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내게 그저 주어진 것이었다. 만화를 그리던 아버지와 동네 서점을 운영하던 막내 외삼촌 덕에 언제나 책으로 가득했던 집에서 형제도 장난감도 없던 어린아이는 기나긴 유년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눈앞의 책(들)을 집는다.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굳이 읽지 않더라도 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는 많다. 어쩌면 책을 읽는 것은 그 중 가장 재미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독자로서의 첫걸음마를 뗀 아이는 이런저런 책들을 전전하며 나이를 먹는다. 국문과에 입학하고, 인터넷 서점에 취직해 밥을 벌고, 회사를 떠난 후에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시에 도무지 성찰(혹은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보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책을 읽는 이유를 묻는다면, 에베레스트에 오른 어느 영국인 산악가를 따라,“책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맥없이 답할 수밖에. 하지만 책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고, 책이라는 매체 또한 언제나 ‘거기에’ 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반성이 없을 리 없다. 반성은 독자가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에게 찾아온다. 늦은 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방을 가득 채운 읽지 못한 책을 마주할 때, 혹은 임박한 마감에 허둥대며 그럴 듯한 낱말을 조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문득 어디선가 반성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똑, 똑, 똑. 그럴 때면 씻는 것도, 원고를 마감하는 것도 미룬 채 문을 열고 반성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이런 문장이다 : 도대체 나는 저 책들을 팔아서/저 책들에 대한 글을 써서 무엇을 어쩌겠다는 걸까? 단순한 개인의 직업관을 벗어난 질문, 차라리 고백이다. 최신형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문화 행위를 갈음하는 현실에서 독서라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책을 파는(평을 하는) 직업인인 그 자신조차 더는 알 수 없다는 고백이다. 또한 그것은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누구도 하지 않을 고백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불평으로 돌아온다. 행복한 독자로 남기를 스스로 포기한 업계 종사자들이라면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을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가? 혹은, 왜 사람들은 책을 사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 손에 쥐어지는 영화관과 TV와 백과사전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이름의 새로운 소통창구를 휴대하는 세상이다. 매체로서의 책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매체와의 경쟁에서 패배했고, 패배는 거듭될 예정이다(세상 마지막 출판사가 문을 닫는 날이 패배가 끝나는 날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업계 종사자들은 서서히 침몰하는 배를 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우리는 1. 한시라도 빨리 배를 탈출하거나 2. 타이타닉 호의 악사들처럼 “오늘 밤 자네들과 함께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네”라고 비장하게 말하며 연주를, 아니 당면한 업무를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고약한 농담이다. 그리고 모든 농담이 그렇듯 진실의 조각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종사자들은 출판이 사양산업이라는 전망에 동의한다. 누군가는 당위를 내세울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을 업계에 투신하도록 만든 그 당위는 대충 이런 문장이다 : 책은 문화이고, 예술이고, 삶이며, 우리는 그것에 일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책과 마찬가지로 책을 둘러싼 고담준론 또한 역사의 특정한 시점, 특정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 이데올로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체로서의 책과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나아가 사회가 책을 대하는 방식을 새롭게 발명해야만 하는 곤경에 처한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기존의 생각을 철저하게 돌아본다는 것이다. 새롭게 발명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시기의 책 읽기 양상과 그 사회적 의미의 변화를 ‘대중 독자의 등장’이라는 관점에서”(471쪽) 톺아보고 있는 천정환의 <근대의 책 읽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 준다.


함의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독서라는 행위는, 그리고 독서에 우리가 부여한 가치는 1920~30년대를 지나며 확립되고 제도화된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근래 벌어진 이러한 큰 변화는 지금까지 보편적이라고 여겨져왔던 ‘서점에서․정해진 값을 지불하고․활자로 인쇄된․책을 사서․집에서․혼자․눈으로 읽는’ 책 읽기 방식이 보편적이지도 영원불변하지도 않다는 것을 새삼 가르쳐준다. 그러한 책 읽기는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양식화되고 유행한 일시적이며 특수한 양식일 뿐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겨진 책과 문학의 수용방식은, 사실 한국에서는 19세기에야 나타났고 20세기에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난 후 본격적으로 일반화되었다.”(24쪽) 그리고 그것은 ‘독자’, 즉 근대적인 주체의 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여기에는 간단하게 요약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영화라는 영상 매체와의 경쟁의 문제, 교육의 문제, 여전히 남아 있던 ‘전통적 독자층’과 새롭게 탄생한 ‘근대적 대중 독자’ 그리고 ‘엘리트적 독자층’의 문제, 주체의 상황에 따라 분화되는 취향의 문제, 소설의 생산과 유통의 문제, 일제 식민지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이중 언어의 문제와 검열, 탄압의 문제, 전략적 필요에 의해 기획된 문학 정전 선택의 문제, 그리고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책과 책 읽기를 둘러싼 근대의 이토록 다양한 상황들을 저자는 각종 통계와 신문기사, 광고 등의 사료를 통해 솜씨 좋게 재구성한다.


책이 다루고 있는 20세기 초반의 많은 문제들은 상당 부분,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이다(그 시절 출판계 사람들의 익숙한 불평과 전망에 한 번 놀라고,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판 발행부수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우리의 출판업은 (가련하게도) 그 태생부터 평탄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오늘 출판이 당면한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때일수록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장기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는 일이, 과거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우, 책을 읽는 것보다 나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 기획회의 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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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2-2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디오와 TV, 인터넷과 온라인게임에 이어 스마트폰과 카톡이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지배해 나가고 있는 걸 보노라면 '책의 미래'도 참 암담하기는 할 것 같아요. 하이데거가 말했던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정말 우리의 앞을 도대체 내다볼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몰고 온 듯싶어요.
* * *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 하이데거,『존재와 시간』中에서

poptrash 2012-12-28 06:32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밤낮 없이 붙어 있어 숨이 막힐 거 같아요

감은빛 2012-12-2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초판 발행 부수라니!
정말 놀라운 사실이네요.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내려야할 지,
태연하게 연주를 계속해야할 지 고민이 되네요.

poptrash 2012-12-28 06:33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놀랐어요.
어느 쪽을 택하건 용기가 필요하겠죠.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떠날 까봐요
 

술자리가 끊이지 않는 연말이다. 술자리는 숙취를 부르고, 숙취는 후회를 동반한다. 지난 밤의 과음에 대한 후회는 이내 지난 일 년에 대한 후회로 이어지고, 그 모든 후회를 잊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술자리를 향한다. 악순환이다. 하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 반복되는 술자리와 후회에 지칠 때쯤 새해는 밝아오고,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된다. 올해는 다를 거라는, 매년 반복되는 착각과 함께.


후회는 불가피하다. 생이란 갈림길의 연속이고, 우리는 동시에 두 개의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걷기 전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아보고, 비로소 생각한다. 아, 그때 다른 길을 걸었더라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너무 늦다. 그러니 술이나 마실 수밖에.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은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한 책이다. 전작을 통해 ‘비독서’를 독서보다 창조적인 행위로 둔갑시켰던 저자는, 이번에는 우리에게 ‘방콕 여행’(방에 콕 틀어박혀서 하는 여행)이 일반적인 여행보다 더욱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비롯, 수많은 텍스트를 누비며 그만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는 묻는다. 실제 장소에서 쏟아지는 여러 자극들, 그 디테일들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여행일까?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여행지에 대한 이미지, 여행이란 것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 속에 갇히는 것이 여행일까? 오히려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그 장소에 대해 종합적인 시각을 가지려 노력하고, 때론 상상하며 우리의 무의식이 공감할 수 있고, 또 필요로 하는 어떤 장소로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물론 허구의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와 허구의 구분은 그렇게 명확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집요한 자기 성찰이다. 이 두 가지가 없는 실제 여행보다는 그것들이 모두 있는 ‘방콕 여행’ 쪽이 차라리 낫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 같은 닭살 돋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피에르 바야르를 따라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로 가득한 우리의 지난 인생을 더욱 나은 무엇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바로 상상력과 자기 성찰을 통해서. 당신은 그것이 허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허구(픽션)의 역할이다.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픽션이 필요하다.
















2012. 12. 행복한동행 


---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어떤 '공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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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12-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픽션이 필요하군요.
연말 술자리, 해마다 반복되는 일인데 올해는 유난히 술이 더 땡기네요.
취하고 싶은 밤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날들입니다.

건강하세요!

poptrash 2012-12-23 05:26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마셨고, 취했고, 토했습니다.
제대로 삼키기 힘든 날들이에요.

고맙습니다, 감은빛 님도 건강하세요!

참깨 2012-12-2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좋아하는 책걸렸네여 근데 연말술자리 왜 난 안부르지( 꺼져 ) 세상이 망하니까 책으로 들어가야죠 암여.

poptrash 2012-12-23 05:27   좋아요 0 | URL
피에르 바야르 좋죠 저도 좋아해요 근데 연말술자리는 이제 진짜 지겹네여 사실 저 글은 10월에 썼는데...
 

어떤 호기에서였는지 나는 바르트의 <애도 일기>(김진영 옮김, 이순 펴냄)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기기로 마음먹었고, 마감 시간이 임박한 후에야 그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겸허히 실패를 인정하고 백지를 제출하는 대신, 혹은 재빨리 다른 가능한 것(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으로 선회하는 대신, 내가 <애도 일기>에 대해 쓰기 위해 경유한 몇몇의 장소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지도도 아니고 청사진도 아닌, 고작해야 몇 권의 책에서 뽑아낸 어떤 흔적들의 나열에 불과한 그것은 만족이라는 다분히 자기기만적인 단어의 의미에만 부합하는 만족, (단서를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해석에는 실패한 탐정처럼) 스스로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실제로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 분명한 가상적인 만족이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종종 그러하듯이, 이 자리에 멈추어 선 채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는 것이다. 만족하려 한다, 라고. 마치 그것이 순전히 양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반복적으로.


*


1977년 발표된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하나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서 출발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켜서는 안 되며, 오히려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비실제적인 것, 다시 말하면 다루기 힘든 것intraitable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이렇게 하여 사례를 들지 않고 오로지 일차 언어의(메타 언어가 아닌) 행위에만 의존하는 ‘극적’ 방법이 선택되었다. 사랑의 담론을 묘사하는 것은 그 가상simulation으로 대체되었고, 분석이 아닌 언술 행위énonciation를 무대에 올려놓기 위하여 이 담론에서는 그 근본 주체인 ‘나’가 복귀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시된 것은 하나의 초상화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심리적인 것이 아닌 구조적인 것이다. 그것은 말parole의 자리를 읽게 해준다. 말하지 않는 그 사람(사랑의 대상) 앞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사랑스럽게 말하는 그 누군가의 자리를. (<사랑의 단상>(김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1쪽)


그리고 그 선언은 어머니를 잃고 바르트가 남긴 짧은 기록을 모은 <애도 일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단순히 몇 개의 단어를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테면 “애도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켜서는 안 되며”, “그것은 말의 자리를 읽게 해준다.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애도의 대상) 앞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필사적으로 말하는 그 누군가의 자리를” 같은 식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틀 후의 일기를 바르트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별로 반갑지 않은 위안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낫게 하려는 걸까? 어떤 상태로, 어떤 삶으로 나를 다시 데려가려는 걸까?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가 더는 아니다. — 1977.10.27 (<애도 일기> 18쪽)


사랑과 애도를 병의 대척점에, 같은 자리에 위치시키는 바르트의 말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애도도 이미 시작된 것”(왕은철 <애도 예찬>에서 재인용)이라는 데리다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의 단상>에 이미 등장하는 부재에 관한 절들을 보라.


나는 부재하는 이에게 그의 부재에 관한 담론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이것은 요컨대 놀라운 상황이다. 그 사람은 지시물référent로는 부재하지만 대화 상대로서는 현존한다. 이 이상한 뒤틀림으로부터 일종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가 생겨난다. 나는 지시의 시간과 담화의 시간 사이에 처박혀 꼼짝못한다. 당신은 떠났고(그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 또 당신은 여기 있다(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으므로). 그러면 나는 현재가, 이 어려운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뇌의 순수한 한 편린이다.


부재는 지속되고, 나는 그것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부재를 조작하려 한다. 시간의 뒤틀림을 왔다갔다하는 행동으로 변형시키거나, 리듬을 산출하거나, 언어의 장면을 열고자 한다(언어는 부재에서 태어난다. 아이는 실패를 가지고 장난한다. 어머니의 외출과 귀가를 흉내내며 실패를 던졌다 붙잡았다 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창출된 것이다). 부재는 하나의 능동적인 실천, 분망함affairement(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이 된다. 다양한 역할(의혹.비난.욕망.우울)이 등장하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언어의 연출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아이가 어머니의 부재를 여전히 믿고 있는 시간과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간 사이에는 극히 짧은 차이밖에 없다고 한다. 부재를 조작하는 것, 그것은 이 순간을 연장하려는, 그리하여 그 사람이 냉혹하게도 부재에서 죽음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을 되도록 오래 늦추려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 30~31쪽)


마치 어머니의 죽음을 예언하기라도 한 듯한 그 절들은 <애도 일기>에서 좀더 생생한 언어로 반복된다.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듯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 1977.11.28. (79쪽)


결국 <사랑의 단상>에서 바르트가 말하고 있는 사랑은 애도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사랑이며, 애도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의식했건 그렇지 않았건) <사랑의 단상>을 쓰며 어머니의 죽음을,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부재를 잘 견디어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소중한 이’의 떠남을 감수하는 ‘모든 사람’의 대열에 끼게 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있도록 훈련된 그 길들이기에 나는 능숙하게 복종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던(거의 미칠 지경이었던) 그 길들이기에. 나는 젖을 잘 뗀 주체처럼 행동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 동안 양분을 취할 줄도 안다.


이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간헐적으로 불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가끔 망각하지 않는 연인은 지나침, 피로, 추억의 긴장으로 죽어간다(베르테르처럼).


(어렸을 때 난 잊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멀리 일하러 간 그 기나긴 버려진 나날들을. 저녁마다 어머니를 마중하러 세브르-바빌론 버스 정류장에 나가곤 했다. 버스는 여러 대 지나갔지만 그 어느 것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28~29쪽)


하지만 현실로 다가온 어머니의 죽음에, 그 완벽한 부재에 그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다. 매번 새롭게 일어나는(경험되는) 일이고, 매번 새롭게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운 일이다. 


모로코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가면서 마망이 누워 있던 자리에 남겨진 꽃을 치운다 — 그러자 다시 나를 사로잡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 위니코트가 했던 말은 얼마나 진실인가 : 이미 일어났었던 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더 분명한 사실은 : 즉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 다름 아닌 이 두 사실이 궁극적으로 끝나버린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다. — 1978.7.9. (<애도 일기> 168쪽)


그는 <사랑의 단상>에서 이미 그러한 자신에 대해 예견한 바 있다. 


정신병 환자는 붕괴의 공포 속에 산다고 한다(이 이외의 증세는 방어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붕괴에 대한 임상적인 공포는 이미 체험한 적이 있는 붕괴에 대한 공포이다(원초적인 고뇌Primitive agony). [……]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는 이런 붕괴에 대한 공포가 그의 삶을 침식해가는 환자에게, 이 붕괴가 이미 일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 사랑의 고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랑의 출발점, 내가 매혹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치러졌던 한 장례에 대한 공포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미 그를(그녀를) 잃어버렸는걸요.”라고. (49쪽)


그렇다고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르트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은, 단순한(이런 말은 가능하지 않겠지만) 죽음을 넘어, 그 자신의 존재를 근본부터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죽음이란 특히 이런 것이다 :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 우리가 인지해왔던 것으로부터의 장례.” 이렇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말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마치 죽어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납으로 만든 인물, 말하지 않는 꿈의 형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속에서의 침묵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또는 내게 거울을,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네 모습이란다”라고 말하는 자비로운 어머니? 그러나 침묵중의 어머니는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근거가 없는, 고통스럽게 떠돌아다니는, 내 존재마저도 상실한 인간이다. (<사랑의 단상> 228쪽)


바르트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기록.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는 마락Marrac이라고 불리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 동네에는 건축중인 집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 공사 현장에서 아이들이 놀곤 했다. 건물의 기초로 사용되기 위하여 점토질의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 몇 개 패어 있었다. 어느 날, 그 구멍들 중 하나 안에서 놀고 있다가 아이들은 나만 제외하고 전부 기어올라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올라가지 못한 것이었다. 땅 위 높은 곳에서, 그들은 ‘게임에 졌어! 혼자야! 보기 좋네! 제외되었어!’라고 소리치며 나를 놀렸다(제외된다는 것은 밖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멍 안에 혼자 있다는 것’, 하늘은 열려 있는데 갇혀 있다는 것, ‘폐쇄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때 나의 어머니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그곳으로부터 끌어낸 후 아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데리고 갔다. 그들에 대항하여. — ‘어린 시절의 추억’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이상빈 옮김, 강 펴냄) 174~175쪽)


그에게 어머니는 하나의 세상이었다. 세계에서 제외된 그가 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그러나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던 완벽한 세상. 이제 그에게는 자신이 평생 동안 매혹 당했던 글쓰기의 세계까지 오직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나에게 온 편지들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사실 : 많은 이들이(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RB(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를 읽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그녀에 대한 글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를 잘 알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나의 글쓰기는 성공을 거두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 역시 좋은 것으로 내게 돌아오는 글쓰기의 성취. — 1977.11.14. (<애도 일기> 59쪽)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기념비”의 필연성.

Memento illam vixisse. (그녀가 살았었음을 기억하라) — 1978.4.12일경 (123쪽)


물론 그것은 그 자신을 위한 “기념비”는 아니었다.


죽은 뒤의 일에 대해서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글들이 나의 사후에도 계속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다(M.을 위해서라면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야겠지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기념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 그러나 마망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그건 아마도 그녀가 글을 쓴 적이 없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그녀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 1979.3.29. (244쪽)


그래서 바르트는 <밝은 방>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분석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젊은 시절 어머니가 찍힌)을 보기 위해서, 그 의미를 자기 자신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무엇보다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만나기 위해서 — 바로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한 장의 사진을 사랑할 때, 또는 그 사진이 나를 어지럽힐 때, 나는 그것 때문에 머뭇거린다. 그 사진 앞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내, 나는 무엇을 하는가. 마치 그것이 보여주는 사물 혹은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고 탐색한다. 온실 뒷구석에 망연히 서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흐릿하고 창백하다. 나는 불현듯 소리쳤다. “어머니다! 참으로 어머니다! 마침내, 나의 어머니다!” - (<카메라 루시다>(조광희 옮김, 열화당 펴냄) 99쪽)


*


난-널-사랑해란 말에는 뉘앙스가 없다. 그것은 설명이나 조정.정도.조심성 등을 삭제해버린다. 언어의 엄청난 역설이긴 하지만 난-널-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말parole의 어떤 연극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 말은 항상 진실이다(그것의 발화 이외에는 어떤 다른 지시물도 갖지 않는, 즉 수행어performatif와도 같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난-널-사랑해에는 다른 곳ailleurs이 없다. 그것은 다이애드dyade(모성적인, 사랑스런)로 된 단어이다. 어떤 거리감도 뒤틀림도 그 기호를 분리하러 오지 않는다. 그 말은 그 무엇의 은유도 아니다. 

난-널-사랑해는 문장이 아니다. 그 말은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않으며, 다만 하나의 제한된 상황에 집착해 있을 뿐이다 : “즉 주체가 그 사람에 대한 성찰의 관게에 정지되어 있는 상황” 말이다. 그것은 일문일어holophrase의 문장이다. (<사랑의 단상> 200쪽)


아마 ‘난-널-애도한다’라는 말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바르트는 어느 날의 <애도 일기>를 “이 메모를 하면서, 내면의 진부함에게 나는 나 자신을 모두 주어버린다”고 썼던 것이리라.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어 진부할 대로 진부해진 말이지만, 그것을 내뱉는 이에게는 대체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찾을 필요조차 없는 진실이리라. 


<애도 일기>에는 바르트의 눈물로 얼룩진 문장들이 가득하지만, 나는 부러 이 자리에 그것들을 옮기지 않았다. 그것이 무책임한 인용으로 채워진 누더기 같은 글을 쓰며 내가 내린 유일한 윤리적인 결정이다. 물론 나는 지금 윤리적이라는 단어를 가장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요약이나 설명보다, 그의 문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분명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믿음이라는 단어의 가장 기만적인 용례).


일종의 지진계와 같이 바르트 자신의 감정의 진폭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애도 일기>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러니까 1979년 9월 15일까지 이어진다. 그 가을의 마지막 일기를 바르트는 이렇게 쓴다. 


1979. 9. 15.

슬프기만 한 수많은 아침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반 년이 지나지 않은 1980년 2월 25일, 바르트는 작은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코 치료되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한 달 뒤인 3월 26일 세상을 떠난다. 그의 바람대로라면, 그의 마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적어도 그가 자신에게 던지던 곤란한 질문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곳으로. 


그건 이런 질문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1977.11.28.(78쪽)
















2012.12.14. 프레시안북스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1214185100&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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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겨진, 아직도 끝내지 못한 애도, 애도, 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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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2012-12-22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떠오르는 글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조그만 나를 세워두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해요.
책이 궁금해지네요.. 잘 봤습니다~

poptrash 2012-12-23 05:29   좋아요 0 | URL
이 엉터리 글도 나름의 소용이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생각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게 되는 책, 이라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백과사전적 기술과 다양한 이들의 감상을 훔쳐보기 위해서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굳이 책을 사서 읽는 수고 없이도 유용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근찬의 ‘수난이대’는 고전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단편이다. 이미 웹상에 요약과 교과서적 분석이 가득한데도 여전히 줄거리를 요구하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뜨거운 고전이다.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 학생도 아닌 내가 ‘수난이대’를 검색한 이유는 따로 있다. 보는 이들에게 ‘어레스트’(심정지)를 불러일으키는 최인혁 교수님이 등장하는 드라마 [골든타임]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의 다리를 절단하는 장면을 함께 시청하던 여자친구가 난데없는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잠깐, 다리를 절단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렸다고? 덕분에 드라마와 <최강전설 쿠로사와>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번갈아 보던 나는 현대문화와 인간성에 대한 피상적이지만 심각한 고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친구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부지, 이래가 우째 살까 싶습니더.”

 

그건 바로 ‘수난이대’에 나오는 대사였고, 비로소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물론 현대문화와 인간성에 대한 피상적이지만 심각한 고찰에서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넘어간 후, 그녀의 연상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을 그 시간 동안 나는 적지 않은 상념에 사로잡혀야만 했지만. 뭐,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랬을 거다.

 

*

 

굳이 이 자리에서 ‘수난이대’의 줄거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지만, 여전히 그것을 필요로 하는 전국의 학생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바로 이런 내용이다.

 

만도는 아들을 기다린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돌아온다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전쟁이다. 이웃의 아무개는 전사통지를 받고, 다른 아무개는 생사여부를 확인할 길 없는데 아들 진수는 당당히 살아 돌아온다니 만도의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다. 일제강점기 오키나와에 징용으로 끌려가 한쪽 팔을 잃은 만도는 아들이 성히 돌아온다는 생각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산을 넘고 개천을 건넌 만도는 장에 들러 고등어 한 손을 산다. 아들에게 구워줄 고등어를. 남은 손에 달랑달랑 고등어를 든 만도는 기차역에 앉아 아들을 기다린다. 기차 도착 시간은 아직 멀었고, 만도는 하릴없이 옛 생각에 빠져든다. 십수 년 전, 바로 이 기차역에서 끌려간 오키나와의 살인적인 태양과 잠자리만큼 크던 모기와 형편없는 음식과 비행장을 닦던 노역을. 이어지던 공습과 공습을 피해 자신이 설치한 발파용 폭탄 옆으로 몸을 던지던 어느 날을. 어렴풋이 뜬 눈에 보이던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 낀 나무토막” 같았던 자신의 팔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그 팔을 바라보며 혼절했던 그날을.

 

마침내 기차가 도착하고, 만도는 아들을 찾는다. 시꺼먼 열차 속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오지만 만도는 아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룩거리는 상이용사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만도.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만도를 부른다. 돌아보는 만도.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그 상이군인이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낀 채 서서 만도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바로 아들 진수였던 것이다. 만도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이는 것을 본다. 사라진 다리. 만도는 복받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지만, 떨리는 입을 열어 고작 이렇게 내뱉을 뿐이다. 에라이, 이놈아!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만도는 화가 난다. 마치 그것이 진수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가자, 라는 무뚝뚝한 한 마디와 함께 만도는 지팡이에 의지한 진수가 절름절름 따라오는 것도 아랑곳 않고 혼자 앞장서 걷는다. 주막집 앞에 도착해서야 만도는 돌아본다. 길가에 오줌을 누고 있는 진수. 지팡이를 던져놓고 나무 둥치를 붙잡은 채 오줌을 싸고 있는 진수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진다. 만도는 주모를 재촉해 빈속에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한 잔을 들이켜고, 다시 한 잔을 들이켠다. 그제야 도착한 진수에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들에게 이리 들어와 보라고 소리를 지르는 만도. 아무데서나 묵으라고 이르고는 주모에게 국수를 시킨다. 꼬빼기로 잘 좀……. 참지름도 치소, 알았능교?

 

말없이 국수를 먹는 진수. 주막을 나온 부자는 다시 길 위에 선다. 이번에는 진수를 앞세우는 만도. ‘지팡이를 짚고 찌긋둥찌긋둥 앞서 가는 아들의’ 뒤를 술에 취한 만도가 달랑달랑 고등어를 흔들며 따라 걷는다. 그제야 다리에 대해 묻는 만도에게 진수는 그간의 사정을 들려준다. 멀쩡한 다리를 잃은 사연이건만, 진수의 말은 짧기만 하다. 전쟁하다가 이래 안 되었냐고. 수류탄 쪼가리에 맞았다고. 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 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 버리더라고. 아부지를 부르는 진수. 와, 대답하는 만도에게 진수가 말한다. 이래 가지고 우째 살까 싶습니더.

 

우째 살긴 우째 사냐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거라고,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아들을 타이르는 만도.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대겠나 말하며 아들을 향해 지긋이 웃어준다. 아들에게 보여준 첫 번째 웃음. 하지만 이내 요의를 느낀 만도는 손에 들고 있던 고등어를 입에 물고 바지춤을 내린다. 그때 아버지에게서 고등어를 받아드는 진수. 볼 일을 본 만도는 다시 아들에게서 고등어를 받아들고 길을 걷는다. 그때 그들의 앞에 펼쳐진 개천. 외나무다리가 놓인 시내를 건널 일이 캄캄한 진수에게 만도는 말한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 업히라고. 망설이는 진수에게 고등어를 건넨 만도는 진수를 업는다.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넌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들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그렇게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있다.

 

*

 

결국 이 글을 쓰기 위해 ‘수난이대’를 다시 읽은 나는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들고, 흐르지 않게 또 살짝 웃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슬프게 했는지, 기어이 눈물 흘리게 했는지, 동시에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줄거리가 넘쳐나는 고전을 요약하기 위해 다시 읽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다. 아무려나. ‘수난이대’에 담긴 문학사적 의의 따위 알 리 없는 나는, 지난여름 인천에서 보냈던 어느 하루를 떠올린다.

 

우리는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manic street preachers’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내렸고, 그들의 무대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았다. 다른 무대에서는 다른 팀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나와 친구는 자리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우리가 들고 있던 맥주는 점점 더 묽어졌다. 우비사이로 흘러든 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나는 이빨을 맞부딪치며 저체온증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등장했다. “안녕”이라는 활기찬 인사와 함께 ‘motorcycle emptiness’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광분했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지막 곡이 흐르고 있었다. ‘If you tolerate this your children will be next’라는 긴 제목을 가진 노래가.

 

스페인 내전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그 노래 속에서,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은 당신이 이것을 묵인한다면 다음은 당신 자식들의 차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아름답게, 그렇지만 비통하게.

 

그리고 바로 그것이 ‘수난이대’와 그 작가 하근찬이 말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시대의 비극 속에서 봉변을 당한 부자가 운명에 순응하며 서로를 보듬는 과정을, 그 애처로운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지만 시대의 비극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다. 진수의 잘려나간 다리가 진수의 잘못이, 그렇다고 만도의 잘못도 아닌 것처럼. 그렇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다. 진수의 잘려나간 다리가 결국 만도들의 잘못인 것처럼.

 

간단하게 말하자. 매닉 스트릿 프리쳐스의 예의 노래가 실린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 앨범은 1997년에 발매되었다. IMF로 기억되는 1997년은 우리의 부모가 망한 해다. 그들은 인내했고, 살아남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찾아온 2012년, 이번에는 그들의 자식인 우리가 망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을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미래의 내 자식이 망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오장육부가 뒤틀리겠지. 그리고 그것은 아마, 일정부분 나의 잘못이 맞을 것이다. 부를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식을 잘못 키워서도 아니다. 시대의 비참에는 우리 모두의 지분이 있다는 말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우리들의 수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여전히 이래가 우째 살까 싶은 시간을 살고 있으니까. 똥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까. 만약 우리가 이것을 단지 인내하고 종내 묵인하며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재산을 불리려는 노력으로만 살아간다면, 그러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천 번(?)의 흔들림을 그저 어른이 되기 위한 노정이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다음은 영락없이 우리 자식들의 차례가 될 것이다.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그리고 그 다음은 말이다. 


2012.9.7. 프레시안북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90714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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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소홀했던 서재를 철지난 글들로 채우려는 시도의 첫 번째는 뜬금없는 '수난이대' 원고. 


2012년 판 수난이대에서는 "아부지, 이래가 우째 살까 싶습니더"라는 질문에 아버지가 "긍께 투표 하라고 자식아"라고 했다나 뭐라나 하는, 선거 전날에나 가능한 농담을 해볼까 해서는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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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12-19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근찬의 <수난이대>를 들고 돌아오셨군요ㅎㅎ

poptrash 2012-12-20 16:50   좋아요 0 | URL
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됐네요... 하 하 하
 

K는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승훈 



내가 카프카의 <성>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난 그해 겨울을 강원도 영월에서 보냈다. 멀지 않은 곳에 탄광이 있는 강원도 벽지 영월은 낯선 곳이었다. 그해 겨울엔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원래 난 춘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고교를 마치던 해 부친이 영월로 직장을 옮겼기 때문에 난생 처음 벽지 영월에서 겨울 방학을 보낸 셈이다. 아침부터 부슬거리며 눈만 내리던 영월에서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던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 내 문학, 내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카프카의 <성>이다.


카프카는 1883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폐결핵으로 41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 독일 작가이다. 그는 평범한 지방 샐러리맨인 보험국 직원으로 살았으며, 근무를 마친 뒤면 집으로 돌아와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죽기 직전의 요양기간, 짧은 국외 여행을 빼고는 잠시도 프라하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가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고, 글을 쓰기 위해 보험국에 다닌 것도 마음에 든다. 당시 보험국에선 일찍 퇴근할 수 있었고, 그는 퇴근하면 집으로 와 계속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독하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비사교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을 것이다. 이런 기질도 마음에 들고 내 기질과 통한다. 그는 독일계 고등학교를 거쳐 부친의 명령에 따라 프라하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대학시절 훗날 <카프카 전집>의 편집자가 되는 친구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되면서 문학의 정열을 키운다. 그는 이때 <어떤 싸움의 기록>(1905년), <시골 혼례 준비>(1906년) 등을 쓰고, 1906년 박사 학위를 받고 1908년부터 1922년까지 노동자재해보험국에 근무하면서 잡지 <휘페리온>에 8편의 산문을 처음 발표한다. 1912년 <심판>(1922년 간행), <변신>(1916년 간행) 등을 쓰고 1914년 <유형지에서>(1919년 간행),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1924년 간행)을 쓴다.


카프카는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여러 곳으로 요양을 떠나고, 그 동안 장편소설 <성>(1926년 간행), <굶주리는 광대>(1924년 간행) 등을 쓴다. 그는 1912년 베를린 태생의 F.B.(펠리체 바우어) 양을 만나고 2년 후에 약혼을 하지만 결혼에 대한 회의와 불안 때문에 파혼하고, 1915년에 다시 만나 두 번째로 약혼, 그러나 1917년 결핵 요양 길에 오르며 다시 파혼한다. 그는 1920년 메란에서 빈 태생의 센스카 부인을 만나지만 2년 후에 헤어지고, 39세가 되던 1923년에는 소녀 도라 디만더를 알게 되어 동거 생활까지 하지만 전후의 불경기와 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1924년 빈 교외의 요양원에 들어가 그해 6월 그곳에서 영면한다. 이때 그의 나이가 41세였다.


겉으로 평범한 것 같은 이런 작가나 시인들이 보여주는 것은 삶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고, 그 내면이 바로 사회와 통한다는 역설이다. 원래 <성>이란 제목은 카프카가 생전에 구두로 말하던 것을 기억해 둔 브로트가 원고를 출판할 때 붙인 이름으로 알려진다. 이 소설은 결핵에 시달리며 요양을 다니던 카프카의 내면을 반영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인들이 체험한 삶의 부조리를 반영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늦은 저녁에야 K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성이 있는 것을 알리는 희미한 등불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 나무 다리 위에 서서 멀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공 이름은 K이다. K는 카프카의 이니셜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K는 구체적인 의미를 상실한, 추상화한, 그런 점에서 현대인의 초상이다. 카프카라는 이름은 까마귀라는 의미가 있고, 이 이름은 그가 부유한 유태계 상인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K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고향, 가족, 조국 같은 삶의 토대가 사라지는, 혹은 그런 토대와 단절되는 삶을 암시하는 이런 이름은 그런 점에서 삶의 근거나 토대를 상실하고 사는 현대인의 초상이 된다.


토지 측량사인 K가 눈 내린 저녁 마을로 온 것은 성과의 계약 때문이다. 그러나 성에서는 그를 부른 바 없다는 통지가 오고, 마을 사람들은 일단 하룻밤 묵는 것을 허용한다. 그 후 그는 마을에 머물면서 성으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성에 소속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냉랭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성으로 가려고 계속 노력하고 계속 실패한다. K는 애정 문제에서도 실패하고 남들과 전혀 교통이 되지 않는 고립 상태에서 불안에 쫓긴다. 그 동안 직업도 얻어 두 명의 조수를 거느리고 학교 관리 사무를 맡기도 하지만 성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왜냐하면 K는 우연히 성에서 일하는 비서 뷔르켈이 투숙한 여인숙에 들르고 그녀는 그가 청원하면 성에서 받아줄 것이라고 암시하지만 그 순간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다음 날 페피라는 가정부와 같이 살자고 제의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한 마디로 조리에 닿지 않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K는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성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브로트는 성이 신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프로이트학파는 어머니를, 사회학파들은 절대 관료체제를, 실존주의자들은 현대인이 체험하는 교통 단절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요컨대 아직도 해석은 계속되고, 내가 그 무렵 이 소설을 읽고 배운 것은 삶의 부조리이며, 이 부조리를 부조리로 수용하는 데 40년이 넘은 셈이다. 부조리의 극한에서 최근 내가 읽는 것은 텅 빈 공백이고, 이 공백에서 터지는 웃음이다. 사실 우습지 않은가? K도 성도 마을 사람들도 나도 모두가 생각하면 우습다.


<책의 유혹> 108~11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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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은 분주했고, 나는 어지러웠다. 겨우 자리를 찾아 가방을 내려놓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람도 책도 너무 많았다. 몇 권의 책을 훑어봤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아마 훑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한 권의 목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고, 그 페이지를 열어 그것이 내가 아는 이름이 맞는지 확인했으며, 노트를 꺼내 녹색 볼펜으로 베껴 쓰기 시작했다. 필요한 내용도 아니었고 찾으려던 내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명문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읽지 않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머리를 비우고 눈 앞의 글자를 손끝으로 옮기는 데 집중했을 뿐이다. 그때 나는 단순한 기계가 된다. 잘 인쇄된 문장을 엉터리 손글씨로 바꾸는 쓸모없는 기계가. 나는 거의 글을 읽지도 않았다. 다만 몇 번인가 저린 손을 털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눈을 들어 사람들을 보았고, 몇 권의 책을 빌렸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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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1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poptrash 2012-12-18 17:24   좋아요 0 | URL
제가 누구냐고 물어보신다면... 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승훈 시인만은 좋아한다고 외칠 수 있는 독자라고 해야 할까요 ㅋ

오랜만이어요 다락방 님!

이진 2012-12-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마침 저는 오늘 학원에서 이 책을 겨울방학에 읽겠노라 다짐한 차입니다.

poptrash 2012-12-19 02:20   좋아요 0 | URL
소이진 님, 이제 곧 겨울방학이겠네요. 꼭 읽어보시길. 그리고 나중에 멋진 서평도 써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