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어록 - 명상에세이
신비 지음 / 생각하는사람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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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계절은 어느새 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바야흐로 나의 봄에 대한 상사병이 발병할 시점이 된 것이다. 네 계절 중 봄을 좋아하면 늙어가고 있는 증거라고 하던데 나는 예전부터 봄이 좋았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신록을 감상하는 재미, 버스 안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재미에 일부러 학교와 멀리 떨어진데 방을 얻어놓고 살았다.

그리고, 해마다 봄이 되면 늘 움트는 새싹들과 그 새싹들이 부풀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달콤하기 그지없는 봄바람의 물결 속에서 물(物)과 나(我)의 일체一體)를 느꼈다. 그러면서 가슴속에서는 늘 ‘이 뭣고?’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청경채 김치를 들어보셨나요?’라는 기사의 제목에서 청경채, 청경채가 뭐지 하는 호기심에 끌려 박미란 기자의 글을 처음 접했다. 글을 읽고 보니 청경채는 쌈 밥집에 가면 흔히 있는 쌈 배추라고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부르던 작은 배추 같은 채소를 말함이었다.

관련기사
청경채 김치 들어보셨나요?


엄마와 함께 청경채로 김치 담근 이야기와 이전기사 몇 개를 읽으면서 박미란 기자는 푸른 자연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청경채는 물론이고 청경채가 자라던 텃밭의 다른 채소, 상추 쑥갓 등 그 풋풋한 자연의 빛깔, 향기에 취한 기자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 또한 초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기에 늘 그의 기사를 고대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는 ‘청경채.....’를 끝으로 ‘잠수’하였다. 그러한 것을 우연한 기회에 그가 책을 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비어록? 기사가 참 ‘명상스럽다’ 생각하였는데 그는 알고 보니 명상가였다.

(‘청경채...’와 일련의 기사를 읽을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그가 기사 끝 자기 소개란에 명상에세이를 쓴다고 한 것이 보였다.)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날,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두 눈을 감아 본 적이 있는가. 슬며시 귓가로 다가와 머리칼 사이를 돌아다니며 휘파람을 부는, 그 바람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그때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장난을 쳐오는, 그 바람과 함께 뒹굴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땀 흘리며 올라간 산의 정상에서 오묘한 흰 구름을 내려다 본 일이 있는가. 아니면 잠 못 이루던 밤에, 아득히 멀리서 밝아오는 짙푸른 여명의 빛을 본 일이 있는가. 또한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들을 하릴없이 바라본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다른 세계이다! 그 신비로움과 아스라한 향취는 이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저 너머>의 황홀경이다. 무아경이고 신비경이다. 가득 찬 자아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해마다 봄이 되면 느끼는 봄풀과 바람, 나무의 새싹에서 느끼는 벅찬 황홀경은 명상까지는 못가도 준명상 준준명상은 된다는 말인가.

내가 그에게서 또 하나의 일치를 느낀 것은 햇살에 대한 감읍이다.

‘햇살이 눈부신 날에는 가슴이 울렁거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 눈부신 햇살이 마치 크리스털 가구인양 나뭇잎사이로 쏟아지기라도 하면 나도 내 자신을 제어하기가 힘이 든다. 즐거워서 절로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머리카락이며 어깨에 쏟아지는 햇살은 향기롭다 못해 달콤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는 코끝이 시큰하도록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렇듯 숨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절감한다.’

햇살이 그냥 눈부신 게 아니고 미치도록 눈부실 때는 한점 바람도 ‘감히’ 살랑이지 못하는데 나는 그런 바람 한 점 없이 퍼붓는 햇살의 순간에 가장 살아있음과, 그리고 생명의 숨결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이 나만이 아니었고 나처럼 미치는 또 한사람을 확인 할 수 있었다니.

<신비어록>은 박미란 기자가 그의 블로그 ‘신비어록’에 남긴 명상의 글들은 책으로 묶은 것이다.

몇 년 전 21세기가 첫 포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21세기는 ‘명상의 시대’라는 말들을 많이 하였다. 정말이지 이 시대는 명상이 필요한 시대이다. 필요하지만 하고 싶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명상은 하고 싶으나 그것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우선 박미란 기자의 <신비어록>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매일 밤 자기 전에 혹은 삶의 어느 순간 순간에 고요히 눈을 감고 우주 속 먼지가 되어보자. 바다 속 심해로 ‘꺼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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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한국배우
백은하 글, 손홍주 사진 / 해나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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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어느 행간에선가, '장동건'이란 배우를 일러 '베스트셀러 인줄은 알았지만 스테디 셀러까지는 짐작 못했던 어떤 추리소설'이라고 한 표현을 보게 되었다. 그 표현의 '적확함'에 끌려서 <우리시대 한국 배우>라는 책을 사 보게 되었다.

그런 표현을 쓴 주인공은 전직 씨네 21기자였던 백은하씨였다. 정말이지 그것은 배우 장동건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그냥 단순한 소설이 아니고 '추리소설'이라고 한 그 기발함, 물론 장동건이 그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백 기자의 통찰력과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동건에 대한 백은하 기자의 따사로운 글을 읽고 난 다음 박해일은 또,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지 궁금하여 박해일 편을 먼저 읽었는데 그 첫 문장이 '박해일은 참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였다. 어머나 세상에,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구나.

백 기자는 박해일의 목소리를 두고 '누군가를 한없이 믿어버리게 하는 목소리'라고 하면서 "'그가 사랑해요'라고 하면 세상 끝까지 지켜질 굳은 약속처럼 들린다'고 하였다. 왜 아니랴!

아무튼 외모, 내모 모두 돋보이는 두 젊은 배우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난 다음 처음으로 돌아가서 순서대로 책장을 펼쳤는데 지은이의 배우들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따뜻했다.

가끔 영화를 해석하는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 영화를 어쩌면 그리도 낱낱이 해부할까 하는 감탄이 일기는 하나 그러한 글들이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한 분석은 영화를 통째로 씹는 맛을 앗아갔다.

그런데 백은하 기자의 글은 달랐다. 그는 바람둥이처럼 여러 배우를 동시에 사랑하면서도 배우 각자에게 주는 사랑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씨네21 기자를 오래해서 그런지 배우들의 역사를 한 큐에 좌-악 꾀고 있는가 하면 각각의 배우들의 특징 또한 톡 꼬집어냈다.

너무도 적확하게 자신에 대해 얘기해 주는 글을 읽는 배우들은 모두 자기에게만 그가 속삭인 줄 알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설사 자기에게만이 아닌 다른 배우들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속삭였다해도 전혀 질투가 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받은 사랑이 너무 크므로 굳이 질투(?)할래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배우 설경구에 대한 그의 한 줄 논평은 이렇다. '한번 보면 무섭고 두 번 보면 재밌고 세 번 보면 정드는 남자' 내 느낌으로도 설경구는 딱 그랬다. 처음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를 봤을 때는 무서웠다. 어찌 인간이 저리 끈질기게 잔인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연기라지만 너무 무섭고 정이 안가는 인간이었다.

그 느낌은 <오아시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박머리 종두가 가족들을 조롱하며 장애여성을 당당하게 소개하는 역이었다 해도 그의 껄렁함은 상쇄되지 않았다. '저 인간은 실지로도 저러한 성향이기에 종두역을 잘 소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보고 나서는 그에게서 이전과는 좀 다른 인상을 받았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언지 몰랐었는데 백은하 기자의 설경구론을 보니 그것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처음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볼 때는 그가 설경구인지도 몰랐는데 얼마 전 다시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봤을 때 설경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이 양반이 여기에 출현했었구나. 물론 재미있는 사람으로서였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적 2>를 보고서 나는 완전히 설경구가 좋아졌다. 아니, <공공의 적 2>를 보고 완전히 '정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공공의 적 1>을 비디오 집에서 빌려서봤다. 물론 볼수록 정이 드는 남자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설경구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봐야지 하고 맹세했다.

이처럼 <우리시대 한국 배우>에는 말 그대로 우리시대 한국배우들의 생생한 모습 혹은 그 나름 나름의 아름다움들을 콕! 집어서 얘기해준다.

'눈물을 품은 화염방사기 최민식, 빙점을 향해 가는 장거리주자 송강호, 속 깊은 미궁 신하균, 복사할 수 없는 파일 배두나, 자폐 소녀 세상을 아는 여자 이나영' 등 그가 콕 집어서 얘기하면 내가 할 일은 책을 읽는 내내 '맞아, 맞아' 하며 박수치는 것이었다.

또, 나는 <우리시대 한국배우>를 읽기 전까지는 한국영화를 좋아하면서도 한국 영화배우들을 사랑할 줄 몰랐다. 다만, '아짐'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외모를 가졌나 안 가졌나, 혹은 영화를 위하여 얼마나 헌신했는가 등만 살폈다. 심하게는 스캔들을 좀 터트려서 가십거리 좀 만들어 주는 배우 없나 등을 상상했다.

그랬는데 백은하 기자는 달랐다. 그의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를 읽으면 그가 배우들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책을 읽는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리고 연기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렇게 고민 고민하며 한 장면 한 장면 찍어 가는 고난의 대장정 인줄 몰랐는데 백기자의 글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독자인 나 또한 배우들의 작품에 임하는 진정성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시대 한국배우>는 언제 읽었는지 모르게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재미있게 읽히면서 다 읽고 나면 우리영화를 이끌어 가는 배우 스무 명의 지도가 머리 속에 꽉 들어찬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고 앞으로는 이 배우들이 또 어떻게 변화해 갈지 사뭇 기대된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스무 명 배우의 미래뿐 아니라 백은하 기자에 대한 기대도 만만찮게 생긴다. 이 양반이 다음에는 또 어떤 책을 내 놓을지. 내기만 하면 무조건 사서 읽고픈 마음이 생긴다. 갑자기 그때가 언제 일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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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 - 고광애의 실버 상담실
고광애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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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애 여사의 <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바다출판사)를 읽었다. 이 분의 책을 고른 계기는 순전히 그이의 아들 때문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그리고 <그때 그사람>를 만든 감독이 고 여사의 아들이었다.

도대체 어떤 엄마이기에 이렇게 인습에 찌들지 않은 아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난 <바람난 가족>을 보면서 그 발칙 시원한 내용 전개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그 영화에서 어떤 자유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아무튼 임상수 감독 때문에 혹시 남들이 모르는 임상수 감독의 어린시절 한 자락이라도 엿볼 수 있을까 해서 고 여사의 책을 샀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 마음에는 임 감독에 대한 자잘한 호기심 따위는 오간데 없고 오로지 고광애 여사에 대한 존경심만이 와르르 밀려왔다. 이렇게 몸과 마음 다 멋진 노년을 살고 계시는 분이 있었구나.

사실 <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를 읽기 전 까지 나는 노인분들은 그냥 내 어른이건 남의 어른이건 떠올리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다. 당신들 스스로 알아서 노년설계 좀 잘하면 안 되나, 제발 불쌍한 표정 좀 짓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내 심정이었다.

그리고 세금은 얼마든지 낼 터이니 복지부는 더 이상 '가족타령'하지 말고 노인복지의 청사진이나 좀 내걸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한마디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노인 분들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

고 여사가 책에서도 밝혔듯이 하나의 예로, 나 또한 평소 버스 같은 데서 노인 분들이 가까이 오면 피하기 일쑤였다. 겉으로는 자리양보였으나 속으로는 혹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버릇없다 책잡히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고 혹은 무시하며 피하기 일쑤였다.

허걱! 그런데 노인 분들은 그런 젊은 사람들의 태도를 다 느끼시고 섭섭하면서도 다 참고 계신다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부끄러워라.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전의 그런 내 모습을 반성했으며 더 이상 그런 몰염치한 행동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는 노년의 필독서다. 아니 노년만이 아니라 중년의 필독서기도 하다. 이 한 권을 읽고 노년을 보내는 것과 안 읽고 보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노년생활의 알파와 오메가가 다 들어 있다.

고 여사는 늙어서 중요한 것으로 경제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경제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하였다. '회심'의 마음. 즉, 노년의 마음을 그대로 우기기보다 마음 한번 달리 먹어보거나 돌려 생각하다 보면 '섭섭하다' 소리만 늘어놓는 늙은이는 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어디 마음가짐 뿐인가. 늙어서 해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홀로 지내는 연습이라든가, 자식과 제대로 이별하기, 효도란 이름으로 자식들 못살게 굴지 않기, 아프다 소리 입에 달고 살지 않기 등 노년의 '일정'은 너무 빡빡했다.

고물 자동차처럼 갈수록 쇠락해 가는 몸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질병과 친구하는 마음과 함께 질병에 대한 정보 습득과 예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백번 옳으신 말씀.

또 의학의 발달로 노년이 길어지다 보니 그에 파생되는 노년의 사랑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부분. 고 여사는 노년의 성공한 재혼과 실패한 재혼의 사례를 들어가며 현명한 선택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 준비'. 고 여사는 '불쌍하고 부끄럽고 불안한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의연히 맞이하기 위하여 다소 긴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죽음을 침착하게 준비하다 보면 노년의 삶은 여유로워진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죽고 난 다음 자식들이 행여 돈으로 형제간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산분배는 미리미리 정신 맑을 때 '자필유언장으로 공증'해두도록 당부한다.

이 책은 노년에 대한 준비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노년도 노년이지만 현재 내가 우선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져준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노년에 국한되기보다 누구나 한번 쯤 읽어볼 필요가 있는 '삶의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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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와 함께하는 생활
서정남.경윤정.박천호 지음 / 부민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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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에 미치다

'화초 아저씨와 일전을 치르다'라는 기사를 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화초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미쳐야 미친다'는 단 두 마디의 세련된 문장은 몰랐으나, 자고로 무언가 좀 알려면 필요 이상 집착 혹은 천착을 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내 인생에 '화초'에 미치는 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젊은 날로 쭉 거슬러 올라가자면 깊이 미치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나는 늘 다방면에 미쳐 있었다. 책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자연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고, 음악 중에서도 가곡에 더 미치고 등등 내 인생은 작으나마 늘 미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내가 삼십 중반에 뜬금없이 꽃에 미친 것은 순전히 일전을 치른 이름모를 화초아저씨의 덕택이 가장 크다. 그 아저씨가 고객인 내게 근거 없는 성질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저 해마다 봄이 되면 그때그때 끌리는 화초 몇 개 사서 봄이 감과 동시에 '직이고' 마는 그런 무심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죄 없는 내게 성질을 부린 것이 너무 미안하였던 화초아저씨는 내가 갈 때마다 화초를 싸게 주고, 또 덤으로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화초를 다량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싸게 주고 덤으로 주는 화초 아저씨가 고마워서라도 화초를 죽이지 말고 잘 키워야지 하는 맹세를 하였다.

그 맹세의 와중에 '어떻게 하면 화초를 잘 기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그 물음의 해답으로, 기특하게도 일단은 책을 사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원예'를 검색했고 쉽게 화초를 기를 수 있다는 갖가지 책들을 보았고, 내 머리는 '띠잉' 전기를 받았다.

이런 신통방통한 책이 있는 것을 모르고, 화초 가지 수는 얼마 안 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기르다 늘 화초 기르기를 실패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 화초를 기르는데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화초를 잘 기르게 해준다는 하나의 책을 골랐는데 그것이 바로 제목은 좀 촌스러운 듯하나 내용은 그만인 <원예와 함께하는 생활>(부민문화사)이었다.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원예와 함께 하는 생활>은 여타의 다른 책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흔히들 소설의 경우 한 번 읽고나면 두 번 읽기 어렵고, 다 읽는 그 순간 책장에 꽂히면 그 길로 무덤에 드는 것이라 하였는데. 실로 내 경험도 그러하였다. 마음은 다시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쉬이 다시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원예와 함께 하는 생활>은 달랐다. 내가 원하는 실용적인 내용이니 만큼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는 했으나 '저장'이 잘 안 되었기에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꽃 이름의 경우 그림과 대조해가며 볼 때는 머리에 쏙쏙 새겨지는데 책을 덮으면 꽃과 이름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다.

읽고 난 후, 내용이나 꽃 이름을 금세 잊어버리는 것은 역으로 매번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듯한 '기이한' 재미를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반복 또 반복하면서 우선, 내 집 안에 있는 화초 이름을 다 익히고 나니 내 집에 없는 꽃집 화초들의 이름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해서 때론 꽃구경을 하는 양 꽃집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목표로 한 화초 몇 개를 눈도장 찍은 다음 집에 와서 그 이름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렇게 화초의 이름들을 내 머릿속에 하나둘 저장을 하니 그 다음에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새로운 왠지 끌리는 화초의 경우 단 한번 보아도 바로 입력이 되었다.

그리고 꽃 이름을 일단 접수하고 나자, '꽃의 특성'이나 '기르기'에 관심이 갔다. 바이올렛과 산세베리아는 잎을 잘라 흙에 심어 3~4개월 정도 지나면 새잎이 돋아난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장 실험에 들어갔고, 과연 서너 달 지나니 새잎이 나왔다.

그리고 로즈마리, 라벤다, 타임, 레몬밤 등 허브식물들은 줄기를 뚝 잘라 흙에 꽃아 두면 줄기에서 뿌리가 내린다고 하였던 바. 역시 실험에 들어갔고 그것들은 바이올렛과 산세베리아처럼 나의 인내를 요하지 않고 쉬이 뿌리내림을 보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뭉뚱그려 서양란이라고만 부르던, 개업집이나 견본주택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름다운 서양란들은 팔레놉시스(호접란) 아니면 심비디움, 덴파레, 커틀레야 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책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허브 식물들이 줄기를 뚝 잘라 흙에 꽂아 두면 뿌리가 내린다는 것에 힌트를 얻어 벤자민 고무나무와 율마 그리고 쉐플레라 등의 가지를 잘라서 흙에 심어 보았다. 과연 어떻게 될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은 전대미문의 실험을 하는 어느 과학자의 기분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내 실험은 성공이었다. 심어본 결과 죽지 않고 꼿꼿이 살았으며 시간이 지나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영산홍의 경우 가지를 잘라 흙에 심으니 얼마 안가서 말라 버렸다. 때문에 궁금하다. 영산홍은 어떻게 해서 번식하는지.

아무튼 이 책에는 '원예'에 대한 알파와 오메가가 다 들어있다. 일단 기초가 튼튼해야 고등수학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달(?)하고 나면 원예에 자신감이 생기고 보다 심도 있는 원예생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꽃 이름? 꽃집에 있는 이름은 물론 거리의 가로를 장식하는 꽃 이름 또한 내 손안에 있소이다.

만약 화초에 벌레가 생기면? 분갈이는? 과일, 채소 기르기는? 꽃꽂이는 어떻게? 까다롭다는 난은 또 어떻게? 이 한 권에 이 모든 답이 들어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하고 나면 훌륭한 이의 전기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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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
김성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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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북한의 김정일 지도자가 러시아를 가면서 비행기가 아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일주일만엔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언제 시베리아 횡단 열차 한 번 타보나 하면서 넋두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 꿈은 쉬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때문에 이 몸이 직접은 못 가더라도 눈으로나마 가보자 싶어 이따금씩 TV같은 데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지나가는 주변 동네가 나오면 흥미 있게 보곤 하였다.

 
▲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
ⓒ2005 생각의나무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시베리아니, 바이칼 호수니, 몽골의 푸른 초원 등의 글자를 읽으면 가슴이 마구 뛰곤 했는데 김성호 전 의원의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생각의 나무) 또한 내 심장을 마구 뛰게 한 여행기였다.

지난해 봄, 김성호 전 의원은 의원 생활 하루를 남겨두고 대구 모 대학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였는데 마침 그 강연을 고대하며 기다리다 들은 지인이 있어 나는 물었다. ‘싸나이 김성호’의원이 무슨 말을 하였지? 그랬더니 지인은 ‘통일’에 관한 얘기를 하더라며 심드렁하게 말하였다.

뭐, 통일? 당시 지인은 통일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을 하나 가볍고 재미나면서 젊은이의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어떤 강연을 기대했던지라 ‘통일’ 얘기는 솔직히 재미없었다고 하였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 또한 지인의 말에 덩달아 춤을 추며 ‘좀 재미난 얘기나 해주지’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을 읽고나자 그가 통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통일에 대한 얘기를 따분하다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김성호 전 의원은 의원일 당시 통일의 꿈을 안고 보름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한 것을 책으로 엮었다.

"통일의 꿈을 안고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라는 기치 아래 유라시안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베리아를 지나 몽골과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그리고 민족 분단의 비극 삼팔선을 넘어 부산까지 가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중국 횡단열차의 끝 단둥에서 멈추어야 했다. 가고자 했으나 역사는 아직 우리의 발걸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허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가지 못했으나 머지않은 내일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오늘 우리의 좌절은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성호 전 의원이 이 여행기를 쓸 때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 열차를 타고 달리는 것은 꿈이었으나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때문에 당시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얘기한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새록새록 의미 있게 읽혀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단순히 동서양을 잇는 철길만이 아니다. 철길을 따라 우리 민족의 한과 발자취가 어려 있는 곳이다. 특히 구한말 조국의 운명이 암흑기에 접어들 때 굶주림을 피해 대륙으로 진출했던 한민족의 민중들과,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위해 이국땅을 떠돌던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가 묻어있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라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 그리고 희망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흔적을 찾고 싶었다.’

왜 아니랴!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을 읽으면 낯선 구 소련 땅으로 한겨울 창문도 없는 열차에 태워져 몇 날 며칠을 달리다가 생존이 불가능한 황무지에 짐짝처럼 버려지는 조선인들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그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땅을 일구며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성호 전 의원은 내가 <아리랑>을 통해서 활자로만 읽었던 그곳들을 두 발로 딛고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사라져간 이름 없는, 혹은, 이름은 있었으되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잊혀진 독립 운동가의 한과 고통을’ 그 특유의 설득력 있고 박력 있는 문체로 이야기 해 준다.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장군’과 김규면 장군과 함께 ‘최초의 한인 사회당 활동을 하던 여성혁명가 김 알렉산드리아’ 여사는 우리가 새로이 기억해야 될 이름들이었다.

조선의 한과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만 길게 하여서 역사의식 없는 오늘날 우리들의 죄의식을 낱낱이 드러나게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책에는 조선인의 한과 좌절만 있는 게 아니라 러시아 문학과 역사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의 속삭임 등 광활한 시베리아의 영상이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진다. 그는 ‘여행의 숨은 재미 하나는 역사와의 만남이고, 여행의 숨은 재미 둘은 문학과의 밀애’라고 하였다.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에는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닥터 지바고>의 험난한 인생과 사랑의 이야기나 푸쉬킨, 고리끼, 솔제니친, 토스토에프스키 등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도 쉽고도 풍부하게 서술하여 준다.

또, 이 책에는 재미있거나 혹은 슬픈 역사적 일화들이 너무 많아 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까하여 줄을 쳐 가며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줄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디 줄만 쳤다 뿐인가. 특히 중요하거나 감동적인 데는 별표까지 해 가며 읽었는데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재미였다.

너무 슬퍼서 별표를 치게 된 하나의 얘기는 ‘바실리 성당’에 대한 것이다. 이반 4세는 서로 다른 아홉 개의 아름다운 지붕들로 이뤄진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건축가 포스토닉 바르마를 불러 혹시 성당을 다시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바르마는 손수 지은 건물이므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하자 그가 영영 똑같은 성당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잔인하게 두 눈을 뽑아 버렸다’고 하였다.

아무튼 이 책에는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은데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오다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자기 도취(?)에 푹 빠진 김성호 전 의원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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