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사 분들의 강의를 연달아 듣게 되는 기회를 가졌다.

다들 쟁쟁한 분이지만 모아 놓으니 어쩔 수 없이 서로 비교가 된다.


A라는 분은 강의안이 몇 년 째 그대로 였다.

바뀐 것은 강의 스킬.

무대를 넓게 활용하고 동작을 활발하게 하고, 청중의 반응은 좋았지만

뭔가 아쉬웠다.

하나의 키워드로 수년을 돌아다닐 수 있다면 분명 중요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강사는 자신이 차지한 지위들을 강조했다.

무슨 무슨 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높은 분들에게 자문을 하고 있다 등.

더해서 모 유명 대학의 입학사정관이라는 점도 은근히 내비친다.

권력은 더해지지만 여전히 강의안은 그대로다.


반면에 나이드신 오래된 강사님, 노석학께서는

아픈 몸에도 남다른 모습을 보이셨다.

지금 까지 했던 이야기 말고 다른 걸 하고 가겠다고 하면서

쉬지 않고 사람의 관점을 바꾸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오래전 들은 내용도 있지만 신선한 이야기도 많았다.

한 마디로 집념이 느껴졌다.


나이 들어서 안불러준다며, 나이탓을 하는 분을 많이 본다.

콘텐츠 업계에서 멈춤은 곧 정체,퇴보다.

경쟁자는 꾸준하게 나오고 경쟁은 계속 치열해진다.

강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꾸준히 자기 변화를 주는 것만이

오래 오래 불려가는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면 나이탓하는 건 우습다.

대가가 대가인 것은 나이를 숫자로 부를만큼의 자기 변신 노력이 꾸준하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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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새로운 단어를 하나 배웠다. 
공주라는 단어다. 
성에 머무는 공주가 아니라 공부하는 주부의 약자라고 한다. 
이들이 도서관에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 오늘 저녁 네트워크라는 주제로 장시간 토론을 했다.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더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면 한층 두뇌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얼마전 들었던 건강 강의에서 몸의 만성적 피로의 중요한 원인 하나가 두뇌의 피로라고 한다. 유태우 박사님에 의하면. 
두뇌는 왜 피로할까? 스마트 기기의 사용에 따른 정보 입력은 과다해지지만 막상 이를 적절히 정돈하거나 쏟아내는 일이 힘들어질 때 발생한다. 

정돈과 쏟아냄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양한 이들과의 토론이었다. 
낯선 이의 목소리는 나의 견해를 확고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맹점을 보완해주기도 한다. 어쨌든 정돈이 일어나고 머리는 지적 쾌감과 함께 시원해진다. 

좋은 공부는 바로 머리와 몸을 살리는 힐링인 것이다. 
공주들은 바로 이 힐링의 비법을 점점 터득해가는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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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구냐를 설명하려면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는 방법이 있다.


내가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중 몇 몇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 중에서 큰 인물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크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되도록 그런 인물들을 잘 골라내는 힘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좋은데, 나랑 친한데.. 이런 기준으로는 약하다.
정말 제대로 대박을 낼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야만 사업이 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사람을 알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역량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역량은 있어도 감성이 부족하면 주변에 사람을 많이 모으기 어렵다.
가령 이익을 놓고 가름을 할 때 너의 사정을 보니 최근 어려웠지, 그러니 좀 더 
가져가라라고 말 할 줄 안다면 대인이다.
하지만 규칙대로 고스란히 1/N하자고 들면 중인이다.
네 것까지 달라면 하인이다.

고객을 만나는 장면이 진실의 순간(MOT)이라고 해서 기업체는 매우 중하게 여긴다.

마찬가지로 큰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가 MOT에 어떤 모습을 취하는지 알아야 한다.


미래의 사업에 대인이 필요한 데 굳이 소인들 모아놓고 사람 많다고 자랑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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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SF 작가들은 대부분 비관론자라고 합니다.

영화도 미래의 현란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안에 놀라운 비밀을 숨겨 둡니다.

그 비밀은 대체로 관객의 상상을 넘는 뒤집기 한 판이죠.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매우 기계화된 미래세계입니다.

남과 녀가 나옵니다.

녀는 BOSS로 본부와의 콘트롤, 남은 톰 크루즈가 분장한 잭인데 테크니션이라고 지상 관제.

외곽은 드론들이 역할을 합니다.

휙 날라다니며 무기를 쏘아대는 막강한 기계죠.


드론이 쏘아대는 대상은 보통 외계인 적들입니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던 주인공 잭은 어느날 미묘한 문제와 부딪힙니다.

외계에서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나온 인간들을 드론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로봇헌장에도 나오죠. 인간을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여기서 의문을 가지고 드론을 막아서서 한 사람을 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비틀어져 전개됩니다.


이 대목에서 나오는 기억의 망각은 토탈리콜에서 본듯한.

꿈인가 생시인가는 장자에서 본 듯한.


혼란 속의 관객에게 힌트가 하나 주어집니다.


오딧세이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을 들추어냅니다.

호머의 오딧세이였던가?

고향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 곳곳을 10여년 헤메고 다녀야 했던 바로 그 남자가

머리에 지나가겠죠.

그렇지만 현대 과학의 성취로 우리는 또 다른 오딧세이를 알고 있습니다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라는 걸작이죠.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바로 HAL입니다.

여기 까지 이야기하면 이제 결말과 맞닿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코드는 희생과 재생입니다.

이건 매우 기독교적인 관념이죠.

죄,대속,재생.

교회를 다니시거나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관념들이죠..


이 모두를 꼴라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오블리비언입니다.


끝나고 나가는데 누군가 찬반이 엇갈린다고 하더군요.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단조로운 전개 이외에 우리에게 생각할 주제를 준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드론이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이 과연 올바르냐고 영화에서 물으면 당연 아니라고 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상황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무수히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개발한 전투용 로봇들은 이 지역들을 누비며 새로운 전쟁을 선보이죠.

미국 본토에서 안전한 공군기지의 조정실에서 움직이면 비행이 이루어지고 무기가 날라가고 적은 죽어 나갑니다.

영화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종교가 다르다 이념이 다른 인간을 우리는 혹여 괴물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이 세계가 둘로 나뉘어 한쪽에는 기계의 헤택을 입고 이를 방패삼아 편안함을 누리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계들에게 공격당하는 불운한 피정복민의 설움이 가득한지..

그런 고민을 해보면서 극장을 나왔습니다.

이 꿈은 정말 옳은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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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지인이 뮤직비디오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뜨지 않은 걸그룹 이야기라는 제목이다.

아이돌이 하나 만들어지기 위해 멤버들은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등용문은 매우 작다.

약간은 그 문을 넘어 대박이 나는 성공하지만 나머지는 간발차이로 그냥 묻혀버린다.

그 문을 넘지 못한 이들에게 정말 허탈한 순간이다.


예전의 음악은 이렇지는 않았다.

얼마전 쎄시봉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가수들의 목소리가 그 시절 향수와 함께 인기를 끌었다.

오래된 가수의 힘의 원천은 가창력이었다.

먹고 살기 정말 힘들었던 시절 음악에 미쳐서 있던 그 시절 가수들의 노래는 생명이 길다.


반면 현대의 아이돌은 너무 많은 걸 요구 받고 있다.

춤,노래,미모 거기다 어학 등.

한 마디로 멀티플레이어다. 못하는 것이 없고 현란하게 만드니 사람들이 놀랄수 밖에 없다.

저걸 다 어떻게 하지 라는 놀라움을 주려다 보니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다.

개인들은 피나는 노력, 키우는 회사로서는 엄청난 자금.


축구에서 히딩크가 요구한 멀티플레이어 스타일은 장점도 있지만 대가도 치러야 한다.

아이돌의 약점은 지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피나는 노력을 평생할수도 없고 브라운관에서의 여자들 수명은 짧다.

반면 가창력 하나를 잘 키워나갈 수 있다면 꾸준히 발전하고 활동하는 명가수가 되지 않을까?

이선희의 노래가 지금도 마음을 짠하게 하듯이.


인위적인 것이 꼭 아름다운가?

인간에게 유용하다는 기준이 자연으로 보아도 그러한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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