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자본묵시록-풍요의 악순환
도박묵시록 카이지 26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부유키의 그림체는 아무리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잔인하게 말하면 싫어하는 그림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는 "Arms, 스프리건"의 작가 "료우지 미나가와", "헬싱(Hellsing)""히라노 코우타" 스타일이다. 하지만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들이 주는 충격은 이 모든 것을 상회하고도 남는다. 1958년생 개띠인 만화작가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극(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 "무뢰전 가이"를 보고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워낙 그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의 작품을 보고나면 며칠동안 더러워진 기분을 만회하기 힘들기 때문에 "도박묵시록 카이지"도 오며가며 한 번 보긴 봐야 할 텐데 하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읽고 나서도 이 작가의 극단적인 묘사와 이야기 진행 방식은 영원히 익숙해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작가의 낯짝이나 보아둘 요량으로 찾아보았는데, 작가는 알게 모르게 자신과 닮은 얼굴을 캐릭터화한다는 만화계의 오랜 격언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카이지와 숙명의 대결을 펼친 리네카와를 합쳐 논 듯한 얼굴이었다. 이쯤 읽고 난 뒤 저 인간이 이번엔 왜이리 엄살이야라고 한다면, 당신은 노부유키의 만화를 한 편도 읽지 않은 사람이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면 이미 한 번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일 것이다. 소설에 문체란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만화에서 그림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낼 수 있다. 소설가의 문체란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듯 만연체, 간결체, 건조체 식으로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작품마다 다르고, 작품 내에서 호흡을 긴박하게 끊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소 늘어진다 싶게 유장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뛰어난 이야깃꾼일 수록 호흡과 완급을 조절해가며 독자들과 승부를 벌인다.

앞서 나는 노부유키의 그림체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런 개인적인 취향에서 한 발짝 물러나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각진 캐릭터와 거칠고 굵은 선, 투박한 배경묘사는 작품의 스토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이 작품의 스토리로 한 번 들어가보자.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제목에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도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독서 행태는 스스로도 잡독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독서행태와 달리 나의 취미는 담백 그 자체에 속한다. "읽고 보고 듣는다"가 내 취미 생활의 전부이고, 이와 약간 다르게 활동적인 취미가 있다면 "찍는다" 정도가 있을 뿐이다. 바둑, 장기는 물론 당구, 볼링도 할 줄 모르고, 술도 거의 안 마신다. 4천만의 유희인 고스톱도 장가들어 친척들이랑 어울리려다보니 간신히 패나 떼는 정도다. 그것도 가끔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몰라서 어른들에게 야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사람이다.

그러니 도박은 더욱더 젠병인데, 혼자 그런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워낙 나의 투쟁심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는 게 싫은 건지, 지는 게 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온라인으로 누군가와 대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혼자 컴퓨터랑 논다. 일단 승부를 겨루는 일 자체가 피곤하다. 그래서 남들이랑 심심풀이로도 내기하는 법이 거의 없다. 게다가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도 이기는 법이 없으니 남들 연애담에 등장하는 애인 팔목 때리기 게임에서 애인 팔목을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하곤 호호 불어주었다는 이야기는 나에겐 거의 영웅전설에 해당한다. 그런 사람이 온갖 "도박"이 등장하는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결론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재미라고 한정지어 말하기에 미안할 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주인공 카이지는 도시 변두리를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나 하는 변변치 않은 청년이다. 가진 것도 없고, 별로 배운 것도 없는 그저그런 청년인데, 심성이 곱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진 자들에 대한 공연한 복수심에서 남의 고급차에 못으로 흠집내기를 일삼는다. 그런 어느날 카이지에게 사채업자 엔도가 찾아온다. 친구의 빚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그가 평생동안 일해야 간신히 갚을 수 있을 어마어마한 액수의 빚을 변제해내란 것이다. 엔도는 카이지에게 평생 빚을 갚으며 살던지 아니면 재애그룹에서 운영하는 도박선의 게임에 참가하여 빚도 갚고 일확천금도 얻을 수 있는 길을 택하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이야기한다. 카이지는 고심 끝에 게임에 참가하기로 한다.

만화를 보기 전에 나는 잠시 하다못해 고스톱도 여러 규칙들이 있어 게임 규칙을 모르는 사람들은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데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선 얼마나 어려운 게임들이 벌어질까 내용을 이해못하면 어떻게 하지란 염려를 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도박)의 규칙은  매우 단순해서 도박을 모르는 이들도 이해하기 쉽다. 이 만화엔 첫번째 도박 "한정 가위바위보"로 시작해서 "용사의 길", "E카드", "제비뽑기", "지하친치로", "빠찡코"에 이르기 까지 모두 6개의 도박이 등장하는데 작가 노부유키는 만화를 보기만하더라도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을 알기 위해선 함께 술을 마셔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함께 도박을 해보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 노부유키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도박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존재 방식과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도박을 아는 이들은 도박을 통해 돈을 따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소위 타짜들이 이야기하는 도박의 십계명 가운데 첫째 "카지노의 규칙은 카지노 업체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잃는 것은 당연하다."이다. 얼핏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패자에게 쓰레기라는 치욕을 안겨주며 승자가 패자에게 한없는 경멸을 보낸다. 리네카와는 "너희들은 계속 져왔기 때문에 지금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빈궁하고... 꾸물꾸물... 인생의 밑바닥을... 기고 기고... 기고 또 기고 기고..., 기고 있는거야...! 왜냐? 그것은 너희들이 오로지 계속 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기지 못하면 쓰레기.. 이겨야만한다... 이겨야만한다!"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진 뒤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의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종종 한 명의 천재가 100명의 무능한 직장인들을 먹여 살린다는 식의 주장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곳이 현재 우리 사회의 풍속도가 아닌가.

"도박묵시록 카이지"엔 숱한 명대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 명대사들은 "카우보이 비밥" 류의 쿨하고 철학적인 그럴 듯한 외피를 뒤집어 쓴 낭만적인 대사들이 아니다. 이 작품의 주요 명대사들 가운데 대부분은 카이지를 철저하게 경멸하고 자신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도박을 하기 위해 온갖 치사한 규칙과 트릭을 이용하는 리네카와의 입에서 나온다. 그 가운데 압권인 부분을 소개해본다.  리네카와는 도박에 나선 이들의 심리를 패자의 것이라 말한다.

보통 치료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성이 병들어 있어. 그 병이란... 어떤 사태에 이르든 철저히 진검 승부를 하지 못한다는 병이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놈들은 너무도 깊이 그 생각에 빠져서, 자신의 공상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바보천치들이야. 언제든지..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빚을 떼어먹든, 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 사람을 죽인다 해도 말이야...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용서 받는다. 왜냐하면.. 지금 일어난 이 사태는 어디까지나 '가짜' 고, 진짜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야. 거짓말이 아냐. 그 증거로 지금 이렇게 명백하고 적나라하게... 목숨을 건 승부고, 패배는 죽음이라고 얘기 했는데도, 놈들은 그걸 자기 편리대로 멋대로 왜곡하고있어. ...<중략>... 자기 사정이 나빠지면 도중 하차라니... 뿌리째 썩어 있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어. 저런 놈들은, 평생 그 '가짜'에서 눈을 뜨지 못해. 우둔하게 자고싶은만큼 자고, 억지로 일어나서, 반쯤 자고있는 듯한 의식으로 매일을 반복하지. 따분한 걸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그 근본원인은 외면하고, 조금 열중하는 순간이라고 한다면, 보잘 것 없는 도박이나, 별 상관도 없는 여자를 쫓아 다닐 때 정도... 왜 그런 욕나오게 재미없는 기분으로 이 인생의 귀중한 하루하루를 소비하고있느냐면... 언제나 어떤때든지 현실은 놈들에게 있어서 '가짜' 이기 때문이야. 즉, 진짜가 아닌 ... 이 현실이... 자신의 진짜 현실일 리가 없다... 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지... 따라서,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놈들은 계속 착각을 하는거야. 내 진짜 인생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진짜 나' 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이 정도라고, 질리지도 않고 계속 그렇게 착각하다가 결국은..., 늙고..., 죽는다! 그 순간 싫어도 깨닫게 될꺼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것이, 통째로 '진짜' 였다는것을! 사람은 가짜로 살고있지도 않고, 가짜로 죽을 수도 없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리셋하듯, 인생을 새롭게 포맷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것이다. 과거의 잘못들을 지우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는 욕심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과거에만 사로잡혀 현실을 자기 것으로 깨우치지 못할 때의 위험, 도피 심리를 이보다 적절하게 나무라기도 참 쉽지 않을 성 싶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읽노라면 무한경쟁 시대에 어떤 마음 가짐으로 남들을 짓밟고 올라서며 살아야하는지을 알려주는 "처세술의 보고"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이 작품이 그와 반대로 저들이 짜놓은 무한경쟁의 카지노, 즉 다수의 사람이 패배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카지노의 운영자들인 최상위 계층의 일부만을 위한 게임 경연장이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깨달을 수 있다. 카이지가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던 리에카와를 넘어서는 순간, 카이지 앞엔 다시 제애그룹의 넘버원 헤이토(효우도)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순간 리네카와는 거대한 도박장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 게임의 승자는 리에카와도, 헤이토도 아닌 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카이지는 제애그룹과 헤이토에게 도전하여 승리하기 위해 여러 차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들은 카이지에게 도움을 얻고서도 그를 돕지 않는다. 믿음을 저버리고 배신한다. 이런 순간 도박판은 우리 사회의 축도가 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세상에 던지는 비수 같은 한 마디 "타인의 비참함을 보고 돕지 않는점... 죽게 내버려 둔다는 점에서는 다를바 없어... 마찬가지야... 돈을 보내면 구원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넘치고 있는데도 우리는 보고도 못본체... 결코 돈은 보내지 않아. 결국 자신의 물욕과 쾌락에 돈을 쓰고 있어. 즉, 철저하게 모른체한다. 남이 아무리 굶주리든... 죽든... 괴로워하든... 알바 아니다... ...99.9%... 사람은 남을 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을 구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아프지 않으니까!!"라고 말이다.

복권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권을 판매하고 그 수익을 통해 공공사업이나, 공익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첨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복권을 사는 이들은 주로 어떤 계층일까? 대개는 중산층 이하에 속하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권은 빈자의 호주머니에서 빼낸 돈을 이용해 이를 다시 공익사업에 지원한다는 말이 된다. 자본주의는 게으름을 비판하고, 근면성실을 강조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의식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부자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근면성실하게 노력해서 성공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직하게 노력해서 돈 번 이들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자본가들은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기독교적 실천 윤리를 강조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기 위해 사회의 구조적 관계를 은폐하고, 마치 다른 것인양 변환시킴으로써 사회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왜곡 시키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세계에 대한 개인의 진짜 동기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여 가짜 동기를 상상하게 만들고,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모순을 상징적으로 해결하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미화된 노동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재화를 창출할 수 있을 만큼 생산성이 확대되었지만 노동자의 행복은 실질적으로 증진되지 않았다. 혹시 노동자란 말이 듣기 싫은 분들은 개인의 행복이라고 해두자. 노동자들은 이전과 같은 생활 수준을 누리기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매달려야 한다. 예전엔 아버지만 일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어머니들도 나서서 일해야 한다. 사회는 좀더 좀더 많은 것을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선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벌기위해선 더 많이 일해야 하는 노동 중독 증상이 강화된다.

노동자들이 창출해낸 재화가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면, 이런 현실을 노동자들 스스로의 자각으로 깨뜨리지 못하고, 좀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좀더 많은 노동에 매달리는 동안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노동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없이 진행되는 동안, 패할 수밖에 없는 카지노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즉, 더 많은, 혹은 전혀 쓸모없는 것들을 구입하고,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웰빙하기 위해 돈을 버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다보니, 지방이 축적되고 다시 건강을 위해 돈을 들여 운동을 해야하는 것처럼 또 그만큼 많은 일을 해야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이제 빈곤의 악순환은 어느 정도 벗어났을지 모르나 이보다 더 치명적인 '풍요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affluence)' 은 사회 구성원들 누구에게도 공존을 허락하지 않는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 라는 이 좋은 글귀는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 정문에 붙어 있었다. 이 거대한 도박판,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러시안 룰렛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카이지는 인간 상호간의 연대와 믿음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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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과장 1
히로카네 겐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시마과장

 

일본 경제가 급속도로 확장되며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시점의 이야기다. 하쯔시바의 실제 배경은 전자업계의 초일류기업 마쯔시다이다.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가 회사생활을 한곳은 마쯔시다의 선전부로서 실제 시마의 초기 역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시마는 여기서 팜플렛,달력 제작 등 홍보에 관한 일을 하다가 상사의 눈에 들어 미국지사에 파견된다. 여기서 주요 파벌간의 갈등에 끼어들었지만 슬기롭고 원만하게 해결해가면서 점차 발전해나간다. 미국의 뉴욕, LA, 라스베가스 및 필리핀까지 세계 여러 곳을 오가는 시마의 모습은 당시 세계 각지에 나가 활동하던 일본 회사원들 모두의 활약상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 만화의 장점은 뛰어난 사실성이다. 만화를 통해서 일본 대표적인 기업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우선 조직은 하나의 봉건 영토이고 조직원에게 충성심은 절대적으로 강조된다. 운명을 같이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곧 배신자로 취급된다. 특히 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인줄 알고 섯불리 받았다가는 자신의 말이 녹음되어 상사의 책상에 놓이는 사태를 맞게된다.

조직의 가치는 때로 극단적으로 미화되어 회사가 곧 신성한 곳이라는 표현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미국지사에서 여자와 애정표현 하다가 상사에게서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대목에서 이 이야기가 나온다.

신성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만큼 절대적이 된다. 시마를 보면 회사의 특명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행한다. 심지어 홍보 관련해서 외부에서 주는 상을 받기 위해서 섹스파트너 교환을 하는 일까지도 감행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가족을 얼마간 버린 상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본사의 전근 명령을 받았을 때 주저하면 감점한다는 제도도 작품에 나온다. 시마는 마침 와이프와 거리가 있던 상태라 거의 주저하지 않고 사령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덕분에 A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가는 있게 마련이다. 시마를 비롯하여 부장이상으로 출세하면서 멀쩡하게 가족을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다른 애인이 있고 본처와는 사실상 별거에 들어간 상태다.

참고로 일본은 간통죄가 없다. 이것이 더욱 가정 파괴를 부추긴다. 거기에 더해서 원조교제의 분위기도 일조를 했다.

 

그러면 이렇게 소중한 가정도 파괴되며 일중독에 빠진 일본 회사원들이 가지는 보람은 무엇일까? 작품의 마지막에 사장으로 오르는 나까자와의 입에서 나오는 한 단계 오를 때 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이사가 되니 개인이라는 단위가 세계의 움직임에 관여할 때 공포감이라는 느낀다.라는 거창한 말이 바로 그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준다.

 

2차 대전에서는 분명 일본이 졌지만 비참한 패전을 극복하고 이제 새로운 경제전쟁에서 이겨나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 경제전사들이 느꼈던 프라이드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회사는 그만큼 상응하는 대가를 줄 것인가? 대가는 준다 하지만 공정하게 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성장이 정체함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실력보다 세력다툼에 나서는 여러 파벌이 생겨난다. 공동 운명을 가진 파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실성과 실력보다는 정치에 의해 자리가 결정된다. 덕분에 출세하려면 실적과 실력으로 갈 수 있는 자리는 기껏 과장이다라는 후쿠다 상무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상사에게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인간은 매력이 적다. 대표적으로 내세운 존재는 곤노 주임이다. 상사에게 있는 힘을 다해 충성하는데 황당하게도 부인까지 실은 상사의 첩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자신이 위에 충성을 바쳤으니 다시 아래에도 그만큼 요구를 한다. 그래서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의 주범으로 행동한다. 전형적인 상후하박의 모습인데 실제 직장생활에서 대부분의 출세주의자는 이런 모습을 나타낸다.

 

시마는 파벌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거기에는 바로 영어라는 포인트가 있다.작가가 합리적으로 제시한 근거는 그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그 후에도 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탄탄히 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전공투(한국으로 하면 전대협, 한총련이지만 훨씬 급진적으로 운동을 전개함) 세대라 대학때 거의 공부하기 힘들었다고 보면 시마의 영어실력이 희소성을 가져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덕분에 해외 파견이나 각종 외국인들과의 협상에서 시마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장이 될 때까지 한번도 해외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여러가지 문화를 오가면서 원만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그래서 설정된 것이 남들의 도움이다. 우선 어디를 가든 입사동기를 찾는다. 멀리 뉴욕이나 필리핀에서도 그리고 오사카 지방이나 다른 곳을 가도 늘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함께하며 회사 분위기를 익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동기들이다. 이건 일본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주요한 특성 중 하나다. 다른 파벌은 공식적으로 불허하지만 동기들과의 모임은 장려하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조직간의 의사소통과 업무협조를 위한 백도어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여자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파벌로부터 독립되어 낭인을 표방하는 시마지만 항상 상사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다. 왜 일까? 시마가 가진 독특한 매력으로 상사들의 가장 어려운 뒤치닥거리인 여자문제를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냥 치닫거리가 아니라 여자들의 적극적 구애를 적당히 받아들이며 자신도 적당히 못 이기는척 그 분위기에 빠져든다.

여러 여자들은 때로는 몸까지 던져가며 시마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 도움을 준다. 왜 시마에게 이런 행운이 계속 따르냐고 묻는 독자에게 작가가 내놓는 답은 시마에게는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 만화 곳곳에서 작가의 배려는 쉬지 않고 시마가 보인 선행을 열거한다.

파벌 싸움에서 밀려버린 옛 상사에게 찾아가 솔직하게 암이라고 알려주고 숨겨진 아들을 만나는데 도움을 준다. 인종차별 당하는 흑인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 놓쳐버린 계약을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 아침 전철에서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하라고 핏대올리며 싸우기도 한다. 또 경품으로 받은 비싼 옷을 길거리 노인에게 넘겨준다.

어찌 보면 누구도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하는 사람은 드문 그런 행동들이 계속 나타난다.

 

이 작품의 디테일한 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한국의 독자로서 내입장에서 이렇게 만화를 통해서가 아니면 언제 긴자의 요정을 가볼 것인가, 직장내 성희롱의 생생한 현장 나아가 일본 이사회의 치열한 권력 암투를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기업가들의 홍보용 자서전을 아무리 보아도 이런 생생한 내용은 결단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생생함은 아주 작은데서도 나타난다. 맨하탄의 일식집에서 요리사가 투덜대며 이 사람들은 튀김을 기름에 바싹 튀겨내기를 원한다고 하는 말도 취재에서 얻은 내용일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새우와 오징어는 기름장이 아니라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 맛있다고 하는 팁 하나까지 제공하는 친절함도 보여준다.

 

작품이 리얼하다 보니 찬찬히 보면 거꾸로 일본경제의 약점이 보인다.

무역적자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고강도 압박에 의해 엔이 높아지면서 변화되면서 국내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에 거품이 급속히 형성된다. 거품이 좋지 못한 점은 불로소득을 만들어 결국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욕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처음에 기업은 호황에 좋아한다. 수출에서 본 이익으로 해외 투자에 나서게 된다. 록펠러 센터를 비롯해서 미국의 부동산이나 심지어 고흐와 같은 그림에까지 투자한다. 하지마 이러한 투자가 기존의 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일본의 강점은 제조업이었다. 미국과 맞붙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의 철강,자동차,조선,전자 등 제조업 부문의 기술력 수준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각종 항공모함,비행기,탱크를 만들었던 그들인지라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빠른 속도로 산업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효율이란 부분에서 우위를 자랑했던 일본이지만 소프트한 부문에서는 그만큼 경쟁력이 뒤따라주지 않았다.

당장 만화에서 주인공들이 거금을 들여 사들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차후 경영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렇게 된 원인 또한 만화를 잘 읽으면 나온다. 에피소드 하나로 자기 뜻을 펴지 못하고 신입사원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에 매우 우수한 재능을 가진 신입사원은 광고 부서를 희망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으로 배치 받고 만다. 인사팀에서 그를 배제한채 광고 부서에 배정한 그 해 신입사원들은 분명 역량보다는 누군가와의 연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풍조가 점점 심해지다 보면 하츠시바는 꽉 막힌 조직이 될 것이고 결국 하드 한 분야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던 조직이지만 막상 소프트한 분야에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머리 좋은 엘리트로 뭉친 기업답게 여러가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지만 성공율은 점점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마쯔시다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3DO라는 게임기를 만들어 도전했다. 엘리트 중심의 경직된 조직이 만들어낸 이 작품이 과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의 패미콤과 시장에서 겨루어 얼마나 초라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결과는 일본 기업 최대 실패작의 하나로 기록되고 말았다. 참고로 한국의 LG 그룹도 여기에 수억달러를 투자했다가 똑 같이 날려버렸다.

소니의 성공요인은 역시 학벌보다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조직에 수용한 것이었다. 시마 또한 이러한 문제를 잘 알았고 아마 작가인 겐시 또한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실제 하쯔시바는 그렇게 움직이지 못했다. 차후 사령탑에 오르는 인물들도 이분야에서 큰 개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또 이 만화에는 한국과 중국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 또한 90년대에 와서는 일본의 약점이 된다.

일본은 실은 한국과 중국과는 그리 좋지 않은 사이다. 배경에는 역사적 앙금이 깔려있다. 한국과 중국은 각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따라 두나라 씩 모두 네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나라 모두가 한목소리를 낼 때가 한번씩 있다. 바로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할 때다.

중국은 대범한 나라라 국교 수교할 때도 그렇게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남경에서 벌어진 대학살이나 731부대의 만행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일본인들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역으로 일본의 해외투자에서 중국의 비중을 낮게 잡는 원인이 되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는 늦었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중국에 투자를 시작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보면 동남아와 중국을 비교해 볼 때 비용과 생산성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중국은 동남아에 비해서 높은 성과를 가져왔다. 이는 곧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과 일본의 대표기업들과의 경쟁력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작가가 인식한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일본기업의 발목을 잡고 후속작 시마부장에서 그 후유증들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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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10-2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입니다.
작품에 비해 리뷰가 아깝습니다.
사실 '시마과장'은 남성들의 환타지지, 그렇게 심오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사마천 2004-10-2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마부장> 막바지에 나오는 기업의 사장 선출 방식과 <정치구단>의 내각제에서 수상 뽑는 방식이 매우 흡사합니다. 그 나라의 문화적 전통이 정치,사회 곳곳에 일관된 특성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보여집니다. 그런점에서 보면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이죠. 일본을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던 만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특색 중 상당수 가령 후쿠다,곤노 등의 인물은 우리 기업에도 많이 있죠. ^^

바람구두 2004-10-2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마과장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막상 손에는 잡히지 않는 만화책이었는데, 사마천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해가 보다 쉬워질 것 같군요. 추천하고 갑니다.
 
오은하의 만화토피아 - 마니아가 추천하는 일본 망가 베스트 50
오은하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참 마음에 드는 책이라 여러 차례 사려고 노력했다. 알라딘,Yes24에는 없고 기어코 시도하다가

반디북에서 살 수 있었다.

나온지가 좀 돼었는데 저자가 이분야를 떠났는지 후속판이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기자 출신이라 짧은 문장에도 많은 정보를 담아 쉽게 읽히면서 독자가 대상이 되는 만화를 읽고 싶도록 유도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여기 소개된 많은 만화를 읽어보았는데 대체로 저자의 안목 높은 추천에 동의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소개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관련된 대담도 좋다.

일본만화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되도록 저자가 평론계로 복귀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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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1
가와구치 가이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전공투에서 테러리스트까지 발전하는 일본의 학생운동 모습을 기대하고 보았는데 결과는 영 실망이다.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재미 없을까봐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하지만 가와구찌 가이지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많이 못 미친다. 주요 인물의 행동 방식도 별로 논리적이지 않다. 단 우경화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볼수는 있다.

정치에 대해서라면 히로카네 겐시의 정치9단을 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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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구 1
가와구치 가이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읽다가 구역질 나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그래도 덮기는 아깝다. 이 책의 저자 가와구찌 가이지는 89년부터 십여년간 침묵의 함대를 연재해서 무려 2000만부 이상 팔아치웠다. 간단히 계산해도 인세만 100억은 될정도의 대박을 만들었다. 베스트셀러라고 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당시 일본이 처한 시대상황을 정확히 짚어내고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우향우, 덕분에 일본의 사회 곳곳과 멀리 미국까지도 화제로 올라섰다.

일본의 우향우는 과연 한국인들에게 좋은것인가? 당연히 구역질난다. 그들에게 과거는 없다. 보고싶지 않은 것은 멀리 치워버리거나 아예 덧칠한다. 역사교과서 파문은 이러한 흐름의 표면적이지만 크게 보면 사회당 공산당 등 좌파정당을 몰락시키며 일제히 우경화해버리는 그런 사회의 흐름이 정작 문제다.

그들의 지향점으론 내거는 것은 먼저 보통국가론이다. 당연히 국가는 보통 군대도 가지고 자위권도 행사한다. 그런데 그들이 볼 때 일본에는 군대도 없고(자위대의 갈등 문제는 작품속에 계속 나온다) 덕분에 돈은 내는데 세계평화에 기여(?) 하지는 전혀 못한다. 그래서 이제 보통국가로 돌아가자는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논리다.

하지만 이런 논리의 단순함을 넘어 그들은 훨씬 교묘한 책략을 보인다. 과거 내가 한대 맞았으니 이제 너를 한대 때리겠다. 이런식의 논리는 별로 정당성이 안보인다. 적어도 상대방까지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이제 싸우지 말라가 한단계 위의 논리다. 가이지는 바로 이 논리를 사용한다. 침묵의 함대에서 내내 주장한 것은 평화를 위한 무장, 모두에게 공정한 질서다.

지금 세계는 2차대전 이후 오랜 평화속에서 다시 전란으로 뛰어들고 있다. 주범은 바로 미국이다. 핵과 경제력의 우위를 가진 미국은 과거 로마식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강요하면서 주변 문명들과 전쟁을 자유롭게 벌인다. 이 단계에서 한반도도 예외가 아닌 점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 가이지의 논리가 먹힐 소지가 나온다. 핵을 가진자가 과연 정당성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핵잠수함으로 풀어본 것이 침묵의 함대고 과거 역사 뒤집기로 나오는 것이 바로 지팡구다. 그 점에서 지팡구의 진행은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지팡구에 나타나는 일본의 무조건적 자기 합리화는 물론 역겹다. 거기에는 남방군도에서 죽어가는 조선인 징용자, 정신대의 모습은 없다. 일본인 요정의 아리따운 아까시, 열심히 스스로 일하고 포로를 절대 학대하지 않는 일본군인의 성실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부분은 어차피 일본 만화를 보는 입장에서 한번 접어주고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가이지의 만화는 꼭 모든 걸 좋아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일본인의 속내의 본심을 알게 해주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년에 한번 정도 교과서 파동에만 열을 내지 말고 제대로 일본을 알아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목소리만 컸지 이해가 얕는 우리의 소리가 한층 두터워지기를 기대하면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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