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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즘 입문서로 좋다는 평이 있길래
이제야 이런 책에 관심두는 자아를 비판하며 나도 이 책을 기점으로, 라는 생각으로 구입해
읽었다.
저자처럼 나 역시 핑크색을 좋아하기에 책을 받자마자 일단 급호감이 생겼는데
표지를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각종 매체의 빵빵 터지는 추천사에 왠지 싸한
게, 갸우뚱해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 그랬는데.
'록산 게이의 해'라는 타임지는 그렇다 쳐도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새로운 고전'이란
타이틀은 좀 오바 아닌가.
다 읽고 난 소감은? 나 같은 페미니즘 초짜에게는 읽어봄직한 책이지만 고전으로
오르내릴만큼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록산 게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됨이나 가치관, 편견없는 시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색 인종으로 자라온 환경, 어렸을 적 당한 성폭력, 여자로서 멸시받았던 경험들.
저자의 그런 개인적 경험담은 꽤 감동적이면서 그녀의 주장을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요소이자
근거가 되어주니까.
하지만 록산 게이는 뭐랄까, 그 이면에, 두뇌 회전이 아주 빠른 상업주의적 페미니스트 같은
냄새가 난다.
책에서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 책, 유명 인물의 개인사, 매스컴 등등을 가차없이 대차게
깐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전제하에 불완전하고 흠이 많은 사람이니- 라는 전제를
달며 숨을 곳을 찾는다.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 줄 알고 왠만한 깡이 아니고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부분까지
들이댐은 대범해 보이지만
구성이 잘못된 것인지 책이 매끄럽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난잡하다.
이것저것 다 빼고 삼 분의 이 정도로만 줄였어도 퍽 재미있게 읽혔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아주 좋아서 내 마음을 흔든 이야기도 몇 있긴 했다.
+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일과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판단했고 슬픔을
분해했다. 그저 한 명의 가수였던 이 연예인을, 중독에 시달렸던 소녀-여자의 죽음을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중독자의 생명은 아무런 가치가 별로 없다는 듯이, 마치 비극이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애도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바다 건너 77명이 테러로 죽었는데 왜 가수 한 명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인가? 우리는 왜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 마치 우리에게는 한 번에
한 번의 비극만 소화하고 한 번만 애도할 능력밖에 없다는 듯이, 어떤 비극에 반응하고 결정하기 전에 그 비극의 깊이와 정도를 재야 한다는 듯이,
마치 동정과 연민은 아껴서 사용해야 하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듯이 말이다.
크건.작건.비극이.부르면.연민이.응답한다.가슴이.응답한다.
+
나는 나 자신을
진보적이고 마음이 열린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치우친 부분이 있을 것이고 <헬프>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는지 아프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헬프> 시나리오는 백인 남성들이 썼고 백인 남성이 연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다른 점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다른 점을 제대로 쓰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 문화적인 편견을 이기고, 스테레오 타입을 피하고, 역사를
수정하거나 축소하는 걸 피하고 타인의 다른 점을 깎아내리거나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항상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제대로 쓰지? 그리고 인종 문제에 다가갈 때,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해야 할 때는 더욱
철저히 냉정하게 여러 차례 질문해 봐야 한다.다른 것을 쓰려면 더 섬세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
아직도 가끔 내가
페미니스트라 규정되면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나의 페미니즘을 부끄러워하며 숨겨야 할 것 같고 때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인신공격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이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감히 나서서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여성 혐오
문화를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곧바로 페미니스트 딱지가 붙는다. 나는 악플이 두려워 거의 보지 않았지만 우연히 하나는 보고
말았다. 나에게 "화만 내는 여자 블로거"라고 했는데 이것은 "화만 내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늘
'열렬한'보다는 '화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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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적으로 페미니스트의 갈
길은 험해 보인다.
조상 대대로 뿌리내린
남아선호사상의 우리나라만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나만 봐도 그렇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그런 것에 나 하나는 관여 안해도 되는 줄 알고 지금껏 살아왔으니.
정치적 성향도 그렇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차별은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이어져온 관습의 문제이다.
나 역시 그런 영향을 받으며
자랐으니 송두리째 변신할 순 없겠지만 변화하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를 아는 것과 모른 척
하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이 책이 시발점이 되긴
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