뛰어들고는 싶지 않다. 그러나 낙오자가 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등떠밀려 무리 사이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자신의 꿈을 찾고 이루는 것에도 경쟁이 필요하다니, 슬프지만 이런 한탄도 느림보의 변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샹그리라. 작가가 이 단어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는, 다른 작품에서 얼마나 '샹그리라'라는 단어가 언급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촐라체>, <나마스테>,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내가 읽은 것은 가장 마지막에 언급한 작품밖에는 없다.

그는 최근 힐링캠프에 나와서 네 번에 자살시도를 했다며 지금은 신비스러운 삶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한터산방에서 무엇을 경험하였고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글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속의 샹그리라로 들어가기 위한 문턱을 조금이나마 넘어온 것만 같다. 그의 샹그리라가 무엇인지는 짐작킨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문학이 싸움보다 사랑인 줄 알았고, 삶이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감히 날이 갈수록 보다 더 향기로워지는 인간의 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바 오늘 이곳을 떠나기에 앞서, 밤새 뜰에 모닥불 피워놓고 젊은 그들과 술잔 돌리면서 마지막 밤을 지새울 때, 옳거니, 뒤란의 뽕나무 그늘에 은신한 할아버지는 여전히 빛과 어둠의 물레를 돌리고 오래전 제 몸주를 떠났을 수많은 별빛들이 산지사방 쏟아져 나와 젊은 그들과 세상을 흠뻑 적시고 만다. … 젊은 내 친구들과 강강술래로 손에 손잡고 모닥불 싸고돌며 감히 통 크게 혼잣말로 소리쳐보는 말은 '영원'이다. 이곳에서 나는 '영원'을 보았으니까. "

 

 

삶은 언제나 언덕의 연속이지만, 당장 앞에 놓여진 언덕에 가려진 것들은 벌써 걱정부터 하기는 이르다.

현재 앞에 놓여진 언덕 하나. 그 하나만 보고서 올라보자. 다음 언덕은 나중일이니. - by. 리니

 

 

p.s 책 속에서의 박아름님의 그림 역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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