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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에 대해 말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다. “예전에 말이야, 찰스 부코스키라는 분이 계셨어. 부코스키. 술과 여자를 양팔에 끼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온갖 일자리를 전전하신 분이지.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너 고용주야? 나 부코스키야…” 같은 대사를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마 술 때문이겠지. 나는 취했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니라면 그런 헛소리를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말이야 아무래도 좋다. 잔과 잔 사이를 채우는 의미없는 충전재일 뿐이다. 우리는 양껏 마시고, 마시고, 마신 후… 조금 더 마신다. 언젠가 부코스키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부코스키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절판된 부코스키의 책을 찾아 헌책방을 헤매던 어느 날의 소회를 담은 글이다. 소회, 라고 하니 어쩐지 제법 노회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아무려나, 나는 이렇게 썼다.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이다. 이십 대 초반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지만 출판계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싸구려 일자리와 허름한 하숙집을 전전하던 남자. ‘죽을 때까지 매달 100달러의 월급’을 보장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에 마흔 아홉의 나이에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남자.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단 세 권뿐이다. <시인의 여자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팩토텀>. 그나마도 앞의 두 권은 이미 절판되어 게으른 독자들을 애태우고 있다…(중략)”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니 그사이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먼저, 부코스키의 소설 두 권이 출간되었다. 데뷔작인 <우체국>과 <시인의 여자들>을 새롭게 번역한 <여자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술과 여자와 경마와 잡일로 인생을 탕진하던 청년(<팩토텀>)에서, 실수로 들어간 우체국에서 십수 년간 일하며 술과 여자와 경마로 시름을 달래던 중년(<우체국>)을 거쳐, 술꾼들과 되바라진 청년들의 시인이 되어 술과 여자와 경마로 인생을 즐기는 노년(<여자들>)에 이르는 부코스키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한 친구가 내게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선물해준 일이 있었다.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마땅히 보답할 게 없어 그냥 감사하는 마음만 주었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언제나 넉넉히 준비해두는 편이다. 만약 당신이 부코스키에 대한 원고가 들어 있는 졸저 <서서비행>을 구입한다면 페이지마다 묻어 있는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해야 할 일은 또 있다. 지난해 출간된 도서 중 아깝게 묻힌 50권을 선정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서평을 쓰는 기획의 한 꼭지를 맡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나는 그냥 부코스키의 <우체국>에 대해서 쓰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생활 음주인으로서의 꾸준한 노력에 이제야 보답이 돌아온 셈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로 해당 원고는 <아까운 책 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이 팔려도 추가 인세는 없으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느끼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야 그저 자기 책을 광고하는 얼간이가 아닌가? (물론 나는 얼간이가 맞다.) 따라서 마지막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나는 우연히 내가 모르던 부코스키 번역본이 한 권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993년에 출간된 <미친 시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이었다. 나는 그 즉시 헌책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뒤지고 뒤지고 뒤졌다. 그리고 결국 2천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는 그 책을 찾아냈다!


은전 한 닢이 그렇게도 갖고 싶었다던 상해의 늙은 거지처럼 책을 품에 꼭 안고 집에 돌아온 나는, 다른 모든 일들을 미룬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비록 낡고 상한 헌책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넘겼던 페이지가 다시 나오는 게 아닌가. 178페이지 다음에 163페이지가 나오더니 다시 178페이지까지 차례대로 이어진 후 곧바로 195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여덟 장이 없는 파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나. 허탈해진 나는 씁쓸히 웃으며 술을 따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코스키와 그의 인생을, 그의 술과 여자와 경마와 직업과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결국 그가 남긴 마지막 말에 생각이 닿았다. 그의 묘비명이기도 한 그 말은, 지금까지 내가 부코스키에 대해 쓴 모든 글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했다. 그건 이런 말이었다.


“애쓰지 마라(Don’t try).”


행복한동행 20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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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까운 책 2013>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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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세상 모든 똥구멍.
    from 새빨간 활 2013-05-13 23:13 
    이 세상 모든 똥구멍 !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 - 찰스부코스키, POST OFFICE 지상파 방송 3사 프로그램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경멸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 생활의달인 > 이다. 일종의 < 육체 노동 만만세 !> 전파 방송이다. 자전거 짐칸에 탑처럼 상자를 쌓고 달리기, 뚝배기가 담긴 쟁반을7층 다보탑 높이로 쌓아 머리에 이고 배달하기 그리고 중국 음식을 최단 시간 안에 배달하는 배달의 기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부코스키답습니다. 저 우체국 읽고나서 유레카를 외쳤어요. 바로 이거다 !!!!!!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흑흑....



어라 ?! 링크'를 건다는 게 먼댓글로 됬네요. 링크가 먼뎃글인가요 ? ㅎㅎㅎㅎㅎ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걸어두렵니다.... ㅎㅎ. 이 우체국이란 소설 대박났으면 좋겠습니다.


poptrash 2013-05-14 00:58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처음 팩토텀을 읽고 같은 생각을 했어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흑흑... -> 눈물까지 포함해 바로 요 반응.

빨리 대박, 중박 아니 소박이라도 나서 부코스키 다른 소설도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위먹은영구 2013-07-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업데이트 원합니다! 방에 에어콘 세게 틀어놓고 하나 쓰시죠!

poptrash 2013-07-05 04:20   좋아요 0 | URL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서재를 찾아주셔서 영광... 안 그래도 어제 술 취해서 자다가 기분 좋게 일어나니 밤새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더라고. 그래서 당분간 에어컨은 틀지 않는 것으로... 근데 정말 이미 쓴 원고들 옮기는 것도 귀찮은 여름이네. 비와서 야구도 안 하고 흑흑

파파 2013-12-1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코우스키를 아는 분과는 어째 금방 친구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죠. 글 잘 읽고 갑니다.

poptrash 2013-12-11 22:22   좋아요 0 | URL
부코우스키를 아는 분과 만나면 일단 술 한 잔 해야겠죠 ㅎㅎ 반갑습니다.
 

가십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는 <성난 초콜릿>을 소개하기에 앞서 최근 내가 들은 몇 가지 가십을 전한다. 모든 가십이 그렇듯 이 또한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끼리만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충무로의 떠오르는 배우 A씨에 대한 이야기다. 조각 같은 외모와 선 굵은 연기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A씨에게 동성성폭행 전과가 있다는 소문이다. 나는 그 소식을 영화사에 다니는 한 친구에게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다고 해야겠지만. 발단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얼마 전 출산한 친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기 사진을 올렸고, 다른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 예쁘다, 쏙 빼닮았다 등등. 그런데 어떤 친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A가 동성성폭행 전과 3범이라는 게 사실이야?” 곧바로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럴 리가 없다는 A의 팬과 그럴 줄 알았다는 안티 팬 사이의 갑론을박은 이내 감정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오랜 친구였던 그들은 서로를 ‘블락’했다. 그 와중에 몇몇 이들은 다른 배우들에 대한 흥미로운 가십을 늘어놓기도 했는데, 차차 소개할 것을 약속드린다.


다음은 젊은 작가 B씨에 대한 이야기. 독창적인 상상력과 문장력, 무엇보다 ‘정치적 공정함’으로 인해 많은 ‘진보적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젊은 작가 B씨가 실은 굉장히 비열한 인간인 모양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는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은 소문이다. 관계자들이 자주 드나든다는 홍대의 작은 바에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역시 관계자가 분명해 보이는) 한 남자가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흥분한 목소리로 “야, B 그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 알아?”라고 소리쳤다. 공통의 친구들에 대한 소소한 가십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한동안 B의 사생활을 둘러싼 구질구질하면서도 솔깃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지면관계상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어 무척 안타까운 남자의 짧지 않은 폭로가 끝난 후에야 우리는 다시금 술잔을 부딪칠 수 있었다. 어떤 범죄의 공모자들이라도 된 것처럼 의미심장한 미소를 나누며. 그리고 우리는 다양한 작가들에 대한 가십을 즐겁게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렇듯 가십은 우리를 매혹시킨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기 사진이라고 해도 유명 배우에 대한 가십 앞에서 더는 우리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술자리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가십도 없는 술자리보다 지루한 술자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니 사실 여부는 아무래도 좋다(나 역시 위의 사례들이 모두 나의 ‘소설’일 뿐이라는 사실을 구태여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심심한 입을 위해 주전부리가 있는 것처럼, 지루한 정신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씹을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 조지프 엡스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으로 껌 씹기’, 그것이 바로 가십이다.


<성난 초콜릿>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런 가십의 향연이다. 아니, 차라리 가십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는 게 낫겠다. 스스로 가십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가십이 인간 사회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보편적인 소통의 형식임을 증명하려는 듯하다. 우리의 ‘길티 플레져’에 면죄부를 내려주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저자는 우리에게 그동안 점잖지 못한 사람들의 하찮은 취미 정도로만 취급하던 가십을 새롭게 평가할 것을 주문한다. SNS의 발달과 갈수록 가십화되고 있는 언론 환경 속에서 가십은 더 이상 몸에는 나쁘지만 입에는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성난 초콜릿’이고, 그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흥미로운 책이다.


시사인 292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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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4-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쉽은 이제 이 시골에도 곳곳에 뿌리내린 듯해요. 아니, 시골이 더 심할지도..

그나저나, 길티 플레져라..음..정곡을 찌르는 단어네요.
이 책, 솔깃합니다요.

참!!!!
저 이제 오에 겐자부로 책, 거의 다 모았어요. 이번에 유독 싸게 중고로 많이 나왔더라구요.
혹시 보시고픈 책 있음 저에게 대여신청을! 히힛.

poptrash 2013-04-24 16:44   좋아요 0 | URL
소소하고 사적인 가십들은 원래 '옆집 수저 갯수도 알고 있는' 시골에서 더 활발했던 거 아닐까요. 물론 도시 사교계(?)의 가십은 훨씬 더했겠지만... 가십을 즐기는 건 인간 본성이 맞는 거 같아요. 저도 즐기고 있고요 ㅎㅎ

오에 겐자부로 책 저도 거의 다 모았습니다! 어떤 책들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ㅎㅎ

달사르 2013-04-28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게다가 요새 가십은 현대문명의 도움을 받기도 하더라구요. 가십에 동영상 파일이 증거물로 돌아다니는데, 정말이지 넘어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제가 팝 님 덕에 오에 겐자부로를 알게 되어, 오에 겐자부로 책을 읽을 때면 매번 팝 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팝 님도 거의 다 있다시니 이거 기분이 무지 좋은데요? 제가 모은 건, 조만간 책장 정리를 하게 되면 자랑질 인증샹 올리겠습니닷.

Jeanne_Hebuterne 2013-04-2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 서점에는 Schadenfreude 라는 코너가 별도로 있었어요. 인간은 본디 미천하고 비굴하고 비열하며 약자일수록 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인간의 역사는 이런 어둠으로 구성된 걸까요?

poptrash 2013-04-24 16:45   좋아요 0 | URL
모르는 단어라 찾아보니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란 뜻인 모양이네요. 서점에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 코너가 있다니... 어떤 의미에선 정말 대단한데요? ㅎㅎ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런 어둠으로 구성된 게 맞겠죠 아마.

Jeanne_Hebuterne 2013-04-24 17:30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두서없이 쓰느라 뜻을 안쓰다니, 죄송해요! 이런 뻔한 실수를 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둠으로 구성된 세계에 일조함을 증명하는 모습이 되었군요! 동감, 동감. 몽땅 어둡고 갈 길이 없는 게 사실인데, 그럼에도 의미를 찾으려는 이 헛발질이란.

poptrash 2013-04-25 21:28   좋아요 0 | URL
사는 동안에는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ㅠㅠ

windbird 2013-04-2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보스턴 리걸이란 법정 드라마 중 에피소드 하나 이름이 샤덴프로이데이에요.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유죄로 확정될 것 같으니 합리적 의심을 넘어선 증거가 없다면 무죄로 해달라는 변호인의 변론에 배심원들이 홀딱 넘어가는 내용입니다. 재미있는 단어라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poptrash 2013-04-25 21:29   좋아요 0 | URL
아, 미국 드라마 종종 보는데 보스턴 리걸은 한 번도 안 봤어요. 샤덴프로이데이... 저도 기억해두겠습니다 ㅎㅎ
 

그날은 만우절이었지만 나는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교육을 받고 군가를 부르고 청소를 하기에도 바빴던 탓이다. 아마 건빵도 먹었겠지. 5주차에 접어든 훈련병이었던 우리는 인터넷이나 TV, 하다못해 신문도 없는 그곳에서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것은 며칠 후의 일이다. 여자친구에게서 온 한 통의 편지. 조금씩 아껴 읽던 편지의 끝머리에서 그녀는 지나가듯 담담한 어투로 장국영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지난 만우절에 장국영이 어느 호텔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군복 주머니에 포크 숟가락을 넣은 채 흙바닥을 구르던 훈련병에게 그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만우절에 투신자살이라니, 너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반사적으로 <아비정전>을 떠올렸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라던 아비의 대사를. 나는 그것이 고약한 만우절 농담이라고 결론내렸다. 훈련소 동기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백 일 후, 첫 휴가를 나갈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막상 확인한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별다른 슬픔을 느낄 수 없었다. 애도는 이미 늦었고, 휴가는 너무 짧았던 것이다. 그 후로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짧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허둥지둥대던 새파란 훈련병은 어느덧 생활에 찌든 삼십 대 아저씨가 되었고, 상병이 될 무렵 편지로 이별을 통보했던 당시의 여자친구는 소식도 모르는 남남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장국영이라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앞에 두고 나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불평은 오래가지 않았다. 책은 우리를 장국영의 삶과 영화 속으로 안내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추억인 것이다. 나는 돌아보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이른 죽음과 너무 쉽게 잊어버린 우리의 지난 날들을. 한 시대가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비로소 절감한다.
















보그걸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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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지막 주말은 조금 이상했다. 토요일에는 결혼 한 선배의 신혼집에서 피로연을 하다(신혼여행을 다음날 떠난다고) 아주 먼 옛날 여자관계로 얽혔던 후배 두 명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 문짝이 떨어지고 벽이 구멍나고 피가 흐리고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있었고, 다음 날은 중국으로 돈 벌러 떠나는 후배를 환송하다 새벽녘 술에 취한 녀석이 이상한 옛날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문제의 결혼 피로연에서, 그 난장의 와중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과거랑 좀 이별하라고. 그게 뭐 그렇게 힘들어!" 그날도,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나는 내내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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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violetta 2013-04-19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랑은 이별하는 게 아니라 등 뒤에 달아두는 게 아닐까요. ^^
평소에 보이지 않지만 가끔 고 놈이 원숭이처럼
등이라는 나무에서 내려와서 탈인거죠.
그럴때 원숭이 얼굴 냅다 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단 세게 치셔야합니다.

평소에 글 잘 보고 있다고 중년팬으로써 감사 인사드립니다.

poptrash 2013-04-21 07:32   좋아요 0 | URL
문득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제목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가 떠오르네요. <인간 실격>의 "사람이 아니다. 원숭이다." 이런 문장도 떠오르고... 매번 지기만 하는 찰리 브라운네 야구팀에서 외야를 보고 있는, 역시 매번 공을 놓치고 변명을 늘어놓는 루시의 대사도 생각나요. "과거가 눈이 부셔서!"

저도 언젠가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과거는 쓰레기처럼 어디 몰래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
 

1. 야구, 그 잔인한 게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어트는 그렇게 노래했다. 분명 이 위대한 시인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시구詩句와는 달리, 모든 야구팬들에게 4월은 가장 신나는 달이 아니던가. 겨우내 기다렸던 프로야구 시즌이 마침내 개막하는 달이고, 누구나 자신의 팀이 승승장구하는 꿈을 꿀 수 있는 달이다. 설령 당신이 만년 하위 팀의 팬이라고 하더라도 ‘올해는 다르다’는 매년 똑같은 헛된 꿈을 다시 한 번 꿀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야구는 잔인한 게임이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그리고 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아무리 지고 또 진다고 해도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LG 트윈스의 팬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1994년에 마지막 우승을 한 LG 트윈스는, 2002년 이후로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유일한 팀이다. 다시 말해 <고교 독서평설>을 구독하는 당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마지막 우승을 했고, 당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단 한 번도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LG 트윈스의 팬이라면, 지금 당장 경찰에 연락하라.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당신을 야구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라. 아무리 프로야구 팀이라도 자라나는 청소년의 마음을 산산이 부셔놓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


2. 야구, 또는 신비주의


빌리 빈에게도 야구는 잔인한 게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모든 스카우터들이 꿈꾸는 종류의 선수였다. 주루 능력과 송구 능력, 수비 능력, 타격 정확도, 장타력을 뜻하는 5툴five‐tools를 모두 갖춘 것은 물론이고, 타고난 리더십과 멋진 외모(참고로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을 연기한 것은 브래드 피트였다)까지 가지고 있는 준비된 슈퍼스타였다. 수많은 메이저리그 팀들이 그를 탐냈으며,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막대한 계약금과 함께 뉴욕 메츠에 입단한다.


하지만 눈부신 재능은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타고난 재능 덕분에 빌리는 실패에 익숙하지 않았고, 프로의 높은 벽 앞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는 실패를 견딜 수 없었지만, 그럴수록 실패는 그의 어깨를 더욱 짓누를 뿐이었다. 코치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이 보기에 빌리는 실패할 수 없는 선수였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빌리는 결코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자신의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내몰려”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빌리는 은퇴를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빌리는 부질없이 매달렸던 재능에 대한 미련을 마침내 던져버렸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재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야구는 기술일 수도 있고 요령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는 야구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근거 없는 기대와 꿈에 짓눌리고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과거에서 이제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빌리가 신비주의에 둘러싸인 야구를 혐오하게 된 것도 당연했다. 그는 곧 야구의 신비주의를 무너뜨릴 무기를 쥐게 될 것이다. (91쪽)


1990년, 빌리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뛰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전력분석원으로 취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좀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성공하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선수를 평가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다. 기존의 방식은 선수들을 판단하는데 적절하지 않았다. 빌리 자신이 바로 그 증거였다. “메이저리그 스타가 되지 못한 고참 스카우터들은 젊은 선수를 통해 대신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마치 어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들은 결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없었다. 강한 어깨와 빠른 발, ‘야구선수다운’ 몸매와 잘생긴 얼굴에 홀려 막대한 계약금을 낭비했다. 빌리는 그들의 실패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때를 절박했던 심정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야구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필사적인 노력 속에서 창의성이 나오게 됩니다.” (98쪽)


3. 야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식품공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빌 제임스는 괴짜였다. 삼진과 홈런, 호수비와 같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다른 팬들과는 달리, 그는 야구를 통계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제임스는 엉터리 통계가 야구를 뒤덮고 있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야구라는 게임을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테면 타점은 전통적으로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지만, 그가 보기에는 타석에 들어섰을 때 주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단지 운에 지나지 않는 문제였다. 타율과 그 밖의 것들 또한 행운과 요령의 교묘한 결합이긴 마찬가지였다.


“타자는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성공 여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며, 타자의 목표는 바로 출루에 있다. 그러나 이 점에서 야구계가 얼마나 착각에 빠져 있는지를 알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공격 부문의 팀별 순위를 정할 때 메이저리그는 1순위, 즉 최고의 공격 팀으로 가장 많은 득점을 한 팀이 아니라 평균 타율이 가장 높은 팀을 꼽는다. 공격의 목적은 높은 타율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117쪽)


그는 볼넷과 안타, 도루 등의 숫자를 고려해 한 팀이 얼마나 득점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실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론을 통해 그는 사람들이 볼넷과 장타의 가치는 폄하하고, 평균 타율과 도루의 가치를 과대평가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것은 게임의 법칙을 뒤바꿀 획기적인 주장이었지만, 정작 야구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빌 제임스는 외부인, 그것도 숫자와 컴퓨터에 미친 괴짜 외부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숫자를 사랑한 몇몇 경제학자들과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 폭넓은 이해를 바라던 소수의 팬들이 빌 제임스의 이론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기존의 해석에 만족하지 않았던 그들은 스스로 가설을 세운 후 증거를 찾아 실험했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은 점차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극소수의 야구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빌리 빈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4. 그저 운이 좋았을 뿐?


1997년 빌리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 취임한다. 불과 몇 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렇지만 야구는 여전히 그에게 잔인했다. 애슬레틱스는 가난한 구단이었고, 팀을 승리로 이끌 스타급 선수는커녕 평범한 선수조차 살 형편이 못 되었던 것이다. 그는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네 배에 이르는 돈을 쓰는 부자 구단들을 상대해 승리를 거둬야 했다. 분명 공정한 상황은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 연봉은 230만 달러였지만, 시즌 개막일 기준 애슬레틱스의 평균 연봉은 150만 달러도 채 못 되는 금액이었다. 따라서 다듬어지지 않은 어린 선수나 시장에서 과소평가된 기존 선수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프로야구계의 연봉 상승세를 감안한다면 메이저리그 선수들 가운데 저평가된 선수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선수시장이 합리적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재능 있는 선수는 이미 부자 구단에서 모조리 쓸어갔을 테니 가난한 구단이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을 리 없다. (175~176쪽)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애슬레틱스는 대부분의 부자 구단들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해가 갈수록 재정이 더욱 악화되고, 다른 구단과의 연봉 격차 또한 빠르게 벌어졌지만, 승률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97년 87승을 기록한 팀은 2000년에 91승을 거뒀고, 2001년에는 102승을 거두면서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당신이 LG 트윈스의 팬이라면 바로 지금이 분통을 터뜨릴 순간이다.


비밀은 바로 빌 제임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발전시킨 새로운 평가 기준에 있었다. 애슬레틱스는 전통적인 관점을 가진 구단들이 높게 평가하는 선수들의 몸값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빠른 발과 강한 어깨, 높은 타율과 훌륭한 수비력을 가진 선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볼넷을 고를 줄 아는 타자, 출루율이 높은 타자를 원했을 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들이 아무리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조금 더 헐값에 영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구단은 애슬레틱스의 성공을 단순한 운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애슬레틱스는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 모두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선수시장에서 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애슬레틱스의 성공 요인이었다.


5. 머니볼,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2002년은 빌리 빈과 애슬레틱스에게 중요한 시즌이었다. 시즌을 앞두고 팀의 중심타자인 1루수 제이슨 지암비와 빠른 발을 가진 1번 타자 자니 데이먼, 그리고 팀의 뒷문을 지키던 마무리 투수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이 모두 자유계약 선수가 되어 막대한 연봉을 제시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 것이다.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애슬레틱스의 몰락을 예견했다. 하지만 빌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개인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집합체, 즉 팀 전체의 완성도를 재현해내는 데 있습니다.” 그는 제2의 지암비를 찾을 수도 없고 찾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지암비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 중 한 부분을 갖춘 선수를 찾아서 지암비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사올 수는 있었다. (204쪽)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물론 지암비의 높은 출루율이었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은 것이다. 빌리는 보스톤 레드삭스에서 포수로 뛰다 치명적인 어깨 부상을 입고 방출당한 스콧 해터버그를 영입했고, 그에게 지암비가 떠난 1루를 맡겼다. 그는 또한 신인지명과 트레이드를 통해 다른 부족한 부분들도 채워나갔다. 다른 구단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선수를 찾아 기용하고, 과대평가된 선수를 비싼 가격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함으로써 필요한 선수들을 헐값에 받아왔다. 다른 팀들이 합리적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빌리를 비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에슬레틱스가 하려는 일들을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한 가지 교훈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한 번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행동을 비웃는 태도는 단순한 악덕이 아니라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상상력의 부재는 경쟁시장에서의 비효율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168쪽)


그리하여 역사적인 시즌이 펼쳐진다. 시즌 초반 부진을 면치 못했던 팀은 중반 이후 연승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아메리칸 리그 최초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11대 0이라는 큰 점수차로 앞서 나가다 11대 11로 따라잡혔던 마지막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연장 끝내기 홈런을 친 것은 다름 아닌 스콧 해터버그였다.


결국 지구 우승을 거머쥐며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사람들은 그들의 야구를  ‘머니볼’이라고 불렀다.


6. 머니볼, 그 이후


하지만 성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른 구단들이 서서히 빌리의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평가되었던 선수들이 새롭게 평가되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자연스럽게 몸값이 폭등했다. 물론 애슬레틱스 구단에는 그들의 몸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발견해야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빌리 빈의 실험은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그는 여전히 저평가된 선수들을 찾아 선수들의 기록을 뒤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2 시즌, 오클랜드는 2006년 이후 6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새로운 머니볼의 시작을 예고했다.


이것은 물론 야구를 둘러싼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빌리 빈과 오클랜드 에슬레틱스가 야구계에 던진 것은 어떻게 구단을 운영하고 경기를 펼치며, 누가 가장 훌륭한 선수이고 왜 그런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주어진 답안에 만족하는 대신, 자신들의 방식으로 답을 찾았고, 그것을 멋지게 증명했다. 이것은 또한 편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애슬레틱스가 영입한 많은 선수들은 야구의 신비주의에 희생된 선수들이었고, 빌리 빈이 아니었다면 기량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야구계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빌리 빈이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 “당신이 실패를 멈추는 순간, 당신의 혁신은 끝이다”라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우디 앨런이었다 .


결국 <머니볼>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야구는 분명 잔인한 게임이지만, 인생을 닮은 게임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야구가 잔인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고교 독서평설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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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독서평설에 연재 중인 '고전의 귀를 접다' 코너의 지난 4월호 원고. 사실 '머니볼'이랑 가장 먼 야구가 LG 야구가 아닐까 싶은데... 얼마 전 보낸 5월호 원고에서는 '풀 하우스'를 소개하며 4할 타자의 등장이 빠를까, LG 트윈스 4강 진출이 빠를까를 다뤘다. 고등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냐 싶지만, 그래도 4월은 야구의 계절이니까. 4할도 4강도 4월도 모두 병이고 LG 트윈스는 이뭐병... 


솔직히 지난 일요일 대 두산전만 이겼어도 이런 포스팅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졌고, NC, 한화와의 생각만해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 시리즈를 앞두게 되었다. 오늘은 야구를 할 수 있을까? 과연, 야구를 하는 게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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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4-0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봐도 웃음이 ㅎㅎㅎ

올해 롯데는 웃음후보도 안 될듯합니다. 롯데 떨어지고 LG가 사강 가면 프로 야구 좀 재미잇을 것 같은데요.

poptrash 2013-04-09 18:0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하이드 님! 그래도 롯데는 최근 5년간 해온 게 있으니 잘하지 않을까요? 압도적이진 않아도 그럭저럭 위기를 극복하면서 (종종 뒷골 잡는 경기도 하겠지만) 4강 싸움할 것 같아요. 사실 올해는 SK도 긴가민가해서... 반면 넥센 타선이 폭발할 거 같으니 올해 야구는 더 재밌겠네요. 제가 LG 팬만 아니라면 진짜 재밌을듯...
 

흥미로운 제목이다. “너희들의 혁명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들의 봉기가 시작된다!!”라는 띠지의 문구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제의 띠지에 따르면 히로세 준은 “가라타니 고진, 아사다 아키라를 잇는 젊은 사상가”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알 뿐이다.


저자는 우리가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은 어리석은 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고, 그들을 설득하여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도, 그들로부터 패권을 빼앗아 오는 것도, 그들을 전부 숙청하여 어리석은 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하나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결과에 충격과 공포를 느꼈던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목이다. 물론 그것도 어리석고 힘센 ‘그들’과 어리석진 않지만 패권을 빼앗을 역량은 없는 ‘우리’라는 이분법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의 말이지만.


불가능한 혁명의 대안은 바로 봉기다. 잠깐, 봉기라고? 고개를 갸웃할 당신을 위해 직접 저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들뢰즈의 말처럼 세계가 우리의 혁명에 의해 무언가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우리 자신이 무언가 다른 것이 되고, 혁명적으로 되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된다devenir’는 것은, 세계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것이다. 세계가 무언가가 ‘되는’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치욕, 세계로부터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치욕은 우리 자신이 무언가가 ‘되는’ 것으로만, 우리가 세계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씻어낼 수 있다. 이 책에서 ‘봉기’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언가가 ‘되는’ 거, 그것에 관한 이중화된 비전, 디스토피아를 뒤바꾸는 에티카, 게릴라전을 가리킨다. 이와 더불어 시작되는 ‘사랑’이란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애’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봉기의 정체는 모호하기만 하다. 봉기와 혁명의 관계 또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난데없이 ‘사랑’이 끼어든다. 그리고 저자에게는 설명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 현대 사상과 영화를 오가는 방대한 인용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그것을 아랍의 봄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의 사례에 적용하는 저자의 통찰은 종종 빛을 발하지만, 근본적인 개념설정의 부재가 자꾸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는 흥미로운 독서경험을 제공한다. 어차피 명확한 것도 없고, 답도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혁명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공유하는 답을 실현하는 것이다. 반면 봉기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창출하면서 문제를 껴안고 준안정에서 준안정으로(마치 원자력이 그런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자신이 주장하는 ‘봉기’ 그 자체를 닮았다. 그리고 “혁명은 피로를 알지 못하지만, 봉기는 피로하다.” 저자가 끊임없이 나열하는 현대 사상의 단편들은 분명 우리를 피로하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것이 단편인 탓에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무척 솔직한 자기고백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한다. “막다른 곳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다른 상태 속에서 버, 버, 버벅거림으로써만 오늘날의 투쟁은 시작한다.” 우리의 삶도, 그리고 이 책도 마찬가지다.
















시사in 288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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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다. 특히 영화를 전공한 이력답게 영화와 프랑스 이론을 나열하는 저자의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 물론 나는 이 말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또한 폭력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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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재미있겠는데요. 읽어봐야겠습니다.

poptrash 2013-03-26 17:54   좋아요 0 | URL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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