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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오오!
자칭 숲 예찬론자인 나는 이 책을 손에 쥔 순간부터 격정적인 감정의 홍수상태에 빠졌다. 오호! 오! 아아... 책 속에 흠뻑 빠져 수없이 나도 모르게 쏟아낸 감탄사들. 돈 모아서 생전처음 비발디의 사계 LP판을 산 날의 감흥이다. 전축 위에서 빙그르 돌아가던 레코드판에서는 말로 표현 못할 아름다운 선율로 감수성 예민하던 내 어린 가슴을 흔들어 놓았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지은이 차윤정씨를 은근히 흠모하는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녀는 정말 숲을 사랑한다. 그리고 숲에 대해서 전문가이다.
숲 탐방 전문가이며 조경학과 교수로 일한다고 한다. 숲에 대한 방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과히 존경스러울 만하다. 그동안 나는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 정도만 단편적으로 주어 들어 까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배울 수 있어 더없이 유익했다.(일례로, 초록숲에 왜 흰꽃이 많이 피는지 그 이유를 알게되었다)
둘째, 사진을 잘 찍는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책값이 너무 비싸서 하마터면 도서관에서만 빌려 볼 뻔 했다. 200여 쪽 분량에 정가가 15000원이다. 나는 책값이 어떻게 책정되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받아보니 도감처럼 실린 훌륭한 화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글 쓰는 이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 소재에 딱 맞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생동감 넘친다. 사진술도 굉장히 뛰어나다. 200여점의 사진은 출중한 사진사도 와서 울고 갈 만큼 아름답고 섬세하다. 작가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진만 감상해도 좋다. (메마른 가지끝에 앉아 봄비를 맞으며 온몸으로 희열을 느끼는 달팽이 사진은 압권이다)
셋째, 문학적인 감수성이 돋보인다.
자연과학계열로 분류시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이 책의 문장들은 수려하다. 은유로 반짝이는 한 편의 시요, 삶을 관조하는 가슴 따뜻한 수필이다. 생태적인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응당 학명이 어떻고 과나 속이 어떻고 하며 딱딱하게 나갈 수밖에 없을 텐데 어쩌면 그녀는 이다지도 매혹적인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가끔은 문학적인 표현이 지나친 감도 있긴 하다. 은유가 지나쳐 정확하게 무얼 설명하는지 독자가 흐릿할 때도 있다. 그래서 글솜씨를 지나치게 뽐내다가 줄기를 잠깐씩 놓친다고 날카로운 지적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문체는 숲을 사랑하는 생활에서 우러나왔다고 나는 변호해 주고 싶다. 자연을 깊이 사랑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고야 만다. 자신의 현란한 지식만 피력하는 책은 졸음도 동반해서 독서만 방해하지만 이 책은 숲을 뜨겁게 사랑하는 작가의 가슴과 만나는 인격적인 독서가 될 것임을 장담한다. 숲과 열애에 빠진 사람, 또는 숲과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 숲을 알고 싶은 사람, 숲을 통해 넉넉한 쉼을 얻고 싶은 사람, 그리고 삶이 너무 고달픈 사람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왜냐하면 겉으로 평화로운 숲에서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생존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되 눈물겹게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그 감동으로 치졸한 내 인격이 좀 더 겸허해지고 시들었던 내 삶도 숲을 뚫고 들어오는 화살같은 햇빛닮은 희망도 한가닥 건지리.
/050819ㅂㅊㅁ
꽁지: 봄, 여름, 가을, 겨울동안 격동하는 숲의 모습을 순환적으로 그렸습니다. 비발디가 사계를 숲에서 지었다는 게 틀림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