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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재판관 - 헌법재판관 문형배 이야기, 2025년 하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선정
고은주 지음, 김우현 그림 / 문학세계사 / 2025년 6월
평점 :
#도서협찬
럽북님(@lovebook.luvbuk)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느티나무 재판관
📗 고은주 저/김우현 그림
📙 문학세계사

요즘 같은 시대에 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이 어떠한가. 딱딱하고, 복잡하고,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가. 그 안에 사람의 체온이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법’ 하면 거리감부터 느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정의는 그늘에서 자란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말없이.

어른이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무엇인가를 잃는다. 어릴 땐 ‘좋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손해 보지 않고 사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정의라는 단어는 너무 무겁고, 현실은 너무 바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의 형배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김장하였을까.

책은 느리게 흐른다. 사건이 확 터지는 것도 아니고, 인물들이 극적으로 충돌하지도 않는다. 그냥 한 아이가 자라고, 책을 읽고, 친구와 걷고, 어느 날 재판관이 된다. 그런데 그 일상이 그렇게 벅찰 수가 없다. 아마도 이유는 하나. 나 역시 그런 평범한 하루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동화는 놀랍도록 ‘우리 이야기’다.

형배는 책을 품에 안고 달렸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그냥 지나칠지 모르지만, 내겐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책을 품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그냥 한 페이지라도 더 보고 싶었을 뿐인데, 형배는 거기에서 삶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책이라는 건, 때로는 그런 식으로 사람의 길을 바꾼다.

책 속에서 형배는 자살 시도자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넨다. 그리고 “자살은 살자라는 말로 들린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가 판사로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런 판사가 있다는 사실이, 지금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이 책은 정의를 법전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함께 책을 읽고, 친구와 나눈 눈빛, 말없이 건넨 반찬 한 그릇, 그런 것들이 쌓여서 결국 한 사람을 만든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힘이다. 문형배라는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넘어서, 우리 각자의 삶에도 그만큼의 따뜻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조용한 이야기 하나가 간절해진다. 『느티나무 재판관』은 누군가 소리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전해지는 진심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진심은 결국 사람을 바꾼다. 나부터도, 그렇게 조금은 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나는 이제야 알겠다. ‘평균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형배는 영웅이 아니다. 슈퍼히어로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특별했다. 왜냐하면 그는 끝까지 사람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움도, 정의도, 우정도, 사람을 중심에 두었다. 그래서 그가 낭독하는 결정문 한 문장이 이렇게 오래 남는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내 어린 시절 친구들이 생각났다. 이름도 희미해진 누군가가, 형배처럼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 시절 느티나무 같은 나를. 아니면 책 한 권 품고 달리던 소년을. 우리 모두 그런 누군가의 ‘형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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