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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
달시 웨이크필드 지음, 강미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지난 가을, 나는 꼼짝없이 마라톤 구간에 갇힌 적이 있다. 사전 정보없이 그런 길로 접어든 우둔함을 스스로 원망하며 약속시간보다 늦어지리라고 급히 전화 연락을 취하고 나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기다란 차의 행렬 속에서 건너편의 우리와 정반대로 대로를 마음껏 활개치며 달리는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들-마라토너들. 시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의 시작을 마라톤으로 시작하는데 42.195km를 완주하는 정식마라톤과 반만 달리는 하프마라톤 코스가 있는데, 내가 봤던 그들은 하프 마라토너들이었다. 평소에 건강관리하고 운동 꽤나 한다는 일반인들이 대부분이라 달려온 등장인물들은 백발에 흰수염을 멋있게 휘날리는 할아버지, 중년의 상징인 뱃살을 날려버리고 대신 납작한 배와 축구선수같은 탄탄한 허벅지의 아저씨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포니테일로 긴 머리를 묶고 복근이 살짝 보이는 짧은 티셔츠와 핫팬츠를 입은(등번호판 외엔 자유로운 복장이었다)젊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들의(그런 여성이 한 둘이 아니었다) 건강하고 자신넘치는 뜀박질하는 모습에 나는 완전 매료되었다. 나도 뛰고 싶어졌다. 비록 내가 학창시절 소위 말하는 벤취소녀로서 허약하고 운동엔 영 젬병이지만 유일하게 달리기 하나만큼은 얼마나 잘 했던가를 기억해냈다. 단거리와 오래달리기 둘 다 자신있었다. 머리칼 날리며 바람을 가르는 느낌과 땅을 박찰 때의 느낌이라든가 달리기 시작하면 아랫배와 다리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만큼 가벼웠던 느낌들이 차례로 기억났다. 그렇게 달리기를 좋아하면서 너무 오랫동안 달리지 않고 살았던 나는 급기야는 내년이나 내후년 쯤에는 저 하프 마라톤 행렬에 나도 끼고 싶다는 구체적인 희망을 가졌다.
그런 나에게 도서관 신착도서 꽂이에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 번뜩 눈에 띄었다. 달시 웨이크필드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I Remember Running)'. 조금씩 달리는 훈련을 하던 중에 겨울을 만나 한창 게을러지고 있는 나에게 달리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줄 그런 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빌려왔다. 라인강변을 달리며 내게도 같이 뛰자고 의욕을 북돋워주던 요시카 피셔 장관의 '나는 달린다'정도의 기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읽어보니 이 책은 내가 애초에 원했던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럼 실망했냐고? 그렇지 않다. 달리는 희열 이상의 삶에 대한 경외심과 눈부신 경탄이 있었다. 책 뚜껑을 덮을 때는 너무나 가벼운 동기로 이 책을 집어들었음을 지금은 고인이 된 달시에게 미안한 맘까지 들었다.
서른 셋의 그녀는 175cm에 52kg의 아름다운 몸매의 소유자였으며, 달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하이킹과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을 즐기는 누구보다 건강하며 활동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대학에서 영문학 작문법을 가르치며 데이트 주선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연인을 찾기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단지 특이한 점이라면,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은 모성애가 남달랐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녀는 아기를 갖고 싶어서 결혼할 남자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방법으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아 인공임신까지 계획할 만큼 아기에 대한 열망은 간절했다. 다행히(내 주관으로는 지극히'다행히') 인공수정 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스티브와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됨으로 인공수정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얼마나 계획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 달시가 인공수정을 계획하고 진도대로 착실히 실행하고 있었지만 예기치 않게 '스티브'를 만나는 변수가 있었듯이,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계획과는 상관없는 궤도를 달리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 즈음 그녀의 계획을 완전 뒤집어 엎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복병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ALS였다. 운동뉴런증후군으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가 알았던 루게릭이라고 더 잘 알려진 병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녀가 스티브를 만나고, ALS가 발병하고, 결혼과 출산, 그리고 호흡곤란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의 2년 정도의 다난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달리는 자만이 아는 기쁨을 안고 멋지게 달리는 모습은 한 장면도 묘사되지 않았지만 달리지 못하는 다리를 갖고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뜀박질하던 그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현대의학으로는 불치병을 앓았지만 인생을 긍적적으로 바라보며 발과 손 다리와 팔 그리고 온 몸의 근육이 차례로 마비되어 갔지만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건강할 당시 그녀는 장애인에 대해 이렇다할 관심도 없었을 뿐 아니라 활동적이고 민첩하여 자기 길에 방해하며 꾸무적거리는 노인이나 장애인에 대해 (속으로)짜증내며 비켜갔던 사람이다. 장애를 안고, 또 단축된 생명을 안고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의지를 배신하며 무너져가는 육신의 속도에 적응해 나가기란 참으로 힘들 것이다.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 오히려 전에 없던 감사가 넘쳐나와 독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일상 생활이 어렵고 생명 유지가 힘든 치명적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내가 진정으로 감동했던 부분은 '당당함'이고, 정상인과 '동등한'사고방식이다. 제 한 몸도 못 가누면서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가. 또 ALS유전인자를 3%나 물려줄 위험부담을 갖고 임신이라니 당치도 않다는 생각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모체에도 생명단축에 가속도를 붙이는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이라면 어떻게든 임신을 막으려 설득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건강한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노화과정을 겪으며 죽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 노화과정이 건강한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마치 '빨리 감기 버튼'이 눌려진 것처럼 그녀의 노화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어 좀 더 빨리 생의 마감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녀도 보통사람들처럼 누군가와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일을 하면서 당연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생각의 흐름에 동조하고 함께 호흡하던 나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 빠른 빨리 감기 버튼'이 아닌 조금만 더 느린 속도의 '덜 빠른 빨리 감기 버튼'이라도 눌려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연민으로 애틋하다.
2009.1.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