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모든 시간을 초월하며 존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초월하며 계속 존재하리라. 처음 한주간 거리를 둘러싼 벽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것뿐이다. 명쾌했다. 얇은 얼음 위에 떨어진 우유처럼 명쾌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 세계에 완전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벽이다' 라고 문지기는 내게 말했다 '누구라도 이 벽을 넘는 일은 할수 없어. 누구도 이 벽을 무너뜨리는 일도 할수 없지.'

 

벽은 어찌보면 그저 오랜 벽돌담처럼 보였다. 다음에 큰비가 온다면 무너져 버릴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문지기는 불유쾌한 얼굴로 나를 벽으로 안내했다.

 

'잘봐 벽돌과 벽돌의 사이 틈이 없어.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모양도 각각 다르지'

 

정말 그러했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견고히 결합되어 있어'

 

말그대로 였다

 

'이 칼로 벽돌을 찔러 봐' 문지기는 주머니에서 큰칼을 꺼내어 내게 주었다. '흠집하나 나지않지'

 

그의 말대로 칼끝은 탁탁 소리를 낼 뿐이였고 벽돌은 이상이 없었다.

 

내가 칼을 돌려주자 그는 칼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알겠지? 벽은 완전해 바위도 지진도 대포도 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어'

 

그는 마치 기념사진의 포즈처럼 벽에 한쪽 팔을 기댄 채 나를 만족스럽게 보았다.

 

 

'누가 벽을 만들었지요?' 나는 끝으로 하나만 더 질문해봤다.

 

'누구도 만들지 않았어 벽은 시작부터 있었으니까'

 

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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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가 말하던 데로, 벽은 시작부터 존재했던 것같다. 하늘에 구름이 떠가고 비가

 

대지에 강물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지금에는 나도 그것을 믿을 수있다. 가을 황혼녁 망루에 올라보면 그것을 믿을 수 있었다. 벽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어떤 포인트, 다시말해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와의 사이에 인간이 받게되는 어떤 위험한 점을 멀리 떨쳐버린 것이였다. 이처럼 벽에 둘러쌓여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알수 있을까? 나는 모든 순간 벽의 존재를 피부로 계속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압박감같은 것은 아니였고 마음좋다라고 조차 말할정도의 것이였다. 얇고 투명한 무엇인가가 부드럽게 나를 안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를 규정하고 동시에 나를 해방시키고 있었다. 이런 식의 말이 누군가를 납득시킬수 있다라고는 생각할수 없다. 그러나 그이외에 벽을 표현할 방법이없다. 벽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마치 축제의 대열처럼 거리를 안고 있었다.

 

 

'만약 이 세계에 완전한 것이 있다면' 이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모든 것은 가정(假定)이다. 가정조차도 벽이 안은채 응고되어 있었다.

 

마치 공원의 울타리를 따라서 늘어서 있는 작은 동물의 조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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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주간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네가 샘플이라고 선택해준 한 타스 정도의 오래된 꿈을 조사했다. 그러나 오래된 꿈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지않았다. 도서관의 서고에는 몇천개의 오래된 꿈이 누구 한 사람 손대보지 않은 채 끝없는 잠을 자고 있었다. 이것의 크기는 테니스공 크기의 것부터 축구공까지 색깔도 다양했다. 형태는 계란형이고 손에 놓고 자세히 보면 아래부분이 윗부분에 비해 부풀어있었다. 표면의 재질은 알수 없었지만 대리석같은 감촉이였다.

 

 

도서관에는 한권의 책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래된 꿈뿐이였다. 그리고 너의 일은 그런 오래된 꿈을 관리하고 관람자를 위해 커피를 끓이는 일이였다. 그러나 관람자는 나이외는 없었다........

 

 

나는 준비한 천조각으로 오래된 꿈에 묻은 두터운 먼지를 닦고 나서 표면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5분정도 오래된 꿈이 떠올랐고 나의 손은 기분좋은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오래된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소리는 너무 낮고 나는 그것을 들을수 없었다.

 

그들은 명확히 말하는 것에는 익숙하지않는듯 했다. 마치 오랜 동안 돌보지않고 있었던 노인처럼 갑작스런 햇쌀에 당혹해하고 말하지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기억은 불확실했고 그 발산하는 빛은 약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다시 잠속으로 떨어져 가버렸다.

 

 

나는 네가 앉아있던 카운터에, 잠들어 버린 오래된 꿈을 조용히 돌려주었다. 시각은 10시반, 그러저러 도서관이 마칠 시간이다.

 

 

'읽고 싶은 것을 읽으셨습니까?'

 

너는 미소지으며 내게 그렇게 물었다.

 

'고맙습니다. 조금은요. 만약 괜찮으시다면 어디가서 커피라도 마시지 않겠습니까?'

 

너는 다시한번 얼굴을 붉혔다.

 

'죄송하지만 너무 늦어서 집에서 걱정합니다.'

 

'제가 데려다 드리지요. 견딜수없을 만큼 말을 하고 싶어요. 이 거리에 온 이후로 친구가 한명도 없었어요' 너는 조금 망설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래는 안됩니다만'

 

 

우리들은 30분 후에 커피하우스에서 만났다. 커피하우스는 특징없는 석조건물중의 하나였다. 그곳도 도서관처럼 바깥에서 보면 절대로 커피하우스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긴 복도에 무거운 문이 있고 그 안에는 어두운 얼굴을 한 젊은 남자가 혼자서 커피를 만들고 있을 뿐이였다. 나외에는 한사람의 손님도 없었다. 남자가 말없이 나의 테이블에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

 

'드세요!'

 

그래도 커피는 맛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너를 계속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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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쯤 늦게, 너는 이곳을 찾아왔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정돈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아무튼 혼자하는 일이기 때문에요.'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이런 커피의 따뜻함이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너에 대해 알고 싶어 라고 나는 말했다.

 

'왜죠?' 라고 너는 물었다.

 

'네가 이 거리에서 나의 최초에 친구이니까'

 

'친구' 너는 미소지었다. '좋아요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너는 말하기 시작했다.

 

 

너는 몰락한 공장지역의 좁은 공동주택에서 부모님과 2명의 동생과 살고 있었다. 그리고 가난했다. 부친은 직함은 직공장이였지만 직공을 갖고 있지 않는 직공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주에 이틀 밖에 가동하지않는 공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는 학교를 나와서 일하러 나가지않으면 안되었다. 몇달뒤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낸 끝에 도서관의 일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수입은 아니지만 세자매의 가난한 식사를 보장하기엔 충분했다.

 

 

너는 군대 모포처럼 거칠거칠한 오래된 푸른 코트, 깃없는 검은 스웨터와 무릅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는 너의 어머니가 입었던 것이고 결국은 동생들에게 넘겨줄 것이였다. 그래서 너는 스커트에 커피를 흘리지않도록 조심스럽게 컵을 기울였다.

 

 

'어디에서 왔어요?' 라고 너는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훨씬 동쪽의 거리에서, 네가 알지못할만큼 먼 곳'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거리 이외의 일은 '

 

 

네 목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너의 말은 저 10미터의 벽에 튼튼히 지켜지고 있었다.

 

 

'왜 이 거리에 왔지요? 이 거리를 찾아온 사람을 만나건 처음이예요'

 

' 정말?'

 

'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 뿐이예요. 왜 왔죠?'

 

'왜 일까? 벽이 없는 거리에서 사는 것이 괴로웠던 것도 있고 너를 만나고 싶기도 했고'

 

'나를?' 너는 어깨를 움츠리고 즐거운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텅빈 커피하우스를 나와, 맑은 밤공기를 마시면서 강변을 걸어 옛다리의 한가운데 있는 돌계단으로 내려갔다.

 

강 가운데섬에 늘어선 벤치중 하나에 앉았서 수면을 떠오는 밤새의 소리에 귀를 맑게 했다. 너는 내가 살고 있었던 거리의 일을 몹시 알고 싶어했다.

 

 

'어떤 거리였지요?'

 

어떤 거리였을까 내가 일주전까지 살던 그 거리는? 나는 도대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곳에는 마치 파도처럼 셀수없을 정도의 말들이 밀려오고 셀수없을 정도의 생각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파도가 쓸려간 뒤에는 여기저기 조금씩 물이 고여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그녀에게 무엇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잘 기억나지않아 몇만년도 더 된듯한 기분이야. 바로 일주전일인데도' 라고 나는 말했다.

 

'무엇인가 하나라도 좋아요. 기억해 봐요'

 

'우리들은 그림자를 끌며 걷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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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들은 모두 그림자를 끌며 걷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나는 그림자를 갖고 있지않다. 그림자를 버렸을 때 우리들은 처음으로 그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중력에 대한 것처럼 그림자의 무게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어버렸음이 틀림없다.

 

 

물론 그림자를 버리는 것은 그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만약 어떤 것이든 긴 세월을 가깝게 지냈던 것과 헤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 괴로운 일이다. 이 거리에 찾아왔을 때, 나는 문지기에게 그림자를 맡기지 않았다.

 

'그것을 가진 채 거리에 들어갈 수 없어' 문지기는 말했다. '그림자를 버리던가 거리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던가 어떻게 할래'

 

 

나는 그림자를 버렸다.

 

 

문지기는 나를 햇빛을 향해 세우고 나의 그림자를 붙잡았다.

 

'괜찮아, 아프지도 않고 금방 끝나' 그림자는 조금 저항했지만 힘센 문지기에게는 문제없는 일이였고 곧 그림자는 떨어져 힘을 잃고 벤치에 앉았다. 나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초라하게 보였다. 피곤한 것같았다. 뭐랄까 떨어져 버린 낡은 구두처럼, 그것은 나와는 관계없는 존재같이 되었다. 혹은 뽑아버린 충치처럼

 

'어때, 때어버리니까 이상하지 그림자라는게'

 

'그렇군요'

 

'이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저게 나쁜건지, 이것이 좋은 것인지, 그림자가 이제까지 한번이라도 쓸모가 있었던 적 있어'

 

'아니요'

 

'그렇겠지' 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너도 반드시 후회하지는 않을거야'

 

'그래요'

 

'자, 너의 그림자는 정확히 맡아두지 나쁜 짓을 하지않아'

 

'질문하나해도 좋아요?'

 

'좋아'

 

'내가 없는 사이 그림자는 뭘하죠'

 

'평소와 똑같아 걷기도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하루 한번은 운동도 시켜주지. 그래야 겨울이 되면 일도 할수 있으니까. 도움을 받는 거야 짐승의 시작과 끝을 위해'

 

'짐승의 시작과 끝?'

 

'응, 너도 겨울이 되면 알게되'

 

'그런데 내가 돌아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지요?'

 

문지기는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이였다.

 

'그림자를?'

 

'그래요'

 

문지기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어. 그림자를 돌려받고 싶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은...

 

그림자는 결국은 약하고 어두운 마음이야. 누가 그런 것을 바라겠어?'

 

모르겠다라고 나는 말했다.

 

'여러가지가 그 약하고 어두운 마음에 포함되있지 증오, 괴로움, 약함, 허영심, 노여움.....'

 

'슬픔도요' 나는 덧붙였다.

 

'슬픔도 물론' 그도 반복했다. '누가 그런것을 바라겠어?'

 

 

'우리들은 모두 그림자를 끌며 걷고 있어' 라고 나는 너에게 말했다.

 

빛이 있을 때는 그림자가 우리를 둘러쌓고 암흑 속에서는 꿈이 졸음을 덮쳐온다.

 

'왜 모두 그림자를 버리지 않지요?'

 

'버리는 것을 모르니까 그러나 만약 알고 있다하여도 버릴수는 없어'

 

'왜요?'

 

'우리들은 그 무게에 눌리고 있으니까요'

 

'우리들은 무엇에라도 계속 눌리고 있었어 그런 거리였어요'

 

 

강가운데 섬에 무성한 버드나무 중 하나에는 오래된 보트가 로프에 묶여있고 물의 흐름이 그 주위에 마치 여름의 잔재처럼 구슬픈 가락을 만들고 있었다.

 

 

'너희들의 그림자는 어디에 갔지?'

 

'잊어버렸어요 이 거리에서는 모두 어릴 때 그림자를 때어버려요 이가 날때 쯤에요.

 

그리고 벽밖으로 보내 버려요'

 

'그러면 그림자만이 살아가는건가?'

 

'예, 그럴거예요. 나의 그림자는 5년전에 죽었어요. 문지기가 벽바깥에서 죽어있는 그림자를 보고 데려왔어요. 3일 뒤에는 죽었지요. 문지기가 사과나무 숲속의 묘지에 묻어주었어요'

 

'너도 못만났어?'

 

'나의 그림자를요?'

 

'그래'

 

'만나서 대체 무슨 말을 해요' 라고 너는 웃었다.

 

밤새는 이미 돌아가고 차가운 10월의 바람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어두운 마음은 영원히 죽었군' 우리들은 일어나 돌계단을 올라가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리를 향한 언덕으로 건넜다.

 

'당신의 그림자도 곧 죽어요. 그림자가 죽으면 어두운 마음도 죽고 평온함이 찾아오죠'

 

라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벽이 그것을 지켜주겠지?'

 

'그래요, 그때문에 당신도 이 거리에 온 것이겠지요?'

 

그럴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 파도 뒤에 남은 물의 자취처럼 갈 곳 없는 생각이 문득 나를 스쳤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다리를 건널때까지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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