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설가 선생님께서 소설 창작 교실 일화를 들려주셨다. 주로 주부들이 학생이었는데 그분들의 글 첫 문장은 늘 이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조용한 아침, 남편과 아이들을 회사와 학교로 보내고 클래식 FM을 틀어놓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부산했던 아침을 보낸 주부의 하루는 식구들이 빠져나간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니 그런 문장이 나올 법도 했다. 제발 그 문장을 첫 줄에 놓지 말라고, 제발 그 문장 좀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며 선생님은 부드럽게 핀잔하셨다.  

중고등학교때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랬던 버릇마저 싸그리 없어진 줄 알았다.  몇년 전부터 다시 라디오를 끼고 살고 있다. 클래식 에프엠도 즐겨 듣지만 이 도시의 지역방송 프로그램 때문이다. 오전 11시에서 12시까지 방송하는 음악프로그램으로 세미 클래식부터 분주한 아침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탁월한 선곡들이 장점인 프로그램이다. 음악을 들으며 움직이는 걸 좋아하다보니 라디오에 손이 간 건 자연스러웠다. 겨우 한 시간 정도의 음악프로그램이지만 그 한 시간을 청취하기 위해 미리 번거롭고 시끄러운 소리가 동반되는 행위들은 서둘러 마쳐놓기도 한다.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 이루마입니다, 에 주파수를 맞춰놓고 저녁을 준비할 때는 낭만적이다 못해 분위기가 철철 넘친다. 그 순간 부엌은 대단히 독립적인 섬이다. 다른 공간의 불을 켜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연출 될 수 있는건데 나는 그 순간이 참 사랑스럽다. 주부들의 아침 풍경 클리셰처럼 내게도 그 순간은 천편일률적이나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의 중요한 순간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주부들의 그 문장을 부드럽게 핀잔하신 건 아닐까.   


어제 도착할 줄 알았던 책상자가 오늘 아침에 왔다. 알라딘 답지 않아. 나다운게 뭔데? 라고 알라딘이 항변할지 모르지만 배송만큼은 실망한 적 없던 고객으로서 실망보다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알라딘에서 배송사고나 배송 지연(있었던 것 같긴 한데 잘 기억 안나니까..없다 치고) 의 나쁜 경험이 없다. 때로는 생각보다 빨리 와서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택배 차량에 사고가 난걸까 하는 기우를 할 때 즈음, 밤 11시가 넘은 것을 알고 책상자를 기다리는 즐거움을 접었다. 화요일은 택배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오기로 한 날에 와주길 바래. 그게 알라딘다운거야- 

<낭만적 밥벌이> 뚝딱, 커피 한 잔과 함께 다 읽어버렸다. 초보 카페 창업 분투기다. 구어체의 문장들이라 쉽고 빠르게 읽힌다. 막연하게 카페를 창업하고 싶은 꿈은 한겨울에 붕어빵을 사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꿈이고 유행어같다. 모두들 가볍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얘기해본 적 있을거다. 필자도 현재 홍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뭔가 해볼까 하다가 이렇게 버젓한 카페 사장님이 되었다.   

   
 

왜 남자 나이 서른 중반이 되면 창업이 하고 싶어질까?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남자라면 시기가 조금 당겨질 수도 있지만 대개 서른 중반의 남자들은 본업이든 부업이든 창업을 꿈꾼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 미래는 말 그대로 찬란한 무지개다. 눈동자는 또렷하고 에너지는 충만해 열심히 일을 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자신의 분야에 숙련되다 보니 일을 더 빨리 처리하지만 남는 여유는 온통 꿍꿍이로 채운다. 돈을 더 벌거나 인생을 더 즐기고 싶은 궁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출퇴근의 반복 속에 야근을 곁들이면 일상 탈출의 꾀가 시작되고 폼 나는 인생을 위해 '창업이나 해볼까'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26쪽 (부분 중간 생략)

카페를 창업할 때 점포 위치만큼 중요한 것은 어떤 인테리어 회사와 일할 것인가이다. 책의 후반에선 인테리어 회사로 인해 노심초사하는 필자의 고민이 우수수 쏟아진다. 초보니까 겪을 수 있는 경험이기도 하겠지만 초보가 아니어도 겪을 수 있는 문제이지 싶다. 카페 오픈 후에도 인테리어로 인한 문제점들이 나타났는데 필자의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페 창업과 삼십대 중반의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책은 부담없고 재미있다. 단, 필자 자신이 1인칭시점으로 쓴 글에서 자신을 '나' 라고 하지 않고 닉네임 키키봉이라고 지칭하는데 조금 곤혹스러웠다. 어린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은서 밥 먹을래~ 은서 화장실갈래~' 하는 것처럼 귀엽지만은 않았으니... 부담없이 읽기엔 좋지만 내 팔에 돋은 닭살은 누가 책임질것인가.   


 

 

 

 

 

  

  

작년에 새 mp3를 구입하면서 <카모메 식당>을 옮겨 넣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카모메..는 골백번도 더 봤다.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카모메, 평화롭게 자고 싶을때도 카모메...를 재생한다. 어떤 날은 오디오로만 카모메를 만난다. 사치에상이 처음 시나몬롤을 만들었을 때 마침내 두번째 손님들이 들어온다. 손님들이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카모메에 들어온 것처럼 어디선가 폴폴 계피향이 풍겨오는 것만 같다. 그게 바로 카모메의 매력이고 마법이다. 그다음 핀란드인 부부를 위해 요리를하는 장면에서 '쇼가야키' 가 등장한다. 그 요리가 알고 싶어서 <라이프 : 카모메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돼지고기 등심 슬라이스를 프라이팬에 굽고 기름은 말끔하게 제거한 다음, 양념장을 붓는다. 일본 가정식 상차림의 장점은 담백하다는 것과 먹기에 부담이 없다는 건데 역시나 소박하고 따뜻한 가정식 요리들이 담겨있다. 초보 요리사에게는 조금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손이 익은 이들에겐 새로운 메뉴 개발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부록으로 딸려온 레시피 수첩 (나의 레시피를 기록할 수 있다) 과 아오모리 사과 모양의 타이머도 요긴하게 쓸 것 같다.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생활> 은 작가의 문체가 인상적이다. 이토록 자기 위주의 1인칭 문장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1인칭 화자인 나 자신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과 이성들을 조합해 놓은 문장들이었다. 현미경은 비교 대상도 아니다. 나노나노나노 마이크로 감성과 시선때문에 처음엔 책을 내려놓을까도 했다. 편집증적일 정도로 초초초초예민한 감성도 부담스러웠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골로 가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는 아가씨의 의지와 매혹적인 충돌이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했다.  

시어머니께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5년 정도 투자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서점에서 골라온 영어 공부 교재들을 보여주셨다. 어머님의 그런 모습이 좋아서 선뜻 mp3를 구입하고 책도 골랐다.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터라 이 다짐이 작심 3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안다. mp3에 회화들을 옮기고 천수경, 반야심경도 옮겨 넣었다. 교재의 수준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딱 좋은 것 같다.  

<보통날의 파스타>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이 모든 극적인 순간> 은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맛있게, 멋있게, 아련하게 읽을 준비가 되있다.  

 

 

 


  

 

 

 

   

몇 년 전 서재를 휩쓸었던 만화다. 소라닌을 추천받고 당장 사서 보았을 때도 참 좋았더랬다. 두 개의 길 중 꼭 한 개의 길을 선택하라고 강요받고, 그 딜레마에 푹 빠져버리는 시절, 그때가 바로  20대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그 시기만 잘 넘기면 새로운 인생을, 내가 꿈꾸는 인생을 더 늦기전에 라는 희망의 슬로건을 지지대로 삼고 시작할 수 있다. 그 독만 잘 뽑아내면. (소라닌은 감자의 싹 솔라닌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영화 소라닌도 좋았고 만화 소라닌도 좋다. 영화에서 타네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할 땐 울고 싶었으나 울지 못했던 20대의 어느 날로 돌아가 가슴 뜨거운 눈물을 끌어낸다.  

 

  

 

 

 

 

 

 

드디어 <센스오브스노우>를 보았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이라는 근사한 우리말 제목도 있지만 원래의 제목에 더 끌린다. 책의 번역에 조금 호흡 곤란을 느껴 미심쩍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영화는 외려 더 담담하고 정직하게 구성되있다. 줄리아 오몬드의 단발 머리가 스밀라의 감각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확- 단발머리로 변신할까, 잠깐 고민했다.  

누구나 죽는다. 이건 정말 피할 수 없는 명제다. <여름의 조각들>은 거기에서 시작한다.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 이후 죽은 자가 남긴 것들, 물건들과 집은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영화의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사용했던 물건들과 집의 진로는 어머니가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자리를 찾는다. 살아있는 동안 모든 것의 중심인 것처럼 관계의 투망속에 아웅다웅 섞이게 해놓았던 인생은 갈 때는 혼자 가라고 고독하게 내치고 있으니. 씁쓸한 조각들, 가끔 죽은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나마 아름다운걸까.  

안나 가발다의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을 영화화했다. 오드리 또뚜의 얼굴에서 나이가 보인다. 왠지 서글펐다. 항상 아멜리에처럼 톡,톡 튈 줄 알았는데. 오드리 또뚜의 나이듦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버렸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오늘 저녁 일용할 라디오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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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0-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순간 부엌은 대단히 독립적인 섬이다, 라는 문장에서 맥이 탁 풀어져 버렸어요. 뭐랄까 그러니까 저는 이런 문장 앞에서는 뭐 도리가 없다, 는 기분이 되어버린거죠. 차분하게 페이퍼를 읽어내려가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인데 그 안에 숨겨진 문장들도 놓칠수가 없네요.

저도 머리를 해야겠어요. 이번엔 웨이브를 넣어볼까, 아니야 단발로 잘라볼까, 내내 고민만 하다가 계속 질끈 동여매고 다니고 있는데, 이번 주말엔 머리를 할까요? 플레져님의 단발머리 변신은 '잠깐'동안만 이었던 거죠? 전 좀 더 고민해볼래요.

이런 글을 쓰시는 플레져님의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이 무척 기대되요!

플레져 2010-10-20 20:4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에서 길러온 머리라서요, 조금 더 이 긴머리의 따뜻함을 유지하고 싶어요. 겨울 무렵 파마를 할까하는데, 그때 기분에 따르는게 낫겠죠? ㅎㅎ

머리하세요,
곧 11월, 쓸쓸하기 그지없는 달이 오잖아요. 그때를 대비해서 염색도 찐-하게, 머리 스타일도 우아- 하게 변신시켜놓으세요.

파리 좌안...읽고 있는데 너무 좋아요 ㅠㅠ
고마워요, 다락방님. 좋은 책 소개해줘서. 흑. (감동의 눈물:)

프레이야 2010-10-20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용할 라디오 잘 들으셨어요?
대단히 독립적인 순간도 즐기신 거죠? 오늘도^^
플레져님 저도 오늘 이루마 들으며 운전해 돌아왔어요.
오늘은 이상하게도 배캠 듣기 싫고 이루마로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 페이퍼를 읽으려고 그랬나 봐요.^^
님이 소개한 '새엄마 찬양' 제 장바구니에 있어요.
문학동네 이벤트 때문에 플레져님 이름도 들어간 페이퍼를 썼네요.^^
아, 그리고 영어공부 시작하신 시어머님 멋지시네요.~~

플레져 2010-10-20 20:44   좋아요 0 | URL
네- 오늘도 이루마에서는 넬라 판타지가 들렸어요.
10월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두가진데요,
하나는 10월의 어느 멋진날에, 또하나는 넬라 판타지에요 ㅎㅎ
저랑 통하실려고 그러신거에요. 자주 통해주세요!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꽃이 된 거처럼 기뻐요 ^^

시어머니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신 분이세요.
철의 여인, 이라는 닉네임이 제격이시죠 ㅎㅎ

프레이야 2010-10-20 21:3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요. 넬라 판타지 오늘 님이랑 저 같이 들었네요.

hnine 2010-10-2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어 회화책 저도 있는데요, 저는 영어 회화도 회화이지만 기분을 up시키고 싶을 때 저 사람 테이프를 들어요. 시끌시끌, 왁자지껄, 푸하하하 거리는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뭐 그리 심각해, 그냥 웃어요 웃어! 그러는 것 같거든요? ^^

플레져 2010-10-20 20:46   좋아요 0 | URL
우왓- 좋은 방법이에요. 기분을 업 시키고 싶을때 영어 회화를 듣는다는거, 정말 좋아요. 저도 꼭 그렇게 해봐야겠어요.

어제 버스안에서 잠깐 들었는데 신나긴 하더라구요. 소리내어 따라할 순 없었던 게 좀 아쉬웠어요. 충전이 필요할 때 꼭, 들어볼게요 ^^

2010-10-20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 2010-10-21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단락 보면서 엄청나게 웃었습니다. 첫 문장만 봐도 지겨울 적 있지요.ㅎㅎ

플레져 2010-10-21 21:3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첫문장이 중요한가봅니다 ^^

2010-10-22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10-2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키봉의 책은 저도 읽었어요. 정말 재밌더군요.
결혼 못한 남자의 넉두리 같기도 하고.
시간 죽이는 책으론 딱 좋죠.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생활>은 정말 읽어봐야겠네요.
1인칭 소설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플레져님 글 보니 확 끌리는군요.
근데 11시부터 12시까지 듣는다던 음악방송은 뭔가요?
서울촌에 사는 사람은 들을 수 없는 건가요? 궁금...
난, 세상의 모든 음악 공개방송에 갖다 왔지롱!ㅋㅋ

플레져 2010-10-26 11:52   좋아요 0 | URL
어느 도시 아가씨...를 읽고 있을 스텔라님을 상상하니
그저 아리땁기만 합니다 ㅎㅎ
서울촌에 사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tjb에서 하는 음악프로인데 들을만해요 ^^
부지런도 하셔라~! 공개방송 하는 줄은 몰랐어요. 부러워요!


2010-11-08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7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전히 요리 레시피나 요리 블로거들을 탐독하는 걸 즐긴다. 가끔은 이야기 책들이 재미없으면 요리책을 펼쳐 읽기도 한다. 레시피에는 과거형이 없다. 레시피를 참조하여 요리 하는 순간은 언제나 지금, 현재다. 볶는다. 끓인다. 뿌린다. 담는다. 조린다. 익힌다...등등. 이것이야말로 현재행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주말 오후 12시에 일주일치를 재방하는 EBS 최고의 요리비결을 자주 본다. 괜찮은 양념과 소스는 간단하게 메모한다. 새로운 요리, 획기적인 요리보다 보통 자주 해먹는 요리 레시피가 더 반갑다. 실수했던 과정을 '교정' 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이 책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요며칠 내가 왜 샀을까, 이 책을... 하며 곰곰이 생각했다. 항상 기억을 떠올리고 지난날을 회상할 땐 다시 육수처럼 후회가 밑바탕이 되는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얼마전 책들을 결제하기 직전, 장바구니를 훑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그 책들끼리 잘 어울리지 않고 서로 어색해하는 이상한 오글거림이 둥둥 떠있었다. 그러다 택배 상자를 받을 때 활자들 천지의 글이 아닌 달콤하고 분위기 있는 사진들이 있는 책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른 책들을 더 돋보이게 하고 풍미를 돋울 그런 책! 영화와 책에서 상상으로만 그리던 프랑스 요리책이 어떨까 하다가 고르게 되었다. 택배 상자를 열었을 때 진한 초콜릿 향같은 건 풍기지 않았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불어는 모르지만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눈으로도 읽었다. 분위기 있는  발음과 낯선 소리들 때문에 외국어는 가끔 어떤 요리보다 더 맛있을 때가 있다. 부르고뉴풍의 쇠고기 스튜는 찬바람 불면 시도해봐야겠다.  

 

키조개 관자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검색하다가 찾게 된 블로그다. 도쿄에 사는 저자는 깔끔하게 일본 가정식 상차림을 차려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원플레이트 한 끼. 접시 하나에 반찬 조금씩 담아낸 상차림이다. 혼자 먹는다고 대충 먹고, 귀찮다고 대충 먹는 버릇들을 단번에 없애고 싶을만큼 깔끔하고 예쁘다. 계란말이, 양파와 감자 볶은 것, 구운김과 김치. 한 접시에 담아놓으니 차린 건 없어도 많이 먹고 싶어진다. 반찬이 없어서, 입맛이 없어서 밥 생각이 없다면 더더욱 예쁘고 깔끔하게 차려 먹는 게 좋은 거 같다. 손님들 오실 때 꺼내 쓰는 그릇이라는 수식어는 아예 없애버리고 집에 있는 그릇들은 널리 자주 쓰는 것도 집에서 먹는 밥의 풍미를 돋운다. 그러다 얼마전엔 아끼던 접시의 이가 나가버렸지만... 괜찮다. 그까이꺼. 알뜰살뜰하게 돈 모아 더 예쁜 접시 사면 되지 뭐. 흑. 좋은 벗에게 생일 선물로 보냈다. 그녀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자주 들여다보고 참고하는 요리책 중에 하나. 감우성과 그의 아내 강민아의 밥 잘해먹고 살기 스타일의 요리 책이다. 레시피를 복잡하지 않게 설명한 것이 장점이다. 물론 처음 요리를 시도하는 이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처음 요리를 시도하는 이들은 무조건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담은 요리책을 선호한다. 경험상 처음이라는 첫 단추에 나는 요리를 해본 적도 없고 자신없으니 무서워, 라는 구절만 빼면 불친절한 요리책을 찾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재료의 양과 조리 시간의 측정이 초보 요리를 하는 데 가장 힘들긴 하지만 웬만한 요리 책이라면 그 정도는 다 나와있다. 가령 한 큰숟갈을 측정할 때, 납작하게 한 큰숟갈인지 봉곳하게 한 큰숟갈인지 헷갈리는것이다. 지나치게 정확한 잣대를 견주면 요리 자체가 피곤해지니 조금 실수하더라도 너그럽게 먹을 준비를 하는 게 맛있는 식탁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자신의 미각을 믿고, 맛있게 먹어본 경험을 되살리면 초보 요리 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맛을 잘 아는 사람이 요리도 잘 하는 것 같다.   

 

  

  처음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야만 했던 그때. 내 식탁을 책임져야 할 시점에서 난생 처음 구입한 요리책이다. 어떤 책이 좋더라, 하는 조언은 떨궈내고 서점에서 직접 골랐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친절했다. 이 책의 레시피는 몇 가지 빼고는 거의 다 해보았는데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펼치면 신혼의 향기가 폴-폴- 난다. 신문과 잡지 스크랩, 인터넷에서 프린터 한 종이들을 끼어놓아서 더 그렇다. 

  

어느날, 못된 마음을 품은 채 찌개를 끓였다. 매번 하던 방식 그대로, 재료도 그대로 넣었는데 맛은 형편없었다. 맛이 손끝에서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도 우러나오는 건 그래서인가보다. 요리를 할 땐 맛있게 먹어줄 사람을 생각하며 한다. 엄마가 그 맛있는 반찬을 드시지 않고 우리들에게 밀었던 이유를 얼핏 알 것도 같다.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뿌듯하지만 요리하는 동안 냄새에 질려 먹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렇다. 맛있게 요리를 하고나면 찬물부터 들이켠다. 그순간 찬물은 내게 가장 훌륭한 반찬이다.  

계절이 바뀔 때 요리책을 펼치면 또다른 느낌이다. 식탁의 반찬을 바꾸면서 한 계절을 보내고 받아들이는 일상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매번 새로운 메뉴를 올려놓지는 못하지만 늘 해왔던, 조금은 잘해왔던 메뉴들은 항상 그 맛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올 가을에 바라는 것도 그뿐이다. 거기에 개미 허리만큼만 더 보태자면 지금보다 더 깊은 맛을 내는 된장찌개와 미역국을 끓이는 것. 그거면 올 가을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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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9-0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리를 할 필요가 없던 시절에도 가끔 TV에서 요리 프로그램이나 요리책을 즐겨 보곤 했어요. 그 심리를 저도 왜그런지 모르겠더군요.
잘은 모르지만 프랑스와 한국, 일본 사람들은 요리에 대한 관점부터 다른 것 같지요? 식사를 하는 것을 어떤 의식처럼 생각하고 진지해지는 프랑스 사람, 오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색의 조화까지 생각해서 담아 내야 음식으로 쳐주는 듯한 일본 음식, 그들도 우리 처럼 반찬 가짓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제 경우엔 오히려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경우보다, 좀 성의 없게, 몸에 안 좋다는 것도 그냥 귀찮아서 팍팍 집어 넣어가며 상을 차리면 식구들이 더 맛있다고 먹는 것을 종종 보게 되어요. 딜레마이지요 ^^
맨 위의 책 표지의 르 꼬르동 블루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오네요.

플레져 2010-09-01 23:36   좋아요 0 | URL
코르동블루가 요리학교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베이커리, 식자재, 조리기구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대요. 이 책은 사브리나 시리즈래요 ^^ 사브리나는 오드리 헵번의 영화 사브리나, 에서 따온거구요.

요리를 대하는 관점에서 민족 고유의 문화와 성품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프랑스 사람들이 왜 음미하며 긴 시간 동안 식사하는지 요리만 봐도 알겠어요 ㅎㅎ 우리 입맛엔 hnine 님 스타일이 딱이지요. 저도 그렇게 팍팍! 요리한 음식들 좋아요. 군침돈다-

마그 2010-09-0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마법사가 오늘 도쿄식탁 책을 추천하길래. 장바구니에 담고나서 이 포스팅을 보니 괜히 반갑네요. 저도 이상하게 요리 책이랑 다이어트책은 거의 수집 지경 입니다. 하하하.
지난번에 산 심야식당 요리책도 아직 뜯지도 못했습니다..흙

플레져 2010-09-01 23:37   좋아요 0 | URL
앗. 심야식당 요리책도 나왔군요. 드라마 보면서 매번 침만 삼키고,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뤘는데. 당장 장바구니로!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마법, 추천마그님 ^^

다락방 2010-09-0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된 마음을 품은 채 찌개를 끓였던 플레져님께 이 글귀를 들려드리고 싶어졌어요.

「아저씨는 요리 솜씨가 좋군요」하고 유키가 감탄하여 말했다.
「솜씨가 좋은 게 아냐. 단지 애정을 기울여 정성스레 만들고 있을 뿐이야. 그러기만 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자세의 문제야. 여러 가지 사물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랑할 수 있어. 기분 좋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고 말이야.」(2권, p.79)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중에 나오는 대화에요.

플레져 2010-09-01 23:40   좋아요 0 | URL
그 시절은 나에게도 고독한 계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벗을 때마다 온몸의 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내 내부에 존재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 나를 어딘가 다른 세계로 끌고 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1973년의 핀볼, 77쪽>

애써 변명하자면 당시 제 시절이 그러했답니다. 훌쩍. 그후로는 못된 마음이 스며있을 땐 배달 음식을 이용합니다...ㅎㅎ 다락방님 덕분에 댄스댄스댄스를 읽어야겠어요. 마침 책꽂이에 있어서 아주 좋아요!

Kitty 2010-09-0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요리는 너무 정갈할 것 같아요 >_<
요리는 커녕 라면만 끓이려 해도 부엌을 폭탄으로 만드는 저로서는 ㅎㅎ
요리책은 돼지 발에 진주이지만 보는건 좋아한답니다~~~

플레져 2010-09-01 23:42   좋아요 0 | URL
에- 어떤 날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날을 뺀 나머지 날들은 대충, 후딱 모드로 일관해요 ㅠㅠ 날이 더웠던 이즈음엔 그야말로 얼렁뚱땅 해먹고 살았어요 ㅎㅎ 요리책 보는 것, 정말 재밌어요. 막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허황된 마음도 좋아요 ㅎㅎ

프레이야 2010-09-0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책을 사두고도 그대로 한 번 해본 게 없는 저에용.
9월의 첫날 요런 페이퍼 쓰며 맛깔난 식탁 준비하시려는 플레져님이 사랑스럽네요.
못된 마음 먹고 요리하면 음식이 확실히 맛 없는 건 맞아요.ㅎㅎ

플레져 2010-09-01 23:43   좋아요 0 | URL
에이. 그래도 프레이야님 스타일이 어디 가겠어요.
저는 요리책을 요리 부적처럼 조리대 가까운 곳에 두고 있어요 ㅎㅎ

BRINY 2010-09-0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사기의 도쿄식탁 블로그 보다가, 관자에 필꽂혀서 한창 제철이던 관자를 사다가 구워도 먹고 생라면도 넣어 해물라면 만들어먹고 만족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내년 봄을 기다려야죠.

플레져 2010-09-02 22:08   좋아요 0 | URL
브라이니님도 우사기 식당에 자주 가시는군요~ 저도 자주 갑니다 ^^
파스타에서 공효진이 관자 요리를 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거 보고 관자를 직접 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버터에 구운 담에 데리야끼 소스로 살짝 조려 먹는 걸 좋아해요. 담엔 저도 해물라면 해볼래요.

stella.K 2010-09-0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알라딘 한창 때 플레져님 요리도 올리고 했는데.
아웅, 옛날 생각난다.
초대를 해 줘야 맛을 보지. 흥!
전 요리와는 거리가 멀죠. 아무래도 엄마 그늘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선가 봐요.ㅠ

플레져 2010-09-02 22:09   좋아요 0 | URL
알라딘 한창 때 -
이 말 슬프다 ㅠㅠ 아, 옛날이여.
언제나 초대합니다. 문은 열려 있어요! ㅎㅎ
요리해야 할 사람이 우리집에서 저밖에 없어서 저도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ㅎㅎㅎ
 

 

 

 

 

 

 

 

  

깜찍한 양아들과 함께 사는 집. 새엄마를 찬양하던 요,요 깜찍한 녀석. 하마터면 홀딱 빠질뻔했잖아. 새엄마와 어떤 애정 행각을 벌일 것인지 조마조마하며 읽었더랬다. 심장 콩닥지수 무한대. 

주노 디아스의 드라운은 폭격기 같다. 거칠고 즉물적이다. 이야기의 처음에서 아~ 이런 소품, 이런 이야기~ 하던 것이 결말에선 뒤통수를 치듯 휙- 날아온다. 짧지만 강하다. 보드랍고 정제된 소설을 지향한다면 이 소설과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식당이 있다면 나도 좀 찾아가고 싶다. 잘 될듯 하다가도 가끔씩 곤두박질치는데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옷감을 직조하듯 널린 자연에서 한 올 한 올 풀을 캐와 멋진 음식을 만들어줄 것이다, 달팽이 식당이라면, 달팽이 식당 주인이라면.   

 

 

 

 

 

 

 

 

 

 

자자하게 듣던 명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은 내가 생각한 명성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요네하라 마리의 소박한 추억과 고향 (일본) 음식 이야기가 한 가득이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애틋하고 맛깔스러웠겠다.  

그러고보니 영화라는 물질은 어느 정도 알콜 지수가 포함되있는 것 같다. 관객을 취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관객을 정신 번쩍 나게 만드는 영화도 있으니까. 그래서 술꾼과 영화는 잘 어울린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도 다시 되새겨보고 술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마티니 술 잔은 꼭 갖고 싶다. 날씬한 기둥에 정교한 삼각형이 얹혀있는 그 술잔은 그 자체만으로도 몹시 매혹적이다.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는 쏘쿨, 하고 쏘핫하다. 빌리 할리데이, 테네시 윌리암스, 오손 웰즈와의 추억담도 매력적이었고 연극을 무대에 올린 그녀의 경험담도 즐거웠다. 그녀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멋진 말을 한 것이겠지. 나는 나를 파괴할 관리가 있다고. 그런 그녀가 너무 좋아 그녀를 흉내내듯 글을 옮겨적어보기도 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가족. 그리고 그녀가 처음으로 우리집에 왔다,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앉아 이얘기 저얘기 하다가 슬픈 안녕을 고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뻔한 스토리 못지 않다. 그런데...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생뚱맞게도 나의 베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큼 내 가족을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좋은 일들은 거리낌없이 잘 나누고 있지만 아픈 것을 나눌 때는 가족 보다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가족이 걱정하는 모습이 마음 아프고 미안하고 견딜 수 없어서다. 아무래도 피가 섞이지 않은 친구는 그만큼의 거리감으로 내게 걱정과 조언을 해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무조건적인 희생, 사랑, 염려가 가장 부담스러운 것 같다. 생물학적 가족의 의미도 아름답지만 가까운 곳에서 나를 담아주는 가족도 아름답다.  

준벅의 에이미 아담스, 레이첼 결혼하다의 앤 헤서웨이는 그 역할에 딱,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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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0-08-1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조건적인 희생, 사랑, 염려는 부담스럽답니다.
그나저나 이 맛깔스런 글이라니.부끄러워서 글 못쓰겠사와요^^;
새엄마찬양 궁금했더랬는데..더 궁금한걸요.

플레져 2010-08-16 18:16   좋아요 0 | URL
짧지만 강렬한 책, 짧지만 황홀의 한트럭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하면
새엄마 찬양에 대한 뽐뿌질 댓글로 적당할까요? ㅎㅎ
아이의 아빠, 남편의 세정의식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한번 따라해보고 싶은 의식이었죠 ^^;;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ㅎ

다락방 2010-08-1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엄마 찬양으로 반갑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더니 밑에 보니 더한게 있었어요! [준벅]과 [레이첼, 결혼하다]요. 두 영화 모두 제가 엄청 좋아하는 영화들이에요. [준벅]은 참 좋아서 DVD를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지요. 사랑한다는 말로 상대를 다 알기엔 역부족인것 같다는 생각을 준벅을 보면서 했더랬어요. 사랑하는 남자의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남자의 면들을 보게되는 그녀의 당황도 그렇고, 가족들에겐 절실한 문제이지만 그녀는 거기에 깊게 녹아내릴 수 없는 것들도 그렇고. 가장 뭉쳐있는 것도 가족이라면, 가장 배타적인것도 가족이란 집단인 것 같아요.
[레이첼, 결혼하다]는 제가 극장에서 혼자 본것 같은데(친구랑 같이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기억나질 않아요.) 보면서 내내 제 여동생과 남동생이 떠올려지던, 그런 영화였어요.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라는 책은 한 집안의 가장이 자신의 아기를 안다가 떨어뜨려서 죽게 되는, 그래서 그 가장은 집을 나가 노숙자가 되어버리는 그런 소설이거든요. [레이첼, 결혼하다]는 그 소설을 떠올리게 해요. 아프고 애틋하죠.

플레져 2010-08-16 18:21   좋아요 0 | URL
준벅, 을 엠피쓰리에 넣고 세번째 보고있어요.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봤다가 자리를 고쳐앉고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이 영화를 왜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을 누르면서 보았는데 너무 좋아요 ㅠㅠ 찬송을 부르는 남편을 바라보는 매들린, 저도 그 장면이 자꾸 떠올라요. 결혼 후 첫 가족모임에 갔을 때 저만, 나 혼자만 이방인이었던 그 경험은 잊을수가 없어요. 내가 남편을 홀대(?)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부분을 반성하게 만들었거든요.

레이첼...은 본 지 조금 됐는데 준벅 보면서 같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보기로 했어요. 가족의 상처가 드러날 때, 문제의 그 접시...때문에 왈칵했어요.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 챙겨볼게요. 다락방님의 독서 편력 덕분에 또하나의 책!을 건졌어요 ^^

2010-08-17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7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6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장욱, 고백의 제왕.  
  신간 도서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페이퍼를 써야겠다는 충동이 생겼다. 소설의 표제작 <고백의 제왕>은 문학상 수상집에서였던가...읽은 것 같다. 몹시 재미있게 읽었다.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상갓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찍어둔 사진처럼 생생하다. 나는 이런 유형의 소설이 좋다. 누군가에게 소설의 줄거리를 차곡차곡 말할 수 있는 소설. 그러니까 이런 투다. 옛날 옛날에 말이야 이런이런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그렇게 되버렸대. 옛스럽기 그지없는, 동화책 탐닉에 빠진 어린 버릇 같지만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며 마음에 와닿은 줄거리를 말할 수 있는 소설이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소설이 아닐까. 지적인 소설도 좋고 수많은 자료를 엄선하여 채집한 소설도 좋다. 자기만의 세계를 천착하여 집중 모색하는 것도 좋다.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호들 중에서 내가 가장 편애하고 좋아하는 소설은 누군가에게 권할 때 술술 이야기가 풀려 나오는 유형의 소설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는 뜻도 있겠고 (소설의 구성과는 별개로 독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구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낯선 호기심이 있고 공감을 끌어낸다는 뜻도 있다.       요근래 중고샵에 책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꽉 찬 책장이 나의 아집처럼 보여서 끔찍했다. 한동안은 소설들과 먹고 살았던 것처럼 온통 소설들 뿐이었다. 올해의 바람이 있다면 책장 한 칸 정도는 텅 비어놓고 싶다. 채워진 책장은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만,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들만 두고 싶다. 그러다 또 어느날 그 책들도 시절을 못 이기고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르지만. 책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변희봉>은 며칠전 문학 수상집에서 읽었다. 책의 여운이 따끈한 호빵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절대로 불이 피어오를 것 같지 않은 연탄에서 열기가 솟는 것처럼 뜨거웠다. 나머지 수록 작품들은 아직 읽지 못하였으나 기대가 된다. 고백의 제왕과 변희봉만큼 좋겠지. 나는 이 소설의 이야기를 동네 친구에게 들려줄 생각이다. 가끔은 나의 아픔에 눈물 짓고 나의 기쁨에 축하 세레모니를 거침없이 해주었던 그녀에게. 한가지 더,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다 반가웠다. 이장욱 작가는 내가 서재 마지막 리뷰처럼 올린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그때도 알고 있었을 터인데 갑자기 우연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더 반갑다. <바덴바덴...>은 작가와 함께 글을 써나가며 읽는 것처럼 수공의 기운이 역력한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 무료한 카페의 공기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을 때, 청승스러운 사람은 오직 지구상에서 나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 이 소설을 슬쩍 꺼내보면 어떨까.  

이 페이퍼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는 보통 사람의 깨방정이 10.5% 정도 가미되어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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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4-0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정도 깨방정이야...아예 대놓고 책에 대해 왼새끼(사기치다)꼬는 사람도 있는걸요.

플레져 2010-04-09 12:58   좋아요 0 | URL
개인의 취향을 타인에게 설득할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가봐요. 깨방정은 깨방정일뿐! ㅎㅎ

다락방 2010-04-0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를 대비해서 이 책을 읽을게요. 보관함에 가져갑니다.

반가워요, 플레져님!

:)

플레져 2010-04-09 13:10   좋아요 0 | URL
비상 식량처럼 잘 챙겨두세요 ^^
반갑다고 말할 수 있는 이 봄날이 참 좋습니다.
반가워요 다락방님^^

stella.K 2010-04-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요? 그럼 플레져님 책을 나도 싸게 사 볼 수 있으려나?
나도 중고샵에 내놓고 싶지만 줄치고 책을 읽는 죄로 언감생심이라는...ㅜ
표지 그림이 맘에 들어요. 플레져님.^^

플레져 2010-04-09 13:11   좋아요 0 | URL
그버릇땜시 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요.
저는 쟁여둔 책들이 너무 많아요. 욕심이죠 ㅎㅎ
표지그림 이야기를 안했네. 저 표지에 끌려서 화르르 페이퍼를 올렸는데 말이죠...ㅎㅎ

hnine 2010-04-0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어제 어느 분께서 여기에 소개하신 것을 보고 냉큼 보관함에 담아두었거든요.
오늘 바로 이렇게 리뷰를 읽게 될 줄이야.
10.5% 라는 숫자가 재미있어요 ^^

플레져 2010-04-09 14:09   좋아요 0 | URL
hnine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싶어집니다. 헤-
두 편만 읽었지만 저 두 편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개그맨 박명수의 쩜오...를 저도 인용하고 싶어서요 ㅎㅎ

프레이야 2010-04-0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플레져님, 고백의 제왕이래서
전 플레져님의 봄날고백이려나 했네요.ㅎㅎ
아무튼 무지하게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플레져 2010-04-12 10:36   좋아요 0 | URL
고백의 제왕을 고백하는 중이었어요^^;;;

프레이야님도 잘 지내셨죠?
오늘은 날이 또 흐리네요.
봄이 너무 오랜만에 온 거 같아요.

비연 2010-04-09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제목보고 플레져님이 뭘 고백하시는 줄 알고 들어왔다는..ㅋㅋㅋ
오랫만에 뵙는 듯. 반가와요~ 이 책도 보관함에 넣어두어어야 겠어요~

플레져 2010-04-12 10:36   좋아요 0 | URL
제목에 낚시 기운이 물씬하네요...ㅎㅎ
비연님 반가워요. 보관함에 넣어두셨다가 나중에 꼭 꺼내보세요~

미설 2010-04-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반가워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플레져 2010-04-12 10:37   좋아요 0 | URL
넵!
미설님도 안녕하시죠?
아가들도 많이 자랐겠어요 ^^

2010-05-08 0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새는 내 책장에서 책을 찾는 일이 버겁다. 전에 살던 집 책장은 책의 위치를 내비게이션처럼 간단하게 추적할 수 있었다. 책들을 모두 꺼내놓고 다시 그 자리에 꽂으라는 놀이가 있었다면 94%는 성공할 수 있을만큼. 다섯칸이 있는 60cm 폭의 책장이었다. 책장 하나가 더 늘어난 건 1년 만에 일이었고 그 후로는 주체할 수 없는 책들이 쌓였다. 책들은 차례 차례 내게 와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리하여 책의 위치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후, 지금은 벽 한 면을 책장님이 차지하고 있고 수시로 책정리 기간을 거행하는 터라 책의 위치는 자주 바뀐다. 새로운 책이 도착하면 자리를 찾아주던 일은 옛날 버릇으로나 남았다. 웬만하면 같은 종이 있는 곳에 자리를 찾아주지만 만석일 경우엔 엇비슷한 곳에 임시로 꽂혀있기도 하다. 책장에서 책을 찾는 일이 버거운 이유 중에 하나는 책장을 자주 감상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내 시선은 노트북, 노트북 너머 창 밖으로 고정됐다. 책장에는 다 읽지 못한 책들도 많다. 위협마저 느낀다. 지난 가을엔 한 칸에 여덟권 정도의 안 읽은 책을 발견하고는 날 잡아 다 읽어버렸다. 이제는 흐뭇하게 쳐다보고 뿌듯해하는 칸이 되버렸다. 올해 내 책장을 많이 차지한 책은 소설, 시, 인문학과 여행기, 회화 교재 순이다. 소설은 거의 외국소설이고 고전 명작들이다. 적어도 이 책들만큼은 어디 꽂혀있는지 다 안다. 책이 도착하면 바로 자리를 배정하지 않고 읽은 후에야 배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다 읽힌 책이 꽂혀있는 책장을 보고 있으면 또다시 전화를 걸어올 것만 같은 어린 시절의 연인들이 떠오른다. 연인들이 전화할 일은 전무하므로 내가 전화를 거는 형태가 될테지만 어쨌거나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다.   

 

 
  정말 너무하다 싶게 속지 디자인이 최악인 
  헤밍웨이의 책. 그렇다고 표지디자인이 속지 디자인을 
  커버해줄 만한 것도 아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표지는 그렇다치고 
  속지는 그냥 건조하게, 다른 책들처럼 글자만 나열해도
  50점은 받았을텐데 과하게 장식하고 테두리 만들어 유치하다.  
  결국 -500점이 되버렸다. 
  디자인은 생각하지 말고
  헤밍웨이의 글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  
  진지한 헤밍웨이 어르신의 주옥같은 멜로디가
  신문지 여백에 꾸질꾸질하게 써놓은 메모처럼 읽히기도 하니까.

  



 어젯밤엔 김경주의 시를 읽었다. 

 사이, mp3로 <카메모 식당>을 봤다.
 미도리상과 사치에상이 만드는 시나몬롤, 
 때로는 코 끝에서 진한 계피향이 풍긴다. 
 자주 보고, 듣고 있지만 볼 때마다 참 좋은 영화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음악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 비정성시 >  
 
 한 줄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멋진 시인. 얼음빙수를 갈아 뿌린 눈, 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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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2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클수마수 플레져님~~~

플레져 2009-12-23 16:52   좋아요 0 | URL
메피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미리...해피뉴이어 ^^

stella.K 2009-12-2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헤밍웨이는 읽을게 못되는군요.
사실 타자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가 아닌가 싶은데
자세히 보니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내용까지? 흑~!

플레져 2009-12-23 17:33   좋아요 0 | URL
내용은 그럭저럭 볼 만한데 (아주 좋다고는 말 못하겠어요ㅠ)
속지 디자인이 88년 이후에 처음 보는 형태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