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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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파워블로거나 파워 트위터리안인 학생들을 뽑아서 열정 챌린저니 청춘 서포터니 하는 이름을 붙여 주고 온라인 홍보 대행사 대신 쓰겠다는 거죠. 그편이 훨씬 더 싸게 먹히니까요. 아이디어도 더 참신하고. - 책중에서


대학생으로 <대외활동의 신>이라 불리우는 <신>은 그렇게 세상 이야기를 했다.

거창하게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몸으로 뛰어들어 알게 된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생의 다음 진로는 취업이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커다란 <관문>은 엄청난 통행료를 요구한다. 핵심 스펙인 학력,학점,자격증 등

기본 출발선이 뒤쳐진 지방대학생들에게 그나마 대외활동은 뛰어볼만한 수단으로 보였다.


두 시간 남짓 인형 옷을 입고 춤을 췄더니 땀으로 팬티까지 축축하게 다 젖었고 나중에는 다리가 풀리면서 눈이 저절로 감겨 왔다. 결국 신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책중에서


그렇게 노오력으로 뛰어든 결과는 어떠했을까?


의미 없었나고? 기껏해야 취업준비뿐인 것 아니냐고?

돈 많은 집 아이들이 헬기 타고 히말라야 가서 쿨한 스토리 만들 때

찌질하게 한국에서 고생만한거냐?

그렇게 던져지는 냉담한 세상의 시선에 대해 <신>은 뭐라고 답할까


단편이라 더 긴 이야기는 과도한 스포일이 될 것 같다.


학생에서 취준으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모습의 귀결은 소설책에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 <장강명>의 신작이다.


우리 삶은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팍팍해져갔다.

공장지대에서는 해고자가 입구밖에서 농성하고, 취준생 몰린 학원가에서는 지쳐버린 청춘들의 얼굴이 컵밥 먹으러 몰려나오고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오픈 행사할 때 이곳이 앞으로 또 얼마나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인가 걱정도 되고..


작가는 우리가 그렇게 스쳐갔던 공간들에 들어가 취재수첩 들고 한명 한명 붙들고 그들의 고통을 옮겨 적었다.


현수동 빵집 이야기 하나를 보자


동네빵집의 주인장 누구도 악인은 없었다. 퇴직해서 집안생계가 걸린 가장, 오랜 시간 빵굽기에 헌신한 기술자 등.. 


누구도 악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결국 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명분으로 나를 부추기는 존재들에 있는 셈이다. 프랜차이즈 업주들은 상인을 돕는다고 마케팅 기법을 화려하게 자랑하지만 결국 그들의 장사속인 셈이다. 더 열심히 일해라 더 늦게까지 일해라.. 희망을 가지고 노력을 해라.. 그렇게 부추긴다.


이렇게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은 빵집을 넘어서 대기업 입사시험, 아나운서 취준생들의 수백대 일 경쟁, 음악 스트리밍 순위판 등 곳곳에 있다.

그 안에서 각자 더 빨리 뛸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커질 뿐이다.


4년간의 발품이 담긴 소설집은 단편들의 모음이었다.

기자 출신 답게 심층 기사인가 하는 리얼리티 위주의 글이었다. 글솜씨 보다는 주인공들이야말로 내가 한번은 만나서 붙들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삶들이었다.

그 고통을 퍼올려 세상의 공감을 늘려가는 일이야말로 소설가의 책무구나 하고 다시 감탄하게 한다.

개인적인 희망은 <대외활동의 신> 등 취준생 이야기를 더 확대해서 <청춘 이야기>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세대간의 갈등은 커져가고 있다.

각자가 처한 고민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뒤에서 조종하는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아 줘야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해법이 나온다.

모든 여행의 출발은 아픔이다. 소설가의 손에 이끌려 느껴지는 아픔.. 

그렇게 출발이 일 전체의 반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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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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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0년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의 후폭풍 속을 항행하였다.

파도는 거칠었지만 국력과 리더십에 의해 각각의 좌표가 달라진다.


지금 보면 문제를 일으킨 미국만 멀쩡하고

나머지 지역들은 다 각각의 방식으로 내상을 입고 있다.


처음 위기가 났을 때 유럽의 지도자들은 비판과 더불어 고소해했었다.

하지만 금방 상황이 반전된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산업은 생각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 런던의 시티(금융중심지)에서는 많은 달러가 거래되고 있었는데 이들은 꽤 투기적인 거래에 적극적이었다. 미국의 투자은행만큼이나

이렇게 물려 있는 건 중국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제는 흔히 알게 된 패니매 등 준정부기관의 채권을 무려 500억달러 이상 보유했다.


이 대목이 되자 유럽과 중국 등 미국 바깥은 대형사고는 채무자 보다 채권자가 더 곤란해진다는 걸 깨닫고 불안해진다.


난장판을 수습하는 사령탑을 잡은 폴슨 미 재무장관은 우선 해외투자자들에게 미국이 돈을 떼먹지 않을것이라는 안심부터 시켰다고 한다. 특히 중국.

그리고 자국 은행에게 압박을 통해 달러를 집어 넣어주었다.

가만 보면 단순해보인다. 카지노 게임에서 충전 버튼 하나 누르면 왕창 코인 들어오는 듯한.

그렇게 한번 채워진 달러는 다시 흘러서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미국의 빠르고 거대한 아마 기괴하게도 보이는 이 조치들을 통해 미국 은행은 금방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연말에는 보너스도 챙겨가기 시작한다. 엄청난 욕을 먹었지만

중국은 거대한 부양책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해결사가 되어간다.

반면 문제는 유럽이었다.

금융산업의 크기가 나라마다 각자 달랐는데 일차적으로 문제가 된 나라는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였다. 둘 다 영국을 벤치마킹해 금융을 기형적으로 키웠고 혜택을 누리다가 직격탄을 먹은 셈이다. 

동구권의 구공산권, 소련에서 분리된 공화국 등 각 나라마다 사정은 다 달랐는데 꽤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결국 그리스에 와서 폭발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미국이 사고를 빨리 쳤지만 극복도 빨리 했고

특히 IT산업의 소셜혁명으로 FANG을 부상시켜나갔다.

반면 유럽은 금융의 타격이 고대로 제조업으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도 유럽이 전반적인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유럽 리더십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드러낸다. 이상주의적 연합체이지만 빠르고 강력한 문제해결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과정 하나 하나가 꽤 디테일해서 감탄스러웠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서는 소략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해서 언급해준 점이 고마웠다.


당시 한국은 꽤 많은 외환보유고와 IMF 극복경험이 있었지만 1차적으로는 급하락을 경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KIKO 사태가 나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무너졌다. 은행은 여전히 돈을 벌었다는 건 미국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렇게 세계 전체에 불어오는 폭풍을 진원지부터 주변을 넓게 살펴 준 저자 덕분에 그동안 이상스럽게 생각했던 많은 문제가 간명해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중요한 통찰에 도달해간다.

대공황의 자식이 히틀러와 세계대전이라면

2008 금융위기는 트럼프와 지금의 패권전쟁을 만들어냈다.


근래 읽은 책 중에 가히 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친구에게 추천했더니 벽돌책이구만 하는 무게감 있는 답변이 온다.

하지만 세계의 앞날이 궁금한 리더라면 꼭 읽고 가기를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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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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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하면 뭐가 떠오를까?


영화 인디아나 존스?

땅 파고 있는 인부 옆에서 렌즈 들여다 보는 학자..


나는 무엇보다 슐레이만이 떠오른다.


일리아드에 대한 숭배가 결국 트로이 발굴로 이어지면서 큰 족적을 남겼다.

거기에는 막대한 돈을 대는 재정적 우위와 과학,역사지식 등이 종합되어 작용하였다.

돈도 힘도 지적 우위도 모두 갖춰져야 하는 소위 <제국의 학문>인 셈이다

그 결과물들은 런던의 대영박물관,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등을 채우게 된다.


제국과 변방의 격차는 크다.


이렇게 발전하게 된 고고학의 강점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우선 고고학은 문자 바깥의 세상을 알도록 도와준다.

대표적인 예가 카자흐스탄의 황금인간이다. 얼마전 한국에도 전시가 있었는데 유목민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준다. 한국이 금관으로 자랑하지만 아예 몸 전체를 황금으로 두른 것이니 가치를 따지기 쉽지 않다.

이렇게 전 역사를 볼 때 문자를 가지고 기록을 남긴 집단은 소수였는데 그들의 삶을 유적으로 추정해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저자는 그런 예들을 사막에서 발견한 공주 미이라 등등 하나 하나 소개해주면서 독자들의 흥미르 를 일으켜준다.


고고학의 또 다른 무기는 과학이다.

생물,물리 등 과학지식을 활용해서 작은 실물 소재지만 이의 해석을 크게 확장시킨다.

작게는 무덤에 배장된 코린도(월남국수에 들어가는 고수)의 용도가 모기 퇴치용일 수 있다고 저자의 러시아 발굴경험을 빌어 이해시킨다.

크게 응용되는 예는 수도 없이 거론된다.


이렇게 문자를 넘어서 과거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고고학의 위력은 감탄스럽다.

언뜻 생소한 주제인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어 이렇게 연결되구나 하며 술술 이어지는 독서가 된다.


여기에는 저자 개인의 역량과 노력도 큰 역할을 한다.


강교수는 다채로운 지식을 섭렵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토토로의 등장 인물이 사실 고고학자였다는 화제, 또 다른 작품 <붉은 돼지> 모델 비행사를 거론하면서 비행사들의 곡예 비행 과정에서 항공고고학의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는 일화도 재밌고 유익하다.


이렇게 흥미로운 고고학이지만 출발에서 본 제국과 변방이라는 격차는 여전히 유념해야 한다.

일제가 고고학 지식을 독점하느라 해방 직후에도 한국에는 고고학 발굴 인력이 전무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박물관 전문가를 1년여간 남겨 기술을 전수 받게 된다.

그 전에 발굴된 자료들이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지만 해석하는 눈이 약했던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가 최근 제국과의 격차 문제는 다시 발생한다. 

금융위기 이후 굴기하는 중국은 역사공정을 크게 일으켜서 주변국들의 반발을 샀다.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의 역사 리라이팅 작업에는 특히 홍산문화라는 고고학 발굴을 기반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만주라는 거대한 영역은 과연 중국적이었을까?

우리는 또 만주에 대해 충분하게 알고 있는건가?

혹시 물길이라고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말갈과는 다른 종족으로 후일 청을 건국하는 여진으로이어진다. 이런 세세한 차이에 대해서 잘 읽어내는 서술은 부족하다.

저자가 국내에서 석사까지 하고 박사는 러시아로 간 덕분에 연해주 지역의 다양한 유적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다.

가령 발해가 과거 고구려와도 다르게 연해주에 지배영역을 만든 이유도 흥미롭다. 인삼 모피 등 경제권과 관련 많다는 주장인데 문외한인 내게는 꽤 신선하게 들렸다.


고고학이라는 낯선 학문에서 이렇게 많은 흥미를 뽑아낼 수 있었는지 내게는 정말 감탄스러운 독서였다.

저자의 솜씨와 노력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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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허남린 외 지음, 국립진주박물관 엮음 / 푸른역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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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을 가면 임진왜란에 지어진 왜성이 있다.

일면 선진리왜성이다.

한때 높았을 누각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일본 본토에서 보는 독특한 양식으로 기반이 축조된 성의 기반만 보인다. 그래도 문짝을 만들어 성 모습을 유지하려고 관리하고 있다.

이 성의 주인은 큐슈 가고시마 시마즈 가문으로 이 가문이 메이지유신의 주역이다 보니 일제시대는 사적지 겸 일본인들의 관광지였다. 벚꽃이 가득한 모습이 지금의 오사카 성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1598년 이 성 바깥에서 명나라 군대와 격전이 벌어져 명군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위로하는 묘 하나가 덜렁 별로 관리되지 못한 모습으로 놓여 있다.

시마즈의 경우 이 전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압승을 거둔 덕에 이후 일본 패권전쟁에서도 나름 상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전투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도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전투에서 보듯 

정유재란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었지만 국제전으로 올라가버렸고 덕분에 

조선 말고 명,일이 보는 주요 전투는 우리 생각과 다르다.


전북 남원성 전투는 일본의 압승으로 이후 전라도 지방이 초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몇 달 뒤 충청 직산 전투는 명이 일군의 북상을 저지한 주요 전투였다

울산성 전투는 가토를 저격하려는 명-조 양군의 돌격이었지만 노력 대비 성과가 적었다.


이렇게 조선이 참여하지 않은 전쟁에 대해서는 이땅의 역사는 관심이 매우 적다.


그럼 하나 하나 전투 말고

임진란 동안 명과 일본이 쓴 총비용은 얼마였을까?

이를 조선의 GDP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질문이 돈으로 넘어가면 더더욱 풀기가 어려워진다.


이 책에서 보면 명군의 비용은 최소 800만량, 많게는 2000만량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그 돈이 아니라면 군대도 없었을 것이고 일본을 막아내는 승전도 어려웠을 것이다.

쓴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은 보다 자유롭게 사천,울산을 위시한 왜성을 거점으로 남도를 수탈해나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조선의 GDP는 추정하기 쉽지 않지만

당시 명이 군대만 보내면 안되냐고 하면 조선에서는 절대 먹일 식량이 없다고 호소한다.ㅅ

전쟁 초기에 실제 명군대가 왔다가 더 이상 진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유는 식량 부족이었다.

전쟁터에 그들이 은을 들고 왔는데 이를 교환할 식량 자체가 없었다.

그만큼 여유 식량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전투지 까지 식량을 날라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급료가 1이라면 식량구매가 1, 운송이 다시 1 이상이 붙는 구조다. 


왜성이 모두 바닷가에 자리해서 본토에서 식량을 날라오기 쉽게 해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덕분에 일본 또한 적어도 명의 반 정도는 비용을 쓰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합치면 총 3000만량이 되는 셈이다.


이는 당시 일본이 전국시대를 거치며 개발된 거대한 은광들이 있었기에 감당 가능한 비용이다.


전쟁은 결코 우리의 영웅이 활약한 덕분에 우리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다.

배후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여되고 일본의 야망과 명의 패권 유지 노력이 맞물려 밀고 당기다가 어느 순간 종결된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힘의 대결 과정에서 조선의 민낯은 어떠했는가?

더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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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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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지점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 

무려 5억 엔을 신용대출 해준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지점장 아사노는 모든 책임을 쓱 융자과장 한자와 나오키에 떠 밀어 버린다. 알고 보면 억울한 노릇이다. 지점장 스스로 우수 지점상 받겠다고 갑자기 신규 거래선을 뚫고서 대출을 위한 긴급품의를 올리라고 닦달했던 것이 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모든 책임을 융자과장 한자와의 부실 검증으로 몰아간다. 공은 위로 잘못은 아래로 내리는 것이 조직의 생리지만 은행은 더욱 심하다. 다들 반복적이고 비슷한 일을 하기에 평가가 중요하고 지점에서는 지점장이 절대 권한을 쥐고 있다. 거기다가 지금 지점장 아사노는 인사과 출신으로 회사의 엘리트코스를 밟아왔기에 연줄이 많다. 덕분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느라 영전도 시켰는데 역으로 밉보이면 좌천이라는 칼날을 들고 위협해 들어온다.


한자와 입장에서 이대로 눌려서 경력을 끝장 낼 것인가?


천천히 자신이 은행에 들어와 여기까지 걸어온 길을 반추하게 된다.

입행은 88년 이었다. 극장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이웃집 토토로>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었다. 사회는 한층 달아 오른 수출경기와 환율에 힘입어 거대한 거품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토토로에서 주인공들이 하늘을 날아가듯이 돈이 넘쳐나는 시대였다. 그 중심에서 사회로 돈을 쏟아내는 은행은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막 대학을 졸업한 한자와의 동기들은 그렇게 금빛으로 빛나는 세계 속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때가 정점이었다. 이후는 그냥 내리막이었다. 버블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거대한 부실채권 처리에 진을 빼며 2-30대를 보내야했다. 대형 은행들조차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다보니 이리저리 합병이 되었다. 조직의 위기 속에서 은행은 자기 생존에만 급급했다.


“날씨가 좋으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다. - 이것이 은행의 본모습이다.“ - 218페이지


최후까지 믿을 수 있는 신용의 디딤돌이 아니라 비가 오면 즉시 우산을 빼앗는 대금업자의 모습이 바로 은행의 몰골이 된 것이다.


몸 담고 있는 은행 조직의 위상 추락은 구성원들에게 막바로 영향을 준다. 위로 한없이 높이라는 청춘의 꿈은 위축되어 이제 임원은 커녕 부장 아니 그것도 안되면 과장이라도 좋으니 회사만 붙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조차도 잡지 못한다면 관계사 전출이라던가 은행밖으로 나가서 위축된 전직 은행원으로서 소시민적 삶으로 내려가게 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은행밖의 왕년의 은행원은 사실 별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점을 작가는 아주 세세하게 강조해준다.


“결국 우리 은행원의 인생은 처음에는 금도금이었지만 점점 금이 벗겨지면서 바닥이 드러나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녹이 스는 것일지도 모르지 - 331페이지


위로부터의 압력이 버거운 이 순간 집에 사정을 털어놓으니 되돌아 오는 반응이 가관이다. 아내는 “아무리 못해도 부장은 한다며”라고 질책성 말을 쏘아 붙인다. 협력은 안되더라도 공감과 위로를 기대한 내가 잘못인가?


한자와는 이제 정말 기로에 서 있다.


밟혀서 밀려날 것인가 아니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아갈 길은 치받고 버텨내는 것 뿐이다. 원래는 사람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믿지만 이 대목에서 순순히 지점장의 출세가도를 위한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냥 버티는 것이 아니라 두 배 심지어 열배로 되갚아주겠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발 한발 문제를 찾아 나선다. 산 같은 전표 더미를 뒤지고 부도낸 회사 사장과 연결된 사람들을 헤집으면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탐구해간다.


소설을 따라가보면 은행이라는 조직의 생리를 너무 잘 그렸다는 감탄이 든다. 알고보니 작가는 전직 은행원이다. 은행이 막 추락해가는 시점에 저자 이케이도 준은 젊어서의 재능을 살려 작가의 길을 걸었다. 추리소설로 먼저 란뽀상을 수상하고 이어서 나오키상까지 거뭐진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나미야 잡화점>의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슷한 경로다. 덕분에 자신의 체험에서 나오는 리얼리티에서 출발해 추리소설의 치밀한 문제해결의 흥미로움을 보여주고 끝까지 따라가보면 인간이기에 느끼는 감정의 순화까지 안겨준다.


그럼 왜 지금 이 소설일까? 일본에서 처음 나온 2004년과 비교하면 약 15년의 격차가 있다. 소설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소설 속에 담긴 당대 일본사회의 단면은 지금 한국에게도 고스란히 포개져온다.


연초에 <수축사회>라는 책이 공감을 많이 얻었다. 한국도 이제 성장에 대한 기대보다 수축에 대한 대비가 우선이 되간다.


조직은 성장이 줄어들면 줄어든 자리들을 놓고 위와 아래, 옆과 옆이 다툰다. 돈 앞에서 염치는 사라지고 경쟁자는 어떻게든 밀어내야만 각자의 줄어든 몫이라도 건질 수 있게 된다. 공은 위로 과는 아래로라는 조직의 생리는 사회 전반의 운영원리가 된다. 갑질은 어쩌면 너무나 편한 수단이다. 내 문제를 다 밖으로 밀어내면 되니까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착하게 살면 손해가 된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배움은 성선설 기반이다 보니 정작 중요한 생존술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황스럽게 어어 하다보면 확 밀려 버린다. 그 억울함은 어디에대가 해소할 것이고 누가 풀어줄 것인가?

자 이 대목에서 <한자와 나오키>의 진면목이 나온다. 당한 만큼 갚아주라. 절대 당하고만 있지 마라. 요령도 이야기한다. 상대가 엘리트인 척 할수록 사실은 샌님일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팩트와 논리로 무장한채 반박하면 의외로 당황하며 제풀에 말문이 막힌다고 한다. 어쨌든 내가 옳다면 절대 부당한 대우을 감내해서는 안된다.


“열배로 갚아줄 거야. 그리고 .. 짓눌러버릴 거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 336페이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냐고?


소설 속 한자와가 보여주는 치밀한 추론, 주변의 협조를 끌어내는 협업력 그리고 무엇보다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답이다.

더 세세한 건 소설을 따라가며 하나 하나 보물들을 건져가며 자신의 무기고를 채워나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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