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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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 매일 마주하는 사물들, 예를 들어 핸드폰에서부터 TV, 소파를 넘어 회사의 책상 위에 가득 메우고 있는 파일에서부터 볼펜이나 스템플러까지. 매일 보며 쓰고 있는 것들이지만 너무 익숙하기에 그것들을 쓰면서 딱히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요하기에 손에 잡히는 대로 쓰기만 하고 그저 제자리에 다시 두는 정도. 그것이 내가 사물에 대해 할애하는 시간의 전부일 것이다. 쓰고 제자리 두기란 짧은 시간들 말이다.

주변 이들에 대한 생각들은 계속하면서 내 주위에 있는 사물들에 대한 생각들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저자의 <사물의 이력>은 그런 점에서 생경하면서도 그렇기에 보는 내내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게 다가왔다.

작년 연말 즈음, 내 자신을 위한 선물이란 명분으로 큰 마음 먹고 DSLR을 구입하게 됐다. 보급형으로 나온 거라 그나마 다른 카메라에 비해 비용은 저렴한 편이었지만 나에게는 거금을 주고 구입한 그 카메라를 실제 사용하게 된 것은 한참 후 여름휴가였으니 카메라를 6개월 이상을 묵혀둔 셈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간 나는 정신 없이 셔터를 누르느라 어느 새 경치를 보는 것도 잊어 버린 채 뷰 파인더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남은 건 사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누른 셔터는 현재 나의 기억 속에는 거의 남아있는 것은 없고 그저 메모리 카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는 엄청난 수량의 사진을 가지고 있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이미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 많은 이미지가 디지털카메라 안에 들어 있더라도 내가 모른다면 찾을 일이 없고 그렇다면 그저 저장된 데이터 중 하나일 뿐이다. 필름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와 정반대로 편리함이 신중함을 잃게 만든 것이다. –본문

저자의 말마따나 필름 카메라를 썼던 예전의 기억들을 돌이켜 보노라면 인화를 하기 전까지는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꽤나 고심해서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장의 필름 속에 한 장의 사진이 각인되어 나오기까지, 필름뿐만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담기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았으니 사진을 찍는 행위에 있어 경건함 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한때는 모든 이들이 썼던 필름 카메라가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다니. 집 어딘가에 모아두었던 필름들이 문득 떠오르게 된다.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해서 그 동안은 잘 생각해보지도 않았다지만 이 책 안에서 벽돌과 시멘트를 마주하면서 어느 샌가 주변에 벽돌로 집을 짓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이야기 속에서 짚, 통나무, 벽돌로 각각 집을 지은 형제들 중 가장 튼튼한 벽돌로 지은 집 안에서 함께 살았던 이야기를 보노라면 당시 가장 튼튼한 건축 재료는 벽돌이었을 텐데 어느 새 그 자리를 시멘트에 내어 놓고서는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흙은 오늘날의 벽돌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지나면서 서서히 변화해왔다. 그 중에서도 점토에 밀짚이나 거름을 섞어 만든 어도비 벽돌은 기원전 7600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흙벽돌은 주변에서 손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비를 맞으면 약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기원전 3500년경에는 불에서 구워낸 벽돌로 발전하게 되었고, 흙은 현대 건축의 신소재 틈바구니에서도 수천 년이 지나도록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본문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이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높은 건물 숲이지만 이러한 건물들 안에 담긴 수 많은 과학 기술의 조합보다도 고대 지어진 로마 시대의 건물이 여전히 전해지는 것들 것 보면 과학의 진보가 가져온 것들이 더 좋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제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들이 더 나은 것들이라 믿고 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백열 전등은 2014년 이후에는 사라질 것이며 터치 스크린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각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뎌지고 있다. 삐삐는 사라졌지만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선호출기는 정감 어린 호칭이 오가는 것을 대신해 편이성을 도모하고 있고 함석으로 만든 물 조리개 대신 플라스틱 물 조리개와 같이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생산해 낼 수 있는 것들만 우리 주변에 계속 살아 남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효율성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간다고 해서 불필요한 것들이 아닌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음에도 우리는 철저히 그것들을 도태되었다며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은 훗날에는 이 책 안에 담긴 사물들 마저 보기 힘든 것들이 되어 버릴 지 모른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에 대해 곱씹어보는 내내 씁쓸함만이 입안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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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민낯 / 김지룡, 갈릴레오 SNC저


 

 

독서 기간 : 2014.09.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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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꺼내 보는 아버지의 편지
마크 웨버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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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신애라씨는 일기를 쓰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며 이것이 자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라는 보면서 과연 그 안에는 얼마나 따스한 이야기들은 물론 때론 냉철한 시선으로 본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당연히 곁에 있기에 내일도, 아주 먼 미래에도 부모님이 함께 계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 그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기에 그저 그 사실이 아련하기만 한대, 이 책의 주인공인 마크 웨버에게는 그 사실은 더욱 통탄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몸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있었고 그에게는 아직 어린 세 아들과 아내가 있었으며 이제부터 조금 더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보내리라는 다짐을 한 순간 그에게 이런 청천벽력과 같은 일들이 밀려들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머리 속으로 그려 보아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답을 구할 수 없을 것만 그 순간에 마크 웨버는 자신의 몸에 잠식하고 있는 암세포와 싸우는 것은 물론 평생을 통해 아이들에게 들려주려 했던 이야기들을 이 안에 고스란히 담아 놓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을 때 혹은 전동기계를 어깨에 메고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을 때 얼핏 천하무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솔직히 이 아빠는 죽어가고 있단다. 그래서 너희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략)

매슈의 말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아빠 스스로 얻어낸 거야. 그러니 나의 이야기는 너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본보기가 아니란다. 무수한 수의 경로 가운데 한 가지 예에 불과해.

너희는 어느 길을 가야 할까? –본문

그 역시도 오랜 시간, 아이들의 곁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웃고 떠드는 일상을 자연스레 생각했지만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확언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를 통해서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현재 지금의 모습까지를 빠짐없이 담아 놓고 있었는데, 어쩌면 다시 없을 기회가 될 이 한 줄 한 줄의 이야기 안에는 그의 애잔함이 스며들어 있다.

그저 점검 차 들렀던 병원에서 암세포가 너무 많이 이전되어 있기에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이제서야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들을 보내보려 했던 그에게 들려온 이 비보 앞에서 그는 담담하게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먼저 전해주고 있었고 그렇게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휠체어와 안락의자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15년 동안 봤어요.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매일 살아갈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뭐예요?”
 
할머니는 웃지도 대답하지도 않았어. 그저 움직일 수 있는 쪽팔을 들어 주워 벽을 가리켰지. 거실의 사방 벽에는 200개가 넘는 사진 액자가 빼곡히 걸려 있었단다. 할머니의 자식들과 그 모든 결혼식, 서른 명이 넘는 손자들, 그 손자들의 결혼식 그리고 증손자들의 사진까지 말이야. 할머니에게는 편안한 길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고난과 도전의 중압감과 채찍을 견디는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셨던 거지. –본문

그가 보기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던 할머니의 삶은 도무지 견뎌낼 수 없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하루 정도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시간이 좋겠지만 무려 15년이 넘는 세월을 그저 우두커니 있어야만 한다니. 도무지 내 것이 될 일 없기를 바라는 그 모습을 오랜 시간 살아오신 할머니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견디는 법을 체득하고 계셨고 그 기저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렇게 어느 새 그 역시도 병원에서 환자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마주해야 하는 그 순간이 도래했을 때에도 견디기 힘든 일들이 늘어가는 와중에도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어떻게 아이들의 엄마인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가 참전했던 전쟁의 순간 속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아내에게 자신이 잘못했던 것들을 무엇이었는지 등 그가 지내왔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앞으로 그가 볼 수 없을 그 순간들, 그러니까 아이들이 장성해서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가장이 되어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그 순간들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가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이라크에 참전하게 되면서 먹어야만 했던 파리가 가득한 양고기를 마주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었던 그 순간을 지내왔던 법이라든가 엄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달려와 왜 싸우는지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그때 다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강인하면서도 그래서 더 서글프게 느껴지는 듯 하다.

너희가 슬퍼할 때나 화가 났을 때, 아빠가 웃겨주던 때를 기억하니? 내가 너희 입을 열려고 애쓰면 너희는 웃음이나 미소가 새어 나오지 않게 입을 꼭꼭 막고는 했지. 너희는 웃지 않으려고 했어. 다들 울게 놔두는 게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구나. 하지만 웃게 놔둘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보렴. –본문

인생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듯, 그의 아이들도 그가 겪었던 마주치지 않길 바라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힘겨운 순간, 그는 언제나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뒤에서 묵묵히 자리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기만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남겨질 모든 이들을 위해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더 이상 그의 환한 웃음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따스한 이야기는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서 아이들은 물론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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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 편집부저

 


 

 

독서 기간 : 2014.09.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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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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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여자로서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회와 조건 속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은 한 가정의 안주인이 되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고 지아비를 섬기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우선으로 배웠기에 학문에 있어서 여성으로서의 진출을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60~70년대만 해도 여자아이는 집에서 살림을 돕고 일손을 보태는데 우선이었기에 남자에 비해서 교육의 기회가 월등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 성벽은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전 세기의 여성들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교하자면 나의 어머니 세대만 해도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나는 편안하게 누리고 있으니 여자로서 지금의 시대를 사는데 있어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기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현재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는 것들이 이전의 수 많은 그녀들의 외침에 의해서 이뤄낸 것이구나, 를 느끼며 그녀들의 노고가 심심치 않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생각하는 그녀들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마주하며 그녀들의 당당했던 외침을 보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칸트는 남성은 뒤에서 여성을 돌봐주는 척하면서 그들을 감독한다. 말하자면 가축을 사육하는 것처럼, 이 조용한 피조물이 테두리 바깥으로 단 한 걸음도 감히 나가지 못하게 하여 어리석은 상태에 머물게 만들고, 이들이 독립해서 나가기라도 할라치면 분명 위험에 빠지게 될 거라고 위협한다.” 라고 비판했다. –본문

누군가는 이 책을 보며 다분히 페미니즘의 색채만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 그 판단이 맞을 수 있다. 이 안에는 22명의 여성들이 그녀들의 색채를 담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롯이 여성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그 당시의 시대상 안에서 발아해야만 했던 문제들이었구나, 라는 식견으로 바라보면 그 때의 외침들이 필요로만 했던 순간들, 그러니까 무언가 세상에 대한 균형이 필요했던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말하기 꺼리는 그 순간에도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그 아릿한 순간들을 담아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두가 OK하는 순간 NO라고 외치는 것은 그저 그 순간 발아하는 불꽃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구한 시민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에 대해 거리낌 없이 고발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체첸 주재 러시아 저널리스트로서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그곳 사람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끔찍해서 도저히 받아 적을 수 없는 증언들을 보고 들으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국가를 잃고 민족 말살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러시아군은 정기적으로 시골 마을을 습격해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였다. 민간인 사이에 숨어 있는 체첸 전사를 색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지역민들의 재화를 약탈하고 그들을 집에서 몰아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본문

 체첸의 현실을 목도하고 기록하며 그것을 알린다는 이유만으로 안나는 러시아군에 체포되어 참호에 갇히기도 하고, 심문을 당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을 지 모르고 누군가의 피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압박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진실을 파헤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녀 스스로는 피구덩이에 있다고 한들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그녀라면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먼저 앞서게 된다. 안타깝게도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를 뒤로 하고 더 이상 체첸의 현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더욱 빛이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임신을 할 자유는 누구에게다 당연히 주어져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다. 무분별한 낙태는 문제이긴 하지만 임신 중절수술을 불가하게 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역효과는 물론 불법적인 시행으로 인해 여성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다는 통계를 보고서는 임신의 자유는 지켜져야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사실은 이마저도 1960년대의 유럽에서조차 쉬이 적용되지 못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많은 지역이 독일 나치주의자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에 점령당한 1942, 프랑스 당국은 임신 중절은 국가의 안전에 반하는 범죄라고 선포했고 낙태하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전쟁으로 혼탁하고 궁핍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하층민 여성들에게 또 다른 전쟁과 같았다. 
 
많은 여성들이 암암리에, 더러운 침대 위에서 목숨을 담보로 낙태수술을 감행하던 그때, 마리루이즈 지로는 총 26회에 걸쳐 여성들의 임신 중절을 도운 되로 체포되었다. (중략) 1943 7 30, ‘낙태하는 여자 마리루이즈 지로는 결국 파리 라로게트 감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본문

 반세기 전의 유럽에서는 낙태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해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낙태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운 감자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하리만큼 엄청난 이슈였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아기는, 내가 원한다면, 내가 원 할 때 갖는다라는 그녀들의 구호가 널리 퍼지기까지 이토록 많은 일들이 있어야만 했다니. 이 안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치열했던 그녀들의 삶이 외경스럽게 느껴진다.

 여성이라는 성으로 지난 시대를 살아왔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로 하여금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들이 알고 보면 지난 날 그녀들의 노고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겠지만 그녀들의 행보로 인해 지금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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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슈테판 볼만저

 


 

 

독서 기간 : 2014.09.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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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내게로 왔다 내게로 왔다 시리즈
김윤희 지음 / 책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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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내게로 왔다>에 이은 <스페인이 내게로 왔다>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한달음에 이 책은 꼭 읽어 봐야 해! 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이야기는 단순히 관광이 아닌 여행에 대한 내용은 물론 그 안의 역사적 배경이나 거리에 담겨 있는 이야기나, 지나가며 그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 등 그야말로 잠시 스치는 관광이 아닌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보며 단순히 보고 즐기고 사진을 남기기 위한 여행이 아닌 진솔한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기에 이번 스페인이 내게로 왔다, 역시 그러한 느낌을 기대하며 빠르게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유럽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어 동으로는 지중해, 북으로는 비스케이만, 그리고 북서로는 대서양과 접해있다.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일찍이 해상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영역을 넓혔던 나라이다. 동쪽은 프랑스와 국경이 닿아있고 서쪽은 포르투갈과 접해 있으며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의 이탈리아, 아프리카의 모로코를 마주하고 있어 유럽과 아프리카 교역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무역 강국으로 번영의 시대를 누려왔다. –본문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자그마한 나라로 보이는 스페인이 이토록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다니. 그저 나에게는 탱고가 유명한 정열적인 나라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곳이라는 정도 밖에 몰랐던 나에게 그녀가 들려주는 스페인의 각 도시별 이야기는 한 도시 안에서 수 많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가지 각색의 빛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스페인, 하면 마드리드밖에 몰랐던 내게 그녀의 여정을 따라 처음 마주하는 수 많은 도시들은 어느 새 동경의 도시가 되어 전해지고 있다.

 

 

각 도시마다 마요르 광장이 있는 것을 보고 대체 마요르가 뭘까, 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큰 광장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들의 휴식처로서 이용되고 있는 이 곳은 예전에는 종교재판장이나 사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수 많은 종교재판이 이뤄졌던 이 도시 안에서 지금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마주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에 매료되게 된다.

카를로스 5세는 메스끼따를 허물고 그 위에 성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로 기둥을 비롯한 일부만 허물고 개축하였다. 카를로스 5세는 성당이 완공된 후에 이곳을 찾아와 메스키따 건축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을 부수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흔한 것을 지었구나라고 말하며 크게 후회를 했다고 한다. –본문

이슬람이 이미 자리하고 있던 곳에 뒤이어 들어온 기독교의 점령으로 인해 메스끼따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모습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 사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상이나 성가대석, 기독교의 성물들은 과연 이곳이 이슬람 사원인지, 교회의 모습인지 헷갈리게도 하지만 두 개의 종교가 함께 맞물려 있는 이 모습은 스페인이 아니고서야 마주할 수 없기에 유일무이한 이 곳이 더욱 기억에 남게 된다.

 

 

지금도 오후의 휴식시간인 시에스타를 즐기며 2~5시 사이에 상점은 물론 관공서들도 점심을 즐기고 휴식을 만끽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스페인의 다양한 얼굴을 지나 스페인과 맞붙어 있는 포르투칼도 함께 여행할 수 있는데, 그저 이름만 들어봤던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보는 순간,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오후의 휴식시간인 시에스타를 즐기며 2~5시 사이에 상점은 물론 관공서들도 점심을 즐기고 휴식을 만끽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스페인의 다양한 얼굴을 지나 스페인과 맞붙어 있는 포르투칼도 함께 여행할 수 있는데, 그저 이름만 들어봤던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보는 순간,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알파마 지구는 리스본의 옛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산타 아폴로니아 역 긑처에 있는 일명 빵떼옹이라 불리는 산타 엥그라시아 성당이다. 오래된 주택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이 성당은 흰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본문

유대인들이 모여 살았으나 국토회복운동으로 떠나야 했던 그들은 이곳에 없지만 그들의 흔적만은 거리에 가득 남겨 있다. 작은 골목들 사이에 보이는 하얀 벽과 그 아래 꽃길이 가득한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이 곳을 걷는 것 만으로 근심 따위는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데 리스본은 도시 전체가 볼거리로 넘쳐 난다고 한다.







 

특히 이번 스페인이 내게로 왔다, 에서는 음식에 대한 소개도 매 도시가 끝나는 부분에 함께하고 있어 식도락의 즐거움도 함께 안겨주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전 <이탈리아가 내게로 왔다>보다 선명해진 사진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지만, 각 사진 별로 지명 혹은 건물 명에 대한 명칭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각 페이지별로 사진이 담겨 있는 것은 그 지명 혹은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는 하나 여러 장소의 이야기가 함께 나열되는 곳에서는 과연 이곳이 어디의 사진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게 되니, 아마도 이것마저 저자가 실제 여행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면 그의 의도는 100% 적중한 것이라 보인다.

 일기와 같이 그날그날의 일정을 따라 가다 보면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마주하게 되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친절히 일러주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어서 이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좀 더 채우고 싶은 이야기들은 내 두 발과 손으로 채우길 바라면서 그녀의 다음 여정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르's 추천목록

 

『이탈리아가 내게로 왔다』 / 김윤희저

 


  

 

독서 기간 : 2014.09.1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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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말하다 - 세계의 문학가들이 말하는 남자란 무엇인가?
칼럼 매캔 엮음, 윤민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80여명의 이야기가 한 곳에 모여있다 보니 집중은 다소 힘들었던 책이다. 뭐랄까. 이제 시작하겠거니 하면 어느새 끝이 보이고 마는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 가,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곤 했는데 남자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틀과 그들이 바라보았던 경계의 선이 확연히 달랐기에 그 갭을 줄여나가는 것이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어찌되었건 80여편의 글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었으니, 그 정도 만으로 이 책을 읽은 보람을 느껴보려 한다.

 지난 밤, 당신의 심장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난 후, 어딜 가나 나에게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렸지요. 우렁찼지만 거칠게 쉰 목소리가 귓가를 계속 맴돌았습니다.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고, 결국에는 태워ㅡ 사람들은 이걸 화장이라 부르더군요 ㅡ 내 손으로 당신을 직접 묻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그러나 자꾸만 당신이 보입니다. –본문

 남들보다 훤칠하게 큰 키에 듬직한 체구를 가진, 이른바 황소라 불리던 남자는 늘 과묵하니 말이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제 마음 하나 드러내는 법 없이 조용하게만 지내고 있던 그의 눈에 어느 날 아리따운 여인인 프쉬케가 등장하게 되고 혼사 문제가 오가고 있을 그녀의 집안에 성큼 들어서 그녀의 남자가 된 엘리후를 보며 그렇게 그의 인생은 평온하게 지나가는 줄만 알았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37년 만에 다시 나타난 엘리후는 혼자 오두막에서 지내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프쉬케에 대한 안부도 없이 고요히 지내기만 하는 그를 보며 증손녀인 에스메렐다는 그가 그것을 가져왔노라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그걸 다시 가지고 돌아왔다는 엘리후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되는데 대체 그가 다시 가져온 것이 무엇일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더 많이 남았던 이 책을 읽는 동안 적잖이 머리가 아픈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 와중에 마주하는 단비 같은 이야기들로 인해 겨우내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남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들이 정리 될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진 것 같다. 역시, 책 한 권으로 그들을 알고자 했던 것은 과욕이었나 보다.

 

 

 

아르's 추천목록

 

 

 

여자는 모른다 / 이우성저

 


 

 

 

 

독서 기간 : 2014.08.31~09.0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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