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역사의 물줄기는 한껏 갈라졌다가도 다시 합해진다. 삼가분진 즉 세 가문이 진리를 빛으로 분열시킨 역사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기본 소양과 리더십의 조건이 무엇인지 짐작 할 수 있다. 즉 리더십이란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 스스로 겸손하고 신중하게 나랏일을 처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지도자를 기꺼이 따르게 하고 자발적으로 일하게끔 만드는 능력이다. 또 우수한 인재란 그 누구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함도 더불어 알 수 있다. 맡은 일이 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 혹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지도자의 위치에 서야 할 인물이라면 더더욱 철저한 원칙을 가지고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 노력한다고 세상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단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상황에 맞게 변화 하지 않으면 이내 난관에 부닥치고 만다. 따라서 확고하지만 그 길을 살피며 타당하고 적절하게 걸어가는 일도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큰일을 이를 사람이 마땅히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1. 사실 팔자가 좋지 않고 운이 없었다는 것은 실패자들이 문제를 회피 할 때 자주 들이대는 핑계이다. 유방은 나서는 전쟁마다 패배했지만 그럴수록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싸움터에 나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항우는 한 번 패했다고 해서 주저앉아 자살을 선택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평가했다. "인간사의 성패는 하늘과 관계가 없는데도 항우는 자신의 문제를 하늘 탓으로 돌렸으니 이 어찌 황당무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광도 "어찌 하늘의 일을 따질쏘냐?”라고 평함으로써 초한전쟁의 결과와 항우의 운명이 하늘과는 관계없는 일임을 알렸다. 사마천과 사마광 모두 항우의 실패가 의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패왕이 된 뒤 선현들의 경험을 본받지 않고 생소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정치적인 혜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 "일이 코앞에 놓였으니 선생은 사양 마시오." 그러자 이극은 위문후에게 인재를 택하는 기준 다섯 가지를 알려 주었다. 물고기를 직접 잡아 주기보다 잡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사람을 쓸 때는 그가 평소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보고, 부유할 때 누구에게 베풀었는지 살피며, 높은 지리에 올랐을 때 어떤 이를 등용 하는지 보고, 궁할 때 하지 않는 바를 살피며, 가난할 때 취하지 않는 바가 무엇인지 보면 됩니다. 그 사람의 행동과 사람됨을 관찰하시면 충분히 정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위문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선생은 이제 가서 쉬시오,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소.”


3. 이처럼 성공 인사, 또는 전도유망한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에게 겸손 이란 성공적인 인생을 담보하는 통행증이나 다름없는 반면, 일반 서민 들에게 겸손은 평판 형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품성이다. 전자방도 위격으로 하여금 이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고자 일부러 그를 무례하게 대했던 것이다.

전자방이 위문후에게 군주는 악관을 살피는 데 밝아야지 소리에 밝을 필요는 없다'라고 한 것이나 위격에게 부귀한 자와 가난한 자 가운 데 누가 더 오만하다고 질책당하겠느냐' 라고 한 것은 모두 한 차원 높은 경지에서 군주가 갖춰야 할 소양을 깨닫게 한 것이지, 구체적인 측 면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알려 준 것이 아니다. 이 점이 바로 이극이 ‘위성이 적황보다 안목이 높다' 라고 말한 이유다.


4. 탁월한 감각으로 일의 전반을 꿰뚫어 보다.

알려진 바로 장량은 길에서 만난 한 노파에게서 병서를 받은 뒤 병법에 '정진해 훗날 유방의 최고 참모가 됐다고 한다. 그 역시 수백 명의 군사 를 이끌던 지도자였지만 결국 유방을 섬기기로 결정했던 것은 남에게 없는 힘을 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방은 전략을 논할 때도 남들과 달리 탁월한 감각으로 일의 전반을 꿰뚫어 보았고 이 때문에 장량은 "패공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장량이 유방을 돕고자 했던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장량 같은 귀족 출신이 출신 성분이나 교양, 지식이 변변찮은 유방에게서 지도자로서의 매력을 느껴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면, 이는 분명 유방에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인간적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5. 제도적인 틀과 문화적인 힘으로 사람을 다루다.

유방이 한신을 중용했다는 사실보다는 잘 다룰 줄 알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사람을 다루는 일은 두 가지 수단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제도적인 틀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힘이다. 제도적인 틀은 인간의 행의 를 제도라는 수단으로 성형하지만 문화적인 힘은 상대의 사상을 움직인다. 이를테면 현장법사가 천방지축 손오공을 꼼짝 못하게 했던 긴고주라는 주문은 일종의 제도적인 틀이다. 반면 제갈량이 주군인 유비가 죽은 뒤에도 끝까지 충성을 다쳤던 것은 우리가 그에게 미쳤던 문화적인 영향력 때문이지 결코 제도적 의무 때문에 강요된 행동이 아니었다.


6. 자존, 즉 자아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다. 그러나 진나라의 통치자들은 인간에게 먹고 마시며 안전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삶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상앙은 이를 '농사'와 '전쟁'으로 봤다. 이미 나라가 안정된 이상 밭을 갈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 그 어떤 문화적인 요소도 불필요하다고 여겼는데,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경시한 막무가내식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7. 한신은 이좌거의 건의 ‘즉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치지 않고 강한 것 으로 약한 것을 친다' 라는 전략을 받아들였다. 이좌거의 추측대로 과연 연나라는 바람에 쓰러지는 풀대처럼 투항할 의사를 밝혔다. 연나라다음의 목표는 제나라였다.


8. 다시 말해 군주란 음악을 담당하는 악관이 제 소임을 다하는지를 살 피야지 악관이 해야 할 구체적인 업무까지 간섭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는 말이다. 위문후가 소리에 밝았던 것처럼 악관에 대해서도 밝은 분별 력을 가지지 못할까 염려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는 무슨 뜻일까? 군주가 해야 할 일은 인재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즉 인재에게 맡겨진 일이 적절한지 제대로 시행되는지 살피면 될 뿐 일의 경과에 간섭해 기계적으로 이러쿵저러 쿵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런 일은 심사하는 부서가 감당하면 그만이다. 지도자가 업무에 간섭한다면, 권력을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첫째 결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없고, 둘째 지도자의 집행력이 크게 손상되고 만다. 전자방은 자공의 이름난 제자답계 탁상공론만 일삼는 책벌레와는 달리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9. 환경을 살피지 못하면서 어찌 주변을 설득하겠는가?

오기가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환경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공과 업적을 쌓아 성공하려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살피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는 도덕을 숭상함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곳일진대 그런 곳에서 단순히 출세만을 위해 도덕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으니 어찌 오래 버틸 수 있었겠는가?


10. 오기는 노나라에서 위나라, 초나라로 옮겨 다니는 와중에도 어디서 든지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디서도 끝까지 버티지 못 한 채 배척당하다가 종국에는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오기의 운명을 돌아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11.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영웅을 질투하는 배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겁쟁이나 몹쓸 악당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숙좌만 하더라도 훗날 위혜왕! 校處上에게 위앙, 즉 상앙을 천거하는 혜안을 보이는데 그런 것만 보더라도 그 말이 이해된다. 범수 또한 진소왕鬪을 보좌해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데 먼 나라와 친교하고 근방의 나라를 공격하는 '원교근공 成文 외교정책도 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당신을 질투하고 배척한다고 해서 단순히 그를 '나쁜 사람'으로 도식화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오기의 문제는 단순히 성격적인 부분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 시대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생겨난 것이다. 환경을 우리 자신에 맞춰 바꿀 수는 없으므로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12. 그러던 중 공사가 시작된 지 수 년이 지나고 나서야 정국의 진짜 정체와 계략, 즉 관개공사를 명분삼아 진나라의 국력을 쇠하게 하고 동진 및 육국 정벌 계획을 저지하려 했던 계책이 드러났던 것이다. 간첩 한 명 때문에 진나라 전역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어쩌면 그 무렵 불거져 나온 간첩 사건이 우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왜일까? 당시 진나라는 이미 뭇 나라의 관심과 질투가 집중돼 간첩이 침투할 만큼 무척 강력한 나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13. 여불위는 상앙이나 오기처럼 위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위나라 복양 陽오늘날 허난성 푸양시) 출신으로 보통은 한나라 양적(오늘날 허난성 위저 우시)에서 장사를 했다.

한번은 조나라에서 장사할 때였다. 그는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던 진나라 왕족인 이인이라는 공자를 알게 된다. 그를 만나는 순간 여불위는 이 실의에 찬 왕자 이인을 잘만 이용하면 훗날 자신도 한몫 차 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귀한 물건은 미리 사 놓으면 장 차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라는 뜻의 '기화가거居' 라는 고사성어도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14. 항우는 어릴 적부터 글공부를 했지만 진전이 없어 때려치있고도 어느 정도 배우면 역시나 진전이 없어 그만두곤 했다. 조카의 이 같은 태도에 숙부 항량이 화가 치밀어 꾸짖기도 했지만 항우는 도리어 이 렇게 말하곤 했다.

"글이란 자기 이름 석자만 쓸 줄 알면 족하고 검술이란 한 명의 적과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소자는 만인의 적을 상대해서 이 길 수 있는 병법을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항량은 병법을 전수하려 했지만 역시나 항우는 깊이 들어가기도 전에 때려치우고 말았다. 한마디로 인내심이 없었던 것이다.


15. 과연 항우는 그 뒤의 전쟁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을까? 적의 군사가 투항했는데도 오히려 파묻어 몰살시켰으니 다음번 싸움에서 그 누가 항복하겠는가? 어차피 투항해도 죽는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 아닌가? 이 때문인지 항우는 이후 전투에서 매번 힘든 싸움을 이어 나가야 '했다. 반면 유방은 수월하고 순조롭게 서진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항우 가 유방보다 늦게 함양에 도착했던 것도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도 모른다.


16. 일찍이 유방과 항우는 순행에 나섰던 진시황의 행차를 보고 둘 다 부러워 마지않아 하는 말을 내뱉있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유방은 "사내로 태어났으면 저 정도쯤은 되어야지" 라고 한 반면 항우는 "언젠가 저 놈을 쓰러뜨리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해야겠다." 라고 말했다. 이처럼 유방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신중했지만 항 우는 충동적인 편이었다. 마음속의 포부를 표현하는 이 같은 차이는 둘의 성격과 운명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17. 유방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간혹 상대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가끔 상대를 존중한다고 볼 수 없는 과장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포가 큰 결심 끝에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의 진영 을 찾아갔지만 유방은 버선발로 나가 환대하기는커녕 한쪽 구석에 앉아 발이나 씻고 있었으니 상대가 화를 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식 이었다. 이처럼 그는 겉치레나 체면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영포가 살 집과 가재 도구 등 물질적인 것을 융숭히 제공했는데 그 수준이 유방 자신의 것을 넘어설 정도였다. 체면치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속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만 모여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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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 서양과 나머지 세계
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김정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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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500년 동안 서양의 문명은 동양을 포함한 전 세계를 지배해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 공용어로 배우는 언어부터 문화 전반에 익숙하게 퍼져있는 것은 모두 서양의 문명입니다. ’금융의 지배‘등 빅히스토리 도서들로 유명한 니얼퍼거슨 교수는 여섯가지 측면에서 서양이 동양을 앞서갈 수 있었던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자유무역과 경쟁을 장려하는 제도

서양이 동양보다 앞설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자유무역과 경쟁을 장려하는 제도를 꼽았습니다. 중국처럼 일권화된 지배체제를 성립하지 못 한 서양은 자유로운 무역과 경쟁을 장려하기에 적당한 환경이었습니다. 

자유무역과 경쟁은 상업적 측면에서 생산량의 급격한 확대를 가져왔습니다. 산출물이 부족했던 초기 자본주의시대에 공급은 곧 바로 수요로 이어졌습니다. 자유무역은 생산을 해서 물건을 팔 수 있는 지역의 확대를 의미했고, 또 경쟁상대의 증가도 의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량생산체제가 구축되고 생산의 효율이 증가하는 효율성 확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중국을 포함한 동양은 중앙집권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경쟁이 장려되기도 했지만, 현재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경쟁의 목표였지요. 더 나은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판매하는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경쟁이었지요.  


2, 과학발전과 이를 뒷받침할 정치적인 후원

과학의 발전은 서양문명의 동양 지배를 급속화 시킨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우수한 과학기술은 곧 바로 뛰어난 무기의 생산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제도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이슬람권은 종교적, 정치적인 반발로 과학제도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뒤에 두었습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글을 쓰지않고도 대량의 인쇄물 생산이 가능한 시대에도 이슬람문명은 필사를 종교적으로 숭배하여 인쇄물 생산을 방해했지요. 

이는 앞서 말했던 중앙집권체제로 자유무역과 경쟁제도를 장려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판단됩니다. 통치체제의 유지에 기존의 가르침 이외의 것이 중요시되는 과학교육 등은 지배층 입장에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반면, 서양은 무언가 좋은 것이 생겨나더라도 중앙적 차원에서 제지를 가할 힘이 부족했습니다. 통일된 왕국의 형태가 아니었으니까요.


3.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법치제도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법치제도는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 요인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쌓은 부가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 한다면, 부를 축적할 유인이 없어질 테니까요. 이런 법적인 제도의 완비와 미비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사례입니다. 북아메리카는 헌법이 엄격하게 지켜진 반면, 남아메리카는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수준이었으니까요. 


4. 의학

의학기술 역시 서양의 지배를 가능케 해준 힘이었습니다. 서양에서 발전한 공중 보건의 개념은 유아 사망률의 하락, 기대수명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발달한 의학은 잘 모르는 환경에서도 사람의 인체가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 역시 증가시켜왔습니다. 인류가 종말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질병에 의한 멸종이라고 하죠. 의학의 발전 역시 서양의 동양 지배를 가능케 해준 배경으로 꼽혔습니다. 


5. 소비사회 

소비사회 역시 서양의 지배를 가능케 한 요인이었습니다. 소비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의류소비입니다. 의류는 한 개인의 개성을 나타낸다는 점과 또, 단가의 하락을 위해 대량생산을 시작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ㅏㅏ사람의 흥미를 끄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나 자신과 관련된 일’입니다. 소비사회로의 이행은 서양의 지배가 가능하게 된 요인이었습니다. 알려진대로, 소비사회는 공산주의 역시 무너뜨렸습니다. 


6. 직업윤리와 언어윤리 그리고 종교

종교 역시 중요한 역할을 끼쳤습니다. 그 중에서 근면, 성실 그리고 저축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은 초기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직업윤리 위에 자본이 축적되면서 대량 생산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과잉 공급의 시대가 되기까지 했으니까요. 


종교는 중요하다. 이미 앞에서 유교의 '안정화 윤리' 때문에 서유럽에서 혁신을 몰고 온 경쟁적인 제도상의 뼈대가 중국에서 발달 하지 못했다고 한 바 있다. 설사 중국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이은 『유교와 도교』(1915)에서 묘사된 것처럼 정체되고 늘 똑같은 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앞에서 이슬람 지도자 이맘과 물라의 권력이 어떻게 이슬람 세계에서 과학 혁명의 불씨를 꺼뜨렸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남아메리카의 경제 발전을 저해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서양 문명 역사에 종교가 가져다준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신교가 서양 사람들을 일하고 저축하고 글을 읽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산업혁명은 분명 기술적 혁신과 소비의 산물이었다. 또 노동의 강도, 시간의 증가와 함께 저축과 투자를 통한 자본 축적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적 자본의 축적에 의존했다. 신교가 장려했던 교육은 이 모두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다시 생각 해보니 신교의 직업윤리뿐 아니라 '언어'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서양 혹은 적어도 그중 상당 부분은 종교와 함께 윤리마저 잃어버렸는가?

- 본문 중 -


시빌라이제이션을 읽고

두꺼운 책의 두께에 비해 정말 재미있게 읽은 도서였습니다. 서양은 어떻게 해서 동양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을까요? 앞으로도 서양의 지배는 이어질까요? 이 책을 관통하는 대 주제입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차이가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관련된 도서들을 더 읽어보고 싶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 개화론’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독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도서문구] 시빌라이제이션 기억에 남는 문구

역사에 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과거는 하나다. 그리고 비록 과거는 지난 일이지만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경험과 내일,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첫째, 현재 세계 인구는 지금껏 지구에 살다간 인구 전체의 약 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의 수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를 약14대 1로 압도하는데도 우리는 감히 그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과거는 우리 앞에 놓인 찰나의 현재와 수많은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연구가 아니다. 시간 그 자체의 연구다.

론 경쟁은 매우 치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를 향한 욕구나 혁신을 장려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중국 문명의 핵심이었던 문자는 보수적 엘리트 집단을 생산하고 일반 대중이 그런 계층에 진입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포르 투갈어, 영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같은 유럽의 언어들은 엘리트 집단의 문학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단계별 교육만 으로 많은 사람이 비교적 간단하고 쉽게 배워 쓸 수 있었으니 그 차 이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범인(凡人)은 비범한 것을 보고 의문을 품지만 현자는 평범한 일에서 의문을 찾는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명나라 통치 방식에는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 너무 많았고 새로운 것은 너무 적었다

서양인과 최초로 충돌한 것은 1904년 만주를 두고 벌인 러일전쟁이었다. 일본이 바다와 육지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는 곧 세계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다. 서양 패권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아니라는 사 실이었다. 제대로 된 제도와 기술만 있으면(제대로 된 옷은 말할 것도 ) 아시아제국도 유럽제국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1910년에 경제예측가가 있었다면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정말 그랬다. 198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사상 최초로 영국을 넘어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10년에서 1980년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면서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뉜 것 역시 불변의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적 반대파를 억누르는 데는 능한 반면 서구의 소비 사회에 저항하는 능력은 약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동독인들이 서독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서구 패션의 영향은 막아낼 길이 없었다 (서독의 라디오 방송은 진작부터 들을 수 있었다), 앤 카트린 헨델 (Ann Katrin Hendel) 같은 디자이너들은 곧 자신만의 서구 스타일 옷을 만들어 차에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그 녀는 청바지도 만들어 팔았다.
우리는 방수천, 침대 시트 등 데님이 아닌 것으로 청바지를 만들 려고 했다. 옷감에 물을 들이려 했지만 염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 우리가 만든 옷은 인기가 매우 좋아 내놓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슬람의 복종이라는 문명은 여전히 코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책은 무엇인가? 자유로운 개인의 거의 무한하고 강력한 힘을 신봉하는 우리의 신념은 어디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가? 그리고 형식적 지식과 기계적 학습을 기피하는 우리의 교육 이론가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러한 것을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가? 어쩌면 진정한 위험은 중국의 부상도, 이슬람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아니라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우리 문명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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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에 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과거는 하나다. 그리고 비록 과거는 지난 일이지만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경험과 내일,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첫째, 현재 세계 인구는 지금껏 지구에 살다간 인구 전체의 약 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의 수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를 약14대 1로 압도하는데도 우리는 감히 그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축적된 경험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과거는 우리 앞에 놓인 찰나의 현재와 수많은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연구가 아니다. 시간 그 자체의 연구다. 


2. 물론 경쟁은 매우 치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를 향한 욕구나 혁신을 장려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중국 문명의 핵심이었던 문자는 보수적 엘리트 집단을 생산하고 일반 대중이 그런 계층에 진입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포르투갈어, 영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같은 유럽의 언어들은 엘리트 집단의 문학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단계별 교육만 으로 많은 사람이 비교적 간단하고 쉽게 배워 쓸 수 있었으니 그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범인(凡人)은 비범한 것을 보고 의문을 품지만 현자는 평범한 일에서 의문을 찾는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명나라 통치 방식에는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 너무 많았고 새로운 것은 너무 적었다


3. 서양인과 최초로 충돌한 것은 1904년 만주를 두고 벌인 러일전쟁이었다. 일본이 바다와 육지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는 곧 세계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다. 서양 패권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제대로 된 제도와 기술만 있으면(제대로 된 옷은 말할 것도) 아시아제국도 유럽제국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이다. 1910년에 경제예측가가 있었다면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정말 그랬다. 198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사상 최초로 영국을 넘어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10년에서 1980년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4.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면서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베를린이 동과 서로 나뉜 것 역시 불변의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적 반대파를 억누르는 데는 능한 반면 서구의 소비 사회에 저항하는 능력은 약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동독인들이 서독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서구 패션의 영향은 막아낼 길이 없었다 (서독의 라디오 방송은 진작부터 들을 수 있었다), 앤 카트린 헨델 (Ann Katrin Hendel) 같은 디자이너들은 곧 자신만의 서구 스타일 옷을 만들어 차에 싣고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그녀는 청바지도 만들어 팔았다.

"우리는 방수천, 침대 시트 등 데님이 아닌 것으로 청바지를 만들 려고 했다. 옷감에 물을 들이려 했지만 염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 우리가 만든 옷은 인기가 매우 좋아 내놓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5. 이슬람의 복종이라는 문명은 여전히 코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책은 무엇인가? 자유로운 개인의 거의 무한하고 강력한 힘을 신봉하는 우리의 신념은 어디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가? 그리고 형식적 지식과 기계적 학습을 기피하는 우리의 교육 이론가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러한 것을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가? 어쩌면 진정한 위험은 중국의 부상도, 이슬람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아니라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우리 문명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일 수도 있다. 


6. 그래도 1500년 이후 세계 문명에서 서양의 지배력을 과소평가한 역사책이 있다면 중요한 요점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서양의 부상은 한마디로 최근 500년 내에 벌어진 가장 걸출한 역사적 현상이었다. 이것은 근대 역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이야기이자 어쩌면 역사학자들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풀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과거 서양이 패권을 잡은 진정한 원인을 알아내야만 오늘날 서양의 쇠퇴와 몰락 시점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조금이라도 정확히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7. 백작이 1793년 중국의 궁정을 방문했다가 실망스러운 결과를 안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분명 그렇게 보였다 (아래 참조). 20세기에 힘을 얻었던 또 다른 주장은 유교 철학이 혁신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부진에 대한 동시대의 분석은 잘 못되었다. 서양은 가지고 있었지만 동양에는 부족했던 여섯 가지 비장의 무기 중 첫 번째는 상업도, 기후도, 기술력도, 철학도 아니었다. 그것은 스미스가 언급한 대로 제도였다.


8. 그 때문에 일본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던 국제 무역과 이민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놓치고, 말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18세기 후반 영국 농부의 식단에서 축산 물이 차지한 비중은 28퍼센트를 넘긴 반면 일본 농부들은 곡물, 특히 쌀을 주식 (95퍼센트)으로 한 단조로운 식생활을 했다. 이러한 영양 상태 차이는 곧 1600년 이후 나타난 두 국가의 월등한 신장 차를 설명한다. 18세기 영국 죄수의 평균 신장은 170센티미터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일본 군인의 평균 신장은 159센티미터에 불과했다. 이제 동양인과 서양인이 만나면 서로 눈을 맞출 수 없었다.

달리 말해 작은 섬나라 영국이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상업과 식민지 개척의 물질적 혜택을 받아 동양의 위대한 문명보다 앞서나가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택한 길, 즉 해외 무역으로부 터 등을 돌리고 쌀 재배를 강화한 것은 곧 인구는 증가하지만 소득은 줄어들고 영양 상태와 신장,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흉작이 들거나 경작 활동에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영국은 약물 사용 면에서도 운이 좋았다. 오랜 세월 술에 찌들어 있던 영국인들은 17세기 유입된 미국 담배, 아라비아 커피, 중국 차 덕분에 비로소 정신이 맑아졌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커피 하우스로 신경을 자극받았다. 3분의 1은 커피, 3분의 1은 주식 거래, 나머지 3 분의 1은 거기에서 즐기던 자유로운 잡담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반면 중국인들은 아편이 가져다주는 무력감에 젖어들고 말았다. 그들의 담뱃대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영국의 동인도회사였다.


9. 하지만 바다 건너 영국 사람들, 즉 중국을 이상화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영국 정부를 비판하는 데 관심이 없고 오직 상업과 산업만 중 시하던 사람들은 중국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793년 제1대 매카트니 백작이 원정대를 이끌고 건륭제를 찾아갔다.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황제를 설득하여 문호를 재개방하는 것이 원정대의 목표였다. 매카트니 백작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기는 노골적으로 거부했지만 상당한 양의 조공을 바치기는 했다. 


10. 역사를 보는 그의 시각은 옳았다 (그리고 스미스의 시각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30년 전, 반세기 만에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면 당신은 아마 터무니없는 공상가 취급을 받았을 것 이다. 그리고 1420년 서구 유럽이 언젠가 아시아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것이며, 500년 내에 영국인이 중국인보다 아홉 배 더 부유할 것이라고 했다면 역시 비슷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경쟁이 서구 유럽에 가져온 역동적인 효과였다. 그리고 정치적 독점이 동아시아에 야기한 저해 효과였다. 


11. 이들은 인쇄술 역시 배척했다. 오스만제국에서 필사본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들은 펜을 종교적으로 중요시했고 인쇄보다 서체 예술을 선호했다. ‘학자의 잉크가 순교자의 피 보다 더 신성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1515년 술탄 셀림 1세는 인쇄기를 사용하다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슬람교와 과학적 진보를 조화시키지 못한 것은 재앙이었다. 유럽 학자들에게는 아이디어와 영감이 샘솟았지만 이슬람 과학자들은 최신 연구들에서 단절되었다. 만일 과학혁명이 어떤 네트워크에 따라 발생 한 것이라면, 오스만제국은 사실상 그 네트워크 바깥에 존재했다. 18세기 후반까지 중동어로 번역된 서양 책은 매독 치료에 관한 의학 책뿐이었다.


12. 이런 무기들은 과학적 지식을 군사력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이 서양과 나머지 세력의 격차를 짧은 시간 안에 크게 벌여 놓은 경쟁, 혁신, 진보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주역들은 대부분 세 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3. 과거 유럽을 둘러본 오스만 사절들의 보고서는 비웃음 일색이었다. 그랬다. 이 만성적인 우월 콤플렉스가 바로 오스만제국의 개혁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해물이었다. 에펜디의 열성적인 설명은 극단적이면서도 고통스러운 변화를 시사했다. 하지만 이스탄불의 모든 사람이 서양 문물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 뛰어난 인물이 결코 수상 자리에 오를 수 없었던 것도 아마 오스만 국가 체계에 관한 그의 암묵적 혹은 명시적 비판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 각국 정부의 뛰어난 특색을 설명하는 것과 오스만의 국가 제제 개혁을 단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4. 또 다른 프랑스인 전문가 알베르 뒤바예 (Albert Dubayer) 장군의 지휘 아래 설립된 '새로운 군대 (New Order Army)'는 예니체리를 비롯한 반대파에게 1807년 완전히 해체되었다. 이제 오스만 군대는 주로 장교들의 재산을 불리고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방향으로 운영되었다. 전투 능력이 약화된 오스만 군대는 내부 반란에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15. 심지어 이 시계에는 아랍어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당신의 1초, 1시간, 모든 시간, 수백 년을 가치 있게 하기를.” 이 시계는 모든 면에서 동양의 기술로 빚어낸 걸작 같아 보인다. 단 한 가지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 시계의 실제 제작자는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키르슈(Wilhelm Kirsch)라는 사람이었다. 키르슈의 시계에서 완벽하게 알 수 있듯 서양 기술을 단순히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오스만제국을 현대화할 수 없었다. 오스만 제국은 새로운 궁전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 새로운 문자, 사실상 새로운 국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이 모든 것을 갖추게 된 것은 대체로 한 사람의 노력 덕분이었다.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


16. 두 아메리카 혁명의 차이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예는 없다. 제정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미국 헌법은 수정할 수는 있지만 어길 수는 없다. 하지만 26번이나 개정된 베네수엘라 헌법은 일회성 성격이 강하다. 독립 이래 베네수엘라보다 헌법을 더 많이 개정한 나라는 도미니카공화국(32번)이 유일하다. 아이티와 에콰도르가 각각 24번과 20번으로 3위와 4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의 정부가 아닌, 합의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헌법을 마련한 미국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섯 헌법은 법치주의를 전복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17. 한마디로 우리의 옷차림은 중요하다. 서양의 가장 위대했던 두 차례의 경제 도약, 산업혁명과 소비 사회는 의류와 관계가 깊었다. 


18.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잘못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서양 문명의 모든 업적, 자본주의, 과학, 법률과 민주주의의 지배 같은 것들을 모두 소명이라는 열악한 행위로 평가절하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모든 성취를 소망이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서양에 대한 궁극의 위험은 급진적 이슬람주의나 다른 외부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유산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질 못하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19. 종교는 중요하다. 이미 앞에서 유교의 '안정화 윤리' 때문에 서유럽에서 혁신을 몰고 온 경쟁적인 제도상의 뼈대가 중국에서 발달 하지 못했다고 한 바 있다. 설사 중국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이은 『유교와 도교』(1915)에서 묘사된 것처럼 정체되고 늘 똑같은 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앞에서 이슬람 지도자 이맘과 물라의 권력이 어떻게 이슬람 세계에서 과학 혁명의 불씨를 꺼뜨렸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남아메리카의 경제 발전을 저해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서양 문명 역사에 종교가 가져다준 가장 큰 공헌은 아마도 신교가 서양 사람들을 일하고 저축하고 글을 읽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산업혁명은 분명 기술적 혁신과 소비의 산물이었다. 또 노동의 강도, 시간의 증가와 함께 저축과 투자를 통한 자본 축적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적 자본의 축적에 의존했다. 신교가 장려했던 교육은 이 모두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다시 생각 해보니 신교의 직업윤리뿐 아니라 '언어'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서양 혹은 적어도 그중 상당 부분은 종교와 함께 윤리마저 잃어버렸는가?


20. 하지만 스미스는 아니더라도, 베버가 오늘날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을 보았다면 미심쩍다고 생각했을 부분이 분명 있다. 가장 성공적인 종파들이 번창하는 이유는 정확히 월마트 숭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일종의 소비자 기독교를 발전시킨 덕분이다. 이런 예배 는 다녀오기 편할뿐더러 보기에도 즐겁다. 스타벅스 커피도 마시고, 영화도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다녀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 신도들에게 요구되는 의무는 적은 반면 신도들은 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제임스 리버에서 올리는 기도는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성부와 성자, 성령은 곧 분석가, 인생상담가, 퍼스널 트레이너로 대체되었다. 미국 백인 5분의 2 이상이 살면서 한 번 이상 종교를 바꾸는 지금의 환경에서 신앙도 그에 따라 변화무쌍해졌다. 

종교를 취미화할 때 유일한 문제점은 미국인들이 베버가 본 프로테스탄트 윤리 - 만족 지연의 필연적인 귀결이 곧 자본 축적- 로부터 이미 멀리 떠나왔다는 것이다. 


21. 우리는 무엇이 서양의 세계 패권을 설명하는지 연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 처음에는 서양이 우리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는 서양의 정치 체제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서양의 경제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우리는 서양 문화의 중심에 종교,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서양이 그리도 강력한 이유다. 사회적·문화적 삶의 기독교적 윤리 기반이 자본주의의 출현과 그 후 민주 정치로 의 성공적 이행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2.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런 개념, 쇠퇴와 멸망은 피할 수 없고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필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점차 퇴보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명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육신은 풀이다(인간의 삶은 덧없다는 뜻의 「이사야」, 40장 6절). 마찬가지로 모든 오만한 기념물은 우리 업적이 남긴 유물 사이로 쓸쓸한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게 되어 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이 쇠퇴와 몰락 과정이 복잡한 사회와 정치 구조의 영역에서 어떻게 펼쳐질 것이냐다. 문명은 아마겟돈의 전장에서 쾅 하는 폭발과 함께 붕괴되는 것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신음하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인가? 그 결정적인 질문에 답 하는 유일한 길은 역사적 설명의 첫 번째 원칙들로 되돌아가는 것뿐 이다.


23. 하지만 사실 이 개념적 틀 자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탄생, 성장, 죽음이라는 문명의 거대한 순환 주기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콜의 작품도 어쩌면 역사의 과정을 오해한 것일 수 있다. 역사가 주기에 따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면, 그러니까 때로는 거의 정체되어 있다가 갑자기 급격히 가속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라는 시간이 계절의 변화처럼 느리고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꿈속처럼 멋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면? 무엇보다도 붕괴가 몇 세기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밤중의 도둑처럼 급작스럽게 공격해온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24. 문명의 승리요건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가장 높은 점수로 현대의 끝까지 가는 것, 둘째, 알파센타우리계까지 진출하여 우주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모든 문명을 파괴하는 것, 그런데 이것이 진정 역사적 흐름의 이치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왕국과 서유럽의 공화국 행태를 한 서양 문명이 대략 1,500년 이후 세계 다른 문명 대부분을 파괴하기나 정복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양 강대국들이 서로 벌였던 전쟁의 수나 규모의 비교해보면 이 중 상당부분이 최소한의 분쟁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집계되고 지정학적 변방으로 물러난 것은 아편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극동지방의 경작 시스템과 황실 통치 체제에 내재되어 있던 내부적 경화 때문이었다. 


25. 과학 혁명 가담을 막은 고질적 문제 때문이었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문명 사이에 대규모 충돌은 없었다. 전자가 후자보다 제도적으로 월등하여 그들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럽제국들이 아프리카에서 벌인 전쟁은 그들이 유럽 땅에서 서로 간에 벌인 사건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로 소소 했다. 아프리카 정복은 맥심 대포보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 전신국, 연구소의 성과 였다. 산업혁명과 소비 사회는 비서양 국가들에 강제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현실을 인식하고 있던 국가는 일본처럼 자발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칼이 아니라 펜, 무엇보다 공중 보건과 교육 개선을 통해 동양에 퍼진 직업윤리가 20세기 중반 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다.


26. 이번에야말로 동양의 도전자는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우리가 최고다” 라고 주장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끌려가는 입장에서 벗어난 지도 이미 오래다. 게다가 헌팅턴이 생각한 문명의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제 지난 500년간 서양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변화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 한 문명이 약해지고 다른 하나가 강력해진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문명이 충돌할 것이냐가 아니라 약해진 문명이 곧장 붕괴로 넘어갈 것이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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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외짝 신 사니이가 왕이 된다!


장자방은 이 병법서를 공부하고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노인은 그 방면의 병법의 대가 황석공이었다. 황석공은 장자방이라는 청년의 그릇 크기를 알아보기 위해 그를 시험한 것이다.


3.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다.

자신을 알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문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한 다음에는 그 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의 답을 목색하는 사람만이 신화의 주인공,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 의문만 제기할 뿐 그 답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은 신화의 조연(助演), 자기가 사는 모둠살이의 조연에 머문다.


4. (이아손의 동상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금모피를 들고서 있다.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들고 서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영웅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 보다.


5. 시련에 빠진 영웅에게는 언제나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6. 이아손은 이로써 빼았겼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 왕을 위해 왕자 둘을 낳았다. 그러고는 영웅 이아손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느냐 하면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아손이 이웃나라 공주에게 한눈을 파는, 인간의 세계에서는 드물지 않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메데이아가 누구던가? 이아손을 따라 나서면서, 아버지의 추격을 늦추게 한답시고 막내동생 압쉬르토스를 난자해서 시체를 바다에다 던진 여자가 아니던가? 메데이나는 이아손에 대한 복수로, 제가 낳은 두 왕자를 죽여버렸다.


7. '호모 비아토르(떠도는 인간'는 나그네길에 머물 때 아름답다. 이올코스에 정착한 이아손의 뒤끝은 이렇듯이 누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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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행동의 변화가 생긴 이유는 인터넷 그 자체나 데이트의 선택 사양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인터넷 사용 인구의 변화 때문이다. 온라인 데이트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애인을 구한다며 내던 개인 광고의 혐오스러운 세계가 확장된 것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짝을 구하기 힘든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최후의 보루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접촉이 보편화되고, 꽤 괜찮고, 잘 확립 된 것을 경험한 새로운 사용자 세대가 등장하자 온라인 데이트에 관한 초기 의 오명은 씻겨 나갔다. 팩스나 이메일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아주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야 하는데, 1999~2000년경 이런 일이 일어났다. 


2.


a. 당장 처리해야 할 일, 사무실이나 동업자로부터 날아온 서신, 청구서, 법률 서류 등이 포함된다. 이것은 다시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것과 며칠에 걸쳐 처리할 것으로 세분됐다.


b. 중요하지만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 우리는 이것을 '유보 더미'라고 불렀다. 검토가 필요한 투자보고서, 그가 읽고 싶어하는 기사, 자동차 정기 점검 서비스 알림 편지, 아직 날짜가 남아 있는 파티 및 행사 초대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c. 중요하지 않고 나중에 처리해도 되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제품 목록, 연하장, 잡지 등이 포함된다.


d. 버릴 것


3. 책이 급격히 확산되는 것에 대한 불평은 1600년대 말까지 계속 이어졌 다. 지식인들은 사람들이 책 때문에 서로 대화하지 않게 될 것이고, 쓸모없는 어리석은 생각들로 마음을 오염시키며 책에 파묻혀 살게 될 것이라 경고 했다. 그리고 우리도 잘 알고 있다시피 이런 경고는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TV가 발명되면서 그랬고, 컴퓨터, 아이팟, 아이패드, 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이 발명되면서 그랬다.32 이런 것이 등장할 때마다 중독을 야기한 다는 둥, 불필요하게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둥, 실제로 사람을 만나 실시간으로 생각을 교환하는 능력을 떨어지게 만든다는 둥의 말로 매도했다. 심지어 전화교환원이 연결해주던 방식을 대체하는 다이얼 전화기가 처음 나왔을 때도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 많은 전화번호를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노래 가사처럼 “늘 그랬다. Same as it ever was ". 


4. 이렇게 무언가를 무시하고 결정하는 일에는 모두 대가가 따른다. 신경과학자들은 결정할 것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생산력이 저하되고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어떤 결정이 더 중요한지 순서를 매겨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별 어려움 없이 그 일을 해내는데, 우리 뇌가 자동으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오아나는 어떤 펜을 살까 결정하는 것보다 수업을 따라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결정해야 할 일들에 너무 많이 마주치다 보니 피로가 쌓여서 정작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쓸 에너지가 남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볼펜과 펠트펜 중 어느 것으로 쓸 것인가 같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결정들을 연이어 내리게 했더니, 그 이후의 결정에서는 충동조절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도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뇌는 하루에 특정 개수만큼의 판단만 내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 한계에 도달하면 중요도에 상관없이 더 이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 가운데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우리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신경 네트워크는 어느 판단이 더 우선적인지 따지지 않는다."


5. 이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의 행동을 설명 할 때 성격적 특성은 중시하고 상황이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부정확한 예측을 한다는 것을 입증해보인 실험은 수십 가지나 된다. 이런 인지적 착각은 너무 강력해서 이름가지 붙여졌다. 바로 기본적 귀인 오류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다. 기본적 귀인 오류에서 추가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이 맡을 수 밖에 없는 역할 때문에 행동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6. 내집단 외집단 편향은 진화생물학적으로 워낙 깊게 뿌리 내렸기 때문에 완전히 떨쳐내기는 힘들다. 한 실험을 보면 서로를 하나의 집단으로 판단하는 남성과 여성들은 여전히 이런 인지적 평향의 포로였다. 로스바트는 이렇게 적었다. “지속적으로 접촉해있고 서로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두 집단 사이에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보인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 일단 고정관념이 자리 잡으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재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 고정관념의 부당함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도 그냥 '예외’로 치부해버린다. 이것이 바로 믿음 보존 편향이다.


7. 포도당을 섭취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과제의 수행성과를 향상 시켜준다는 사실은 몇몇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일례로 한 실험에서는 참 가자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기에 앞서 그중 절반에게는 단 음식을 제 공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제공하지 않았다. 그 결과, 단 음식을 제공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수행성과가 더 좋고 수행 속도도 더 빨랐다. 이들이 몸에 포도당을 공급하자 이 포도당이 곧장 뇌로 올라가 문제를 풀고 있는 신경회로에 에너지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달려가서 사탕을 한 봉지 사오라는 얘기는 아니다. 뇌는 포도당이 '필요할 때면 이미 몸에 저장돼 있는 막대한 양의 포도당 비축분을 끌어다쓴다. 게다가 설탕을 만성적으로 섭취하면 다른 시스템들을 손상시켜 당뇨 병이나 당분 급락 sugar crash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 실험은 그저 단기 섭취의 영향만을 평가한 것이다). 당분 급락은 '당분 절정Sugar high(당분을 과도하게 섭취한 후에 야기되는 과활성 상태 - 옮긴이) 이 지나간 다음에 느끼게 되는 갑작스러운 피로감을 가리킨다. 


8.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뇌의 각성 시스템은 새로움 편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뇌의 주의는 거기에 쉽게 장악당하고 만다. 새로움 편향은 우리에게 가장 깊숙이 내재된 일부 생존욕구보다 강력하다.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만 있다면 먹을 것이나 짝을 구할 때만큼이나 열심히 일한다. 서로 경쟁하는 여러 활동 중에서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분명하다. 한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뇌 영역이 반짝이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쉽게 정신을 뺏기고 만다는 점이다. 멀티태스킹을 하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중독의 고리고 빠져든다. 뇌의 새로움 중추가 반짝이는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과제에 집중해서 지속적인 노력과 주의를 기울인 데 따르는 보상을 얻기를 원하는 전전두엽피질에 해롭게 작용한다. 우리는 장기적 보상을 추구하고 단기적 보상은 포기하도록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9. 아마 당신도 한 번쯤 잠을 줄일 수 있다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하고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오늘밤 잠을 한 시간만 줄였다가 내일 밤에는 한 시간 더 자서 보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을지도 모른다.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지만, 이는 연구를 통해 입증되지 못했다. 잠 은 최적 능력 수행, 기억력, 생산성, 면역기능, 기분 조절 등에 관한 가장 중 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잠이 조금만 줄거나, 늦게 잠들거나, 밤을 새우는 등 몸에 밴 수면 습관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그 후로 여러 날 동안 인지수행능력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프로 농구선수의 경우, 하루에 10시간 을 자면 수행 능력이 극적으로 개선되어 프리드로와 3점 슛이 9%나 향상되었다.


10. 효율적인 시간관리에서는 산만함 피하기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 때문에 방해받기 쉽다는 것은 삶의 역설이다. 물고기는 낚시꾼의 미끼에, 쥐는 치즈에 유혹당한다. 이런 욕망의 대상들은 적어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자양물이다. 인간이 이런 것을 욕망하다가 해를 입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 유혹은 대개 순수한 탐닉인 경우가 많다. 생존을 위해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시고, 강박적으로 소셜 네트워크 피 드백을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오락을 위해 시작한 활동이 통제력을 벗어났음을 깨닫는 일은 인생의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다.


11. 내부적 산만함과 싸울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3장에서 언급한 마음 깨끗이 정리하기를 실행하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는 50분, 그 이상 집중력을 유지해야 효과적이다. 당신의 뇌가 집중한 상태에 안착해서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 때문이다. 가장 좋은 시간관리 기법은 당신의 주의를 끈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글로 적어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프로젝트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마음속에서 지우면서도 잠재적으로 유용할지 모를 아이디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전두엽의 외부화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한 발 뒤로 물러나 그 목록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머릿속에서 뒤늦게 큰 목소리로 등장할 내용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다.


12. 보통 사람들은 추가 보장이 이루어진다면 거기에 기꺼이 돈을 쓰려 한다. 이것이 보험의 본질이다. 화재보험이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크게 유리했다면, 보험회사들이 지금처럼 부유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착각하지 마라. 보험은 결국 보험회사에 유리한 거래다. 하지만 우리는 보험이 제공하는 마음의 평화를 사랑한다.


13.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 중요한 것은 특정 사실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실을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지 알고 있느냐, 그리고 거기서 찾은 해답이 과연 타당한지 검증할 방법을 알고 있느냐다. 인터넷에서는 무슨 일이든 허용된다. 음모론자들은 맥도날드에 대해 사회보장제도를 훼손시키고, 진보 진영 엘리트들이 손아귀에 권력을 움켜쥐게 하고, 외계인들이 우리 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다국적으로 이루어지는 끔찍한 계획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14. 이 책 전반에서 강조했듯, 정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무언가를 잊어버 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정리의 부담을 뇌에서 바깥세상으로 넘겨라. 이런 과정의 일부 혹은 전부를 뇌에서 물리적 세계로 떠넘길 수 있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정리된 마음은 당신이 그저 실수를 피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게 해준다. 정 리된 마음은 당신이 그렇지 않았다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일을 하고, 상상하 지 못했던 곳에 갈 수 있게 해준다. 꼭 무언가를 적어놓거나 외부 매체에 기 록해놓는 것만 정보의 외부화가 아니다. 이미 당신을 위해 정보 외부화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당신은 그저 그 신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만 알 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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