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스를 타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신촌에서 내려 약솟 장소로 가는데 시간이 조금 남을 것 같았다. 뭘 하지? 하고 걷고 있는데 옛날 신촌문고 비슷한 자리에 있는 지하서점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게 얼핏 보였다. 그러고 보니 모리스 블랑쇼 강연회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이미 강연이 끝나고, 서점 영업조차 끝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에 내려갔다. 안에는 투명한 벽으로 분리된 회의 공간 같은 게 있었고 그 안에서 강연이 아직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근데 강사가 한국인이었다. 아 모리스 블랑쇼는 죽었지, 생각했다. 그런게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출판사 사람들이었다. 알은체를 하며 내게 말했다. "아 왔네. 오늘 전화 받았다며?"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고 전화는 안받았다고 했다. 그래? 그들은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그때 강사가 정숙할 것을 요청했다. 안경을 쓴 삼십대 중후반의 약간 강신주풍의 강사였다. 지가 모리스 블랑쇼도 아닌데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갑자기 내게 자네는 여기 왜 왔나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블랑쇼 얼굴이라도 볼수 있을까 해서 왔다고 말했다. 마치 농담인 것처럼. 강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지만 블랑쇼는 죽었지 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냥 나왔는지도 모른다. 철학과 후배가 옆에 있었다. 오경준. 녀석은 언제나처럼 까불거리며 강사 흉을 봤다. 나는 슬슬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뒤에서 큰스승 김민하가 나타나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자판기 커피.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자판기 쪽으로 걸어가는데 저기 저쪽 자판기가 더 좋다고 했다. 여기보다 싸고 맛도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커피는 35원밖에 하지 않았다. 아깐 50원이었는데. 오경준이 또 까불거리며 이 자판기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더 좋다 내가 뽑을테니 두 분이 드셔라 하면서 자판기로 다가갔고, 이것봐 돈도 들어있고 이걸로 뽑으면 되고 얼마나 좋아 녀석이 으스대며 말했다. 과연 누가 거스름돈을 가져가지 않은듯 자판기에는 잔액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 그렇군,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폐반환부에서 돈이 나왔다. 만원짜리 한묶음이었다. 오경준은 태연하게 그걸 집더니 봐, 이런 일까지 있잖아 얼마나 좋아 말하곤 그러니 이건 두분이 나눠가지시라며 내게 돈뭉치를 넘기고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니 김민하가 입을 벌리고 서있었고, 나는 녀석에게 돈을 주며 야 셔츠 밑에 넣어 빨리 다급하게 외쳤다.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그렇게 했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자판기를 한번 더 보았다. 다시금 자판기는 무언가를 내뱉고 있었다. 돈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각종 고지서 지로용지였고 만원짜리는 한두 장이었다. 그냥 두고 김민하를 따라갔다. 김민하는 돈을 부채처럼 펼치고 들여다보며 기뻐했다. 나도 기뻤다. 몇대 몇으로 나눠야하나 잠깐 생각했다. 오 대 오? 내가 형이니까 조금 양보할까?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만원 한장이 날아갔다. 허공에 뜬 채 달빛에 비친 지폐 가운데에 빨간 글씨가 써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설마. 나는 봤냐고 물었고 김민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상한 기분이 든 나는 김민하에게 돈을 하늘에, 불빛에 대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냥 한장만 저런게 끼어있었던 걸까. 어떤 놈이 위폐를 사용한 건가 생각했는데, 그때 갑자기 지폐가 한장 한장 날아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김민하에게 뭐하냐고 했다. 김민하는 아무 말 않고 지폐를 쳐든 채로 굳은듯 있었다. 지폐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모든 지폐에 빨간 글씨가 써있었다. 전부 위폐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허탈했고 그 자리에 섰다. 김민하와 나는 그렇게 서서 가짜 돈다발이 마치 벚꽃처럼 날리는 광경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2.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인 사건을 내가 해결했다. 비록 범인을 검거하지는 못했지만, 누군지는 밝혀냈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나는 고등학교에 위장 전입한 대학생이었다. 각설하고.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가는 길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보였다. 처음 보는 지점이었다. 구경이나 할까, 들어갔다. 지하였다. 볼 건 없었고, 나는 출구를 찾았다. 출구 옆에 '오늘 들어온 책'이라는 서가가 있었다. 잠깐 들여다보았다. <발터 벤야민의 OOO>라는, 커다란 책이 보였다. 그러니까 <한국 곤충기>, <살아 있는 지구> 뭐 이런 책들 같은 판형이었다. 하얀 색 양장. 책세상 일반 시민 교양 총서의 1권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정가가 18000원이었는데, 중고가는 보이지 않았다. 바코드가 없었다. 책을 뒤지다 어딘가에서 작은 네임스티커를 발견했다. '우경 18000'이라고 써있었다. 물론 그건 내가 아는 우경이었다. 아, 이 양반 절판도서라고 정가 그대로 매겼네, 라고 생각했다. 짜증이 났다. 그때 저쪽에서 우경이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고개를 돌리니 출구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출판사 마케터라는 사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긋, 눈인사를 하더니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쓰촨성 대지진 어쩌고 하면서 경제 이야기, 책이 안 팔리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비켜주기를 기다렸다. 우경에게 살인 사건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경은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하지만 여자는 좀처럼 가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3. 

나는 군인이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괜찮았다. 휴가 나온 군인이었으니까. 동부 터미널 같은 곳이었다. 나는 군복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내게 다가온다. 그는 내게, 그러니까 휴가를 나온 군인인 내게 "텍스트란 모피와 같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건 모피의 털을 한가닥 한가닥 쓰다듬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그가 '털'이라고 말할 때 그의 뒤에 마치 후광처럼 fur 라는 영단어가 보였다. 그럴듯한 말이어서 나는 감탄했고, 잠실 야구장에 야구를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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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는 <성난 초콜릿>을 소개하기에 앞서 최근 내가 들은 몇 가지 가십을 전한다. 모든 가십이 그렇듯 이 또한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끼리만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충무로의 떠오르는 배우 A씨에 대한 이야기다. 조각 같은 외모와 선 굵은 연기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A씨에게 동성성폭행 전과가 있다는 소문이다. 나는 그 소식을 영화사에 다니는 한 친구에게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다고 해야겠지만. 발단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얼마 전 출산한 친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기 사진을 올렸고, 다른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 예쁘다, 쏙 빼닮았다 등등. 그런데 어떤 친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A가 동성성폭행 전과 3범이라는 게 사실이야?” 곧바로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럴 리가 없다는 A의 팬과 그럴 줄 알았다는 안티 팬 사이의 갑론을박은 이내 감정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오랜 친구였던 그들은 서로를 ‘블락’했다. 그 와중에 몇몇 이들은 다른 배우들에 대한 흥미로운 가십을 늘어놓기도 했는데, 차차 소개할 것을 약속드린다.


다음은 젊은 작가 B씨에 대한 이야기. 독창적인 상상력과 문장력, 무엇보다 ‘정치적 공정함’으로 인해 많은 ‘진보적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젊은 작가 B씨가 실은 굉장히 비열한 인간인 모양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는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소문이다. 관계자들이 자주 드나든다는 홍대의 작은 바에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역시 관계자가 분명해 보이는) 한 남자가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흥분한 목소리로 “야, B 그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 알아?”라고 소리쳤다. 공통의 친구들에 대한 소소한 가십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한동안 B의 사생활을 둘러싼 구질구질하면서도 솔깃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지면관계상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어 무척 안타까운 남자의 짧지 않은 폭로가 끝난 후에야 우리는 다시금 술잔을 부딪칠 수 있었다. 어떤 범죄의 공모자들이라도 된 것처럼 의미심장한 미소를 나누며.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작가들에 대한 가십을 즐겁게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렇듯 가십은 우리를 매혹시킨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기 사진이라고 해도 유명 배우에 대한 가십 앞에서 더는 우리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술자리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가십도 없는 술자리보다 지루한 술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니 사실 여부는 아무래도 좋다(나 역시 위의 사례들이 모두 나의 ‘소설’일 뿐이라는 사실을 구태여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심심한 입을 위해 주전부리가 있는 것처럼, 지루한 정신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씹을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 조지프 엡스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으로 껌 씹기’, 그것이 바로 가십이다.


<성난 초콜릿>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런 가십의 향연이다. 아니, 차라리 가십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는 게 낫겠다. 스스로 가십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가십이 인간 사회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보편적인 소통의 형식임을 증명하려는 듯하다. 우리의 ‘길티 플레져’에 면죄부를 내려주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저자는 우리에게 그동안 점잖지 못한 사람들의 하찮은 취미 정도로만 취급하던 가십을 새롭게 평가할 것을 주문한다. SNS의 발달과 갈수록 가십화되고 있는 언론 환경 속에서 가십은 더 이상 몸에는 나쁘지만 입에는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성난 초콜릿’이고, 그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흥미로운 책이다.


시사인 292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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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4-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쉽은 이제 이 시골에도 곳곳에 뿌리내린 듯해요. 아니, 시골이 더 심할지도..

그나저나, 길티 플레져라..음..정곡을 찌르는 단어네요.
이 책, 솔깃합니다요.

참!!!!
저 이제 오에 겐자부로 책, 거의 다 모았어요. 이번에 유독 싸게 중고로 많이 나왔더라구요.
혹시 보시고픈 책 있음 저에게 대여신청을! 히힛.

poptrash 2013-04-24 16:44   좋아요 0 | URL
소소하고 사적인 가십들은 원래 '옆집 수저 갯수도 알고 있는' 시골에서 더 활발했던 거 아닐까요. 물론 도시 사교계(?)의 가십은 훨씬 더했겠지만... 가십을 즐기는 건 인간 본성이 맞는 거 같아요. 저도 즐기고 있고요 ㅎㅎ

오에 겐자부로 책 저도 거의 다 모았습니다! 어떤 책들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ㅎㅎ

달사르 2013-04-28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게다가 요새 가십은 현대문명의 도움을 받기도 하더라구요. 가십에 동영상 파일이 증거물로 돌아다니는데, 정말이지 넘어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제가 팝 님 덕에 오에 겐자부로를 알게 되어, 오에 겐자부로 책을 읽을 때면 매번 팝 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팝 님도 거의 다 있다시니 이거 기분이 무지 좋은데요? 제가 모은 건, 조만간 책장 정리를 하게 되면 자랑질 인증샹 올리겠습니닷.

Jeanne_Hebuterne 2013-04-2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 서점에는 Schadenfreude 라는 코너가 별도로 있었어요. 인간은 본디 미천하고 비굴하고 비열하며 약자일수록 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인간의 역사는 이런 어둠으로 구성된 걸까요?

poptrash 2013-04-24 16:45   좋아요 0 | URL
모르는 단어라 찾아보니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란 뜻인 모양이네요. 서점에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 코너가 있다니... 어떤 의미에선 정말 대단한데요? ㅎㅎ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런 어둠으로 구성된 게 맞겠죠 아마.

Jeanne_Hebuterne 2013-04-24 17:30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두서없이 쓰느라 뜻을 안쓰다니, 죄송해요! 이런 뻔한 실수를 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둠으로 구성된 세계에 일조함을 증명하는 모습이 되었군요! 동감, 동감. 몽땅 어둡고 갈 길이 없는 게 사실인데, 그럼에도 의미를 찾으려는 이 헛발질이란.

poptrash 2013-04-25 21:28   좋아요 0 | URL
사는 동안에는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ㅠㅠ

windbird 2013-04-2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보스턴 리걸이란 법정 드라마 중 에피소드 하나 이름이 샤덴프로이데이에요.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유죄로 확정될 것 같으니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증거가 없다면 무죄로 해달라는 변호인의 변론에 배심원들이 홀딱 넘어가는 내용입니다. 재미있는 단어라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poptrash 2013-04-25 21:29   좋아요 0 | URL
아, 미국 드라마 종종 보는데 보스턴 리걸은 한 번도 안 봤어요. 샤덴프로이데이... 저도 기억해두겠습니다 ㅎㅎ
 

한윤형과 나는 몇 가지의 경험을 공유한다. 일단 세대가 같고(비록 내가 한두 살 많긴 하지만 그가 내게 말을 놓는 것으로 보아 동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루한’ 자유기고가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익숙하며(탈출에 성공한 그는 어엿한 기자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연명 중이다), 같은 정당에 당비를 내고(상근자들에게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탈당을 유예”한다는 그와 달리 한 푼이 아쉬운 나는 종종 탈당을 고민한다), 공통의 지인들이 있다(출판계라는 게 워낙 좁은 동네라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그의 책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흥미롭게 읽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의 이야기다. 그만큼 공감의 여지가 많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당신은 그럼 그렇지, 혀를 찰지도 모른다. 이것을 또 하나의 ‘세대론’으로, 익숙한 편 가르기로 받아들인다면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또래 독자만으로 만족하기엔 그의 포부가 너무 큰 탓이다. 서문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또래에게는 위안을 주고, 다른 세대에겐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봐야 하는 책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는 청년 세대의 문제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이라고 말한다. 대학 등록금과 청년 실업, 점점 힘겨워지는 결혼과 출산, ‘내 집 장만’에 이르는 청년들의 문제는 곧 그들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야 제 자식이 안정적인 정규직이 되어 받아 마땅한 몫을 챙기기 바라지만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 모두는 IMF를 거치며 폭주하기 시작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자식들에게 ‘투자’하느라 적절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부모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고 궁핍한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 청년층의 부모들은 하필 이 사회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베이비부머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밥값을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내면화한 청년들은 스스로를 잉여로 부르며 만성화된 불안 속에서 어두운 미래를 향해 마지못해 걸어갈 뿐이다.


자, 이제 익숙한 질문이 등장할 차례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세대론의 대답은 명쾌하다. 저놈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차라리 ‘세대론’이라고 쓰고 ‘개새끼’라 읽는 편이 나을 지경이다. 기성세대는 이런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는 무능한 청년세대를, 청년세대(를 지지하는 쪽)는 이런 세상을 만든 부패한 기성세대를 비난하며 서로에게 화살을 돌린다. 때로는 온 국민이 사이좋게 개새끼가 되기도 하지만 달라질 건 없다. 애당초 복잡하고 다층적인 정치사회적 문제를 단순한 세대론으로 환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대 담론에서 정작 당사자인 청년들이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대는 본인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으며, 윗세대들은 그들의 견해를 참고하지 않으며 누구를 참고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규정하기 힘든 것에 대해 억지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평거리가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청년 세대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맞닥트린 어떤 불안감의 실체를 대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불안감의 이면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는 청년 세대의 삶의 문제를 발견한다.”(170쪽)


그리하여 <청춘을 위한 세대는 없다>는 일종의 ‘메타-세대론’이자 세대론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다종다양한 문제들을 직시하려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된다. 본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세대 담론의 유행 속에서 본의 아니게 담론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젊은 필자의 “청년 문제에 대한 당사자의 발언권을 사수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공허한 고담준론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일상사에 대한 섬세한 관찰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잉여(청춘)의 초상을 생생하게 그리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들에 대한 명민한 분석과 요약을 통해 일종의 지적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기타 등등에 대한 골치 아픈 고민을 그에게 ‘아웃 소싱’한 채 단지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의식 있는 독자가 될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딛고 선 자리를 돌아볼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는데, 사실 조금 피곤할 정도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을 리 없다. ‘잉여 시대를 명랑하게 돌파하는 청춘 여행’이라는 서문의 제목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명랑이라는 단어의 주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통해 스스로를 ‘낭만 혹은 명랑 공산주의자’라고 소개한 우석훈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윤형을 처음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우석훈 박사님?”이라고 중얼거린 사람의 한 명으로서,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불필요한 오해는 피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경향신문 2013. 4. 2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19213522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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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은 물론 농담이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고, 농이건 진이건 없어도 좋을 부분이다. 아는 이의 책에 서평을 쓴다는 게 어쩐지 겸연쩍어 부린 수작이고, 누군가 웃는다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사실 웃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구절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교양의 실종'이라는 꼭지의 도입부다.


"세기말엔 지식인들이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과학 도서를 보지 않고 <인물과 사상>이나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인물과 사상>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뜨끔했다.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보기 힘들다. 나는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오늘날의 <인물과 사상>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110쪽)


서평 청탁 전화를 받은 게 월요일이었고, 마감은 목요일 오전이었지만, 정작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수요일 밤이었다. 책을 받은 게 그때였다. 하루 종일 집에서 택배를 기다리다, 결국 늦기 전에 교보문고에라도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던 중 1층 우편함에 꽂혀 있는 책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마음이 급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저 구절에서 독서를 멈추고,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보기 힘들다."라는 문장 때문이다. 처음에는 비문인줄 알았다.


(A)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다"와 (B)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보기 힘들다"라는 두 개의 단문이 합쳐진 중문이다. 비문이 아니다. 하지만 내겐 그 문장이 어색했다.  (A)를 읽으며 내 머릿속에서 이어진 문장은 (C) "요즘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을 읽는 대학생들도 찾기 힘들다"였기 때문이다. 나라면 (B)와 같은 문장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A)와 (C)로 이루어진 문장, 그러니까 "십 년이 지나기 전에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 요즘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을 읽는 대학생들도 찾기 힘들다"는 무리 없는 문장이다. <인물과 사상>은 망했고(어떤 뜻으로 말했는지는 알겠지만 사실 망하지는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읽지 않는다는, 일종의 객관적인 진술 아닌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앞선 문장에 고등학교 떄 <인물과 사상>을 읽었고, 그러면서도 지식인들의 비판에 자기 반성을 하는 '나'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 뒤에 (C)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더는 객관적인 진술이 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에 <인물과 사상>을 읽었던 나'와는 달리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읽지 않는 대학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옛날엔 이랬는데 요즘 애들은... - 전형적인 꼰대의 문장. 이렇게 보자면 <인물과 사상>이 망한 것(물론 안 망했지만)도 대학생 책임인지 모른다. 읽지 않으니까 망할 수밖에. 이어질 이야기도 뻔하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책도 좀 읽고, 스스로에게 매몰되지 말고... 뭐 그런 '어른'의 질타, 충고, 그리고 격려. 너무나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당연한 건 아니다(그러니까 이건 너무 당연하게 (C)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


반면 (B), 그러니까 한윤형의 문장대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대학생들은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을 보기도 힘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학생들이 힘들다는 것이다. 소설책을 보기도 힘들 정도라면, 그렇게 힘든 이유가 무엇인가? 말하자면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바로 그 대답이다.


세기말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인물과 사상>을 읽었던, 그럼에도 '<인물과 사상>이나 본다'는 지식인들의 비판에 뜨끔해했던 '나'의 성장담과(1부), 그런 '나'가 자라 시사 잡지는커녕 소설책도 읽기 힘든 대학생들의, 청년 세대의 현실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여러가지 고민들이(2부와 3부) 특유의 관찰과 분석, 요약과 정리를 통해 그려지는... 그런데 존나 따듯한 이야기...... 


그러니까 원래 저 서평은 이런 식으로 쓰여질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계획이 그렇듯 그저 계획으로만 남긴 했지만.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어떤 부분은 살짝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세대는 물론 마더 파더 젠틀맨 모두 한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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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4-2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윤형이 강남 교보 티움에서 ㅇ일 7시에 강연회.인가 사인회.인가 한다고 해서 지금 샵에 와서 날짜가 언제지? 찾아보다보니, 아마, 꿈이었던듯. 그리고 꿈의 원인은 이 글이었던듯. 합니다.

아, 꿈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이 봄날.

poptrash 2013-04-22 15:37   좋아요 0 | URL
오늘 강남 교보에서 7시에 강연회인가 사인회인가 한다던데요 ㅎㅎ
현실도 꿈처럼 느껴지는 이 봄날!

하이드 2013-04-22 17:37   좋아요 0 | URL
앗! ㅡㅜ
 

제8장 걸리버가 항해한 대한민…, 아니, 소인국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라블레를 떠올리게 하는 몇몇 분변학적 장면이 언급된다.



서른일곱의 레뮤엘 걸리버가 문제의 항해를 떠난 것은 1699년 5월 4일의 일이다.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어엿한 외과 개업의였지만, 그런 현실도 여행을 향한 그의 오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역마살이 끼었다고나 할까. 존재에 깊이 새겨진 잔인한 운명이었다.


11월 15일, 앤틸로프 호의 선원들은 곤경에 처한다. 남태평양에서 동인도를 향해 순조롭게 항해하던 도중 예상치 못한 폭풍에 휩쓸린 것이다. 항로에서 벗어난 그들은 남쪽 위도 30도 2분 근처까지 떠밀려가야만 했다. 열두 명의 선원이 과로와 영양실조로 죽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하기야 건강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앤틸로프 호는 얼마 못 가 사위를 가득 채운 짙은 안개 속에서 암초에 부딪쳐 산산조각 날 예정이었으니까. 여섯 명의 선원들이 보트를 타고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여섯은 너무 많다.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신의 계획에 따라,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오직 한 사람, 서른일곱의 외과 의사뿐이었다.


릴리퍼트의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자연은 그들에게 익숙한 것이었고, 그들은 순응할 줄 알았다. 제 아무리 세상을 날려버릴 듯 사나운 폭풍이라도 그 뒤에는 자비로운 태양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태양과 함께 거대한 공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어질 비극을.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마주했을 때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놈들이 지배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아주 거대한 괴물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곳이 1699년의 릴리퍼트가 아닌, 845년의 시간시나 구였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걸리버가 사람들을 마구 잡아먹는 충격적인 장면과 함께, 그에게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년의 복수와 성장의 드라마를 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화제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아니다. 동화책으로, 명작 만화로, 잭 블랙 주연의 영화로 지겹게 보았던 <걸리버 여행기>다. 신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시고, 세상은 우리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걸리버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높이 떠올라 있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동안 나의 두 팔과 다리가 땅에 단단히 붙들어 매 있었던 것이다. 길면서도 숱이 많은 나의 머리카락도 풀리지 않도록 묶여져 있었으며, 겨드랑이부터 허벅지에 이르는 온몸 전체에 몇 줄의 가늘고 긴 줄이 얽혀있었다.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햇볕이 뜨거워질수록 점점 눈이 부셨다. 주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똑바로 누운 채 묶인 자세로는 하늘밖에 볼 수 없었다. (<걸리버 여행기>(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펴냄) 19쪽)


세상은커녕 자신의 몸조차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걸리버다. 불과 15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키의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옴짝달싹 못하게 묶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경악한다. 비명을 지르는 걸리버 — 위협적인 거인이 되기는 애당초 틀려먹은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심약한 성정이 그를 구했으니, 그를 경계하며 바늘같이 조그마한 화살을 날려대던 릴리퍼트 인들도 그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살려두기로 한 것이다.


곧바로 릴리퍼트의 수도로 옮겨진 걸리버. 쇠사슬에 묶인 채 어느 사원에서 영어의 삶을 시작한다.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해도 그에게는 고작해야 고급형 개집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새장 속에 갇힌 건 소인이 아닌 거인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온 릴리퍼트 국민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걸리버.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을까? 물론 있다. 그가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생리적인 욕구를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대변을 본 지가 이틀이나 지났으니 아주 당연하다. 다급한 마음과 부끄러움 사이에서 나는 무척 난처했다. 생각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은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안으로 기어들어가 문을 닫은 후 발에 묶인 쇠사슬이 미치는 구석에서 대변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이처럼 불결한 행동을 한 것은 이번뿐이었다. (29쪽)


과연 그날 이후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침 일찍 소인들의 눈을 피해 사원 밖으로 나가 일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항해도 그의 장 건강을 해치진 못했으니 잘된 일이다. 매일 거대한 똥냄새를 맡아야 하는 인근 주민들에게도 잘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불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주민들이 민원을 넣은 탓인지 이내 그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두 명의 시종이 배치된 것이다. 낯모르는 두 사람을 대신해 말하지만,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다. 비극이다.


하지만 걸리버는 잘 먹었다. 릴리퍼트의 수학자들은 그의 키가 자신들의 12배이고, 따라서 1728명 분의 음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문과대 출신으로서 그들의 계산에 아무런 불만도 없음을 밝혀둔다. 국왕은 그를 먹이기 위해 칙령을 반포, 수도를 중심으로 사방 900미터 이내의 마을에 식재료를 바치도록 했다. 시민들은 매일 아침 여섯 마리의 소와 40마리의 양, 그리고 고기와 같은 비중의 빵과 마실 것 등을 납품했고, 국왕의 재무성에서 비용을 지불했다. 제법 배포가 큰 왕이었던 셈이다.


다른 국민들보다 (걸리버의 손톱만큼) 크고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는 국왕의 배포는 남다른 인사 검증 시스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릴리퍼트에서 관직에 오르려는 자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데, 약 30센티미터의 높이에 팽팽하게 매달린 60센티미터 길이의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가장 높이 뛰어올라 국왕을 즐겁게 하는 자만이 요직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에 따르면 연산 또한 이와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았던가. 유례없는 ‘인사참사’로 고민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한번 검토할 만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고전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한편, 공손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통해 신임을 얻은 걸리버에게 국왕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릴리퍼트 왕국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는 당파’와 ‘낮은 굽의 구두를 신는 당파’간의 격렬한 당쟁으로 국정이 마비될 지경이며, 외부적으로는 이웃 나라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계란을 먹을 때 좁은 방향부터 깨는 릴리퍼트와 달리 넓고 둥근 방향으로 깨는 이웃 나라 블레훠스크가 왕국 내부의 ‘종블’ 세력들을 이용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내란은 언제나 블레훠스크가 선동했으며, 진압이 되고 난 다음 반란을 주도했던 주동자들은 언제나 그 왕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그동안 1만 1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좁은 방향의 끝부분으로 계란을 깨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 수백 권의 두툼한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방향의 끝부분을 깨는 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출판과 판매의 자유가 금지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법에 의해 그들은 공직에도 취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계란의 넓은 방향 끝부분을 깨어 먹는 파에서 망명을 한 사람들은 블레훠스크 국왕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고 있으며, 또한 고향인 릴리퍼트에 있는 자기 파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도움과 격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지난 36개월 동안 두 나라 사이에는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54~55쪽)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멀게는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을 것인지,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을 것인지를 가지고 대립했다던 소문도 있는) 조선의 붕당정치에서부터 가깝게는 남쪽과 북쪽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이르기까지… 에이,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 걸리버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자. 국왕은 걸리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자유를 제공하는 대신, 릴리퍼트를 위해 차세대 1인승 주력 전투기 랩터 스텔스를 작전에 투입… 아니, 블뤠스크로 가서 그들의 함대를 무력화시켜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걸리버는 그렇게 한다. 730미터 거리의 해협을 걸어가 수많은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군함 50척을 나포해온 것이다. 하지만 국왕은 만족하지 않는다.


국왕의 야망이란 끝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블레훠스크의 영토 전체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어 다스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망명을 가 있는, 계란의 넓은 끝부분을 깨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처치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계란의 좁은 끝부분을 깨뜨리도록 강요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정치 문제로 일어나는 많은 분쟁을 일깨워 줌으로써 국왕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또한 자유롭고 용감한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일을 도울 수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61쪽)


순식간에 병력 대부분을 잃은 블레훠스크는 화평을 요청한다. 릴리퍼트 국왕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조약이 성립되고, 업무를 마무리한 대사들은 걸리버를 찾는다. 블레훠스크에 한 번 방문해줄 것을 부탁하는, 호의적인 만남이었다. 걸리버는 릴리퍼트 국왕에게 블레훠스크를 방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국왕의 부탁을 거절한 걸리버는 이미 궁정 내부의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으니, 이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계속하도록 하자.


그러던 어느 날, 왕궁에 화재가 발생한다. 소설을 읽다가 그대로 잠이 든 시녀 때문에 왕비의 침소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설이 문제다. 그러니 건강한 삶을 살고자하는  사람이라면 담배와 술과 소설을 멀리하는 게 좋다. 담배도 술도 소설도 멀리하지만 운이 없는 걸리버는 잽싸게 궁전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고작 골무만한 물통으로는 좀처럼 불길을 잡을 수 없다. 그는 묘안을 떠올린다.


어제 저녁 나는 ‘글리미그림’이라고 부르는 굉장히 맛있는 포도주를 잔뜩 마셨는데, 그것은 소변을 자주 보게 했었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소변을 보지 않았다. 불 옆에서 소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자니 몸속이 뜨거워지면서 곧 소변이 마려워지기 시작했다. 불길 가까이 다가선 나는 곧 참고 있던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꼭 필요한 곳을 겨냥해 방출했기 때문에 불은 나의 오줌으로 3분 만에 완전히 꺼지게 되었다. 완성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을 궁전의 나머지 부분은 화재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되었다. (65쪽)


진압에 성공한 걸리버. 그는 왕의 치하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릴리퍼트의 법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궁전 부근에서 소변을 보는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국왕은 대법원에 걸리버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왕비는 자신의 방에 오줌을 싼 무식한 거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옮긴 후 그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가뜩이나 좁은 릴리퍼트에서 걸리버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이윽고 걸리버를 시기하던 고위 관료들이 탄핵안을 제출한다. 왕궁에 소변을 봄으로써 국왕을 능멸했을 뿐 아니라, 블레훠스크가 적국임을 뻔히 알면서도 방문을 강행하려는 것으로 미루어 ‘종블’ 세력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주무대신과 해군사령관은 깊은 밤에 집에 불을 질러 참혹하게 태워 죽이자고 주장했다. 육군사령관은 2만 명의 무장한 군사에게 독화살을 쏘게 해 고통스럽게 죽이자고 주장했다. 걸리버의 친구인 비서실장은 그간의 공적을 감안해서라도 눈을 멀게 하는 정도로 마무리하자고 주장했지만 재무대신이 반대했다. 걸리버의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국왕의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종류의 새는 눈이 멀게 되었을 경우에 더욱 빨리, 그리고 많이 먹어서 살이 찌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식사량을 조금씩 줄여 결국에는 굶어 죽게 만들 것을 주장했다. 문득 전에 다니던 회사의 재무팀장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결국 걸리버를 굶겨 죽이기로 결정한 국왕은 신하들에게 계획을 은밀하게 실행할 것을 당부한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인이 그 소식을 듣지 못할 이유가 뭔가? 익명의 제보자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걸리버는 블레훠스크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곳에 한동안 머물며 국고를 먹어치운다. 블레훠스크의 재무대신에게는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영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걸리버. 마침 우연히 발견한 고장 난 보트도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거대한 식객을 보내버려야 한다는 온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보트를 수리하는데 성공한 걸리버는 드디어 고향을 향해 배를 띄운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의 귀환을 너무 상세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독자들을 괴롭히지는 않을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떤 종류의 우연과 행운을 통해, 1702년 4월 13일, 집을 떠난지 약 3년 만에 마침내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하지만 천성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으니, 그는 고작 두 달을 가족과 함께 보낸 후 다시금 수라트를 향하는 300톤짜리 상선 어드벤처 호에 오른다. 참으로 빌어먹을 운명이다. 그리하여 거인국에 표류하게 된 걸리버의 두 번째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프레시안 북스 2013. 4. 19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0419174820&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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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만우절이었지만 나는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교육을 받고 군가를 부르고 청소를 하기에도 바빴던 탓이다. 아마 건빵도 먹었겠지. 5주차에 접어든 훈련병이었던 우리는 인터넷이나 TV, 하다못해 신문도 없는 그곳에서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후의 일이다. 여자친구에게서 온 한 통의 편지. 조금씩 아껴 읽던 편지의 끝머리에서 그녀는 지나가듯 담담한 어투로 장국영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지난 만우절에 장국영이 어느 호텔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군복 주머니에 포크 숟가락을 넣은 채 흙바닥을 구르던 훈련병에게 그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만우절에 투신자살이라니, 너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반사적으로 <아비정전>을 떠올렸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라던 아비의 대사를. 나는 그것이 고약한 만우절 농담이라고 결론내렸다. 훈련소 동기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백 일 후, 첫 휴가를 나갈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막상 확인한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별다른 슬픔을 느낄 수 없었다. 애도는 이미 늦었고, 휴가는 너무 짧았던 것이다. 그 후로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짧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허둥지둥대던 새파란 훈련병은 어느덧 생활에 찌든 삼십 대 아저씨가 되었고, 상병이 될 무렵 편지로 이별을 통보했던 당시의 여자친구는 소식도 모르는 남남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장국영이라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앞에 두고 나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불평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은 우리를 장국영의 삶과 영화 속으로 안내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추억인 것이다. 나는 돌아보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이른 죽음과 너무 쉽게 잊어버린 우리의 지난 날들을. 한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비로소 절감한다.
















보그걸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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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지막 주말은 조금 이상했다. 토요일에는 결혼 한 선배의 신혼집에서 피로연을 하다(신혼여행을 다음날 떠난다고) 아주 먼 옛날 여자관계로 얽혔던 후배 두 명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 문짝이 떨어지고 벽이 구멍나고 피가 흐리고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있었고, 다음 날은 중국으로 돈 벌러 떠나는 후배를 환송하다 새벽녘 술에 취한 녀석이 이상한 옛날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문제의 결혼 피로연에서, 그 난장의 와중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과거랑 좀 이별하라고. 그게 뭐 그렇게 힘들어!" 그날도,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나는 내내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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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violetta 2013-04-19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랑은 이별하는 게 아니라 등 뒤에 달아두는 게 아닐까요. ^^
평소에 보이지 않지만 가끔 고 놈이 원숭이처럼
등이라는 나무에서 내려와서 탈인거죠.
그럴때 원숭이 얼굴 냅다 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단 세게 치셔야합니다.

평소에 글 잘 보고 있다고 중년팬으로써 감사 인사드립니다.

poptrash 2013-04-21 07:32   좋아요 0 | URL
문득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제목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가 떠오르네요. <인간 실격>의 "사람이 아니다. 원숭이다." 이런 문장도 떠오르고... 매번 지기만 하는 찰리 브라운네 야구팀에서 외야를 보고 있는, 역시 매번 공을 놓치고 변명을 늘어놓는 루시의 대사도 생각나요. "과거가 눈이 부셔서!"

저도 언젠가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과거는 쓰레기처럼 어디 몰래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