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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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그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놨다. '현실과 픽션, 진담과 농담을 뛰어넘는다! 성석제 소설만의 유쾌한 감동' 이라고 씌여진 노란색 책 날개를 챔피온 벨트처럼 두르고 등장했다.

 성석제의 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넘겼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향기는 잘 익은 김치처럼 묵어 있었다. 그가 다루는 인간들의 그림자는 영화나 TV속의 그것들이 아닌, 우리들 가로등에 비춰지는 그것들이었다. 보통 사람들 속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지만 언급하기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 그는 그들을 그려가며, 모종의 그리움을 숨긴 채 되풀이되는 대답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혹은 허공에다 날린다. 그 질문에 대답을 찾고자 하면 그의 소설은 오래 씹어야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쌀밥이 되나, 못본 척 지나치게 된다면 배를 채우기 위해 찬물에 말아 목구멍에 넘기는 찬밥이 되고 만다.

 시간일까. 나이일까. 객기 넘치던 그의 문체는 이책에서만큼은 얌전하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추풍감별곡'은 그가 늘 관심을 갖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난 것 같아 반가웠다.

 '소풍, 본래면목, 잃어버린 인간' 에서는 그의 시선이 예전과 조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냉정한 관찰자로서 활발한 이야기꾼으로서의 그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 모습이 앞으로 그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금 엿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에서 일부분 인용하며 마친다.

 '나는 정상보다는 정상 바로 아래쪽 구할쯤 되는 곳을 목표로 마음과 몸에 알맞고 흡족할 때까지 가는 쪽인데...'

  정상이 아니라 그 아래 구할쯤만 되어도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강타자도 사할을 넘기기 어렵지 않은가. 한권의 책에서 한줄만 건져도 본전은 뽑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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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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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이수영)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달 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다
나는 서른아홉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 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 잠이 쉽게 드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는 시간이 내일을 위한 최선의 준비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쉽게, 그리고 빠르게 잠든다. 나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이 이젠 떠올리기 너무 어렵다. 아직 스무 두살이기에, 조금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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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2 -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일곱 도시 일곱 색깔 러브스토리 그 남자 그 여자 2
이미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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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과 닮은 이를 찾는 남자들의 어리석음.

다음사랑이 지금보다 나을 거라 기대하는 여자들의 무모함.

'그남자 그여자2'를 훑어 보다가 눈에 걸린 이 두줄. 딱 두줄로 사랑을 찾는 남녀들을 혼내고 있었다.

옛사랑과 닮은 이를 찾는 남자라... 내가 그런 것 같아 신경이 쓰인걸까. 여자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잠시 어리석음과 무모함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사랑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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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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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함께 이 저녁

(허수경)

 가지에 깃드는 이 저녁

고요한 색시 같은 잎새는 바람이 몸이 됩니다

살금살금, 바람이 짚어내는 저 잎맥도

시간을 견뎌내느라 한 잎새에 여러 그늘은 만드는데

그러나 여러 그늘이 다시 한 잎새 되어

저녁의 그물 위로 순하게 몸을 주네요

나무 아래 멈춰서서 바라보면 어느새 제 속의 그대는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요

한 사람이 한 사랑을 스칠 때

한 사랑이 또,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진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될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그러나 그럴 연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견디어 내면서 둘 사이의 고요로만 수수로울 수는 없는 것을, 한 떨림으로 한 세월 버티어 내고 버티어 낸 한 세월이 무장무장 큰 떨림으로 저녁을 부려놓고 갈 때 멀리 집 잃은 개의 짖는 소리조차 마음의 집 뒤란에 머위 잎을 자라게 하거늘

나 또한

애처로운 저 개를 데리고 한 때의 저녁 속으로 당신을 남겨두고 그대,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 그때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슬금 산책이 오래 아프게 할 저녁

 ; 또 다시 슬금슬금 저녁이 찾아온다. 하루를 마치고 밥을 먹는 것도 저녁이겠지만 추억을 안주삼아 술 한잔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저녁이리라. 두뺨을 불그스레 물들이는 노을을 핑계삼아 아련한 첫사랑도 떠올려 보고, 길어진 내 그림자에 자신을 뒤돌아 보기도 한다. 만약 비라도 온다면 일부러 우산을 잃어버려 마음껏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술집은 네온사인을 오늘도 반짝거린다. 더이상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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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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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나를 자전거에 올라타게 만든 책과 잡지가 있다. 잡지 '페이퍼'의 이름모를 기자는 '20대에 꼭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역설하였고, 우연찮게 집어든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어쩔 수 없이 페달을 끊임없이 밟게 만들었다. 대략 우리나라의 반바퀴정도 돌았던 경험은 나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오래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안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2005년 가을, 군복을 입고 있는 나는 그 추억을 벗삼아 위로삼아 지내다가 '자전거 여행 2' 가 나왔다는 소식에 아무생각없이 책을 들었다. 비록 나라에 얽매여 있는 몸이지만 마음만은 남은 반바퀴를 돌고 싶었나보다.

 이번에는 조강에서 시작하여 안성 돌미륵까지 가는 여정은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이루어졌다. 지역별로 간략한 지도가지 첨부해 있어 그의 행보를 더욱 쉽게 따라갈 수도 있다. 사진도 더욱 크게 실려 있어서 마음에 든다. '살아 있는 것은 이러하구나, 살아서 작동되는 것들은 마침내 저러하구나...' 의 작은 마음으로 시작된 여행은 각 지역별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씀을 하신 유홍준 교수님이 있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다.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보는 자연들의 한낱 풀과 돌멩이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가 들려주는 우리 것의 이야기는 그냥 넘길 것들이 아니다. 깊으면서도 현재의 시간을 같이 공유하는 그만의 솜씨가 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마음의 깊은 곳까지 우리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통찰력은 1편에서보다 더욱 유연해졌다. 일산 신도시를 달리면서 10만년전의 갈대밭을 읽어내고, 한강 둑이 완공된 뒤의 경작지, 경작지를 갈아 엎은 뒤의 신도시 개발까지 이야기하는 그는 단순히 페달만 밟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허벅지 근육을 긴장시켜 가면서 가슴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그만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청년이었다.

 '저물어도 잠들지 않는 내 허벅지의 힘을 달래가면서 나는 풍경과 말들을 데리고 천천히, 조금식 아껴서 나아가겠다'

 이렇게 잠시 그는 쉰다.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잘 알아 두는 것도 중효한 일임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내년에 전역하면 떠나려고 했던 유럽배낭여행은 잠시 미루었다. 남들이 떠난다고 해서 떠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사전 정보를 습득한 뒤에 떠나야 할 거 같다. 내년 휴가때는 섬과 바다가 있는 제주도에 한번 가보고 싶다.

그의 허벅지가 잠들 수 없기에 새로운 '자전거 여행'은 어디에선가 이루어지고 활자로 우리에게 곧 보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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