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몇번 만날 때가 있다.

하나는 아버지로부터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멀어졌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대화의 단절로 이어지고
낯 설게 살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자기의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한계의 원인이 멀리 보면 유전적인 것 내지 사회적 습관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흐름의 원천은 바로 아버지다.
이제 나도 내 원인을 알았으면 태도는 두가지가 된다.
하나는 그 원인을 준 사람에 대한 원망이고 다른 하나는 동병상린이다.
아 아버지도 이런 아픔을 가지셨구나 그렇다면 거기서 벗어라는 길은
나 스스로 약점을 알고 고쳐나가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는 내게 거울이 된다.
항상 주목하고 관심가지고 때로는 따라하지 않게 해주는 일종의
반면교사가 된다.

그러다가 어느날 또 하나의 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자식이 그러한 나의 분신이다.
내가 가졌던 약점을 가지고 있는 자식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한편으로는 놀라고
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랴 보고 배운 것이 그것 밖에 없다는데.
자신은 TV보면서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
자신은 모범을 못 보이면서 자식은 바른 길 가라는 것도 말이 안된다.
자식을 고치는 길은 자신을 고치는 길이 된다.
이미 한번 충분히 겪어본 자신의 약점, 어쩌랴 이제라도 고쳐야 할 것이다.

두개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보면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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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7-1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념 2007-08-22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마천님은 너무 좋은 아버지 십니다.
 
 전출처 : 로쟈 > 황홀한 20세기의 전설, 피카소

한국일보사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위대한 세기: 피카소’전이 지난 20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피카소 작품들은 세계 20여 곳의 미술관과 재단, 화랑,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빌려왔으며, 대부분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것들이라고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06. 05. 23)에는 피카소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한 바 있는 작가 김원일씨가 이 전시회를 둘러본 소감을 적어놓고 있어서 옮겨온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인 피카소를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시기별 대작과 걸작 등 140여 점으로 만나는 이번 전시는 사실상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피카소 회고전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5만여 점의 작품과 92세로 붓을 거둔 생애 자체가 이제 20세기의 전설이 된 피카소의 대표작 140여 점을 모아 전시한 서울시립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그림을 동경해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을 둘러보고, 그의 화집을 사모아 오다 몇 해 전 그의 전기를 썼던 필자로선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피카소가 위대한 점은 그를 현대미술의 한 유형에 가둘 수 없는 자유분방했던 창작혼에 있다. 1900년 촌티를 못 벗은 스페인의 지방 화가로 파리에 입성한 후 청색시대, 분홍빛시대, 짧은 원시미술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고전주의, 초현실주의를 두루 섭렵하고 고전의 자기식 해석법인 ‘변형’의 또 다른 시도와 도자기 작업 끝에, 누구도 도달한 적 없던 최상의 경지를 정복한 피카소는 그야말로 시각예술의 모든 장르를 깨부순 활화산이었다.



-19세에 예술의 메카 파리로 나와 곤궁했던 초기, 가난한 이웃들의 애환을 슬픈 빛 청색으로 표현했던 ‘모성’‘곡예사, 어린이와 개’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단연 시선을 끄는 대작 ‘솔레르씨의 가족’은 가난한 양복점 주인의 가족을 정감 있게 표현한 청색시대의 걸작이다. 현대미술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한 후 브라크와 함께 경쟁적으로 분석적 입체주의를 실험했던 시기의 ‘비둘기’도 전시됐다. 사물을 각과 선으로 자르는 수법의 이 그림은 현대 추상미술의 시발점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절대적이다.



-그의 세 번째 연인이었던 러시아 무용수 올가를 로마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고전주의로 복귀한 시기의 ‘우물가의 세 여인’을 통해 피카소 미술의 변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빨간 카페트 위의 기타’는 평생 서로 질투하며 사랑했던 경쟁자 마티스의 색의 대비를 재해석케 하는 40대 피카소의 대표적인 주제다. 피카소의 대표적 걸작으로 흔히들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등을 연상하지만 ‘무용’을 제외해선 안 된다. 초현실주의 시인 브르통, 엘뤼아르 등과 사귀기 시작했던 1925년에 그린 ‘무용’은 야만적이고도 난폭한 기법으로 파리 화단을 경악케 했던 작품이다. 나는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그려진 그 대작 앞에 오래 서있었다. 혼란스러운 꿈의 세계를 생생한 현실과 결합시켜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분해한 이 광란의 춤 그림 앞에서 ‘평면회화가 이제 갈 데까지 가버렸다’며 놀랐을 당시 파리 화단 평자들의 탄성이 들리는 듯 했다.



-당대 최고의 부르주아였으면서도 평생 공산주의자로서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피카소는 ‘스페인 내란’을 거쳐 군부 프랑코가 무력으로 조국을 장악하자 격분하여 탁구대보다 큰 대작 ‘게르니카’(1937)를 그렸다. 그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 수 없는 밑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에 전시된 ‘미노타우로스’와 ‘우는 여인’도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미노타우로스의 광폭성과 전쟁에 수난 당하는 여인의 비극적 모습이 스페인 내란의 참상을 상징하는 한편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한 그의 현실참여 정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게르니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다섯번째 연인 도르 마르를 모델로 한 초상화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데, ‘게르니카’가 색을 배제했듯이 초상화도 어두운 톤이 주조를 이룬다. 스페인 내란과 2차 세계대전이 피카소로 하여금 밝은 색조를 거부케 했던 것이다.



 

 

 

-피카소가 40대에 만난 네 번째 연인으로 청초한 마리 테레즈와 60대에 들어 만난 여섯 번째 연인 프랑수와즈 질로, 일곱 번째로 마지막 연인이 된 자클린느 로크의 초상화도 보인다. 마리 테레즈는 관능적이고 부드럽게, 프랑수아즈 질로는 이지적으로, 로크는 현모양처로서 모성성에 입각하여 각각 달리 해석했다. 평생 일곱 여자와 산 그가 한 여성을 만날 때마다 그의 그림도 변모를 거듭했음을 보는 것도 피카소 그림감상의 포인트다. “소설가가 자서전을 쓰듯 나는 그림으로 자서전을 쓴다”고 말했듯, 피카소의 그림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을 연대순으로 보면 그의 삶 자체가 올곧게 담겨 있다.



-피카소는 만년에 자신의 그림에 영감을 준 들라클루아, 벨라스케스, 마네의 그림을 재해석한 ‘변형’을 시도했는데,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도 출품돼 있었다. 그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수십 장의 밑그림을 그리는 실험을 되풀이했는데, 밑그림 자체가 곧 완성품으로 평가된다. 90이 넘어서까지 담배를 즐긴 그는 “이제야말로 늙었다. 그러나 담배 맛은 20대 시절 그대로다”라고 말했듯.‘담배 피우는 남자’를 많이 그렸다. 관음증에 시달린 말년의 애교 넘치는 펜화 수채화와 함께 담배 문 남자상도 여러 점이 전시된 게 볼만 했다.


-그 동안 서너 차례 피카소 그림이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지만, 세계 23곳의 기관 및 개인 소장처가 협조하에 그의 전 생애의 그림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자신의 교양 수준 점검을 위해 일차 관람해볼 만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다.

06.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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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ayonara > [퍼온글] 유부남.유부녀 10대 헌장?

‘작은습관’ 바꾸면 아내가 웃는다

[서울신문]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말이 있다. 통하지 않는 남녀를 말한다.
그나마 연애할 때는 이런저런 노력을 하던 남자들이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는 순간 바뀐다.

아내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남편의 작은 변화가 아쉬운 아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누가 빨래까지 해달라고 했나요. 그저 옷을 뒤집어 내놓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걸 안하더라고요.”

“단축키 한번만 누르면 되는데 집 나가면 전화 한통 없어요.”

월급도 꼬박꼬박 갖다주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며 바람을 피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아내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연예인처럼 몸짱이 되라는 것도, 수억원을 벌어오라는 것이 아니다.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작은 바람’은 무엇일까.

“같은 얘기 반복하는 것도 지겨워”

결혼 3년차인 김모(28)씨는 점점 잔소리꾼이 돼 간다는 생각에 속상하다. 남편에게 함께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말해보지만 소용 없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나서는 가스밸브를 잠근다거나 다 쓴 수건은 다시 걸어놓지 말고 빨래통에 넣어달라는 것 등이 김씨가 바라는 전부다.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지만 남편의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김씨는 “혼자 밥 먹을 때 반찬을 접시에 덜어먹지 않고 반찬통째로 놓고 먹거나 다리미를 쓰고 나면 제자리에 넣어두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서 “어쩌다 그럴 수는 있겠지만 매번 같은 말을 하게 만든다.”면서 “이제는 얘기하는 게 지겹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웃으면 내 자식, 울면 네 자식

아내들이 갖는 불만 가운데 하나는 역시 육아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이 육아휴직이라도 해서 아이를 봐 달라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남편들이 육아 자체에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는 데 화가 난다.

두돌된 아이를 둔 주부 남모(31)씨는 남편이 얄밉다. 맞벌이를 해 낮시간에는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지만 밤에 아이를 돌보는 것은 남씨 몫인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재롱떨 때는 “아빠한테 와봐.”하면서도,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거나 떼를 쓰고 울 때는 아내를 찾기 때문이다. 남씨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나는 밤새 우는 아이 때문에 잠을 못잤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다른 방으로 가 쿨쿨거리면서 잤다.”면서 “정확히 절반의 육아 책임을 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아빠 역할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화 부재가 가장 큰 문제

지난 98년 결혼해 아이 하나를 두고 현재 또 한 명을 임신 중인 손모(34)씨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주말이 늘 아쉽다. 맞벌이를 하는 탓에 가족이 함께할 시간은 주말밖에 없지만 주말 전에 남편이 과음을 하고 결국 주말 내내 피곤하다며 잠만 잔다. 자연히 집안일은 모두 손씨의 몫이다. 손씨는 “직장생활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는 대청소도 함께하고 외출도 하고 싶다.”면서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가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손씨는 무엇보다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실제로 상당수의 아내들이 손씨처럼 대화 부재를 호소한다.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 부설 연구소의 러브코치 정영씨는 “전화상담 가운데 고부간의 갈등이나 성적인 고민만큼 많은 것이 남편과의 대화 문제”라면서 “대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아내들의 사소한 바람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화를 하더라도 그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다. 정씨는 “아내들은 자신의 바람을 얘기할 때 비난조나 명령조로 해서는 안된다.”면서 “특히 부부싸움 도중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그저 잔소리로만 들린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편 쪽에서는 아내가 얘기할 때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부부는 한팀이라는 생각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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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성장이다.
시간이 갈수록 지식은 늘어가고 지위는 올라가고 월급액도 많아진다.
아이들 커가는 재미, 가정을 꾸리는 것이나 옷과 차 등 소비도 커진다.
시간이 갈수록 축적해가는 재미가 있다.

다른 하나는 소멸이다.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몸은 자연에서 빌려쓴 것이고 거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오늘 하루도 나는 내게 주어진 가장 젊고 건강한 날 하루를 소모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순환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듯, 한 해가 가면 다른 한해가 시작되듯
우리는 일종의 순환구조를 만들어서 거듭남을 경험한다.

이 세가지 유형을 잘 이해하면서 자기 조절을 해야 한다.

소멸하는 능력인 암기력의 비중을 줄이고 젊어서만 할 수 있는 것들
어학, 프로그래밍 능력,업무 기본지식, 학위 취득 등을 알맞게 배치해야 한다.
다음으로 나이들수록 강해지는 것들 지위,자본,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의 힘을
이해해서 자신의 힘을 레버리지 하여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가끔 자신을 채근하며 리프레쉬해야 한다.
새로운 결심 다짐을 하면서 목표를 향해 도전하도록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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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비자다. 내가 하나의 물건을 있기 까지는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있어야한다. 지식에도 마찬가지로 생산자와 유통업자 소비자라는 서로 다른 계층이 있다.

학문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러한 여러 단계 중의 하나에 자신을 자리 매김하는 것으로 생산과정에 종사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공부하시던 서울대학교의 교수님 분이 자신은 소비자 약간 유통업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문에 뜻을 두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느끼게 하는 것에는 가지 원인이 있는 하나는 고전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어다. 고전은 앞에 묘사 한대로 지식의 산에서 중간 중간의 굵은 능선이다. 다른 사람의 지적인 축적물을 정확히 파악하지 한다면 그들이 도달해 놓은 한계가 어느 곳인지 방법도 없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다. 기껏 고민을 하다 보면 이전에 누가 깔끔히 정리해 놓은 것을 발견할 있다.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어지간히 뛰어난 사람도 역사 속에서 지적 능력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 났던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다른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 결과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중턱의 무수한 쉼터나 앞선 등반객의 자취를 무시하고 밑바닥부터 혼자 힘으로만 오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용기 있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겠지만 적어도 현명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할 것이라고 있다. 가령 누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들고 산에 올라가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헤겔의 <정신현상학> 만들어 내려왔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시대는 헤겔의 시대를 넘어 마르크스를 거쳐 포스트 모던까지 흘러갔다. 심하게 말하면 그는 고대인간일 따름이다.

 

따라서 창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이 소화한 고전의 범위를 알아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하고 지금까지 인류가 도달한 한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있는 힘이 된다.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인문사회과학에서는 자신이 섭렵한 고전의 범위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것이 창조를 이룰 있는 가능성의 한계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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