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임팩트 맨 -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콜린 베번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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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에 한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데 정말 쓰레기가 많다.

쓰레기가 없으면 버릴 일도 없을텐데, 모으는 일도 귀찮고 버리는 일도 아주 귀찮다.

상품에 포장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뉴욕 한 복판에서 아내와 딸 하나와 함께 사는 가장이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1년동안

생활한 이야기다.

 

이 책은 그만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야한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저자는 티비를 꺼야 소비를 잠재울 수 있을거라 했으나

내 경우에는 블로그를 끊어야 하겠다. 소비의 원흉이다.

   

우리가 버린 비닐봉지로 장수거북이 질식해 죽은 이야기,

원자력은 싫지만 그것으로 전기를 펑펑 쓸 수 있는 불편한 진실,

.

.

 

깡통 안에 녹이 슬지 않게 바르는 비스페놀 에이가 우리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면서도 먹고 모르고도 먹는다.

 

이 책은 '5분도 안 쓴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지금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 생각없이 살면 안되는 이유가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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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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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늦게 읽을수록 손해다.

 

정치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부터 정치가 주관심사인 사람까지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나꼼수를 제대로 청취할 수 없어서 책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동작이 너무 느렸다.

 

읽고나서 주위사람들에게 사심없이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계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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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월이다. 게으르게 살아서 몸도 비명을 지르나보다.

그래도 난 힘들었는데, 그간의 생활이 잘못되었다고 호되게 꾸증을 들은 기분이다.

그 덕에 난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아침마당도 보고, 9시전에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설 전주부터 희안하게도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주위사람들은 둘째어쩌고 하지만,,, 계획에 없던 일일뿐.

 

울렁거리고 미슥거리고 음식이 들어가건 공복이건 계속 그랬다.

이참에 위내시경을 한번 받아볼까 했는데, 5일치 4일치 4일치 중 하루분을 먹고나서는 예전으로

돌아간 듯 편안하다.

 

규칙적인 식사가 문제였다. 주말에도 두끼 먹기 십상이었고.

일찍 일어나 제 시간에 먹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번에 깨달았다.

  

명절을 쇠고 집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기름진 것, 육류, 커피 등등을 끊고 소화잘되는 음식들을 먹었다. 일주일동안은 좋았는데 이제 맛있는 게 먹고 싶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어서 좋다. 육아의 시간도 길어지는 셈인가.

애가 일찍 자니 비슷할꺼다. 진작 바꿀껄..ㅎㅎ

 

올해는 좀더 부지런해져서 계획한 바를 이루고 연말에 파티할 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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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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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1년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 봄인가 싶었는데 여름이다. 아이가 크는 것을 보며 세월을 느낀다. 아이는 성장하고 어른은 성숙해야 하거늘, 제대로 성숙하고 있는지 늘 점검하며 살아야겠다.

 

첫 작품으로 실려 있는 클로드 모네의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을 보니, 몇 해 전 동생이 유럽여행 중 찍은 풍경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동생은 바로 에트르타 절벽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던 거다. 2세기가 지났지만 이곳은 아직도 여행자들에게 카메라에 꼭 담고 싶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나보다. 

 

저자에 따르면 명화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그림'이라고 한다. 곧 가치란 사물의 중요성을 판단하게 하는 주관적인 믿음 체계라 볼 수 있고, 그림은 경험의 감각을 바꾸어서 이런 믿음 체계를 뒤집는 역할을 하며 이것이 바로 그림이 그냥 그림 한 점으로 끝날 수 없는 까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옛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물을 닮은 이미지라기보다, 그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낯선 가치 체계'라는 것이다. 인상파는 근대의 초입에서 자본주의 산업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려고 했던 화가들이었다. 인상파가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모네, 자연을 그렸다기보다 시선을 그리다

 

모네는 인상파 화가 중 가장 오래 살아 인상파의 성공을 목격한 행운아였다. 모네와 아내 카미유는 화가와 모델로 만나 동거에 들어가 아이까지 낳았다. 당시 부모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모네는 이로 인해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파리를 떠나 시골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보불전쟁까지 일어나 친구이자 후원자이기도 했던 바지유가 전사해 모네는 더 궁핍해지고 만다.

 

마네가 모리조를 열성적으로 그린 것처럼 모네도 카미유를 열심히 화폭에 담았다. 가난했지만 카미유와 함께여서 모네는 행복했을 터, 카미유는 32세의 나이에 골반에 생긴 종양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내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카미유의 임종>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그 잔상이 꽤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게 한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여유'는 화두였고, 야외 풍경을 주로 그렸던 '모네는 자연을 그렸다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렸다'고 한다.

 

여성혐오주의자 드가

 

모든 여인에게 친절했던 마네의 극단에 드가가 있다. 드가의 여성혐오는 단순한 개인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믿을 수 없지만 19세기까지도 해도 유럽에서 여성은 고상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존재였다고.

 

드가의 불행한 가족사가 여성혐오를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드가의 어머니는 남편의 남동생과 내연의 관계였으나 드가의 아버지는 아내를 너무 사랑하기에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 드가의 어머니는 32세에 요절하고 그 여파로 드가의 아버지는 폐인으로 전락해버린다. 그 때 드가는 겨우 열세 살이었다고.

 

작품에서 여가수를 개에 비유했던 여성혐오주의자 드가는 의아하게도 메리 커샛이라는 미국출신 여성화가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둘은 생김새가 닮기도 했거니와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조언자였다. 커샛에 대한 드가의 마음은 우정보다 농도가 짙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기에 그의 말년 작품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라고 저자는 말했다. 외로움이 없다면 명화도 탄생할 수 없다는 의미일 터.   

 

다른 인상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드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에도 쉴 새 없이 구상하는 그림에 대한 메모를 남겼다. 그는 색채에 대한 생각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드가는 즉흥성이나 감정의 분출 같은 것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에게 모든 그림은 과학적 관찰의 결과였고 인식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드가는 쓸데없이 모여서 예술에 대해 헛소리나 늘어놓고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해대는 사교모임을 경멸했다. 그에게 예술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었지, 어떤 천재적 영감의 표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87쪽

 

드가의 작품에 유독 발레리나가 많이 등장해 동경이나 흠모하는 마음으로 그렸을 법했는데, 실상은 정 반대였다니 놀라웠다. '19세기에 발레리나는 지금처럼 우아한 직업이었다기보다 '쇼걸'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드가의 <발레수업>은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림을 좀 안다는 관객에게는 파격적인 시선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인상파 여성화가 커샛과 모리조

 

메리 커샛은 미국인이지만 미술 공부를 위해 프랑스에 와서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커샛의 모습은 모리조처럼 모델을 할 정도 수준은 아니었지만 드가와 금방 친해졌다. 커샛은 드가 평생 유일하게 가깝게 지낸 여성이었다. 커샛은 주로 여성모델을 많이 그렸는데, 아이와 함께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모리조와는 달리 훨씬 부드러운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모리조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배웠고, 후일 피사로에게 영향을 미쳤던 코로의 지도를 받으며 화가로 입문했다. 마네를 만날 때 그녀는 이미 살롱에 풍경화를 출품한 어엿한 화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리조는 화가이기에 앞서 당대에 뭇 남성들의 시선을 붙잡는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평소에 검은 옷을 즐겨 입었던 모리조는 파리의 사교계를 사로잡는 팜므파탈이었는데, 마네가 그린 <발코니>에서 이런 모리조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고 있다. - 92쪽

 

모리조는 평소에도 검은색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고 하는데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모리조는 평범한 여성은 아니었으리라 추측된다. 당시 검은색은 보헤미안의 색채이자, 프랑스혁명 당시의 무정부주의를 연상시켰다고 한다.

 

19세기 파리에서는 화가가 피디나 영화감독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데, 화가가 피디나 감독이라면, 모델은 연예인 정도 되는 셈이다. 모델은 가난한 화가들에게 걸리는 날이면 차가운 스튜디오에서 오들오들 떨며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잦아 화가들은 모델로 가족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족을 고생시키고 싶은 화가는 없을 테니.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는 이 외에도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 카유보트 등 많은 인상파화가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세기 파리, 인생파 화가들의 행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갈증을 해소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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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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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에게도 그렇게 젊은 날이 있었던가. 사진 속 작가는 참 앳된 모습의 새색시였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그 새색시의 모습이 떠올라 소설읽기가 참 즐거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동명의 단편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에 살을 붙여 장편을 만들었다니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한국전쟁 전후가 배경인 소설이 재미있기란 참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랑'이 있어 주인공들은 그 시대를 살아낼 수 있었을 게다. 
 

주인공은 대학에 다니다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부대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너나없이 가난한 시절, 남자들은 모두 징집되고 밥벌이에 나서야 할 사람은 부녀자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미군부대에 나가는 딸이 탐탁지 않으면서도 입에 풀칠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만일 그 남자를 못 만났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넘겼을까. 그 살벌했던 날, 포성이 지척에서 들리는 최전방 도시, 시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도시, 버림받은 사람만이 지키던 헐벗은 도시를 그 남자는 풍선에 띄우듯이 가볍고 어질어질하게 들어올렸다. 황홀한 현기증이었다. … 그 남자하고 함께 다닌 곳 치고 아름답지 않은 데가 있었던가. 만일 그 시절에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뭐가 되었을까. 청춘이 생략된 인생, 그건 생각만 해도 그 무의미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감사하며 탐닉하고 있는 건 추억이지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다.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 그와 소원해진 사이에 느낀 휴식감도 절정감 못지않게 소중했다. 긴장 뒤엔 반드시 이완이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한번 통과한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전적인 몰두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 70~71쪽    

 

이웃에 먼 친척 벌 되는 동갑내기 그 남자가 이사를 오는데 둘은 곧 친해졌다. 마냥 동기간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여전히 가난한 시절에 입 하나라도 덜어주어야 했다. 주인공은 미군부대에 같이 근무했던 전민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휴전이 되고 나서 그는 은행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은행원은 최고의 신랑감이었고, 그 남자는 여전히 백수였다. 주인공에게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이 필요했다. 그런 집이어야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살 수가 있다. 그 남자네 집이나 주인공의 집은 말하자면 '사방이 비 새고 금 가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던 거다.

 

그 남자는 주인공이 내민 청첩장을 보고 눈물을 떨구었다. 오래 붙어 다녔지만 손 한 번 잡아보지 않은 사이로 그 남자는 그저 '오늘은 왼종일 울고 싶을 뿐이라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남겼다. 주인공도 돌아앉아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렇게 한 결혼이건만 결혼생활은 지루했다. 늘 뭘 해먹일 것인가 궁리만 하는 시어머니 아래 며느리는 하루 한 번 장을 보러 동대문시장에 가는 것으로 숨통을 트곤 했다.

 

변화를 꿈꿀 수 없는 안정감이야말로 나에게는 족쇄였다. 남편을 갈구고 따져서 어떡하든지 허점을 찾아내고 싶은 욕망은 족쇄를 느슨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모색인지도 몰랐다. 이 집에서 내가 기대하는 대로 돼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의 꿈을 무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게 도처에 숨겨져 있었다. -162쪽

 

다시 그 남자를 만나게 되자, 지루하던 일상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시어머니일로 티격태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가 다락같이 높여 놓은 아들의 입맛에 아부하기 위해 솜씨를 있는 대로 부린 송이산적의 맛보다 그 남자하고 같이 시장바닥 진창에 쭈그리고 앉아 사먹는 돼지껍데기에 더 깊은 맛을 느끼고', 악취는 풍기는 청계천변 길이 영화로 본 세느 강변로보다 더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면 좋은가.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 무엇을 입고 나갈까, 첫사랑이 긴 치마를 허리띠로 동여매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면 그 남자가 얼마나 실망할까. 나 또한 그 남자가 첫사랑이거늘. 그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저것 좋은 나들이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춰보았다. 어떤 옷은 점잖아 보이고, 어떤 옷은 촌스러워 보이고, 간혹 요염해 보이는 옷도 있었다.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 - 169쪽

 

하루 시간을 내어 함께 교외로 나가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종일 기다린 주인공은 감기에 걸려 며칠 앓게 되고, 후에 그 남자가 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그 남자는 상이군인으로 제대해 더는 운동을 할 수 없어 휴학을 했고, 복학할 준비를 하는 듯했으나 몸이 아팠다. 뇌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어 제거하는 수술 중 실명하게 되었다. 첫사랑에 버림받고 실명까지 하다니 그 남자가 너무 가여워 눈물이 났다.

 

햇볕이 하루하루 도타워지고 있는 초봄이었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뚫고 봄의 화사함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완전한 암흑이란 어떤 것일까. 가장귀를 거의 남기지 않고 전지해 놓은 가로수는 가지 끝이 너무 뭉툭해서 움틀 것 같지 않은데도 빛은 그 끄트머리를 열심히 간질이고 있는 것까지 내 눈에는 보인다. 발밑 양회바닥의 균열에 고인 흙을 밀고 올라오는 초록빛 풀끝도.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보고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보긴 보아도 아무것도 못 느낄 것 같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의미는 또 어찌 견딜 것인가. -194쪽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반 이상은 추억의 무게' 때문이라고 한다. 신문에서 그 남자의 부고를 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주인공의 후임으로 취직한 춘희는 양공주로 전락하는데 미군부대 주위에 얼마나 많은 양공주가 살아야 했고, 월남에 일하러 갔던 사촌동생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세 명이나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게 된 것 등은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작가가 오래 숙성시켜 비로소 세상에 내놓은 사랑이야기는 구슬같이 빛나는 것이었다.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기도 했다.    

 

전후라 출구가 보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답답한 시절, 범속하고 따분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은 힘은 바로 문학이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 남자네 집>은 일과 사랑, 육아, 지루한 일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질식할 것은 현대인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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