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한때 정치인의 전유물이었던 ‘뻔뻔함’은 이제 대중들의 일상 속으로 … 과연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워함이 없음”이란 뜻이다. 후안무치에 친화적인 정치판에선 상대편을 비난할 때 자주 쓰는 상용어지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선 큰 욕이다. 넓고 묽게 보자. 후안무치를 도덕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는 하나의 인간적 특성으로 보자.

김구가 이승만의 적수가 되지 못한 이유

정치인의 제1 자질이 무엇일까? 단연 후안무치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도덕감정을 고수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인에겐 비상한 수단을 사용하고 상황에 따라 언행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정치인의 제1 자질은 ‘후안무치’다. 대통령이 된 사람은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이 자질이 더 뛰어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만들어내며 그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1990년 1월 3당 합당 발표 장면. (사진/ 연합)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한국 현대사만 살펴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경쟁자들과 비교해볼 때 후안무치 자질이 더 뛰어났다. 예컨대 이승만과 김구를 비교해보라. 김구도 다른 독립투사에 비하면 꽤 후안무치한 편이었지만 감히 이승만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이는 대통령들에게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은 기본이고 거기에 후안무치 자질이 더해져야만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영삼부터 살펴보자. 3당 합당과 내각제 각서 파동은 김영삼의 탁월한 후안무치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계은퇴 식언과 ‘20억+알파’ 사건은 김대중의 후안무치 능력을, 대선후보 전 동교동계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지역주의 양비론의 일시적 위장 등은 노무현의 후안무치 능력을 입증해준다.

대체적으로 보아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후안무치를 저지른 건수가 더 많고 농도가 더 강하다. 피부가 얇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거나 조직의 리더가 된 걸 본 적이 있는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유능하진 않았을 게다.

정치는 인간의 야수적 속성을 다루는 영역이다. 어느 영역치고 그 속성과 무관하랴만, 본격적인 권력투쟁이라는 점에서 정치를 따라갈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경제 영역의 투쟁도 무섭긴 하지만, 그쪽은 이익 중심이기 때문에 이익과 더불어 이념·명분 등이 칼춤을 추는 정치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는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정주영과 김우중이 정치판에 뛰어들거나 기웃거리다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도 후안무치가 경쟁력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의 삼성과 현대차 사태를 보라. 왜 잘나가는 재벌그룹 총수일수록 후안무치의 농도가 강한가? 그건 평소 후안무치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답으로 대신하면 되겠다.


△ 올 초부터 대학 내 선거 관리권은 선거관리위원회로 2004년 총장임명 후보자 선출선거를 하고 있는 한 대학의 교직원들. (사진/ 연합 조용학 기자)

주변을 둘러보기 바란다. 후안무치 자질이 비교적 뛰어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게다. 그들에겐 좋은 점이 많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교섭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비교적 탁월하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쪽은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즉, 같은 선수를 알아보고 요청·요구에 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뻔뻔함’은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후안무치를 자각할 수 있는가? 없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싹튼다. 자신이 후안무치하다는 자의식을 갖게 되면 후안무치를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후안무치를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하는 기분으로 체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의 상식적 판단을 넘어서는 일을 해도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후안무치 자질을 가진 측근 인사들에게 의존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대중은 묘한 동물이다. 그들은 정치인의 후안무치가 필요악임을 흔쾌히 인정하면서도 어느 순간 돌아서서 후안무치하다고 욕을 한다. 언제 어느 경우에 그러는지 그건 확실치 않다. 그들은 “해도 너무하네”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서부터 너무한 건지 그들 자신도 답을 갖고 있진 않다. 그래서 정치는 늘 대중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임이 된다.

1920년대 후반 미국 마피아 조직을 주름잡았던 알 카포네는 “상류사회란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고 이익을 만끽하려는 뻔뻔스러운 놈들로 이 ‘훌륭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공갈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폭이 감히 그런 말을 해? 아니다. 상류층의 후안무치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조폭도 당당해진다. 일반 대중인들 무얼 망설이랴. 민주화 이후 한국인에게 나타난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후안무치의 일상화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의 반열에 올랐다. 보수파들은 그게 민주화 탓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후안무치의 엘리트 독식 체제에서 대중화 체제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일단 긍정적 변화로 보는 게 옳다.

그건 마치 아줌마들의 후안무치를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남존여비 가부장 체제하에서 처녀 때까지 억눌려왔던 후안무치 욕구가 애 낳고 폭발하면 원인부터 따져보는 게 옳다. 나는 후안무치해도 좋지만 너는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후안무치의 평준화는 사회 정의다.

독일에 페터 슬로터다이크라는 괴짜 철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위선적 계몽주의’를 질타하면서 ‘뻔뻔함’을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이자 실천 항목으로 제시했다. 이론과 명분대로 살려면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표현 양식이라 할 뻔뻔함을 발휘하면서 문제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깨닫기 어려운 심오한 뜻이 있겠지만, 후안무치를 다시 보자는 메시지만큼은 그대로 접수해도 좋겠다. 사실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돼온 것이다. 한동안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이 기(氣) 살려주기 운동’도 기실 따지고 보면 이 후안무치한 세상에서 내 새끼 경쟁력 키워주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

지금 이 후안무치 이야기를 행여 냉소로 이해하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문법에 대해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이 이대로 좋은가 하는 걸 정색을 하고 살펴보자는 뜻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혁명의 순수성은 2주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개혁의 순수성은 얼마나 갈까? 2개월? 2년? 얼마이건 그 주체는 모른다. 왜 그런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주체에겐 후안무치 자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엔 이미 순수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 <조선일보>는 문화적으로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리는데, 그건 단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일까. 상점 앞의 신문 가판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농민운동가 천규석이 <쌀과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지나고 보니, 60~80년대까지의 그 풍성했던 민주화운동이란 것들도 잘난 놈들에게는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동시에 거두어갈 기회로 활용되었다”고 독설을 퍼부었을 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민주화운동을 한 인사들은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계속 밖에서만 떠돌아야 하고, 공직은 운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독식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천규석이 말하고자 한 건 운동가들의 공직 진출 자체가 아니라 공직 진출 이후 보여주는 모습일 거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글과 말로만 운동을 했던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혹 나는 나의 글을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든 지식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후안무치는 정치인들만의 무기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고종석은 언젠가 ‘글쓰기의 무서움’이란 글에서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발 밑에 조회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긴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옳은 메시지라면 널리 전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너무 심각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국 사회엔 ‘담론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유치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구체적 각론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야기는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적어도 <한겨레21> 수준의 잡지에선 ‘부국강병론’이니 ‘소득 2만달러론’이니 하는 것은 경멸받기 딱 좋은 보수파 담론으로 통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멸이 과연 정직한 것인가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주의·민족주의는 무조건 때려야 진보고 품위 있는 지식인으로 통하는 이 풍토가 언행일치를 전제로 한 정직성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잠시 <조선일보>를 보자. 이 신문은 자주 문화적으론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린다.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게 그 신문 독자들이 원하는 상품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가?

“잘 살아보세”는 “잘 써보세”로 바뀌고…

‘보보스의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일류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갖게 된 이른바 ‘보보스족’이 정치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과거 운동권 시절과 비교해 갖게 되는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문화적으로만 진보 냄새를 피우는 걸 말한다.

과연 <한겨레21>의 독자들은 <조선일보> 독자들과 얼마나 다른가?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물론 삼위일체를 고수하는 게 옳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법은 없다. 얼마든지 각기 따로 놀 수 있다. 다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일관된 경향성에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김대중 정권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이 경제적으로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과연 한국인 다수가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인가?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잘 써보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시민의 윤리는 소비자 윤리로 대체되었다. 소비자가 악덕 상인에 분노하듯, 민주시민은 악덕 정치권에 분노하는 정도의 윤리는 갖고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뿐이다. 민주주의는 소비주의와 결탁했다. 민주시민은 그 이상의 선은 넘으려 하지 않는다.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그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매년 해외여행을 하고 중형차를 굴리고 골프를 치기도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은 돈으로 이른바 ‘대학 개혁’을 하고 있지만, 그것에 저항하진 않으며 그로 인한 수혜만 누린다.

이런 지적은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았던 미국의 노엄 촘스키가 짜증을 냈듯이, 유치하다고 짜증을 낼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논점은 지식인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담론 생산이 현실 세계와 맺는 관계다. 그 괴리가 클수록 지식인의 ‘상징 자본’은 튼실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세계를 바꾸는 데 어떤 실천력을 갖는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제도와 법의 차원에선 한국 사회는 개혁을 할 만큼 했다. 물론 할 게 더 남아 있고 앞으로 더욱 해야겠지만, 제도와 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남아 있으니 그게 바로 의식과 행태의 영역이다. 예컨대 정치판에선 ‘보스 정치’가 거의 사라졌지만, 대학엔 건재하다. 학연주의와 파벌주의는 정치권 뺨을 치고도 남는다. 대학 내 선거 수준도 직업 정치판 선거보다 높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권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빼앗겼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그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늘 사회를 향해서만 설교를 늘어놓는다.

정치권 동지들을 새삼 경외하다

자신의 후안무치에 대해 가끔이나마 자각을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글쓰기가 몹시 싫어지니까 말이다.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언행일치를 하는 사람 위주로 글쓰기 시장이 물갈이돼 담론과 세상의 거리가 좁혀지고 그에 따라 실천력도 강해질 게 아닌가. 정치권의 후안무치 동지들에게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들에겐 이런 고민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아닌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가을산 > [FTA요지경] 황당한 협상들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맺었거나,  거의 협정이 마무리되어가는 나라들의 협상 내용 및 그 영향을 알리는 글들이 여기저기 조금씩 있습니다.  조각조각 그림맞추기를 하고 있는데,  그림이 참.....  ㅡㅡ;;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미국이 '지맘대로 규정'을 만든게 전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 > 

* 의약품 특허기간을 TRIPS의 규정보다 훨씬 긴 50년으로 정했다. 
   (TRIPS에는 20년으로 규정됨. 이 20년도 WTO 이전의 15년에서 5년이 늘어난 것임.)
  50년간 한 약품에 한가지 제품의 독과점....
  싱가포르 때문에 동남아의 여타 국가들도 이같은 조항을 넣도록 압력받고 있다.

*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에 대해 관세를 면제받기로 했다. 
   싱가포르는 이 면제 혜택이 상당히 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관세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물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이 까다로와서 실재로 수출품 중에
   원산지 규정을 통과해서 관세 면제가 되는 물품이 극히 드물다. 

호주> 

* "특별한 우호관계"를 철썩같이 믿고 대문을 다 열어준 케이스.
   미국산 농산물 호주 수입은 즉시 무관세로 열어줌.
   대신 호주의 경쟁력 있는 특산품은 무관세 혹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5~18년을 기다려야 함.

* 다른 나라에서 약가절감을 위한 이상적인 제도로 생각되던 PBS가 FTA로 인해 위태롭게 되었다.
   기존 약과 효능이 거의 비슷하거나 같은 약들 - 그러면서 새로 개발되었다고 해서 두세 배 비싼 약들 - 은
   그동안 PBS의 약품리스트에 등재되지 못했었다.
   등재되는 약품들도 기존 약품에 대한 효능을 비교해서 그 효능 차이만큼의 약가를 인정받았었다. 
   그런데 이런 제한이 차츰 폐지되고 특허권도 강화되어서 PBS 및 의료보험제도의 기조가 흔들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보험재정이나 보장범위는 더 열악한데 어찌될지....

* 호주/ 미국 양쪽 모두 자국의 '소규모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우대할 수 있게 했다.
   단, '소규모'라는 것이 호주는 종업원 20명 미만의 기업이고, 미국은 1500명 미만의 기업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제조업 기준 300명 이상의 직원을 둔 기업은 '대기업'으로 분류한다는데...
   우리의 대기업도 미국 가면 소기업이 되는구나~~~

파키스탄>

* 지난 3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에 맞추어서 예정되어 있던 미-파키스탄 양자간투자협정 조인식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 미국이 '최종 문안'이라고 더이상의 수정 없이 사인하도록 요구한 문건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대부분
  투자의 안전성 및 지적재산권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문제가 된 조항들 중 일부이다. 

 - 협정의 일부 조항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함  - 파키스탄측은 '비밀이 있으면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며 이 조항을 거부했다.  (우리 노**은 뭐냐.... 협상 시작부터 협상 발효후 3년을 보장했죠.)

 -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할 때,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전에 손해가 발생하면 법적 절차를 거쳐서 파키스탄 정부가 그 손해를 갚아주어야 한다. 만약 파키스탄이 직접 갚기 힘들면 세계은행이 손해를 갚아주고 그 금액만큼 파키스탄의 부채로 처리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 사업을 하다가 보는 손해를 다 물어준다면, 나도 파키스탄서 사업하겠다. 절대 손해는 안볼테니까. ) 


과테말라>

과테말라는 미국과의 FTA를 채결하기 전에 이미 WTO TRIPS가 요구하는 수준의 지적재산권을 준수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지적재산권 조항에 부응하기 위해 작년에 추가적으로 제도를 정비했다.
개정된 법안에는 '국내법과 무역협정의 조항이 상충할 경우에는 후자의 조항이 우선한다'라고 명시되었다. 
자, 그렇게 해서 미국과의 FTA를 채결했다.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아직도 배가 고팠나보다'. 
USTR는 미-과테말라 FTA가 발효되기 위한 조건으로 협정에 합의된 것 외에 
과테말라의 지적재산권과 보건정책에 대해 추가적인 개정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요구대로 개정이 된다면 과테말라의 지재권법이 미국보다도 더 엄격해지는 우스운 결과가 나오게 된다.

오죽하면 미국의 일부 의원들이 USTR 대표에게 "(FTA 협상을) 다른 국가의 입법 과정 혹은 법규를 다시 쓰도록 하는 기회로 이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라는 서한을 보냈을까.


멕시코>

멕시코는 북미FTA (NAFTA)를 통해 가장 먼저 미국과의 FTA 를 채결한 국가중의 하나이다.
멕시코의 수출 총액으로만 보면 미국으로의 수출은 증가했고 수출 중심의 대기업은 늘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새로운 고용 창출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으며,
반대로 멕시코 국내의 중소기업들은 - 고용의 큰부분을 차지해 왔는데 - 큰 타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경제는 피폐해졌다.

이전에는 식량을 자급하고 수출까지 하던 농업은 이제는 필요한 곡물의 40%를 수입하는 처지가 되었다.
약 110만 개의 농촌 일자리가 없어져서 이들은 도시지역으로 밀려들고 있고,
한편으로는 약 500만명으로 추정되는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 미-멕시코 국경지대에 벽을 쌓음으로써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태국> 

태국은 동남아 지역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미국과의 FTA 협상이 진전된 국가이다.
그런데 미국측의 의약품 특허권의 강화 요구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 있다.

태국은 약 100만명이 HIV/AIDS에 이환되어 있고, 약 50만명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태국 정부는 2001년부터 HIV/AIDS 치료제를 대규모로 공급하는 "NAPHA" 프로그램을 시행해서,
HIV/AIDS확산을 억제하는 데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특허권을 강화하는 요구를 태국이 받아들인다면, 태국 정부는 이 많은 환자들에 대한 2차약을 공급할 수 없게되며, 이는 태국 국민들의 상당수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된다.

MSF(국경 없는 의사회)나 Oxfam(Oxford에 본부를 둔 빈민구제기구)같은 구호단체들이나 WHO(세계보건기구)도 의약품접근권 문제, 특히 제3세계에 만연해 있는 HIV/AIDS나 말라리아의 치료제에 대해서는
팔을 걷고 특허권의 남용을 반대하고 있다.

오죽하면 FTA Watch라는 태국 NGO에서 "우리가 니네 밥이냐?" 라는 포스터를 만들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박노자 종교 강연회-박노자 종교 강연회(녹취록)

박노자 종교 강연회


"짓밟힌 자의 신음소리"


하필이면 왜 이 주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일종의 변명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에 민중 신학과 가까운 한 기독교 계통의 잡지로부터 현대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청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죄송합니다. 못쓰겠습니다'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제 학술 분야가 원래 기독교보다 고대사였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좀더 많이 한 부분도 있었고, 또 신자가 아닌 신분으로 비판하기에는 뭔가가 쉽게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때 제가 거절의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이건 굳이 기독교뿐만 아니라 결국 불교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만   '기업 활동에 대해서 이념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기업 활동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얼핏 보면 신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신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현존하는 종교 조직에 대한 발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외국의 사회인류학이라든가 사회학 같은 부문에서는, 특히 종교사회학에서는 요즘  '종교 시장'이라는 용어를 거의 별 거부감 없이 쓰다 보니까 저도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어쨌든 한국의 경우 사찰이든 교회든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일종의 기업 활동으로 보이는 신앙 활동의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이념적 입장에서 비판하기가 왠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업 활동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아는 소위 기복 장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이나 교회를 찾을 때는 마음 속에 일종의 거래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씀이지요. 예컨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기도하면 내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겠지" 하고 생각할 때 여기서 신의 축복이란 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물질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면, 대학교 입학뿐 아니라 예컨대 직장에서도 인간 관계가 원만해져서 안 짤리겠죠. 그러니까, 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결국에는 여유있는 생활하고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통력이 있다,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거래할 수 있다"는 조직에 가입해서, 헌금이라는 이름이든 성금이란 이름이든 불전이란 이름이든, 어떤 명목으로 거기에다 일종의 물질적 대가를 바치고 그 대신에 상당히 현실적인 성격의 축복을 돌려 받는, 성격의 신앙 생활이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해진 것이고,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기복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복 신앙은 꼭 구체적으로 '자녀 입학하게 해 달라',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 하는 것뿐만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현실 생활이 원만하고, '현실적인 잣대'로 봤을 때 행복한 생활을 초자연적 힘에 의해서 돌려받으려는 것이 기복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든 교회든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넓은 의미의 기복을 제공함으로써 상당한 대가를 받고, 또 그 대가로 사찰의 경우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대형 불상을 짓고, 교회 같으면 단일 교회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말하자면 기복 장사를 잘 한다는 것을 건물이나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결국 그런 거래나 장사에 대해서 이념적 입장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기복 장사, 종교를 신통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거래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는 것, 또는 종교의 대상으로 신이나 초자연적 힘, 또는 그 힘을 빌려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제그제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비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신라의 이차돈이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신라 법흥왕 때의 순교자 이차돈을 잘 기억하시겠지만,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법흥왕이 이차돈을 희생시킨 거죠. 대신들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이차돈을 죽였는데, 결국 대신들의 반대가 무로 돌아가고 불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삼국유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것이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동기가 됐는데, 이차돈이 참수당하기 직전에 '만약 부처님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부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권세가 있다면, 내가 죽고 나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하고 참수당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피 대신에 하얀 물, 그러니까 우유와 같은 색깔의 하얀 물이 갑자기 목에서 솟아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대신들이 부처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무서운 신인 줄 알고 거기에 감복하고 불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분히 설화적인 이야기이고, 불교를 믿는 수행자의 목을 칠 때 하얀색의 액체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붓다의 본생담(本生譚), '자타카'에서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설화로서는 유래가 깊은 설화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신라에서 생긴 설화도 전혀 아닙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라 사람들한테 초기의 붓다, 초기의 부처가 바로 기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그런 신통한 존재였고, 불교를 믿는 사람들, 승려나 순교자 이차돈 같은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킬 만한 신통력의 소유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백제가 불교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것을 상당한 민족적 긍지로 삼는데, 만약  일본서기 , 일본의 공식 역사를 그대로 믿는다면, 백제 성왕이 일본에 불교를 전수했을 때, '부처를 믿으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이고 붓다가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붓다라는 신이 힘이 세고 무서운 신통력을 갖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초자연적 존재였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종교에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하고, 종교 전문가들, 성직자들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도사로 생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우리 역사 속에 상당히 깊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기가 상당히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기복과 오늘날의 기복은 상당히 다릅니다. 기복은 복을 빈다는 이야기인데, 복을 누구를 위해서 비는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수능시험을 볼 때 어머님이 사찰에 가서 대입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입 기도라는 게 결국 내 옆에서 기도를 하는 다른 아줌마의 아들보다 내 아들을 먼저 입학시켜 달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청중 웃음), 기도는 같이 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상당한 경쟁 관념이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대의 기복은 완전히 장삿속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원자화된 개인, 말하자면 옆의 아줌마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만을 입학시켜 달라는, 개인·개체 위주의 장사인데, 전통적인 기복이 이것보다는 약간 차원이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때 미륵상이나 아미타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어떤 명을 새겼는가 하면, 나의 부모를 비롯한 칠세(七世) 친척들을 극락왕생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국토가 태평하고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끔 하소서 하는 명을 새겼습니다. 결국 나뿐만 아니고 국가 전체가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뭔가를 받도록 비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문화 속에 얽히고설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 때는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기가 왠지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때 제게 어떤 생각이 들었냐하면,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 삼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복 장사에는 사찰이나 교회라는 공급자가 있는가 하면, 그 장사를 제발 해 달라고 하는 수요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사찰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수요만 그대로 남는다면, 예를 들어 무당이나 점쟁이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요자로 하여금 이런 기복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공급자나 수요자만을 인격적으로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복 장사 자체를 문제삼을 순 없다 하더라도 소위 '상도덕'은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상도덕' 아시죠? 장사할 때 그래도 어기면 안 되는 일종의 '상도'가 있는데, 기복 장사하는 과정에선 이것이 너무도 많이 어겨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 재벌들끼리 장사를 해도, 만약 LG 휴대폰 쪽에서 '삼성 휴대폰이 곧 고장날 것이니 삼성 휴대폰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성 흑색 광고를 낸다면 이것은 아마 당장 재판을 받아 상당한 돈을 물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불신지옥'이라고 외친다면 이건 사실 LG 휴대폰만이 진리고 삼성 휴대폰이 거짓이라는 말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그걸 또 '불신지옥'이라고 외칠 때에는 꼭 '불신(佛信)지옥', 그러니까 '불교를 믿는다면 지옥이다' 라고 들리기 때문에... (청중 웃음)

이것은 상도덕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장사를 열심히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도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청중 웃음)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고용자를 막 다루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다고 해서 삼성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성말고 무노조 경영하는 곳이 '종교 재벌'들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혹시 대형 교회나 대형 사찰에서 노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죠?(청중 웃음)

사실은, 삼성보다 대형 교회에서 주인이 아닌 '밑에 사람'으로 일하기가 훨씬 불안합니다. 대형 교회의 부목이나 전도사, 운전사 정도면   뭐 월급이 박한 건 그렇다 치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죠. 주목의 마음에 안 들고 노선을 달리 하면 자르는 데 별 절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노조를 만드는 시도를 2년 전부터 한 것 같은데, 아직 대다수 대형 교회들에 노조가 없습니다. 고용된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대형 교회도 그렇지만 최근 부산의 삼광사라는 대형 사찰에서 노조 탄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비정규직 사찰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다 사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매일노동뉴스>에서 알게 됐습니다. 결국 장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를 해서는 무노조 삼성보다 더 못된 장사가 될 것 같아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아무리 장사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가 정치에 부당하게 압박을 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FTA 투자 협정을 맺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장 혜택을 볼 기업체가 어느 기업체인지 뻔하거든요. 삼성입니다. 삼성에서는 아마도 FTA가 맺어지기를 대단히 바라고 있겠지만, 만약에 삼성이 이를 위해 정치권에 상당히 노골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미군을 찬양한다든가 'We Love America!'를 부른다면 이것도 결국엔 일종의 기업체의 정치적 압박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미국과의 역사적 관계도 있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 전체의 정치를 한 집단 위주로 하려고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또,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올 때 드는 생각은,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 중 하나, 즉 미국을 '새로운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로마제국'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면서 사람들한테 라틴어 대신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공동 문화를 만들어 주고 문명의 공간을 확보해 준다." 이것은 미 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제국을 옹호하는 입장의 골자 중 하나인데, 그러면 미 제국의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결국에는 새로운 로마제국의 깃발을 들고 다니는 꼴이 되는데, 예수를 못 박아 죽인 것은 바로 로마제국이 아닙니까? (청중 웃음) 그러니까, 그런 역사적 관계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무한의 힘의 상징인 성조기를 숭배하는 것인지 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체에 대해서 한 가지 문제 삼는 부분이 '탈세'인데, 종교단체 같은 경우엔 탈세도 아니고 '무세'입니다. 세금을 아예 안 냅니다(청중 웃음). 만약, 주요 종교단체들의 수익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예컨대 대형 교회에서 세금을 내서 그 세금 전액이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의 실천에 쓰인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선에 쓰인다든가 이런 조건을 내세워 세금을 낸다면 이것은 교리에 반대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 텐데, 어쨌든 탈세도 아닌 '무세'라니 이건 참 '상도덕'상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청중웃음).

또, 제가 늘 한국 종교에 관해 문제 삼고자 하는 또 하나의 부분은 '상품 강매'입니다. 일반 회사가 그렇게 하면 당장 걸리겠지만, 예를 들어 종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서 학생들한테 예배시키는 것은 결국 '상품 강매'와 다른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들이 신앙 시장에서 본인들의 상품을 열심히 마케팅하고 추진하는 것까진 좋은데, 본인들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한테까지 그 상품을 사게끔 강제한다면 이건 헌법상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도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주류 종교를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기복 장사로만 얘기할 수 없는 성질의 훨씬 더 복합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한인 사회에 왜 하필이면 교회가 그렇게 많은가 물어보면 그것은 신앙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교회가 일종의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미국의 한인 사회나 유럽의 한인 사회에서는 '왕따'를 당하게 돼 있습니다. 교회들이 일부러 왕따 시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그것이 좀더 극명하게 나타날 뿐이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교연, 즉 교회와 교맥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에서 흔히 '관계 자본'이라고 말하는 3연, 즉 학연·혈연·지연말고도 '교연'을 분명히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나 사찰의 경우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사회나 기존 질서에 뭔가 신성한 듯한 외피를 덮어 주고 기존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 신의 도움을 받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 평생 살면서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공인(public figure)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일찍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가주의적인 주입을 받아 국가를 대단한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만, 국가를 존경하기가 좀 힘들어요.

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 다들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추상적인 국가'를 숭배해도 '구체적인 국가'를 존경하기란 좀 힘듭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곧잘 무슨 최연희 의원의 성파문이든 무슨 파문이든 (청중 웃음)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동 경기에서 우리 팀이 꼭 이겨야 한다든가 태극기로 상징되는 추상적인 대한민국이 숭배 대상이 돼도 구체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고급관료들이 존경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조금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 의식이라든가 어떤 공적인 의식에 대통령을 모신다고 하면 아마 참석자들이 대단히 좋아할 것입니다. 근데 그것은 노무현 씨라는 한 개인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대통령직에 추상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대통령도 왔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위계 서열에서는 대단히 높은 사람이 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노사모 빼고는 인격적으로 노무현 씨를 아주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청중 웃음)
그러니까, '추상적인 권위 인정'과 '구체적인 인격적 존경,'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우리가 제도적으로도 존경하게끔 돼 있지만, 좀 신비한 옷을 입고 신비한 말씀을 하고 뭔가 신성한 듯한 아우라(청중 웃음), [즉] 후광을 갖고 나타날 추기경님이나 큰스님이다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제도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존경까지도 하게 돼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공인된 종교 지도자들이 이 체제가 나쁘다든가, 이 체제를 우리가 빨리 바꿔야 한다든가, 이 체제의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말씀을 잘 안 하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청중 웃음), 사실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틀리다고 할 수도 없는 말씀을 하도 잘하시기 때문에, 이 분들의 존재 자체는 체제를 상당 부분 합리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으신 스님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 인터뷰하시고 법문다운 좋은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에는 별 문제가 없어도   어차피 그 말씀 상당 부분이 당나라 후기나 송나라 때 선사들의 책에서 다 베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말씀이라 별 문제는 없는데   주류 언론에다가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권위를 높여주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이 체제가 인간이 살 만하고 이 체제가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라는 환상을 피지배자들한테 상당히 효과적으로 덮어씌우는 면이 있는 건데 이것은 굳이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실,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사람이 여러 가지 주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피임을 종교적 죄악으로 본 겁니다. 그것이 종교적으로 맞다 틀리다 하는 건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어쨌든 아프리카,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에이즈가 지금 대단히 치성(熾盛)을 부리고 있어서 예컨대 잠비아나 나미비아의 경우에는 에이즈에 전염된 사람이 이미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입니다. 이미 나라가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보호 없는 섹스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대단히 위협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교시에 피임하지 않을 경우 곧잘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교황의 말씀을 듣고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이 과연 몇 만 명이 되는지 대단히 궁금할 따름입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교황의 입장도 아주 단호하셨는데, 현실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는 어차피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가는 결국 사회적 살인처럼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입장을 따라서 많은 여인들이 결국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국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빠뜨렸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었을 적에 한국 언론들도 그렇지만 외국 언론에서도 그것을 언급하는 언론이 몇 군데밖에 안 됐고, 대다수는 요한 바오로를 거의 새로운 성인으로 모시고 그랬습니다. 요한 바오로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을 여러 언론 중에서도 한두 군데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세계 지배계급에게 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굳이 한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성하다 싶은 지도자로 상징되는 종교가 원자화·개체화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여러분이 불행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나 인격의 문제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여러분이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인격을 수양해서 언제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신과 종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래하면 일단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이 메시지는 이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예수님이나 부처님하고는 별 관계가 없고 바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비자이자 노동자들한테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인격이나 수양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는 게 아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기복 장사하는 기업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기업체의 정체는 체제 전체를 합리화하고 공고화하고 아주 당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하다 싶은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맑스가 종교에 대해서 한 말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제일 유명해졌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종교는 맑스가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소리이자 민중을 위한 아편'이라고 이야기한 건데, 그런 면에서 맑스는 신음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게 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맑스는 종교가 단순히 위에서 강요하는 '아편'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 한은  결국 민중이 저절로 찾게 돼 있는 불가피한 것, 또는 일부분이나마 민중의 현실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특히 전근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종교 이단들이 바로 민중의 반항 의지, 저항 의지를 대변했고, 말 그대로 민중의 신음소리를 담았다는 것이 맑스의 종교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금의 한국 현실을 중심으로 본다면 종교는 과연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에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민중을 위한 아편'에 더 가깝습니까? 둘 다 종교의 기능을 묘사하는 얘기인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짓밟힌 존재의 신음 소리'보다 그 신음 소리를 진통시켜 주고 침묵을 강요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상처가 아프지 않게 진통시키는 일종의 마취제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아주 아플 때 마취제를 먹게 돼 있지만, 마취제·진통제를 먹는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당분간 아프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그래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무엇이냐면, 지금의 종교가 기존 체제를 옹립하고 합리화하고 체제로 인한 개인의 불행을 개인적인, 상당히 자기 기만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들의 원래 모습이 과연 맞는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가 정말 민중을 위한 아편 정도라면 하필이면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존재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기만이라면 상당히 빨리 깨우칠 수 있는 부분인데, 또 실제로는 신음하는 소리, 짓밟힌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담지 않은 종교는 지금 봤을 때는 그렇게 오래 안 가요.

예컨대, 최근에 만들어진 소위 신흥종교들 중에는 상당히 빨리 쇠퇴하는 종교들이 꽤 있는데, 통일교만 해도 1960∼70년대에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교세 확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실제로 교세가 상당히 쇠미해졌습니다. 기존의 신자도 많이 탈락하고 새로운 신자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실제 통일교 교리에서는 이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선명한테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선명이 미국의 지도층·지배층하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짓밟힌 사람의 신음소리" 듣기에는 조금 어려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신흥종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대개 아픈 사람의 신음 소리를 담아 주지 않는 종교는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이 이 때까지 장수해 온 비밀이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민중 편에 섰던 것이고, 민중의 그 신음 소리를 많이 담고 민중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쪽으로 나아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나 붓다, 무하마드의 카리스마를 이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용하려면 일단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 붓다나 예수님, 무하마드에게 그 카리스마를 만들어 준 것이 아마도 종교 속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초기 불교나 초기 기독교, 초기 이슬람에 담겨 있는 상당히 강력한 평등 정신이나 저항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저항 정신이란 말이 아마 지금의 불교를 보면 어울리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제도 불교는 저항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실제로 붓다라는 사람   원래 상류계급에 속했다가 진리를 찾겠다고 혼자 뛰쳐나와 6년 동안 고생해 결국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붓다   은 그 깨달은 것이 공(空)과 연기(緣起)라는 진리였는데, 이 진리대로라면 당시 인도 계급 제도인 카스트 제도나 남녀차별이 사실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이 실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불경을 통해서는 읽어내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대다수 불경들이 붓다가 죽은 뒤 4∼5백 년 뒤에 만들어진 글들입니다. 거기에 붓다가 그렇게 말했다고 돼 있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실제 붓다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들 중에서도 붓다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마  숫타니파타 라든가 그 정도 경전 몇 개이고요, '니카야',  아함경(阿含經) 이라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기 경전도 붓다가 죽은 지 훨씬 뒤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붓다가 실제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마  숫타니파타 를 보면 대충 알 수가 있겠지만   윤색된 부분도 있고 가미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처음에 깨닫고 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평등을 많이 얘기했습니다.

진정한 바라문이 무엇이냐? 바라문은 인도의 성직자 계급입니다. 당시에는 계급 질서 맨 위에 있었다는 성직자 계급인데, 이 바라문에게 붓다가 얘기한 것은 사람 귀하다는 것이 결국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 절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내 종이다, 내 종이 아니다. 동류다, 이류다' 이렇게 서로 차별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다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붓다가 깨달은 이치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만들어지는 이유와 결과의 순환이다" 이런 것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영구한 계급 차별이라는 부분이 개입될 수 없는 그런 가르침을 만든 것입니다.

붓다는 만인 평등을 외치기도 하고, 동물 죽여서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또, 붓다의 생활 방식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탁발 아니었습니까? 탁발이라 하면 동냥을 구하는 것인데, 실제 붓다가 탁발하면서 뭘 했었냐면 요즘 말로 아마 심리정신과의 상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중이 밥을 줄 때는 뭘 물어보지 않습니까? 붓다가 그 대답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생활 문제 풀어 주고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얘기해 주고, 말하자면 상담을 해 주고 식량을 받는 그런 거래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민중과 아주 가까운 생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기적을 절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통력이나 기적이라는 부분은 붓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활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자한테 붓다는 '그래요? 한 번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을에서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사람을 한 번 찾아 주면 제가 당신 아들도 부활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붓다의 원래 가르침은 신통력, 초자연적 힘, 신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붓다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민중한테 붓다는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붓다에게 한 가지 좀 아쉬운 점은, 붓다는 일종의 초기 공산주의적인 공동체인 승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제자, 수행자들과 함께 숲 속에서 살기로 한 것인데요. 그것은 어찌 보면 민중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효과가 있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런 저항의 태도, 아주 소극적인 저항의 태도에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붓다는 자기 부인 야쇼타라와 아들 라후라를 내버려두어도 그들을 먹여 살릴 만한 사람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처자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다는 게 훨씬 더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붓다의 제자들 중에는 대개 수행 생활을 해도 되는 상당한 재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결국 그 사람들이 붓다가 죽자마자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편한 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붓다의 제자 중에는 노예 출신들도 있었는데, 붓다가 죽고 나서는 노비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계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비나 왕의 고용자한테는 스님이 되는 기회를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다가 했는지 아니면 그 제자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초기 불교의 주류 승단에서 한 것 같은데  , 처음부터 여성이 승려가 되는 데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팔경법'[尼八敬戒]이라는 건데, 여덟 가지로 여승이 남자 승려를 공경해야 한다, 아무리 나이 어린 남자스님이라 하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 스님이 먼저 꼭 절해야 한다든가 하는 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붓다에게 가탁(假託)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자들이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불교는 상당 부분 아주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고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는데, 인도를 통일했다는 아쇼카왕 때는 불교가 왕의 국교가 돼서 거의 원래 정신을 이미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이미 절대평등주의적이고 남녀평등주의적인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의 관계 없다 싶은, 이미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붓다라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후기의 승단, 후기의 승려들이 그것을 계속 이용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바로 그런 붓다의 카리스마는 불교가 그래도 죽지 않고 계속 민중들한테 인기가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 대한 묘사는 기독교에 대한 묘사와 놀랍게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복음서를 읽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특히 누가복음에는 계급투쟁적이라 할까요. 상류 계급에 대한 상당한 혐오감이 담겨 있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리라' 하고 돼 있고,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는 말은 체제에 편입된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도 그렇지만 그런 체제 반대적인 발언들이 가장 많은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올 것으로 기술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로마제국이 망할 것이고,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부자들이 결국 벌을 받을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최종 편집되는 것은 180년대라고들 추정하고 있습니다. 180년대에 이미 기독교는 거의 체제에 편입된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체제에 협력하고 있던 교단 지도자들이 '부자들이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는 예수의 진짜 말씀을 남겨 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예수의 카리스마가 그 사람들한테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만약에 부자들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미 2세기의 기독교는 상당히 보수화됐는데, 그래도 예수의 원래 정신은 상징적으로라도 복음서에 담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예수의 정신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짓밟힌 사람들한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편집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4복음서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   에는 재미있게도 노예의 존재나 노예제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겁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믿어지는 1세기 초반에는 노예제가 경제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노예들이 대단히 많았고, 예수가 부자 보고 하늘나라 못 간다고 했다면 분명히 노예 문제에 대해 발언을 안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예에 대한 얘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 그러니까 기독교 보수화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나중에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 하고 말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그대로 신약에 담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그 편집 과정에서는 말하자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는 미끼 밥을 남겨 두기는 했는데, 상당 부분은 바울 사도와 그 제자들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메워진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또 아주 재미있는 예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라는 사람은 메카라는 상업 도시에서 '거지가 왜 이렇게 많은가. 왜 부자들은 이렇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못사는가' 이런 불만이 출발점이 돼서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무하마드와 그 공동체가 메디나에서 망명중이었을 때, 당시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무하마드의 집뿐이었는데, 그 집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를 봤습니다.

그런데 무하마드가 죽고 나서 무하마드의 계승자 우마르가 거의 맨 먼저 개악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남자와 여자는 예배를 따로 봐야 한다'는 법률을 정한 겁니다. 무하마드의 원래 육성을 담은 코란의 기록을 보면 여성의 권리를 상당 부분 주장했습니다. 이혼권이나 피임권리나 유산상속권이나, 여자와 남자는 원래 알라신에 의해서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중의 이슬람 율법을 보면 이게 상당 부분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슬람권의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상당 부분 서구의 페미니즘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무하마드의 진짜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페미니즘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을 보든, 기독교를 보든, 불교를 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에서 고등 종교의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합니다. 제가 뭔가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기존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것을 결론 삼아 끝내겠습니다.

결국 지금 성직자 집단이 대표하는 기존의 제도권 종교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그 종교를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약 붓다의 가르침이 맞다면 나도 붓다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사찰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해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절해도 되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또는 "명부전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내 자신이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재판관한테 뇌물 주는 것하고 무엇이 다르냐. 결국에는 내가 죄가 없으면 왕생할 거고 죄가 있다면 아무리 빌어도 안 될 텐데, 뇌물 주듯이 비는 게 다 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살려서 우리가 기존 종교가 분명히 그 원래 정신과 다른 부분을 당연히 비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맑스주의자가 된다 하더라도 속류 맑시스트나 스탈린주의자들처럼 '종교, 그 정체는 무용지물이다. 마약이다' 하고 버리기보다는 그 종교를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의지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 사람들한테 그렇게 많은 민중이 모였는지, 왜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한테 이렇게 귀중한 이름들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많은 빈민들의 집에 딱 두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차베스 대통령이죠. 그러니까 양쪽을 상당히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하여튼 왜 하필이면 수많은 빈민들한테 예수는 지금도 이렇게 영감을 주는지, 우리가 진정한 맑시스트라면 스탈린주의 식으로 종교를 무조건 팽개치기보다는 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원래 종교의 모습에 대해 나름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와의 대담


김하영 :
무릇 모든 종교에는 보수파와 진보파가 있습니다. 가령 불교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와 박정희의 "호국불교"가 있었는가 하면, 암베드카르를 지지한 인도 불가촉 천민(달리트)의 불교가 있었고, 또 1980년대 한국의 "민중불교"가 있었습니다. 박노자 동지의 경우 민중불교와 흡사한 데가 적잖이 있는 듯합니다. 민중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한국에서 민중불교의 창시자는 바로 만해 한용운 스님입니다. 민중불교는 일본과 한국에서 1920∼30년대에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민중불교의 주장이 결국 이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의 사찰들이 산송장,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시체에 불과한 것이고요, 붓다의 원래 정신이 초기에 수행자 공동체, 즉 승가의 무소유 공산주의적인 생활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원래 승가에서는 한 승려가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게 옷 한 벌과 밥 그릇 하나 정도였고요, 민중한테 상담을 해 주고 민중한테 여러 가지 살고 죽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심어 주고 식량을 받아 살았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원래 불교에서 모든 고뇌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게 '탐진치(貪瞋痴)'라는 건데, '탐진치'가 뭐냐 하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한용운 스님도 그렇고, 일본의 민중불교도 그렇고, 성냄이나 어리석음보다 가장 무서운 게 탐욕이라고 생각했고, 탐욕을 그 기반으로 삼으면서 늘 재생산시키는 자본주의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자본축적과 확대재생산이라는 것이 심리적으로 분석하자면 결국 탐욕과 공포 심리 없이 개인 차원에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많이 가지려고 탐욕을 내고 낙오자가 될까 봐서 늘 겁에 질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세계는 만약 축적이 안 되고 확대재생산이 안 되면 죽게 돼 있는 세계인데, 공포와 탐욕의 이중주입니다.

그래서 민중불교는 거기에 주목을 해 "자본주의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중생들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불교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의 삶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겁니다. 그래서 일본 민중불교 같은 경우 전후에 소수자로나마 남아 있고, 비판불교라는 이름으로 1970∼80년대에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는데, 한국 같은 경우 잘 아시겠지만 1950∼70년대 중반까지는 거의 얘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 지도자로 상당히 우상화됐는데, 그렇다고 해도 만해 한용운의 진짜 사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하영 :
불교가 초기 단계를 벗어날 때 보인 모습은 그리스도교의 수도원 운동과 닮은 데가 많은 듯합니다. 초기 불교의 승가 공동체는 말 그대로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기반은 도시의 상인과 금융업자, 장인 들이었습니다. 이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기부금으로 부유해져, 노예를 부리게까지 됐습니다. 중세 스리스도교 수도원들이 농노를 부린 것처럼 말입니다. 비폭력 교리도 7세기 왕 하르샤 실라디티야의 경우처럼 아주 간단히 무시되곤 했습니다.

이런 모순은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종교적 모순 때문에 또한 각 종교는 부패와 쇄신 운동이 충돌하곤 합니다. 또, 다양한 사회 계급들이 같은 종교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충돌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합니까?


박노자 :
노예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원래 불교에서는 스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돼 있습니다. 구족계를 받아야 자격을 갖춘 스님이 되는 것이고, 이 구족계는 남자 승려의 경우에는 2백50 가지 계율이나 됩니다. 그런데 구족계 내용을 보시면   불교 서점에 가셔서  사분율 이라는 책을 보시면 거기에 내용이 나오는데   그 계율 중에 "금전을 취급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직접 제정한 계율이죠. 또, "노예를 소유하거나 부리면 절대 안 된다"는 계율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계율을 진짜 계율답게 하자면, 노예 내지 농노를 부린다든가 [하는 것은] 불교 공동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아쇼카왕 때 불교가 주류 종교가 된 뒤에는 인도에서도 불교 사찰에서 노예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요.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사찰이 노비를 부리는 데 별다른 제한이 없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국가에서 사대부들이 더 이상 가만두면 안 된다고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아서 그렇지, 빼앗기 전까지 사찰들은 주요 노비주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불교가 중국에 들어서면서부터 초기 계율을 원천적으로 무시해 왔다고 봐야 하는데, 불교의 경우에도 이것에 대한 쇄신 운동이 몇 번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는 많이 안 들어왔지만, 중국에는 삼계교(三階敎)라는 중세의 민중불교 교단이 있었습니다. 6세기, 7세기에 수나라와 초기의 당나라에서 많이 유행했는데, '다 불성(佛性: 부처로서의 성격)을 갖춘 일체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곧 평등하게 사는 것이 종교의 진짜 교리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운동인데, 당나라 중기 때 탄압을 받아 무산됐습니다.

수많은 쇄신 운동이 있었다는 것은 맞습니다. 기독교만 해도 예를 들어,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주로 루터 교회라든가 칼뱅 교회에서도 출발했지만, 또 한편으로 수많은 소수자 교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수자 교회 중에는 예를 들어서 퀘이커라는 종파가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다들 아시죠? 박정희 때 곧은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이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신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한국 종교인이 함석헌 선생이죠. 한국에서 함석헌 선생님이 한국 퀘이커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퀘이커라는 종파가 영국에서 17세기에 만들어졌는데, 퀘이커 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였고요. 국가권력을 부정했고요, 또 제일 중요한 것으로 노예제를 부정했습니다. 미국에서 퀘이커 교도들이 흑인 노예 해방운동에서 늘 선두에 섰습니다. 수많은 다른 소수 종파들이 미국에서 노예제와 전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퀘이커는 그 모습이 전혀 아니지만, 18세기 이전에는 계급 타파 운동, 계급 전복적인 운동을 봐도 종교적이지 않은 운동이 거의 없습니다. 종교적이지 않은 속세적인 반계급 운동은 18세기 이후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종교를 좀더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양면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하영 :
이라크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충돌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부시 일당은 미국의 보수우익 기독교인 집단입니다. 미국의 보수 우익 기독교는 어떤 성격입니까?


박노자 :
이런 얘기를 들으면 듣자마자 무엇이 생각났느냐 하면,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바티칸의 교황청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합니까? 절대 반대하는 거죠.

그것은 교황청이 꼭 착해서 그런 것이기보다는 만약 전쟁에 찬성한다고 하면 지금 카톨릭 신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빈민들이 과연 가만히 두겠습니까? 아마 신자들 대다수가 탈락할 것입니다. 어쨌든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이번 이라크 전쟁뿐 아니고 1991년 제2차 걸프전쟁도 교황청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라고 하는데 기독교는 전쟁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독교 중에서 다수파라 할 수 있는 가톨릭은 전쟁하면 안 된다고 하니 종교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데, 아까 말씀하신 미국의 일부 기본주의[근본주의]적인 신학자들, 부시와 상당히 가까운 기본주의적인 교파들은 대충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냐면, 인류의 최후가 지금 다가오고 있는데, 그 인류의 최후는 바로 아마겟돈이라고 할 만한 악과 선의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될 것이고, 선은 물론 미국이고, 악은 물론 이슬람 세계입니다. 그래서 최종 전투에서는 결국 핵폭탄도 사용될 수가 있는데, 그 최종 전투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고, 인류가 멸망함과 동시에 선택받은 자들만이 "휴거"(携擧: "들어올림", "이끌어 올림"의 뜻)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인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끔찍한 이야기인데, 어쨌든 이 얘기가 미국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 중 하나는 지금 미국의 중산층이   한국도 그렇지만   해체 중에 있다는 겁니다. 상당 부분의 중산층의 위치가 하락하고 있는데, 기본주의적인 신앙은 위치가 하락되는 중산층의 불만을 체제가 아닌 종교적인 관심으로 돌리는 데 상당히 사용되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전체 노동인구 중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8퍼센트도 안 됩니다. 제조업은 그 비중이 지난 50년 동안 거의 3∼4배 정도 줄어든 것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돼 지금은 아주 불안정한 서비스 직종을 찾아 헤매야 되는 것이고, 미국은 지금 의료보험이 안 돼 있는 사람들만 해도 4천만 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적 불만을 종교적인 관심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아까 말씀하신 부시와 같은 종류의 기본주의적인 신학이죠.


김하영 :
최근 덴마크 일간지 <율란트 포스텐>이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실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서방 세계에서 이슬람 혐오가 인종차별의 가장 뚜렷하고 또 유력한 형태가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이슬람 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박노자 :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인터넷을 통해 무하마드 만평을 직접 보신 분들 계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독후감이라도 있습니까? 이따가 저도 제 독후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만평을 보면 무하마드는 모자 대신 커다란 폭탄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났느냐 하면, 코란에는 '만약에 이슬람교인 여러분들 중에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한테 누군가 악을 끼치면 나(즉, 무하마드) 자신이 최후의 심판의 날에 당신의 죄악을 증거할 것이다' 하고 써 있습니다. 무하마드의 부인들 중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한 명 있었고요. 무하마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한테 배운 바도 있고 해서요.

그리고 실제로 유대인들에게는 중세 이슬람 국가야말로 제일 살기 좋았던 곳입니다. 그들은 중세 유럽에서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박해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이슬람이야말로 다른 종교, 특히 같은 계통의 기독교나 유대교에 대해 대단한 똘레랑스를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자살 공격이라든가 하는 것은 종교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고, 무엇보다도 무력감의 발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율란트 포스텐>이라는 신문이 무하마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을 괴롭힌 사람을 내가 최후 심판 때 고발하겠다고 한 무하마드   를 마치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처럼 묘사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역사 왜곡'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무하다드 만평이야말로 종교 왜곡일 뿐이죠.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만평 중에는 또 어떤 것이 있었던가 하면, 자살 테러로 숨진 사람들이 낙원에 들어서자 무하마드가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처녀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더 이상 여러분들한테 붙일 처녀가 없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인데, 코란은 자살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자살 자체를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자살 공격은 이슬람에서 주장된 적이 없습니다.

유럽인들이 요즘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 이슬람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삼는 것이 이슬람의 지하드인데, 이 지하드라는 말이 유럽에서는 가끔 '신성한 전쟁', '성전'이라고 번역되는데, 원래 지하드가 무슨 뜻이냐 하면 불교의 용맹정진(勇猛精進)과 똑같은 뜻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이에요. 다만 알라신을 받드는 공동체를 외적이 괴롭힌다면 지하드는 방어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맹정진을 뜻하는 이 말이 유럽에서 갑자기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니, 이것은 왜곡 중에서도 아주 심한 왜곡에 속합니다. 유럽인들이 이슬람에 대해서 왜곡하고 일종의 위협으로 꾸미는 것은 말 그대로 상식을 넘는 이야기죠. 뭐 히틀러의 반유태주의 공포하고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김하영 :
그리스도교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1980년대에 민중신학에 근거한 민중교회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이나 그 주의주장에 대해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박노자 :
안병무 선생이나 서남동 선생 등 몇 분의 저서를 읽었는데, 이분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존 교회라는 매개체를 넘어서 예수라는 사건, 예수가 나타났다는 그 사건을 직접 체험하고, 우리와 그 사건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수는 역사 속의 예수도 있는데 역사 속의 예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 말로는 '오흘로스'(ochlos), 즉 민중이죠. 그러니까 민중에게 둘러싸여 있고, 민중을 위해서 부자들은 축복받을 수 없다고 말한 예수라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우리들 사이에도 예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민중신학의 주장이었습니다.

민중신학자들 중 몇 사람은 전태일 분신 사건 때 대단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들은 분신하고 있는 전태일을 보면서 예수를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이 예수와 같은 길을 선택한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을 위해 이렇게 자기를 아끼지 않는, 그리고 민중편에 서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보고, 평등한 세계가 오게끔 노력하는 것이 예수를 재현하는 하나의 체험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기독교 신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원래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자면,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민중신학이 하나의 첩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1970∼80년대 민중신학의 열기가 높았다가 결국 그것이 주류 교회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화되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아쉬운 일이죠.

함석헌 선생님 같으면 민중신학자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함석헌의 기독교 이해는 주류 신학하고 너무 달랐습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이야말로 아마 20세기가 낳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주류" 신학은 귀중한 문화적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김하영 :
천주교는 최근에 교황이 바뀌었습니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이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못지 않은 보수파, 전통파인데요. 최근 우리 나라에서 새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도 사회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분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더는 1980년대의 진보 인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제는 진부한 얘기가 됐죠. 반면에, 천주교 고위 성직자층의 이런 보수화에 저항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목소리는 들릴까 말할 할 정도로 미약한 듯합니다. 왜 이런지 설명해 주십시오.


박노자 :
한국 천주교는 재미있는 부분인데요. 1970년대 천주교는 반독재 운동의 대명사처럼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외국 학자들이 많이 지적한 부분입니다만, 사실 1970년대 한국의 천주교는 정치적으로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민중신학이라는 것이 오로지 개신교 속에서, 그것도 기독교장로회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것인데, 천주교 같은 경우 신학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천주교가 군사독재에 반대했던 것은 군사독재가 그만큼 부르주아적인 사회질서를 위협한다는 의식이 있어서였기도 했습니다.

대개 부르주아 질서로는, 소위 제도적인 민주주의 이상으로는 안정적인 것이 없거든요. '박정희가 결국 나라를 파멸로 끌고간다, 박정희의 무제한 종신 집권 같은 성격의 군사독재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잘못하면 사회적인 급진적 변동의 가능성까지 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1970년대부터 이분들은 박정희를 일종의 불안 요소로 간주해서, 정상적으로 부르주아 국가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박정희가 물러나고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르주아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회복된 뒤에는 사실 더 이상 한국 천주교가 바랄만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신학적으로 한국 천주교는 사실 중남미의 해방신학 같은 진보적 흐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적 질서가 회복됐다면 이 질서를 옹호하는 데 그냥 사력을 다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면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라든가 하는 분의 보수화는 어찌 보면 합법칙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밖에 될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중 질문에 대한 박노자의 답변


1.
수행 단체가 과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인데요. 문제는, 불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생 모두가 수행자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수행 단체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이 세계를 어떻게 바꿔 보자는, 일종의 전위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라는, 모든 속인들을 포함하는 한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아까 언급하신 도법 스님처럼 탁발 수행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본인들의 수행의 의미를 알린다면,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되지는 못해도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도전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만약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났다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저는 눈에 그림이 선합니다. 여러분이 복음서에서 읽으셨겠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와서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막 내쫓아버리지 않았습니까? 만약 지금 예수님이 한국 대형교회 안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테러리스트 명단에 오르실 겁니다. 그것은 거의 안 봐도 그림이 선합니다. 예수님 같으신 분이 만약 지금 다시 오신다면 대충 지금의 교회를 어떻게 보실 것인지, 또는 이 자본주의 질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실지, 그것은 보지 않아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붓다만 하더라도 사회적인 발언을 꽤 많이 했습니다. 붓다의 사회적인 발언을 종합해 보면,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악법을 남발해 백성을 가혹하게 다루고, 전쟁을 하고, 지배계급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그런 국가는 악이라고 봤습니다. 국가의 긍정적인 기능으로 붓다가 딱 두 가지를 지적했는데, 하나는 재분배 기능입니다.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는데, 부자한테서 재물을 거두고 그것을 평등하게 나눠 주는 것이 국가의 긍정적인 기능이라고 본 것이고요. 또 하나는 갈등의 조절자라는 부분입니다. 꼭 폭력을 통해서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들 사이에서는 평화를 찾아 줘야 한다.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라 그 중간에서 국가라는 조절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본 거죠.

아마 붓다가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국가, 아마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국가로부터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일단 분쟁에 대한 비폭력적인 조절과 재물에 대한 세계적 분배를 요구하실 겁니다. 초기 경전에 나오는 붓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그런 요구를 하실 것 같습니다.


3.
정의구현사제단이나 도법 스님에 대한 말씀이 나왔는데요. 아마 한국에서 지금 만나볼 수 있는 종교인 중에서는 가장 올바른 길로 가시는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은 본인들의 종교적인 수행도 하시고 도법 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불교 교리에 대해서 많은 논문도 쓰시는 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본인의 불교적인 이상을 사람들과 나눌 줄 알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참여할 줄 아시는 분이시라서, 지금 종교인으로서 가야 할 길로 가시는 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불교 승려들의 정치에서 약간 아쉬운 점은 불교 교리   그런데 불교 교리는 대단히 난삽합니다. 공부하기가 아주 쉽지 않은 교리입니다   를 많이 배우신 분들이 예컨대 사회과학이라든가 자본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 방법을 많이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을 배울 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현 사회에 대해서 발언할 때 꼭 2천 년 전의 말씀으로 해도 되지만 조금 더 사회과학적으로 정리를 해서 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4.
'종교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지금 같은 시절에 진정한 종교인이 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 같으냐'는 질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매일노동뉴스> 같은 매체에서 여승무원들이 파업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파업 투쟁한 지 거의 2주가 다 돼 가는데 성과는 없고, 공사나 국가 쪽에서는 절대 양보할 생각도 없고, 결국에는 다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만들어 놓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 매체에서는 동정 여론이 많이 없다 보니 국가에서는 막 나가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일단 여론 조작에서는 공사와 국가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싶은 겁니다.

만약 진정한 종교인이 그런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제가 보기에 아마도 조금 성격이 강인하신 종교인이라면 부산과 서울 사이의 철로에 누워서 '승무원 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기차가 안 다니게 하겠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에서 민중한테 아주 강력하게 호소하는 부분 하나는 정의감 표출입니다. 종교는 정의가 구조적으로 현실화 될 수 없는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이고요. 이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구할 수 없는 그 정의를 종교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기본적인 호소력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진정한 종교인이 나타난다면 종교의 정의라는 본질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승무원 문제는 지금 질질 끈 지 거의 2∼3주가 다 돼 가는데, 종교인들이 아직 말 한 마디 안한 것 같습니다. 진정한 종교인들이 많이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5.
'초기 기독교 같은 경우 아무리 민중적이라 하더라도 현실화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없듯이 부자가 하늘나라로 못 간다는 것이 물론 계급 질서에 대한 비판이지만, 구체적인 행동 방법이 제시돼 있지 않은 것 아니냐' 하는 질문입니다.

2천년 전 사람들의 사회 인식 수준과 우리의 인식 수준이 당연히 조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당시로서는 계급 질서를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체념적인 생각이 거의 모든 고대·중세 사회에 아주 만연해 있었습니다. 예컨대 붓다도 사회개혁에 매진하는 것보다는 수행자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들끼리 국가를 벗어나서 공산주의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에서도 '최후의 날에 부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요한계시록 같은 곳에 쓴다고 하더라도, 우리 손으로 부자들을 심판해서 부자들도 빈민들도 없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그 당시로서는 제시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소농들과 노예, 그리고 장인들의 사회인데, 생산력의 발달 수준이 미미하고 분산되다 보니까 서로 힘을 결합하는 데 한계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종족·부족·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는 그 당시의 세상에서는 민중이라는 종합적인 개념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당시의 사회적 한계가 있어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는데, 초기 기독교의 정신을 오늘날에 와서 살리자면 분명히 오늘날의 우리 수준에 맞는 그런 현실화 방안을 고민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정의를 구할 수 없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질서를 타파하자면, 일단 그 질서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행동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일 테고, 지금에는 생산력의 발달 수준과 교육의 발달 수준 등으로 봐서 이것은 꼭 폭력적인 행동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생산력이 어느 수준에 도달한다면 그 다음에 자본주의를 폐기한다는 게 지배계급의 저항만 끈질기지 않다면 굳이 폭력을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제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물으셨는데요, 저한테는 사실 제일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 예컨대 불자라 하더라도 제가 사찰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조계종 신도증도 없고, 그러니까 가짜 신자라고 해야죠. 그리고 '신자'에서 '신' 할 때 '믿을 신(信)' 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기 불교에서는 믿음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 실제 초기 불교에서 가장 많이 썼던 용어가 뭐였냐면 '냐나'(이해), '브라즈냐'(般若: 지혜) 같은 용어였습니다. 초기 불교에서 가르침은 무조건 믿으라는 그런 소리가 아니었고요. 이해해서 실천하라는 소리였죠. 만약 진짜 불교를 가지고 뭔가를 한다면, 믿을 신 자는 웬만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불교를 종합적으로는 공부를 많이 해서 그쪽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7.
'우리가 그렇게 기복신앙에 열중하는데 왜 하필이면 삼신할머니라든가 하는 민속신앙이 기독교와 맞물릴 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느냐' 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 민속신앙의 하나의 큰 문제는 뭐였냐 하면,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자로부터 천시를 많이 받았던 거구요, 근현대에 와서는 성리학자를 대신한 기독교인으로부터 그것보다 훨씬 더 심한 멸시라든가 악마시하는 그런 것을 많이 당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속신앙인이 지배자들로부터는 천대를 많이 받아온 것입니다. 시장화하는 데에는 지배자들이 늘 낮은 것으로 취급해온 민속신앙보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고급 신앙'이 상품화하는 데서는 훨씬 쉬운 거죠. 이것은 한국의 사회·문화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고요.


8.
단군 이야기를 하자면, 하도 폭발력 있는 주제라 간단하게 [답변]하겠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민중 생활이라든가 민중의 신화를 보면, 단군이 민중에게 신앙의 대상이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단군에 대한 기록이 왕조실록에서나 "단군묘가 있다"는 기록은 있는데, 민중들이 단군을 찾고 신앙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개화기에 와서 단군이 민족주의적인 신앙의 대상이 됐는데, 단군 신앙, 즉 대종교를 만든 사람들이 호남의 유림들이었습니다. 민중이 아니라 유림들. 나철 선생 같은 사람들이 대종교를 만든 동기는 일본에 가서 일본의 국가 신도(神道)의 주된 신격인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보고 '한국에서도 부국강병을 이루자면 그런 국가 신도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쪽에 아마테라스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단군이 있다'는 얘기를 해서, 1909∼10년에 초기 대종교를 만든 겁니다.

거기에 상당히 동조한 사람들이 일부 개화주의자였습니다. 박은식 선생 같은 사람이 많이 동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단군 신앙이 당시 민중적이라기보다는 사회 상류층 일부의 일종의 반대모방, 일본과 정치적으로 싸우면서도 일본의 신도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때는 수많은 반일적·항일적인 저항적 지식인이 단군 신앙을 갖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일제 말기에 대종교는 일제와 협력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군정기에 들어서 대종교뿐만 아니고 천도교라든가 동학을 이은 기타의 신앙 단체들이라든가 거의 모든 토착적인 신앙 단체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습니다. 미군정이나 초기 한국 정부를 등에 업고 기독교가 밀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종교 시장이 아주 급격하게 기독교 위주로 재편됐습니다. 그것이 미군정이나 이승만 시절의 일인데, 그 뒤로는 교회가 고성장을 계속 거듭해 온 겁니다. 한국 종교시장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9.
제가 질문을 완벽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의 논리가 결국 신앙을 지배하는 게 아니냐' 하는 질문인 것 같은데요.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신앙을 표방하는 단체들도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일종의 기업의 형태로 꾸려져 있는 것이고, 기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금을 안 낸다는 것 빼고는 [다른 점이] 거의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업 형태로 돼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구체적인 신앙 행위는 결국 말 그대로 장사 가까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를 갖고 있는데, 물론 모든 교회들이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향린교회라든가 몇 군데의 민중신학 계통의 교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의 신앙과 신학을 볼 수는 있으나 아쉽게도 그것은 소수 아닌가 싶습니다.


10.
'전태일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 같은데, 전태일이라는 분의 수기 등을 보면 한 사람이 어떻게 계속 변해 갔는지, 어떻게 사람의 사상·이념 세계가 계속 바뀌어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초기에 전태일은 대통령한테 "상소"를 하면, 즉 대통령한테 노동자의 생활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편지를 쓰고 얘기한다면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말하자면 기존의 권력 체제를 이용해서 노동자 생활을 개조하고자 했는데, 결국 그 미련을 버리고 전투적인 투쟁으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한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아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태일의 분신 자살은 그 당시 한국 사회, 아마 1960∼70년대에 가장 큰 충격이 아니었나 싶고 민중신학을 만드는 데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라든가 수많은 노동자들이 분신 자살합니다. 최근 몇 년 만해도 자살한 노동자들이 벌써 수십 명이 되는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분신하신 분들만 해도 적어도 열 명 안팎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노동자가 그냥 자살하면 신문에서 보도도 없고요. 분신자살한다 하더라도 신문에는 짤막한 보도 하나 나가고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자본주의에는 확실히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유리한 겁니다. 소프트한[연성] 독재죠. 그런 체제 안에서는 노동자의 죽음은 별다른 충격이 될 수 없습니다. 여론 형성 과정이 철저하게 통제받기 때문에 결국 전태일처럼 요즘 노동자들이 분신자살해도 결국 사회에서는 아주 외로운 위치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무현이 폐지할 것이라는 예측은 예전부터 했었다. 정권 초기에 이미 폐지하겠다는 언급을 했고
이창동이 장관되더니 입장을 급선회하면서 더 이상 말릴 사람은 없어졌다.

물론 폐지하지 않는다고 지금 한국 영화계가 가진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폐지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개방이야말로 대세라고 하는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개방을 강요하는 미국이
왜 크라이슬러가 파산직전으로 몰렸던 80년대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려고 일본에 막대한 통상압력을 넣었는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강제로 자율적 수출 규제를 부과하고 나아가 환율 변화를 통해 일본의
수출을 강제로 억제하던게 당시 상황이다.
또 최근 부시도 집권하자마자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한 세이프가드를 만들어서 원성을 듣게 했다.
이런 단순한 사실 몇가지만 상기해도 무조건적인 개방이 선이라는 주장은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한걸음 나아가 장하준의 분석을 살펴보면 개방론이란 주로 당대의 가장 선진국이 자신감이 넘칠 때
주변에 강요하는 논리고 보호론은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쪽이 주장한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서 보면 한국이 과연 모든 산업을 보호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무조건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이 어리석은 만큼 영화산업은 무조건 개방해야 하는가 답하는 것도 그리 현명하지 못할것이다.

한국 산업 중 자동차는 그러한 보호를 통해 성공을 하고 있는 반면 항공의 경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단기간 보호해야 할 대상은 성장 잠재력이 강하고 향후 세계시장에 경쟁력이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영화산업이 너무 약해서 보호해야 하는지 아니면 앞으로 잠재력이 꽤 있기에 한시적으로
보호해야 하는지를 묻는 쪽이 더 좋을 것이다.

먼저 영화산업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돌아보면 그동안 쿼터가 기여한 부분은 적지 않다. 우선 영화를 만들 자금의 상당부분이
영화업자인 극장주의 손에서 나왔다. 이들이 어차피 의무상영이라는 족쇄가 있어서
꽉 차지 않는 극장의 좌석을 해결하려면 좀 더 재미 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후원하는게 득이 되었다.
대표적 감독이자 제작자인 강우석의 경우에서 보면 첫번째 손잡고 후원을 받는게 바로 이런 극장주의
돈이었다.

그렇게 푼돈으로 어렵사리 한두편 만들어가는데 가장 큰 족쇄는 역시 제작비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였다.
투캅스를 만들면 경찰이 반발하고 여승이 등장하면 불교단체가 난리치고 오세암이라고 그려냈더니
기독교 단체가 보이코트하는 것이 바로 한국영화의 현실이다.
특히 정치 코미디의 경우 죽은 독재자의 아들이 소송까지 걸고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희한한
사태도 나타난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영화공간의 넓이 또한 그리 넉넉하지 못한다.

이러한 여건속에서도 다양한 감독들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자 갑자기 돈이 들어온다.
삼성,대우 등 재벌의 돈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CJ,오리온 등 식료품과 과자팔아 먹던 기업들이
현금 동원력을 무기로 진입한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늘리고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하면서 배급력을 키워 나간 이들의 공도 크지만 반대로
돈되는 것 아니면 별로 후원하지 않는 과도 작지 않다.
강우석의 경우 따르는 후배들에게 통크게 후원도 하지만 한번 찍히면 철저히 밟는다면 악평도 고스란히
따라다닌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역시 그가 대표로 있던 배급사는 일종의 권력이 되어버리고 만다.
헐리우드의 직배로부터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배급권력으로부터 자유도 필요한 부분이다.

어차피 영화산업에서 돈은 필수적이다. 자본의 육성 또한 필요한 부분이지만 현재의 정권의 경우 전체적인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 시절은 그래도 IMF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수천억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고 스크린쿼터를 고수하면서 일본문화를 개방해서 한편으로는 역으로 시장확대라는 긍정적인
기반도 닦았다고 평할 수 있다.

헐리우드는 왜 이렇게 스크린쿼터에 집착할까? 혹자는 직접 영화관을 지어서 자국의 영화를 많이 틀어
돈벌려고 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는 한류의 확산으로 상징되는 한국 영화의 부상에 대해
싹꺽기라고 생각된다. 전세계적으로 헐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이 높지 않은 경우는 딱 3곳 프랑스,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한국영화는 이제 한류 바람을 타고 동아시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별로 돈들이지 않는데도 이정도면 더 커지면 어떻게 위력발휘할지 모르니 이제 제어를 해야겠다는게
아마도 그들 생각일 것이다. 그러면 막바로 적의 본토로 진출해 공략할 필요가 있구나 하고 요구하는게
스크린쿼터 폐지 주장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영화 점유율이 지금 정해진 쿼터를 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상대방의
저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은근 슬쩍 다른 성과를 위해 희생을 시키는 의도일 것이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지금 로컬 시장에서 개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시장을 넓혀나갈 수 있는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할 것인가는 지금 기로에 놓여 있다.
한국이 진정 그러한 성장을 원한다면 다국화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외국진출을 줄여서 미국과의 대립을 줄여나가는 게 오히려 좋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은 무척 강하다. 제1의 경제대국이고 자국에 여러가지 서비스 시스템을 훌륭히 갖추고 있다.
타국에는 적자 보지 말고 부실기업 처분하라고 강요하면서 IMF를 통해 구조조정 요구하지만 자국이 적자를 보이면 열심히 종이 찍어서 타국에 넘긴다.
어차피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다.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 만들었다고 침공 당한 것인가?
그런 거대하고 별로 공정하지 못한 미국에 대해 맹목적으로 가치를 추종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현명할리가 절대로 없다.

노무현은 폐지하고 미국과 FTA 맺으면 대단한 성과가 난다고 열심히 홍보한다. 일자리 몇개 등등
홍보자료는 솔직히 거슬리는 수준 뿐인데 한번 묻고 싶은게 서비스 산업에서 개방만이 경쟁력을
키운다고 생각하는가다. 때로는 적당한 보호와 육성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분명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데
솔직히 노무현에게서는 아무리 봐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동료 유시민이 취직은 알아서 하는게 아닙니까라고 말하듯이 영화도 알아서 커야 하는것 아닙니까라고 되묻는 것 아닐까?

노무현을 자주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곰곰히 따져보면 주한미군 재배치를 비롯해서
분담금 등 여러 부분을 보면 그는 말이 많은데 그 말의 값을 치르기 위해 뒤에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인간이다. 겉으로는 생색내는 것 같지만 부담은 결국 커져서 돌아오는 것인데
몇년 해보더니 돈이 없으니 세금 더 주세요라고 한다.
영화 문제를 놓고 접근하는 방식 또한 그렇게 신통치 않은 것 같아 다시 한번 안타깝게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밖에 나가보면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뼈저리게 느껴진다.
한국의 첨단 휴대폰이나 LCD에 들어가는 일본제 부품들이 왜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는지, 단 하나라도 국산화 시켰을 때 느끼는 희열감은 또 왜 그렇게 큰지.

그럼에도 아직 갈길은 꽤 멀다. 최고지도자들이 말 몇 마디 했다고 극일이 되는 건
아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보겠다는 YS의 거창한 말들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일본은 IMF 직전에 한국 정부의 통사정을 냉정하게 뿌리치면서 돈 빼버리고 우리는 부도를 맞게되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박정희나 전두환의 일본 외교는 거의 대부분 돈 꾸러다닌 것들이었다.
그런 현실이 어느날 갑자기 말 몇마디에 바뀌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늘 거론하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다.
물론 전쟁 범죄를 인정하는 일본의 태도가 얄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은 스스로 돌아보아 한 점 부끄럼 없는가?
얼마전 12.12, 5.18 동지 유학성이 묻힌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전두환의 모습이 사진에 잡혔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 반성하는가?
결코 아니다.

그런 내란에 학살 범죄자들을 번듯이 나라의 호국영령들 묻힌 곳에 안장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과연 일본에 손가락질 할만큼 떳떳한지 되 묻고 싶은 대목이다.

일본 만화를 보면 또 웃긴 장면들이 나온다.
일본의 범죄에 항의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논리적 대응을 하기 위해서
베트남에서 벌였던 한국군인들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취재하러 떠나는 일본기자의 모습이 나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얄밉지만
제3국인의 눈에 보면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한 짓이 결코 일본인들의 한반도에서의 범죄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제 눈에 박힌 티눈을 뽑지 못한다면 남의 눈의 들보를 뭐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