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지퍼퍼즐
학산문화사 편집부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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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딸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랑이 장난 아니라서 퍼즐편을 사줬는데 금세 맞춘다.
매일매일 꺼내와서 스스로 맞추고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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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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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인물이지만 오은영 박사의 육아서는 이것이 처음이었는데

알기 쉽게 쓰여졌고 실전 위주의 교육이라 얻은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부모로서 나를 자꾸 되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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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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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투쟁을 회피하고

허울은 좋게 배려라는 탈을 씌워

알 듯 모르게 혹은 나만이 희생이다 느끼며 살아왔던 그간의 일생이

달랑 두 권 읽은 페미니즘 책으로 달라질거라 예상하진 않았다.

인식의 전환을 깨우친 데에서 이미 출발은 시작되었다고 우격다짐으로 자축하면 몰라도.

쨌든, 이렇게 나 스스로 변하는 데에도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인식만은 확고히 다져두기 위해, 이번엔 문학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만나보기로 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두둥.

다방면으로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팬인 사람도 여럿 보았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엄청 설레었다.

그러나 아, 이건 뭔가 내가 기대했던 스토리가 아니었다. 읽다 보면 재미있겠지 기대의 끈을 부여 잡았지만 아쉽게도 기어코 내겐 별로다.

당연히 소설인 줄 알았던 이 무식한 1인에게 울프의 이러한 문학 비평서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회상과 풍토, 문학에 대한 직관적 해설이 가끔 흥미롭게 와닿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냥 지루한 책이었을 뿐.

아마도 이것은 읽어야만 해! 하고 발버둥치며 꾸역꾸역 읽은 <자기만의 방> 뒤에 연달아 실렸던 <3기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지루함의 끝판왕 <3기니>는 대충 속독해서 읽어 독후감도 못 쓰겠다.

 

<자기만의 방>에서,

세익스피어에게 누이동생이 있다는 가정하에 그 누이의 천재적 재능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의견,

<오만과 편견>의 제인오스틴이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관계로 공공의 거실에서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문에 기름칠을 하지 않았다는 대목,

그 외에 에밀리브론테와 샬럿브론테 등의 여성 작가에 대한 사회적 결여를 꼬집는 글은 그래도 기억에 남는다.

좀 더 연구하고 파헤치면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글쎄, 이 책을 읽으면 자꾸 마음이 침체돼서 더 보고 싶진 않다.

이 전에 읽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보면 울프의 책에 쓰인 문장이나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위대한 우리의 페미니스트라는 점에선 뭐 대충 읽은 나였어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미개한 틀은 존재하지만 그 영역을 넓고 깊게 변형시켜준 페미니스트,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접했다는 것에 민망하게나마 의의를 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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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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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겸손한 표현대로 가독성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을 알고자 했던 나에겐 굉장한 책이었다.

'나를 바꾸기 위해 책을 쓴다'는 저자의 고백이 고마운 것은 이 책을 읽은 나 역시, 어제의 나에서 오늘의 나로 변화를 꾀했기 때문이겠다.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서 뭐부터 짚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뭉뚱그려 중요한 사실은 나의 인식과 발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수십번도 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이 깨달음의 글을 각인시키고 싶어 상당히 집중하며 읽었으나 용량 초과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수, 도 있긴 했다.

그것이 그간 접한 적 없는 페미니즘의 전문 용어라서, 라고 얼버무리기엔 내 무지의 황량함이 너무 커 심히 부끄럽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의 수가 있다 한들,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당위성이 사라질 수 있을까 싶다.

 

참 글을 잘 쓰신다.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생판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는 사람은 유의해야 한다.

도전적이라기 보다 명백히 논리적인 저자의 필력에 어쩌면 지레 겁먹고 

역시 페미니스트는 어렵다, 라는 불명의 선입견을 깨지 못하고 책을 덮을 수도 있기 때문에.

또, 주의할 것은 개개인의 페미니스트 척도에 따라 책의 내용을 시시비비 따지거나 분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에겐 (매우 다행스럽게도) 저자의 논리가 고리타분한 과거의 발상일 수 있으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통계치에 근거한 작금의 여성을 담고 있다.

쨌든 이 책은 모르는 문장은 건너띄고 맥락만 이해해도 변태(몸이 변하는 것, 혁명)가 되기에 충분한, 나침반 같은 책이다.

 

현실을 직시한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국가가 국민을 방치하는 수준에 도달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곳이 없다.

전체를 아우르는 직관력이 뛰어나고 그것이 탄탄한 문장력으로 호기심을 유발해 정말 재미있게 혹은 가끔 씁쓸해하며, 읽었다.

이토록 열린 시각의 페미니스트가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주시는 것에 감사한다.

페미니스트가 대중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의 저자 '정희진'을 통해 알았다.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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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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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입문서로 좋다는 평이 있길래

이제야 이런 책에 관심두는 자아를 비판하며 나도 이 책을 기점으로, 라는 생각으로 구입해 읽었다.

저자처럼 나 역시 핑크색을 좋아하기에 책을 받자마자 일단 급호감이 생겼는데

표지를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각종 매체의 빵빵 터지는 추천사에 왠지 싸한 게, 갸우뚱해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 그랬는데.

'록산 게이의 해'라는 타임지는 그렇다 쳐도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새로운 고전'이란 타이틀은 좀 오바 아닌가.

다 읽고 난 소감은? 나 같은 페미니즘 초짜에게는 읽어봄직한 책이지만 고전으로 오르내릴만큼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록산 게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됨이나 가치관, 편견없는 시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색 인종으로 자라온 환경, 어렸을 적 당한 성폭력, 여자로서 멸시받았던 경험들. 

저자의 그런 개인적 경험담은 꽤 감동적이면서 그녀의 주장을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요소이자 근거가 되어주니까.

하지만 록산 게이는 뭐랄까, 그 이면에, 두뇌 회전이 아주 빠른 상업주의적 페미니스트 같은 냄새가 난다.

책에서 그녀는 영화나 드라마, 책, 유명 인물의 개인사, 매스컴 등등을 가차없이 대차게 깐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전제하에 불완전하고 흠이 많은 사람이니- 라는 전제를 달며 숨을 곳을 찾는다.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 줄 알고 왠만한 깡이 아니고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부분까지 들이댐은 대범해 보이지만

구성이 잘못된 것인지 책이 매끄럽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난잡하다.

이것저것 다 빼고 삼 분의 이 정도로만 줄였어도 퍽 재미있게 읽혔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아주 좋아서 내 마음을 흔든 이야기도 몇 있긴 했다.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일과 에이미 와인 하우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판단했고 슬픔을 분해했다. 그저 한 명의 가수였던 이 연예인을, 중독에 시달렸던 소녀-여자의 죽음을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중독자의 생명은 아무런 가치가 별로 없다는 듯이, 마치 비극이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애도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바다 건너 77명이 테러로 죽었는데 왜 가수 한 명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인가? 우리는 왜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 마치 우리에게는 한 번에 한 번의 비극만 소화하고 한 번만 애도할 능력밖에 없다는 듯이, 어떤 비극에 반응하고 결정하기 전에 그 비극의 깊이와 정도를 재야 한다는 듯이, 마치 동정과 연민은 아껴서 사용해야 하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듯이 말이다.

크건.작건.비극이.부르면.연민이.응답한다.가슴이.응답한다.

 

 

나는 나 자신을 진보적이고 마음이 열린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치우친 부분이 있을 것이고 <헬프>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는지 아프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헬프> 시나리오는 백인 남성들이 썼고 백인 남성이 연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다른 점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다른 점을 제대로 쓰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 문화적인 편견을 이기고, 스테레오 타입을 피하고, 역사를 수정하거나 축소하는 걸 피하고 타인의 다른 점을 깎아내리거나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항상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제대로 쓰지? 그리고 인종 문제에 다가갈 때,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해야 할 때는 더욱 철저히 냉정하게 여러 차례 질문해 봐야 한다.다른 것을 쓰려면 더 섬세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아직도 가끔 내가 페미니스트라 규정되면 멈칫하게 되기도 한다. 나의 페미니즘을 부끄러워하며 숨겨야 할 것 같고 때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인신공격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이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감히 나서서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여성 혐오 문화를 인식하고 각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곧바로 페미니스트 딱지가 붙는다. 나는 악플이 두려워 거의 보지 않았지만 우연히 하나는 보고 말았다. 나에게 "화만 내는 여자 블로거"라고 했는데 이것은 "화만 내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늘 '열렬한'보다는 '화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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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적으로 페미니스트의 갈 길은 험해 보인다.

조상 대대로 뿌리내린 남아선호사상의 우리나라만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나만 봐도 그렇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그런 것에 나 하나는 관여 안해도 되는 줄 알고 지금껏 살아왔으니.

정치적 성향도 그렇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차별은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이어져온 관습의 문제이다.

나 역시 그런 영향을 받으며 자랐으니 송두리째 변신할 순 없겠지만 변화하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를 아는 것과 모른 척 하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확실히 이 책이 시발점이 되긴 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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