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건 흔들리기 때문이야
김제동.김창완.조수미.이현세.최재천 외 41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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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건 흔들리기 때문이야』 / 샘

 십대들에게 보내는 어른들의 작은 쪽지함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에게도 문득 위기에 봉착하는 때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생활, 입시 관문, 보이지 않는 미래 등 다양한 고민에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마다 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래서 깊은 동질감으로 엮여 있는 친구들과 고민을 나눈다. 일단은 불안한 마음은 털어낸 것만 같다. 하지만 꽉 막힌 통로를 뚫어주는 시원한 해결책이란 우리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공감은 오지만 해답은 오지 않는다. 나도, 참 그 해답이랄 것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인생 선배'의 글이라 할 것들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내가 꿈꾸는 것과 비슷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뜨기 위해서 참 많이도 고민하고 떠돌았다.

 지금의 세대가 유독 더 어려워졌다고 확실하게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수없이 많은 과제에 허덕이는 십대들이 ​보이지만,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고, 사회 자체의 문제들도 파다했고, 그 수많은 과제에 도전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힘든 것들은 여전하다. 특히나 세상에 나가길 준비하는 십대들이 가장 힘들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한눈에 봐야 하니까. 『십대들의 쪽지』가 30년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30년, 그 긴 시간 동안 십대들에게 무료로 배포해서, 고민을 해결해주고 진심이 담긴 글을 전달해 주었던 자그만 소책자. 후원금도 없었고 광고도 없었고, 사재를 털어가며 십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김형모 발행인의 마음은 길이길이 이어져,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별이 빛나는 건 흔들리기 때문이야』로 재구성되었다.

​ 개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비슷한 느낌의 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별이 빛나는 건 흔들리기 때문이야』도 제목만 봤을 때는 비슷한 종류로 보였다. 근거 없는 거부감이었고 삐딱해진 시선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힘들었을 때,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이상을 지나 과거로 돌아가 이 책을 봤다면, 나도 책장 하나하나를 가슴에 담아 눈물을 뚝뚝 흘렸을지도.

 어찌 됐든 일종의 거부감과 함께 시작된 독서는 생각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성인인데, 조금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하는 말에, 나보다 더 세찬 바람 속에서 기둥을 굳건히 한 사람들의 말에 점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위로의 말보다는 '채찍'의 말을 더욱 되새겼다. "좌절을 자기를 괴롭히는 구실로 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이근후 님의 한 줄, "꿈이 무엇이든지 간에 겸손을 배워야 한다"『십 대들의 쪽지』 창립자 김형모 님의 한 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위로의 에세이에서 자그만 한 줄을 쌓아갔다.

 

​ 지금 흔들리고 있는 십대들에게 - 아직은 자신의 꿈을 뚜렷하게 만들어내지 못한 내 동생을 포함하여 - 이 책을 보여준다면, 내가 얻은 작은 한 줄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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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고 싶은 충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꿈이 너무 허황되고 실현성이 없는 것이라면 실제 수준으로 조정해 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룰 수 있는 꿈이라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두 번째는 좌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직면하는 용기를 가집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 원인을 나에게서 먼저 찾아 봅시다. 내가 나를 진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힘입니다. 그런 힘을 가진다면 어떤 실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원인을 찾았다면 과감히 행동을 수정하는 저력을 보입시다. 알았다면 다시는 그러한 좌절을 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달은 바를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좌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좌절을 자기를 괴롭히는 구실로 삼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28p, 좌절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 이근후)

나는 학생들에게 늘 "젊은 시절의 방황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혹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마십시오.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매 순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악착같이 찾는 아름다운 방황을 하기 바랍니다. `방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름답게 방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방황의 끝에 드디어 꿈의 끈을 잡으면 그걸 꽉 쥐고 그냥 앞만 보고 달리십시오. (92p, 아름다운 방황을 하라 - 최재천)

각자 나름의 길이 있습니다. 독일 말에 베루펜(Berufen)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직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속뜻을 들여다보면 좀 더 철학적입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 이것이 본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하면서 보람과 희망, 기쁨을 얻으며 그것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는 뒤로하고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과 명예만을 좇느라 머리 싸매고 귀한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입니다. 내 길이 아닌데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가기 위해 정진합니다. (151p,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그 길이 바로 블루오션 - 홍성훈)

십대는 꿈이 무엇이든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이 먼저 필요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십대는 꿈만 가지고 그것이 오늘 나의 현실인 양 착각 속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겸손이 꼭 필요합니다. 두번째 훈련은 자기 통제입니다. 꿈을 이루고도 싶고, 동시에 놀고도 싶고, TV를 보고도 싶고, 먹고도 싶고, 자고도 싶고, 운동도 하고 음악도 듣고 춤도 추고 싶어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것이 십대입니다. 오늘 내 마음과 몸이 원하는 것을 먼저 충족시킨 후에 꿈을 이루겠다면 성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나의 감정과 몸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154p,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까 - 김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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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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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 민서출판

 그녀를 끈질기게 사로잡은 존재에의 갈망은, 그리움은...

 

 

 

 50년대, 그리고 60년대,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던 청춘들의 우상이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전혜린'이 있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학에 입학하고 자신이 갈망했던 문학을 찾아 독일 유학을 했고, 독일의 문학을 우리에게 멋진 문장으로 넘겨주었던 능력자였다. 그 당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엘리트 코스'를 거친 지성인이었고, 서른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불꽃처럼' 살다 갔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나는 그녀를 『압록강이 흐른다』의 번역가로 처음 알았고, 독문학을 공부한 덕에 가끔씩 그녀의 이름을 듣곤 했다. 천재라고 불리는 그녀의 글이 궁금했고, 넘쳤던 그의 자의식을 알고 싶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을 참 일찍도 데려간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죽은 그녀에 대한 평가는 '친일파의 후손', '짧은 삶으로 인해 과대평가된 천재라는 호칭' 등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그녀를 만나볼 길은 2권 남짓의 유고집 밖에는 없다. 전혜린의 글은 삶의 광기와 그녀의 의지가 어려있다고는 하나, 생각보다는 따뜻한 글들도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글은 역시 평범하지만은 않다.

 

  춥고 어두운 날씨에 처음 발을 디딘 그날, 막막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처럼 갔던 그곳의 처음은 설레지만 슬펐으리라. 일기 같은 그녀의 글들이, 뮌헨의 도시 '슈바빙'에 탐닉하고 괴로운 추억을 상기하고, 자신과 달리 자유로운 독일 사람들을 보는 그녀의 시선은 안으로, 그녀의 중심으로 파고들었으리라. 삶과 사랑, 어딘지 모르게 마음속 깊게 자리 잡은 그리움을 그녀는 불확실한 삶의 길 속에서 끝없이 묻고 물었던 것 같다. 글의 깊이로는 상상하지 못한 어린 나이의 청춘에, 남들보다 더욱 깊고 깊은 공상으로 갈증을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속에는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기 위해 어떤 고심을 했는지, 삶을 끊고자 했던 욕망과 고독도 어찌나 깊었는지 어느 정도 직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녀의 죽음에 온갖 썰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왠지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삶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아서, 생에 오히려 집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헤세의 수채화를 좋아했다는 그녀의 글이, 하나밖에 없던 그녀의 딸에 대한 모성과 희열이 너무나 깊게 느껴져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에 줄곧 등장하는 '그리움'이란 단어가, 독일어로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자 헤세가 무척이나 많이 사용했던 이 단어가 책 속을 한참을 머무르게 한다. 누구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을 법한 그녀의 풍족한 삶에서, 그녀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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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를 들이마시면서 나는 새파란 하늘을 그리워했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꿈에 그렸다. 사실로 내가 그리워한 것은 황색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감상이나 미학적인 어떤 음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색이 있는 민족의 환영, 그들의 비극이 내 속에 담겨져 있고 그들의 대표자로 내가 여기에서 간주되고 있는 그러한 절실한 비전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였다고 해도 좋다. 강의실 내에 교수의 방언과 노령에 의한 발음의 불명료 그리고 생활 필수품점 속에 진열되어 있는 셀로판지에 담긴 이탈리아 쌀 그 어디서나 비전은 나를 따랐다. (22p)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는 그런 결심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논리의 수미가 일관된 생을 우리는 희구한다. 그러나 생의 테제와 안티 테제는 논리에서처럼 당연한 일의적 단계를 밟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생은 너무나 혼돈적이고 어두운 밤의 측면과 꿈과 동경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처럼 맑게,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 약함, 그리움, 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 (31p)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마의 싯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으로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 (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144p)


가장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에는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나마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옭아맨 거미줄을 통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면...... 물론 셰익스피어는 그런 스토리를 쓸 만큼 바보는 아니었고, 그 자신의 결혼 생활도 그러기에는 너무나 불행했고 리얼리스틱했었다.

아는 것은 아담 이래의 비극이고 데카르트 이래의 불행 의식이다. 우리는 낙원서처럼 단 둘만의 행복을 쫓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현명한 애인도 시간이라는 숙적을 물리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 밑에 내던져져 있는 인간의 상황이 인간의 비극의 요소를 이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212p)


방법

격정적으로 사는 것 -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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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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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김탁환 / 다산책방

읽었었고, 읽고 있고, 역시나 읽어가겠죠

 

 

  '읽어가겠다'라는 제목이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고,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으면서도, '읽어가겠다'하는 미래적 포부를 강조하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마치 과거에 책과 함께 했고, 지금도 책을 읽고 있으며, 언제까지나 좋은 책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특이하고도 공감이 팍팍 가는 이 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혹은 너무나 많이) 만나봤을 법한 책 에세이입니다. 이런 책들을 읽는 데에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고 있지요. 먼저, 장점은 제목만 들어봤거나 관심도 안 가던 책에 갑자기 확-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고, 단점은 책 위시리스트가 늘어나 지갑이 온통 털리는 것이지요!

 

  특히나 작가가 읽는 책이라면, 작가의 젊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책이라면, 더욱더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는 누구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김탁환 작가에게도 이런 책들이 역시 있었겠죠. "세월과 함께 몇 개의 장면과 몇 토막의 문장만 남았지요. (...) 이토록 멋진 소설을 왜 까맣게 잊었던 걸까?"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이 갑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너무나 한정적이어서, 너무나 멋진 책을 읽어도,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겨도 전체적으로보다는 부분적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게 되잖아요.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토록 멋진 소설을 왜 까맣게 잊었던 걸까?"라는 말에, 오래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읽어가겠다』를 읽다 보면 마치 라디오를 듣는 듯한 다정한 말투가 눈에 띄는데, 역시나 이 책은 김탁환 작가가 《책하고 놀자》라는 라디오 코너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을 골라 엮어놓은 책이었습니다. 150권이 넘는 책들 중에서 작가의 사심으로 뽑은 책들이기에, 어떤 책들이 걸렸을까 참으로 궁금해졌는데요. 역시나 세계문학 고전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제가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헤르만 헤세의 책 『크눌프』가 처음으로 등장해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고, 너무나 유명한『자기 앞의 생』을 다른 식으로 읽어낼 수 있음에 놀랐고, 간단하게 설명한『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소설에 완전히 압도되어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고, 아직 읽지 않았지만 제목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 책장에 고이 꽂아둔 『아름다운 애너벨 리 ...』가 나와서 조만간 꼭 읽어보리라는 작은 다짐을 했답니다.

 

 

 이미 넘쳐나는 책 위시리스트에 또 한 번 넘치게 담아버렸지만, 작가가 읽은 책들에서 받은 감동이 전해지고 그 감동이 새로운 책에 대한 큰 기대로 바뀌니, 이런 책 에세이는 보고 또 봐도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책 설명, 느낌으로 구성되는 공통적인 형식이지만, 항상 좋은 책들을 채워주고 그보다 높은 가치를 선물해주니 계속해서 책 에세이를 읽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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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습니다. 먼저 그는 계속 비행 이야기만 합니다. 『어린 왕자』든 『사람들의 땅』이든 『야간비행』이든 비행하는 이야기만 줄기차게 반복하는 것이죠. 언젠가 사석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불문학 전공자인 성균관대 정지용 교수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더군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차이를 계속 만들고자 하지만 비슷한 작품 세계를 반복하는데, 생텍쥐페리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이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작가다. 맞는 것 같은가요? 이런 경향 때문에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에서는 늘 비행기가 나오고 사막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이 나오고 별이 나오고 조종사가 나옵니다. (51p, 남방우편기)

아니 에르노는 학교에서 할 법한 것들을 어머니와 공모하여 즐겼으며 아버지는 이 즐김에서 제외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과 너무 다른 아버지, 자신과 닮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를 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니 에르노의 삶과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한 여자』에는 두 가지 시공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시공간, 또 하나는 죽은 어머니를 추억하며 작가가 보내는 시공간이겠지요. 작가가 일부러 알리지 않는 이상, 독자들은 그 작가가 출간 전에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104p, 한 여자)

수용소에선 가스실로 가는 죄수의 마지막 저녁엔 죽을 두 그릇 줍니다. 배 불리 먹고 죽으러 가란 뜻이겠죠. 그런데 배급하는 죄수가 한 그릇만 줬고, 치글러는 이것 때문에 심하게 싸웁니다. 그리고 끝내 두 그릇을 받아내지요. 그렇게 치글러를 비롯한 내일 죽을 죄수들이 마지막 죽을 먹는데 쿤이라는 늙은이는 자신의 서류가 오른쪽으로 던져진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내일 죽을 죄수 옆에서 어떻게 자신이 살아난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신에게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할 짓일까요.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168p, 이것이 인간인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칼 같은 소설입니다. 갈등을 계속 증폭시켜 어느 순간 폭발하는 소설이지요. 쿤데라의 소설은 김밥 같은 소설입니다. 끊임없이 인물과 사건을 둘둘 말지요. 말다보면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멸』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불멸』은 A로도 해석될 수 있고 B로도 해석될 수 있고 C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소설가들은 종종 방에 누워 빈둥거리면서 이런 구상을 하지만 정말 쓰는 건 어렵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마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적어도 이렇게 말려들어가는 이야기의 효과와 의미를 알아야 하니까요. (216p,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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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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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필립 클로델 / 샘터

 냄새로 추억과 순간을 회상하다

 

 

 

   누구에게나 후각으로 기억하는 장면들과 사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향기 (혹은 냄새)와 추억을 연결해 생각한다면, 아마도 각자 나름의 그림이 그려지겠지. 나는 엄마가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던 날에 현관 앞에까지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풍겨왔던 기억을, 무더운 여름에 먼지 풀풀 날리는 에어컨을 부모님이 청소하고 나서 전원을 켜면 바람이 나오는 그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바람 냄새를 맡았던 기억을, 캠핑을 자주 가던 아주 어렸을 때에 산속의 계곡에서 끓여먹던 라면 냄새와 물 냄새가 섞여 후각을 북돋았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회상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하고 별것 아닌 장면들이지만, 그 냄새와 이미지가 무척이나 강렬하여 절대로 잊히진 않을 것만 같다.

 

  영화감독이자 많은 소설을 펴낸 프랑스의 작가 '필립 클로델'이 새롭게 선보인 이번 책, 『향기 자신이 기억하는 향기와 추억의 이미지를 듬뿍 담아낸 공감각적 산문집이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고, 후각으로만 기억하는 추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는데, 자신이 선택한 '추억'과 '향기'의 키워드를 토대로 짧은 이야기들을 적어내고 있다. 조금 별난 점은, '향기'라고 언급했을 때의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깨뜨린다는 점이다. '향기'라고 한다면, 보통은 '특히 좋은 냄새'를 표방하고 있는데, 필립 클로델은 그러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절대 '향기'라고 부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물들과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사체, 집, 오토바이 엔진, 타르, 그리고 죽음까지, 다소 충격적이고 독특한 향연을 펼쳐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을 상기시키도록 '향기'가 도와주고 있고, 어디에나 있을법한 공간들도 향기를 통해 그 틀을 만든다. '영화감독'이란 특별한 직업이 주는 이점일까, 『향기』를 표현하는 필립 클로델의 글은 마치 영상을 보는 듯 풍부하고 묘사적이다. 사용한 어휘들이나 구체적으로 표현해낸 사물들도 어찌나 다양한지. 향기로 기억하는 순간들을 이렇듯 멋지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작가의 특성인지,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한 서술 때문인지, 조금은 간단하고 건조하게 표현되는 글들에 특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소재들을 통하여 세상의 공기에 섞이고 있는 '향기'​들을 상상하면서 읽다가도, 그만의 넘치는 감성을 뒤따를 수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다채로운 '향기'에 관한 이야기는 또한, 독자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는 특별한 '향기'들을 펼쳐놓게 만든다. "내가 좋아했던 향기는 뭐였지", "그때 풍겨 나오던 향기는 어떤 향기였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추억을 상기시키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이 책은 작가에게도 무척 의미가 깊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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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푸른 풀, 적갈색 대지, 노래하는 무수한 것들.

그리고 갑자기 죽음에 부딪힌다. 머리 아픈 죽음. 달콤한 죽음. 동물의 죽음. 끔찍한 죽음.

끔찍함, 아마도 실상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실패한 죽음이랄까. 잘못 저어 냄비 바닥에 고기 한 점이 가라앉아 익힌 스튜 요리 같다. 종종 냄새로만 그친다. 짐승의 사체는 찾을 수가 없다. 냄새가 나는 건 환영일까, 아니면 우리의 두려움일까? (62p, 사체)

내가 들이마시는 것은 깨끗이 빤 천 냄새만이 아니다. 야생적이고 광대한, 대지와 바람의 지형도, 내가 읽고 보았던 이야기와 우화와 노래와 이미지의 무한한 연장의 냄새, 지붕 아래, 할머니들과 이모할머니들이 옛날에 참을성 있는 바느질로 꽃과 곡선과 아라베스크로 장식했던새 시트가 팽팽히 당겨져 씌워진 이 침대, 잠의 첫걸음 속에서 안심하고 쉬는 천상의 여행자. 적어도 한순간은 보호받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냄새다. (100p, 새 시트)

일용잡화점은 일종의 잔재다. 잡화상은 그 시대의 생존자다. 그곳은 특히 피부, 나무, 철, 가죽, 놋쇠, 타일, 유리창 같이 더러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씻어낼 도구 혹은 수도 배관, 하수구, 화장실같이 막힐 수 있는 모든 것을 뚫을 도구를 찾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소다. 분말, 페인트, 용매, 용제, 연마제, 비누나 액체 비누, 독극물, 비료, 제초제, 고엽제, 쥐약, 질산염, 황산염, 염소산염, 가성소다, 생석회, 니스, 유약, 타르, 유향등 여기 있는 건 그 무엇도 먹을 수 없다. 게임을 뜨고자 하는 절망한 노름꾼들을 제외하고는. (103p, 잡화점)

현재의 우리 또는 과거의 우리에 대해, 깊이 잠든 어린아이의 살냄새만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침대 속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두려움도 공포도 전율도 없이 쉬고 있는 어린아이는 우리가 늘 가까이 붙어 어둠을 쫓고, 흩뜨리고 필요하다면 그 어둠을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8p, 잠든 아이)

글자 하나가 하나의 냄새를, 동사 하나가 하나의 향기를 품고 있다. 단어 하나가 기억 속에 어떤 장소와 그곳의 향기를 퍼뜨린다. 그리고 알파벳과 추억이 우연히 결합하여 조금씩 직조되는 텍스트는, 꿈꾸는 삶과 지나온 삶과 다가올 삼으로 우리를 차례로 안내하는 경이로운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향기를 뿜으며. (271p,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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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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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리칭즈 / 아달로그 (글담)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여행에 '속도'를 붙인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한다. 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기분과 경험을 만날 수 있다면, 아마도 난 그런 경험을 하나씩은 해본 것 같다.『여행의 속도』에서도 열거된 고속철도 여행, 도보 여행, 도로 위의 자동차 여행, 여객선 여행 ... 어떤 것이 더 좋았냐 물어본다면 역시나 각기 다른 장점이 있다 하겠다. 기차여행은 창밖에 펼쳐지는 빠른 풍경과 왠지 모를 낭만이 있고, 도보 여행은 약간 힘들지 몰라도 목적지에서의 기쁨은 더욱 배가 되고 '히치하이킹'이라는 예외적인 스릴이 있다. 직접 운전해서 하는 여행은 자유로움과 시원함이 있다.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눌 수는 없다. 모두 '여행'이란 말이 붙기 때문일까.

  속도가 여행의 재미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속도의 여행은 어찌 됐든 풍부한 경험과 추억을 제공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진다."라는 멋진 말로 시작하는『여행의 속도』는 이처럼 다양한 속도의 여행으로 만난 작가의 인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여행보다는 다양한 건축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목차와 제목, 뒤 페이지의 소개까지 속도에 따른 여행 에세이 느낌을 확 풍기고 있는데, 내용은 세계의 멋진 건축물을 바라보는 건축학자의 시선이 대부분인 듯하다. 여행 장소와 코스는 여행자의 성향에 완벽하게 따르니, 그의 인생이 담긴 이 책에도 화려하고 독특한 건축물의 향연이다. 책 속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특히 저 사진 속에 있는 곳들은 정말 가보고 싶다.)

 

  예상 밖의 가장 좋았던 부분은 '죽음과 욕망의 안식'이라는 시속 0km의 묘지 여행이다. 죽음이 모여있는 묘지 여행을 시속 0km라고 표현하다니 정말 멋지다! 이 묘지 여행을 끝으로『여행의 속도』는 막을 내린다. 시속 350km에 육박하는 뜨거운 고속 열차에서 기차, 자동차, 배를 거쳐 죽음이 있는 묘지 여행까지 점점 느려지는 속도로 늘어놓은 구성은 인생과 여행이 맞닿아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 이렇게 완벽한 구성과 멋진 제목인데도 불구하고 책 속에는 여행보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여행과 건축, 물론 매력적이지만, 인생과 여행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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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덧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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