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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역사
앨버트 후라니 지음, 김정명.홍미정 옮김 / 심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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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는 하늘과 땅의 빛이라. 그 빛은 마치 벽감속의 등잔과 같은 것으로, 그 안에 등불이 있으며 그 등불은 유리잔에 있더라. 그 유리는 축복받은 올리브유로 별처럼 밝게 빛나로다. 올리브는 동쪽에서 온 것도 아니요. 서쪽에서 온 것도 아니더라. 그 기름은 불이 닿지도 아니하나 더욱 빛나 빛 위에 빛을 더하도다. 알라는 자신이 원하는 자를 그 빛으로 인도하신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아랍인의 역사


아랍인의 역사의 저자 앨버트 후라니는 이슬람 연구자이면서 이슬람에서 태어난 영국인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종교는 기독교이지요. 자신의 크로스 오버적인 백그라운드 때문인지 꽤나 객관적이고 조심스럽게 아랍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무조건적으로 폭력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너무나 이상적이지도 않은 모습 그대로를 말이죠.


아랍인의 역사


아랍인의 역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날눌 수 있습니다. 유럽이 침탈하기 이전, 유럽이 침탈하던 침탈기 그리고 현대의 모습이죠. 현재에도 유럽인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는 못 합니다. 비록 독립국이라고는 하지만 전 세계가 유럽과 미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죠.


기독교와 아랍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 종교의 뿌리가 같습니다. 모두 태초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죠. 따지고 보면, 기독교나 이슬람은 싸울 일 없는 형제의 종교인 셈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숭배자를 지녔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기독교인에게나 이슬람인에게나 성지가 되었고, 이를 쟁탈하는 것은 분쟁의 큰 명분이 되었습니다. 


산업혁명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둘 사이의 격차는 크지 않았습니다만, 산업혁명기를 계기로 다른 모든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유럽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이색적인 너무나 이색적인


이슬람교는 수 많은 종교들 중 가장 멀게 느껴지는 종교 중 하나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마주칠 일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죠. 사원을 찾아가려면 이태원까지 찾아가야 합니다. 이곳저곳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교회와 불교 사찰과는 아주 대조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종교입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세계 3대 종교로 인도나 동남아 지역에만 가더라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종교입니다. 종종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매우 폭력적인 종교로 여겨지지만, 이슬람 역시 중도적인 입장의 다수들은 서구나 기타 국가들에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멀게나 느껴지는 아랍의 역사에 대해 독특한 배경을 가진 서구학자의 눈으로 바라 본 도서였습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467?category=697199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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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미루는 습관을 바꾸다 - 자꾸만 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심리 훈련
윌리엄 너스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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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미루는 습관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신적 건강 대신 우울증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미루는 습관에 젖어 있다면 선택은 두 가지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정 행동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이 잘 풀리기만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변화를 선택하자. 교정 행동은 당신의 책임이다.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닌 과정이다.


왜 미룰까?


사람이 행동을 미루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째, 완벽하게 하고자 해서 시작하지 못 함 둘 째, 심리적으로 하기 싫은 일이라서 기피하게 됨 셋 째, 처음 일을 시작하기에 머뭇거리게 됨 입니다. 미루는 것은 다분히 심리적인 행동입니다 .단순히 무엇을 하는 것이 게을러서 라기 보다는 너무나 거대해 보여서 혹은 하다가 중도에 그만둘 것 같아서 그것도 아니라면 중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 등등 심리적으로 기피하는 내재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미루기는 상대적


모든 것을 미루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일은 쉽게 미루는 반면 어떤 일에서는 빠르게 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단지 어떤 일을 미루거나 일찍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잘하거나 못 하는 것의 이유가 되지는 않음을 이야기 해줍니다.

미루는 것 자체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왜 미루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원인분석이 필요합니다. 또, 그에 걸맞는 행동이 상응하게 되면 되는 것이지요. 


장기적 비전과 목표 의식


미루는 습관을 바꾸는 가장 좋은 행동 중 하나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고 싶고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내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지금 당장 해야하는 일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것이죠. 이전에 조금 만 더 일찍 시작했다면, 혹은 조금만 더 미루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좋았을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함으로써 미루는 습관을 이겨내는 것이죠.

미루기를 멈추는 가장 좋은 행동은 지금 당장 행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해야하는 일 혹은 생각나는 일을 그저 시작하는 것. 미루는 습관을 행동력으로 바꾸는 가장 좋은 행동 중 하나입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463?category=697199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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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게임 - 어떻게 최소의 위험과 비용으로 목적을 이룰 것인가?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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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성이 더 보편적인 영장류 본성의 특수한 변형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영장류 본성이란 정확히 어떤 것인가?


1.왜 하필 인간일까?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매우 상이한 환경과 문화 속에 살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유사성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나 타인의 행동에 대해 평소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는 수 많은 생명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생존기재에 따라 생존을 해나가지요. 그 중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언어를 통해 대화를 하고 무언가를 설계할 수 있는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였지만, 이 지식을 통해서 지구에 수 많은 생명들을 지배하고 있지요. 

지능을 세분화해서 파악해보면 첫 째 생명이 움직이는 근원적인 본성 지능, 둘 째 사회적으로 공감을 맺고 유대를 맺는 공감적 지능 셋 째 사물간의 상관관계와 이치에 대해 탐구하고 이해하는 지적 지능으로 나뉩니다. 이 중 세 번째 지능을 가진 존재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모든 생물은 본성적 지능인 첫 번째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공감하는 지능의 경우 개와 고양이 그리고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 동물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지능이지요.

인간 역시 영장류에서 진화한 관계로 침팬지와 유사한 사회적 관계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도서는 영장류로써 인간이 어떤 본능적 기재를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도서이지요. 


2.인간이라는 영장류

특히 일부 행동 방식과 관습들은 오로지 자유의지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다수 사람들이 비슷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딴 청을 피우는 것처럼 하는 행동,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면 눈을 떼지 못 하는 일, 돈 많은 남성과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여성을 선호하는 일 등등은 모두 무의식적 행동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영장류이기에 지니고 있는 기재들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만약 단순한 문화적 현상이었다면, 전 문화권에서 비슷한 유행이 퍼져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선호되는 이성상의 모습은 비슷한 모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단순히 세계가 통합화되었기 때문일까요? 이는 우리가 공통의 조상을 지닌 '영장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이라는 것은 단순하게도 비슷합니다. (물론, 때때로 예외적 현상들이 생겨나지만요.) 


3.영장류의 본성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말해 족벌주의는 쓸모 있고 훈훈한 것이며 대체로 옳은 것이다. 족벌주의는 우리의 본성에서 비롯한 것이며, 인간의 사회생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고 인류 문명의 발달에 놀라운 기여를 하고 있다.


영장류가 가지는 본성 이를테면, 친족 우선주의, 내집단을 만들고 따돌리는 행위, 수컷들 간의 힘겨루기 등등은 모두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모두 생존하기 위한 기제들이 발현된 것으로 과거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들이 생존에 유리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들이 대다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자제하고 선한 의지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기독교적 윤리의식을 은연 중에 따르고 있지만, 사실 본성은 그 자체로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같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자질들이 선한 것으로 정의되고 내려져 온 경우가 대다수이지요. 


4.인간의 행동은 영장류의 본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이메일 사용 방식을 통해 그들의 현재 지위와 지위 상승의 잠재력 등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의 이메일들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조만간 회사의 높은 지위에 오를지, 아니면 이메일을 대신 답변해주는 비서를 둘 가망이 거의 없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지적생명에 의해 창조된 위대한 생물이라는 믿음에서 기가막힌 우연을 통해 지능을 얻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는 관점은 그렇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조금은 과대 평가하기를 원했고 그랬을 때 지배가 정당화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근거로 해서 보았을 때 인간을 그렇게 특출난 생명으로 우대하는 것은 오만일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침팬지의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이죠.

여하튼 이 도서의 요지는 그러한 영장류적 본성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잘 이용해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자입니다. 으스대지도 주눅들지도 말고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지배관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찾아나가자는 것이죠. 



출처: http://pjw1307.tistory.com/459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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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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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혹은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제삼자들은 각자 나름대로 진실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을 찾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법은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어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디케의 눈 중.. 

우리가 진실을 알기나 할 수 있는 것일까?

유전자 감식은 20세기 초반에 지문으로 범인을 확인하는 방법이 알려진 이후 가장 획기적인 수사기법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 누명을 벗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유전자 감식기법이 일반적으로 활용되면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사건은 미국에서만 100건이 훨씬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강간, 살인과 같은 무건운 죄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죄수였다.


법(法)은 공명정대해야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죄를 지은만큼 응당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모두가 믿고 있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 않는 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추측해보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분석해볼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저의를 가지고 과거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 밤중에 바라본 범죄자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이 지난 뒤 잘 못된 결정이라고 보여진 경우도 다수 있습니다. 


죄인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애당초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 기 어렵습니다. 이는 우리가 법(法)이라는 잣대로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건의 정황상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며, 아무리 심증이 강하더라도 물증이 부족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형벌은 개인에 대한 것이지 사회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만일 판사가 흑인사회의 반응을 고려해서 두순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결정은 개인에 대한 처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옳은 것이 세상에 실현되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의(正義) 특히, 법에 있어서 정의란 무엇일까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목적일까요? 일벌백계로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죄하는 것이 법의 목적일까요? 범죄란 것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범죄자를 교화하고 사회에 속할 수 있게 만드는게 정의일까요? 


우리 헌법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 개개인 모두 그 자체가 목적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이는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그 사람을 교화해서 다시금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떄로는 우리가 바라보는 조금은 답답한 판결문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우리 법의 목적을 지켜나가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법으로 바라본 사건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로스쿨 교수나 학생들이 정말 진심으로 스칼리아 대법관을 싫어하고 경멸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때 창조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규정한 법률이 합헌이라는 황당한 주장, 공화당원이 시장으로 선출되면 시청 청소부까지도 공화당원이 차지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스칼리아 대법관만큼 탄탄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논리로 포장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칼리아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그의 판결문을 열심히 읽고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법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세상은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론과 창조론을 교과서에서 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법률은 창조론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속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믿으라고 했던 과거의 창조론에서 지금의 창조론은 그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진화론 역시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세상의 발전해온 과정을 모두 알고 있지는 못 하니까요. 우리 눈의 경우 너무나 복잡한 기관으로 다양한 기관들의 협업을 통해서 작동합니다. 최초의 단 세포에서 눈이 진화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자면, 눈의 역할은 하지 않는 눈의 중간 단계를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진화론에서도 심도있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진화론이 우리의 탄생에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하나의 가설일뿐이므로 창조론과 같이 다양한 가설을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은 응당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디케의 눈 기억에 남는 문구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왜 처벌하는가. 얼마나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보아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첫째는 죄를 저지른 자는 당연히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는 고전적인 시각이다. 처벌의 정도도 저지른 죄와 같은 정도여야 한다고 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시각이다. 이에 따르면 죄인을 벌하는 것은 정의의 명령이고 형벌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고 한다. 형법학에서 흔히 '응보형주의' 또는 '절대형주의'라고 하는데 '사형이 선고된 죄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집행해야 한다'는 말은 이런 입장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고전주의에 대응하는 입장을 '상대형주의'라고 하는데 형벌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선 일반예방주의라는 것이 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으 보여줌으로써 장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일벌백계', '시험 케이스'라는 말은 형벌의 이러한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다. 불법 금융피라미드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시민들의 고혈을 짜낼 때 검거된 범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잠재적 범죄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형벌의 본질에 관한 또 하나의 입장은 특별예방주의라는 학설이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교화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범죄의 결과보다는 범죄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교화의 정도에 따라 형량을 신축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453?category=697199 [타가의 투자공간]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의심의 여지도 없다.
하지만 범죄는 한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처벌도 마찬가지다.

미란다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피의자에게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미리 말해주지 않고 받은 자백은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든 아니든 간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판결은 권리의 인정을 넘어서 그것을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범죄자를 교화의 대상이 아닌 격리와 처벌의 객체로만 취급했던 과거는 미국에도 있다. ‘교화 불가능한 범죄자들‘을 수용했던 악명 높은 교도소 알카트라즈는 그러한 과거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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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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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지키는 나는 환상 속에 살지 않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내 능력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으로 움직이며 내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잘 압니다. 나의 약점을 부정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약점마저 보듬어 안고 갑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나의 가치관과 소망하는 바에 맞게 행동을 합니다.

- 본문 중 -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다

애고와 이고 그리고 초자아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생각하는 애고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 한 무의식의 지배를 받습니다. 초자아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 한 무의식이 의식을 감싸고 폭풍을 일으키지 않게 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동물적,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욕구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술이라든가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무장이 해제되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 한 무의식이 바라는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이론입니다. 인지되지 않은 90%의 무의식이 사실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는 것이죠.


소속감, 자존감, 자기실현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 소속해있으며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모습을 추구합니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등은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완벽주의자가 만드는 무의식의 상처

우리가 정해놓은 완벽주의적 롤 모델과 비교해 우리의 무의식은 상처를 입습니다. 나를 완전히 믿지 못 하는 무의식에서 공포를 느낍니다. 잃어버린 것, 내가 완벽하지 못 한 것으로부터 우리는 우울함을 느낍니다. 완벽해지고자 하는 마음에 아예 시작도 못 하는 망설임을 느낍니다. 이외에도 우리의 무의식은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서 상처를 입습니다. 


타인을 찾아나서는 무의식 - 사랑

인간은 타인을 끊임없이 찾아 나섭니다. 타인과 같이 소속되어 있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애착을 보입니다. 존재감을 느끼고자 조직에 소속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혼자있기 때문에 고독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기 때문이죠.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합니다. 누군가 불성실하게 행동한다면 그 근저에는 나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무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약속에 늦는다면, 누군가와 만나는 것을 껄끄러워 한다면 우리는 한 번쯤 우리의 무의식을 다시금 차분하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내가 추구했던 욕망과 바램들이 잘 못되거나 영향을 받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타인과 함께 하고자 하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각의 무의식들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조절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테니 말이죠.


자신감이 있으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남의 생각이나 느낌에 매우 신경을 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내 행동의 내비게이터가 되면 내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본문 중 - 


출처: http://pjw1307.tistory.com/435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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