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조했습니다, 


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적조했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어떤 이의 글을 본 탓이다. 나는 조금 놀랐다. 내가 아는 그 단어는 ㄱ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국어사전을 찾았고 ㅈ으로 시작하는 그 단어 또한 내가 알고 있는 뜻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내겐 역시 격조다. 그게 격조있다. 내게 적조라고 해봤자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붉은 생명체를 떠올릴 뿐이다.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 6년만에 다시 만난 개리 라이트바디의 배레나룻을 보며 나는 "격조했습니다!"라고 소리칠 수도 있었으리라. 최소한 "롱 타임 노 씨!"라고 외칠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조금 웃고, 몸을 흔들뿐이었다. 말은 종종 구차하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비 내리는 주말, 인천 어느 구석의 허름한 공터에 모여 이국의 노래에 그렇게도 열광한 것일 테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그럴듯한 말을 찾고 있다. 그럴듯하다는 게 중요하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럴듯할 것. 하지만 나는 실패한다. 찾지 못한다. 언제나 그랬다. 우리는 말의 불완전함을 알지만, 그 불완전함의 완전함에조차 닿지는 못한다.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숙지하지 못한다. 애석한 일이다. 애석할 일이 그것 하나만은 아니겠으나, 우리는 언제나 눈앞의 것을 애석해할 수 있을 뿐이니 나는 지금 충분히 애석하기로 한다. 


애석하다1 (哀惜--)[애서카다]는 "슬프고 아깝다"는 뜻의 형용사다. 

애석하다2 (愛惜--)[애ː서카다]는 "소중히 여기고 아끼다."는 뜻의 동사다. 

하지만 형용사로 쓰일 땐 "서운하고 아깝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슬프다와 서운하다의 차이는 무엇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알 수 없는 일이 그것 하나만은 아니겠으나, 알 수 없는 일은 언제나 눈앞의 것이다. 그밖의 알 수 없는 일은, 알 수 없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셈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새삼스럽게 놀랐고, 내가 놀랐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란다. 우리의 정신과 몸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법이다. 나는 지금 법이라고 쓰고, 조금 웃었다. 법이라는 식의 표현을 쓰면 그렇게 되는 법이다. 법이라니, 세상에. 


그러니 이해해주시길. 나는 지금 조금 취했고, 조금 지금 취했으며, 취해서 슬픈지 취해서 서운한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그건 일종의 방기다. 방치다. 방관이다. 아무려나. 좋다. 나는 지금 좋다고 썼다. 술에 취한다는 건 그런 거다. 좋지 않은 건 좋지 않은 것일 뿐이니 좋은 것만을 생각하는 것. 나머지는 기억하지 않는 것.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한다. 그 해부터 난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복사꽃 대신 저 문장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일요일에는 크리스탈 캐슬의 공연을 보았고, 한 시간 반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내가 사랑하는 밴드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렸다. 비가 내렸고, 내렸고, 내렸으며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몸이 식어 덜덜 떨려왔지만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그렇게 앉아있었다. 마침내 한 시간 반이 지나고, 영원같은 십 분이 더 지난 후에야 등장한 그들은, 제임스딘 브랫필드라는 이름을 가진 보컬 겸 기타리스트는, "안녕!" 인사하고 내가 사랑하는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motorcycle emptiness라는 제목의 노래를. 15년 전, 어두침침한 지하 음감실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사이다를 마시며 서툰 담배를 피우던 그 시절의 노래를. 내가 여전히 사랑한 그 노래를, 그 시절을, 그리고, 그리고. 


기억, 기억, 기억, 기억, 기억, 기억, 기억, 기억, 기억.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 순간 내 인생의 어느 지점이 마침내 끝나버렸다는 것을, 실은 이미 끝났음을, 다만 내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나는 알았다. 나는 격조했고, 애석했으나, 여전히 기억한다고 믿었고, 그럴수록 그것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몰랐고, 비로소 알았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알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돌아온 월요일, 나는 마침내 어떤 책이 인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모든 애석과 애석, 알 수 없는 것, 알 수 없다는 것조차 알 수 없던 날들에 대한 가난한 기록 혹은 기억. 


그건 이런 책이었다. 




















그러니 오늘, 나는 조금쯤 술에 취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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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8-17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일련의 사건을 겪고 잠이 안 오는 줄 알았더니
이 소식을 읽으려고(?) 잠을 안 잔거였어요!!! ㅎㅎㅎ
첫빠로 댓글을 달려고 말이지요, ㅋㅋ( ")
인생이란 이런 건가 봐요, 라면서,
암튼 이제부터 시작이네요!! 꼭 유명해 지셔야 해요~~.^^
(유명,,,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나 봐요,,,=^^=하지만 이게 제 방식의 축원입니다요,,훗)

poptrash 2012-08-20 00: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나비 님.
꼭 유명해질게요! ㅎㅎ

Jeanne_Hebuterne 2012-08-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 가면, 각자의 인생을 살짝 훑고 지나가는 부분이 있어요. 플로어에 서서 다리를 긴장시키며 앙 바, 앙 아방, 앙오(흔히 발레 하면 떠올리는 발끝으로 서서 팔을 쭉 뻗어 둥글게 올린 동작이어요)가 순식간에 나왔는데 팝트래쉬님의 이 글은 그때의 발끝을 떠오르게 합니다.

poptrash 2012-08-20 00:47   좋아요 0 | URL
그때의 발끝을 떠오르게 한다니, 정말 멋진 표현이네요. 과분한 표현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담장 바깥이 궁금해 자꾸만 까치발을 들며 위태롭게 선 아이같은 시간들을 살았던 것 같아요.

Forgettable. 2012-08-1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크리스탈캐슬이 펜타에 왔었군요!!! ㅠㅠㅠㅠㅠ 알았더라면 갔을텐데 ㅠㅠㅠㅠ 제 캐나다 생활의 반은 크리스탈 캐슬과 함께였었는데. 부럽ㅎㅎ

poptrash 2012-08-20 00:50   좋아요 0 | URL
저는 크리스탈 캐슬의 음악을 그다지 즐겨 듣진 않았지만, 무대는 정말 최고였어요. 특히 앨리스 글래스 님의 미친듯한 생기... 부럽죠!

글샘 2012-08-1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언제 금정연 씨랑 pop 님이랑 셋이서 한잔 하죠~ ㅋ~
금정연 씨한테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 고생 많이 하셨다고~

한 일 주일은 취하셔도 좋지 않을까요? ㅎㅎㅎ
다시 한번 축하를...(가장 충실한 축하는 저 책을 배송시키는 거겠죠?)

poptrash 2012-08-20 00: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 친구도 분명 고마워 할 거예요.
어쩌다 보니 한 3주는 취할 것 같은 일정이 벌써 짜여졋네요...;
언제 정말 셋이 한잔 하면 재미있겠네요 ㅋ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2-08-1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르르...멋져서..질투나요!

poptrash 2012-08-20 00:54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고마워요, 다락방 님. :)

미네 2012-08-1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생각하곤 했었죠. 책은 언제쯤 나올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올까. 그리고 드디어 나왔군요. 멋집니다! 월요일까지 기다리지 못해 집앞의 서점으로 갑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취해도 좋을 듯 합니다!

poptrash 2012-08-20 00:58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ㅎㅎ 저도 종종 소식을 전해들으며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책을 준비하신다는 말도 함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매일 너무 취해 몸이 너무 힘드네요 -_ㅠ

영구 2012-08-1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7일에 책이 나왔다고 포스팅 하셨으니 세븐갤을 털 이유가 충분한 것 같네요 쿨럭쿨럭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_<

poptrash 2012-08-20 01:11   좋아요 0 | URL
어쩐지 이 시점에서 앤서니 제슬닉 드립을 쳐야할 것 같은데.

"아마 누군가는 이 책에 실린 글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을 지도 모르겠네. ... 전부 다 죽여주는 글이라는 거지."

앤서니 제슬닉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아무려나, 고맙습니다. :)

마늘빵 2012-08-1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제대로 글을 못 읽었었는데, 전 이 책으로 새 글을 읽겠습니다. :)

poptrash 2012-08-20 01: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새 글이라니, 어쩐지 더 좋은 글이 된 것 같은데요? ㅎㅎ

쎈연필 2012-08-1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직접 싸인 받고 축하주 한잔 하고 싶어요-!
시간 내주세요~!

poptrash 2012-08-20 01:19   좋아요 0 | URL
벌써 몇 년째 (제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건가요!
정말 찾아 뵙고 술 한 잔 하고 싶네요. 조만간 봬요!

LAYLA 2012-08-2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올라오던 poptrash님의 글들이 떠오르네요. 그렇게 쓰신 글들이겠지요. 축하드려요.

poptrash 2012-08-24 02:3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네요. 어쩐지 그 새벽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댓글. 고마워요. 고마워요.

2012-09-05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6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12-09-1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알았어요.
축하합니다.^^

poptrash 2012-09-21 10:27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 님, 잘 지내시죠?
감사합니다 :)

테레사 2012-09-2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아하!! 결국 그랬군요...신체강탈자님이 누군지 이제서야 알겠어요.본명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어쩐지..남다르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부럽고,,,질투나고.....존경스럽습니다...

poptrash 2012-10-01 06:32   좋아요 0 | URL
감사의 인사가 늦었네요. 아무 일도 안하고 뒹굴거리느라 조금 바빴어요... 네, 제가 그 사람인 거 같긴 한데, 아무래도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부끄럽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
 

선풍기가 더운 숨을 내뱉던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대한 짧은 원고를 쓰던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려고 하던 중이었지만. 아무려나, 내게 약간의 재치란 게 있었다면 쓰(려고 하)던 중이었다, 라고 짧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라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라고 담백하게 표현할 수도 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과 <반항하는 인간>과 <작가 노트>와 <젊은 시절의 글>과 <시사평론>과 <단두대에 대한 성찰․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와 <결혼․여름> 사이를 발작적으로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장 그르니에의 <카뮈를 추억하며>와 <섬>을, 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를,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20세기 서양철학의 흐름>을,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 2>를, F. 짐머먼의 <실존철학>을, 사이먼 크리칠리의 <죽은 철학자들의 서>를 초조하게 뒤적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밖에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을 책장에서 뽑아 방바닥에 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내가 그 모든 책을 순식간에 읽어낼 수라도 있다는 듯이. 마감 시간은 이미 넘긴지 오래였다.


선풍기에서 더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누구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심정이 들게 마련이다.


나는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만약 내가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라면 그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마치 내가 언제나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었던 것처럼, 답은 순식간에 튀어나온다. 이런 대답이다. 


A :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라는 표현이 전적으로 옳음.


나는 잠시 웃고, 머리를 흔든다. Enter 버튼보다 수백 배는 큰 Del 버튼을 누른다. 모든 것은 제 존재에 걸맞은 크기를 갖게 마련이다.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어쨌거나 나는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사람은 카뮈 하나로 족하다. 그리고 카뮈는 죽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니체였다. 니체도 죽었다. 카뮈는 죽은 니체를 따라, 그러나 자신의 방식으로, 신이 죽은 세상에서의 신학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니, 신이 혼수상태에 빠진 세상에서의 신학이라고 해야겠다. 그것은 부조리의 신학이다. 그 자신은 겸손을 가장하며, 혹은 귀찮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조리의 시론’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분명 신학이다. 그는 평생 신의 존재에 대해 판단하기를 유보했고, 그래서 말년에는 날파리떼 같은 일당들에게 신앙에 귀의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몰라도 한참은 모르는 말들이다. 카뮈가 구했던 것은, 처음부터 신앙이었다. 신앙의 핵심은, 세상의 편견과는 달리, 신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이다. 대부분의 경우 신이란 어떤 종류의 커피 위에 올라가는 생크림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카페 모카, 그란데 사이즈로, 생크림은 빼고. 다이어트 중이라서…” 카뮈는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단순히 생크림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렇다면 이 기회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가 보기에 우리는, 우리들의 정신은, 우리들의 문화는 약간의 다이어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랑곳 않고 카뮈를 먹어치웠으며, 그 밖의 많은 것들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카뮈는 죽었다. 다시, 그리고 다시. 오늘도 카뮈는 세상의 모든 청춘들의 마음속에 다시 태어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다. 영원히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카뮈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그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 그르니에는 스승의 현명함으로, 어린 카뮈가 어떤 종류의 명성을 갈구하고 있었음을, 아니 차라리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그건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후의 명성을 부인했지만, 바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의 작동방식이 시지프의 노동을 닮았다면 더더욱.)


카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사이먼 크리칠리는 철학자들의 죽음을 모은 책에서 카뮈의 죽음을 짧게 서술한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참으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다. 그것은 자살이다."

카뮈는 50페이지쯤 지나서 이 질문에 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삶이다."

44세 때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슬프게도 3년 후인 1960년 어이없는 자동차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자동차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의미 없는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아마도 카뮈가 대단히 감동적으로 묘사한 부조리의 무작위적인 힘일 것이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 324~325쪽)


이것이 바로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 그의 첫 번째 죽음에 대해, 그리고 오늘도 반복되고 있을 영원한 죽음에 대해 한 마디도 쓸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나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정직하고자 하는 노력의 한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방에서 마감이 나를 죄어들고 있었고, 그 사이로 카뮈가 내게 상기시킨 추억이, 청춘의 시간이 괴롭게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과거란 언제나 괴로운 법이다. 실은 별로 빛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책장으로 걸어가 백민석을 집었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그래봤자 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페이지, 다만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감에 눈이 부셔서, 아니, 언제나 평범한 플라이 볼을 놓친 후 변명을 늘어놓는 ‘피너츠’ 팀의 외야수 루시 반 펠트가 말한 것처럼, 


추억에 눈이 부셔서. 



“형, 그거 알아요? 형은 참 좆같은 거.” 


후배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왕십리의 어느 곱창집이었다. 나는 물론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자 문득 자신이 좆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실은 좆같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제법 철학적이고도 성가신 의문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타닥타닥, 커다란 빗방울이 곱창집의 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 인생도 좆같지.”


녀석의 말에 따르자면 내 인생이 좆같기 때문에, 자기 인생도 좆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작 스물여덟 살에 다른 사람까지 좆같이 만들 수 있는 인생이라면 실은 좆같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제법 철학적이고도 성가신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스물일곱에 다른 사람 때문에 좆같아지는 인생이라면 정말 좆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묵묵히 술을 마시고, 곱창을 뒤집었다. 양념도 변변치 못하건만 곱창 맛이 퍽도 맛이 있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술을 사주었을 뿐이다. 그전에도 사주었고, 앞으로도 사줄 것이다. 한 학번 후배였던 녀석은 당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직장인이었다. 평생 술을 얻어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단 말이다. 술뿐만이 아니다. 신입생 시절부터 녀석에게 빌려주고, 때론 그냥 주었던 그 모든 책, 책, 책들. 이를테면 스무 살의 내가 읽고, 스무 살의 녀석에게 주었던 <시지프 신화>, 혹은 내가 입에 침을 튀며 이야기하던, 백민석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의 소설 같은 것들.


그러니까 바로 그런 책들이 문제라는 거요, 녀석이 말했다. 말이 좀 짧았지만 나는 구태여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 나는 술도 사주고 책도 권하고 말버릇도 참아내는 훌륭한 선배였다. 녀석은 계속해서 그 책들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가치관이 그렇게 박혀버렸고, 그래서 결국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고 했다. 자기는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만 쏙 직장인이 되어 자본의 단물을 빨아먹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마지막 말은 내가 다른 선배에게 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어쨌거나 녀석은 제 인생을 나더러 책임지라고 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좆같을지도 모르지.”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 때문에 너까지 좆같아졌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너를 책임진다면, 나는 더 이상 좆같은 놈이 아니잖니? 좆같은 놈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네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거고. 하지만 네 입장에서도 알지도 못하는 인간에게 인생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겠지. 그러니까 나는 너를 책임질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내가 카뮈에게 배운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아직 조금쯤은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웃었고, 우리는 건배를 했다. 녀석 또한 카뮈를 읽었고, 역시 얼마간은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이었던 것이다. 


*


처음엔 <내가 사랑한 캔디>로 시작했다. 이어 <목화밭 엽기전>을,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를, <죽은 올빼미 농장>을, <헤이, 우리 소풍 간다>를, <불쌍한 꼬마 한스>를,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었다. 95년에 처음 시작되어 2003년에 막을 내린 백민석이라는 세계를, 출간 순서와 상관없이, 내 맘대로, 다시 한 번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제법 슬픈 일이었다.


<러셔>는 읽지 않았다. 나는 <러셔>를 한 번도 읽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그건 ‘다시’ 읽을 수 없는 텍스트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의 소설에 대해 이제 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글쎄.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백민석은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독자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읽고 좇던 모든 책의 흔적을 그는, 구태여 광고하지 않지만(작가 후기에서 커트 보네거트의 이름을 언급한 <불쌍한 꼬마 한스>의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는다. 그의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러니 그의 책 뒤에 실린 해설들이 오늘의 시점에선 하나같이 헛소리처럼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독자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사람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해설을 쓰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독자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직업적인 독자들일 뿐이다. 직업적인 독자들에 대한 바르트와 모리스 나도의 대담을 기억할 것.


나 역시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독자는 아니다. 그러니 나는 그의 소설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몇 가지 키워드를 늘어놓을 수는 있다. 허물어져가는 공동체와 그 자리를 채운 욕망들. 그러니까 폭력과 섹스. 한국문학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피학과 가학. 죄책감이 불러온 과거의 유령들. 혹은 과거의 유령이 환기시키는 죄책감.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던적’ 수법들. 글쓰기의 불가능성. 도무지 구해지지 않는 구원과 어디에도 쓸모없는- 다만 등장인물들을 좌절시킬 뿐인 진실들. 그러니까 부조리. 뭐 그런 것들. 


나는 그저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읽어주기를, 계속해서 읽어주기를, 그리하여 무슨 말이건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말들을, 나보다 훨씬 더 근사하게. 그것이 나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정직한 독자가 되고자하는 노력의 한 방식이다. 그리고 궁금할 뿐이다. 내가 사랑했던 작가의 절필 이유가. 혹은 이후가. 이대로라면 사라진 시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두 주인공들처럼 백민석을 찾는 원정대라도 꾸려야 할 지경이다. 



어쩌면 백민석의 절필은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독자가 맞이하는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 자꾸만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자기지시적인 글쓰기와,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마침내 다다른 불모의 땅을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소설인(<러셔>를 읽지 않은 나는 그냥 그렇게 말하기로 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여러 가지 점에서 첫 번째 장편소설인 <헤이, 우리 소풍 간다>를 닮았다. <헤이, 우리 소풍 간다>의 인물들은 절대적 폭력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돌아오는 과거의 유령(들)에 쫓긴다. 그들은 다시 모여 과거를 방문하고, 구원을 희구하지만, 같은 실수를 저지른 후 마침내 파멸한다. 백민석은 그들을 위해 판자촌이라는 ‘예외상태’의 지역을 제시한다. 그곳은 강박적인 세계고, 모호하고 불길하지만 치명적인 위협으로 가득한 세계다. 그리고 그것은 외상의 형태로 그들 모두에게(다시 말해 우리 모두에게) 계속해서 되돌아온다. 


<죽은 올빼미 농장>의 화자 또한 과거의 유령들에 시달린다. 하나는 ‘인형’으로 불리는, 화자의 유아기적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과거의 낯모르는 유령들이다. 화자는 ‘전형적인 아파트먼트 키드’라는 수식으로 제시되며,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보내는 편지는 화자가 알지 못했던, 우리 모두가 잊었던 과거로부터의 호출이고, 화자는 얼치기 탐정이자 일종의 대리인으로 기능한다. 이미 황무지가, 쓰레기장이 된 농장의 샘을 다시 흐르게 함으로써, 소외되어 죽어갔던 이들을 위무하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에도 성공한다. 그리고 ‘자장가’라는 이름의 선물을 얻는다. 백민석의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달콤한 과거의 한 조각. 난삽하지만 더없이 직접적이었던 <헤이, 우리 소풍 간다>의 긴장은, <죽은 올빼미 농장>을 통해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형태로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작가에게 계속해서 글을 쓰게 만들었던 내적 충동, 혹은 긴장이 해소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단언하고픈 충동을 애써 참고 있는 중이다. 


그럼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진실로 진지한 태도는, 아마도 예술을, 예술 자체를 포기할 때만 도달하게 될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던 수전 손택을 따라, 그의 예술관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소설을 읽고 또 쓰는 태도에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정직하고자노력하는독자라면, 그리고 그가 직업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면, 언젠가 ‘글쓰기의 불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대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처음과 끝이 호응할 수 있도록, 카뮈를 인용하며 글을 끝마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카뮈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진지한 문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절필이다. 소설이 쓸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밖에, ‘라노베’가 새로운 문학인가 어떤가, 신간의 판매지수가 천 대인가 만 대인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카뮈, <시지프 혹은 소설의 신화> 3쪽)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810150631&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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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아직 시지프 신화에 대한 짧은 글을 쓰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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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8-17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 나는 어째서 여지껏 백민석이라는 작가를 몰랐지?로 시작해 하단에서 보여지는 책 표지들을 나는 왜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시지프 신화>의 책 표지라도 눈에 들어와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런데 뭐가 또 그렇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poptrash 2012-08-17 05: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무엇이 다행일까요. 제 입장에서는 이런 글로나마 백민석이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이 생겼다는 게 다행.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요? 아무려나, 저는 다행입니다. ㅎㅎ

선인장 2012-08-17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명이 유난히 붉은 술집에서 누군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백민석 작가를 본 적이 있어요. 2000년 가을이었던가. 그때 마침 내 가방에는 <목화밭엽기전>이 들어있었어요. 내 마음은 그 책 속의 세상보다 더 황폐해져 있었구요. 그 책을 꺼내 들고, 작가의 테이블에 동석하여 사인을 받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했더랬어요. 그는 참 악필이더군요. 그리고 몇 년 뒤, 한 후배가 그의 책을 내게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책의 출판이 어그러지고, 그 뒤로는 어디에서도 백민석 작가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의 책 출간 소식을 물론,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러니, 작가는 찾는 원정대가 꾸려진다면, 그 누군가들을 위해 마실 물이라도 준비할 마음이...

너무도 오랫만에 듣는 백민석 작가의 이름이 반가워, 초면임에도 불쑥 댓글 남깁니다.
이따금 서재에 올라오는 글, 조용히 읽고 갔다는 뒤늦은 인사도 함께요...

poptrash 2012-08-20 01:26   좋아요 0 | URL
아, 묘한 사연이네요. 꼭 백민석 작가 초기 단편집에 등장할 법한. 어쨌거나, 그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셨다니 부러운 일입니다. 악필이라는 것도 어쩐지 좋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실제로 원정대를 꾸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반갑습니다. :)

비로그인 2012-08-1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화밭 엽기전]... 선빵 날리고 쓰러진 권투선수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그 책의 작가 백민석이라니요! 저는 처음 백민석을 읽을 때 다시는 그와 관련된 어떤 텍스트도 접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팝님 글을 보니 백민석은 이리저리 거미줄을 여러 군데 치고 있는 작가인 것 같네요. 음, 그런데 전 아직도 좀 겁나요 ( '')... 좀 더 정직하게 읽어보려고 다시 시도해봐야겠네요.

poptrash 2012-08-20 01:28   좋아요 0 | URL
선빵 날리고 쓰러진 권투선수라니, 무척 생생한 표현이네요! 백민석이 조금 무섭다면 <내가 사랑한 캔디>로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불쌍한 꼬마 한스>도. 특히 전자는 제가 사랑하는 소설이에요.

아아 2012-08-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백민석, 그립네요. 전 특히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 실린 <이 친구를 보라>를 좋아했어요...

poptrash 2012-08-30 02:01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단편 좋아요. 백민석, 친구들끼리 모이면 가끔 이야기 해요. 저는 더이상 아무것도 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는데, 다른 친구는 읽기는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쓰지 않을 수도 없다는 이야기니까 우리는 그저 기다립니다.
 

Happiness in Magazines


행복은 잡지 속에 있다. 블러의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의 말이다. 정확하게는 다섯 번째 솔로 앨범의 타이틀이지만. 아무려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이다. 유광종이에 인쇄된 화려한 '명품'을, 음식을, 휴양지를 보라. 흠잡을 데 없는 모델들의 몸매와 빛나는 미소도. 그곳에 행복이 없다면 대체 어디에 행복이 있단 말인가?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다. 그녀의 상자에서 나온 온갖 불행과 끝내 움직이지 않던 희망을. 잡지도 마찬가지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풀려난 질투와 선망이 아무리 우리를 괴롭힌대도 행복은 꼼짝하지 않는다. 손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불행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다. 희망의 팔짱을 끼고, 화사하게 웃으며. 나는 기다린다. 언젠가 행복이 제 발로 걸어올 그날을. 나는 일단 녀석의 면상을 한 대 갈겨줄 생각이다. 그때도 웃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때 행복은 잡지 바깥에 있었고, 잡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투명한 비닐포장처럼. 누런 정기구독 우편봉투처럼. 매달 25일이면 행복은 어김없이 나를 찾았다. [어깨동무]와 [소년중앙]과 [보물섬]과 [만화왕국]과 함께. 아무리 재미있는 (만화)책이라도, 아니 그런 책일수록 틀림없이 끝은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슬퍼서 그런 건 아니다. 서러워서도 아니다. 등장인물들과 함께 언제까지고 그들의 세상에 머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내게 잡지는 하나의 약속이었다. 끝없이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는 약속. 설령 하나의 연재가 막을 내리더라도 여전히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빈자리는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채워졌다. 완벽한 세상. 정기구독이 끊어질 염려도 없었다. 아버지는 만화가였고, 아버지가 만화가인 한 그들은 공짜로 잡지를 보내줄 테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영원히 만화가일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행복한 나날이라도, 아니 그런 나날일수록 틀림없이 끝은 있게 마련이다. [아이큐점프]와 [영점프]라는 이름의 날렵하고 세련된 (격)주간지들의 등장과 함께 두툼하고 투박한 월간지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기존의 잡지들이 하나 둘 폐간되었고, 새로운 회사들은 아버지에게 잡지를 보내지 않았다. 야박하다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았으니까. 설령 그들이 잡지를 보냈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집을 가득 채운 과월호 더미를 뒤로한 채 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만화가가 아닌 아버지가 마침내 무엇이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100-1 (1)


빈자리는 무엇으로든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월간지가 내게 남긴 교훈이었다. 엄마는 컴퓨터를 선택했고, 무리한 지출이었던 만큼 빈자리는 손쉽게 채워졌다. 나는 컴퓨터 잡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마이컴]과 [헬로우 PC]라는 이름의 월간지. 한 달에 만원 남짓한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내겐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막내외삼촌이 있었다. 온종일 서점에 눌러 앉아 어른이 보기에도 어려운(당시에는 그랬다) 컴퓨터 잡지를 파고 있는 조카가 삼촌의 눈에는 얼마나 대견하게 보였겠는가(그렇게 대견한 조카가 내겐 없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여드름 가득하던 스무 살에 무작정 상경해 서점을 시작한 삼촌이다. 몇 년 후 찾아온 IMF 경제위기에 직접 서점을 하겠다고 나선 건물주에게 삼촌은 20년 가까이 꾸려온 가게를 권리금도 없이 내줘야했다. 그 후 변두리 대학가에 도서대여점을 열었고, 짧은 호황을 맛본 후 스캔본의 범람과 함께 기나긴 불황을 맞게 된다. 설상가상 홍대의 부상으로 학생들이 빠져나가 상권 자체가 몰락했지만, 삼촌은 여전히 도서대여점을 지키고 있다.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아직 IMF까지는 몇 년이 남아있었지만, 삼촌의 피땀을 빨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매달 두 권의 잡지를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용돈(엄마가 주는 것보다 더 많았다)까지 쥐어주는 삼촌이 안쓰러웠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컴퓨터 잡지를 포기하기로 했다. 거짓말이다. 단지 관심분야가 바뀌었을 뿐이다. 중학생이 되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마이컴]이나 [헬로우 PC]라는 이름은 폼이 안 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그렇다면 역시 음악이지. '중2병'에 걸린 누군가가 말했다. 아마 나였던 거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 그중에서도 팝을 다루는 잡지라는 생각이 들었다(중2가 된 나는 일 년 동안 배운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팝송을 듣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잡지들을 들춰보며 고심한 끝에 선택한 건 [핫뮤직]. 실은 [GMV]도 집어 들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때 삼촌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던가.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건만 저 홀로 눈뜬 수집가의 본능이 이렇게 속삭였던 것이다. 잡지를 모으려면 창간호부터 모아야 하는 법이라고. 그러기엔 [핫뮤직]의 역사가 너무 길었다. 가련한 삼촌은 내게 어김없이 용돈을 쥐어줬지만, 과월호를 모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나의 [핫뮤직]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때마침 새로운 음악잡지가 창간한 것이다. [핫뮤직] 초대 편집장 출신의 성우진이 만든 [월드 팝스]가 그것. 나로서는 애착을 갖고 모으기 시작한 첫 잡지인 셈이다. 한마디로 첫사랑이었고,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오래가지 못했다. 열 권 남짓한 과월호만 남긴 채 갑자기 폐간된 것이다. 참으로 잔망스러운 잡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듬해 성우진이 심기일전해 만든 [락킷]은 [월드 팝스]보다 고작 한두 호를 더 발간했을 뿐이고, 가장 사랑했던(심지어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성문영의 [서브] 역시 2년을 넘기지 못했으며, 그 뒤를 이은 [비트] 또한 허무하게 사라졌다. 바야흐로 21세기가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키노]가 남아 있었다. [월드 팝스]와 [락킷] 사이에 모으기 시작한 영화잡지다. 기껏해야 동네 비디오가게에 죽치고 있거나, 일요일 정오의 TV 영화 프로그램을 챙겨보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열혈남아>의 스텝프린팅 기법은…"이라고 허두를 떼기만 해도 형님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던 고등학생에게 정성일은 신이나 다름없었다. 기사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키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 뿐이었다(아마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비록 창간호부터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헌책방을 돌며 과월호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공씨책방'을 비롯한 신촌의 헌책방을 돌다보면 책등에 빨간 스프레이가 칠해진 과월호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사이사이의 몇 권만은 구할 수가 없었지만. 그 사이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나날을 살았지만, 매달 [키노]를 사는 일은 잊지 않았다. 잡지가 쌓이는 것에 반비례해 잡자를 읽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세상엔 성경을 읽지 않고도 훌륭한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나는 군에 입대하기 전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매달 [키노]를 사라고 신신당부할 정도로 열성적인 전도사였다. 하지만 [키노]는 2003년 7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한다. 그 소식을 들은 건 같은 해 9월, 두 번째 휴가에서였다. 100에서 하나가 부족한 99호였다.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고한 것은 몇 달 후의 일이다.



100-6


제대 후 한동안은 헌책방에 들를 때면 잡지 코너를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대신 나는 다른 잡지들을 찾았다. [GQ]에서 [DVD 2.0]까지 분야도 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잡지를 모으는 일은 그만두었다. 같은 잡지를 연이어 사는 일도 드물었고, 한 번 읽은 잡지는 그대로 버려두곤 했다. 과방에, 강의실에, 지하철에, 버스에, 커피숍과 술집에. 자연스럽게 얄팍한 주간지(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키노]는 취직 후 영화를 사랑하던 친구 C에게 줘버렸다. 나보단 그에게 더 필요한 물건이었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기분은 아니었다. 대체로 덤덤했고, 아주 조금 속이 울렁거렸을 뿐이다. C는 그후 영화 제작부에 들어가 최저 임금보다 못한 급여를 받으며 몇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을 사고를 치고 그때까지 받은 급여의 몇 배가 되는 돈을 물어낸 후 영화계를 떠나야 했다. 지금은 옆 동네에서 작은 당구장을 운영하며 술만 마시면 지난 이야기를 들먹이곤 한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인터넷 서점의 MD가 되었다. 이력서에 희망연봉으로 1850만원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월급으로 매달 150만원을 받고, 남은 50만원으로는 책을 사면 좋겠다는 계산이었다. 멍청한 생각이다. 나는 150만원보다는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50만원보다 훨씬 큰돈을 책값으로 쓰게 될 예정이었다. 


다시 잡지를 모으기 시작한 건 입사 후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나는 두 가지 고민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그만둬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하나, 매달 나오는 월급에 길들여져 평생 고분고분하게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또 하나였다. 이게 무슨 멍청한 생각이란 말인가? 그때 눈앞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잡지 몇 권이 보였다. 당시 종종 사보던 [Film 2.0]이었다. 얄팍한 주간지를 미처 읽기도 전에 한 주가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난 것이다. '김영진의 러프컷'만 골라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문득, 좀 더 멍청한 생각이 떠올랐다. 주간지가 100권이 모이면 회사를 그만두자는 생각. 이 이야기의 가장 멍청한 부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정말로 [Film 2.0]을 꼽기 시작했다. 업무용 서가에 한 권, 다시 한 권씩. 그것도 업무라면 업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면서.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서가를 보며 스스로를 달랬다. 멍청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적어도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는 나았다고 해야겠다. 제 아무리 요란한 충고와 협박과 분석과 위로로 무장한 자기계발서라도 책장을 덮는 순간 가뭇없이 사라지게 마련. 하지만 [Film 2.0]은 그곳에 있었다. 자신만의 속도로 몸피를 늘려가면서, 부정할 수 없는 물성을 지닌 채 눈앞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94권이 모였다. 약속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사내 공용폴더에 접속해 사직서를 찾았다. 어느새 2년이 더해진 사회생활이 내게 가르친 프로세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멍청이였다. 양식의 빈칸을 채운 후에도 차마 보낼 수가 없어 한 주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95권이면 5주가 남았다는 이야기다. 모자란 시간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 주를 보냈다. 제법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출근길 지하철 매점을 찾았다. 아직 [Film 2.0]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먹고, 퇴근길 지하철 매점을 찾았다. 아직도 [Film 2.0]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며칠 동안 매점과 편의점과 서점을 찾겠지만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었다. [Film 2.0]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테니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Film 2.0]은 폐간되었다. 누군가 내게 장난을 치는 걸까? 하지만 내겐 장난을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누구보다 먼저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책장에 꽂힌 94권의 [Film 2.0]을 버리기 시작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쌓인 잡지를 버리는 데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몇 분 걸리지도 않았지만 속이 울렁거려 몇 번이나 침을 삼켜야 했다. 침은 진득했고 비린 맛이 났다. 2008년 12월의 일이다. 그 무렵 지하철에 붙은 [Film 2.0] 해직기자들의 성명서를 본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100-1 (2) 


다시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Film 2.0]을 마지막으로 나는 영화잡지를 보지 않았고, 다른 어떤 잡지도 보지 않았다. 업무와 관련해 몇 권의 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보진 않았다. 가끔 멋진 배우들이 표지를 장식하는 남성지를 들춰보긴 했다. 하지만 읽지는 못했다. 눈이 시려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군대에 있을 때나 대학교를 다닐 때 종종 보던 잡지가 아닌가. 나는 아마 숫자를 생각했던 것 같다. 복잡한 계산을 하기도 했겠지. 실은 단순한 산수였을 것이다.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며 근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행복.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행복. 광택지에 인쇄된 행복.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종종 들춰보곤 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원고를 청탁하는 전화였다. 영화주간지에 격주로 들어갈 원고라고 했다. 내가 가끔 보던 잡지였다. 최소한 몇 번은 본 잡지였고, 내가 한번이라도 돈을 내고 구입한 잡지에서 원고를 청탁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째의 원고를 쓴 나는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이제 와서 그럴싸한 이유를 지어낸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분명한 건 열 번째 원고를 쓸 무렵에 나는 더는 회사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뭐랄까, 앓던 이가 빠진 것과 비슷할 것이다. 비슷하겠지만 결코 시원한 기분은 아니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편해졌다고 느낄 뿐이다. 하지만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혀를 움직여 이가 있던 자리를 더듬는다. 무의식중에 하게 되는 일이다. 더듬고, 더듬은 끝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출렁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과 비슷하다. 앓던 이라지만 이는 이다. 있었던 것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빈자리.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교훈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빈자리는 무엇으로든 채워지게 마련이라고. 


나는 이런저런 매체에 서평을 가장한 잡담을 쓰며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매주, 그리고 매달 같은 날에 배달되는 잡지도 받는다. 마치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내 글이 실린 잡지를 받는다는 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나도 모르게 넘긴 책장에서 풀려난 후회와 좌절과 온갖 회한이 나를 괴롭히고, 꼼짝도 하지 않는 건 원고다. 다른 누군가의 원고이길 간절히 바라지만 꼼짝없이 내가 쓴 글이다. 고칠 수도 무를 수도 없다. 버린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저 묵묵히 쌓아놓을 수밖에.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건 영화주간지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매주(원고는 격주로 썼지만) 배달되던 잡지를 나는 침대 발치의 상자에 고스란히 모아두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그곳에는 403호에서 501호까지, 모두 99권의 [무비위크]가 있다. 



100


이제 남은 건 100이다. 그리고 이 자리는 프레시안북스를 위한 자리다. 나는 지금 프레시안북스의 100호를 기념해 박수를(짝) 치며(짝) 이 글을 쓰는 중이고(짝짝), 원고 마감 시간을 이미(짜작) 넘긴 상황이다(짝). 그러니 짧게 말해야겠다(짝짝).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처럼 나는 100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프레시안북스 덕에 비로소 100과 인연을 맺은 셈이다. 그러니 먼저 감사를, 다음으로 축하를 드린다. 


마지막으로는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의 한 구절을 인용할 생각이다. 153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에세이의 100번째 장을 아도르노는 이렇게 시작한다. 


해방된 사회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질 경우 사람들은 '인간적 가능성의 실현'이나 '풍요로운 삶'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된다. 그러한 질문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면서도 부당하게 느껴진다면 그러한 의기양양한 대답이 역겹게 느껴지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이러한 대답은 삶을 만끽하려 들었던 1890년대의 수염이 텁수룩한 자연주의자들 같은 사회주의자의 이상형을 연상시킨다. '아무도 더 이상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가장 소박한 답변만이 부드럽게 들린다. 다른 답변들은 모두 인간의 욕구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태나 스스로의 목표를 향해 굴러가는 '생산' 모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간 행태를 상정하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인간과 같은 소망상에마저 상품의 물신적 성격이 배어 있는데, 시민사회에서 이러한 물신주의에는 제약과 무기력, 항상 똑같은 것이 만드는 불모성 같은 것이 감초처럼 따라다닌다. 시민사회의 '무역사성'의 일부지만 그를 보완해주는 개념인 역동성이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위치로 부상되었지만, 이 개념은 생산법칙에 대한 인류학적 반사로서 해방된 사회에서는 그 자체가 욕구와는 비판적으로 대치해야 할 무엇인 것이다. 구속받지 않는 행동, 중단없는 생산, 포만감을 모르는 빵빵한 배, 신명나는 일거리인 자유 같은 관념은 시민사회의 자연 개념을 먹고사는데, 이 자연 개념은 예로부터 항상 오직 사회적인 폭력을 변경 불가능한 것, 건강한 영원성의 일부로 선전하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100. 물 위에 누워', <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김유동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208~209쪽)


아도르노의 말이 이 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지금부터 생각해봐야겠다.
















*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720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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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2-07-2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키노와 서브, 락킷을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다 모았어요. 사이트 앤 사운드는 당시 가격 핑계로 몇몇 호만(가격을 핑계로 댈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종종 사이비 종교 교주같은 정성일의 문체와 글은 교단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지요. 한 달 사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3월호에서는 `비바 ******'라는 기사를 내더니 4월호에서는 '우리는 더이상 ******를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기사를 싣다니요(3,4라는 숫자는 기억 편집 임의 선별).
뉴요커가 다 읽든 안읽든 일요일판 선데이 타임즈를 사러 가듯 키노를 사러 가던 기억. 딱 한 번의 음란광고만 빼면 키노는 완벽한 우주였습니다. 성문영의 서브와 성우진의 락킷도.
행복은 잡지 속에 있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그 속에 촘촘한 가시 하나를 심어놓으시길.

poptrash 2012-07-25 17:24   좋아요 0 | URL
서브와 락킷은 아직도 집에 전권이 다 있어요. 서브의 독자 사연 코너에 제 사연이 올라간 적도 있지요 ㅎㅎ 3월호와 4월호 사이의 입장 변화는 저도 기억나네요. 구체적인 기억은 아니지만, 굉장히 강경하게 돌아서서 뭥믜? 했던 기억. 제겐 아직도 더 많은 잡지가 필요해요.

starlight 2012-07-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햐 글 참 잘 써

poptrash 2012-07-25 17:25   좋아요 0 | URL
핫 고 마 워 요

김토끼 2012-08-1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잡지에 행복이 있다는 말에 동의. 이번에 대대적인 방청소를 하면서 왠지 잡지만은 버릴 수가 없었어요_한장씩 넘기다보면 이런 최강의 컨텐츠가 하면서 도저히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을 버려야 책장이 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딜레마에 휩싸여 있어요)

poptrash 2012-08-16 17:0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못 버리는 잡지들이 있어요. 음악잡지는 특히. 그래서 그냥 베란다에 놔두었어요. 조금 비겁하죠...

르르슈 2012-09-2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레시안북 100호를 축하하는 글인가요?? 역시 포스가 작렬하는 글입니다. 내공이 ㅎㄷㄷ 하군요^^ 잡지가 아닌 알라딘에서 간간히 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어요~ 전 예전부터 팝님 팬이니까요..ㅎ

poptrash 2012-10-01 06:32   좋아요 0 | URL
프레시안북스 100호를 축하하는 글 맞아요. 100과 책에 관한 무언가를 쓰다보니 이렇게. 고맙습니다. :)
 

열두 번 토한 이야기를 해보자. 

말 그대로, 열두 번 토한 이야기다. 

마지막 기억은 편의점이다. 파라솔, 캔맥주 그리고 노래. 아마 테슬라의 '러브 송'이었을 거다. 사랑 노래, 그게 바로 제목이다. 나는 그에게 탑밴드에 출연한 어느 아저씨의 사연을, 그러니까 한때 미8군에서 노래를 했지만 생계를 위해 음악을 포기했고 지금은 식당을 경영하지만 그럼에도 음악을 잊을 수 없어 다시금 밴드를 결성해 프로그램에 지원한 그의 밴드가 부른 노래가 바로 '러브 송'이었다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저씨, 완전 테슬라랑 똑같이 부르더라고요." 내가 말했다. 
"흐음, 그래요?" 그가 대답했다.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나는 몇번 주억거렸고, 내 뜻이 똑바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내 뜻이 똑바로 전달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 나는 닭과 골뱅이를, 다시 말해 '치킨뱅이'를 먹었다. (가게 이름을 곧바로 '먹는다'라는 동사와 접붙이는 건 내 오랜 악습이다. 이를테면 "워낭소리 먹을래?" 같은 말로 올바른 국어사용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국문과 출신의 내 오랜 여자친구를 기겁하게 하는 것이다. 워낭소리는 여자친구가 사는 건물 1층에 있는 고기집이다.) 

그러니까 1차였다. 

이미 충분히 취했다. 

세상에 충분한 술이란 없다. 언제나 모자라거나 넘칠 뿐이다. 하지만 충분한 취기라는 건 있다. 말하자면 위험수위. 불광천을 가르는 다리의 굵은 기둥에 노란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는 그것과 비슷한 곳에 이미 충분히 근접했다는 말이다. 만약 그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 그건 지금부터 알아볼 참이었다. 이미 수백 번 알아본 바 있지만, 알면 알수록 도통 알수 없어 자꾸만 알아보게 되는 세계다.

거짓말이다. 그렇게 취하진 않았다. 않았다고 생각했고 2차를 갔다. 천변에 있는 호프집이다. 둔치에 면한 야외 테이블이다.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안주는 한치. 1차는 맥주와 소주였고, 치킨뱅이를 먹었다는 사실은 이미 말했다. 그럼 내 앞에 있는 이가 신대철을 닮았다는 이야기도 했던가? 글쎄, 어차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벌써 반년 전, 그를 처음 만난 후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여자친구에게 전화해 내가 오늘 만난 사람이 있는데, 같이 술을 먹었는데, 집에 가서 먹으라며 해장국도 하나 포장해줬는데, 사실 나는 해장국집에 가서 해장국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입에 숟가락을 넣은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는데, 정신이 드니 택시를 타고 있었는데, 밖에선 그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신대철을 닮았는데, 정말 닮았는데, 존나 멋있는데, 우리는 노래방도 갔는데, 막 판테라 불렀는데, 어쨌거나 지금 내 손에 해장국이 있어 존나 기쁜데, 정도로 표현될 수 있는, 그리 풍성하지는 않은 이야기를 몇십 분이나 반복해서 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취했다는 거다. 

그러니 호프집에서 나와 자리잡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게 당연하지 않다면 당신은 술에 취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 친구는 아니다. 아마도. 그렇다고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 왜냐고? 사랑은 당신을 둘러싼 모든 곳에 있으니까. 문밖에 선 채 당신의 문을 두드릴 테니까.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면, 당신 또한 사랑을 찾을 테니까. 말하자면

러브 윌 파인더 웨이, 달링, 러브 이즈 고나 파인더 웨이이 
파인드 잇츠 웨이 백투유
러브 윌 파인더 웨이, 소 룩 어란, 오픈 여 아이즈, 
같은 느낌으로.

그런데 이 빌어먹을 노래는 다음과 같은 가사를 반복하며 끝난다. 아이 노우,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아 노옷, 정도 될까. 씨발 니가 알긴 뭘 알아 하겠지만 나는 모른다. 정말 모른다. 아무리 술에 취해 본댔자 내가 무언가를 알게 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몇 곡의 노래를 더 불러야만 했다. 워킹 핸드 인 핸드하고 러브레러스 인더 샌드 했던, 동시에 스루 더 슬립레스 나이츠하고 에브리 엔드리스 데이 했던, 한마디로 리멤버 예스터데이 하고 리멤버 유 하는 노래들을. 스마트폰이 재생하는 유튜브 반주에 맞춰서. 그가 사랑하는 기타리스트 슬래쉬가 몸 담은 어떤 그룹의 노래도 들었다. 나는 모르는 노래였지만, 모르는 채로 좋았단 기억이다.

"팝, 어디 한번 편하게 말해봐요." 그가 말했다. 
"말을 놓으라시는 건가요, 지금?" 내가 물었다. 
"왜, 아까 보니 잘 하던데." 그가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술에 취한 나는 제법 고분고분하다. 
그리고 노래, 노래, 노래, 노래. 반말도 조금. 

이어지는 기억도 그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적당히 90년대식이다. 어느 순간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선 우리는 서로의 길을 간다. 내 앞에선 신호등이 반짝이고, 뒤에선 그가 손을 흔든다.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흔든다. 뒤돌아보지 않고, 비틀비틀 걸으며. 평생 지기만 하던 삼류복서가 사랑과 인생이, 인생과 사랑이, 무엇보다 밥줄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호적수를 만나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치지만 결국 또 한 번의 패배를 추가한 후 링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조금 비슷했을 거 같다. 사실 나는 모른다. 내 시야는 그저 오래된 영화처럼 깜박, 그리고 다시 깜박일 뿐. 그 시절을 뒤흔들었던 왕 모 감독의 소위 '스텝프린팅' 기법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암전. 
뚝.
...
...
... 
...
...
...
...
...


눈을 뜬다. 내 방이다. 어둡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고작 그 정도지만, 제법 위안이 되는 사실이다. 그 정도 위안이면 세상을 살기에는 충분하다. 간디나 뭐 그런 사람이 될 생각만 아니라면. 

나는 방바닥에 누워있다. 침대는? 물론 침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 불을 켠다. 입고 있던 옷 그대로고, 직전에 보았던 방 그대로다. 사소한 차이가 있다면, 깜짝이야, 방바닷 윗켠에 커다랗고 빨간 반죽이 있었다는 것 정도. 전을 부쳤다면 적어도 세 판을 구울만한 양이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두루마리 휴지를 풀었고,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옮겨 담았다. 2리터짜리 봉투가 맞춤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목이 까끌까끌해 물을 마셨고, 토했다. 
다시금 목이 까끌까끌해 물을 마셨고, 토했다. 
다시금 목이 까끌까끌해 물을 마셨고, 토했다. 
다시금 목이 까끌까끌해 물을 마셨고, 토했다. 
다시금 목이 까끌까끌해 물을 마셨고, 이제부터 약간 다르다, 물을 토했다. 
까끌까끌함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물을 토해야만 했다. 

나는 한 마리의 곰을 떠올렸다. 
그저 스트레스를 풀 일이 필요했던 곰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때마침 그의 눈높이에 나무에 매달린 바위덩어리가 있었을 뿐이다. 
그는 술 마신 아저씨들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씨게 빤찌를 휘두른다. 
허허, 뭘 또 이런 걸 다,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앞으로도 와서 종종 쳐야겠네, 이런 생각도 했을 거다. 
확실한 건 흠, 주먹만 아프고 그다지 재미있진 않네, 라고 생각한 곰은 아니었을 거라는 거다. 
나는 그런 곰을 떠올리진 않는다. 

곰의 드센 주먹에 한방 얻어맞은 바위는 뒤로 크게 물러난다. 
하지만 바위에게도 입장이라는 게 있다. 
나무에 매달린 채로는 더는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고점을 찍은 바위는, 가속도와 함께 울분도 조금 붙은 바위는, 
크게 진자운동을 하며 곰을 친다. 

어라.
말 그대로도 어라, 다. 

한 대 맞은 곰은 자존심이 상한다. 
제깟 게 나를 쳐? 
그래 봤자 바위일 뿐이잖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곰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눈앞에 바위를 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몰린 곰이었다. 
그 역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한 대 더 때리는 수밖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당신도 아는 그대로다. 
열두 번쯤 토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다행이다. 

한 여덟 번쯤 토했을까, 어느새 날은 이미 밝았다. 나는 생각한다, 약국에 가야한다. 약국에만 가면 작은 캔에 사슴이 그려진 종근당 '술시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방풍의 과립과, 혀를 끌끌 차지 않을 정도로 친절한 약사 아저씨 또한. 나는 그들을 만나야 한다. 약사는 마치 형제처럼 손수 캔을 따 내게 내민다. 한 모금 마시라고, 일단 한 모금만 마시라고 한다. 술이 깨지 않은 나는 여전히 고분고분하다. 그 모습을 사려 깊게 지켜보던 그는 내게서 캔을 다시금 거둔다. 작은 마법 앰플을 똑, 하고 딴다. 캔에 그것을 따른다. 어느 연금술사의 비밀스러운 작업과도 같은 그 모습을 나는 바라본다.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안다. 고통의 끝이 머지 않았음을, 나는 안다. 나는 안다.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나는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약국을 향한다. 원래 가던 길 끝의 약국까지는 가지 못한다. 거기까지 걸어갈 기운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약국은 약국이다. 그곳에도 술시로가, 과립이, 약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직 그런 생각이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까스활명수와 비슷한 맛의 드링크와, 녹색과 청색이 섞인 연질의 캡슐, 그리고 내게 최소한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 약사 아저씨 뿐이었다. 그래도 가격은 쌌다. 고작 천원이었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꿀꺽, 삼키는 수밖에. 약은 생각보다 컸고, 목구멍이 아팠다. 거의 인생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일단 약을 먹고 나자 그래도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그리고 오른발.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걸었다. 결코 서두르지 않은 채. 그리고 마침내 접어든 골목. 스무 걸음, 많아도 서른 걸음이면 집이었다. 물론 5층까지 계단을 올라야했지만 나는 눈앞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위장은 생각하지 않고서. 

그렇지만 위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꿈틀대면서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방금 먹은 약의 정체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음을, 나는 알았다. 분명히 알았다. 빌어먹을 바보 천치라고 하더라도 그건 알았을 거다. 하지만 그때, 나를 향해 걸어오는 모자가 보였다. 노란 옷을 입은 아이와,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였다. 아침 햇살에 비친 아이의 유니폼이 유난히 샛노랬다. 나는 생각했다. 미안하다 꼬마야, 네겐 너무 이르구나, 그래도 유치원에 가서 할 이야기는 생길테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느냐. 나는 어쩐지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가 된 기분이었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모자가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대개는 들이쉬면서, 참았고, 참았고, 참았다. 아이 엄마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상관없었다. 나 역시 어떤 노력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 나이가 되었다. 그저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이번만은 이기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었다.


마침내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모자가 나를 지나치고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무렵, 그래봤자 한 다섯 걸음쯤 갔을 것이다, 나는 무너졌다. 허리를 구십도로 숙이고 땅바닥을 향해 검은 액체를 쏟아냈다. 차라리 뿜어냈다. 천원어치였다. 바로 그 순간 내 옆에 주차되어 있던 노란 승용차에서 남자가 내렸다. 삼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그는 나를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어둠을 잠시 바라본 후, 다시금 집을 향했을 뿐이었다. 어떤 패배와 승리를 동시에 곱씹으면서.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점심이 되기 전까지 세 번을 더 토했다.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오늘 나는 취하지 않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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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7-03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속 괜찮으세요? 12번이란 횟수를 허용할 정도로 멋진 사람과의 만남이었나봐요. ^^ 그 와중에도 지킬 건 지키는 팝님이군요. 노란 옷의 아이가 지나칠 때까지 참으신 인내력에 박수, 짝짝짝!

poptrash 2012-07-04 22:58   좋아요 0 | URL
벌써 한달이 넘은 이야기에요. 물론 멋진 분과의 만남이었죠. 그렇다고 열두 번을 토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ㅎㅎ

비로그인 2012-07-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후유증이 계속되는 건 아니죠? 당분간은 속을 좀 진정시켜야겠군요. 그런데... 그분은 멀쩡했나요?ㅎㅎ

poptrash 2012-07-04 22:58   좋아요 0 | URL
그분은 멀쩡하신 거 같았어요. 내공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저보다 한참 훌륭하신 분이니까요. ^^
 

이런 이야기다. 


-- 


손없는 사람은 내 집 사진을 판매하는 들어왔죠. 크롬 갈고리를 제외하고, 그는 50 정도의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손을 놓쳤나요?" 그가 원하는 걸 말한 것 나서 내가 물었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예요"라고 말했다. "당신은 아니이 사진을 원해?"

"들어오세요"나는 말했다. "난 그냥 커피를 만들어."

난 단지도 일부 젤리를 만든 것. 하지만 내가 한 사람을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아니오 손으로 남자가 말했다. 

나는 그가 한 잔 잡아 얼마나보고 싶었어요. 

그가 카메라를 개최 방법을 알았어요. 그것은 크고 검은 오래된 폴라로이드였다. 그는 자신의 어깨 위에 고정될과 그의 뒤로 가서 스트랩에 걸었으며, 그것은 그의 가슴에 카메라를 고정 그것이였다. 그는 집 앞 보도에 서 것이, 뷰파인더에 집을 찾아 그의 후크 중 하나 레버를 아래로 밀어, 그리고 밖으로 당신의 사진을 열어 것이다. 

제가 windown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당신은 참조하십시오. 

"당신이 어디 뭐래 화장실이었다?"

"저 아래 우회전."

hunching, 벤딩, 그는 스트랩으로 스스로 토해. 그는 소파에 카메라를 넣고 자신의 자켓을 정리.

"내가 떠나있는 동안 당신이 볼 수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그림을했습니다.

작은 잔디의 사각형, 진입로, 간이 차고 앞 단계 베이 창, 나는 부엌에서 wacthing 맞았어요 창이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왜이 비극의 사진을할까요?

나는 좀 더 가까이 모습과 부엌 창 안에서 거기에 내 머리를 보았다.

그것은 그런식으로 자신을보고,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제가 말씀 드리 건데, 그것은 남자가 생각합니다.

화장실이 플러시 난 마음. 그는 압축하고 웃고, 홀을 내려오다가, 하나는 그의 벨트, 셔츠의 다른 밥 챙겨 먹여야을 들고 가져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좋아? 개인적으로, 나는 잘 지내고 생각합니다. 난 내가 뭘하는지 알아? 현실을 받아들 여요 마, 그건 전문 걸립니다."

그는 자신의 가랑이에 나갈것.

"coffe의 여기,"나는 말했다.

그는 "그래, 당신도 혼자 잖아?"라고

그는 거실에서 보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드, 하드,"그는 말했다.

그는 카메라 옆에 앉아 한숨과 함께 배웠어, 그리고 그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커피를 마셔."

할 말이 생각하려고 했어요. 

"세 아이들도 여기에 연석에 내 주소를 바르고 싶었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할 달러를 원했습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것이 것 당신은?"

그것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동일한 보았다.

그는 앞으로 중요한 것은 컵 그의 갈고리 사이에 균형을 보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내려 설정합니다.

"나는 혼자"고 말했다. "항상, 항상 것입니다. 당신의 말이 무엇인가가?" 그는 말했다.

"나는 연결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나는 말했다. 

두통했다. 난 커피가 시간이 안 알아,하지만 때로는 젤리가 도움이됩니다. 나는 사진을 싣고갔습니다.

"나는 부엌에 있었는데,"내가 말했다. "보통 나는 뒤쪽에 있어요."

"늘있는 일인가?" 그는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올렸어 바로, 당신을 떠났죠? 이젠 날 가져가라. 나 혼자 일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무슨 말을합니까? 당신은 사진을 원해?"

"나는 내가 알아서 할께"나는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컵을 왔어요. 

"당신이 들거"고 말했다. "나, 나는 버스를 꺼내. 괜찮아요. 룸 시내를 유지, 나는 이웃을 일한 후, 나는 또 시내로 이동합니다. 니가 한말이 뭔지 보여? 이봐요, 내가 한 번 아이했다. 것처럼 "그는 당신 밝혔다.

나는 컵을 함께 기다렸다 환자가 소파에서 일어나 투쟁 보았다.

그는 "그들이 내게 준 어쨌다고"고 말했다.

그 갈고리를 잘 보라했다.

"커피와 화장실의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sympahtize."

그는 제기와 그 갈고리를 낮췄다.

"내 신발,"나는 말했다. "얼마나 많은가. 나와 내 집 더 많은 사진을 가져가 보여 줘요."

"이것은 작동하지 않습니다,"남자가 말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가 스트랩에 들어가있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요금을 줄 수있다"고 말했다. "달러에 대한 세 가지." 그는 "내가 어떤 낮은 가면, 오 나오지 않아요."

우리는 밖으로 나갔어요. 그는 셔터를 조정. 그는 어디에 서있는 나를 tole, 우리는 그것에게 진정시키고 있네.

우리 집 주위에 옮겼습니다. 체계. 때로는 옆으로 나거 든요. 때로는 앞만 나거 든요. 

"좋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행이야"라고 우리가 집을 뚫어 줄 때까지 말을 다시 전면에 돌아 왔단거야."그게 어디인가. 그걸로 충분해."

"아니"내가 말했다. "지붕에,"나는 말했다.

"예수"고 말했다. 그는 블록을 아래로 확인합니다. "물론있다"고 말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 군. "

나는, "전체 키트와 caboodle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해제"고 말했다. (모두 함께 *** 다. 그들 이뻐졌. "그들이"그 사진을 참조 수 있습니다.)

"이것 봐!"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후크를 도왔습니다.


안으로 가서 의자를 가지고. 나는 카펫 밑에 올려. 하지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이 생기고 있고 의자 위에 상자를 넣어. 

그것은 지붕에 위에 그냥 괜찮 았어. 

나는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있으며, 손으로 사람은 자신의 갈고리와 다시 손을 흔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바위를 본 후했습니다. 그것은 굴뚝 구멍 이상의 화면에 작은 바위의 보금자리였다. 당신이 어린것들. 당신은 방법을 알고 그들은 로브 그들을 당신의 굴뚝 아래로 한 번을 위해 생각.

"준비?" 나는 전화, 그리고 바위를 가지고, 그는 자신의 뷰파인더에서 있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좋아요!" 그는했다. 

나는 "지금!"내 팔을 되찾아 마련하고 hollered 내가 던질 수있는 최대한까지 그 개자식을 던졌다.

"나도 몰라"나는 그가 큰소리 들었어요. "나는 모션 촬영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나는 소리를 지르고, 또 다른 바위를 내게되었습니다.


-- 


어느 미국 소설가의 단편 소설이다. 국내에는 몇 개의, 내가 알기로는 두 개의, 번역본이 있고, 두 개의 번역본의 뉘앙스가 사못 달라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원문을 찾았다. 그게 벌써 지난 겨울의 일이다. 바탕화면에 텍스트 파일로 저장되어 있던 걸 서재의 비공개 폴더로 옮겼다. 크롬 브라우저에선 번역을 하겠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 결과다. 어쩐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떠오르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 소설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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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2012-07-0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답은 카버 뷰파인더요. 계폭은 제가 할 생각이었는데 없어지긴 왜 오빠가 없어졌죠. #왜죠

poptrash 2012-07-03 00:10   좋아요 0 | URL
정답!
사실 나는 실시간으로 하는 게임이 벅차서 스타크래프트 출시 이후 게임을 끊은 사람이라 적성에 안 맞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이 SNS의 세계에서는 뭐든지 선수치고 볼 일입니다. #에고트립

비로그인 2012-07-0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이 소설 진짜 뭐죠? 그저 신기하네요...
이 글을 쓴 작자도 번역한 작자(ㅎㅎ)도 재밌을 것 같아요.

poptrash 2012-07-03 00:11   좋아요 0 | URL
카버의 뷰파인더고, 정영문 님의 번역본과 하루키의 번역을 중역한 번역본이 있어요. 이 번역본은 구글의 자동 번역. 언젠가 이런 형식의 소설이 등장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득. 겐이치로의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에는 실제로 이거랑 비슷한 신인 작가의 소설이 예로 등장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