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권력중독 - 의전 대통령의 재앙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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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는 늘 감탄스럽다.

이슈가 터지면 꼭 책이 있다. 예기치 못했던 트럼프 충격에도 그를 다룬 책이 바로 준비되었고(힐러리도 한권 내놓았다. 양면전략) 이번 최순실 농단 사태에도 이 책이 손에 잡혔다.

그의 속도에 놀란 지인이 던진 "책이 너무 빨리 나오는 거 아냐"라는 유쾌하지 않은 질문에 강교수는 이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여가 시간을 희생하가면서 2-3시간씩 자료 정리에 투자하는 저의 평소 습관 덕분입니다. 당신 술 마시고 놀 때 저는 그 일 했다니까요"


갑자기 찔린다.

하여간 책으로 가보자.


강교수가 박근혜를 설명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의전자본>이다.


의전은 조직에 일체감을 주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만드는 거대한 상징행위다. 고대의 제례에 비유할 수 있다.


박근혜는 특별한 존재였다. 쉬지 않고 박정희를 상기시켜주는 리보커(revoker)라고 강교수는 표현한다.

과거로의 복귀, 회고적 생각은 사회가 전성기를 지난 다음에 만들어지는 정서다. 박근혜는 다시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시대의 정서를 활용해 자신을 상징물로만 만들어 존재하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달랐고 손가락에 피를 내서 만주육사에 합격하는 갈망과 수십년 군대와 국가의 운영을 해온 콘텐츠는 유전되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박근혜의 말은 짧았다. 


사실 거기에 뭔가 통찰이 있겠지 하고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고 강교수는 이야기한다. 초딩워딩. 초등생용 말이라고 한다. 

미국의 승자 트럼프의 화법은 철저히 교육수준이 낮은 대중들에 맞추어져 있다. 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학자에 의하면 상대방 후보는 꽤 교육이 높은 고2 이상을 원한다면 트럼프는 거의 초딩 수준에도 같이 따라하고 웃기도록 말을 한다고 한다. 생각이 나는데 우리나라 방송작가들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중2 수준의 아줌마가 편하게 웃도록이었다.

하여간 박근혜의 화법 뒤에 숨어 있는 무지에 대해 깨달은 이도 있고 아닌 이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심지어 지지자들 포함해서 다들 설마 이정도는 했으니 말이다.


박근혜는 초딩워딩의 논란을 알았다. 자신 스스로가 콘텐츠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그 컴플렉스를 최대한 외형적인 양식의 화려함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옷 잘 입고 좋은 차 타고다니면 뭔가 있지 하는 외형 꾸미기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영국의 대처 수상에 비유되면 싫어했다고 한다. 그보다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델로 원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의전은 더욱 형식화되고 강화되었다. 심지어 청와대의 회의들도 그냥 의전화되었다. 토의는 없고 말씀을 듣고 상납을 하는 행위가 반복된다. 이런 의전은 여기서만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보통 외국공관에서는 1년에도 50-100번의 방문이 있고 이걸 잘 해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주재원이 아니라고 한다. 갑자기 최근 떠오른 모 후보님 생각이 난다.

이걸 문제라고 지적하는 외국인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LG전자의 최초 외국인 임원이었던 프랑스 현채인의 책도 인용한다.

그리고 따끔하게 한마디, 의전에만 몰두 하는 조직은 중세의 왕궁이고 관료는 일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환관이 되어 버린다.


자 이렇게 해서 조직은 상징과 의전만 남게 되었다.

대기업은 관계만 남게 되고, 한국의 청와대는 조선시대 궁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침몰해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다.


제목을 상기해보면 박근혜의 권력중독은 대단했다. 하지만 권력으로 무얼 이루어내는 성취지향이 아니라 왕관을 쓰기 위한 지위투쟁이었다. 그 투쟁의 관객이 되어 환호와 갈채를 보였던 이들에게 이제 냉정하게 청구서가 날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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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유자와 쓰요시 지음, 정세영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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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400억 빚을 떠안은 엘리트 회사원. 

뉴욕의 센트럴파크의 고급아파트(회사사택)에서 뮤지컬과 와인을 즐기며 여유 있게 누리던 회사생활은 갑자기 끝이 났다. (시마과장도 파나소닉에서 비슷하게 호사스러운 미국 주재원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갑자기 날라온 결재문서에 도장을 찍다보니 어느새 사장이 되고 회사의 몰랐던 빚 400억을 송두리째 떠안게 된다. 

정말 진실을 알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승계는 주변의 인간관계에 대한 부채까지 고스란히 승계되는 구조다. 수많은 협력업체의 생존이라는 의무 앞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시작된 굴종의 시간.

부채의 연장을 위해서 은행지점장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또 숙여야 했다.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한자와 나오키>에 나오는 한 장면이 된다. (일드 한자와 나오키는 시청률 40%에 달하는 초히트작이고 눌린회사원들의 분노가 잘 담겨 있었다)


은행만이 아니라 세무조사국의 탑 불량 고객에 들어가 관리되고, 

직원들은 툭하면 파업을 하고, 고객들은 맛없다고 외면하고.

33개의 체인을 가진 사장님이라는 멋진 외형으로 남들은 알았다. 하지만 내용은 빚에 돌려가며 만들어낸 아버지 시대의 성장신화가 버블에 붕괴되면서 일거에 무너진 부실기업이었다.


이 상황에 놓이게 된 건 주인공의 특별한 부자관계였다.

사업가의 아들은 혜택은 다 누리지만 아버지의 후광에 눌리는 건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집안의 돈으로 유학도 보내주고 편하게 사회생활을 하였다. (일본은 취업때 부모의 직업도 잘 본다, 가족의 결합이라는 봉건적 인간관이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는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가업을 승계한다는 오랜 숙제를 의식은 하더라도 고민은 하지 않고 맞았다.


이후의 일은 대단한 고난이었다. 누구라도 고난 아니겠는가?

하지만 주인공은 남과 다른 온우주의 힘을 끌어내서 난관을 돌파해나간다.

지나간 일들을 하나 하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추하며 경영자로서의 꺠달음을 이어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경영의 핵심은 일점돌파,전면전개였다.

직접 고객을 관찰해서 만들어낸 차별화 포인트로 포지션을 만들고, 여기서의 성공을 전체로 확장시킨다.

말은 쉽다. 하기는 어렵다. 그게 경영이다.

쉬우면 경영대 교수들 회사 가서 경영을 잘 해야 하지만 절대 그렇지 못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으로서의 깨달음과 자기관리다.

주인공은 이 대목에서 자기를 관리하기 위해 

자기 심리상태를 잘 파악하고,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는 태도를 취했다. (자세한 건 책에..)

쉽지 않지만 찬찬히 보면 꽤 의미 있게 들어오는 이야기들이다.


불황시대의 일본은 많은 기업들에 좌절을 주었다. 기업들도 바꿔가며 헤쳐나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강한 마인드콘트롤과 현실과 버무려진 경영학은 인상적이다. 

2017년 주변이 다 어렵다고 한다.(반도체 빼고) 그 속에서 화두가 생존인데, 시대의 요구에 맞춰 일본책으로는 드물게 많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읽다 보니 주변에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여러분들이 떠올랐다.

어떤 분들은 성공해서 빚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어떤 분들은 그러지 못했다.

사업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계속 가야하는 업과 같다. 

그런 분들에게 약간이마나 도움이 되리라 믿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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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7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7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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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읽기를 해다마 연례행사로 만들어낸 김난도 교수의 2017 예측서이다.

2017을 예측하면서 주요 키워드로

YOLO, - 한번뿐인 인생 

1코노미 -1인분

캄테크 - 조용히 나를 도와주는 기술

B+ 프리미엄 - 가치를 높여 만족도를 높이는 상품

등등이 놓여 있다


사회적 배경으로는 디플레이션의 장기화, 개인화가 놓인다.

디플레이션 덕분에 얇아진 주머니는 계속 우리에게 좋지만 더 싸게 라는 <가성비> 프레임을 요구한다. 이는 일본의 지나간 잃어버린 20년의 사회적 흐름과 똑같다.

매번 다가오는 트렌드책 보다는 오히려 일본이 지금까지 흘러온 걸 살펴보는 쪽이 좋겠다고 나는 여러번 주장해왔다.

이번 책에서도 내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다.

B+프리미엄은 일본에서 난다지유가오카라고 해서 지유가오카 풍으로 놀아보자, 작지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을 찾던 트렌드와 똑 같다.

작은 사치라고 최근 유행했던 트렌드의 변형물이다.


또 하나 주요한 1인분화 현상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혼밥,혼술,혼영(혼자영화보기 혹은 여행하기) 등.. 혼자의 놀이가 점점 많아진다.

혼밥은 도시락 매출을 급상승시키고, 그것도 편의점에서.. 백종원과 김혜자는 모두의 건강과 영양을 책임지는 국민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이것도 사실 일본과 비슷한데 일본에서 불황기에 특히 성장한 기업 중 하나가 편의점이고 아이템으로 저가커피와 도시락이 들어간다.


영화에 있어서 최근 개편된 메가박스 점포에서 1인이 아주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좌석 설계를 다시해서 배려했다는 소식은 재밌다.

말고도 여기저기서 홀로족을 위한 배려가 늘어나고 있다. 사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가족 등 사람과의 연대가 줄어든 공간의 대체물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인 분해 속에서도 기술의 발전은 혜택을 늘려간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활용한 애플뮤직,삼성뮤직 등은 매우 싼 가격으로 3개월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준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조건은 바로 클라우드 기술의 발달이고 저변에는 다시 반도체 기술이 발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디스크 사업은 망해가지만 SSD는 조욯이 우리의 컴퓨터를 빠르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작고 강해진 컴퓨팅 파워를 이용한 디지털 소품들이 곳곳에서 우리의 삶을 도와준다.

이번 CES에서 하이라이트를 차지한 아마존의 가정용 비서 알렉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 한다. 책과는 별도로 약간 기술 이야기를 덧붙이면 CHATBOT이 인공지능의 발전에 힘입어 성큼 새로운 사업아이템으로 성장해서 콜센터를 대체하려고 노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LINE이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인건비가 더 비싼 선진국일수록 자동화 욕구 또한 매우 강하다. 한국이야 옆사람 툭 치면 답이 나오지만, 미국처럼 띄엄띄엄 살고 인건비도 비싸고 도움 준 것은 반드시 청구하는 사회에서야 말로 기술에 의한 대체가 더 중요해진다.


해마다 이렇게 트렌드를 잘 추려서 보여주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와 일군의 학술집단의 노력에 감탄을 늘 한다.

그러면서도 조금 아쉬운 건, 트렌드라는 1년 단위의 시각을 넘어서서 사회학과 역사학, 일본학의 협업을 통한 보다 장기적인 조망도 같이 해봄이 어떨까 하는 의견이다. 

일본의 궤적만 쭉 따라가도 꽤 많은  시사점이 나온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일본 언론인의 책에 리뷰를 달면서 이야기 했었고 사실 꽤 오랫동안 블로그에서 주장했던 바이다.


김교수도 반복에 지쳤는지 이제 실무적인 일이나 대외강의도 전미영 교수를 앞세운다고 보인다. 그렇기에 더욱 이제 시점을 높이고 시야도 넓혀보면서 그걸 기존 작업에 한차원 높여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약간 비꼰다면 띠에 맞추어 동물 잡고 여기에 키워드 배열하는 게 어째 영어 단어 놀음 같다는 허무개그가 떠올라서 일허게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 놓아 본다. 


그럼에도 늘 우리에게 새로운 현상을 단어로 포착해서 어휘를 늘려주어 뇌의 신선도를 높여주는 노력에 대해서는 감탄과 경의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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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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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1만개 시대라고 한다. 

골목 곳곳에 툭툭 팝콘 처럼 튀어 오르는 편의점들이 그렇게 많아졌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또한 계속 늘고 있다.

들어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 간혹 점주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르바이트(알바)생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물어보게 된다.


조건은 존재를 규정한다.

농장이 농부를, 대농장은 농노를, 공장은 노동자를 만들어내듯이 편의점이라는 업태는 알바라는 새로운 직종과 인간유형을 만들어낸다.

사람에게 입혀지는 제복은 그 사람의 행위에 규칙성을 부과하고 일정한 경향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편의점인간>은 탄생한다.


이 책은 일본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일한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자신의 아주 오랜 체험이 켭켭이 쌓여 독특한 소감으로 바뀌어진 문장들을 내놓고 또 모아졌다. 

이러한 문장들은 평소 내가 보던 편의점이라는 정형을 상당히 다르게 보도록 흔들어 댄다. 가령 빛으로 가득한 <투명한 수조>라는 공간이 편의점이다. 수조라면 물이 담긴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속에서 일상 보다는 편하게 움직이는 물고기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의 경험 또한 규칙의 체화와 반사적인 자동화가 이루어진다. 편의점 주변을 걸을 때는 항상 어떤 가게가 새로 생겼는지 살피면서 고객인가 경쟁자인가 보게 된다. 

날씨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온도차이에 따라 제품의 매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혹은 오뎅 등 상품의 판매에 늘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는 서로 섞이게 된다. 말투가 전염되고 업무습관이 모방되어 체화된다. 그렇게 점점 틀이 만들어지고 그 틀에 박혀간다.

그 시간이 무려 16년이나 흘러가게 되어가면서 자연스러움이 너무 익숙해지는데 하나의 해프닝이 발생한다.

아주 아주 이상한 신입점원이 들어오게 된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불만 많은 사회 부적응자, 일본의 고대인 조몬시대와 똑 같다고 불만 가지지만 그렇다고 이 시대의 규칙에 적응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쎄게 한대 맞으면서 조건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주 오래되면서 결혼하지 않은 삶, 그냥 알바라는 일에 머물러 있는 부자연스러움 등 타인이 만들어 놓은 규율이 담긴 시선과 말이 밀려온다.

일시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가만 보니 자신은 이물질인지도 모른다고 되 묻게 된다. 그리고 또 이물질은 제거 되는 건지 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한 명의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존재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추상화되었기에 독자에게 더 강한 물음을 던진다.

거대한 프랜차이즈 속의 작은 지점에서 다시 세분화된 하나의 가벼운 일을 아주 오랫동안 반복하는 건 바람직한가?


한 외부인이 주인공에게 쏟아내는 

"알바와 백수가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하려고요. 정말 그만두세요. 당신들 같은 유전자는 남기지 말아주세요. 그게 가장 인류를 위하는 길이에요." 

그 썩은 유전자는 죽을 때까지 혼자 품고 있다가, 죽을 때 천국으로 가져가서 이 세상에는 한 조각도 남기지 말아주세요. 정말로"

178쪽

거친 말투는 충격적인 파도로 밀려온다.


사회에 분명 가치를 주고 필요도 하면서도 꼭 이렇게 까지 대접받아야 하나 하는 물음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거야 말로 더 냉정한 현실인지 모른다.

그렇게 여기서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커져간다.


사회를 보면 구성원들은 그냥 봐도 한 점이다. 하지만 점인 듯 하면서도 선이 있고 면이 있다.알바가 아닌 비정규직,프리터 그리고 정규직은 이 연결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정규직은 빽빽한 선으로 묶여서 면을 이룬다. 뭔가 다른 행동을 하면 사방에서 자신을 잡고 있는 줄들이 댕겨지면서 중심도 잡아주고 위로 이끌어도 준다. 

납품업체와 같은 하위 구성요소들은 이 끈이 더 느슨하고 비정규직은 아주 약하디 약하게만 작용한다.

편의점인간은 그냥 점에 가까울 뿐이다.


그래서 느슨하게 머물다가 보낸 시간들의 기회의 상실이라는 복수로 변모해서 자신을 덥쳐온다. 가족도 점장도 다 흔들어댄다.


결국 관건은 연결이다. 약한 연결과 강한 연결은 차이가 나고 수조라는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하면 약한 선에 묶인 점에만 머물게 된다.

바람직한 것인가? 답은 주관적 가치에 따라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변화는 필요하다. 

16년이 지나도 알바는 알바이고, 이렇게 머무는 쳇바퀴 처럼 돌아가는 공간은 일종의 루프로서 시간이 멈추어진 셈, 즉 성장, 발전이 멈춰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종종 거칠고 힘들지만 더 강한 질문이 필요하다. 

너는 누구인가? 그곳으로 다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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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파편들 - 도널드 그레그 회고록
도널드 P. 그레그 지음, 차미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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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한민국은 혼돈속에서 항해중이다.


불안 속에서 후회가 밀려오는데, 선장이 이 모양이었다는 걸 다들 몰랐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화제가 된 2007년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정보보고서에 나온 <최태민에게 X와 마음을 다 지배당했다>라는 글을 생각하게 된다.

역시 강대국은 다르구나 하는 격차를 느끼면서 그들은 여기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핵심을 압축해서 알수 있었을까 궁금하게 된다.


답은 그들의 정보기구에 있다.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잠재적 전시상태이고 그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CIA가 활약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 <역사의 파편들>은 CIA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면서 한국책임자와 대사를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이다.


성취욕 많은 젊은이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다양한 공작에 몸 담았다가 나중에는 미국의 안보협의 기구 NSC에서 중책을 맡았다.

예전에 한국정보부KCIA를 다룬 김당 기자의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는 원조인 CIA를 알게 된다.


그레그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하다고 한다.

미국이익을 최우선하는 정보요원에서부터 한국에 대한 높인 이해로 인연깊은 지한파, 아예 친북인사로까지도 이야기된다고 한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지는 책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정보요원으로서의 활약상이다.

책을 보면 베트남전쟁 중에 적의 군사간부를 납치해서 정보를 취득해내고 이를 통해 대규모 폭격을 전개하는 활약상(?)이 나온다. 이 과정을 찬찬히 보면 저자는 심리에 상당히 능통한 인물이다. 그리고 상대를 알기 위해 베트남의 고전 소설을 탐독해낸다. 

이렇게 그는 근무지마다 현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노력한다. 일본에서는 술집을 드나들며 아가씨를 상대로 일어를 익힌다. 이렇게 익힌 일본말로 박정희와 골프를 칠 때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잘하네 하는 칭찬까지 들었고 개인적 유머감각 등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그의 지한파로서의 인연이다.

유능한 정보전문가 그레그가 한국에 있을 때 잊지 못할 활약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김대중이 납치되어 바다에 떠 있는 상태에서 목숨을 건지도록 도와주게 된다. 당시 대사였던 하비브와 공조를 통해 KCIA의 공작을 중단시킨 이 사건은 소신과 순발력을 알게 해준다. 

베트남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역할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라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는 한국의 민주화에 쉽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래서 김대중과는 오래 오래 깊은 인연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그레그의 지한파로서의 활약은 이어진다.

남과 북의 관계가 가장 진전된 건 노태우시대의 남북협상이다. 이 과정은 박철언과 노태우 회고록에 꽤 자세히 나오는데 여기에 더할 것이 있다. 바로 그레그가 미군사령관을 설득해서 팀스피리트를 중지시켜 준 점이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남과북은 화해를 위해 커다란 발걸음을 디디게 되었다.

이는 후기에 나오는 문정인 교수의 평론의 내용들인데 한국외교사에서 참고할만한 성공사례일 것이다. 


이외에도 그레그의 한국과의 인연은 다양하다. 대사시절 관저로 침입한 대학생들을 해병대를 동원하지 않고 조용히 경찰력만으로 처리한 점도 그렇다. 정보요원하면 우선 권총이 떠오르는데 그는 남한의 역사를 잘 이해하기에 되도록 선처를 부탁했다. 그 중 한명이 정청래 국회의원이었고 나중에 그레그는 대학생들의 사과를 흔쾌히 받았다고 한다.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그의 발길이 닿게 되었다. 

처음 접촉 시도에 대한 북의 지도자들의 반응은 까칠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고 거친지에 대한 항의가 많다. 그레그는 그들에게 찬찬히 북한이 미국의 첩보활동이 철저하게 실패한 지역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주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안보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면서 역으로 미국정책의 불규칙한 행보에 대한 납득을 시켜준다.

상대를 깊게 이해하면서 특히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자신의 이해관철을 해내는 솜씨가 대단했다. 협상가는 힘을 뒤에 가지고 있지만 앞에서는 항상 존대를 해야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아쉽지만 이런 노력들은 남의 정권교체, 아들 부시의 아버지 부시와는 전혀 다른 성격 등 여러 요인으로 큰 성취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6번에 달하는 그의 방북을 통한 노력은 한반도를 사는 우리들에게 기억할만한 친절로 남게 된다.


혼돈속의 한국, 아니 한반도 전체가 긴 혼돈이다.

혼돈을 헤쳐나가려면 냉철한 시선이 필요하다.

마치 미국이 박근혜의 실체를 매우 일찍 알고 있었듯이 우리 또한 남과 우리를 냉철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다. 남과북의 화해 또한 미국을 끌어가면서 진행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시각으로 우리를 보는지 잘 알게 해주는 책은 드물었다. 

이제 한반도는 남한의 탄핵정국을 넘어 트럼프의 중국과의 대립 및 북핵 대응을 앞에 두고 있다. 더욱 거칠어지는 파도를 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또한 상대를 알고 설득해내는 힘을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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