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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승훈 



내가 카프카의 <성>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난 그해 겨울을 강원도 영월에서 보냈다. 멀지 않은 곳에 탄광이 있는 강원도 벽지 영월은 낯선 곳이었다. 그해 겨울엔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원래 난 춘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고교를 마치던 해 부친이 영월로 직장을 옮겼기 때문에 난생 처음 벽지 영월에서 겨울 방학을 보낸 셈이다. 아침부터 부슬거리며 눈만 내리던 영월에서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던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 내 문학, 내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카프카의 <성>이다.


카프카는 1883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폐결핵으로 41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 독일 작가이다. 그는 평범한 지방 샐러리맨인 보험국 직원으로 살았으며, 근무를 마친 뒤면 집으로 돌아와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죽기 직전의 요양기간, 짧은 국외 여행을 빼고는 잠시도 프라하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가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고, 글을 쓰기 위해 보험국에 다닌 것도 마음에 든다. 당시 보험국에선 일찍 퇴근할 수 있었고, 그는 퇴근하면 집으로 와 계속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독하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고 비사교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을 것이다. 이런 기질도 마음에 들고 내 기질과 통한다. 그는 독일계 고등학교를 거쳐 부친의 명령에 따라 프라하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대학시절 훗날 <카프카 전집>의 편집자가 되는 친구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되면서 문학의 정열을 키운다. 그는 이때 <어떤 싸움의 기록>(1905년), <시골 혼례 준비>(1906년) 등을 쓰고, 1906년 박사 학위를 받고 1908년부터 1922년까지 노동자재해보험국에 근무하면서 잡지 <휘페리온>에 8편의 산문을 처음 발표한다. 1912년 <심판>(1922년 간행), <변신>(1916년 간행) 등을 쓰고 1914년 <유형지에서>(1919년 간행),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1924년 간행)을 쓴다.


카프카는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여러 곳으로 요양을 떠나고, 그 동안 장편소설 <성>(1926년 간행), <굶주리는 광대>(1924년 간행) 등을 쓴다. 그는 1912년 베를린 태생의 F.B.(펠리체 바우어) 양을 만나고 2년 후에 약혼을 하지만 결혼에 대한 회의와 불안 때문에 파혼하고, 1915년에 다시 만나 두 번째로 약혼, 그러나 1917년 결핵 요양 길에 오르며 다시 파혼한다. 그는 1920년 메란에서 빈 태생의 센스카 부인을 만나지만 2년 후에 헤어지고, 39세가 되던 1923년에는 소녀 도라 디만더를 알게 되어 동거 생활까지 하지만 전후의 불경기와 병과 가난에 시달리며 1924년 빈 교외의 요양원에 들어가 그해 6월 그곳에서 영면한다. 이때 그의 나이가 41세였다.


겉으로 평범한 것 같은 이런 작가나 시인들이 보여주는 것은 삶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고, 그 내면이 바로 사회와 통한다는 역설이다. 원래 <성>이란 제목은 카프카가 생전에 구두로 말하던 것을 기억해 둔 브로트가 원고를 출판할 때 붙인 이름으로 알려진다. 이 소설은 결핵에 시달리며 요양을 다니던 카프카의 내면을 반영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인들이 체험한 삶의 부조리를 반영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늦은 저녁에야 K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성이 있는 것을 알리는 희미한 등불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 나무 다리 위에 서서 멀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공 이름은 K이다. K는 카프카의 이니셜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K는 구체적인 의미를 상실한, 추상화한, 그런 점에서 현대인의 초상이다. 카프카라는 이름은 까마귀라는 의미가 있고, 이 이름은 그가 부유한 유태계 상인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K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고향, 가족, 조국 같은 삶의 토대가 사라지는, 혹은 그런 토대와 단절되는 삶을 암시하는 이런 이름은 그런 점에서 삶의 근거나 토대를 상실하고 사는 현대인의 초상이 된다.


토지 측량사인 K가 눈 내린 저녁 마을로 온 것은 성과의 계약 때문이다. 그러나 성에서는 그를 부른 바 없다는 통지가 오고, 마을 사람들은 일단 하룻밤 묵는 것을 허용한다. 그 후 그는 마을에 머물면서 성으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성에 소속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냉랭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성으로 가려고 계속 노력하고 계속 실패한다. K는 애정 문제에서도 실패하고 남들과 전혀 교통이 되지 않는 고립 상태에서 불안에 쫓긴다. 그 동안 직업도 얻어 두 명의 조수를 거느리고 학교 관리 사무를 맡기도 하지만 성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왜냐하면 K는 우연히 성에서 일하는 비서 뷔르켈이 투숙한 여인숙에 들르고 그녀는 그가 청원하면 성에서 받아줄 것이라고 암시하지만 그 순간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다음 날 페피라는 가정부와 같이 살자고 제의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한 마디로 조리에 닿지 않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K는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성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브로트는 성이 신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프로이트학파는 어머니를, 사회학파들은 절대 관료체제를, 실존주의자들은 현대인이 체험하는 교통 단절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요컨대 아직도 해석은 계속되고, 내가 그 무렵 이 소설을 읽고 배운 것은 삶의 부조리이며, 이 부조리를 부조리로 수용하는 데 40년이 넘은 셈이다. 부조리의 극한에서 최근 내가 읽는 것은 텅 빈 공백이고, 이 공백에서 터지는 웃음이다. 사실 우습지 않은가? K도 성도 마을 사람들도 나도 모두가 생각하면 우습다.


<책의 유혹> 108~113쪽 중에서


———————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은 분주했고, 나는 어지러웠다. 겨우 자리를 찾아 가방을 내려놓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람도 책도 너무 많았다. 몇 권의 책을 훑어봤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아마 훑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한 권의 목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고, 그 페이지를 열어 그것이 내가 아는 이름이 맞는지 확인했으며, 노트를 꺼내 녹색 볼펜으로 베껴 쓰기 시작했다. 필요한 내용도 아니었고 찾으려던 내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명문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읽지 않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머리를 비우고 눈 앞의 글자를 손끝으로 옮기는 데 집중했을 뿐이다. 그때 나는 단순한 기계가 된다. 잘 인쇄된 문장을 엉터리 손글씨로 바꾸는 쓸모없는 기계가. 나는 거의 글을 읽지도 않았다. 다만 몇 번인가 저린 손을 털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눈을 들어 사람들을 보았고, 몇 권의 책을 빌렸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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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1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poptrash 2012-12-18 17:24   좋아요 0 | URL
제가 누구냐고 물어보신다면... 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승훈 시인만은 좋아한다고 외칠 수 있는 독자라고 해야 할까요 ㅋ

오랜만이어요 다락방 님!

이진 2012-12-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마침 저는 오늘 학원에서 이 책을 겨울방학에 읽겠노라 다짐한 차입니다.

poptrash 2012-12-19 02:20   좋아요 0 | URL
소이진 님, 이제 곧 겨울방학이겠네요. 꼭 읽어보시길. 그리고 나중에 멋진 서평도 써주세요 ㅎㅎ
 

비대상에서 선(禪)까지

이승훈 시인


이승훈 시인. 가장 독보적인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계신 원로 시인이다. <잡채밥>이란 시가 있다. 20년 넘게 매일 오전 11시 30분이면 중국집에서 잡채밥만 시켜 드신다. 중국집 배달원이 묻는다. 선생님,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하지만 시인은 다른 건 잘 못 먹는다. 시인은 매일 저녁밥 대신 맥주를 마시며 평생을 지내셨다. 처음엔 두통을 잊기 위해 마시기 시작했다 한다. 맥주는 하이트. 안주는 멸치와 김만 드신다. 이승훈 선생님과는 술자리가 참 편하다. 권위 의식이 없으시다. 시인을 오랫동안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생님을 따르고 싶어 한다. 시단에 이승훈 선생님의 제자가 참 많다. 나 또한 학교 제자도 문단 제자도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선생님의 제자 아닌 제자가 되었다. 한양대 국문과 스승의 날 모임에 자주 불려 나갔다. 아마 정재학 시인과 내가 가장 자주 불려 나가는 제자 아닌 제자일 것이다.

이승훈 시인은 가장 뛰어난 시론 학자이자, 한국 문단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전수한 산파이기도 하다. 자아 탐구, 모더니즘과 해체, 그리고 선(禪)에 이르기까지 삶과 문학 여정을 육성으로 들어본다.


이재훈 : 선생님의 유년 시절은 불안과 우울의 시간들이 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내셨던 외조부와 한의학을 하셨던 조부, 그리고 의학을 하셨던 부친 밑에서 성장합니다. 외형적으로는 괜찮은 집안의 총명하고 명석한 아이였겠지만, 내면적으로는 외로움과 우울, 불안감 등에 시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안의 잦은 이주, 부친의 병, 모친의 자살 시도 등은 집적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과 내면적 정황들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고집스럽게 파고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선생님의 천성적 성정性情보다는 외부 환경이 더 많은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승훈:외면과 내면의 아이러니죠. 겉으론 멀쩡하고 이 시인 말처럼 그럴 듯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계속된 건 불안, 공포, 우울이었습니다. 내가 너무 내성적이고 여린 성격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불안은 내 브랜드죠. 난 초등학교 입학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설레이며 학교에 입학하던 추억이 없어요. 어느날 갑자기 낯선 아이들 속에, 그것도 시끄러운 아이들 속에 내가 앉아 있던 기억만 납니다. 무슨 카프카 소설같고 악몽같은 기억입니다. 도대체 이 낯선 곳에 내가 왜 왔는가 ? 그후 알게 된 것이지만 아버지는 나이도 차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가을에 나를 학교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낯선 것에 대한 공포는 그후에도 계속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6. 25가 나고 난 계속 낯선 곳으로 옮겨 다니고 그후에도 잦은 이사 무엇보다 아버지 병으로 가정은 어둡고 언제 집안이 박살 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유년 생활을 보냈죠. 난 어린 시절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의사이신 아버지가 병으로 고생하신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이재훈 : 위의 질문처럼 생각하게 된 연유는 직접 선생님을 뵙고 든 느낌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감정도 풍부하시고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웃음도 많으시고 해서 든 생각입니다.

선생님께는 두 분의 큰 스승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춘천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사였던 이희철 시인과의 만남, 한양대에서 박목월 선생과의 만남이 그것인데요. 두 분과의 만남이 선생님께 끼쳤던 영향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승훈:불안과 우울에 지친 셈이죠. 그리고 이젠 나이가 들었잖아요 ? 최근엔 왜 사냐 건 웃지요라 고 노래한 김상용 시인의 시가 좋아요. 고교 시절 이희철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고 대학 시절 박목월 선생님을 만난 건 운명이라는 생각입니다. 이희철 선생님은 당시 「문학예술」지에 신인으로 등단한 분으로 참 시가 좋았습니다. 고교 시절 난 선생님의 시를 다 외울 정도고 당시 동급생이던 소설가 전상국 형이 말하듯 선생님은 사실 나를 편애할 정도였습니다. 시의 기초가 잡힌 건 선생님의 영향과 지도 때문이고 박목월 선생님은 이미 기초가 다 된 나를 문단에 바로, 그것도 대학 2학년 봄에 내보내신 겁니다. 그러나 목월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내가 없을 정도로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후 운명이 됩니다. 난 목월 선생님을 만나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재훈 : 이희철, 박목월 선생은 전통 서정계열의 작품 세계가 당신의 문학관이 었고 그것을 작품으로 훌륭하게 구현해 낸 시인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전통 서정시의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선생님께서는 스승의 문학 세례에 큰 영향을 받는 우리 문학 전통으로 비추어 본다면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스승의 문학 경향과 반대의 지점에 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승훈:두 선생님 모두 내가 하는 문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으셨죠. 이희철 선생님은 네가 李箱을 좋아하더니 시가 그렇게 되나 보다라고 하신 적이 있고 목월 선생님은 글쎄 아무래도 이상의 시는 장난 같제 ?라 고 하신 적이 있어요. 모더니즘 계열 시인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라는 게 모처럼 등단을 시켜 놓으니까 이상, 김춘수, 김수영, 전봉건같은 시인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니 속으로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셨을까 ?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목월 선생님은 너는 네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대가 풍이셨죠.

이재훈 : 선생님께서는 고립감, 외로움, 허무, 불안 등의 삶이 현대인의 조건이며, 현대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세계를 불화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고, 이 불화 속에 내던져진 현대인의 의식세계가 모더니즘의 에너지겠지요. 자연인으로서 선생님의 삶 또한 이러한 불화를 스스로 수긍하고 고독한 산책자로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적 태도 이전에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궁금합니다.

이승훈:고독이 낭만주의의 개념이라면 불안은 현대주의, 모더니즘의 개념입니다. 홀로 있기 때문에 고독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고독이 해소되죠. 그러나 불안은 다릅니다. 혼자 있어도 불안하고 누구와 함께 있어도 불안합니다. 아니 함께 있는 사람이 갑자기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물론 정신분석에 의하면 불안은 분리 불안이고 이 불안이 자아 분열로 발전합니다. 사회학적으로는 이 시인 말처럼 자아와 세계의 불화, 단절, 소외가 동기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이런 단절 속에 던져진 현대인의 내면, 곧 불안과 공포가 모더니즘의 에너지입니다. 내가 대학 시절 좋아했던 카프카의 세계가 그렇고 이상의 시가 그렇습니다. 내 시가 그렇다면 내 인생도 그렇고 거꾸로 내 인생이 그렇다면 내 시도 그렇습니다. 시는 속일 수가 없어요. 사실 난 잿빛 인생입니다. 요즘도 불안해서 시를 쓰고 해질 무렵이면 혼자 맥주를 마시고 두통으로 고생이고 매일 두통약을 먹고 감기로 고생이고 매일 감기약을 먹고 우습죠. 고독한 산책자이기 보다는 난 사실 산책같은 건 취미가 없고 여행도 싫고 그저 잿빛으로 삽니다. 무슨 목표도 없고 프로젝트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산 게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 점에서 난 허무주의자이고 정신적 방랑자입니다. 정신적 유목민이라고 할까? 언젠가 이재복 평론가와 대담을 할 때도 그런 말을 했지만 난 그동안 낸 책이 몇 권인지 몰라요. 그래서 조사해보니 50 권이더군요. 그런데 강동우 평론가는 자기가 알기로는 53 권이래요.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겉보기와 달리 속은 엉망이죠.

이재훈 : 선생님의 작품 세계는 자아 탐구로 시작해서 그 시적 대상이 로 변화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시집 「밝은 방」부터는 자아 소멸, 주체 소멸로 바뀌게 됩니다. 자아와 주체가 소멸되면 남는 게 언어이고, 이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시작詩作에 그대로 투영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어에 대한 자율성을 누리게 하고, 스스로 생장, 형질 변화하도록 언어를 방목하는 형식이 하나의 시적 방법론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이런 언어를 사유하고 시적 대상으로서의 언어를 질서화시키는 건 결국 주체가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언어주체와의 친화와 길항 관계들에 대해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승훈: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시세계는 자아―언어―대상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대상, 곧 자연이나 현실을 노래하지 않았어요. 아니 난 그런 대상의 세계엔 관심이 없고 자아에만 관심이 컸고, 따라서 자아탐구의 시를 썼습니다. 이른바 비대상 시입니다. 대상을 상실한 자아는 무의식, 어두운 충동의 세계이고 이 세계는 그후 나/ 너/ 그라는 인칭 체계로 탐구되죠. 그러나 느닷없이 이런 자아탐구가 자아소멸로 전환됩니다. 자아탐구에서 자아가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입니다. 아니 내가 등단한 게 1963년이고 첫 시집을 낸 게 1969년이니까 시집을 기준으로 하면 25년이 걸린 셈이고. 이 시인 말처럼 1995년에 낸 시집 「밝은 방」이 전환점이 됩니다. 아무튼 자아를 찾는다는 게 이상하게도 자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겁니다.

이제 자아―언어―대상에서 남은 건 언어이고 자아가 없다면 언어가 시를 쓴다는 결론이 나오죠. 이 무렵 자아가 없다는 생각은 불교적 사유가 아니라 언어학, 특히 후기구조주의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거죠. 방브니스트, 데리다, 라캉, 바르트가 그렇습니다. 주체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할 때 주체가 탄생하고 말, 언어가 없다면 주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할 때 말하는 주체와 말 속의 주체가 태어나고 그런 점에서 주체는 두 주체 사이에 있고 주체는 계속 흘러가지요. 난 어제 술을 마셨어 하면 지금 말을 하는 나와 말 속의 나가 태어나고 나는 이 두 개의 나 사이에 있고 말이 계속되는 한 두 체의 관계도 계속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주체가 있고 이런 주체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텍스트적 주체, 해체적 주체, 차연적 주체입니다. 고정된 절대적 실체로서의 주체, 데칼트적 주체는 없고 주체는 차연이 생산하고 차이와 연기가 주체입니다. 말하자면 두 주체는 차이/ 연기의 관계이고 말하는 주체도 그렇고 말 속의 주체도 그렇습니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기표와 기표 사이에 존재/ 부재는 주체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 시인과 다른 생각입니다. 주체가 언어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언어가 주체를 구성/ 탈구성합니다. 요컨대 주체는 해체되는 거죠. 그러나 이렇게 자아소멸, 주체소멸을 깨닫고도 내 시가 계속 불안, 우울, 광기에 시달린 건 정효구 교수의 지적처럼 이 깨달음이 언어학을 매개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재훈 : 「비대상」,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 「비빕밥 시론」 등에서부터 최근 저서 「탈근대주체이론―과정으로서의 나」 등의 시론은 우리 시사詩史에 남을 대표적 시론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시론은 선생님의 시세계와 함께 공존하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게 됩니다.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은 시가 먼저냐 시론이 먼저냐를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시론에 의해 시가 탄생됐는지 아니면 시에 의해 시론이 탄생됐는지를 묻는 독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승훈:「비대상」은 말 그대로 대상이 없는 시를 쓰던 초기의 세계를 나대로 성찰한 것으로 그동안 오해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시론입니다. 대상이 사라지고 남은 자아는 무의식적 실체이고, 나는 이런 자아를 노래했습니다. 이상의 「절벽」같은 시가 그렇고 김춘수의 무의미 시론이 의미론을 강조한다면 내 시론은 심리학, 무의식, 억압된 심리적 에너지의 투사를 강조합니다. 나는 이런 세계를 실존의 투사, 외부세계의 무화無化, 언어의 도취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김춘수의 무의미 시는 묘사적 이미지, 자유연상, 통사해체의 단계로 발전하고 나는 비대상, 자아소멸, 해체로 발전합니다.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 「비빔밥 시론」은 자아소멸 이후에 남은 언어에 대한 사유, 시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전자는 시에는 본질이 없고 언어와 제도만 있다는 것, 후자는 이 언어와 제도의 해체를 다룬 것입니다. 「비대상」이 제 1기를 대표한다면 이 시론들은 제 2기를 대표합니다. 시와 시론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함께 가는 겁니다. 특히 현대시는 시론을 요구하고 시론은 시를 보는 시각, 입장, 태도입니다. 현대 회화도 현대회화에 대한 시각, 이론, 입장이 없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가 회화가 되는 것도 이론, 입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시가 전통 서정시로 퇴행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짓이고 현대시에 대한 시각, 입장, 이론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미적 후진성과 통합니다. 도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나무, 달, 이슬, 꽃, 강입니까 ?

이재훈 : 서구 문예 이론의 한국적 수용에도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현대시사상」이라는 잡지를 주관하시면서 여러 가지 문예 사상과 시적 담론들을 번역하고 그것을 우리 문학에 수용하는 논문들을 생산해 내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저도 습작 시절에 이 잡지를 복사, 제본하면서 공부했던 게 지금도 큰 재산으로 남습니다. 또한 지금 이러한 잡지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서구에서 이제 우리가 수용하고 천착해야 될 사상과 이론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서구 이론을 연구하시면서 가장 큰 인상을 받았던 이론 혹은 이론가로는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훈:서구는 끝났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끝에 동양이 있습니다. 서구 사상은 이론적이지만 동양 사상은 직관적이고 따라서 동양 사상, 특히 노장 사상, 불교 사상, 禪 사상에 대한 현대적 읽기가 요구됩니다. 그런 점에서 계간 「시와 세계」가 표방하는 후기현대와 선의 만남은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사실 많은 문예지, 시지들이 나오지만 뚜렷한 문학적 태도를 표방한 잡지들은 별로 없고 그 많은 시지들이 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이 낭비지요. 그건 그렇고 예컨대 데리다의 글쓰기가 놀이, 무용성을 강조한다면 장자는 이 놀이, 무용성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그런 점에서 데리다가 예술을 강조한다면 장자는 예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지향합니다. 데리다의 해체 개념도 유마 거사가 말하는 不二 사상과 비슷하고 다릅니다. 이 차이, 틈, 균열을 파고들 필요가 있죠. 요컨대 서양과 동양의 만남, 회통 그러니까 서양도 아니고 동양도 아닌 잡탕, 비빔밥, 혼교, 난교, 혼혈이 요구됩니다.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이론가는 소쉬르, 프로이트, 데리다, 라캉입니다. 소쉬르가 말하는 언어의 기호학적 특성, 프로이트의 무의식, 데리다의 해체, 라캉의 자아 개념 등은 지금도 내 사유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나대로 수용한 것이죠.

이재훈 : 1960년대는 선생님께서 등단하신 연대이지요. 당시 선생님께서 몸 담고 계셨던 「현대시」 동인은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념과 경향을 떠난 순수시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30년대 모더니즘 극복과 전후모더니즘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안고 있었던 당시에 「현대시」 동인은 가장 주목할 만한 문학 그룹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와는 다르게 현재의 「현대시」 동인들의 면면을 보면 모더니즘적 성격을 고수하며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은 선생님과 함께 김영태, 박의상 선생 정도에 불과합니다. 당시 「현대시」 동인의 영향과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승훈:60년대 신세대로 구성된 「현대시」 동인은 이 시인 말처럼 30년대 식민지 모더니즘, 50년대 전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이른바 산업화 초기 모더니즘을 추구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현대시」는 제 3기 모더니즘에 해당하죠. 30년대가 식민지 시대의 억압된 내면(이상)을 노래한다면 50년대는 실존, 존재(김춘수)를 노래하고 60년대는 산업화 초기의 내면, 갈등을 노래합니다. 60년대를 순수/ 참여로 양분한다면 순수파에 속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순수도 참여도 아닌 제 3의 그룹, 중간파로 봅니다. 중간파는 순수 (전통서정시), 참여(현실비판시) 양쪽에서 욕을 먹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죠. 그러나 서구 모더니즘, 아방가르드는 모두 회색이고 중간파입니다. 비유해 말하면 선거를 할 때 투표 행위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회색입니다. 왜 모두 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투표 거부, 기권, 포기는 선거와 제도에 대한 부정이고 아방가르드 정신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예술은 전통을 부정하고 현실도 부정합니다. 「현대시」 동인은 60년대의 외적 현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내면을 노래하고 이런 내면의식이 현대성과 통합니다. 어느 세대나 그 세대의 몫이 있죠.

이재훈 : 선생님께서는 김춘수 선생의 무의미시론을 계승해서 새로운 시론으로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습니다. 그것이 「비대상시론」입니다. 작고하신 김준오 선생은 모더니즘시론을 조향김춘수이승훈의 계열과 김기림김수영오규원의 계열로 이원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적 방법론을 떠나 선생님의 시에 드러나는 내면 정감의 노출구체화는 김춘수보다 김수영과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김수영은 광기의 형태로 드러났다면 선생님께서는 허무의 형태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이것은 국소적인 부분이지요. 선생님께서는 김춘수 선생의 영향과 동시대 시인으로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인 오규원 선생과의 차이와 선생님 시와 시론의 변별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이승훈:앞에서도 말했듯이 비대상 시론은 김춘수의 무의미 시론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창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시인들은 이상하게도 나는 누구의 영향을 받았소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내 사유가 어디 있습니까 ? 내 생각이라는 게 모두 그동안 읽은 책, 들은 소리들의 쓰레기 아닙니까 ? 그런 점에서 내 사유, 독창성이라는 건 없고 내 사유는 쓰레기들의 재활용입니다. 또 선배가 있어야 후배가 있죠. 그런 말을 하는 시인들은 제대로 공부를 안 했거나 선배에 너무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텍스트가 있는 게 아니라 인터텍스트가 있습니다. 모든 텍스트는 상호텍스트입니다. 문학은 인과성이 아니라 상호성이 중요합니다. 김수영은 30년대 이상의 정신, 아방가르드를 계승하고 나는 이상과 김춘수 사이에 있고 그런 점에서 김수영의 광기, 실험을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김춘수, 이승훈, 오규원이라? 크게 보면 같은 유파에 속하고 그것은 시에서 의미, 대상, 관념을 부정한다는 특성으로 요약됩니다. 김춘수의 무의미 시론은 관념의 제거를 노리는 이른바 묘사적 이미지에서 자유연상, 통사해체로 발전합니다. 오규원의 날 이미지 시론은 말 그대로 관념의 흔적이 없는 날 이미지를 추구하고 그런 점에서 김춘수의 묘사적 이미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합니다. 내가 주장한 비대상 시론은 김춘수의 자유연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지만 나는 자유연상보다 액션 페인팅의 논리, 곧 억압된 무의식의 투사를 강조했습니다. 김춘수가 대상의 재구성, 대상과 이미지의 거리를 강조하고, 이때 대상의 의미, 곧 지시적 의미의 소멸을 강조한다면 오규원 역시 이런 재구성, 곧 대상의 날 이미지를 계속 추구하고 나는 이런 대상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요컨대 김춘수, 오규원은 대상을 전제로 무의미, 날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난 출발부터 그런 대상이 없고 따라서 나의 내면, 무의식이 문제였습니다. 시의 경우엔 김춘수는 이상과 정지용 사이에 있고, 오규원은 이상과 김수영 혹은 김수영과 김춘수 사이에 있고 나는 이상과 김춘수 사이에 있습니다.

이재훈 : 모더니즘 시사를 조감해 보면 이상으로부터 시작해 조향, 김춘수에서 김영태, 이승훈, 오규원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이 있습니다. 그 이후 선생님 세대를 영향받은 후학들의 시세계는 조금 다른 성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향관계로 따져야하는가 의심이 들 정도이지요. 많이 거론되는 80년대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 등은 자아의 탐색이라기보다 사회성을 가진 의식적 모더니즘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들은 선생님의 작품세계와 일정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90년대 들어서 함기석, 박상순, 송찬호, 박찬일, 김언희 등이 더욱 친밀하게 영향받은 세대가 아닌가 싶은데요. 소위 모던한 시를 쓰는 후학들의 작품세계가 선생님의 영향과 연관짓는다면 어떤 계보와 분류로 특징지어야 할까요?

이승훈:80년대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 외에도 최승호, 기형도 등은 60년대 식의 내면이 아닙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내면을 드려다 볼 겨를이 없었고 그런 점에서 과격한 모더니스트들입니다. 정치적 모더니즘, 시장 바닥의 모더니즘이죠. 그러나 최승호, 기형도가 온건한 모더니즘이라면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은 아방가르드입니다. 이 시인 말처럼 난 이들 보다는 90년대 모더니스트들이 친척 같아요. 이재훈, 정재학도 이 계열입니다. 이유는 80년대가 외적 현실을 대상으로 한다면 90년대 신세대는 내적 현실, 말하자면 현대인의 악몽을 노래하고 이런 악몽, 그로테스크의 세계는 초기 내 상상력과 통하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시의 현대성을 이들이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우리 모더니즘의 제 5기에 해당합니다. 비슷비슷한 시들이 판을 치는 우리 시단에 이만한 개성, 이만한 재주, 이만한 전위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쁨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30년대 정지용, 김기림의 온건한 모더니즘이 아니라 이상의 과격한 모더니즘, 곧 이상적 아방가르드를 계승하고 그런 점에서 이상의 후예입니다.

이재훈 : 저는 우리 시사의 모더니즘적 특성 중 초현실적인 시적 방법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예전에 이상 시의 계보를 작성하시면서 분류하신 게 초현실주의의 기법, 다다이즘의 기법, 미래주의의 기법, 입체주의의 기법인데요. 우리의 형식 실험은 다분히 말 그대로 실험의 차원에서 끝난 예가 많습니다. 깊게 들여다보면 형식 이외의 것들은 모두 형식의 무게에 눌려 무위의 경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요.

선생님의 시에는 의식이 형식에 구속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시를 작은 사각형 안에 문자를 가두는 형식을 보면, 형식에 대한 깊은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시 형식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은 선생님 시를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 생각되어지는데요.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승훈: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서구의 시적 방법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굴절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서구 방법을 모델로, 무슨 공식처럼 적용해선 안되죠. 어떻게 20세기 초 프랑스를 모델로 지금 이 땅의 시를 평가할 수 있습니까 ? 수용은 수입이 아닙니다. 일종의 대화이고 굴절이고 변주입니다. 그건 그렇고 난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고 아니 형식이 내용이라는 입장입니다. 결국 시는 형식, 형태, 스타일이고 그런 점에서 난 형식주의자이고 스타일리스트이고 스타일리스트는 허무주의자입니다. 기댈 곳이 없어요. 현실도 대상도 의미도 본질도 없습니다. 언어가 있어서 시를 쓰고 언어는 현실이 아닙니다. 허깨비, 환상, 떠도는 기표입니다.

그러므로 시가 있는 게 아니라 시라는 형식, 형태가 있습니다. 시는 결국 낱말들을 이상하게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조가 그렇고 자유시가 그렇죠. 그동안 시를 써 오면서 제일 괴로운 건 형태였습니다. 이 시인 말처럼 별 놈의 형태를 다 시도해보았죠. 그동안의 시쓰기는 형태 변화였고 그것은 연구분이 있는 시, 산문시, 연 구분이 없는 단련시, 낱말 하나가 시행이 되는 길고 가느다란 시, 산문시 변형, 사각형 형태, 직사각형 형태,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자유로운 산문시로 변합니다. 형태에 지치고 새로운 형태를 생각하고 다시 지치고 그런 식입니다. 물론 형식과 형태는 다르지만 크게 보면 같고 그러니까 그동안의 시쓰기는 형식, 형태, 언어를 파괴하고 다시 구성하고 다시 파괴하고 다시 구성하는 일. 그러니까 언어 놀이죠. 사는 게 재미 없잖아요 ?

이재훈 : 김춘수 선생의 시적 흐름이 의미에서 무의미로 다시 변증법적 통합을 거친 의미로 되돌아왔다는 것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아 탐구, 자아 소멸로 철저하게 자아와 싸워온 고투의 흔적으로 보여집니다. 대신 변화하는 내면의 운동성을 이성으로 파악해 보려는 의지가 시적 대상의 전이轉移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시집 「인생」을 기점으로 선생님의 시세계가 선적인 세계로 옮겨갔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선생님의 사유 활동이 현재 선세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넘어서서, 선생님의 작품 세계의 새로운 돌파구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선적인 세계가 선생님의 시세계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승훈:이 시인 말처럼 김춘수는 의미에서 무의미로 다시 변증법적 통일로서의 의미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돌아온 게 아니라 지양되고 발전되었습니다. 나는 자아탐구에서 자아소멸의 단계를 거쳐 이 시인 말처럼 시집 「인생」(2002)을 기점으로 禪의 세계, 선적인 세계로 전환합니다. 아니 전환보다는 발전이나 초월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아소멸, 주체소멸을 주장하면서도 내가 자아로부터 완전한 자유나 해방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언어학, 특히 후기구조주의를 매개로 했기 때문이고 그건 이론이고 따라서 이론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불교, 그것도 선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나로서는 너무 늦은 법연이지요. 90년대 후반 어느 봄날 진주 장모님 49제가 하동 칠성암에서 있었고 그때 금강경을 만났고 그때 처음 내가 펼친 부분이 대승정종분이 고 거기서 보살은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을 버려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이 나와요. 특히 아상을 버리라는 말씀이 충격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아탐구니 자아소멸이니 하는 게 결국은 아상에 대한 집착이니까요. 자아는 相이고 想이라는 것. 부처님의 이 말씀과 만나고 나서 한결 가벼워지고 그후 無我, 無住, 不二, 空같은 개념들이 내 사유를 지배하게 됩니다. 시집 인생은 이런 사유들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선이 강조하는 것은 있음/ 없음을 초월하는 공이고 자유이고 해방입니다. 올해 낸 시집 비누에서는 이런 인식을 좀더 자유롭게 노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아탐구에서 자아소멸을 거쳐 마침내 자아불이로 발전했고 자아 있음(자아탐구) / 자아 없음(자아소멸)의 대립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되고 아니 선은 종합이 아니므로 있음/ 없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공, 불이의 세계로 나간 셈이지요. 불이나 공은 이런 유/ 무를 초월하는 세계이므로 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나는 너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는 不二 사상, 요컨대 무슨 분별, 대립이 지겹습니다. 최근에 쓰는 시들은 시와 삶의 경계를 깨는 작업이고 시와 삶 역시 불이의 관계에 있고 이젠 시를 쓰려는 생각도 버리고 시를 쓰고 아니 밥 먹는 게 시이고 아이들 가르치는 게 시이고 낮잠 자는 게 시라는 생각입니다. 삶과 시의 경계 뿐만 아니라 시와 비시의 경계도 깨야 합니다. 따라서 이젠 삶에서도 시에서도 한 결 자유롭습니다. 요컨대 시는 없고 시라는 것이 있고 이 시라는 것, 정의, 명명도 허상입니다.

결국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바르트는 선에 대해 말하면서 필름을 넣지 않고 셔터를 누르는 카메라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내용, 의미, 기의 없이 사물을 보는 행위지요. 삶에 무슨 본질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까 ? 결국 그저 있는 것, 그저 사는 것, 그저 쓰는 것이지요. 이 그저가 중요합니다. 그저 배 고프면 밥 먹고 술 생각 나면 술 마시고 잠이 오면 자는 겁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고 결국 삶이 시이고 시가 삶입니다. 나는 선을 만나고 시의 새로운 돌파구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셈입니다. 그러나 나는 불자도 아니고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글쟁이입니다.

이재훈 : 본 대담은 그간 있었던 선생님의 시적 작업을 큰 줄거리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답변에 큰 감사드립니다.

광화문 맥주집_[시와 세계] 2004년 겨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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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gs 2011-09-2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대담은 2004년이니까 내가 감히 인문대에서 교양수업도 아닌 선생님 수업을 들었던 2005년보다 한 해 앞이네 . 이건 마치 육성으로 듣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 저렇게 정말 쉼없이 이야기를 뱉으셨을텐데 . 칠판에 중간에 적어주시지 않거나 필기 안 하면 흐름에 알맞은 질문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것 같은데 . '시창작연습' 수업 노트 가..끔 보면 좋아

Bugs 2011-09-28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나는 여전히 '나는'으로 시작하는 '어린이 일기쓰기 1원칙'에 위배되는 글이나 쓰니까 쓸데없는 집착이 여기저기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ptrash 2011-09-29 09:20   좋아요 0 | URL
대학 노트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 아마 본가 어딘가에 쳐박혀 있겠지. 나는 나는 나는 나는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러나 하지만 같은 가짜들에 둘러싸여 몽롱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11-09-30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이런 글을 읽으니 새롭긴 한데, 시는... 참 어렵네요. 잡채밥에 하이트 한 캔 마시고 싶어요ㅎㅎ^^

poptrash 2011-09-30 06:46   좋아요 0 | URL
저는 다 어려워요 ㅎㅎ 저는 잡채만두 먹었어요. 기름이 튀어서 손등을 데었어요. 9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비로그인 2011-10-0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0월이네요. 대담을 읽는 건 어려우면서도 재밌는데, 그러다가도 좋은 시 한 편 읽으면 그것만 못한 것 같아요. 저의 연휴는 시에게 미안하게도 소설들과 함께네요 ㅎㅎ

poptrash 2011-10-05 12:39   좋아요 0 | URL
좋은 소설 많이 읽으셨어요? 연휴도 끝났네요. 시도 소설도 많이 많이 읽는 가을 되시길... ^^

김토끼 2011-10-1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시를 써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1년 전에도 그랬고, 2년 전에도 그랬고, 10월쯤되면 이런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것 같아요. 뭔가 지쳤을 때 '쓴다'는 행위로 도피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POPTRASH님은 잘 지내시나요?^^

poptrash 2011-10-14 17:05   좋아요 0 | URL
하지만 시는 우리 마음 속에... 10월은 언제나 지치네요. 물론 모든 달은 모든 달 나름의 이유로 지치게 하지만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쓴다'라는 행위로부터 도피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조금 궁금해 하면서요.
 

저는 이론가가 아닙니다. 저는 극적 장면이건 사회적 사건이건 어느 사건의 무대이건 간에 그것에 대해서 전혀 권위자도 아니고 신뢰할 만한 논평자도 아닙니다. 저는 할 수 있을 만한 때에 희곡을 쓸 뿐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 날씨가 어떤지에 따라, 하나의 발언도 최소한 스물 네 가지도 넘는 다양한 방법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이 자리에 서기가 꺼려집니다. 저는 어떠한 단언적인 발언도 영원할 수 없으며 정형화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발언은 즉각적으로 스물 세 가지의 다른 표현들로 수정되어질 테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제가 하는 발언 중 어떤 것도 궁극적이라거나 결정적인 것일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중 한두 가지 정도는 궁극적이거나 결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것도 거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제 스스로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므로 여러분들 또한 오늘의 제 말을 굉장히 궁극적인 정답으로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런던에서 두 편의 장막극을 연출하였습니다. 첫 번째 것은 일주일 동안 공연되었고 두 번째 것은 1년에 걸쳐 공연되었지요. 물론 두 작품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생일파티>(The Birthday Party)에서는 구 사이에 상당히 많은 대쉬(-)를 넣었지요. <관리인>(The Caretaker)에서는 대쉬 대신에 닷(.)을 넣었습니다. 즉, '봐-내가---누구를-'이라고 하는 대신에 '봐...내가....누구를...'이라고 읽히게 한 것이지요. 따라서 이를 통해 대쉬보다 닷이 더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관리인>이 <생일파티>보다 롱런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대쉬와 닷이 공연될 때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요점을 벗어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비평가들을 오래 속일 수가 없거든요. 들을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은 1마일 밖에서도 대쉬와 닷을 구별하니 말입니다.

연극에 대한 비평과 여론이 굉장히 변덕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 위험이란 그가 비평과 여론의 상관 관계 속에서 우려와 기대의 희생양이라는 오래된 벌레의 손쉬운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뒤셀도르프가 저에게 그런 분위기를 불식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2년 전 뒤셀도르프에서 유럽식 예법에 따라 연극의 첫날밤 막이 내릴 때에 저는 <관리인>을 연기한 독일 배우들과 나란히 서서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세계 최고의 야유꾼이라고 해도 될 분들에게서 즉각적인 격렬한 야유를 들었습니다. 메가폰을 쓰는 줄 알았더니 그들은 그냥 소리를 치는 것이더군요. 그러나 배우들도 관람객들만큼이나 끈질겨서 서른 네 번의 커튼 콜을 했고, 모두 야유를 받았지요. 서른 네 번째 커튼 콜을 할 때에는 극장에는 두 사람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때까지도 야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묘하게도 저는 이 일에 무척 감동을 받았고, 지금도 사람들의 오래된 우려나 기대로 전율을 느끼게 될 때마다 뒤셀도르프의 일을 떠올리면 치유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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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3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네 번의 커튼 콜에 서른네 번의 야유라... 양쪽 다 대단하네요. 마지막까지 남은 그 두 명의 관객은 연극사 같은 데 한 페이지 정도는 할애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ㅎㅎ^^

poptrash 2011-09-30 06:45   좋아요 0 | URL
세른네 번의 커튼 콜 세른네 번의 야유, 라는 제목의 연극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ㅎㅎ
 

이 책은 입문자들을 위해 쉽게 쓴 구조주의 해설서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문가용 해설서나 연구서는 잘 사지 않습니다. 지루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입문자용 해설서나 연구서는 자주 읽는 편입니다. 흥미로운 책을 만날 확률이 높으니까요. 전무가용 책에는 외부인이 알아듣기 힘든 그들만의 유머가 계속 나옵니다. 나는 그 이야기의 어디가 재밌는지 그래서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잘 모릅니다. 아는 이 전혀 없는 파티에 참석해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어색함을 느끼기 마련이지요. 그에 비해 입문자용 책은 일단 문지방이 낮은 것이 장점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독자를 손님처럼 맞이하는 상냥한 태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에서 볼 수 있는 문지방의 높고 낮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들만의 파티'와 '누구든 참가할 수 있는 파티'의 차이인가요? 아니면 전문서와 입문서의 특성상 내용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나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지방의 높고 낮음은 '전문가용'이 안다는 전제하에 구성되어 있는 것임에 반해 '입문자용'은 모른다는 전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 뿐입니다.

전문가를 위한 책은 '알고 있는 것'을 쌓아 올려 갑니다. 거기에는 '주지하고 잇듯이' 라든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또는 '과연 그렇기는 하지만' 같은 말만 잔뜩 적혀 있어서 책을 읽을 때마다 '뭐가 그렇다는 거야?' 라는 생각에 분노를 느끼기 쉽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지요. 그것은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정치인의 국회 답변을 듣고 있을 때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비슷합니다.

정치인의 답변은 전문적인 어휘와 식견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도대체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또는 시장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국제 여론은 누구의 의견을 말하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입으로 떠들고 있는 논제의 기본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논제의 기본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꼼꼼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답변을 들으면서 신경질이 나는 것이지요.

좋은 입문서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을 다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이를 거꾸로 하면 변변치 못한 입문서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겠지요. 초보자가 모두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전문가라면 누구나 말하는 것을 알기 쉽게 고쳐 써서 끝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입문서와는 다르지요). 좋은 입문서는 먼저 첫머리에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에 대해 묻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 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거짓말 같나요? 부모가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순간 갑자기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아이들은 부모가 '돌봐주기 모드'에서 '설교 모드'로 바뀌는 순간을 확실히 알아차리고 곧바로 귀를 닫습니다. 그게 선생님이거나 다른 어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설교를 듣지 않기 위해 설교의 징후가 있는지 없는지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지요. 아이가 부주의하고 태만해서 어쩌다가 부모의 설교를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주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어떤 것을 모른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른 채로 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물음을 정확하게 인지하면 우리가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의학 전문서에는 질병에 대한 다양한 치료법이 적혀 있지만 사람은 왜 늙는가? 또는 왜 죽는가? 등의 질문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무도 그 해답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눈을 돌리려고 한느 바로 그 질문입니다. 참으로 근본적인 의학 입문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사람은 왜 죽는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하겠지요. 그리고 '죽는 것의 의미'나 '늙는 것의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겠지요. 병의 치료법이나 오래 사는 방법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그 뒤에, 그러니까 근원적인 성찰이 있고 난 뒤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입문서는 전문서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만날 기회를 많이 제공합니다. 이것은 내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사실입니다. 입문서가 흥미로운 것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 물음 아래에 밑줄을 그어주기 때문입니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

지적 탐구는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늘 '나는 무엇을 아는가?'가 아닌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할 수 없는 물음, 그러니까 시간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성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화폐란 무엇인가, 기호란 무엇인가, 교환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일련의 물음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근원적이고 인간적인 물음입니다.

입문서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서비스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과 '일반적인 해답이 없는 물음'을 제시하고, 그것을 독자들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천천히 곱씹어보고 음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입문자를 위한 구조주의에 대한 쉬운 해설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씌어졌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룬다면 개인적 취향에 따른 편향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것과 얽히는 것을 피해왔던 해답이 없는 물음'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일반 독자들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책으로 쓰려고 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모형 완구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모르는 것을 조사해가면서 쓰는 겁니다.

나 역시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나 이론을 알게 되면 '아,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초보자에 불과합니다. 힘들게 이해한 이론적인 어려움들에 대한 안내를 할 수 있는 정도이지요. 다만 여행에 관한 책을 읽을 때 현지에 3대째 살고 있는 사람의 정보보다 조금 전에 그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의 정보가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어느 시민강좌에서 사용했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만강좌의 수강생들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이나 철학사에 대해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시민들로, 평균 연령은 60세(최고령자는 82세)였고 강의는 한 차례로 끝이 났으며 강의 시간은 90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향학열에 불탄다고 해도 예비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구조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를 90분 만에 전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하튼 최대한 '알기 쉽게'를 목표로 강의 노트를 썼습니다.

다만 '알기 쉽게'라는 것이 '간단하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둘은 서로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빨리 진행시키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상사를 기술하는 경우, 어떤 철학적인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체', '타자', '욕망'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그 정의에 대해 학계 내부에서도 합의 형성이 힘듭니다. 따라서 '타자란 이런 것이다' 또는 '아니다. 타자는 저런 것이다' 식의 교조적인 논의에 신경을 쓰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타자는 다른 사람이다' 정도의 느슪나 이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복잡한 이야기'의 '복잡함'을 그대로 둔 채로 시야가 탁 트인 사상사적 전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조주의라는 사상이 아무리 난해하다고 해도, 그것을 세운 사상가들이 '인간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할까?'라는 물음에 답하려고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 물음에 대한 접근 방법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하고 깊었을 뿐이죠. 따라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아, 그렇구나. 그런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깨닮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그 탁월한 지성을 구사해 해명하려고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담긴 본질적인 모습일 테니까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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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레비스트로스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살아요'라고 한 것이며, 바르트는 '언어 사용이 사람을 결정한다'라고 한 것이고, 라캉은 '어른이 되어라'라고 한 것이며, 푸코는 '나는 바보가 싫다'라고 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 나오는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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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위대한 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좋은 책이란 흡인력이 있고, 통찰력을 지녔으며 참신할 수 있다. 좋은 책은 종종 비평적인 찬사도 받고 심지어는 시대의 검증도 견디어 낸다. 좋은 책이란 흔히 쓰이는 의미에서 읽기 쉽고, 또 훌륭하게 쓰여졌다는 면에서 가끔 위대한 책보다 더 낫다. (다 읽지도 않고 위대한 책을 칭찬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물어 보라.) 위대한 책은 우리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좋은 책은 우리 문화가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책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작가들이 쓰고 싶어하는 것이다.

버나드 맬러머드의 네 번째 소설인 <수선공>은 좋은 책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스타일은 찬사를 자아낸다. 1967년 전국도서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이 작품은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다. (독자가 극적인 종결에 도달하는데 하루나 이틀 이상 걸리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빛나는 장점들 외에도 그 책을 위대한 책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 작품의 필요성이라고 하는 전혀 다른 무언가와 관련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야코프 복은 수선공이다. 그는 깨진 창문의 유리를 갈아준다. 계단이 삐걱거리면 소리가 안 나도록 해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실존주의적 수선의 이야기이다. "만약 나에게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삶이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사랑도 아이도 없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으며 아내가 그를 떠난 후 야코프는 세상에서 그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한다. 아마도 그의 행운은 평생을 발버둥치던 지방의 초라한 유태인 마을을 벗어나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은 1911년의 키에프이며, 이 시기는 1905년 혁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의 축출 사이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한 정치적인 풍토가 심한 공포의 문화를 낳았다. 잠재된 두려움과 증오가 겉으로 드러나고 공격적이 되었다. 12살자리 러시아 소년이 칼에 찔려 피가 다 빠진 상태로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 믿음이 ㅇ벗어서 예배당에도 나가지 않은 야코프는 종교 의식을 위해서 살인을 한 것으로 기소된다. (그 시기의 기독교 환경에서는 그런 기소가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죄과가 커지고 왜곡됨에 따라 야코프는 카프카적인 악몽 속에서 욥과 같은 인물이 된다. 그가 처한 곤경은 하나의 상징이 되는데,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 될 만한 유태인의 서사시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세상 그 자체에 대한 상징이다.

세상은 망가진 물건이다.

맬러머드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과 증오는 익숙한 것이다. 인간성의 결여는 현 시대적인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현재를 살면서 신문을 읽을 때 공포로 마비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좋은 책은 종종 우리에게 우리의 병든 세상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한편 위대한 책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위대한 책들은 우리에게 인간애를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인간애인 것이다.

야코프는 고통 받는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받으면서 생각을 하고, 고통을 받으며 투쟁하고, 아울러서 고통을 받으며 고난에 도전한다. 감옥에서 고상한 이교도인의 도움을 받는데 그 사람은 개인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그를 도와준다. 쇠고랑을 찬 야코프가 재판을 받기 위해 키에프 거리를 끌려갈 때 바라보는 군중들 중 몇 사람은 손을 흔들고 몇몇은 그의 이름을 외쳐 부르기까지 한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표면상으로 애매하게 보이는 클라이막스는 전혀 애매하지 않다. 야코프의 궁극적인 운명과는 상관없이 몇몇 선한 사람들은 그와의 유대감을 표시했고 그럼으로써 그들과 야코프의 인간애를 표현하였다.

내가 이 소설을 익기를 끝마쳤을 때에는 마치 징계 받은 느낌이었고 영감을 받은 것 같았다. 세상에 대한 불평은 갑자기 너무 약한 듯 하였다. 그리고 정치적인 활동을 피하는 것이 잘못이라 느껴졌다. 이 책에 비추어 보면 나의 비행동이 부도덕하게 느껴졌다. <수선공>은 도덕성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도덕적인 책이다. 즉, 얄팍한 지시를 하기 보다는 독자에게 강력한 질문을 제시한다: 왜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시트콤을 모방한 소설들이 좋은 책이 될 수는 있으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같은 흥미진진한 소설과 생기 넘치는 최신 유행의 소설이 좋은 작품일 수 있는 것처럼 천당에 대한 소설도 좋은 책일 수는 있다.

절망적으로 망가진 우리의 세상은 희망보다 더 귀중한 무언가를, 즉 행동에의 소명을 우리에게 주는 실존주의적인 소설을 필요로 한다. 진정한 수선공은 야코프 복이 아니다. (그는 그 세계의 등장인물일 뿐이다.) 버나드 맬러머드도 아니다. (그는 그 세계와 이 세계를 잇는 다리이다.) 진정한 수선공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모든 위대한 소설들처럼 이 작품이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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