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으로, 발표 이듬해인 199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베스트10 중 6위에 선정되었다. 전반적으로는 서술자인 '나'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형식. 열두 편의 단편과, 이야기에 뜻밖의 의미를 부여하는 미스터리 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느닷없이 사보 편집장이 된 와카타케 나나미에게, '새로 창간하는 사보에 단편소설을 실을 것'이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진다. 와카타케의 간절한 청탁을 받은 대학 선배는 자기 대신 실화에 의외의 해석을 부여하는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를 소개해 준다.

연재 조건은, 일기장을 뒤져서 일년간 열두 편의 단편소설을 써주되 작가의 이름과 신상은 일체 비밀에 붙인다는 것. 이렇게 해서 익명 작가 '나'의 단편소설이 4월호부터 이듬해 3월호까지 일년간 실리게 된다.

작품은 익명 작가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편지 세 통에 이어,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사보에 다달이 실린 '익명 작가에 의한 연작 단편소설' 열두 편, 그리고 열두 편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외의 진상을 밝히는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와 '마지막 편지'로 구성된다.
 
이 단편집의 작가인 와카타케 나나미가 작품 속에서 자기 이름 그대로 사보 편집장으로 등장하는 것은 약간 기발하면서도 귀엽고 코믹하다. 그 외에도 이 작품 속에서는 잡지 안내 형태의 매달 발표되는 단편소설을 1년에 걸쳐서 소개하는 형식이며, 일년에 걸친 열두 편의 단편이 끝나고 편집장인 나나미가 미스터리의 작가를 직접 찾아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많은 의문들과 복선을 완전히 해결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생활 미스터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편집으로, 팥빙수, 케이크, 축제, 나팔꽃, 여행, 임신, 유령 등 평범하지만 다채로운 일상의 미스터리와 환상적인 비밀의 이야기가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잠시 취업을 보류한, 자발적 백수인 한 사내. 독서를 즐기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으며, 몸이 건강하지 않아 한약을 먹지만 일상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데 약간은 비범한 재능을 가진 남자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첫번째 작품인 <벚꽃이 싫어>는 재작년인가 추리사이트 <하우미스터리>에서 이벤트로 소개된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범인도 맞추고 상품 획득에도 성공했으나 약간은 떨떠름한 맛의 단편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지금 읽어보니 소박하고 깔끔한 재미가 있는 듯한 단편이었다. 본격 미스터리의 치밀한 구조나 살인이 등장하는 것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이게 뭐야~>하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소박하면서도 치밀한 얼개와 작품 전반에 걸친 복선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고 감탄할 것이다. 실은 생활 미스터리라고 가볍게 읽으려 하였으나 가벼운 것 같지만 복잡한 트릭, 지명, 지도, <옥문도>에서처럼의 고유어나 한자, 하이쿠 등을 이용한 트릭을 사용한 이 작품군을 읽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함을 느낄 수 있다. 수수께끼 풀이나 작품의 이해가 약간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각 단편들은 매우 훌륭한 보석같은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인 <귀신>은 약간은 호러틱한 작품이지만 무서운 트릭이 깔려 있는 작품이다.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는 작가의 섬세한 필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눈 깜짝할 새에>라는 작품은 매우 귀여운 그림도 볼 수 있고, 먹음직스러운 시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단편이다. 이해는 약간 어려운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본격 미스터리나 홈즈의 <춤추는 사람 그림>못지 않은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상자 속의 벌레>도 기묘한 호러와 미스터리가 잘 뒤섞인 작품이다. 증발 트릭이라는 것이 등장하지만 그 실상은 매우 간단간단하다.
 
<사라져가는 희망>은 매우 공포스러운 작품이다. 꿈과 망상, 그리고 의문사가 등장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더욱 깊어지는 미스터리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길상과의 꿈>에서는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겪는 공포스러운 이야기와 정신이상에 걸린 등장인물에 관련된 섬뜩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도 결말부분에 등장하는 해결편에 대한 암시와 복선이 적절하게 깔려 있으며, 다소 어려운 트릭이나 불교적 용어, 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읽는 재미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래빗 댄스 인 오텀>
매우 시시껄렁하다고도 볼 수 있는 이름 맞추기 게임. 한국인은 물론 맞출 수 없는 고도의 한자놀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이다.
 
<판화 속 풍경>
위기에 몰린 인물을 주인공이 구해주는 담백한 단편이다. 고구마가 결정적인 힌트인데, 냄새에도 민감한 주인공의 모습이 재미있다.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속에 든 그 무엇에 대한 과거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다. 매우 사소한 서술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정월 탐정>
자신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의뢰인을 추적하는 주인공. 극히 사소한 실수와 언행 등을 조합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명쾌한 작품이다.
 
<밸런타인 밸런타인, 봄의 제비점>
브라운 신부의 모 단편을 생각나게 만드는 코믹한 단편이다. <봄의 제비점>또한 교묘한 복선과 트릭이 깔려있다.
 
1년에 걸친 연재 끝에 나나미는 의문의 작가와 드디어 상봉하게 된다. 작품 전체에 수많은 복선과 트릭, 살인범이 숨어 있음을 나나미는 추리하여 작가에게 이야기한다. 작품 전체에서 간과하였던 많은 단서들이 종합되어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점과 복선의 종합을 결론 부분에 배치해 놓은 작가의 재주에 놀랄 수 밖에 없었으며, 꽤나 재미있는 결말과 진실이 끝에서야 밝혀지게 된다. 수많은 단서들을 간과해 온 본인으로서는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다시 첫 페이지부터 이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간만에 만난 갓 잡은 생선같은 단편집이었다. 발표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신비로웠던 걸작 단편집.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의 일상은 일상이 아닌 것처럼 늘상 매혹적이다. (물론 재미면에서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이나 크리스티, 홈즈 등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스티븐 킹의 2006년 작인 <셀>은 핸드폰 전파로 인해 머리가 포멧(?!)되어버린 인간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휴대폰을 가지지 않은 괴짜들의 생존 투쟁을 다루고 있다. 거지나 노숙자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한국 사회와는 약간 다르게 이 책에서 읽어본 휴대폰 문화를 살펴보면 미국에서는 절대다수가 휴대폰을 가진 것은 아니며, 대학생들이 주로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작가가 암시하듯이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과 구속감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셀>의 등장인물들은 총 3명이다. 괴짜 독신남 톰, (사실 핸드폰이 있었으나 우연한 기회로 손상되어 좀비가 되는 것을 그는 면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좀비들의 공격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향하는 클레이,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어린 소녀 앨리스이다. 개인적으로 주인공들의 이름이 외우기 쉬워서 너무 좋았으며, 전개도 빠르고 배경 및 주어진 상황도 긴장감이 넘쳐 영화로 만들면 딱 좋을 것 같은 소설이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종래의 흡혈귀나 좀비 호러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2006년 발표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거대한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련의 음모와 사건에 말려들어 모두 좀비나 괴수가 되는 상황에 또 이상황을 극복해 나가야만 하는 일련의 사정들은 밀리언클럽 셀러의 다른 명작 <나는 전설이다>라는 작품에서도 보았던 사건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전설이다>에서처럼의 주인공 한 사람의 고독한 사투가 아닌, 이 <셀>에서는 세 명의 주인공이 각기 다양한 능력과 감성을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다른 사람들(그러나 마음을 열지 않는)의 도움을 받거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특유의 재치와 센스로 해결해나가는 장면들을 선보이게 된다. 문명의 이기라는 핸드폰을 통해 문명의 혜택을 향유해야할 인간이 마치 원시인과 원숭이처럼 퇴화됨을 보여줌으로써 작가인 킹은 무엇을 암시하고자 하였을까? <터미네이터>나 <로보캅>과 같은 문명의 이기에 대한 공포? 아니면 말라버린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민과 정화일까? 아니면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진정한 가족애와 부성애가 이 작품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주제와 면모를 살필 수 있어 상당히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이며, 킹의 작품을 많이는 안 읽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상위 랭킹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을 작품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영화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역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킹의 중편 <안개>와 더불어.)

이 작품의 문제의 근본 원인이자 해결 방안이 되는 휴대폰은 인간의 공포와 불안, 혼란을 조성하는데 최고의 도구이자 소품이라고 생각된다. 문명의 이기로 인한 이성의 상실과 인간의 퇴화, 그로 인한 끔찍한 죽음과 파괴, 양심과 애정의 붕괴를 보여줌으로써 킹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휴대폰 중독에서 벗어나시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또한 이웃이나 가족들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지만 그 대부분을 무덤덤히 지켜보고, 상황을 관망하고 위기를 벗어나는데 노력한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런 무덤덤한 마음과 생존에의 갈망만이 마음속에 존재하게 됨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도 역시 킹답게 <휴!~>하고 가볍고 마음편히 끝낼 수 있는 소설이다. 오락적 요소와 영상적 효과가 지나치게 강조된 재난물로서의 작품성이 강하지만, 스펙타클하고 찐한 감동이 느껴질만한 걸출한 소설을 원하신다면 이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곧 출간될 킹의 최고 걸작이라는 <리지의 이야기>도 눈이 빠져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 럭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세정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시게마츠 기요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이 작품집 <굿 럭>에는 총 3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다들 일상 속에서 겪는 평범한 에피소드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각 작품마다 가슴속에 가져다주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먼저 <땡땡>이라는 작품은 다소 단순한 선생과 아버지와의 화해를 그려내는 단편이지만 꽤 재미있으면서도 알싸한 감동을 가져다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지향성과 작품 경향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 외의 두편의 작품들도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상처와 아픔, 눈물과 행복을 잔잔하면서도 경쾌하게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제 17회 <시바타 렌자부로 상> 수상작이기도 한 <잔학기>는 어린이 납치사건을 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벌어진 사건인 '니가타 소녀 납치 감금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하여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참고로 니가타 소녀 납치 감금 사건은 30대 남성이 10대 어린이를 납치하여 9년간 감금한 섬뜩한 사건이며, <잔학기>에서는 납치된 소녀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게이코는 1년동안 공장에서 일하는 납치범인 겐지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언제나 최신의 사회 병리와 인간의 욕망을 해부하는 작가는 납치라는 소재를 통하여 한 소녀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사회의 모습과 비뚤어진 인간의 이상심리와 그 속에 숨겨진 인간의 처절하면서도 끔찍한 과거 또한 예리하게 분석해낸다. 납치된 소녀인 '게이코'의 공포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을 느끼는 이중, 삼중의 심리가 전지적 시점과 주인공 시점이 어우러져 묘사되고, 게이코를 납치한 '교활하고, 영리한' 정신이상자인 겐지와의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다양한 범죄 사건들, 특히 납치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도 한번쯤 필히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에 대하여 이 책은 수많은 화두를 던져 주고 있다.

이 작품 또한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결말에 몇 가지 함정을 파두었고, 주인공이 보낸 소설이자 수기의 형식인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 이상의 다채로운 암시와 사회 병리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작가의 숙련된 솜씨와 사려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먼저 납치되기 직전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상징되는 가정의 균열과 가난, 따돌림 등에 진절머리를 느낀 주인공은 일상을 탈피하여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마중나가려 한다. 이 지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은 그 후 1년여간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묘하면서도 끔찍한 생활을 납치범과 함께 하게 되지만, 납치되기전의 도입 부분에서 조차 섬세한 복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한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은 납치범인 겐지의 이상심리다. 공장에서 갖은 욕과 폭행등을 당해가며 공장에서 일하는 납치범인 겐지, 그는 파탄한 가정에서 고아원 등을 전전하며 초등학교를 중퇴한 비정상적인 현대 사회의 병리와 이상심리를 암시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침과 낮에는 어른으로서 게이코를 어르고, 위협하고, 성적으로 농락한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온 후에는 초등학생의 정신상태로 머리가 바뀌어 게이코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다. 놀라운 것은 납치당한 게이코도 그와의 생활을 어느정도 즐기고 그 생활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도 아닌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실은 고독과 고립이라는 현대인들의 일상사를 슬며시 비추어 주는 것만 같다. 여주인공인 게이코의 생활환경도 그리 유복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약간은 불행한 가정이라 할 수 있으며, 남주인공인 겐지의 환경은 충격과 공포, 비탄과 고독 그 자체이다. 그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였는가. 소설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마치 독자는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는 관음증 환자가 된 듯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겐지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인물이 인간의 관음증 심리와 침묵과 구경꾼의 심리를 암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겐지에게 납치된지 1년여가 지나 게이코는 마침내 겐지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나 그 후 게이코의 평범한 생활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주민들이나 친구들의 달라진 시선,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 끝없이 찾아오는 기자들과 경찰, 정신과 의사와 검사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상처받은 게이코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고 상처를 칼로 도려내고 까발리는 데 힘쓰는 것 처럼 보인다. 즉 지금의 사회는 한 개인의 마음을 보기보다는 한 개인을 한 개인이 당한 기묘한 일을 통한 호기심과 궁금중의 충족대상으로써 밖에 보아주지 않는다. 게이코와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려는 검사와, 훗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게이코.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남긴 마지막 원고인 <잔학기>를 통하여 25년 전 범죄의 충격적 진실을 알게 된다. 결말 부분에서는 게이코의 진실한 마음을 통한 사소한 반전들이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한 인간의 마음이 이렇다는 점에서는 독자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을 지도 모르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모두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예리한 의식이 살아숨쉬는 사소한 반전이자, 작가의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우리가 생각해왔던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과는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문제작이며, 우리 사회의 병리와 인간의 심리를 차갑고 예리하고 분석해내는 걸출한 심리소설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가 그려내는 현실은 언제나 충격적이고 얼얼한 '맛'을 풍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 '암보스 문도스'에 언급된 호텔 암보스 문도스. 새롭고 낡은 두개의 세계, 즉 양쪽의 세계라는 뜻)

1951년에 태어난 기리노 나쓰오는 1993년 <얼굴에 내리는 비>로 일본 추리 소설의 등용문인 제39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98년 <아웃>으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부드러운 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그로테스크>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2004년에는 <잔학기>로 제17회 시바타 렌자부로 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에 <아웃>이 세계적인 추리상인 에드거 앨런 포 상 최고 소설 최종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처럼 빼어난 작가이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어보게 된 작품이 바로 이 단편집인 <암보스 문도스>이다. 그녀의 대표작인 <아웃>을 읽어보지 않아 그녀의 추리작가로서의 재능을 헤아려 볼 수는 없지만, 현대의 사회 문제와 인간의 어그러진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것은 이 단편집을 읽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단편집에는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가쿠타 미쓰요라는 작가의 추천사대로 기리노 나쓰오씨의 번뜩이는 재주가 느껴지는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들이었다. 비록 이 작품들은 추리나 스릴러, 서스펜스 등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비밀, 성, 음모, 사랑, 추억, 소외 등을 화두로 하여 각 작품들을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숙련된 솜씨를 만끽할 수 있는 상당히 섬뜩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각 작품들에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랑과 욕망을 갈망하지만, 그 결말들이 대단히 섬뜩한 것들도 있고 인간의 무시무시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초현실적인 것도 있다. 각 작품들의 욕망하는 인물들과 다채로운 결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식림>

가족과 직장 동료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마키. 별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좌절하는 그녀에게 어느날 놀라운 변화가 찾아든다. TV에서 방영된 20년 전 미제 사건에서 들려온 협박범의 목소리, 바로 자신의 어린 시절 목소리였다. 그리고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른 놀라운 기억, 일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중심에는 바로 자신이 있었다.

외모도 별 볼일 없고, 직장과 가족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소외받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남자와 가족, 친구들에게 애정을 갈망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좌절당한다. (이 작품에서는 그녀의 성적인 욕망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는다.) 사회문제라 할 수 있는 왕따문제가 이 작품의 화두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포인트는 주인공인 마키가 20여년전 겪은 미제 사건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그 사건의 숨겨진 비밀이다. 미제 사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마키는 자신이 그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기뻐하지만, 사건속에 가려진 충격적인 비밀을 깨닫고는 좌절하고 만다. 마지막 주인공의 사소한 복수가 곁들여져 있는 약간 묵직하지만 중독성있는 작품이다.

<루비>

도시 노숙자의 적나라한 생활 모습과 성(性)적인 문제를 다루는 전 작품보다는 약간 더 가벼운 단편이다. 먼저 도시 노숙자들의 리얼한 삶을 그린다는 점에서 작가의 빼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커다란 도시에서 다양한 인생을 살아오다가 끝끝내 몰락하여 밑바닥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성적인 욕망과 억눌린 심리 또한 섬세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루비>라는 막나가는 여성과 그녀를 갈망하는 남자들의 심리와 배신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괴물들의 야회>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던 사키코. 가족과 자신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다는 애인 말에 상처만을 안고 산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키코는 남자를 속여 자기집 욕실에 가둬 두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의 가정에 과감히 쳐들어간다.

잘라내고는 싶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는 여자의 불륜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특별한 주제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치명적인 사랑에 상처입은 여자의 결말은 볼만한 작품이다. 작가 자신과 동년배인 듯한 여자의 심리 또한 이 작품에서는 섬세하게 묘사된다. 이 작품에서는 불륜을 묵인하는 남자의 가정과 사랑에 중독된 중년 여성의 복잡한 관계가 얽히고 ˜鰕耽?된다.

<사랑의 섬>

해외여행을 떠난 세 여자의 이야기. 성적인 탐닉과 자신들이 겪은 충격적인 과거를 밝히는 것이 중심 이야기이다. 복잡한 현대인의 성과 성에 탐닉하는 인간들의 이상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이다.  

<부도의 숲>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길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집안이지만 그 가정사와 가족들이 상당히 복잡한 여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처자를 버리고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비정한 아버지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여주인공의 복잡다단한 심리와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빼어난 단편이다.

<독동毒童>

결말은 <기묘한 이야기>나 <환상특급>같은 약간은 초현실적인 작품이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생활에 억눌린 심리가 끝내 폭발하여 극단적인 방법을 통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코자 하는 여주인공의 운명과 이 작품의 결말을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그녀는 목적을 이루지만 결말은 안습이다.

<암보스 문도스>

교감과 불륜의 여행을 쿠바로 떠난 여선생 하마사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오자 담임을 맡던 반의 아이가 사고로 죽어 있었다. 둘의 비밀은 폭로되고, 직장과 사랑 모두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반 아이들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 같다는 의심을 품고 조사에 착수한다.

아무도 모르게 교감과 불륜의 여행을 떠난 여주인공. 이 작품에서는 학교라는 곳에서조차 인간의 욕망과 욕정이 꿈틀거리는 공간으로 설정해 놓았다. '비밀은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이 이 작품에는 잘 어울리며, 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 복수와 잔인한 인간들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런 작품이다. 약간 아쉽지만 이 작품의 제목인 <암보스 문도스>에서 기대했던 실재하는 호텔 <암보스 문도스>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호텔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알았는데 약간은 실망했다. 그러나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편답게 이 작품은 미스터리적인 냄새와 차가운 인간의 심리가 잘 어우러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상 일곱 단편을 살펴보았는데, 각 작품들은 모두 생각지도 못했거나,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화두를 거침없이 다루고 있으며, 기리노 나쓰오의 대가로서의 솜씨를 마음껏 뽐내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는 일상이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삼삼하다면 이 단편집을 꼭 읽기 바란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생각치 못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