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몹시 기대했던 일이 어긋나 충격을 받았다. 충격, 이란 말은 늘 어감이 세고 과장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일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고 (예지몽을 꾸었다) 마음의 준비는 되있었다. 그래도 그게 그렇지만은 않았다. 기대, 라는 게 있었으니까. 꿈이 반대라는 (나는 결코 믿지 않는 말) 위로도 있었으니까.
눈으로 그 일을 확인한 순간, 심장에 돌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외출을 하려던 순간이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약속을 취소하고 우리 집에 가장 구석진 곳을 찾았다. 숨을 수 있다면 동전만한 구멍으로라도 숨고 싶었다.
울까? 그런 맘이 들기 무섭게 "눈물을 아껴요" 라는 칼리 피오리나의 말이 내 눈물샘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기대가 무너뜨린 내 두발이 너무 작아보였다.
마음을 터놓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의 위로는 따뜻했다. 전화를 끊자 허기가 져 마트에 갔다. 딱히 살 만한 것이 없어 컵라면 몇 개와 생수만 사들고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5층 우리 집까지 오는 순간, 나는 아주 긴 시간을 보냈다. 가슴이 답답했고 머리가 지끈거렸으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장바구니를 팽개치고 반짇고리를 꺼냈다. 엄지 손가락에 실을 동여매고 바늘로 꾹, 찔렀다. 이보다 더한 체기가 있어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엉뚱하게도 '살아야지...'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하여간...내 몸과 마음은 늘 엇박자다. 두 손가락과 두 발가락을 바늘로 꾹 찔렀다. 체한 것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이 충돌하여 내 몸이 부러져버린 것이었다. 마음은, 정말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닌데, 나는 쭉 그렇게 내 일을 사랑하며 써나갈 것인데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왼쪽 가슴이 아려서 누울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태로 꼬박 밤을 세웠다. 숨을 쉴 때 마다 통증이 오고, 나는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 견딜 수 없어 병원에 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소견은 '정상' 이었다. 의사는 그 충격적인 일이 무엇이냐며 물었다. 말하지 않았다. 집안일이냐고 의사가 물었다. 아니요, 제 일과 관련한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의사는 더 묻지 않았다. 의사는 불안 증세가 있다며 약을 처방했다.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나는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여전히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인생은 9회말 투아웃 부터라고 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매 회마다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있다. 3자 범퇴로 그 회를 마감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가 온다. 살아있는 한, 내가 그라운드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대통령배 고교야구 에서 서울고가 광주일고에 역전패했다. 그것도 9회말 투아웃에서. 패전투수가 된 서울고의 에이스 이형종 투수가 무릎을 꿇었다. 30분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쏟은 저 어린 투수의 가슴이 그대로 느껴진다. 얼마전 한화 이글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에서도 한 투수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한화에 홈런을 맞은 기아의 어린 투수가 (이름이...) 불펜에 앉아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투수라는 포지션은 매혹적이다. 내 인생에서 투수는 나. 때로는 외야수처럼 내야수처럼 뛰어다니며 수비해야 하지만, 수비없이 홀로 투구수를 메워야 하는 순간이 있다. 꽉 찬 볼카운트에서도 공은 던져야만 한다. 이형종 투수는 우승의 문턱에 도달한 자신을 상상했을 것이다. 9회말 투아웃인데, 단 한 놈만 잡으면 되는데, 어떻게 우승을 상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생은 9회말 투아웃부터.
9회말 투아웃부터 라는 말은 내게 긍정적인 의미로 들렸다. 매일 진창이었어도, 아홉가지의 실수를 했어도 행운은 비껴가지만은 않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형종 투수에게는 9회말 투아웃 이후에 불운이 찾아왔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경험이다, 라는 말은 먼 훗날에나 위로가 될 테지만.
지난 겨울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참 좋은 일만 생겼다. 실수가 행운이 되었고 행운은 빛이 났다. 생각해보면 내 왼쪽 가슴이 아플 정도로 충격적인 일은,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가 행운을 누리는 사이 누군가는 울기도 하였을 터. 한가지 역할만 오래 하면, 늘 같은 스타일의 노래만 부르면 식상하다. 기쁨도 나눠야 제 맛 아니겠는가. 어찌 그렇게 기쁨을 독식하려고만 하는지.
헹가래치며 웃는 저 어린 선수들의 사진도 참 뭉클하다. 패전한 투수가 있어 그들에게 기쁨이 온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도 누군가가 박장대소 할 때 불펜에 앉아 땀인 것처럼 눈물을 닦았을 터. 기쁨은 즐기고 슬픔은 다져라. 다만, 그 순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 것. 기쁨의 순간도, 슬픔의 순간도 빨리 흘려보내고 평정심을 찾아 평행선을 달려야 한다. 몸에 기쁨과 슬픔이 오래 머무르면 안된다. 향신료처럼 반짝 즐기고 떠나보내야 한다.
약기운 덕분인지, 시간의 힘 덕분인지 오늘 아침은 쾌청하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슬픔이 독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