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의 노래
El canto de la sirena
미겔 카네
나는 브로스보다 더 활동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러시아 출신이었지만 1년 전에 이곳으로 왔고, 외모만 보아도 그가 러시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익히 떠올릴 수 있었다.
브로스는 학교에서 나와 뜻이 잘 맞았다. 사실 학교는 서로 돕고 도와주는 친밀한 우정이 너무도 필요한 곳이었다. 그는 놀랄 정도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머리를 지니고 있어서 초인적인 통찰력이 요구되는 공부에 적합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브로스는 프랑스 사람이었던 유명한 우리 철학 선생님의 기를 죽이곤 했다. 그 선생님은 절충주의 학파의 대표자인 쿠쟁의 흔적을 겸허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브로스는 플라톤을 공부하고 있었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경험했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현대 철학가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데카르트는 내게 감미로운 맛을 선사한 사람이었다.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 학교의 마지막 학년말 시험이 있기 대략 한 달 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수학의 이성적 법칙을 10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공부했다. 나는 머리가 아파오고 있었고, 이마는 불처럼 이글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가련한 육체는 제발 좀 쉬고 안정을 취할 것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그런 동안 브로스는 그의 변치 않는 진지하고 냉정하며 침착한 얼굴로 칠판에 아주 복잡한 문제를 풀었다.
나는 가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브로스, 잠시 쉬는 게 어때? 피곤해 죽겠어. 그래서 공부를 해도 별로 능률이 오르질 않아.”
“피곤해? 좋아, 그럼 잠시 눕도록 해. 난 아직 잠이 오지 않아. 플라톤을 읽고 싶어.”
나는 잠자리에 누워 내가 간직하고 있던 변치 않는 습관을 따랐다. 그것은 내가 술에 고주망태가 되었던 밤에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도망치는 잠을 내 눈으로 가져오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갖가지 장르가 어수선하고 엉망진창으로 널려진 책들 속에서 나는 우연히 그날 내게 도착한 책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에드가 앨런 포였다. 브로스와 나는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책을 펼쳤고, 내 눈은 영국 작가 인용한 대목에 멈추었다. 그 대목은 고상한 몽상가가 쓴 아주 독창적인 어느 단편의 헌사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 인용 구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이렌들은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아킬레스가 여인들 속으로 숨었을 때 무슨 이름을 사용했을까? 이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연구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다.”
“브로스, 이 인용문 좀 봐. 얼마나 신기한지 한 번 봐. 내가 포에 관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본다면, 이 대목은 그의 모든 작품을 전반적으로 요약하는 대목 같아. 그가 이 헌사를 바친 사람은 분명히 아주 놀라운 분석력과 더불어 불굴의 의지를 지녔을 거야.”
브로스는 조용히 그 책을 집어서 인용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짓고서 다시 자기가 읽던 책으로 돌아갔다.
나는 계속해서 그 책을 읽었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황금 풍뎅이」였다. 아주 힘차고 예쁘며 단순한 그의 문체는 나를 작품 속으로 몰입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브로스를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있었으며, 책은 그의 무릎에 펼쳐진 채 있었고, 그의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기 머리에 깊이 뿌리박힌 생각에 골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희열감은 그에게는 이미 친숙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런 모습을 항상 높이 사고 있었다. 그의 정신 연령은 나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농담을 건넬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아주 유치하기 그지없는 내 약점을 용서하는 것처럼, 나도 그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존중하고 있었다.
브로스는 계속해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마침내 그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도 않고, 얼굴에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천천히 이런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의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다. “세이렌의 노래! 그래 맞아…… 그렇지 않다는 법도 없지? 의지, 불굴…… 그래, 바로 그것이 무기야! 시간, 그것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야. 그러면 진실이라는 승리를 맛볼 수 있어!”
나는 다정히 말했다.
“브로스, 뭘 생각하고 있어?”
그는 내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포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의 생각에 관해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환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러자 그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가능하냐고 묻는 거야? 물론 가능하지, 이 친구야.”
브로스는 나를 보통 ‘이 친구야’라는 애정 어린 말로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브로스, 왜 그런 하찮은 생각에 몰두하는 거야? 플라톤이나 읽어. 그것은 진실을 말하고 있잖아. 그러니 몽상이나 꿈꾸는 이 영국 작가는 잊어버려. 몽상이란 말이 거슬리면 시적이라고 말하지. 그렇지만 어쨌거나 몽상이야.”
“다니엘(나는 독자들에게 내 이름이 다니엘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네 실수란 말이야. 모든 전설과 모든 전통의 내부에는 항상 진실이라는 불변의 기초가 있어. 전설은 마치 대지와도 같은 거야. 흙이나 진흙, 심지어는 석회 껍질을 벗겨내면, 대지의 기초를 이루는 화강암을 발견할 수 있지. 우주로부터 탄생되는 인간의 정신은 존재하는 것 이상의 것을 창조할 수 없어. 화가들은 모두 자연을 그려. 적어도 처음에는 볼 수 있는 것을 그리지. 또한 꿈의 화가라고 일컬어지는 시인들도 자기 자신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을 수는 없어.”
잠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나는 브로스의 영향을 받아 이내 잠을 떨쳐버렸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우월한 존재가 지닌 마력과 같은 것이었다.
“플라톤의 제자치고는 정말로 이상한 이론이군! 훌륭한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분석을 통해 모든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네 이론 속에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사나이의 땅을 진동케 했으며, 홍해의 바닷물이 모세의 지팡이 앞에서 열렸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 담겨 있어.”
“다니엘,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이성의 지식이 날조되었다는 거야. 즉, 전설과 전통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지. 뜨거운 열정을 느껴 신앙의 환희에 도달하는 순간, 모세가 전율하는 그의 영혼에게 말하는 폭풍의 오만한 목소리를 하느님의 말과 혼동하지 않았다는 법은 없잖아? 왜 그런 것이 자연 현상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기적이라는 편견으로 보아야 하는 거지? 아니야, 다니엘. 모든 것의 싹은 존재하는 법이고, 자연의 힘이라는 숙명적인 영향 아래서 수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무한히 다음어지는 거야. 그렇게 모든 재료는 변하는 것이고, 정신은 불투명하건, 환히 빛나건 간에 자기 주위를 돌고 있는 거야. 플라톤이 바보라고 치부한 사람은 갈[프란츠 갈: 독일의 해부 학자로 뇌신경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골상학(骨相學)을 발표함: 옮긴이 주]의 재주일 수도 있고, 디오게네스의 샌들은 오늘날 멋진 숙녀의 목을 장식하는 하얀 진주일 수도 있어.”
“브로스, 난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도대체 오늘 왜 그래? 왜 이렇게 흥분해서 야단이지? 자,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해. 그리고 조용히 공부나 하고 잠이나 자도록 해.”
“불쌍한 다니엘! 넌 내 말이 맞을까봐 겁내는 거지? 오, 이건 바윗돌처럼 단단한 이론이야. 인간이 탐구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그 작가의 대담성은 정말 존경스러워. 그래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거란 말이야! 나는 보다 심오한 연구에 전념하고 싶어. 내 모든 인생을 바쳐 연구할 수 있는 것 말이야! 내가 아마도 할 수 있는 것은……”
“세이렌의 노래를 연주하겠다는 거야?”
“그렇게 하지 못하라는 법도 없잖아?”
“뭐라고! 너는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와 거스를 수 없는 매혹으로 바다 한가운데서 서툰 뱃사람들을 멈추게 한 그런 동물들이 진짜로 있다고 믿는 거야? 반은 물고기고, 반은 여자인 그런 혼합된 존재는 모든 자연의 법칙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조용한 밤에 흐르는 바다의 고독처럼 시를 창작하기에 적당한 것은 없다는 것을 너도 알잖아. 당시의 뱃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이런 자연의 조화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 거야. 그래서 경탄스런 현상이 몽상으로 구체화된 것이지. 뱃사람들은 창조되고 형성된 조화로운 속성 속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온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거야. 이 감미로운 목소리는 물거품 이는 파도 한가운데서 나온 것인데, 이것을 모르던 뱃사람들이 그 소리에 유혹을 당해 대양의 심장부에 있던 신비한 동굴로 이끌렸던 것이야.”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먼 시절,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시절에 본래부터 말하는 기관을 지닌 물고기들이 없었으리라고 누가 감히 말하겠어? 오늘날에도 바다를 나는 물고기들이 있잖아? 그런데 왜 노래하는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거지? 태양이 형성된 초기 시절에 내뿜던 햇빛처럼, 상상이 물고기를 바다의 신으로 혼동했을 당시에 무엇이 그토록 그 목소리를 매력적으로 만들었을까? 오, 그게 바로 세이렌의 노래란 말이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브로스의 말은 나를 적지 않게 놀라게 했다. 나는 포의 주장이 너무나 설득력이 없어서 사람들을 화산 같은 상상력과 야성적인 힘으로 치닫게 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브로스는 나와 함께 학교를 졸업했다. 강의실을 떠날 때 그는 모든 선생님들의 지식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거의 음악에만 전념했으며, 첼로에 기대어 온종일을 보내곤 했다. 그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였다.
그는 절대로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채 상속받은 싸구려 하숙집에서 혼자 살았다. 젊은 시절의 머리칼은 인생의 여명 속에서 희어지기 시작했지만, 육체의 활력은 그의 눈 속에 모두 숨어든 것 같았다. 그의 눈은 불빛을 일렁이며 열을 내뿜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이 땅에서 간직한 유일한 친구는 나뿐이었다. 내가 그를 방문하러 가면, 그는 내게 다정한 시선으로 손을 내밀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라고 절망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속세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사람들에게 그에 관해 말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사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방문해서 공부하면서 명상에 잠기고 차분했던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철학과 역사, 자연과학과 최근의 발명들을 비롯해 우리가 함께 공부하지 못했던 모든 지식 세계에 관해 말했다. 그는 나와 헤어지면서 다정하게 악수를 했을 뿐, 그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다니엘,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어.
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떠나.
하지만 실망하진 말아. 언젠가 널 만날 테니까.
―브로스로부터
나는 마음이 심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내가 그의 발걸음을 멈추려고 뛰어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는 아무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이미 떠났던 것이다.
브로스는 내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었다. 내게 있어서 그는 초인적인 천재의 면류관을 쓴 사람이었고, 심지어 잠자고 있을 때조차 나는 그를 그런 모습으로 보고 있다고 믿었다. 단 하나의 환상적 대상에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즉, 무엇이 세이렌의 소리였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바친다고 생각하자, 나는 온몸이 떨렸으며 그런 느낌을 내 마음속에서 절대로 지울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호프만의 작품이 세월이 흐르면서 막연한 회상으로 변해가듯이, 점차로 브로스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격동적인 인생을 살았고, 브로스라는 이름은 희미하게 빛나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런 희미한 빛조차도 내가 가슴속에 품은 그에 대한 애정 때문에 간직되고 있었다.
*
브로스의 작별 편지를 받은 지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독일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젊은이의 열정이 아니라 중년답게 모든 것을 차분한 마음으로 둘러보면서 여행하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예술가들의 조국이듯이 독일은 시인들의 땅이었다. 시라는 것은 항상 내면적이고 주관적이다. 시는 영혼 깊숙이 존재하며, 이런 고상한 손님을 지닌 사람들은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자기 내부 세계의 신비스런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을 마시며 살아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꽃이 꽃봉오리를 열 듯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속에서 자신들의 영혼을 연다. 반면에 독일 사람들은 겸손한 함수초(含羞草)처럼 밤의 적막 속에서 영혼의 나래를 펼친다. 이탈리아에서는 무한성이 형식이지만, 독일에서는 무한성이 사상이었던……
어느 날 나는 아주 멋지고 독특한 어느 조그만 마을에 있는 정신병원을 방문해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곳은 독일의 린 강을 영원히 지켜주는 중세의 수많은 성(城)의 그림자 아래서 자마는 마을이었다. 아주 훌륭한 의사 한 명이 그 병원을 보살피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이삼십 명 정도의 정신병자들만이 수용되어 있었다.
정신병의 유형과 그 병들을 치료하는 방법들에 관해 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정신병 치료에 감탄할 정도로 알맞게 지어진 그 건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첼로의 슬픈 메아리를 들었다.
순간 나는 몸을 떨었다. 왜냐하면 영혼의 신비스런 예언과 같은 어떤 생각이 나를 갑자기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원장이 내게 말했다.
“이토록 달콤하게 첼로를 켜는 불운의 주인공은 내가 평생 동안 알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시적인 정신병자요. 이미 늙었지요. 별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 속에는 청춘의 신선함 같은 것이 깃들여 있어요. 그는 평생 동안 아주 이상하기 그지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다녔어요. 그건 바로 세이렌의 노래가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제였지요.”
나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나무에 몸을 기댔다.
음악 소리는 아주 슬프고 은은하게 계속되었다. 마치 한여름 밤에 꿈을 꾸는 동안 듣는다고 믿게 되는 그런 멜로디였다. 그런데 그 선율은 아주 희한했다. 그와 비슷한 것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원시 종족의 발라드와 같으면서, 동시에 잠을 자는 동안 자연의 침묵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같았다. 나는 내 자신이 그 멜로디에 매혹되는 것을 느꼈으며, 내 머리를 휘감는 한 덩이의 구름이 내 영혼을 과거의 시간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시간은 거의 잊혀져버린 과거의 감정이었다.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바로 불쌍한 내 친구야!’
눈처럼 흰 긴 머리와 방황하는 시선을 지닌 브로스는 마치 무한의 달콤한 바닷속에서 노를 젓고 있는 조그만 배처럼 그의 악기를 꼭 껴안고 있었다.
‘오, 맙소사!’ 내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것은 고통에 젖은 저속한 눈물이 아니었다. 나는 남들이 모르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브로스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 그토록 달콤한 광기(狂氣)를 보내준 하늘에게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브로스는 그의 맑디맑은 눈을 나를 향해 들었다. 그리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의 맑은 눈망울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마치 그의 영혼이 달콤한 천국에 있는 듯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신비스런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하시오! 조용히! 이것은 세이렌의 노래란 말이오!”
- 루이사 발렌수엘라 외 지음, 송병선 옮김, "탱고"(문학과지성사 펴냄)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