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인이 있다. 한 남자를 사랑했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딸이었지만 너무 순수했기에 세상은 그녀에게 가혹했나 보다. 꽃으로 만든 관을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고 기어오르다 심술궂은 가지는 그만 뿌러지고 말았다. 가여운 그녀는 화환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으로 떨어져 떠내려간다. 지고의 여인은 소리도 지르지 않고 그저 꽃을 꼭 쥔 채 강물에 몸을 맡긴다.
이제 그녀는 강물이 되고 강물을 그녀가 된다. 그녀는 들풀이고 들풀은 그녀가 된다. 덤불과 이끼는 여인의 드레스 장식으로 번지고 물빛은 그녀의 가냘프고 하얀 목덜미와 핏기가신 뺨 주위를 맴돈다.
죽음만이 그녀의 안식처였을까. 오필리아는 마치 꿈을 꾸며 즐기듯 천천히 자신의 무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죽음 앞에서 모이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니. 지그시 반쯤 감긴 오필리아의 눈은 마치 자신의 쉴 곳을 찾은 듯 슬픔을 건너 오히려 평온하다. 생에서 죽음으로 변해가는 여인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점차 무거워지는 눈꺼풀 살포시 벌어진 입과 위로 열린 두 손 모두 비극적이다.
하지만 이토록 지독히 매혹적일 수 있을까.
"그 아름답고 순결한 몸에서 제비꽃을 피워다오!"
기다림에 지친 오필리아는 이제 자연이라는 영원한 자리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지난 생애를 돌이켜본다. 그곳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있는 건 너무 슬프고 외로워요. 어두운 혼돈만이 있으니까요.'
그녀의 그림자가 속삭인다.
옷이 활짝 펴져서 잠시 인어처럼 물에 떠있는 동안 그애는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면 본래 물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처럼 옛 찬송가 몇 구절을 불렀다는구나. 그러나 오래지 않아 물에 젖어 무거워진 옷은 그 가엾은 것을 아름다운 노래에서 진흙탕의 죽음으로 끌고 가버렸지.
햄릿의 연인이자 비련의 여인 오필리아. 사랑하는 햄릿에 의해 아버지 플로니어스가 살해당하고 햄릿이 영국으로 떠나자 실성해서 들판을 헤매다 물에 빠져죽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운명의 여인.
존 에버릿 밀레이(Millais, John Everett)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제4막 5장을 소재로 한 <오필리아 Ophelia>를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템스 강 지류의 허그스밀 강가를 골라 배경을 그리는 데만 몇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런던에 돌아와서는 모델을 며칠 동안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가게 하고 작업을 한 나머지 모델이 폐렴에 걸렸다고 한다. 이 한편의 비극 속에서 오필리아는 주변의 녹색 덤불과 물 위의 이끼들로 잘 짜여진 초록의 드레스를 입은 물의 정령이다.
영원한 안식처인 자연과 죽음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오필리아의 차가움에 가슴이 시리다.
- 출처 : George Frideric Handel의 Lascia ch'io pianga (울게하소서) -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Ophelia]
캔버스에 유채, 76.2 x 111.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