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열린사회의적 > 정부의 강인한 대안과 수용성이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안없는 집권은 제발...ㅜ.ㅜ]

노무현의 정치개혁 실패는 정치와 국민들을 이분화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대표하여 대안을 조직함으로써, 한편으로 대중참여의 기반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체제의 안정에 기여하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민주주의는 기존의 냉정반공주의의 헤게모니와 보수독점의 정치구조에 그저 얹혀 있는 외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특권적 기득구조와 계급구조는 심화되었고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은 더욱 약화되었으며 개인의 삶도 황폐화되었다.(17쪽)"

이 책은 4부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1부에서는 문제제기를 하며, 2. 3부에서는 한국의 보수적 민주주의 기원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살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에 벌어지는 시간의 연장선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한국의 보수적 민주주의가 생성되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인가를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국가보안법입니다. 국보법이 한 개인이 아닌 국가나 정치 담론에 미치게 될 경우 그 파장은 어디까지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보수적 민주주의를 통해 굳건하게 굳어지는 것은 개인 삶의 황폐화이자 계층 구조간의 큰 갈등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주의는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가? 내가 본 지은이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양당체제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형성과정에서 이념적 논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투표권이 투쟁에 의한 획득(자의식 형성)이 아닌 "1948년 5월 10선거를 기하여 일거에 부여(60쪽)"되었으며, 선거를 "분단국가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학생. 좌파세력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보이콧 한 상태에서 치러지며, 더욱이 "민간조직이었지만 경찰이 주도한 사실상의 공조직인 향보단(鄕保團)"의 통제가 이루어졌으며, 제주 도민들이 보이콧하기 위한 소요가 4.3사건으로 번졌습니다. 즉 선거를 분단국가로 인식한 민족적 세력(좌파를 포함)은 보이콧한 반면에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선거를 통해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태생적 한계를 품게 됩니다.

한국전쟁을 거치게 되면서 북한에서는 민주주의가 사라진 반면에 남한에서는 좌파적 세력과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무리들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념의 극단화가 이루어집니다. 좌파가 사라짐은 다양한 정당의 형성을 막는 보루가 되었습니다.

"이 두 그룹만이 정당체제를 주조하게 됨으로써 한국의 정당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 첫째, 여야당은 이념적으로 동일한 지평위에서 경쟁한다. 둘째, 양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중심적 성격이 강하다. 섯째, 사회의 계층적.직능적.직업적 이익들은 그들 스스로의 조직화를 통한 방식으로는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 넷째, 그러면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사회 전체, 국가 전체, 민족 전체의 대의와 이익을 내세움으로써 포괄정당적 성격을 갖는다.(52쪽)"

이렇게 양당체제의 동일한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은 "정당체제의 저발전(203쪽)"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부터 분리 내지는 괴리된 자율적 영역으로 구축하면서 산업화, 민주화를 통한 국가를 형성합니다. 그들만의 잔치, 수동혁명(위로부터의 혁명)은 한동안 한국 정치의 테제가 되었으며 보수적 민주화를 형성하였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에 대한 실망은 정치에 대한 거리감을 키웠으며……. 비판과 견제가 없는 정부는 난장판이며, 행정 관료는 무사안일. 보신주의를 화석화되어갑니다.

한국의 양당체제는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를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설령 안으로 곪아서 썩어갈지언정 상처가 없는 한국 사회는, 좋은 무늬를 덮어씌운 고물 자동차에 비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吳越同舟
한국 정부가 양당체제를 통한 정치권력을 이루면서 묵시적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국보법입니다. 내 서재에 『태백산맥』이 꽂혀져 있지만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이니 이적표현물 소지에는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즉슨 이적 표현이나 불고지죄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남몰래 구속이 되지 않으니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지은이는 이런 나의 협소한 사고를 큰 틀에 가두어 새롭게 보여 주었습니다.

국보법이 미치는 파장은 "자기검열"이며, "다양한 정치적 이념"을 가두어 버리고 "획일화 된 이념"을 통해 중앙 집중화를 시킨다고 합니다.

"냉전반공주의의 또 다른 부정적 효과는, 한국사회의 정치현실에서 보편적인 정치언어로서 좌와 우라든가, 또는 영어의 people, 프랑스의 peuple, 이탈리아의 popolo 등에 해당하는 적절한 말을 사용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정치언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쉽게 채색될 때 인민. 민중. 계급 등의 말들은 이내 일체의 좌파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합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북한 공산주의와 연결될 수 있는 '이념적 불러내기(ideological interpellation)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언어와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정치의 실천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치사회의 여야구조 또는 정당체제는 이념적으로 좁게 열린 스펙트럼에서 각축할 수밖에 없고, 사회 세력이 시민사회의 수평적. 기능적 갈등을 조직하거나 사회의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대안적 담론이나 정치운동을 조직화하기는 어렵다.(65쪽)"

우리의 국회 혹은 나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둔감하다는 것은 우리들의 이념적 편향이 얼마나 우물 안에 갇혀져 있는가를 반증하는 것일 될 수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 정당의 갈등 구조는 정치이념에 의한 것이 아닌 자기의 이익을 통한 이권다툼이 아닌 것입니다.

"한국의 정당체제에서 정당이 대표하는 사회균열의 범위와 기반은 매우. 협소한 반명, 정당간의 갈등의 강도는 격렬할 정도로 강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갈등의 강도가 높은 이유는 갈등의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이다. 정당들의 이념적 기반이 매우 유사한 조건에서 정당간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재란, 내용은 없이 감정을 자극하고 적대적 열정을 동원하는 것밖에 없다.(208쪽)"

분명 우리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쓰면서 남의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고, 일본이 대동아 구상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중국이 동북아 공영권을 구상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국회는... 남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자 강아지처럼 짖는 행위가 아닌 자주적으로 우리 땅을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유대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념의 다양화와 실천 가능한 대안을 통한 집권, 개방성과 자율성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 등에 귀 담아 듣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 공화국이 자치하는 중앙집중적 권력도 분산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할 것이다. 그리고 행정관료의 무사안일주의 정책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며, 언론은 가십거리의 기사를 흘려보내 국민들의 눈을 어지럽게 할 것이 아니라 커다란 시야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정치에 대한 갈망은 커지는 반면에 집권당의 행태는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니 가관이다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여야당의 전략적 행위라면... 우스게 소리로 하는 "일본은 관료가 하고, 한국은 언론이 한다"는 시쳇말 속에 뼈가 있지 않나 생각을 가져봅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과연 우리는 수많은 피의 댓가로 얻어낸 민주화를 민주주의라는 틀로 잘 꾸려가고 있는가? 피 흘리며 죽어간 동지와 선배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오늘을 살고 있는가? 아직 넘어야 할 뫼(山)가 많은 듯 합니다.

덧붙임 : 지은이는 한국의 재벌에 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장하준의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은 이와는 다른 곳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박정희가 이룩한 근대화에 대한 경험적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를 한다는 점입니다. 국가의 강인한 견인차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한 사람이 지니는 무한 가치를 잘 활용하는 정부의 혜안(慧眼)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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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알게된 것은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였다. 일본문화의 수입개방이 허용되면서 쏟아져 나온 책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감명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온 책들이 그저 그렇겠지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지만 이 책은 분명 달랐다. 대중문화라는 매우 넓직한 범위 안에서 이런 저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꽤 깊이를 유지했다. 일본 프로야구 하나도 세밀히 들여다보면 일본 사회를 알 수 있게된다던가 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는 이해는 아니다.
그래서 후일 장정일이 김지룡과의 인터뷰에서 대중문화 하나를 다루면서도 다른 잡다한 일본소개 서적보다 훨씬 일본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두번째로 손에 잡은 책이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이다. 본인의 유별난 인생편력을 시간에 맞추어 하나씩 소개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보나 내가 스스로 돌아보나 범생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무척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솔직한 고백들과 색다른 경험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무런 한계 없이 방종으로 흐르거나 방향없이 무의미한 삶으로 사라져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이책을 썼던 시점이 IMF로 만들어진 경제불황이다 보니 특히 일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층들이 많이 좌절하고 있었다. 이 때 작은 것에서도 재미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김지룡의 주장은 꽤 호소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저자 본인 또한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감명을 받아 무려 10번을 읽고 나서 편지를 썼다던가 하는 경우였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 써내려간 책이 바로 <나는 솔직하게 살고싶다>였다. 이 책은 일본의 대중문화 중에서도 특히 성과 관련된 부분을 자기체험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읽다가 너무 재미있었다. 남자들에게 성에 대한 이야기는 늘 과장 섞인 무용담으로 떠돈다. 많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가끔은 그런 무지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보게 된다.
하여간 이 책은 꽤 충격적이다. 빨간 비디오를 찍는 포르노 배우가 되어보려던 시도, 동경의 각종 유흥가에 한국관광객을 몰아주면서 받은 리베이트, 일본 생활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한단계씩 올라가는 빨간 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찬다. 나중에는 아예 홀딱 벗도 원조교제의 한가운데까지 탐색해보는 저자를 보면서 정말 웃지 않고 버티기가 어려웠다. 읽다보면 앞서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많은 사람들 - 의사, 저술가, 각종 지식인 - 의 무지를 발견하게 된다. 아는 것에 비해서 행세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또 얼마나 허위와 무지가 발생하는가?
이책을 보기 껄끄러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개망나니’(?)에게 딸은 주신 저자의 장인, 장모님이실 것이다.
그 대목에서 물론 저자도 고민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까발겼다.
그의 용기와 경험을 보아서라도 꼭 집어들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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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3-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의 소개글을 읽으니,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
 

징기스칸에 대해서는 나온 책들이 많고
그 중에는 꽤 괜찮은 책도 있다.
우선 <원조비사>라고 - 일명 몽고비사로 번역
되어 있는 책이 있는데
이는 정복전쟁이 막 끝나자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다들 모여 한마디씩 늘어놓은 것을
잘 정리한 일종의 영웅서사문학이다.
두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용을 들춰보면 충격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특히 징기스칸이 어려서 - 16세 정도
이복형제를 활로 죽인 일은
지금 우리 개념으로 보면 솔직히 충격이다.
이유는 딱 하나.
사냥한 새 한마리를 그냥 집어 갔기 때문이다.
또 어려서 겪었던 여러가지 고난에 대해서
쭉 서술해놓았는대
이런 것들 중 상당수는 위인전에 고스란히
실려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고 의심하는 그의 성격
특히 개가 두려워 피해다녔다는 둥 하는 면모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면모들이다.

이책 <몽고비사> 이외에 현대에 나온 해설서들도 몇권있다.
그 중에서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여러가지 사료들을 적절히 비교해가면서
정말 제대로된 역사는 무엇인가를 꾸준하게 탐구해가는
솜씨가 뛰어나다.

이렇게 두권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100만명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들이
개,쥐를 잡아먹고 살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세계를 정복했다면
그 안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징기스칸이 놓여있고
그의 인간경영학이 세상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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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9-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에서는 (아시죠? 그 신간) 이복형이 갖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들판으로 유인해 자신의 친동생과 앞뒤에서 활을 쏴 죽였다고 나오더군요 하여간 저도 갑자기 세계를 지배하게 된 몽골의 그 저력이 뭐였는지 넘 궁금합니다 지식산업사 책이라, 꼭 읽어 볼께요 ^^
 

오스만족은 원래 터키의 동부에 거주하던 유목집단이었다. 비슷한 생활을 하던 셀주크 제국은 그보다 앞서 제국을 건설했지만 이들이 몽고족에게 격파되자 오스만족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빠른 속도로 주변을 정복해나간 이들은 곧 대제국을 건설하게되었다. 헝가리의 귀족을 격멸시킨 바예지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메드 등의 업적도 크지만 무엇보다 대제라고 불리우게된 술레이만이 남긴 업적에 주목해야한다.
그가 남긴 군사적 승리들도 경이롭지만 기독교인들로부터 가장 기사다운 이교도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태도 또한 주목받아야한다.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고 패자를 모욕하지 않았던 그의 인품은 대외적인 교섭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프랑스왕과는 동맹을 맺어 합스부르크 왕가를 견제했고 폴란드의 군주는 직접 조공을 하러 왔다. 오스트리아가 맺은 조약의 내용을 보면 스스로를 속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업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무적에 가까웠던 군사력을 꼽아야할 것이다. 제국의 초기 정복시대에는 진자라는 유목민 출신 기병이 주력이었다. 종교로 단결된 정신력과 성과물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합리적 가치과 결합되어 이들은 정복전쟁에 몸을 던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엄청난 폭발력은 제국을 성립시키고 확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제국이 어느정도 부피가 생긴 다음에는 초기의 열정만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유목시절에는 거의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던 귀족층이 왕조에 도전하게 되고 정복전쟁에 몸을 바쳤던 부족원들의 후손들은 결코 예전처럼 용맹하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복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제국의 구성원 중에서 동족의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이때 정복 제국은 첫번째 위기를 맞게된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유목국가는 외부의 새로운 도전세력에 의해 자리를 양보하거나 내부의 도전으로 붕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꾸준하게 확대되었고 유능한 행정관료들은 새로운 제도를 창안해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게 된다. 당시 아랍사회의 학문과 지식이 서구보다 나은 편이었고 이들의 대규모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는 그 시점에서 매우 뛰어난 합리성을 발휘하였다.
오스만이 만들어낸 제도 중 매력적인 것은 예니체리였다. 7-8세의 기독교 소년들을 뽑아 개종과 함께 교육을 시켜 행정관도 뽑고 군사력으로 길러낸 이 제도는 매우 독특한 창안물이다. 결혼을 할 수 없지만 하루 한끼의 식사는 황제가 내리는 특식을 받았던 이들은 개인적인 관계로 술탄과 맺어지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서구의 기독교 세계가 아직 기사와 용병의 합으로 이루어진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근대적 의미의 상비군 역할을 하는 예니체리는 무적의 군사력을 발휘하게된다.
여기에 보완적으로 사하피라는 급료를 받는 지방기병을 유지하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징집병도 동원해서 거대한 무력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기술적 발전으로 대포가 활용되게 된 것 또한 새로운 유목민의 도전을 막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결국 유목제국은 종교적권위를 통한 새로운 가지 창출과 막강한 물리력을 통해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게 된다. 청왕조는 이전의 어느 유목민족보다 오랫동안 큰 문제 없이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이들 또한 유교와 과거라는 중국제국의 기본요소를 잘 흡수하였고 여러가지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 대포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위력을 발휘해서 유목민들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해양민족이 원래 아니다보니 우수한 배를 만들어 바다를 누비기 보다는 필요한 때마다 해적을 고용하는 방법을 취했다. 원래 해군은 나름대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데 무작정 용감한 육군을 배에 태워 내보내는 방식으로는 노련한 기독교 해군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육지만큼 바다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화된 제국도 여전히 쇠퇴를 만들어내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물리력을 동원한 정복은 결코 무한정 뻗어나갈 수는 없었다. 로도스라는 작은 섬 하나를 공략하는데도 5만명 이상의 군사들이 희생된 것을 보면 당시는 아직 대포를 비롯한 공성무기가 성을 중심으로한 방어 진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따라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촘촘이 건설해놓은 수많은 성들을 모조리 점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소모가 따른다. 즉 확장의 한계효용은 계속 감소하게 되고 따라서 제국은 더 이상 과거의 모델로 발전해가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예니체리와 같은 물리력들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어 국내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이는 러시아의 귀족으로 만들어진 황실근위대가 제위계승에 꾸준히 간섭했던 것이나 로마의 황제근위대가 제멋대로 황제를 폐위시켰던 것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예니체리의 완전한 해체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했다.
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상당부분 동방과 서방의 교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여러 상업도시들과는 악어와 악어새같은 의미의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동방항로와 신대륙을 발견해서 새로운 국부를 획득해가자 상업도시와 제국은 동시에 타격을 입게된다.

전제국가의 약점은 군주에게 있다. 유능한 군주가 등장해서 과업을 수행할 때는 제국의 발전이 많았지만 무능한 군주는 전쟁터보다는 할렘을 좋아했고 의심이 많아 친족을 죽이고 재상을 노예 취급하며 마구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토인비 식으로 말하면 창조력의 쇠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제국은 톱카피 궁전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남겼고 할렘의 문화는 지금도 터키탕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문화를 변방까지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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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한다.

베가본드의 무사시는 목숨을 걸고 최고의 검객이 되겠다고 노력한다. 이러한 면모는 봉건시대의 검사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초밥왕의 쇼타 또한 모두 시대를 넘어서서 초밥 만들기에서 최고가 되려는 열망에 가득차 있다.

자기 당대에 노력하다가 안되면 그 다음 다시 그 다음으로 이어지다보니 가업이 만들어지고 전통으로 이어져내려온다. 조선에서는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옛날 도자기 만드는 비법이 문자로 전해오지 않는다. 반면 도공을 데려간 일본에서는 그들을 장인으로 대접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오늘 뚜렷이 이름 남길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결국 장인을 하대한 조선과 우대한 일본이 공업시대로 접어들며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업이 만들어지고 가치를 인정 받다 보니 가부장권을 무기로 행사하는 부친과 이에 반발하는 아들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초밥왕에서 나오는 키리스미 가족의 비극도 이러한 예다. 맛의달인에서 두 주인공 지로와 우미하라 사이의 긴장 또한 이러한 유 중의 하나다. 은과금에 나오는 일가족 혈투사건도 그렇다.

 

음식

1. 재료에 대한 집착

일식은 재료를 중시한다. 초밥이라는 요리가 어쩌면 밥과 생선 딱 두가지만 존재하는 간단한 듯이 보이는 요리다. 그래서 더더욱 두 재료에 대해 여러가지 연구를 한다. 수십권의 만화에 담아도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다른 만화 대사각하의 요리사에서는 베트남 손님들을 위해 베트남 곳곳을 다니며 모은 재료로 감동을 끌어낸다.

2. 기술

프랑스 요리는 소스와 와인, 이를 활용한 기교가 만들어간다. 일본 요리에서도 기교를 중시한다. 하지만 재료도 기술도 그것만으로 손님의 감동을 만들어내기는 부족하다.

일기일회, 손님도 많고 가게도 많다. 그들이 만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우연이고 또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그 인연을 잘 이어가기 위해 주인은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마음 자세가 일기일회다. 맛의달인에서 우미하라가 성의를 다 하지 않는 요리사를 질책하는 것이나 초밥왕에서 학교 축제용 도시락을 만들면서 단 하나에 대해 빠진 재료를 쓴 제자를 나무라며 주인이 하는 말 그 도시락을 먹는 아이에게는 한번의 식사가 전체에 대한 감정을 나타낸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음식을 상업화 하면서 양많고 값싸게 만들어 경쟁자를 밀어내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 이들 거대자본에 대해 맞서려는 노력은 초밥왕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치열하다. 맛의달인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약간 만화수준은 떨어지지만 신장개업에서도 나타난다.

손님들 각각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살아오면서 감동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그 때 같이 한 음식을 잊기 어렵다. 그런 감동의 순간을 되살리려는 노력 또한 늘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대사각하의 요리사, 맛의 달인, 초밥왕 모두 그 점에서 하나의 진리를 추구한다. 손님을 감동시켜라. 그러기 위한 손님에 대한 배려라는 자세는 음식문화의 핵심이다. 음식도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보니 건강,나이,기타 상태 및 출신에 따라 다 맛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게 마련이다. 이를 획일적으로 규정한다면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

시마부장과 정치구단

두 작품을 보면 수상을 뽑는 정당의 절차와 대표이사를 뽑는 이사회의 절차가 극히 유사한 모습을 띄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봉건제의 유산으로 여러 봉신들의 추대를 받아야 최고 리더로서 자격이 있게 된다. 잘 관찰하면 재미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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