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를 걷다
김수종 지음 / 리즈앤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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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영주를 다녀왔다.

영주의 매력은 전통문화의 깊이에 있었다.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뿌리였다. 소수서원은 조선왕조의 성리학을 가르치는 서원의 효시였다.

불교와 유교의 바탕이 연달아 영주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충분히 이 고장 영주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된다.

지리적 배경을 살펴보면 소백산맥을 막넘어서 안동과 나란히 신라땅의 최일선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중국으로부터 오는 문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이를 소화하며 경상도 권역으로 내려보내는 교통로 였을 것이다.


먼저 찾아가 본 곳은 부석사였다.

학교나 문화강습에서 하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이야기를 들었기에 정말 오늘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직접 찾아 본 부석사는 과연 가볍지 않은 불교 도량이었다. 

전체로 큰 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참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로부터 들어가는 입구의 산길, 하나 하나 올라갈 때마다 건물들의 모양이 달라지면서 만들어내는 시선의 다양함. 뒤돌아볼때 반대편으로 보이는 산들의 오르내리며 만드는 풍광은 정말 풍요로웠다.

무량수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서 시험 문제의 단골 항목이었지만 요즘에는 부근의 봉정사와 다투고 있다 한다. 건물이 서향으로 되어 있고 부처 또한 서향으로 모셔져있다. 크기도 만만치 않은데 건물과 부처 모두 국보다. 

현판의 글씨는 단아하다. 공민왕이 여기까지 피난와서 써준 어필이라고 한다. 그의 학식과 마음을 직접 옅볼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몽골피가 꽤 섞인 혼혈왕으로서 그는 징기스칸의 후예지만 왕씨로서의 자각을 하며 고려를 개혁해나간 명철한 군주였다.

하지만 세가 따르지 않아 홍건적의 난을 맞아 멀리 여기까지 피난왔었다고 하니 신라에서 시작해 고려의 쇠락과 조선의 등장까지 다 내려다보는 부석사의 부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부석사의 이적은 한 둘이 아니다. 창건신화가 날라다니는 돌 마치 라퓨타를 보여주는데 우리에게는 스위프트는 없지만 선묘전설을 만들어 멀리 일본까지 보냈다고 한다. 과학의 영역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로 된 용이 바닥에 있다고 하고 후일 실학자가 와서 직접 부석을 측량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신비함을 뒤로 하고 부석사를 내려온다.

마지막까지 무량수전에서 멀리 산들이 포개져 만들어내는 풍광을 가슴에 담아 본다.

탐방 내내 안내하시는 해설사께서는 참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셨다. 

야단법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지? 밤에 불단에 모여 법회를 열고 사람들이 모이는 활동이었다고 한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도 미처 정확히는 몰랐는데 일깨워준다.

그것 뿐인가 4계절,하루 24시간 중 가장 아름답게 보여지는 부석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여주고 해설해준다. 참 대단하다는 소감이었다.


소수서원도 나름 의미 깊었다.

서원을 만든 주세붕은 작게 시작했지만 점점 키워갔다. 그가 영주에 인삼농사를 보급했다는 점도 같이 주목해야 한다. 무항산 무항심, 즉 경제적 기반을 키워야 공부하는 학당도 커져갈 수 있게 된다.

소수서원이 놓인 자리는 명당이라고 하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단종 복위에 나선 영주사람들(당시는 순흥부)을 세조가 몰살시킨 참혹한 공간이었다. 그들의 피가 서원 앞을 흐르는 강물에 그득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영주는 유불의 뿌리만 가진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섰지만 그 대가가 비참했던 셈이다.

역사를 반추하며 걷다 보니 배가 고파온다.

지인의 소개로 간 영주의 식당의 메뉴는 갈빗살이었다.

서울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가격, 그렇지만 산촌에서 키운 소를 바로 끌어대는 고기맛은 정말 훌륭했다. 거기에 더해 마침 봉화에서 열리는 송이축제에서 사온 송이들이 더해지고, 손님맞이로 육회를 더해주었다. 육회는 정말 지금까지 먹어본 각종 호텔이나 부페의 육회에 비해서도 월등했다.서울에서 왠만큼 해도 바닷가 포구의 활어회가 훌륭하듯이 고기도 매한가지였다. 쉽게 잊기 어려운 맛의 뿌리 또한 인심이었다. 정직함으로 수십년 장사한 주인 아주머니의 푸근한 마음이 곧 영주를 대표한다고 넘겨 짚었다. 너무 오버인가? 

하나 더 하면 사과샐러드에 자꾸 손이 갔다. 영주는 사과의 대표산지로 전국 수확량의 14% 정도 차지한다고 한다. 마침 부석사 앞에서 파는 사과가 한박스에 1만원인데 깜빡 사지 못헀더니 안타깝게도 놓쳤다. 서울에서 시장을 찾아가봐도 가격은 가볍게 두배를 넘는다. 이런 둔함이라니..


영주와 지척인 안동으로 여행은 이어졌지만 마음에 깊이 한국 문화의 깊은 뿌리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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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11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민왕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현판과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놓여진 건물들이 참 조화롭습니다^^

사마천 2016-10-1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지만 멋진 곳이더군요. 국보4개가 가득채운. 주변에 강추입니다. 역사에 열정을 가지신 겨울호랑이 님이시라면 배움이 더 크시겠죠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1
랜섬 릭스 지음, 카산드라 진 그림, 류이연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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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버튼의 환상적인 상상력, 뼈 있는 메시지. 탄탄한 스토리텔링

아주 아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많이 이야기하면 스포일이라.. 


처음은 약간 느린듯하지만 다 복선을 잘 깔아나가기 위한 내공이고..

영화는 무려 2시간이 넘고 뒤로 가면 다 써먹는 장면이니 눈여겨 보아두시기를 주지시켜드림.


주인공은 마트에서 알바하는 대학 청년입니다.

장소는 플로리다. 알고 보니 원작자도 플로리다가 집이더군요.

요즘 88만원세대, 미국도 매한가지네요.

살인적 대학등록금 대려면 마트에서 알바해야 하는데, 그러다 여자 동급생을 만납니다. 그런대 무시. 솔직히 그렇겠죠. 여기나 거기나 수저로 계급따지는데.

그러다가 모험의 세계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결말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짐작은 하실거고.. 

주인공이 뭔가 해내고 변해져 있어야하곘죠. 그건 주인공이니..

이건 당연한 이야기인데,

팀버튼이라는 감독이 어떻게 여기까지 황당한 이야기를 잘 설득시켜가느냐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혹 한국의 헬조선 세태에 너무 비관하시는 많은 분들

영화 보면서 쾌감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마트보이, 환상세계 속에서 뭔가 깨닫다.


저의 이 영화 축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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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시진핑을 말한다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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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의 사드와 박근혜에 대한 날선 비판이 워낙 생생해서 저자의 말을 고스란히 따왔다. 나의 첨삭은 한 줄도 없고 인상깊은 부분만 따온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통쾌하고 공감 가서 같이들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하는 마음이다.

--- 이하 김용옥 박사의 글

현대사는 진행중이라서 객관화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확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현대사를 기자류 인간들의 현장르뽀에만 맡겨두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상가에게 매우 무책임한 짓이다. 현대를 알아야만 현대에 대한 명료한 비판이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비전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이 제아무리 가변적,유동적 위험성을 내포한다 할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현대사에 대하여 의식있는 판단을 형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으로 판명된다면 끊임없이 수정을 가해야 할 것이다. 역사란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사실의 나열만으로는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란 사실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사실의 선택이 엮어내는 논리의 체계이다. 

클린턴 대통령만 해도 임기 말년에는 북한을 친히 방문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의 발전가능성을 원천봉쇄하려는 현명한 대책을 수립했었다. 클린턴의 폭넓은 평화외교전략이 계승되지 않은 채 미국정치판도가 판갈이 된 것이 한반도의 불행이라면 불행일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그의 정책기조와 무관하게 아시아의 정세에 대하여 매우 무지하고 소홀하다는 느낌을 우리로서는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약소국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면서 국제적으로 협상의 가치를 지니는 패를 확보해주기 때문일 뿐이다. 

여유가 없는 약소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매달릴 수밖에 없는 마지막 '깡다귀'에 불과한 것이다. 알고보면 가련한 약자의 몸부림

북한이 뭐가 그토록 대단한 것이 있는가? 북한의 예술,학술,과학,경제.. 
유일한 출구가 핵무기의 위세밖에는 없는 것이다. 오 ~ 가련한 광대여!

기실 그것은 위세가 아닌 허세이다. 왜 그토록 위험한 허세를 부리는가? 약자의 허세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이다. 어찌 북한이 원하는 것이 전쟁일 수 있으리로? 20세기의 초반의 세계사를 누빈 일본 같은 강국의 군국주의도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데, 하물며 북한이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감행한다면 며칠의 허장성세는 부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자신의 패망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핵무기=허세카드

디퓨즈
북한이라는 폭탄을 디퓨즈시킴으로서 근원적으로 평화와 상생의 논리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한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케리의 헛걸음이 헛걸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우리 역사의 비극이 항존한다. 

그런데 이건 웬 아닌 밤에 홍두깨인가? 박근혜정부는 케리의 참변이 있고나서 13일만에(2016년 2월10일)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싸드 긍정 검토

박대통령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규탄하는 감정논조 일색의, 판에 박힌 내용 없는 국회연설을 했다. 아무리 잘 봐주려고 연설내용을 뜯어봐도 합리적이거나 감동적인 진실을 전하는 언사는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내 상식으로는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해야 할 레토릭들은 아닌 것 같다. 

우선 개성공단은 정치적 이념이나 정부의 통치행위의 수단으로서 임의적으로 열고 닫고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민족화합을 향한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남북의 소통과 협업의 현실적 채널로서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어감년서 마련한 현대사의 공든 탑이다. 이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아무런 토의과정이 없이 갑자기 무너뜨린다는 것은 정치행위의 상궤를 벗어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개성공단에 모든 삶의 땀방울을 송두리째 남기고 온 기업주들의 가슴에는 지금도 피멍이 맺혀 분노가 끓어오르리라! 어찌 탁상공론의 필기 쪽지 하나로 그런 국가대사의 진로를 결정 지우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일으킬 수있으랴! 화해와 상생의 장을 하루아침에 군사대결과 상살의 장으로 바꾸다니 

대한민국에는 정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구속하는 공동의 결정을 내리는 합의과정이다. 그것은 반드시 대한민국 공민의 공동선을 위한, 그들 자체의 문제의식과 결단에 의한 프로세스가 되어야 한다. 

사드를 설치할 돈으로 김일성대학,김책공대,여타 북한대학의 학생들 수천 명을 미국에 유학시키면 어떨까? 그래도 북한이 미사일을 쏠 생각을 할까? 북한을 적대시하고, 그것을 빙자하여 대중,대러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하는 미국의 전략은 세계사의 조류에 역행하는 군사주의적 패권확대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드는 근원적으로 악이다. 

무슨 일이든지 당신에게 베풀어지기를 원치 않는 일이거든 당신도 남에게 베풀지 마시오

힐러리는 우리나라 남북문제에 관해서도 대결구도중심의 매우 천박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의료문제 하나도 그녀는 확고한 보편적 선의지를 실현하지 못했다. 미국의 공교육은 죽어만 가고 있고, 도덕성은 날로 상실되어가고 있고, 경제는 금융사기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과연 인권을 운운할 수 있는가?


시진핑이나 메르켈 총리와 같은 인물을 쳐다보면서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회주의 사회의 명암을 실천적으로 체험했다는 사실에 있다. 맑시즘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것이 지향한 보편적 휴매니즘의 가치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변용을 거쳐 생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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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영웅전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로마 군주의 거울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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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당 플라톤아카데미의 수장인 김상근 교수가 <플루타크영웅전>의 해설한 이 책은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지금 한국의 인문학은 열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열탕으로는 기업의 인문학강의 시장이다. 잡스의 아이폰 이후로 인문학 이름 붙은 각종 강의가 줄줄이 이어졌다.

냉탕은 대학의 인문학과 구조조정이다. 교육부의 인원감축에서 대학들은 칼 뽑기를 취업률 기준으로 미흡한 인문학과들을 줄줄이 폐쇄하고 있다.

이 모순은 왜 발생하는가?

여기에 대해 김상근 교수는 인문학의 유래와 연혁을 길게 기술하면서 풀이에 도전해본다.

김교수의 말에 의하면 인문학은 페트라르카로부터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지 않고 직접 인문학자들을 통해 교육시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술을 신학에 접목하여 삼단논법의 기교를 가지고 종교라는 불변의 진리의 과업에 매달리게 했다. 반면 상인들은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새롭게 변모되는 당대의 사회와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고전에 직접 부딪혀나가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대학이 고답적으로 원리에 매달릴 때 인문학은 대학 밖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스스로 인문학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청년실업을 부르는 사회의 침체 속에서 고등교육의 존립의 의미를 스스로 증명하는가? 이렇게 물어갈 때 쉬운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내 주변의 대학교수들도 소수 최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제자들의 취업난에 근본적 답을 주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역시 김교수구나 하고 감탄을 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본인이 직접 해설에 나선 영웅전 이야기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특히 영웅전의 하이라이트인 캐사르 대목에 있어서 시오노 나나미를 제국주의자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크도 캐사르의 야심에 대해 비판했고 캐사르와 시오노 둘 다 제국주의라는 거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시오노의 <로마인이야기>를 열독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이를 통해 역사에 접하는 현실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충분한 캐사르 이해일까?

알렉산더와 캐사르의 비교는 매우 논란 많은 문제이다.

알렉산더의 제국이 사후 분해되어 다른 길로 간데 비해 캐사르는 본인이 암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역사의 진로가 그의 의도에 따라 진행되었고 제국도 통일이 유지되었다.

이는 캐사르가 하나의 조류의 선두에 서 있었고 그 조류를 더 강하게 밀고 나간 인물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캐사르 이전에 카틸리네의 반란 사건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키케로의 경우 카탈리테를 체포하려고 했었고 나아가 동조자로 캐사르까지 처벌하려고 했다. 

키케로와 이후 캐사르 암살의 실행자 부르투스는 진정한 민주주의자였을까? 당시 로마 사회는 정복의 여파로 금융 산업이 발달해서 고리대금이 횡행했다. 이들 고리대금업자들은 속주에 나가 피정복민에게 고리대 장사를 헀다. 왜 속주민들은 고리대를 써야 했을까? 세금을 거두면서 그 세금을 낼 돈을 고리로 빌려주는 이중적 행태로 착취를 한 것이다.

이런식의 금융발달과 토지겸병 농민의 몰락은 정복전이 확대될수록 가속화되었다. 이 현상의 끝에 카탈리네의 반란, 그라쿠스의 개혁, 마리우스와 술라의 전쟁이 모두 있었다.

키케로도 부르투스도 고리대금업에 적극적이었고 그들의 자유는 이런 경제적 자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대인이였던 플루타크와 후세인의 차이는 세상르 볼 때 사회과학의 렌즈를 도입해 보느냐 마느냐다. 경제학과 사회학이 발달한 후세인의 눈으로 볼 때는 캐사르의 야심이 아니라 사회경제의 분화와 양극화의 해소를 위해 보다 절대적인 권력의 도입이 필수적이었음을 이해한다. 이는 시오노나 이탈리아의 고교생 용 교과서에서도 확인한 점이다.


그런데 김교수는 너무나 쉽게 시오노가 현지에서 수십년간 살며 직접 느끼고 탐구한 결과물을 한마디로 매도하고 단정짓는다.

사실 강의로 큰 사람들의 문제는 쉽게 단정짓기다. 왜냐 강사는 선생님이어야 하고 선생님은 결론을 내주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공이 아닌 영역도 너무나 쉽게 단정지어 나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이란 나라의 인문학은 가까운 일본의 서양 인식보다 너무 얕다. 김교수가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툭 치고 들어가 논쟁해줄 인력풀이 한국은 얕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만큼도 대중성을 못 가지고 출판문화 산업 자체가 풀이 작으니 졸업생들이 취업이 안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각설하고 김교수의 이 책은 서두의 출발점은 좋았지만 뒤로갈수록 약점을 노출한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새로 배운점들이 있어서 가치는 인정해주지만 결론을 함부러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판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캐사르와 알렉산드더를 논한 대목이 그렇다. 이 글에서는 나도 캐사르를 중점으로 비판했지만 알렉산더 부분도 약점이 적지 않다. 

어쩄든 아쉽지나 이 정도로 하지만 하나 더 우리가 놓치 말아야 할 문제는 인문학의 열탕과 냉탕 문제다. 열탕은 사실 최근에 식어가고 있다. 저자도 책에서 언급했지만 현장의 교육 담장자들 중심으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이 또한 강사의 문제이고 한국 인문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냉탕의 문제. 그건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쉽지만 이런 문제는 고스란히 한국사회 역량의 문제이기에 길게 푸념을 늘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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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9-30 0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의 글을 읽으니 키케로와 부르투스의 처지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부르주아 계층의 입장과 경제적인 부분에서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기존 귀족과 성직자 계급에 대해 경제적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계층간 대립이라고 거칠게 표현한다면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이행과 유사함이 연상되네요^^: 사마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6-10-0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대중음악의 큰별들 - 대중예술산책 4
임진모 지음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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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장을 꽉 채운 관객들, 걸그룹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진다.

KPOP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에 흘러다니는 문화상품이다.

그럼 뿌리는 어떠했을까?


해방 직후를 살펴보면 미군부대 위문공연 자리에 한국계 가수들이 팝송을 부르고 있었다. 

패티김이 그 시대의 스타였다.

먹거리와 가수, 음악의 수준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생존경제 시대의 문화는 잘해야 외국 팝송을 번안해 부르는 형태였다.

연대 의대생(음대가 아니다) 윤형주의 훌륭한 외국어 실력이 번안곡을 만들어 화려한 음색의 송창식과 트윈폴리오를 만들었다. 쎼시봉이 이 시대를 다룬 영화다.

70년대는 엄격한 통제로 표현의 자유, 공연의 자유 모두 같이 제약 받았다.


그러다 80년대가 되니 조용필이 등장한다.

군부독재지만 경제는 진화했고 음반시장도 커졌다. 아직 문화의 시대는 아니었지만 새로 등장은 가수는 독특한 음색과 가창법을 가졌다. 조용필은 노력하는 가수였다. 잠시 타의로 쉴 때도 전통 창법을 익혀 <한오백년>을 불러냈다. 그의 여러 곡들에 녹아든 정서는 <한>이었다고 한다. 이는 군부에 눌린 정치사회 상황과 대조되어 문화를 통한 정서적 탈출구를 제공했다.

그렇게 전두환 시절은 고스란히 조용필의 전성시대와 포개진다.


그리고 노태우 시대가 열린다. 민주화와 표현의 자유의 진보, 외국문화 개방 등이 큰 조류로 이어진다. 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이를 본 윤형주는 기타를 내려놓고 기획자로 사업가가 되는 변시을 한다. (가만 보면 이수만의 원조다)

이 시대 스타는 주현미와 이선희였다. 이선희는 촌스러운 안경과 복장을 했지만 작은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가창력은 세상을 흔들었다.

주현미는 화교출신으로 약사로 공부도 했지만, 노래에서 발군의 솜씨를 발휘했다. 강남 개발과 함께 화려해지는 불빛이 담긴 서정적인 노래는 오래오래 사람들을 사로 잡았다.


시장이 커지고 티비가 더 자유로워지고 가수들이 더 많이 뛰어들어도 충분히 성장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시장개방을 맞게 된다. 저작권이 강화되고 또 일본문화가 개방되어 건설적으로 경쟁하게 된다.


이 모든 변화는 아주 단기간에 일어나게 된다.

박정희의 70년대 말과 90년대 서태지까지 숨 돌릴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각자가 지냈던 전성기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문화적 맥락이라고 할까. 경제적 조건과  문화적 코드는 서로 동떨어지지 않았다.


맑스가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틀로 문화를 경제로 환원시켰는데 한국의 대중음악의 설명에도 꽤 소용된다. 하나의 양식에 익숙해지고 또 팬들도 그 가수에게 그것만 기대하다보니 고정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청중이 늙어가면서 금방 같이 노쇠화되어 뒷방으로 물러가게 된다.

이 모든 축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 책은 세세하게 다룬다. 유명한 명사 가수들과의 인터뷰에도 (그 시간은 귀하고 비싸다. 공연료를 생각해보라_) 임진모 작가는 결코 주눅 들지 않고 핵심을 드러낸다.

덕분에 음악의 변화를 통해 한국현대사의 문화적 면모를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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