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지난 원고의 마지막을 너무 섣부르게 마무리한 것 같다. 특히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감히) 비틀어, “우리 모두는 고골의 콧구멍에서 나왔다”고 시부렁거린 부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내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찝찝한 게 마치 코를 풀다 코딱지가 입술에 묻은 기분이다. 그것도 모른 채 하루 종일 거리를 싸돌아다니다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11월 27일

아무래도 그 글이 <외투>파를 자극한 모양이다. 누군가 내게 메일을 보내 <외투>의 진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너 같은 놈은 코딱지나 다름없다고 했다. 물론 <코>파의 지원은 없었다. 내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코>파와 <외투>파의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붙게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다. 어차피 똑같은 놈들이다. <죽은 혼>은 너무 길어서 읽지 않고, <검찰관>은 희곡 형식이라 읽지 않는다는 멍청한 놈들일 뿐이다. 


11월 28일

코딱지라니. 그거야말로 우리 모두가 콧구멍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아닌가? 적어도 나는. 물론 그게 누구 콧구멍인가는 여전히 논쟁의 소지가 있긴 하겠지만(어쩌면 신은 거대한 콧구멍이 아닐까?) 그나저나 자꾸만 콧물이 나온다. 인중이 쓰리다. 날씨 탓이다. 외투를 장만해야 한다.


12월 1일 

겨울 외투를 구경하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다. 형형색색의 패딩들이 늘어선 진열대를 보고 있자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나를 골라서 입어보았다. 점원이 조용히 웃으며 내게 옷을 입혀주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너무 가볍고 포근해서 그 자리에서 스르륵 잠들 뻔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은, 그런 곳에서 잠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런 가격표를 보고도 태연히 잠들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돈을 주고 옷을 사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때야 나는 점원의 옅은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네가?’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점원을 향해 크게 콧방귀를 뀌어주고 백화점을 나섰다. 바람이 찼다.


12월 2일 

잠이 오지 않는다. 외투 때문이다. 어제 입었던 패딩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양을 세어 보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이 작은 무리를 이루자 어디선가 양치는 소년이 나타나 양털을 깎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외투를 만들었다. 하얀색 패딩이었다. 잠깐만, 어제 내가 입어 본 건 ‘구스 다운’이었는데? 아무려나, 양털로 만든 패딩 또한 너무나 포근해 보여서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백화점에 가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양털로 만든 패딩은 없냐고. 사실 ‘구스 다운’만 있으면 양털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냥 호기심이다.


12월 3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눈을 감으면 자꾸 거위와 오리와 양과 너구리와 여우와 곰과 알파카와 그 밖의 털과 가죽을 가진 동물들이라면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동물의 똥으로 가득한 것처럼 무거웠다. 그걸 치우려면 여러 명의 사육사가 필요할 거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사육사를 고용할 돈이 없었고,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인들의 SNS를 구경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너나없이 패딩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패딩을 지르고 지르고 지르고 질렀다. 왜 나는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거지? 누나 가슴에 삼천 원쯤은 있는 것처럼, 누구나 옷장에 ‘구스 다운’ 하나쯤은 있는 모양이었다. 나만 빼놓고? 


나는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패딩을 검색해보았다. 백화점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색상도, 디자인도,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콧물이 흘렀지만 닦는 것도 잊었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나를 언제나 겁먹게 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디자인은 대동소이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검색 결과, 많은 업체들이 유명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도용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그건 내가 백화점에서 입어본 바로 그 옷이었다). 휴, 다행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폭을 현저히 좁힐 수 있는 것이다. 색상이야 선호하는 색상이 있으니(‘고독한 남자의 그레이’, ‘남자라면 네이비’ 그리고 ‘진짜 사나이라면 카키’) 문제는 가격이었다. 십만 원대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가 났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하나하나 꼼꼼히 비교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건 정말이지 넓고도 깊은 세상이었고, 나는 하룻밤 사이 전문가가 된 것 같아 어쩐지 뿌듯했다. 콧물은 멈추지 않았다.


12월 4일 

밤을 꼬박 샌 것으로 모자라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더니 눈알이 빠질 것 같다. <외투>파의 일원에게 새로운 메일이 왔다. 정말로 시급한 문학적 문제는 단 하나, 바로 외투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알베르 카뮈라니, 도대체 이놈들의 독서는 어디에서 멈춘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격식을 갖춘 것처럼 시작한 메일은 이내 유치한 비방이 되었다. “코 풀다 콧구멍이 헐어서 패혈증에 걸려 뒈질 놈”이라는 부분에서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 잘못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코를 푼 후)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고 사과한 뒤, 이어 작금의 패딩적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과연 오리지널의 가치가 몇 배가 훌쩍 넘는 가격차를 상쇄할 정도로 의미 있느냐고도. 진심으로 궁금한 문제, 차라리 당면문제였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에게 답장이 왔다. 사뭇 정중한 어조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한 뒤, 녀석은 각 패딩의 충전재와 ‘필파워’의 차이를 조목조목 비교해갔다. 보기보다 깊은 지식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글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닌 어떤 패딩을 입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상세한 비교와 달리 결론은 단순했다. 단순해서 오히려 더욱 믿음이 가는 결론이었다. 역시 패딩이라면 캐나다 거위로 만든 오리지널을 입어야 한다는 것. 녀석은 이렇게 덧붙였다. 


“P.S. 고골의 <외투>를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당신의 패딩적 고뇌를 해결해 줄 단 하나의 소설입니다.” 


12월 5일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시 읽은 고골의 <외투>는 과연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 눈이 아파 아직 절반밖에는 읽지 못하긴 했지만(여전히 한 숨도 자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당면한 나의 패딩적 현실에 대한 해법을 일러주었다. 잊기 전에 정리해둔다.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불쌍한 양반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9급 관리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고골은 거장다운 필치로 그를 묘사한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고 키가 작은 그 관리는 약간 얽은 자국이 있는 불그스름한 얼굴에 눈에 띄게 시력이 안 좋았으며, 이마가 조금 벗겨지고, 양볼에 주름이 진 데다 치질 환자 같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뻬쩨르부르그 기후 탓인 것을. 관등에 관한 한(우리나라에서는 우선 광등부터 밝혀야 한다) 그는 만년 9급 관리였다. 아시다시피 밟혀도 끽소리 한번 못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훌륭한 습성이 있는 온갖 종류의 작가들이 마음껏 놀려대고 마구 비꼬는 바로 그 9급이다. (‘외투’, <빼쩨르부르그 이야기>(조주관 옮김, 민음사 펴냄) 56쪽)


그가 언제 어떤 시기에 관청에 들어왔는지, 또 그를 관직에 앉힌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기억할 수 없었다. 부장과 국장이 수없이 갈리는 동안,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와 같은 직위에서 서기로사 겉은 업무를 되풀이하였다. 나중에는 그가 제복을 입고 이마가 벗겨진 모습을 한 채 9급 관리가 되기 위해 이미 완전한 준비를 하고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다들 믿게 되었다. 관청에서는 모두 그를 아무렇게나 대했다. (58쪽)


관청에서 그가 담당하는 업무는 문서를 정서하는 일이었다. 젊은 관리들이 그를 조롱하고, 일흔 살 먹은 주인집 노파하고 언제 결혼 하냐며 놀려대고, 눈이 내린다며 종이 부스러기를 그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누군가 그의 팔을 건드리며 일을 방해할 때에야, 그제서야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건 어쩐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나는 다시금 콧물을 훔친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소시민이다. 세상은 왜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가? 그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말단 9급 관리라서? 작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이마가 벗겨진 가난뱅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그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뿐이었다면, 그는 반쯤은 체념하고 반쯤은 즐기며 남은 인생을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서를) 쓸 만큼 다 쓰고 나면 ‘내일은 또 무엇을 정서해야 하나?’하고 미리 내일을 상상해 보며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400루블의 급료로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한 인간의 평화로운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아마 또 그렇게 순조롭게 말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9급이든, 3급이든, 7급이든, 또 어떤 공직자이든, 관청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삶의 길에 뿌려진 갖가지 큰 불행이 없었다면 말이다. (62쪽)


문제는 그가 입고 있는 외투였다. 악명 높은 뻬쩨르부르그의 북풍에서 그가 의지하는 낡고 얇은 외투가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하도 덧대고 기워서 모양까지 이상해진 볼품없는 그것을 동료들은 “외투라는 점잖은 이름 대신에 실내복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것이 그를 동료들 사이에서 만만한 남자로, 마음껏 놀리고 조롱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외투적 현실이었다. 설상가상, 그것이 완전히 못 쓰게 되면서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고난이 시작된다. 망가진 외투적 현실. 다시 말해 ‘망함’. 놀란 그는 재봉사에게 달려가지만 주정뱅이 재봉사는 냉정한 외과의사의 시선으로 사형선고를 내린다. 


“안 되겠는데요, 못 고치겠어요. 옷이 완전히 망가졌네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왜 안 된다는 거야, 뻬뜨로비치?” 그의 목소리는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겨우 어깨가 좀 닳은 것뿐인데, 사실 덧댈 만한 천이 있지 않나……?”

“그래요, 천 같은 거야 뭐, 얼마든지 있지요, 하지만 꿰맬 수가 없어요. 너무 심하게 삭아서 바늘을 갖다 대면 찢어질걸요.”

“찢어지면 어때, 또 즉시 기우면 되지.”

“덧댈 수가 없어요. 받쳐주는 게 아니라 닳아버린 옷감을 더 잡아당길 테니까요. 말이 양복지지 바람만 불어보세요, 금방 갈가리 찢어질 텐데요.”

“그래도, 어떻게 해보게.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내 참……!”

뻬뜨로비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손댈 수가 없어요. 완전히 엉망이에요. 이제 겨울 추위도 다가오고 할 테니 잘라서 각반이나 만들어 쓰는 게 나아요. 추울 땐 양말만으론 부족할 테니까.” (67쪽)


재봉사는 그에게 이 기회에 새 외투를 장만하라고 말한다. 가격은 50루블짜리 석 장, 즉 150루블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잠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또한 그런 남자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콧물도 조금 흘렸을 것이다. 


나는 초조했다. 이 가련한 남자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아니,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꼭 나처럼 느껴……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나는 그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 그래, 공감능력이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주인공답게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는 술주정뱅이 이웃에 대한 이해와 가계에 대한 산수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뻬뜨로비치가 80루블을 받고도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80루블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단 말인가? (*중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에게는 평소에 잔돈을 모아두는 저금통이 있었고, 몇 년간 모아온 그 돈이 대략 40루블 정도 될 거라는 계산을 한다.) 절반은 이미 수중에 있으나, 나머지 반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40루블이나 되는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적어도 1년간만이라도 생활비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도 끊고, 저녁에 촛불도 켜지 않고 꼭 필요할 때는 주인 여자 방에 있는 촛불을 사용하면 된다. 길에서는 되도록 살살 걸어 다니고, 돌과 석판을 밟을 때는 조심조심 발끝으로 걷다시피 하여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주의하고,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세탁부에게 맡기는 횟수를 줄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속옷 대신 오래됐지만 아직 쓸 만한 목면 가운만 걸치고 살기로 했다. (72쪽)


아, 이 불행한 사람! 이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콧물은 킁킁 남몰래 삼킬 수 있지만 눈물은 도로 삼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도. 고작 새 외투를 사기 위해 1년 동안이나 그런 궁상을 떨어야 하다니,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정신의 승리다. 


솔직히 말해 처음엔 그런 내핍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더니 어느덧 순조롭게 되었다. 나중엔 저녁을 굶는 것이 완전히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 대신에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존재는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으며,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하기로 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삶의 동반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동반자란 다름이 아니라 두꺼운 솜과 해지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외투였던 것이다. 그는 웬일인지 생기가 돌았고, 이제 스스로 목표를 정한 사람처럼 성격이 보다 강인해졌다. 그의 얼굴과 행동에서 보이던 불안과 우유부단함이,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던 불확실한 특징이 이제 사라졌다. 때때로 눈에서 불꽃이 보였고, 머릿속으로는 아주 뻔뻔스럽고 대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 옷깃에다가 담비가죽을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73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는 그런 궁핍한 생활을 이겨냈고, 생각보다 빨리, 고작 6개월 만에, 생각보다 많이 들어온 보너스의 도움으로, 필요한 80루블을 모두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새 외투를 구입한다! 윤이 반지르르하고 몸에도 꼭 맞는 따뜻한 새 외투가 그에게도 생긴 것이다! 만세! 


다음 날,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그는 마치 축제를 즐기듯 새 외투를 뽐내며 걸어갔다. 고골에 따르면 사실 새 외투가 좋은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관청에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동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새 외투를 구경하며 따뜻하게 축하해줬다. 여전히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말단 9급 관리에 작고 볼품없는 외모와 이마까지 벗겨진 가난뱅이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였지만, 새 외투를 구입함으로써 마침내 그들의 동료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들은 새 외투를 위해 기념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수줍게 거절하자 계장대리가 대신 나서 축하 파티를 열어주기로 했다. 바야흐로 새 외투와 함께 새 인생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여기까지 읽었다. 그리고 나는 <외투>파의 친절한 사내가 내게 하려던 말을 이해했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패딩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패딩을 사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게는 돈이 없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처럼 청승을 떨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걱정 없다. 내게는 신용카드가 있다. 12개월 할부로 결제하면 그만이다.


12월 6일

간만에 단잠을 잤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멋진 꿈도 꾸었던 것 같다. 간만에 생기가 돌았고 강인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바람이 찼지만 그건 나를 오히려 더욱 들뜨게 했다. 웬일인지 콧물도 흐르지 않았다. 


백화점에는 예의 점원이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일전에 입었던 그것을 다시 한 번 입혀주었다. 똑같은 미소와 함께. 하지만 이제 내게 그의 미소는 더없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의 친절한 도움으로 패딩을 입으며 왈칵, 눈물이 터질 뻔했다. 며칠 동안 내가 그리던 패딩적 이상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여전히 포근하며 따뜻했으며,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가벼워 마치 정말로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비유적 의미에서의 비행이라면 실제로 가능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외투>의 교훈이었다. 


지체할 것 없다. 나는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가 물었다. “12개월로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보너스라도 받는다면 6개월로 끊어도 되겠지만, 제가 프리랜서라서.” 그러자 그가 예의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은 분명 <외투>를 읽으셨겠네요. 그렇죠?”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게 패딩이 든 쇼핑백을 건네며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손님, 혹시 그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는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명색이 서평가인데 끝까지 읽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2월 6일 (2)

참지 못하고 지하철 화장실에 들러 패딩을 입었다.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패딩적 현실을 느끼고 싶었다. 과연, 고골이 옳았다. 새로운 패딩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나는 더럽게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럽게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땀이 났지만 벗지 않았다. 앞으로는 사우나를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2월 6일 (3)

집에 돌아오자마자 SNS에 ‘착샷’을 올렸다. 친구들의 축하 멘션에 일일이 답을 해주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내일은 ‘요설’ 마감이 있는 날이라 일찍 잠을 자야만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불을 켜고 <외투>를 마저 읽었다. 그런데 잠깐, 뭔가 이상하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걸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잠깐 생각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12월 7일, 마감 당일

밤새 <외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혹시라도 내가 잘 못 읽었나 싶어 다시 읽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앞에 새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새로운 외투적 현실과 함께, 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조금 더 사교적이 되어 주말이면 함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그러다 여자를 소개받아 결혼도 하고, 그런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었다고.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그날, 그러니까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축하 파티까지 열게 된 그날,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외투를 강탈당한다. 파티 장에서 늦게까지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던 그를 괴한이 덮쳤다. 그들은 무자비하게도 그에게서 외투를 빼앗아갔고, 그는 잠시 기절한 후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후두염에 걸렸다. 너무 낙담한 나머지 멍하니 입을 열고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죽어 유령이 된다. 밤마다 거리를 떠돌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는 불쌍한 유령이……. 그것이 그의 외투적 미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패딩적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날, 마감 시한을 얼마 남기지 않은 몇 시쯤

메일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콧물이 흘러내려 하마터면 질식사해 죽을 뻔했다. 아니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나는 코를 세게 풀었다. 인중이 또 쓰렸다. 

두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하나는 프레시안 담당기자에게서. ‘^^’라는 이모티콘과 함께 원고를 언제 줄 것인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아니, 과연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메일은 <외투>파의 일원에게 온 것이었다. 그는 내게 옷은 마음에 드는지, 따뜻한지 묻더니 곧이어 물론 마음에 들고 따뜻하겠지 자답했다. 이놈은 미친놈인가? 그런데 이 녀석이 내가 새 패딩을 산 것을 어떻게 알지?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계속해서 메일을 읽었다. 녀석은 내가 12개월로 패딩을 구입한 것까지 알고 있었다. 녀석이 바로 백화점의 점원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정중하게, 그러나 어딘가 조롱하는 투로, 메일을 마무리 지었다. 새로운 패딩적 현실에 적응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P.S. <외투>는 다시금 끝까지 읽어보셨나요? 부디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몇 시인지도. 아직 마감은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시(時)

아까부터 전화기가 계속 울린다. 처음에는 카톡이, 다음에는 문자가, 그리고 다음에는 전화가 왔다.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마감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다. 없고 말고. 새로운 나의 패딩적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나의 패딩적 미래는 어떤가? 그러니까 앞으로 12개월 동안,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궁핍은 무엇인가? 앞으로 몇 개의 원고를 더 써야 하는가? 겨울은 고작 세 달 남짓일 뿐인데? 원고를 써야 할부금을 갚을 수 있는데, 당장 마감을 넘기지 못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얼마나 많은 청탁과 원고가, 얼마나 많은 거위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마감과 사과가, 얼마나 많은 헛소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거위가 필요할까? 


알 수 없는 나는 패딩을 입는다. 따뜻하고 포근한 패딩 속에 숨어 이 모든 겨울과 마감과 기나긴 할부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 끝 -


















PRESSIAN BOOKS 169호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1206181247&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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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연재 1년을 맞이한 요설 2013년 마지막 특별호. 일기의 화자와 상관없는 나는 엊그제 인터넷을 통해 패딩을 구입했고 패딩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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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2-11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이 춥던데 패딩 제대로 입어볼 기회이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연말 모임은 조심하셔야 할 것 갓습니다.
담뱃불 떨어져서 홀랑 타는 경우도 있더라고요..헤헤..

poptrash 2013-12-11 22:20   좋아요 0 | URL
고골이 말한 그대로,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는 두 가지 장점이 있더라고요. 덕분에 추운줄도 모르고 즐겁게 쏘다녔습니다 ㅎㅎ

왕재윤아빠 2014-01-1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 작품 중 코와 외투를 인상 깊게 보았는데, 패딩 (광인)이야기까지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너무 잘 쓰신 서평, 일기, 재창작 소설 잘 봤습니다.

사무실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참고로 저 패딩 만들어 파는 회사 다닙니다.
보는 내내 점원처럼 씨익 웃었습니다.

저도 고골 글을 보고 쓴 '잠바' 라는 습작 소설이 있어 보내드리고 싶은데, 관심 있으시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읽어 주신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poptrash 2018-03-15 08:22   좋아요 0 | URL
앗, 패딩 회사에 다니신다니, 이거 대단한 우연이네요. ㅎㅎ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통한 말씀도 드릴 순 없겠지만 보내주시면 즐겁게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토끼 2014-07-18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마다 사도 사도 또 사게 되는 외투네요..정말 재정에 빵꾸나는 짓..ㅜ

poptrash 2014-07-29 01:26   좋아요 0 | URL
사계절... 저주한다... ㅠ
 

1

최근 책과 나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표현을 빌자면 “그리스 선박왕과 그 아내의 관계, 다시 말해 아내를 사랑하는 유부남이지만 아내를 최대한 안 보려는 관계” 같다고나 할까.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도 읽지 않은 채 말과 글의 침묵 속에서 보내는, 텅 비었지만 그 자체로 충만한 시간…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잠깐의 시간, 시간, 시간들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유부남들이 꿈꾸는 것처럼.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밥벌이 탓이다. 어디서 무얼 하건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는, 읽고 써야하는 책들의 존재가 나를 심란하게 한다. 결국 억지로 책을 집어 들지만, 점점 소원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 내게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잠 못 드는 새벽, 책들에 둘러싸인 채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느덧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책들의 부피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책과 나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한 마디로 “나는 침대, 너는 책장”)’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루가 멀다고 인터넷 서점을 클릭한 건 나였고, 숨어 있는 헌책방들을 찾아 발품을 판 것도 나였으니까(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영문도 모른 채 두드려 맞을 것이다). 잠도 잊은 채 울고 웃으며 하얗게 지새던 밤들이 기억난다. 행여나 삐뚤어질까 정성스레 밑줄을 긋고, 조금씩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워 이미 읽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던 날도 많았다. 더는 아니다. 생활이 우리를 집어삼켰고, 어느덧 우리는 같은 통장을 두고 고민하는(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하고 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2

이렇게 쓰고 보니 이 무슨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심한 유부남의 일기인가 싶다. 나는 중년도 아니고 유부남도 아니다. 한심하긴 하지만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비유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는 사실이다. 고삐를 똑바로 쥐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가고 마는 것이다 - 캉디드를 자꾸만 사형장으로 데려가던 그의 말(馬)처럼.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말의 행동에 캉디드는 불안에 떨었고, 그 말이 원래 장의사의 것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진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비유 또한 장의사의 비유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때때로 어떤 비유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모든 비유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법이다. 오늘의 진실은 이렇다 : 나와 책은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내게는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처럼 거창한 이름도, 어마어마한 재산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처지를, 조건을, 혹은 입장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거부한 채 끊임없이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자. 더는 책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반적인 서평을 기대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것이 오늘 나의 입장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쯤에서 장사를 접겠습니다, 그만 돌아가 주시길, 4주 후에 뵙겠습니다.


3

어라, 아직도 안 가셨네. 곤란한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손님들의 요구를 들어드린답시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엉터리 글을 짓느니, 물론 손님도 그런 걸 바라진 않으시겠죠, 대신 제 것보다 훨씬 훌륭한 서평들을 소개해드리는 걸로요. 글 팔아서 장사하는 입장에서야 썩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네요. 네, 뭐, 다 사람 사는 일이니까요. 지금 당장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이모부의 서재>를 쳐보세요. 저자 이름은 임호부입니다. 네, 임 호 부. 아니, 책 제목은 이모부고요. 원하신다면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가셔도 좋겠지만, 큰 서점에 가야 할 거예요. 작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고, 그리 많은 부수를 찍지도 않았다고 하니까요. 네? 큰 출판사에서 많이 찍어야 좋은 책 아니냐고요? 세상에, 손님에게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지금 당장이요.


4

임호부는 ‘입장들’이라는 꼭지를 이렇게 시작한다.


입장(立場)은 입장(入場)을 부른다. 말장난이다. 설 입(立)자와 들 입(入)자가 공통적으로 거느린 마당 장(場)을 떠올리다가 문득 입장에 가장 어울리는 장면은 결혼식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입장(立場)은 결혼식장에서 하객을 앞에 두고 신랑 혹은 신부로서 혼인서약이 이루어질 연단을 바라보며 ‘서는 것’이고, 입장(入場)은 신랑 신부로서의 입장이 분명해진 뒤 연단을 향해 ‘들어서는 것’이다. 입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다. (183쪽)


그는 이어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분명한 입장을 갖지 못하는 것, 즉 어느 쪽도 제대로 바라보고 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입장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주저하는 것일 뿐이다.”(184쪽) 그는 입장(立場)이 분명한 사람이고, 그것은 어디에도 입장(入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유부단’이라는 말로 치부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소설의 입장(立場)은 어느 쪽으로도 입장(入場)하지 않을 때 가장 분명해진다”(186쪽)는 그의 말처럼, 그것은 문학의 입장이며 동시에 독자의 입장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자(讀者)로서의 독자(獨子)의 입장이라고 할까. 또는 독자(獨子)로서의 독자(讀者)의 입장이라고 해도 좋다. 어차피 말장난이다.


하지만 모든 말장난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는 법이다. 그는 책을 읽겠다는 입장을 취하자마자 책 속으로 곧장 입장하는 행복한 독자는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차라리 불행한 독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입장이 그의 글을 특별하게 만든다. 정치한 분석을 한다거나 방대한 정보를 준다거나 투명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아니다. 그런 말이 아니다. 다만 그는, 책이 제공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자신을 의탁하기를 끈질기게 거부하는 그는, 더 많은 것을 본다. 김훈의 소설을 읽으며 병상 옆자리에서 “나이 아흔이나 돼서 병원에 누워 남의 손에 의탁하고 있으려니까 사는 게 참 치사하다, 그치, 엄마?”라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여전히 만연한 합의와 치욕을 보고, 정성일의 평론을 읽으며 곳곳에 숨겨진 (열광하는 자의) 숨 가쁜 헐떡임과 감탄사를 읽는다. 마치 외주교정자로서 그가 책과 거리를 둔 채 각종 오탈자와 비문을 읽어내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그의 글은 사랑에 빠진 열정적인 연인보다는, 특별할 것도 없고 때론 지루한 결혼생활을 담담하게 이어가는 노부부를 닮았다고. 이때 중요한 것은 거리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거리를 가늠하는 감각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를 돌아봐는 세심함이 필요하며, 세상 속에 자신들의 입장을 매일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용기. 치사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모부의 서재>를 가리켜 용기의 기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나는 그렇게 말해야겠다. 책 바깥에 ‘현실’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멍청이들은 엿이나 처먹으라지.


서평집은 대개 세 종류로 나뉜다. 독자를 향해 쓴 것, 다른 저자들을 향해 쓴 것 그리고 저자 자신을 향해 쓴 것, 첫 번째 경우는 대개 독자를 통쾌하게 해주거나 최소한 독자에게 유용하다. 반면 거론된 저자들은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장정일의 <독서일기>와 로쟈의 번역비평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 경우는 독자는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거론된 책의 저자는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든다(이른바 주례비평으로 채워진 비평집들이 이 경우다). 세 번째 경우는 저자의 만족으로 그친다(서평 형식으로 쓰인 에세이집들이 대개 그렇다). 책은 소통의 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자와 독자와 평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셈이다. (67쪽)


임호부의 서평은 어느 부류에도 들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책을 향해 쓴 것이라고 할까.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책이라는 ‘장(場)’을 향한 것이다. 그곳에는 그가 읽은 모든 책들이 있고, 나와 당신이 읽었고 또 읽을 모든 책들이 있다. 책들을 향해 세워진 그의 입장이 있고, 그 입장에 선 채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입장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아무려나, 마침내 ‘저자’라는 입장에 자신을 세운 그의 입장을 환영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한다면 나는 아마 새로운 밥벌이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 덧붙임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모부의 서재>는 인터넷 서점의 서재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그간 썼던 글을 추려 모은 책이다. 임호부라는 이름은 필명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외주 교정 일을 시작하며 출판사 직원들이(“식당에 가면 주인아주머니에게 무람없이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모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을 어느 신입 편집자가 이름으로 착각하고 교정지가 담긴 봉투 겉면에 ‘임호부께’라고 써서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임호부가 되었고, 그의 첫 책은 <이모부의 서재>가 되었다.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79


--


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옮긴다. <이모부의 서재>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썼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이 글은 '저자의 만족'에 그치는 글이겠지만, 아무려나, 기분이 좋다.


근데 이제 보니 '캉디드의 말'이 아니라 '자크의 말'인데 헷갈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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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1-09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올려주십시요 !!

poptrash 2013-11-13 00:44   좋아요 0 | URL
그러겠습니다 ㅠㅠ !!
 
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서서비행>보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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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15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부의 서재>는 아직 구입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서서비행>이 좋습니다. 좋은 책이에요. ^^

poptrash 2013-11-25 01: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모부의 서재>도 얼른 구입하세요! ㅎㅎ
 

찰스 부코스키에 대해 말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다. “예전에 말이야, 찰스 부코스키라는 분이 계셨어. 부코스키. 술과 여자를 양팔에 끼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온갖 일자리를 전전하신 분이지.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너 고용주야? 나 부코스키야…” 같은 대사를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마 술 때문이겠지. 나는 취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니라면 그런 헛소리를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말이야 아무래도 좋다. 잔과 잔 사이를 채우는 의미없는 충전재일 뿐이다. 우리는 양껏 마시고, 마시고, 마신 후… 조금 더 마신다. 언젠가 부코스키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부코스키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절판된 부코스키의 책을 찾아 헌책방을 헤매던 어느 날의 소회를 담은 글이다. 소회, 라고 하니 어쩐지 제법 노회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아무려나, 나는 이렇게 썼다.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이다. 이십 대 초반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지만 출판계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싸구려 일자리와 허름한 하숙집을 전전하던 남자. ‘죽을 때까지 매달 100달러의 월급’을 보장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에 마흔 아홉의 나이에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남자.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단 세 권뿐이다. <시인의 여자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팩토텀>. 그나마도 앞의 두 권은 이미 절판되어 게으른 독자들을 애태우고 있다…(중략)”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니 그사이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먼저, 부코스키의 소설 두 권이 출간되었다. 데뷔작인 <우체국>과 <시인의 여자들>을 새롭게 번역한 <여자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술과 여자와 경마와 잡일로 인생을 탕진하던 청년(<팩토텀>)에서, 실수로 들어간 우체국에서 십수 년간 일하며 술과 여자와 경마로 시름을 달래던 중년(<우체국>)을 거쳐, 술꾼들과 되바라진 청년들의 시인이 되어 술과 여자와 경마로 인생을 즐기는 노년(<여자들>)에 이르는 부코스키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한 친구가 내게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선물해준 일이 있었다.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마땅히 보답할 게 없어 그냥 감사하는 마음만 주었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언제나 넉넉히 준비해두는 편이다. 만약 당신이 부코스키에 대한 원고가 들어 있는 졸저 <서서비행>을 구입한다면 페이지마다 묻어 있는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해야 할 일은 또 있다. 지난해 출간된 도서 중 아깝게 묻힌 50권을 선정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서평을 쓰는 기획의 한 꼭지를 맡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나는 그냥 부코스키의 <우체국>에 대해서 쓰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생활 음주인으로서의 꾸준한 노력에 이제야 보답이 돌아온 셈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해당 원고는 <아까운 책 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이 팔려도 추가 인세는 없으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느끼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야 그저 자기 책을 광고하는 얼간이가 아닌가? (물론 나는 얼간이가 맞다.) 따라서 마지막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내가 모르던 부코스키 번역본이 한 권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993년에 출간된 <미친 시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이었다. 나는 그 즉시 헌책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뒤지고 뒤지고 뒤졌다. 그리고 결국 2천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는 그 책을 찾아냈다!


은전 한 닢이 그렇게도 갖고 싶었다던 상해의 늙은 거지처럼 책을 품에 꼭 안고 집에 돌아온 나는, 다른 모든 일들을 미룬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비록 낡고 상한 헌책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넘겼던 페이지가 다시 나오는 게 아닌가. 178페이지 다음에 163페이지가 나오더니 다시 178페이지까지 차례대로 이어진 후 곧바로 195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여덟 장이 없는 파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나. 허탈해진 나는 씁쓸히 웃으며 술을 따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코스키와 그의 인생을, 그의 술과 여자와 경마와 직업과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결국 그가 남긴 마지막 말에 생각이 닿았다. 그의 묘비명이기도 한 그 말은, 지금까지 내가 부코스키에 대해 쓴 모든 글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했다. 그건 이런 말이었다.


“애쓰지 마라(Don’t try).”


행복한동행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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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까운 책 2013>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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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세상 모든 똥구멍.
    from 새빨간 활 2013-05-13 23:13 
    이 세상 모든 똥구멍 !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 - 찰스부코스키, POST OFFICE 지상파 방송 3사 프로그램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경멸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 생활의달인 > 이다. 일종의 < 육체 노동 만만세 !> 전파 방송이다. 자전거 짐칸에 탑처럼 상자를 쌓고 달리기, 뚝배기가 담긴 쟁반을7층 다보탑 높이로 쌓아 머리에 이고 배달하기 그리고 중국 음식을 최단 시간 안에 배달하는 배달의 기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부코스키답습니다. 저 우체국 읽고나서 유레카를 외쳤어요. 바로 이거다 !!!!!!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흑흑....



어라 ?! 링크'를 건다는 게 먼댓글로 됬네요. 링크가 먼뎃글인가요 ? ㅎㅎㅎㅎㅎ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걸어두렵니다.... ㅎㅎ. 이 우체국이란 소설 대박났으면 좋겠습니다.


poptrash 2013-05-14 00:58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처음 팩토텀을 읽고 같은 생각을 했어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흑흑... -> 눈물까지 포함해 바로 요 반응.

빨리 대박, 중박 아니 소박이라도 나서 부코스키 다른 소설도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위먹은영구 2013-07-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업데이트 원합니다! 방에 에어콘 세게 틀어놓고 하나 쓰시죠!

poptrash 2013-07-05 04:20   좋아요 0 | URL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서재를 찾아주셔서 영광... 안 그래도 어제 술 취해서 자다가 기분 좋게 일어나니 밤새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더라고. 그래서 당분간 에어컨은 틀지 않는 것으로... 근데 정말 이미 쓴 원고들 옮기는 것도 귀찮은 여름이네. 비와서 야구도 안 하고 흑흑

파파 2013-12-1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코우스키를 아는 분과는 어째 금방 친구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죠. 글 잘 읽고 갑니다.

poptrash 2013-12-11 22:22   좋아요 0 | URL
부코우스키를 아는 분과 만나면 일단 술 한 잔 해야겠죠 ㅎㅎ 반갑습니다.
 

제9장 거인국에 남겨진 걸리버의 수난이 그려진다. 거대한 젖가슴에 관한 이야기와 걸리버가 떠나온 대한민…, 아니, 유럽에 대한 거인왕의 비판이 쏟아진다. 



1702년 6월 20일, 걸리버는 새로운 항해에 나선다. 소인국에서 돌아온 지 고작 두 달 만의 일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아들과 아직 어린 딸,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를 두고 떠나는 그의 나이는 마흔. 그러니 서둘러 집을 나서는 이유 같은 건 묻지 않기로 하자.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좀처럼 퇴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 부장님에게 이유를 묻는 게 실례인 것과 마찬가지다.


“운명의 여신에게서 험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점지 받은” 걸리버의 항해는 이번에도 순탄치 않았다. 처음엔 배에 물이 새더니 수리를 위해 정박한 곳에서 선장이 학질에 걸리고, 이제 겨우 항해를 재개하나 싶던 차에 폭풍에 휘말린 것이다. 항로에서 2400킬로미터나 벗어난 곳으로 떠밀려 간 어드벤처 호. 낯선 바다를 헤매던 그들은 커다란 섬을 발견하고, 물을 찾기 위해 열 명의 무장 선원을 보낸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함께 가기를 자청한 걸리버는 과연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낸다. 자신보다 12배나 큰 거인들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선원들이 물을 찾는 동안 멀리 떨어진 해안가를 서성이던 걸리버는 거인들의 섬에 홀로 남겨진다. 과부가 될 아내와 아버지를 여의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긴 걸리버. 떠나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으면 오죽 좋았겠냐만, 절절한 가족애는 언제나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솟아오르는 법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진정으로 걸리버를 사로잡은 생각은 따로 있었으니 다름 아닌 소인들의 나라, 릴리퍼트의 추억이다. 


작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존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블레훼스크의 함대를 한 손으로 끌고 올 수 있었다. 몇 백만 명이 그들의 후손에게 증언한다고 한들 좀처럼 믿을 수 없을 만한 기적들을 나는 이룩했던 것이다. 릴리퍼트의 후손들은 이 이야기를 아마도 믿지 않을 것이다. 릴리퍼트의 작은 사람 하나가 영국에 온 것처럼, 이 나라에서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보일지에 대해 생각하니 무척이나 억울했다. (<걸리버 여행기>(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펴냄) 106쪽)


이제 우리는 걸리버가 그토록 항해를 서두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서 제법 거물 행세를 하던 걸리버다. 비록 눈칫밥을 먹긴 했지만 누구보다 커다란 ‘남성’으로서의 우월감 속에서 삼십 대의 마지막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니 평범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결국 사이즈가 문제였던 것이다. 


비탄에 잠겨있는, 한때 거대했으나 다시 평범해졌고 어느새 쪼그라든 남성을 발견한 것은 시골의 한 농부다. 작지만 위험한 동물을 발견했을 때처럼 잠시 망설이던 농부는 엄지와 검지로 걸리버의 허리를 잡고는 관찰하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존재와 마주한 불혹의 걸리버는, 비슷한 경우에 많은 중년의 남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심약한 성정이 다시금 그의 목숨을 구한다.


큰 사람이 나의 옆구리를 세차게 잡고 있었으나 그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될까 봐 무척 두려웠다. 그래서 2미터 정도의 공중에서 탈출을 위한 몸부림은 전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이라고는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자세로 두 손을 모은 채, 지금 처한 상황에 어울리도록 겸손하고 서글픈 어조로 몇 마디 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큰 사람은 나의 목소리와 행동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특히 내가 사람처럼 분명한 발음으로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매우 놀라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108쪽)


걸리버를 집으로 데려가는 농부. 처음에는 영국 여자가 두꺼비나 거미를 보고 놀라듯 소스라쳤던 농부의 아내도 점차 그를 귀여워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작고 약한 것을 예뻐하는 여성적인 취향 탓으로 돌린다면 걸리버의 노고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식사에 앞서 정중한 영어로 “부인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외치거나,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모자를 예절 바르게 머리 위로 흔들며 만세 삼창을 하는 등 걸리버 또한 자신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으니, 그는 진정 사랑받는 법을 아는 남자였던 셈이다.


그렇게 거인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장난꾸러기 막내아들과 암소보다 세 배는 큰 고양이, 코끼리를 네 마리나 합쳐 놓은 것만큼 큰 개가 함께하는 아슬아슬한 생활이었지만 걸리버는 조금씩 적응해간다. 자진해서 농부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는(“나는 이제부터 농부를 주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참으로 충직한 영국인의 표본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그중에서도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유모의 젖가슴이다.


솔직히 나는 이제까지 유모의 거대한 젖가슴보다 더 구역질나는 물체를 본 적이 없었다. 궁금한 독자들에게 젖가슴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색깔에 대해 무엇인가 알려 주어야 할 텐데, 나는 그 젖가슴과 비교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가슴에서 180센티미터 정도 솟아오른 것이었다. 젖가슴의 둘레는 5미터나 됐다. 젖꼭지는 내 머리 크기의 절반 정도 되었고, 양쪽 젖가슴의 빛깔이며 그 주변에 나 있는 여러 개의 점과 여드름, 주근깨들이 무척 지저분하여 그보다 더 구역질 날 수 없을 지경이었다. (113쪽)


순식간에 단란한 시골 가정의 애완동물로 전락한 걸리버.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을까? 물론 있다. 릴리퍼트에서 표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생리적인 욕구를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변이 몹시 급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아무리 급해도 이것만은 누가 대신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농부의 아내에게 마루에 내려놓아 달라는 뜻을 전하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나를 마루에 내려놓았다.


나는 부끄러워 도저히 입으로 얘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을 가리키며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는 시늉을 했다. 친절한 농부의 아내는 노력한 끝에 드디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손으로 다시 나를 잡은 그녀는 정원으로 가서 놓아주었다. 나는 200미터 정도를 걸어서 구석으로 갔다. 농부의 아내에게 나를 보거나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을 하고는 괭이밥 잎사귀 사이로 몸을 숨기고 일을 보았다. (116쪽)


하지만 걸리버가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얼마나 고상한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은 걸리버에게 영광 있으리.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고 언급하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분변학적 취향에도 마땅한 영광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어리석고 천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아주 사소한 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매사를 깊이 사고하려는 현명한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야말로 자신의 사고와 상상력을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인으로 생활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는 말은 한번쯤 숙고할 가치가 있다. 당신이 소설가를 꿈꾼다면(물론 아니기를 바란다) 더더욱. 제 아무리 고뇌에 가득 찬 중산층 남성이라 한들, 사람은 똥을 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법이다.


얼마 후,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작은 동물이 있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진다. 걸리버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오는 이웃들. 이에 주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장에 걸리버를 데려가 관람료를 받고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걸리버는 장을 돌아다니며 몰려든 구경꾼들에게 연설하고, 골무에 술을 담아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소리치며 건배를 청하고, 기사를 흉내 내 칼을 휘두르는 한편 밀짚을 상대로 창술을 펼치는 식의 공연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되풀이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쇼비즈니스의 시초라 하겠다.


무리한 일정 탓에 걸리버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하게 야위었지만, 주인은 우리의 작은 스타가 죽기 전에 한몫 챙기겠다는 일념으로 그를 더욱 혹사시킬 뿐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연예 기획사의 운영 방침은 300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어느덧 소문은 왕궁까지 퍼져 걸리버는 왕비 앞에서 특별 공연을 펼친다. 왕비는 걸리버가 마음에 들었고, 곁에 두기를 원했다. 어차피 얼마 안 가 걸리버가 죽을 거라고 확신한 농부는 기꺼이 그를 바친다. 물론 두둑한 사례를 챙기는 것은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왕궁에서의 생활이 펼쳐진다. 릴리퍼트에 이어 다시금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걸리버. 그는 특유의 매력을 뽐내며(“조그마한 것이 오밀조밀하게 먹는 모습만 봐도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내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너그럽고 지적인 왕은 낯선 나라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작은 ‘생물’과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걸리버는 그에게 유럽의 관습, 종교, 법률, 정치, 학문 등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무역과 육지나 바다에서의 전쟁, 종교 분열, 그리고 정당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을 때 왕은 지금까지 받았던 교육에 의한 편견으로 좀처럼 나를 신용하려 들지 않았다. 왕은 오른손으로 나를 잡고 왼손으로 등을 두드리며 한바탕 크게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그대는 휘그당인가 토리당인가’(* ‘그대는 새누리당인가 민주당인가’하고 묻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하고 농담조로 물었다. 왕은 로열 서브린 호의 돛만큼 커다란, 하얀색의 왕 홀을 가지고 뒤에 기립해 있는 대신을 향해 몸을 돌리고 ‘인간의 위대함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와 같이 작은 벌레도 그것을 흉내낼 수 있다니 말이다. (132쪽)


사랑하는 조국이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만 별 수 없다. 그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일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를 분노하게 하는 건 왕궁의 난쟁이다. 키가 고작 9미터도 되지 않았던 그 작은 인간은 왕비의 총애를 빼앗긴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걸리버를 괴롭혔던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것들을 일일이 늘어놓아 선량한 독자들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사례는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이를테면 


시녀들은 가끔씩 나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발가벗기고는 가슴에 꼭 껴안아 주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이 아주 싫었다. 그녀들의 피부에서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148쪽)


라거나, 


시녀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쾌활하며 장난을 좋아하는, 열여섯 살짜리 시녀는 때때로 나를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젖꼭지를 타고 앉게 했다. 온갖 짓궂은 장난을 당했지만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149쪽)


같은 부분이다. 인용하는 사람에게도 즐거울 권리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쉽게도 걸리버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박민규의 단편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단편집 <더블>(창비 펴냄)에 수록)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자동차를 팔기 위해 급기야 화성(Mars)까지 간 세일즈맨이 거대한 외계 ‘복부인’을 만나는 이야기다. 차를 본 그녀가 “저거… 꼭 좆같이 생겼네”라고 콩떡같이 말하자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차를 한 대라도 더 팔아야만 하는 주인공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갑니다 누님!”이라고 외친 후, 그대로 차를 몰아 “전진 후진… 전진 후진… 좌삼삼 우삼삼…” 한다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21세기 버전의 <걸리버 여행기>라 하겠다.


(이쯤에서 나는 쓰기를, 당신은 읽기를 잠시 멈추는 것도 좋겠다. 어쩐지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충분히 상상하셨는지? 그럼 다시 걸리버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지만, 사실 2부의 핵심은 걸리버와 왕의 대화다. 비록 똑똑한 벌레 취급을 당하긴 하지만, 걸리버는 인류를 대표해 왕에게 유럽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느 날, 용기를 내 “이성은 몸이 크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로 유럽에서는 키가 큰 사람들이 거의 이성이 부족하다”고 허두를 꺼낸 걸리버는, 161쪽부터 166쪽까지 무려 5페이지에 걸쳐 유럽의 사회제도와 역사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물론 나는 자세한 내용을 시시콜콜 늘어놓을 생각이 없는데, 궁금한 독자는 정치/사회 분야의 뉴스를 검색할 일이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한 어느 수행원의 기발한 돌출행동에 관한 뉴스 같은 것이 보인다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한편 걸리버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린 왕은 사려 깊은 미소를 짓고는 걸리버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의 조그마한 친구 그릴드릭(* 난쟁이라는 뜻), 그대는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주 놀랄 만한 찬사를 했습니다. 그대는 의원의 자격을 갖추는 데 있어 무지와 태만, 부도덕이 적절한 요소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대의 나라에서는 온통 법을 악용하고 왜곡하며 회피하는 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자들이 있으며, 이들에 의해 법이 가장 잘 설명되거나 해석되고 있으며 적용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잘 알려 주었습니다.


만들었을 당시에는 아주 좋았을 제도들이 그대의 나라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부패되어 완전히 희미해지거나 제멋대로 변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대의 말을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어떤 지위에 오르는 데 가장 합당한 이가 그 지위를 갖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덕망으로 귀족이 되거나, 사제들이 학식으로 승진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용기 있는 행동으로 군인이 된다거나, 정직하기 때문에 재판관이 영달을 하고, 국가를 사랑한다고 국회의원에 선출되거나, 지혜가 있다고 해서 국왕의 고문들이 총애를 받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여행하는 일에 바친 그대는, 그대의 조국이 저지른 많은 악덕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나는 믿고 싶습니다.


그대의 이야기와 내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대의 민족 대부분이 세상의 표면에 기어 다니게 된 생물 중 가장 유해하고 밉살스러우며, 작은 벌레들의 모임인 것으로 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166~167쪽)


그런 왕의 인내심도 때론 바닥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걸리버가 화약과 포탄에 대한 말을 꺼냈을 때. 왕의 환심을 사려는 소박한 마음에 적절한 재료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성벽을 무너뜨리고 불순분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대포를 만들어 바치겠다는 걸리버에게 왕은 노여움을 감추지 않고 말한다. 그처럼 무기력하고 천한 벌레가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생각을 할 수 있냐며, 또한 파괴적인 기계가 만들어 내는 피와 살육의 장면을 어떻게 그리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냐며, 목숨이 아깝다면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걸리버는 그런 왕의 반응이 이상하기만 하다.


편협한 원칙과 근시안적인 안목의 이상한 결과였다. 존경과 사랑과 숭배를 받을 수 있는 재능과 원대한 지혜와 깊은 학문을 갖춘 데다 훌륭한 통치력으로 국민에게 찬양받고 있는 국왕이, 이처럼 가엾고 불필요한 망설임 때문에(이러한 경우는 유럽에서 거의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손안에 들어왔는데도 거절을 한 것이다. (170쪽)


하지만 왕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걸리버에게는 없었다. 어느 날, 걸리버의 집(이라기보다는 상자)을 독수리가 물고 날아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독수리는 거북이의 껍질을 깰 때 하는 것처럼 상자를 바위에 떨어뜨려 걸리버의 몸을 삼키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운명은 걸리버를 위해 더 많은 고난을 남겨두었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다른 독수리들이 먹이를 빼앗으려 덤벼드는 바람에 상자는 바다에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걸리버는 그곳을 지나던 배에 의해 구조된다.


마침내 자신과 같은 인간들을 만나게 된 걸리버. 그런 그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놀람이었다.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많이. 어느새 큰 사람들의 나라에 익숙해진 걸리버의 눈에 그들은 이제까지 보았던 것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생물로 보일 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집과 나무, 가축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작아 릴리퍼트로 돌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모든 것들이 브롭딩낵 국왕의 말처럼 나약하고 무기력한 주제에 밉살스러운 벌레처럼 여겨졌다. 동족 혐오. 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걸리버의 내부에서는 무엇인가가 영영 변해버렸고,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걸리버는 또 다시 바다를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레시안 북스 2013. 5. 10.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30510155756&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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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5-14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진짜 재미있겠는데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아, 이거 딱 내 스타일이에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